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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혼에 안녕을 1
어릴 적, 이웃집 할머니가 그랬다.
“날이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렴. 황혼에는 요괴들이 나타나, 아이들을 데리고 간단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다는 그 요괴의 이야기는, 아직 어렸던 내게 너무도 무서웠다. 그래서 해가 지려고 하면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부턴 그런 순수함은 사라져, 그저 어른들이 만들어낸 작은 위협과도 같은 미신이라 여겼다.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청년, 마츠노 카라마츠는 까마귀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길을 거닐었다.
[황혼, 인가. 지금의 나한테는 요괴보다 브라더들이 더 무섭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왼팔과 왼발, 그리고 머리에는 새하얀 붕대가 친친 감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는 그 상처들은, 모두 그의 형제가 저지른 짓이었다.
일의 경위는 이러하다. 카라마츠와 그 형제는 소꿉친구인 치비타의 가게에서 늘 외상으로 오뎅과 술을 먹어댔다. 그들은 니트였기에, 지불한 돈이 없어서였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치비타는 카라마츠를 유괴해 그 몸값으로 외상값을 전부 받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치비타의 생각과는 달리, 형제들은 카라마츠를 구하러 오지도 몸값을 지불하지도 않았다. 치비타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건지, 그게 아니면 유괴당한 게 카라마츠여서인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뭐가 되었든 카라마츠에겐 너무한 일이었다.
슬픔에 잠긴 카라마츠를 본 치비타는, 카라마츠를 위해 한 작전을 떠올린다. 그건 카라마츠를 집앞에서 화형시키는 것. 생사가 걸린 일이라면, 역시 그들도 구하러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작전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마츠노가 형제들에게는 카라마츠보다도 그들의 수면이 더욱 중요했던 걸까. 형제들은 잠을 방해하지 말라 소리치며, 둔기를 내던졌다.
그 둔기들은 보기 좋게 카라마츠에게 직격했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런 큰 상처를 입고도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감탄했다.
옛날부터 튼튼한 것만이 장점이라 여겼지만, 이렇게까지 튼튼하다니 꺼림칙할 정도였다.
‘좀 더 크게 다쳤다면 조금은 걱정해줬을까.’ ‘애초에 외상 건은 연대책임인데 어째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었다.
비참함에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카라마츠는 기분도 진정시킬 겸 공원에 들렀다.
낯선 목발을 필사적으로 끌고,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시야 끝에 낯익은 후드를 입은 집단이 보여,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브라더........?]
카라마츠의 중얼거림은 땅거미에 녹아들었다. 그 시야에 비친 건 이치마츠를 중심으로 평화롭게 웃으며 가는 형제들의 모습이었다. 그 장면이 마치 영화의 끝을 고하듯 완벽해서, 내가 그곳에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자신만 이렇게 크게 다치고, 그것도 모자라서 혼자가 되어야 하는 건가. 어째서 자신만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돈을 내지 않은 건 우리들이 나쁜 거니, 치비타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만 그 벌을 받아야하는 걸까.
카라마츠는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다소 자신의 희생은 감수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결과가 뒤따랐을 때의 이야기다.
가슴에 검게 그을린 응어리를 느끼며,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는 형제들도 짜증나지만, 그보다도 형제들을 질투하는 자신, 형제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밉고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가 멈춰서있을 때, 오소마츠들은 5명 나란히 석양빛을 맞으며 멀어져갔다.
카라마츠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망과 외로움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목발을 쥔 손을 꽉 쥐었다.
[....나는, 이제 필요 없는 건가]
카라마츠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 딸랑.
방울 소리가 작게 귓가에 울렸다.
카라마츠는 그 소리에 끌리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석양에 뒤섞이듯, 무언가가 높은 하늘에 떠있는 게 보였다. 두근, 하고 심장이 고동쳤다. 그건 칠흑 같은 날개를 가진,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뭐..야.......]
카라마츠는 눈을 팔로 비비며 다시 하늘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건 틀림없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역광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건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놀란 카라마츠는 근처에 누가 없는지 둘러봤다. 하지만 시선을 돌린 그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 없어..........]
―― 황혼에는 요괴가 나온다.
