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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의 일들을 쵸로마츠의 시점으로 본 이야기입니다













상식인은 겁이 없다

 

 

 

 

 

마츠노 쵸로마츠는 영감이 있다.

그렇지만 그는 그걸 모른다.

 

 

 

왜냐면 그는 0감이니까.

 

 

 

 

 

 

[‘화장실의 하나코씨라고 알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무서운 이야기, 옆자리의 여학생이 말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된 것이었다.

 

쵸로마츠는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 시절의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와 서로 골목대장 투톱을 다투던 아이였고, 그의 사전에 공포라는 글자는커녕 상식이란 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교시각이 지나고, 석양이 복도를 물들일 무렵.

쵸로마츠는 선생님께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교실을 지나 복도를 살금살금 빠져나갔다. 소문의 삼층 여자 화장실까지 가는 도중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여자 화장실 문을 열고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쵸로마츠는 슬쩍 화장실로 들어섰다. 쵸로마츠의 좌우에는 개인 화장실 칸이 3개씩 있었다.

 

화장실은 모두 문이 열렸고, 사용이 가능해 보였다.

 

쵸로마츠는 팔짱을 끼고 화장실 한복판에 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장실에는 시계가 없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쵸로마츠의 그림자가 아까보다 상당히 커져있다.

 

쵸로마츠는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다음날, [화장실의 하나코씨가 어제 나타났대!!]라고 떠들어대는 여자애들에게, [하나코씨 같은 건 없었다고. 나 계속 감시했는걸] 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랬다간 자신이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간 게 걸릴 테니 잠자코 있기로 했다.

 

 

그밖에도 이 학교에는 7가지 불가사의가 있다는 모양이다. 하나코씨는 그 중에 하나라는 걸, 쵸로마츠는 깨달았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조사를 하기로 했다.

쵸로마츠는 의외로 이런 낭비적인 일에 행동력이 있는 아이였다.

 

 

 

 

여섯 쌍둥이 중 한명이 없어져도 금방 알아차리긴 어렵다. 그래도 역시 둘이나 없어지면 형제들은 물론, 부모님도 눈치챌 것이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파트너인 오소마츠를 두고 혼자 밤중에 학교에 잠입했다.

 

사람이 없는 심야의 학교는 낮의 학교와는 전혀 다르게 보여, 쵸로마츠의 모험심에 불을 붙였다.

 

 

쵸로마츠는 학교를 돌아다녔다.

 

 

니노미야 킨지로는 복도를 돌아다니지 않았고, 계단은 몇 번을 세도 12단이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봐도 아무도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라고 묻지 않았고, 음악실의 베토벤은 평소와 똑같이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이과실의 인체모형은 쵸로마츠를 내려다본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체육관의 농구공은 전부 제대로 치워져 있었다.

 

 

심야의 학교는 몹시 조용했다. 쵸로마츠는 자신이 유령들에게 버림받은 듯해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7대 불가사의 중 또 하나의 소문을 떠올렸다. 이 학교는 사실 불가사의가 총 8개이고, 8번째를 알게 되면 다른 세계로 보내진다는 것이었다.

 

쵸로마츠는 뛰어서 계단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학교 개교 초기부터 있었다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쵸로마츠는 그 앞에 섰다. 시간은 밤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울속의 쵸로마츠는, 층계참에 선 쵸로마츠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저기, , 쵸로마츠]

 

나직이 거울속의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거울속의 소년은 그대로 자신의 말을 따라 입을 뻐끔거리다 말을 끝내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근심 어린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8번째를 알게 됐음에도 다른 세계로 가지 않았고, 12시에 거울 앞에 섰지만 거울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지 않았다.

 

 

불가사의 따윈 거짓이라는 걸, 쵸로마츠는 깨달았다.

 

 

 

 

 

 

쵸로마츠는 고민이 있었다.

쵸로마츠는 남들과의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상식인을 자처하는 그에게 있어, 그건 그가 지켜야 할 중요한 신념이었고, 그와 동시에 그러기 위해 노력도 했다.

 

하지만 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여섯 쌍둥이들은 어릴 적 자주 어머니와 함께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갔다. 논바닥 투성이인 그곳은 처음엔 지루하다고 생각했지만, 자기들이 사는 곳과 달리 개구리나 도마뱀 같은 생물이 잔뜩 있는 시골이 싫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시골친구도 생겼다.

 

 

어느날, 친구와 논에서 뛰놀고 있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 하고 소리쳤다.

[왜 그래?]

[뭔가 저기서 꿈틀꿈틀거려]

[꿈틀꿈틀?]

친구가 가리키는 방향을 봤지만, 쵸로마츠의 눈에는 그냥 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거 없는데?]

[있다고! 하얀색의!]

그렇게 말한 친구가 그쪽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재빨리 뒤쫓아 친구의 어깨를 잡았다.

[! 그런 거 없다니까!]

나는 결코 눈이 나쁘지 않았고, 여기는 탁 트여있으니 친구가 말하는 하얗고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면 분명 눈치를 챌 것이다.

 

원래도 좀 불같은 쵸로마츠는, 자꾸 [하얗고 구불구불거리는 게 있다니까!! 저기에!!]라고 외치는 친구의 뺨을 세게 때렸다.

[그만 하라고!!! 그런 건 없다니까!]

우와아아아아앙, 하고 큰 소리로 우는 친구에, 집에서 친구의 할아버지가 뛰쳐나왔다.

[왜 그러니, 싸우기라도 했어?]

[얘가 자꾸 하얗고 구불거리는 게 있다고 그러잖아요!]

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뭐라고!? 너희들 그걸 본 거냐!?]

[몰라요! 녀석이 저쪽에 있다고 하는데, 없잖아요 그쵸?!]

아까 친구가 가리켰던 방향을 가리키자, 할아버지가 그쪽을 쳐다본다.

[너희들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

할아버지가 굉장히 무서운 얼굴로 고함을 지르며, 친구의 머리를 꽉 잡고서 쵸로마츠를 끌어안았다.

 

 

쵸로마츠는 친구네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친구를 말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가까이 갔으면, 손자를 야생으로 보내게 됐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하며 울면서 다다미에 머리를 박는 할아버지에 쵸로마츠는 약간 공포를 느꼈지만, 사례로 과자를 잔뜩 받아 그동안의 일을 전부 잊어버리고 크게 기뻐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분명 그 꿈틀거리던 것을 봤을 것이다.

 

친구가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은 보지 못했던 걸까.

 

 

 

 

 

[팔척님에게 빼앗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엄마가 오소마츠를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 몸에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착 달라붙어 있었다.

 

쵸로마츠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은 오소마츠와 달리 당사자가 아니니까, 전혀 무섭지 않았다. 이치마츠나 쥬시마츠, 토도마츠처럼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할 정도의 섬세함도 갖고 있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과 똑같이 멍하니 서있는 자가 있음을 깨달았다.

 

 

카라마츠였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인 걸까.

 

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공포에게 버림받은 인간인 걸까.

 

 

 

 

 

[이 사진 뭔가 무섭지 않아? 분명 심령사진일 거야!!]

그렇게 말한 친구가 내민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 진짜다!]

[뭔가 반투명한 게 비치잖아!!]

[꺄아- 무서워~!!]

함께 들여다보고 있던 모두가 제각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어디가 이상한 건데?]

[여기, 여기에 여자얼굴이 비치잖아]

그렇게 말하며 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자리를 응시했지만, 거기에는 인쇄기의 시커먼 잉크로 검게 칠해진 여자의 얼굴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모르겠는데]

[에에, 농담이지? 이렇게 잘 보이는데?!]

 

고등학교 친구들은 아직 흥분한 듯 그 사진의 화제로 떠들썩해, 쵸로마츠는 더 이상 그 분위기를 깰 수가 없었다.

 

 

 

 

 

 

쵸로마츠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그렇게 말하면, -, 의외네, 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공포영화를 보며 무섭단 말을 연발하는 친구들과 함께, 쵸로마츠도 비명을 내질렀다.

쵸로마츠는 공포영화를 볼 때만큼은 [무섭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무서워할 수 있었다.

