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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후. 카라마츠의 몸에 감겨있던 붕대란 붕대는 전부 벗겨졌다. 그 남자의 말대로 겉의 상처는 비정상적으로 빨리 나았다. 의사는 기적의 회복력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카라마츠 스스로도, 아무리 자기가 바보라 할지라도 죽을 뻔했던 어마어마한 상처가 일주일만에 낫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난 신에게 선택받은 건가]
카라마츠는 거실에서 붕대를 푼 팔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그걸 형제가 냉담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 그 붕대, 꾀병이었던 거?]
[맞아맞아. 너 악운 강하니까. 앗, 그렇단 건 우리들이 잘 피해서 던졌다는 거 아냐?]
[아하, 파인 플레이네!! 메이저 갈 수 있을까?]
이치마츠, 오소마츠,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상태를 보며 말했다.
[꾀, 꾀병 아니다! 진짜, 진짜 아팠단 말이다!! 죽는 줄 알았다!]
카라마츠는 그들의 막말에 마음이 아팠다. 속죄나 동정의 말이라면 몰라도, 그 고통과 괴로움을 꾀병이라 말하는 건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잘했다는 듯이 말하다니.
[죽다니.....꾀병이잖아. 그렇게 빨리 낫다니 꾀병이 당연하지]
[그래그래. 카라마츠형, 치비타한테 가서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꼭 사과하라구~. 안 그럼 어색해져서 못 갈지도 모른다고, 앞으로]
쵸로마츠는 취활잡지를 보며, 토도마츠는 탁자에 턱을 괴고선 핸드폰을 보며 카라마츠에게 말했다.
카라마츠는 반론하려 5명을 봤지만, 순간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화나는 것보다 이해 받지 못하는 괴로움과 체념이 더 컸다.
[알겠다......]
주먹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시선을 떨군 채 방을 나섰다.
겉의 상처는 아물어도,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간단히 낫는 게 아닌데. 겉의 상처는 보여도,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데. 5명이나 있음에도 점점 커져가는 마음의 상처를 알아채주지 않는 게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 있기 싫었던 카라마츠는 그대로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섰다. 밖에 나와도 특별히 갈 곳이 없었다. 토도마츠가 말했던 것처럼, 치비타한테 갈까 했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몸은 다 나았다. 가려고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오소마츠처럼 삼시세끼 식사보다 도박을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쵸로마츠처럼 아이돌 덕질을 하는 게 삶의 활력소인 것도 아니다. 이치마츠처럼 고양이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쥬시마츠처럼 야구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며, 토도마츠처럼 인간관계가 넓은 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구나. 난 이렇게나 시시한 인간이었던 건가]
그렇게 자각한 순간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굳이 말하자면, 난 나 자신을 좋아했다.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느 누가 날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싫다. 형제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건 분명 평소 행실이 나빴기 때문이겠지. 안쓰럽단 말을 계속 들었음에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라마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걸었다. 이런 기분으로는 카라마츠 걸을 찾으러 갈 수도 없다.
[...응....? 카라마츠 걸.... 아니, 카라마츠 보이가 있지 않나!]
카라마츠의 뇌리에 전에 만났던 청년이 스쳐지나갔다.
그날 이후로 한번도 못 봤지만, 운 좋게도 지금은 아직 한낮이다. 마을은 좁으니, 전력으로 찾으면 밤까지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카라마츠는 아무 생각 없이 마을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아카츠카 마을에 살고 있는지도 어쩐지도 모른다.
결국 만나지 못한 채 카라마츠는 집으로 돌아갔다.
* * *
붕대를 벗은 후부터는 전과 똑같이 형제와 같이 행동했다. 같이 목욕탕에 가고, 같이 자고, 같이 밥을 먹었다. 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카라마츠는 형제들 사이에서 벽을 느꼈다.
상태가 나았다고 해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할 수는 없다. 저도 모르는 사이, 트라우마에 마음의 상처가 도려내졌다.