카라마츠의 뇌리에 그 말이 스쳐지나갔다. 놀라서 무심코 숨을 헉, 하고 삼켰지만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 * *
집에 돌아간 카라마츠는 아까 그게 뭐였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형제에게 버림받은 슬픔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활기찬 목소리들이 들렸다. 형제들이었다.
[어라, 카라마츠. 뭐야 그 붕대는?]
[뭐야 그 붕대는, 이라니 오소마츠!! 너희들 때문이지 않나!]
장남 오소마츠가 태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마치 자신과 관계 없는 일인 듯 구는 그의 태도에, 카라마츠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소마츠를 따라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들어왔다.
[우와아, 그거 그 때 생긴 상처야? 미안, 카라마츠. 나 완전 잠에 취해서]
[으아, 아파 보여~! 미안, 카라마츠형. 하지만 카라마츠형도 잘못했다구. 그런 밤중에 시끄럽게 굴면 어떡해]
형제들 중에서도 쥐똥만한 양심은 갖고 있는 두 사람은, 약간 미안한 듯한 표정이다. 카라마츠는 동생들에게 약한 탓에, 굉장히 답답하고 묘한 감정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랑스런 동생들이 사과를 하니까, 용서해야만 할 것 같았다.
[훗, 엄청 아팠다. 하지만 나는 관대한 형!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좋다! 너희들을........용서하지!!]
카라마츠는 자유로운 오른손을 총모양으로 만들어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걸 본 오소마츠는 키득키득 웃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우와아,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쓰럽네에-. 그래도 형이 그렇다면야 뭐. 그럼 난 이만. 자기 전에 스킨케어를 해야 하거든~]
[너는 옛날부터 튼튼했으니 괜찮겠지]
[크아~ 졸려라. 아, 내일 아침 일찍 새로운 기계 들어온다던데! 쵸로마츠 갈래? 가자!!]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하품을 하곤 거실을 떠났다. “고마워, 카라마츠형! 미안했어”라며 안길 걸 예상했던 카라마츠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자, 잠깐. 좀 더 상냥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혼자 남겨진 카라마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무리 크게 다쳐도, 취급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카라마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앗, 카라마츠. 너 그 상처론 2층에 올라오기 힘들겠네. 남는 방에 이불 둘테니까, 거기서 자. 나중에 옷 갈아입는 건 도와줄테니까]
쵸로마츠가 다시 거실로 돌아와 빼꼼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확실히 목발로는 계단을 오르내르기가 쉽지 않기에, 그의 제안은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이런 때이니만큼 더욱 같이 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카라마츠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아, 아아! 고맙군, 쵸로마츠]
[아냐, 뭘]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와 함께 남는 방인 객실로 향했다. 먼저 쵸로마츠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그 후엔 그가 이불을 까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꼼꼼한 성격인 쵸로마츠는 시트를 주름 하나 없이 슥슥 손으로 문질러 폈다.
그 모습을 보며 카라마츠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쵸로마츠]
[응, 왜]
카라마츠의 뇌리에 아까 해질무렵에 본 새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멀어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웅장하면서 어딘가 묘하게 꺼림칙한 그것을.
[새인간, 이 있다고 믿는가? 그, 요괴 같은....... 사실은 오늘 저녁에 하늘에 떠있는 걸 봤다]
[뭐? 무슨 소리야. 너 그런 걸 믿는 거야? 그런 건 도시전설이라고. 연 같은 걸 잘못 본 거겠지]
쵸로마츠는 베개의 주름을 펴, 이불 위에 내려두었다. 그리곤 완벽하게 갖춰진 그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연.... 그런가, 그렇지도 모르겠군. 요괴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응, 분명 그럴 거다]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의 말을 받아들이며, 그건 잘못 본 것이라 단정했다.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니고, 역광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방울 소리는 대체 뭐였던 걸까. 여리면서 어딘가 그리운 소리.
[괜찮아? 너 피곤하지. 얼른 자]
쵸로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불을 끄고 방을 나갔다. 카라마츠는 방을 나서는 쵸로마츠의 뒷모습을 향해 황급히 고맙단 인사를 했다.
[....뭐어, 아무렴 어때. 얼른 자자. 오늘은 너무 피곤하군...]