왜냐면, 공표영화에 나오는 살인마나 유령은 가짜로, 실체가 있었다. 실체가 있기에, 쵸로마츠도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쵸로마츠는 사람들과 함께 무서워할 수 있었다.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상식인을 자처하는 쵸로마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니,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오소마츠가 공포영화를 빌려왔을 때, 사실 쵸로마츠는 그걸 학창시절에 이미 친구들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분명 쵸로마츠가 본 적이 있다고 하면, 오소마츠는 [그럼 이번엔 혼자서 볼까-] 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밖에 나가있는 니트인 자신들이, 이렇게 밤에 모두 모이는 건 드문 일이었고, 이렇게 공포영화를 빌려오는 이도 잘 없었다.

 

쵸로마츠는 오초마츠처럼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여섯 쌍둥이 모두 다 함께 떠들어대는 걸 꽤 좋아했다. 아무리 상식인인 척 굴어도, 어린 시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공포영화를 형제들과 함께 보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기가 싫었다.

 

 

[, 사실 공포영화 좋아해]

자기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형제들이 모두 깜짝 놀란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다른 영화의 광고를 보고 있을 때, 오소마츠가 조용히 [쵸로마츠가 공포영화를 좋아하는지 몰랐어] 라고 속삭였다.

 

[안 말했으니까]

[왜냐고! 그런 건 말하란 말야~]

 

[......말했으면, 같이 봐줬을 거야?]

갑자기 튀어나온 말은 의외로 낮고, 조금 쓸쓸한 기운이 돌았다.

 

오소마츠가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영화는 재밌었다. 물론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오소마츠형이 즐겁게 웃는 소리나, 쥬시마츠와 토도마츠의 비명소리, 카라마츠가 영화장면마다 냉정하게 소감을 말하는 목소리, 영화에 위축되면서도 카라마츠의 말에 일일이 토다는 이치마츠의 목소리를 듣고있자니 무척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카라마츠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자 [뭔가 이상하게 춥지 않아?]하고 오소마츠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에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구] 라며 토도마츠가 볼을 부풀렸다.

[창밖에 여자가 있다거나-] 쵸로마츠가 그렇게 말하며 웃자, 이치마츠들이 동시에 얼굴을 새파랗게 하곤 창밖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런 느낌으로, 공포영화가 끝난 뒤에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 타기도 쉬워 즐겁게 떠들어댔다. 공포영화 감상을 말하면서, ‘이미 봤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쵸로마츠는 속으로 생각했다.

 

 

 

 

 

전화를 받으러 갔던 카라마츠가 돌아왔다.

[카라마츠, 방금 누구였어?]

카라마츠가 말하길, 메리라는 여자가 쓰레기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토도마츠가 최근 데이트하는 여자려나.

 

그로부터 5분 뒤, 카라마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전화 받으러]

 

전화 같은 거 안 울렸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미 카라마츠는 방을 빠져나간 뒤였다. 전화벨소리 못 들었는데.

돌아온 카라마츠가, [집앞에 온다는군] 라고 말했다.

[그래? 그럼 마중하러 가야겠네]

토도마츠는 지금 집에 없고, 여자를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방을 나섰다.

 

집앞에서 기다렸지만, 그럴듯한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라며 쵸로마츠는 과거를 떠올렸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자, 카라마츠가 들어와선 [오소마츠 있는가?] 라고 물었다.

[아니, 파칭코라도 간 거 아냐?]

[그런가]

[무슨 일인데?]

[오소마츠한테 손님이 왔다]

[헤에- 누구?]

[글쎄, 오소마츠걸이 아닐까. 키가 엄청 큰 여성이다]

[헤에~. 오소마츠형을 만나러 오는 여자도 있구나]

오소마츠걸인지 뭔지 그 유별난 여자에게 흥미가 생겼지만, 오소마츠를 빼닮은 남자가 2, 혹은 3명이나 있으면 놀라고 말 것이다.

[어쩔까? 집안에서 기다리라고 할까?]

[아니,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일단 돌려보내자]

[그게 좋겠네. , 그럼 이거 주고 와]

전에 엄마가 친구와 온천여행에 가서 사온 과자를 건넸다.

[오오, 고맙다 쵸로마츠]

현관으로 향하는 카라마츠를 뒤따라 방을 나와 현관을 살폈다. 카라마츠는 그 여자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했지만, 그 여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키가 크다고 했으니 잘 보일텐데. 내가 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건가?

결국 포기하고 2층에 가니, 이불에 웅크리고 있는 오소마츠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3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뭐야, 있었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카라마츠는 이미 여자를 돌려보냈을까. 지금부터 뒤쫓아가면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쵸로마츠.....]

오소마츠의 나약한 목소리가 들려 생각을 멈추고 그쪽을 보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오소마츠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 왜 그래. 오소마츠형 몸이라도 안 좋아?]

가까이 다가가자 팔을 붙잡고, [옆에 있어] 하고 귓가에 속삭인다. 아파서 불안한 걸까. 오소마츠 옆에 앉아, 그를 안심시키듯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현실로 다시 돌아와, 지금은 메리짱이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니, 전화를 받고있는 카라마츠가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라마츠가 전화를 끊었다.

[메리짱한테서?]

[아아. 지금 내 뒤에 있다는군]

[?]

고개를 돌려 카라마츠 뒤를 들여다봤지만, 거기에 여자는 없었다.

[메리짱, 없는데?]

철커덕, 카라마츠가 수화기를 든다.

아니, 그니까 아까부터 전화벨 안 울리는데 왜 받는 거야?

카라마츠한테서 전화기를 빼앗아 귀에 대보면, [-..........-.........]하는 소리만 들렸다. 역시 전화 안 왔잖아.

[카라마츠, 나 놀리는 거야?]

[..........네가, 메리인가]

[?]

나직하게 중얼거린 카라마츠에게 되물었지만 대답은 없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복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뭔가 있어?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오소마츠형과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자, 현관에서 벨이 띵-- 하고 울렸다. 그와 동시에, [택배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를 보자, 만화에서 눈길을 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런 귀찮은 건 언제나 내가 한단 말이지, 하고 투덜거리며 방을 나갔다.

 

택배를 받아 방에 돌아오니, 오소마츠형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다가왔다.

열어보자고, 라며 신나하는 오소마츠를 일단 나무라긴 했지만, 쵸로마츠도 내용이 신경쓰이긴 했다.

 

정말로 성인용품이라도 들어있으면 사과하면 되겠지.

쵸로마츠는 시코마츠, 시코마츠하고 놀려대던 형제들을 떠올리며 박스를 뜯었다.

 

[........., 이게 뭐야]

 

안에 들어있던 건 마네킹이었다. 그것도 팔만.

 

 

구석에 종이조각이 들어있었다.

 

 

[여어! 오랜만! 쵸로마츠, 잘 지내냐? 손 페티쉬인 너한테 선물!!

사실 지금 마네킹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거든~~ 이거 내가 만든거야~. 아직 만드는 중이지만 말야, 촉감이나 무게나, 완전 진짜 같지 않아!? 관절도 제대로 움직인다고~]

 

고교시절의 친구였다. 그러고 보니 취직했다고 했던가. 그는 언젠가 인간과 쏙 빼닮은 더치 와이프.....아니, 러브돌?을 만드는 게 꿈이었다. 에로가 인간을 움직이는 최대의 원동력이라는 것이 그의 말버릇이었다.

 

고교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미소가 떠올랐다.

 

 

[............, 장난이 지나치잖아...]

 

바로 옆에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난폭하게 마네킹의 팔을 들어올렸다.

[잠깐, 오소마츠형!?]

 

오소마츠형이 팔을 집어든 채 달려나갔다.

어디로 가는 건가 해서 따라가 보면, 집앞에 있는 작은 뜰이었다. 오소마츠는 맨발로 마당에 서고는 황급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 잠깐만, 오소마츠형, 왜 그러냐고....]

 

진흙 투성이의 손으로 구덩이를 파내는 오소마츠형의 눈은 핏발이 잔뜩 서있고, 입에서는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절로 핏기가 사라졌다. 도대체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오소마츠형.

 

 

 

 

오소마츠와 파칭코에서 돌아오니, 쥬시마츠가 토하고 있었다. 눈을 한껏 까뒤집고 부들부들 떨며 기절하는 쥬시마츠에 달려갔다.

오소마츠형이 쥬시마츠를 업어 2층으로 올라갔다.

 

[카라마츠, 쥬시마츠 왜 저래?]

멍하니 서있는 카라마츠에게 묻자, [모르겠다. 저녁밥을 먹더니 갑자기 토해버렸다....] 라고 말한다. 식탁 위를 보니 고기요리가 잔뜩 즐비해있다.

[이거, 카라마츠가 다 만든 거야?]

[아아. 오늘 고기가 잔뜩 들어와서 말야]

[헤에~]

 

손을 씻고 부엌으로 가다가, 바닥에 놓인 식용유통을 밟아 넘어져 버렸다. 탄력으로 뚜껑이 열려버린 식용유통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입에 담기도 역겨울 지경이었다.

 

그래, 그 이름은 G--------!!!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절규를 내지르자 쿵쾅쿵쾅 오소마츠가 2층에서 내려왔다.

[쵸로마츠!!]

무심코 오소마츠에게 매달리는 쵸로마츠.

이건 무리. 절대 무리.

 

그 순간--------- 새파랗게 질린 오소마츠가 내 머리에 토했다.

 

 

[으으으읏!!!!!!!!!!!]

 

엄청난 충격에 말을 잃었다.

질척하게 오소마츠의 토사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참을 수 없는 더러움에 무심코 눈물이 흘렀다.

 

 

이거, 나도 토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전부 오소마츠의 오바이트니까.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카라마츠가 묵묵히 자신의 요리를 먹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맞은편에 앉아,

 

[나도 먹어도 돼?]

하고 묻자, 카라마츠가 멍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먹을 건가?]

[맛있어 보이는 걸. 안 돼?]

카라마츠는 붕붕 고개를 저으며, 방긋 웃었다.

[......뭘 그렇게 기뻐하는 거야]

[.....그치만, 오소마츠랑 쥬시마츠는 토했고, 이치마츠랑 토도마츠는 기분 나쁘다고 했으니까]

[......그랬구나]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적당히 맞장구를 치자, 카라마츠가 맥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치만, 카라마츠가 사슴고기까지 요리할 줄 아는 건 처음 알았어]

[이거, 사슴고기였던 건가!?]

[에에, 뭐라고 생각했는데....]

[돼지고기나 멧돼지라고.....]

[그러면서 잘도 요리했네. 돼지랑은 색이 다르다고]

[잘 아는군]

[오타쿠 동료랑 자주 밥먹으러 가거나 하니까]

[메이드 카페에만 가는 줄 알았다]

[그야 거기도 가긴 하지만.....아니, 그보다 너 지금 바보취급한 거지!?]

[아니다아니다, 그럴 리 없잖나!]

 

 

 

 

 

카라마츠가 청소를 멈추지 않는다.

 

[끈적거리는 게 없어지질 않는다]

 

[목욕탕과 화장실 물이 빨갛다]

 

[창문에 손자국이 나있다]

 

[벽에 뭔지 모를 흠집이 나있다]

 

 

카라마츠가, 청소를 멈춰주질 않는다.

 

 

 

 

 

이치마츠가, [보고있어] 하고 중얼거린다.

 

테이프로 집안 곳곳을 막고 다니기 시작했다.

 

떼어내려고 하면 이치마츠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테이프를 붙이는 것 외에는 늘 다다미를 할퀴어댔다.

 

 

 

쥬시마츠가 말을 하지 않는다. 천장 구석을 바라본 채.

 

말을 걸어도, 야구를 하러 가자거나, 산책하러 가자고 꼬셔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토도마츠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전화가 와, 메일이 와, LINE이 와, 라고 중얼거리며 아무런 알림도 울리지 않은 핸드폰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화풀이하듯 내던졌다. 몇 번이나 주워서 돌려줬지만, 결국엔 화면이 완전히 깨져버려 이젠 메일이 와도 아무것도 읽지 못하게 되었다.

 

 

 

오소마츠만은 마지막까지 멀쩡했었다.

 

마지막에, 이상해지기 전까지는.

 

 

 

 

오소마츠는 늘 변함없이 아침부터 파칭코에 갔다 돌아와서 뒹굴거리며 만화책을 읽었다.

그야 마네킹 팔을 멋대로 뜰에 묻거나, 머리에 토를 했을 때는 정말 놀랐지만, 오소마츠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쯤은 있을 거라며 이해했다.

 

 

 

할로워크에서 받은 종이에 필요한 내용을 적었다. 다음에 넣을 회사의 이력서다. 이번에는 꼭 취직해 보이겠다며 결의한 것이, 이번으로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반드시 취직해서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어, 평범한 삶을 살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열심히 써내려가고 있자, 갑자기 이력서를 누가 뺏아간다.

 

놀라서 올려다보니, 오소마츠가 내 이력서를 손에 들고 있다.

 

 

[........!? 뭔 짓이야, 오소마츠형!!]

 

뺏으려 하자, 이번에는 카라마츠가 뒤에서 낚아채간다.

[, 뭐냐고, 카라마츠 돌려줘!!]

[미안, 쵸로마츠]

카라마츠는 힘을 풀지 않았다. 아니, 사과할 정도면 그냥 돌려달라고.

평소에도 장난으로 이력서를 뺏는 건 흔한 일이었다. 대체로 오소마츠의 [나랑 놀아줘-]가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 면접에 모든 걸 걸었다. 어떻게든 해서든 취직을 하고 싶다. 너한테, [취활하고 있습니다 어필] [말만 번지르르-] 라고 듣고 싶지 않다.

 

오소마츠는 이력서를 흔들며, [너 뭘 적고있는 거야] 라고 말했다.

[하아!? 그런 거 보면 알잖아!?]

 

[모른다고-!]

 

웃기지 말라며 고함치려던 그 때였다.

오소마츠가 양손으로 종이끝을 잡았다. 찌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찌이익

 

이력서가 찢어진다.

 

그만둬.

 

찌익

 

 

그만둬.

 

 

 

그건, 나의,

 

 

찌이,

 

 

 

 

퍼억!!!!!!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두 사람을 때린 후였다.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두 사람은 공포에 물든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냐고, 그 눈은.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다 똑같다.

 

모두 내가 보이지 않는 걸 보고선 멋대로 두려워한다.

 

사람을 때리고 날뛰는 나를 보며, 멋대로 무서워한다.

 

 

 

 

 

 

나도, 모두와 같이 무서워하고 싶어.

 

 

 

 

 

 

 

 

......무섭다는 게, 대체 뭐야?







 * 니노미야 킨지로(긴지로) *


일본의 학교관련 괴담하면 꼭 등장하는

움직이는 석상입니다





↓사진있습니다 혹시모르니 주의↓













↑이건 만화 '학교괴담'에 등장하는 긴지로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쵸로마츠의 시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카라마츠와 쵸로마츠, 둘다 영감이 있지만

둘에게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카라마츠는 령들이 보이지만 

그들을 령으로 인식하지 않아 무서워하지 않지만

그와 달리 쵸로마츠는

령들이 보이지 않아 볼 수가 없기에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무서워할 수가 없는거죠!


한마디로 카라마츠는 진짜 영감이고

쵸로마츠는 0감인 거죠!



즉, 저주의 비디오를 보고

형제가 점점 이상해지는 그 기간동안

쵸로마츠의 행동은 단순히 형제들이(대체로 오소마츠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카라마츠가 요리하는 부분에선

단순히 바퀴벌레를 보고 놀란 거였고

(G가 바퀴벌레입니다)


택배로 팔이 배송와서 놀란 건

(진짜 팔도 아니었지만)

단순히 오소마츠가 미친 것 같아서였고



↑ 이 부분은 아마 예상하기에

단순히 쵸로마츠가 악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엄청 잘 쓰는데 휘갈기듯 써서 못 알아보는 건가....'ㅂ'







-

이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여!