카라마츠는 형제들의 다정한 뒷모습을 떠올려 살짝 가슴이 아파왔지만, 작게 고개를 저으며 쵸로마츠가 깔아준 이불에 누웠다.
기분 좋게 꿈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딸랑, 하고 작게 방울소리가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며칠후, 카라마츠는 혼자 병원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거야 몸이 멀쩡했을 때의 얘기였다. 형제가 5명이나 있는데, 아무도 따라오지 않다니 정말 너무하다.
[하아....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만으로 해가 저물다니]
카라마츠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해가 저물어가는 거리를 걸었다. 주변에는 카라마츠 이외엔 아무도 없었기에, 카라마츠의 목발소리만 울려 더욱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때 카라마츠의 핸드폰이 울렸다. 카라마츠는 길가로 물러나, 담에 몸을 기대며 휴대폰을 꺼냈다. 막내 토도마츠였다.
[여보세,]
『여보세요! 카라마츠형 지금 어디야? 치비타가 사과하고 싶으니까 가게로 와달래! 우리들은 이미 와있으니까, 형도 빨리 와! 그럼 이만-』
토도마츠는 일방적으로 용건을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뚜- 뚜- 하고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카라마츠는 눈을 내리깔았다. 잠깐의 통화였지만, 전화 너머로 북적이는 소리가 들려와 가슴이 지끈거렸다.
[치비타가... 그럼 나도 빨리 가봐야지]
주역인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지, 라며 스스로를 타일러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해가 완전히 져버린 후에야 치비타의 가게가 있는 강변에 도착했다. 그것은 정적이 감도는 그곳에 혼자서 따스한 빛을 내뿜었다. 이 다리로는 언덕을 내려갈 수가 없었기에 계단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즐거워 보이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빨리 달려가고 싶었을텐데, 그런 기분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발이 무거워졌다.
겨우 도착했다며 계단을 내려갔다. 앞으로 조금이면 도착하는데, 카라마츠의 발은 거기서 딱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
ーー 빨리 가서 치비타를 만나야 하는데. 분명 내가 없으면 브라더들도 심심할 거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시끄럽게 울렸다. 내 몸은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놀랄 뿐이다.
하지만 이 기분의 정체를 카라마츠는 금방 알아차렸다.
그건 “공포”였다. 가슴이 꽉 조여와서 숨쉬기가 버겁다.
ーー나는 무서운 건가. 치비타나 브라더들이. 저 상냥한 미소도, 시끌벅적함도, 의자에 나란히 늘어선 뒷모습도.
지금까지 어떻게 저 안에 섞여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애초부터 혼자 동떨어져 있던 건 아닐까.
그런 감정을 알아버린 순간, 가슴이 욱신거리고, 배 안이 뒤틀리며 뭔가 역으로 치밀어 올랐다.
[우, 윽]
카라마츠는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어떻게든 그걸 막으며, 온 길을 황급히 되돌아갔다.
무아지경으로 강변을 내달리는 카라마츠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더는 저 고리 안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과,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로 인한 당혹감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왔다.
* * *
카라마츠가 길을 달리고 있자, 딸랑, 하고 또 방울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낯선 작은 공원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이끌리 듯 공원으로 들어갔다. 벤치를 찾아 앉고는 몸을 진정시키려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다.
[우으, 흣, 히끅, 후으]
너머로 보이는 산은 밝았지만, 근처는 어두컴컴했다. 고장난 듯 깜빡이는 가로등에 나방이 모여들었다. 스산한 부엉이 울음소리와 카라마츠의 흐느끼는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이 벤치 위로 떨어졌다. 내려다보니, 휴대폰이 불빛을 깜빡이며 메시지가 왔음을 알렸다. 눈가를 문지르며 눈물을 닦아낸 카라마츠는 휴대폰을 켜 메시지를 확인했다. 연락의 주인은 토도마츠로, “아직이야? 안 올거면 연락 정도는 해줘” 라 보냈다.
살짝 짜증이 담긴 듯한 문자에 카라마츠는 “미안하다” 라고 답신을 적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전파가 터지질 않아 보낼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하다 안 되자, 카라마츠는 언젠가 되겠지, 라며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토한 카라마츠는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잡아, 가늘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했다.
지금까지 다소 불합리한 취급을 받아왔지만, 이런 식으로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남자형제, 반쪽과도 같은 존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역시 그건 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가족, 형제, 자신의 반쪽으로서의 정이나 유대, 인연보다 마츠노 카라마츠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방위반응이 나와 버렸다.
[어째서, 나, 나는..]
입으로는 정적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사실은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에, 섬세하고 가족애가 강한 카라마츠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형제들이 밉다”고 생각하기보다, “형제에게 이런 반응을 보이는 자신이 밉다”라며 자기혐오감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끝없는 공포도 느꼈다.
코를 훌쩍이며 울던 카라마츠의 귀에, 자갈을 밟으며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는 카라마츠의 눈앞에서 멈췄다.
[이렇게나 좋은 밤에 왜 울고 있습니까]
머리위로 들려오는 소리에 카라마츠는 어깨를 움찔하고 떨었다. 평소에 가족 이외의 사람과는 교류가 적은 카라마츠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을지 몰라,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두려움 가득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카라마츠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왜냐면, 눈앞에 보이는 청년의 얼굴이 자신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나, 나........??]
엄청난 충격에 눈물도 멎었다. 청년은 훗, 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카라마츠의 옆에 앉았다.
[닮긴 했지만. 다른 사람입니다]
[그, 그렇군]
카라마츠는 흘긋 곁눈질로 청년을 봤다. 청년은 진청색의 유카타를 입었으며, 자신보다는 용감하고 듬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가 동경하는 남성상처럼 쿨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근육도 적당히 붙은 건장한 몸이라는 걸, 유카타 위로도 알 수 있었다.
[그래, 확실히 다른 사람이로군..]
카라마츠는 중얼거렸다. 청년은 카라마츠의 시선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어색한 기분에 무심코 눈을 돌렸다.
[....왜 울고 있었나요. 닮은 사람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얘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청년의 물음에 카라마츠는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그 정정이 이상하게도 편안하게 느껴져, 이윽고 띄엄띄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쿨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얘기가 끝났을 땐 이미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아, 이제, 읏. 녀석들과 있을 수 없다! 무섭다, 무섭단 말이다!]
비통한 울음에 청년은 부드럽게 눈을 감았다. 청년의 표정은 완전한 무표정으로, 동정도 연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청년은 카라마츠의 왼팔과 발, 머리에 감긴 붕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아직 아픕니까]
[아니, 약이 효과가 있었던지 그렇게 아프진 않다]
[그렇습니까. 걱정마십시오, 곧 나을 겁니다]
마치 상처의 상태를 아는 의사처럼 확신을 담아 말하는 청년에, 카라마츠는 어딘지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과 반대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몸의 상처는 금방 나을 겁니다. 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곳”의 고통은 그걸 떠올릴 때마다 되살아나겠죠]
청년은 눈을 내리깔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카라마츠는 그를 따라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을 때의 그 절망감이 서서히 살아났다. 계속 이 고통이 이어지다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존재이지요. 아무리 소중한 존재라도 쉽게 상처를 주죠. 잃고나서 깨달아야 이미 늦은 것을...]
청년은 카라마츠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라마츠의 앞으로 걸어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라마츠에게 작은 사탕 하나를 건넸다.
[........이걸. 단 것을 먹으면 좀 괜찮아질 겁니다]
[고, 고마워....]
카라마츠는 사탕을 오른손으로 받아들어 입에 물었다. 희미하게 달달하고 따스한 맛이 나, 청년의 말대로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
[자, 이제 돌아가세요. ...돌아갈 수 없어지기 전에]
[후후. 나는 이제 성인이라 이런 곳에서 길을 잃지는 않는다]
애취급 당했다 생각한 카라마츠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상처로 밤중에 걸어가긴 위험할지도 모르니, 얌전히 돌아가기로 한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의 출구로 향해 걸었다. 청년이 자신을 따라오는 듯한 느낌에, 카라마츠는 그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 말을 걸었다.