간바리맛쓰루 'ㅂ')/








+ 쿠네쿠네에 관한 부분은

아이들이 '쿠네쿠네'라는 존재를 모른다는 설정이므로

일부러 '쿠네쿠네'로 쓰지 않고

'꿈틀꿈틀' 혹은 '구불구불'이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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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종은 울리지 않아

머릿속에서 천사가 교회의 종을 울리고 있다.
유리구두 대신 두고 간 분홍색 슬립온을 움켜쥐며, 당당하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 맞습니다, 역앞의....... 죄송하지만 기다리고 있을테니 데리러 와주실 수 있을까요. ............, 부탁드립니다. ,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아츠시는 테이블 구석에 핸드폰을 처박아둔다. 얼음이 다 녹아버린 하이볼[각주:1]로 목을 축이며, 옆자리에서 근사하게 뻗어있는 친구의 뒤통수를 내려다본다.

좀 전까지 큰소리로 여기에 있지도 않은 여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던 이 핑크빛 친구는, 지금은 잠꼬대 섞인 푸념을 해대며 축 늘어져 자고 있다.

 

몇시간 전에 끝난 미팅은 그의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고 끝나버렸다.

그 뒤에는 여성들의 애프터 권유도 마다하고, 상심한 친구 ―― 토도마츠와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마시길 여러번. 늘 자신의 주량만큼만 마시던 친구는 분노 때문인지 설움 때문인지 계속 퍼부어 마시더니 결국 쓰러졌다.

 

이제는 완전히 꿈속에 빠졌다. 꿈속에서도 여자한테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건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세우고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미팅에서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칵테일만 마셨지만, 그 후에는 맥주나 일본주, 위스키 등등 짬뽕이다.

내일이면 분명 숙취로 고생할 그를 떠올리며 아츠시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토도마츠와는 바둑클럽에서 알게 되었다.

압도적으로 어르신들이 많은 가운데에서 찾아낸 또래 동성친구로, 먼저 말을 걸어온 건 그쪽에서였다. 고학력, 고수입에 키도 얼굴도 괜찮고 직업도 좋으며, 사람과의 관계도 그럭저럭 잘 해내는 아츠시와, 고졸 프리터에 동정인 토도마츠는 서로 접점이 거의 없었지만 토도마츠의 화려한 대화기법에 사로잡혀 금방 친해졌다.

클럽이 아니어도 한달에 몇 번인가 만날 정도로 사이가 좋다.

 

그래서 그는 친구를 아무것도 없남이라고 부르는 여성들은 정말 안목이 없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학력도 나쁘고, 고정된 일도 차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유가 있다. 다양한 취미를 즐길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다.

언제나 악랄한 태도로 귀여운 척을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남자다운 점이 있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없었던 장점들을 갖고 있는 이 핑크색 친구를, 아츠시는 유달리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토도마츠에게 아무것도 없남이라고 부르는 여자들에게 은밀하게 분노하며, 그들의 애프터 신청을 모두 거절하고 이렇게 둘이서 마시고 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연애를 해보긴 했지만,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여자는 귀찮은 생물이다였다. 언제나 바라는 건 남자의 가치뿐. 어떤 학교를 나오고, 어떤 회사에 근무하고, 어떤 차와 시계, 지갑, 구두, 슈트를 지니고 있는가. 그것이 자신을 얼마나 더 빛나게 해줄 것인가.

그게 중요한 것이지, 아츠시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토도마츠는 늘 아츠시에게 승자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츠시 같은 사람은 찾으면 꽤나 있지만, 토도마츠 같은 사람은 좀처럼 없으니까.

 

 

'아아, 그러고 보니 남자만 잔뜩인 여섯 쌍둥이라고 했던가'

 

 

전부 니트라고 했으니까, 적어도 5명이나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는 건가.

뭐야 그거, 재밌네.

 

아까의 전화 상대로 아마 형제 중 하나일 것이다.

놀랐는지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동생을 걱정했다.

토도마츠는 쓰레기 같은 형제라고 했지만, 너무 예상과는 반대의 반응이라 곤란할 정도다.

취할 때면 형제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는, 늘 쓰레기니 바보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외동인 아츠시에게 그것 역시 선망의 대상이었다.

 

흘끗 손목 시계를 보니, 마츠노가에 연락한 지 10분이 지나있었다.

슬슬 도착할 시간이라 계산서와 따뜻한 차를 부탁했다.

드르륵, 조심스럽게 술집 미닫이문이 소리를 낸 건 그때였다.

소리를 들은 아츠시는 몸을 틀어 그쪽을 바라본다.

 

거기에 서있는 건,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파란 후드티와 스키니를 입은 몸매 좋은 여성이었다. 야무진 큰 눈. 그것을 따라 긴 속눈썹이 둥글게 곡선을 그려 볼에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여성치고 다소 굵은 눈썹은 살짝 아래로 내려가있어 귀여워 보였다.

작은 코는 오똑하고, 조금 큰 입은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통통한 입술은 특별히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장밋빛으로 물들어, 마치 버찌 같았다.

파란색 후드티에 검정 스키니는 매우 간단한 옷차림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의 몸매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다리는 가늘고 길게 쭉 뻗어있었지만 너무 마르지 않았고,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단단하게 자리잡은 근육이 그려낸 라인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헐렁한 후드티를 입고 있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슴에 볼륨이 있었고, 한번도 염색한 적이 없는 건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긴 생머리는 마치 샴푸광고를 하는 듯했다. 머리끝이 갈라지고 푸석푸석한 머릿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술집의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이는 엔젤링[각주:2]은 매우 거룩하게 느껴졌다.

 

나이는 나와 비슷할까.

아츠시의 주변에 흔한 ―― 예를 들면, 같은 회사의 OL, 오늘의 미팅 상대 ―― 여성들처럼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느낄 외모는 아니었지만,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다, 아츠시 옆에 엎드려있는 핑크색 덩어리를 발견하자 부드럽게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은 비유하자면, 잠을 못 이루는 밤에 먹는 꿀과 브랜디가 들어간 뜨거운 우유같은 달콤함이 몸속에 녹아들어 따뜻하게 퍼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문을 연 채로 그녀는 한 걸음씩 발을 내딛었다.

 

또각, 하고.

원래라면 운동화에서 날 수 없는 그런 소리가 분명히 아츠시의 귀에 울렸다.

등도 시선도 걷는 라인도 모두 똑바로 이쪽을 향하고 있다.

그 모습을 아츠시는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몇 걸음만에 가까워진 거리에 그는 긴장해 버린다.

그런 그를 보고 그녀가 방긋 웃었다.

 

 

[네가 아츠시군?]

 

 

여성치고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술에 달 뜬 뇌에 스며들어 가는 듯했다.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달콤하게 들린 건 처음이어서 아츠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연락줘서 고마워. 너에 관한 건, 늘 토도마츠한테 듣고 있어]

 

 

그녀는 더욱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이미 의식이 없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슬며시 쓰다듬었다.

걷어올린 후드티 소매로 보이는 가녀린 팔!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은 듯한 시선이나 손놀림은, 모두 의식이 없는 토도마츠에게 향해 있었다.

백옥같은 손이란 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아츠시는 술 탓인지 그녀 탓인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멍하니 생각했다.

 

[아뇨....저야말로....일부려, , 죄송합니다.....토도마츠군, 완전히 뻗어버려서....., , 누님? 한테....오라고 해버려서......]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잘 움직여줘서, 그를 영업부의 최고 팀으로 만들어준 입은 어째선지 지금만은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더듬거리면 말하는 입에, 괜히 차게 식어버린 차만 들이킨다.

 

[아아, 괜찮다. 과하게 마신 동생이 잘못이니까. 이쪽이야말로 일부러 연락까지 하게 해버려서 미안하군. 이만 데리고 돌아가지]

[, , 역시, 제가 업고 같이 가겠습니다! , 여자가 남자를 업고 가는 건 힘들고――...]

 

토도마츠는 남자만 여섯명이라고 했었으니, 당연히 전화 상대는 남자형제 중 누군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한 건데, 마중을 온 게 여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에게, 나름대로 단련하고 있는 성인 남성을 혼자 업고 가라니 역시 그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 부랴부랴 자신이 업고 가겠다고 제안을 하자, 그녀는 곯아떨어져 축 늘어진 토도마츠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 그것도 공주님 안기로.

너무 뜻밖의 광경에, 아츠시는 어정쩡하게 일어선 상태로 굳어 버렸다. 나는 지금 뭘 보고 있는 걸까.

움직일 때마다 찰랑이는 머리에서 나는 꽃향기가 눈앞의 풍경과 매치가 안 되어,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몰래 손톱을 세워 손바닥을 찌르자, 역시 고통이 느껴졌다.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지. 괜찮다, 나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니까!]

 

그렇게 말하며 자랑스럽게 웃는 그 얼굴은 어딘가 소녀다웠다.

남녀역전 공주님안기 in 술집, 이라는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아츠시는 처음으로 첫눈에 반한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총4장의 단편입니다

전부 올린 후 카테고리 만들겠습니다 'ㅂ')/







  1. 위스키에 소다수를 넣고 얼음을 띄운 음료 [본문으로]
  2. 머리에 빛이 반사되어 링같은 형태로 보이는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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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오지 않지만

 

하늘하늘한 레이스도, 눈부신 보석도 아직은 없지만.

왕자님과의 만남은 의외로 금방.

 

......일지도 몰라.

 

 

 

 

 

보기와 달리, 상당히 몸단장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피부 관리도, 몸매 유지를 위한 운동도, 성가신 긴 머리의 보습 케어도 거르지 않을 정도다. 어째선지 막내 동생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메이크업도 패션도 유달리 신경을 쓴다.

손톱도 관리하고, 가슴 마사지는 최근 몇 년간 거른 적이 한 번도 없다. 게다가 겨울에도 털관리를 쉬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부분은 해두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왜냐면, 마츠노가 장녀, 여섯 쌍둥이의 둘째인 마츠노 카라마츠는,

유일한 딸, 유일한 여자형제라는 가족의 눈을 빌려도, 아무리 몸부림쳐도 못생겼으니까.

 

자각한 건 언제였더라?

적어도, 내가 너희고, 너희가 나라고 말했던 어린 시절에는 아직 없었다.

아마 성장하면서 각자 개성을 갖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여섯 쌍둥이라서 전부 똑같이 생겼었지만, 지금은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이 생겼다.

옛날에는 부모님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똑 닮았지만, 유일하게 카라마츠만 성적인 차이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아마 중학교 입학을 앞둔 무렵이었다.

새 가쿠란이 다섯벌 줄지어있는 와중에, 그 옆에 있던 단 하나의 세일러복.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같은 뒷모습. 같은 체중. 다른 교복.

위화감이 들었다. 그것은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제각기,

[안 어울려-] [여장이냐] [재수 없어]

그런 말이 오갔다.

처음으로 입은 치맛자락을 손가락으로 집으며, 카라마츠는 자신에게 치마는 어울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중학생이 되면, 이성의 눈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건 마츠노가 여섯 쌍둥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섯 쌍둥이라는 것에 눈길을 끄는 것도 있었지만, 각자의 개성이 생기면서 형제들은 인기쟁이가 되었다.

오소마츠는 언제나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고,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똑똑해서 늘 학년 상위의 성적을 유지했다. 쥬시마츠는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인기가 많았고, 토도마츠는 특유의 인심 장악술로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제 편을 만들어냈다.

같은 얼굴인 카라마츠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다들 얼굴도 나름 봐줄만 했다. 꽃미남까지는 아니었지만.

 

 

카라마츠만 인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남자형제와 같은 얼굴이었다.

게다가 형제들 누구보다 가장 눈썹이 굵고 남자다운 얼굴이었다. 키도 이맘때면 여자들의 성장이 빨라진다고는 하지만, 형제들 중 가장 컸고, 학년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컸다.

그리고 형제들 중 최고의 바보.

그런 녀석을 좋아해줄 남자가 어디있을까.

실제로 [카라마츠는 좀 힘들지~] 라며, 사귀고 싶은 여자 랭킹을 떠들어대던 동급생 남자들이 방과후 교실에 모여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그때 카라마츠는 생각했다.

자신의 타이밍의 나쁨과, 남성에게 연애대상이 될 수 없음을.

 

 

고등학교에서 연극부에 들어갔다.

그때쯤 이미 귀여운 여자가 되는 건 거의 포기하고 있었지만, 또 다른 자신으로서 조금이나마 여자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러나 연극부에는 남학생이 거의 없었고, 키가 컸던 카라마츠가 맡은 역들은 대부분 남자역이었다. 카라마츠에게 있어서 불행은, 그 남자역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카라마츠는 인기가 많아졌다. 다른 형제들보다 여학생에게 인기가 많았다.

여자치고는 쭉 뻗은 큰 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 타고난 상냥함과 남자 형제들과 자란 탓에 생긴 여성에 대한 신성화 ―― 여기엔 소꿉친구인 토토코가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는데, 가장 친한 여자친구인 토토고를 공주취급했기 때문에 다른 여자에 대한 대응이 토토코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 이러한 이유로 카라마츠는 여자들에게 대인기였다.

 

2학년 때, 어떤 역을 맡았다.

멋진 대사와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희극의 주인공. 극찬의 폭풍이었다.

여자애들의 고백이 늘었고, 그와 동시에 남자애들의 질투도 늘었다.

체육관 뒤에 불려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째선지 갈 때마다 형제가 먼저 거기에 와있어, 불러낸 남학생들을 처리했으므로 카라마츠에게 실질적인 손해는 없었다.

 

그때마다 형제들은,

[딱히 널 위해서 그런 건 아니니까! 우리랑 같은 얼굴이 남자랑 사귀는 게 재수 없었을 뿐이니까 말야!! 쓸쓸하다던가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 폰코츠-!! 암컷 고릴라!!]

초등생 수준의 놀림을 흘려들으며, 카라마츠는 깨달았다.

 

 

아아, 역시 나는 못생긴 건가, 하고.

 

 

그 뒤로 카라마츠는 노력했다.

생김새는 어떻게 할 수 없다. 굵은 눈썹. 둥그렇고 커다란 눈과 입. 낮은 목소리. 큰 키. 다부진 골격. 몸을 덮은 근육.

성형하면 바꿀 수야 있겠지만, 카라마츠는 못생겼다고 해도 이 얼굴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사랑스러운 형제들과 같은 얼굴이니까.

게다가 바꾼다면, 이 얼굴로 낳아주신 부모님께도 면목이 없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귀여워질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이 귀여워지다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게다가 자기 옆에는 세계에서 제일 귀여운 여자가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무리다.

 

 

그러니 목표는 멋있는 여자. 언젠가 맡은 희극의 남자 같은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가 어울리는 멋진 여성.

 

 

우선은 피부.

여섯 쌍둥이는 흰 피부로 햇볕에 잘 타지 않기 때문에 탈 걱정은 없었지만, 사춘기가 되자 빈번하게 여드름이 생기거나 기미가 생겨났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초등학교 시절이 원망스럽다. ――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잘 타지 않는 피부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음은 머리카락.

예전에는 늘 형제들과 같은 길이로 잘랐기 때문에 여자답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기르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기르게 된 이유는 부모님으로 ―― 주로 마츠요 ――, 적어도 머리만은 길러달라며 울며 매달렸기 때문이다. 카라마츠에게 머리를 기르지 않는다는 선택권은 이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스타일.

오자키에 빠진 것도 있고, 가죽재킷과 선글라스도 제법 잘 어울렸기에 오자키와 같은 여자를 목표로 했다. 완벽한 스타일을 위해 가슴 운동에 집중했다. 덕분에 지금은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올 때 나온, 그럭저럭 봐줄만한 몸매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카라마츠는 퍼펙트 패션을 입을 때만은 자신감 넘쳤다.

사랑하는 브라더들이 안쓰럽다며 관두라고 소리쳐도 그만두지 않았다.

이는 카라마츠의 노력의 결정이면서, 나약한 마음을 지킬 갑옷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카라마츠도 나풀나풀한 예쁜 옷도 입어보고 싶었다.

여자다운 모습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서 평범한 여자처럼 뺨을 핑크빛으로 물들인 채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리다.

이런 눈썹도 두껍고 남성미 넘치는 얼굴을 한 고릴라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나풀나풀 반짝반짝 그런 옷이 어울릴 리가 없다.

수십년간 형제들에게 들어온 말들이 차곡차곡 카라마츠의 마음에 쌓여,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몸을 꽁꽁 묶고 있다.