[....형씨, 오늘은 고맙군. 또 만나-]
카라마츠가 살짝 휘청이며 뒤로 돌자, 거기에 청년은 물론이고 공원도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저 좁은 황무지와 그 안에 자리한 작은 사당만이 있을 뿐이었다. 바람이 카라마츠의 얼굴을 간질이었다.
[으응!? 어, 어라....]
카라마츠는 여우에게 홀린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방금까지 정신없이 깜빡이던 가로등도 벤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이라며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멍한 머리를 가로 저으며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마치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다.
[머리가 멍하군. 그건 꿈이었던 건가?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 * *
카라마츠가 집에 도착하자, 5명은 이미 왔는지 신발들이 현관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집안의 불은 다 꺼져있고 고요했다. 치비타의 가게에 마시러 갈 때는 대개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인데, 오늘은 드물게도 빨리 돌아온 듯하다. 집안을 슥 둘러보고는 객실로 가 이불 위에 누웠다.
자리에 눕자 불현듯 아까 그 묘한 청년이 떠올랐다. 치비타의 가게 근처에서 있었던 일고 어째선지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어봤군]
자신과 닮은 얼굴에, 어딘가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의 친화성. 그렇게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잊어 버렸다.
공원이 없어진 것도, 어느새 청년이 사라져있던 것도, 카라마츠에게 있어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과, 상냥하게 대해졌던 그 사실만 있다면 됐다.
[핫. 설마 그 미스터는 카라마츠 보이였던 건가..]
카라마츠는 그렇게 생각하며 화악, 하고 얼굴을 빛냈다. 아이라면 모를까, 다 큰 성인남성에게 잘해줬다는 건 정말 카라마츠 보이인 걸지도 모른다!
사실은 걸이 더 좋지만, 자신과 닮았고 잘생겼으니 불평하지 않겠다.
[카라마츠형...? 있어?]
그때, 복도에서 토도마츠의 소리가 들렸다. 아마 화장실 가려다 깬 거겠지.
[아아, 있다]
그렇게 답한 순간 문이 열리고, 토도마츠의 요청으로 화장실에 따라온 쵸로마츠가 방에 들어왔다.
[너, 이런 시간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야]
[응? 이런 시간이라니....]
어이없다는 표정의 쵸로마츠를 본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봤다. 시간은 오전 2시였다. 거짓말...., 카라마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다쳤잖아. 얼마전 유괴사건을 일으킨 치비타는 우리들이랑 있으니까, 진짜 무슨 일에 휘말린 건가 했다고]
[쵸, 쵸로마츠...너, 설마 날 걱정해서...!!]
카라마츠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쵸로마츠를 올려다보았다.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을 받은 쵸로마츠는 휙하고 외면했다.
[긋, 그럴 리 없잖아! 그냥 나는 상식인이고, 역시 2번이나 버림받는 건 좀 그렇겠다 해서!]
[나왔다, 자칭 상식인 발언. 근데 진짜 카라마츠형, 어디에 있다 온 거야? 별로 궁금한 건 아닌데, 치비타 엄청 풀 죽었다고]
토도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는 대답하려 했지만,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사실은 공원에 있었는데 그 공원이 없어져 버렸다, 라고 말한들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훗, 깜빡했다..]
그렇게 생각한 카라마츠는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어이없다기보다는 모처럼 걱정한 것에 대한 허망감 같았다.
[......아, 그래. 뭐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그럼 난 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몇 분전의 일을 까먹다니, 그런 뻔한 거짓말 치려고 해도 못 치지~.
초등학생도 그런 거짓말은 안 치겠다. 뭐, 암튼 잘자, 바카라마츠형]
두 사람은 완전 흥미를 잃은 듯 그대로 2층으로 돌아갔다.
카라마츠는 어, 하고 할 말을 잃었다. 침울하게 고개를 떨군 카라마츠는 슬슬 이불로 기어 들어갔다.
길어서 반반 나눠서 번역할 생각입니다 :)
요즘 날씨도 꿀꿀하고 해서
뭔가 암울한 거 번역하고 싶어서 사변소설 가져온 건데
뭔가 그렇게 암울한 소설 같지는 않네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제가 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번역할 시간이 많이 줄어서 주에 하나가 고작이네요ㅠ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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