 

카라마츠는 손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욕을 마친 후라 화장은 이미 전부 지웠다. 조금이라도 여자답게 보이기 위한 화장이 없으면, 완전히 형제들과 똑같은 남자 같다.

카라마츠는 자신이 좋았다. 나르시스트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의 여성스럽지 않은 얼굴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형제들의 얼굴은 좋아하면서 자기 얼굴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형제들은 지금 막내를 제외하고 전부 마시러 나가고 없다. 막내는 미팅으로 부재중이었다.전에 미팅 오디션을 했던 걸 떠올렸다. 카라마츠는 진행자 겸 심사원인 토도마츠의 서포트 역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토도마츠 귀여웠지. ......남자인데도.

물론 동생들은 모두 귀엽다. 하지만 그거랑은 다르다.

다른 형제들도 뭔가 다들 헤벌쭉한 상태였다. .....카라마츠한테는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다.

별로 그런 취급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한숨을 내쉬며 들고있던 손거울을 탁자에 내려둔다. 이만 자자. 자고 전부 잊자.

10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은 부모님도 친척 제사로 외출중이시고, 형제들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치비타의 가게려나. 나도 가고 싶었다.

 

3번째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띠리리리리리 하고 현관 쪽에서 전화소리가 울렸다. 지금 이 집에는 카라마츠밖에 없다.

 

 

(누구지...........?)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일까.

혹시 급성 알코올 중독인가 뭔가로 실려 간 마츠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거신 걸까.

몇 명인가 전화 상대를 예상하면서, 카라마츠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 마츠노입니다]

여보세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마츠노 토도마츠군 집인가요?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카라마츠의 고막을 울렸다.









다음편 올라옵니다!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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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いたろ 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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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쥬시마츠 시점)

 

 

 

 

내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밖은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오소마츠형이 이것저것 물어봤을 때, 대답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잠든 척을 했고, 그러다 그대로 잠들어 버린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치마츠형에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대체 뭐가 뭔지.

이게 내 진짜 마음이 뭔지도.

잠에서 깼을 때, 이미 이치마츠형은 방에 없었다. 나는 발가벗은 채 이불 속에 누워있었고, 일어났을 땐 온몸이 욱신거리듯 아팠다. 특히 목이 너무 아파서, 물을 마시려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다리 사이로 흰색의 액체가 흘러내렸다. 만져보니 무척 끈적거렸다.

기분이 더러워져 1층에 내려가 온몸을 박박 씻었다.

씻을 때조차도, 문이 열리고 이치마츠형이 들어오면 어쩌나, 하고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리 사이를 문질러 씻어도 그 끈적거리는 액체는 없어지질 않아, 슬퍼져 목욕중에 울어버렸다. 방에 흩어져있던 잠옷을 다시 입었는데도 아직 끈적거리는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어, 기분이 더러웠다. 게다가 온몸이 욱신거리듯 아파서 괴로웠다. 하지만 잠들기는 무서워, 2층방으로 돌아왔음에도 자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때, 이치마츠형의 얼굴.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머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내 목을 조르며 숫자를 세던 형의 얼굴.

평소엔 잘 웃지 않는 형이,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서 굉장히 즐거운 듯 웃었다. 내가 괴로워하면 할수록 더욱 목에 힘을 가했다.

 

――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형은 이대로 내가 죽어도 저렇게 웃을까.

고양이를 소중히 안던, 다정한 형을 무척이나 존경했는데. 그와 같은 손으로 형은 나를 죽이려 했다.

 

 

잊고 싶었다.

잊어야만 했다.

분명 다 꿈일테니까.

절대 진짜일 리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있자, 쵸로마츠형이 돌아왔고, 뒤를 이어 오소마츠형도 돌아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게, 전부 꿈인 걸.

그러니까 답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에는 제대로, 진짜 현실이 펼쳐질까, 기대하면서.

 

 

 

 

 

◇◇◇

 

 

 

 

 

(카라마츠 시점)

 

 

 

[카라마츠,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저녁식사를 마친 후, 오소마츠형이 거실에서 말을 걸어왔다.

오늘은 부활이 늦게 끝나, 저녁식사 전에 간신히 도착했다.

식탁에는 형 외에,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있었다. 쥬시마츠는 여전히 2층에서 자는 듯했고, 이치마츠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체 이치마츠가 어디서 뭘 하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가끔 엄청난 악취를 풍기며 돌아오곤 했으니까, 고양이와 같이 있었을 거라고 대충 짐작은 하지만.

아무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게 말을 건 형은 2층으로 올라가자는 듯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다른 형제들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 걸까.

그렇다면, 아마 쥬시마츠에 관한 얘기겠지.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형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되고,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제 상태로 봐서, 이치마츠가 반성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고, 쥬시마츠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쥬시마츠가 전혀 관계없는 타인에게 당한 거라면, 주먹 한방으로 해결하면 될테지만. 적어도 이치마츠와는 좀 더 대화로 해결하고 싶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묻고, 쥬시마츠를 상처입혔다는 걸 깨닫게 만들어 반성하게끔 하려 했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그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2층방은 쥬시마츠가 자는 중이라서, 형은 평소엔 쓰지 않는 손님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형은 옷 주머니에 두 손을 깊게 찔어넣으며 물었다.

[저기, 카라마츠. 아는 범위에서라도 좋으니까, 좀 알려주라. 쥬시마츠랑 이치마츠,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엄청 직설적인 질문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린다.

[아니, 살짝 싸운 정도라면 내버려둬도 괜찮겠지만....쥬시마츠 상태가 점점 이상해지고, 잘 보니 여기저기 상처도 나있더라고. 뺨이나 손목에.....게다가 목부분에도 이상한 멍자국 같은 게 있고]

[상처?]

뺨을 맞았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배도 몇 번이나 얻어맞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손목은 뭐지? 목에 멍?

형은 계속해서 그가 집에 왔을 때 본 쥬시마츠의 모습을 말했다. 전혀 몰랐던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어쩌면 또 뭔가 한 걸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이치마츠와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평소 잘 만나지 않긴 하지만 오늘은 뭔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은 못 봤어]

오소마츠형도 그렇게 말했다.

[......설마, 쥬시마츠가 혼자 자고있을 때 집에 온 건.....]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리자,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치마츠가 돌아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 ......아니.........그게]

말문이 막힌 내게 형은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내며 [카라마츠]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대체 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아니.........그게. 쥬시마츠가 말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헤에]

형은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지 목소리가 한껏 낮아져 있었다.

동시에 나도 생각에 잠겼다. 만일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고 한들, 내가 쥬시마츠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나 혼자만 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 한 거라고 해봐야, 쥬시마츠의 고민을 들어준 것밖에 없다.

[.......저기, ....]

자신감을 잃은 난 토해내듯 모든 걸 말했다.

그래,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쥬시마츠한테는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말아주겠나?]

[........? .......알겠어]

[사실......]

이건 나 혼자 속에 감춰두고 있을만한 문제가 아니다.

쥬시마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치마츠를 막기 위해서라도, 아군이 필요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타일렀다. 쥬시마츠와 약속을 어겼다는 고통을 참아내며, 나는 오소마츠에게 어젯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그게.....이치마츠가]

이야기도 끝에 다다르고, 쥬시마츠가 머리를 다쳤을 때의 얘기를 하던 때였다.

복도에서 쿵,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우리들은 깜짝 놀라 함께 복도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문앞에 쥬시마츠가 엉덩방아를 찧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쥬시마츠]

내가 이름을 부르자, 쥬시마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화장실에 가려고.........]

설마 다 들은 걸까.

크게 동요하면서 쥬시마츠를 일으키려 팔을 뻗자, 쥬시마츠는 이를 무시하고 내 뒤에 있던 오소마츠에게 소리쳤다.

[.....이치마츠형을....혼내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 왜 그래, 쥬시마츠]

어깨를 움츠리고 웃어보이는 오소마츠. 나는 쭉 뻗은 손을 동생이 무시한 것에 꽤나 쇼크를 받았다. 역시 듣고 있었던 건가.

[..........그게...........]

[쥬시마츠]

굳어 있는 내 뒤에서 오소마츠는 쥬시마츠를 일으키며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괜찮다고, 쥬시마츠. 나는 그저 걱정하는 것뿐이야. 하지만, 왜 그러는 거야? 형아한테 알려줄래?]

[.............그건]

쥬시마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나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을 한 발 물러나 바라보았다.

몹시 씁쓸한 기분이었다. 쥬시마츠가 맡긴 소중한 짐을 멋대로 열었다가 형에게 뺏긴 듯한 그런 찝찝한 기분이었다.

오소마츠에게 추궁 받은 쥬시마츠는 벼랑 끝에 내몰린 듯한 표정으로 눈물을 똑똑 흘리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지만........나 바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

[형한테 혼나면, 이치마츠형.....멀리 가버릴 것 같아서]

어쩌면 고양이의 세계로 가버리지 않을까, 하고 쥬시마츠는 말했다.

확실히 지금도 반쯤 인간 세계보다 고양이 세계의 주민 같지, 그 녀석.

[........게다가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그러니까, , 전혀 화나지 않았으니까. 괜찮으니까. 이치마츠형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부탁해, ]

쥬시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울며 매달렸다.

그걸 들은 나도 겨우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녀석에게 있어 오소마츠는 무서운 형이고, 나는 무섭지 않은 형인 것이다.

확실히 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고, 동생들 상대로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어제는 조금 이치마츠에게 화가 났었지만, 그건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은 것뿐. 이치마츠 스스로가 내게 혼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혼내려던 생각은 아니었고.

뭐어, 내 이야기는 됐고.

복도에서 동생이 울며 매달리자 오소마츠는, [알겠어알겠어] 라며 복도에 주저앉은 쥬시마츠의 몸을 다시 일으키며 상냥하게 말했다.

[네 기분은 잘 알겠어, 쥬시마츠. 네가 괜찮다면, 이치마츠한텐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

눈물 맺힌 눈으로 오소마츠를 올려다보는 쥬시마츠의 표정은, 꼭이야, 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 쥬시마츠에게 나는, 정말 그걸로 괜찮냐고 묻고 싶었다.

너는 엄청 상처입은 게 아니었던 건가?

그렇게 울고, 아파하고, 열까지 나며 괴로워했으면서, 이치마츠에게 상처주지 말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 저기, 쥬시마츠]

나는 무심코 동생을 불렀다.

하지만 약속을 어겨버린 날 쥬시마츠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오소마츠가 날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카라마츠, 괜찮으니까 그만]

[.......]

왜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가벼운 쇼크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멍하니 선 내 앞에서 오소마츠는 쥬시마츠의 어깨를 다독였다.

[쥬시마츠, 화장실은 안 가도 돼?]

[..........갈래]

[그럼 갔다와. 밥은 어쩔래?]

[먹을게]

[알겠어. 그럼 밑에서 기다릴테니까. 오늘은 잘 때, 형아 옆에서 자]

[..........]

간단히 답하고 복도를 걸어나가는 쥬시마츠를, 나와 오소마츠는 잠자코 바라보았다. 1층으로 내려간 걸 확인한 나는 뒤에 서있던 형을 바라보았다.

[........미안, 카라마츠]

[, 아니.......]

얘기해버린 건 나다. 쥬시마츠의 약속을 어기고, 마음을 배신한 건 나다.

[억지로 들으려한 건 나니까, 그렇게 걱정하지는 마]

오소마츠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게다가, 너한테는 너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

[...........그런 게 있던가]

[쥬시마츠는 널 엄청 신용한다고. 바쁘긴 하겠지만, 쥬시마츠를 좀 더 보살펴줘. 저 상태론 걱정이니까]

[보살피라니?]

[신경써서 지켜보라는 뜻. 이치마츠 쪽은 내가 어떻게든 할테니까. 부탁할게]

[알겠다.......]

이제 이렇게 되면 형님 말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 웃는 형을 따라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들 굿밤!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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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쵸로마츠 시점)

 

 

 

 

 

 

해질녘, 수업을 마친 나는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지금 집에 가. , 쥬시마츠 상태보고 병원에 데려갈게. 만약 상태가 많이 안 좋으면 택시타도 괜찮지?

그렇게 말하는 내게 엄마는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한 엄마는, 한가지 신경쓰이는 점을 말했다.

[점심때였나? 몇 번인가 전화를 걸었는데 받질 않더구나]

[자고 있었던 거 아냐?]

[그렇겠지? 그래도 좀 걱정인 걸. 그럼 부탁할게, 쵸로마츠]

[]

전화를 끊은 나는 왠지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스포츠 만능의 늘 건강한 쥬시마츠가 최근 들어 병원 출입이 잦다. 정형외과긴 하지만.

중학교 3학년, 즉 작년 이맘때에 녀석은 좋아하던 야구를 참아야만 했다. 그 녀석의 특기인 강속구는 아직 몸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중학생의 몸으로는 부담이 컸던지, 어깨를 다쳐버렸다. 의사는 당분간 야구는 참으라고 했지만, 녀석은 참을 수가 없어 가벼운 연습경기를 계속 하다가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 때도, 병원에 갈 때는 내가 보살펴주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친구나 다른 형제들 앞에서는 실실 웃는 쥬시마츠도, 병원에 가기 전에는 잔뜩 풀이 죽어 울곤 한다는 것을.

상태팀한테 동료들이 무시당해서,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어, 라고 쥬시마츠는 말했다.

그 덕분에 동료들에겐 사랑 받게 되었다.

야구를 못하게 된 때에도, 종종 응원을 하러 갔는데 그때마다 동료들에게 둘러싸이는 쥬시마츠는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그리고, 쥬시마츠가 참가했던 소년 야구팀은 관동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구성원 대부분이 강호 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 사실을 녀석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동료들과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쥬시마츠는 아직도 정형외과에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이젠 쥬시마츠 혼자서도 괜찮으니까 나는 같이 가지 않지만.

그래서 우울한 쥬시마츠를 안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기본적으로 녀석은 언제나 형제들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았으니까.

 

그래, 오랜만이다.

 

이래저래 우리도 이제 고등학생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여러 가지로 각자 바빠진 탓에, 같이 살면서도 서로 거리감이 생겼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집에 도착했다.

역시 형제들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다.

현관문을 열고 2층 계단을 올라갔다.

쥬시마츠는 아직 자고 있으려나?

 

 

 

2층방의 문을 열고보니, 널찍한 이불위에 쥬시마츠가 발을 쭉 뻗고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멍한 상태랄까, 완전히 텅 비어버린 것 같다.

? 으응? 저거 괜찮은 거야?

[나 왔어, 쥬시마츠. 쥬시마츠? 상태는 어때?]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걸자, 쥬시마츠는 겨우 정신이 든 건지 이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표정은 멍했지만.

[........쵸로마츠형]

평소와 달리 너무도 패기 없는 모습에 동요하며 천천히 접근했다.

이 녀석, 열 때문에 어딘가 이상해진 거 아냐?

가까이 다가간 나는 쥬시마츠에게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선지 쥬시마츠의 머리카락이 전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왜 그렇게 젖은 거야, ]

[........목욕했으니까]

[목욕?]

왜 갑자기 목욕? 아니 그보다 씻었으면 제대로 말리라고.

뚝뚝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이불위로 올라간 건지, 쥬시마츠 주변은 흠뻑 젖어있었다.

, 그보다 저기 내가 자는 자리 아냐? ?

[수건 가져올게. 잠깐 기다려!]

1층으로 내려가 새 수건을 가지고 돌아간다.

이불도 걷어서 말려야 하지만, 그 전에 쥬시마츠의 머리를 말리는 게 우선이다.

[열도 나는데 왜 목욕을 한 거야, ]

[쵸로마츠형]

내 이름을 부르며 날 끌어안는 쥬시마츠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린다.

[, 왜 그래?]

[잠깐만 이러고 있어도 돼?]

[?]

쥬시마츠는 얼굴을 파묻으며 내 허리를 세게 끌어안았다. 뭐야, 이건?

혹시 아무도 없어서 외로웠다거나, 그런 건가?

하지만 이 자세는 좀 힘든데.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하는 건 힘들다고.

[, 저기....쥬시마츠씨?]

[.....]

[병원 가야하는데]

[가기 싫어]

[....., 그래? 그럼 적어도 앉게 해줄래?]

[]

내가 이불위에 앉자, 쥬시마츠는 내 무릎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갑자기 왜 이러지.

괜찮은 거야?

혹시 몰라 이마에 손바닥을 대자, 아직 열이 남아있지만 아침보다는 조금 떨어진 것 같다. 상처도 가라앉았다.

이 정도라면 병원에는 안 가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작년의 일을 떠올리며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혼자 남아버린 쥬시마츠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닐까.

 

 

 

 

◇◇◇

 

 

 

 

그로부터 30분후, 오소마츠형이 돌아왔다.

현관게 우리들의 신발이 있는 걸 확인한 형은, 곧장 2층으로 올라왔다.

[쥬시마츠, 몸은 좀 어때-?]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연 형은, 나와 내 허리를 끌어안고 내 무릎을 베고 잠든 쥬시마츠르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 무슨 상황?]

[조용히 해. 겨우 잠들었으니까]

나는 쉿- 하는 제스처와 함께 말했다.

[병원은 안 가도 돼?]

오소마츠형이 말소리를 죽이며 물어왔다.

[본인이 가기 싫다고 하고, 열도 많이 내렸으니까]

[헤에]

[아아, 그치만 체온계로 제대로 잰 건 아니야. 내가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됐으니까]

[이거이거, 외로워서 형아한테 어리광부리는 거냐-. 쥬시마츠짱 어리광쟁이네~]

[..........]

[알았으니까, 째려보지 말라고. 어라, 근데 왜 이렇게 머리가 젖었어?]

[목욕했대. 뭔가 상태가 좀 이상했어]

[그래?]

흥미롭다는 듯 내 옆에서 떠나지 않는 형에게 나는 체온계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형은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구-]

[어떻게 체온계 위치도 모를 수가 있어?]

[잘 안 쓰잖아........그럼 쵸로마츠, 나랑 바꾸자. 옷 갈아입고 올테니까 좀만 기다려]

[바꾸자니?]

[무릎베개 말이야. 내가 할테니까 체온계 가져오라고]

[.......뭐야, 그게 번거롭게]

오소마츠형은 엄청 뿌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왔다. 나는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쥬시마츠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쥬시마츠, .....미안, 잠깐 일어서고 싶은데 손 좀 떼줄래?]

[.....싫어]

[싫대]

곤란한 표정으로 오소마츠형을 쳐다보자, 형은 쥬시마츠 옆에 앉아 두 손으로 어깨를 흔들어댔다.

[대시 내가 해줄테니까, 잠깐만 쵸로마츠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을래? 쥬시마츠?]

[........오소마츠형?]

어깨를 흔들려 잠에서 깨버린 쥬시마츠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어, 깜짝 놀란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몸도 안 좋은데 미안해, 쥬시마츠. 자아, 잠깐만 일어나 봐]

오소마츠형은 재빨리 쥬시마츠의 상반신을 받쳐들었다. 그 틈에 나는 빠져나가고, 형이 그 자리에 앉았다. 쥬시마츠는 오소마츠형의 허벅지에 머리를 묻으며 눈을 깜빡였다.

[?]

[쵸로마츠, 얼른 체온계 가져와]

[, ]

아까까지 쥬시마츠가 누워있던 탓에 뜨끈해진 다리가 좀 허전했지만, 나는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가 체온계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쥬시마츠는 내게 그랬던 것처럼, 오소마츠형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축 늘어져 있었다. 형은 그런 쥬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체온계 가져왔어]

[]

[쥬시마츠 자?]

[아마]

말수가 적어진 형. 역시 뭔가 생각하고 있다.

[왜 그래?]

[-]

형은 팔짱을 끼고 등을 곧게 펴서 벽에 붙어 앉았다. 그러곤 쥬시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쥬시마츠씨-, 질문이 있습니다]

[........]

움찔, 머리가 움직였다. 아직 잠들지 않았구나.

상냥하게 쥬시마츠의 뒤통수를 쓰다듬던 형은 쥬시마츠를 일으켜 세웠다. 쥬시마츠를 이불에 앉히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형은 이렇게 물었다.

[어제부터 신경쓰였는데, 너 누구한테 여기, 당한 거야?]

오른쪽 뺨. 자신의 뺨을 가리키며 오소마츠형이 물었다.

쥬시마츠는 눈물 어린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

[그리고 여기도. .......무슨 짓을 당한 거야?]

쥬시마츠의 손목을 잡고 형은 다시 되물었다.

쥬시마츠의 손목에는 어딘가에 쓸린 듯한 자국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까질까. 마치 밧줄에 묶인 듯했다.

잠자코 있는 쥬시마츠를 내려다보며 오소마츠형이 다시 물었다.

[, 같은 반 애한테 괴롭힘당하는 거?]

[......그런 거 아냐]

붕붕, 고개를 강하게 흔드는 쥬시마츠. 오소마츠형은 그제서야 히죽 웃어보이며, [그래] 라고 말하곤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는 말하기 싫어?]

[...........미안해]

[카라마츠면 말할래?]

[.........모르겠어]

[왜 카라마츠]

내가 무심코 그렇게 츳코미하자, 오소마츠형은 이쪽을 보며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댔다.

, 뭐냐고.

다시 쥬시마츠를 쳐다보는 오소마츠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이치마츠는?]

[........!!]

크게 어깨가 떨렸다. 쥬시마츠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힘껏 치켜들고 오소마츠형을 바라보았다.

[......저기, .......]

[왜 그래?]

[..........미안해]

마치 공기가 빠져나간 듯 쥬시마츠의 몸이 축 늘어졌다. 힘없이 늘어지는 몸을 받아든 오소마츠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 쥬시마츠. 이제 누워도 괜찮아. .....카라마츠가 올 때까지 내가 옆에 있을테니까]

[.......]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쥬시마츠는 다시 눕는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그걸 잠자코 보고있던 나는 간신히 마법이 풀린 듯,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었다.

[, 방금....]

쥬시마츠, 이치마츠라고 했을 때만 반응이 달랐는데, 대체 무슨 일이야??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소마츠형은 쥬시마츠가 잠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옆에서 잠자코 지켜볼까도 했지만, 할 일도 있고 해서 나는 오소마츠형에게 쥬시마츠를 맡기고 방을 나왔다. 우선 교복을 갈아입고 엄마한테 연락을 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는 얘기를 하자, 엄마는 크게 안심했다.

그리고 이불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해 다시 2층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이불을 말리려면 형이랑 쥬시마츠가 움직여야 하잖아. 그보다 왜 목욕을 한 거야 걔는. 오늘밤엔 차가운 이불에서 자야하는 건가, 엄청 싫은데. 목욕 타올을 두겹정도 깔면 괜찮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2층방에 들어가자, 무릎베개에 질린 건지 오소마츠형이 쥬시마츠와 나란히 누워있었다. 쥬시마츠는 마치 아이처럼 오소마츠형의 가슴 언저리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뭐야, 이 기분나쁜 투샷.

[, 쵸로마츠]

이쪽을 보며 히죽 웃는 형.

얘기해줄 때까지 기다렸더니만, 뭐야 그 표정.

[화내지 말라고~. 이 자세가 나도 편하고 쥬시마츠도 편하잖아]

[......쥬시마츠는, ?]

[아마도]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쥬시마츠에게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주었다.

[, 잔다]

[다행이네. 그보다, 대체 무슨 일인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형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잘 모르겠지만,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최근 이치마츠랑 대화도 안 했고]

[나도]

최근 이치마츠는 집에 돌아오는 것도 늦게 가족과 대화도 잘 하지 않는다.

가끔 옷에서 짐승냄새가 나곤 하니까, 아마도 밖에서 길고양이들을 보살핀 거겠지만.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우리들 사이가 전보다 멀어지긴 멀어졌구나.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던 가을밤이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그 약간의 불안이 이렇게 이어질 거라고는, 이 때의 나도 형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뭔가 알아차린 모양이네여!

과연 이치마츠의 운명은!!!


번역하고 보니 너무 짧네여......;ㅂ;

다음편 지금부터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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