엄마인 마츠요가 “꽃병”에 꽃을 꽂아 장식할 때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고, 쥬시마츠의 야구연습에 억지로 끌려갔을 땐 과호흡에 빠졌다.
라멘이 담긴 “그릇”이 무서워서, 좋아하던 라멘도 먹을 수 없게 되고, “후라이팬”도 건드릴 수 없게 됐다. “맷돌”을 볼 땐 발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물이 무서워 탕에 오래 들어앉아 있지도 못하고, 거의 매주 갔던 치비타의 가게에도 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 상태의 주범격인 형제들도 다소 걱정을 하는 듯했지만, 날이 갈수록 꾀병이라 생각하는 건지 냉담한 눈빛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더욱 카라마츠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저기, 토도마츠. 너는 날 좋아하는가? 가족이라고, 형이라고 생각하는가?]
[아, 그래. ....근데 그러는 거 이제 그만하면 안돼? 그 일은 우리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 매일매일 그런 말 듣고 있으면 짜증난다고. 무슨 집착 쩌는 여자친구냐]
토도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깊은 한숨과 함께 방을 나갔다. 카라마츠는 토도마츠를 향해 팔을 뻗었지만, 탁 하고 문이 닫혀버린다.
토도마츠의 말대로 카라마츠는 거의 매일 이런 질문을 되풀이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듯이.
[누, 누구 없는가...! 날 혼자 두지 마라!!]
카라마츠가 또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게 된 이유가 하나 있었다. 눈동자에 공포의 빛을 띠면서 카라마츠는 몸을 둥글게 말고 귀를 막는다.
[히익, 또다.......]
카라마츠는 혼자가 되면 주변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크게 다친 이후부터 뭔가가 항상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기분탓이라고 여겼지만, 가끔 자신을 놀리는 듯 딸랑, 하고 방울 소리가 났다.
이런 행동을 매일 반복하다보니, 형제들은 카라마츠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자신들임을 알기에,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형제들은 카라마츠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내버려두면 언젠가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라고 간단히 생각해버린 것이다.
* * *
그러던 어느날. 카라마츠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고, 오소마츠는 심심하단 말을 반복하며 뒹굴거리고 있었다.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어둠은 갈수록 깊어만 가, 카라마츠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카라마츠는 시선을 오소마츠에게 옮기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구해달라는 듯이.
[.....저기, 오소마츠. 나, 누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발언에 오소마츠는 깜짝 놀라 카라마츠를 봤다. 눈빛은 공허하고 오른쪽 눈에서는 눈물이 한줄기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누군가가, 날 보고 있다...]
카라마츠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매달리듯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그리고 오소마츠 쪽으로 기어가듯 천천히 다가갔다.
오소마츠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살짝 질린듯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 하아? 누가 널 본다는 거야. 그, 그거 아냐? 복장이 안쓰러워서 호기심의 시선으로 누가 보는 거라던가]
[...아니다, 그게 아니다! 이건 그런 시선이 아니다!! 밖에서만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느껴진단 말이다!]
너무도 필사적인 모습에 오소마츠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공포가 싹텄다. 저 말이 진짜인 걸까, 아니면 관심을 끌고 싶어서 벌인 연기인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미쳐버린 걸까. 어느 선택지를 고르든 다 동생이 불쌍할 뿐이었다.
[......너 진짜 자의식 과잉 아냐? 형아 걱정인데]
[농담이 아니라니까!!! 진지하게 들어라, 오소마츠!!]
그렇게 소리친 순간, 카라마츠의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 방에는 오소마츠와 자신, 둘뿐일텐데, 다른 한명이 더 있는 듯했다.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멀리서 그 시선이 느껴졌었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기척을 느꼈다.
[아, 아아, 있어. 오소마츠, 도와줘. 있다, 이 방에, 있다고!!]
카라마츠는 눈물을 쏟으며 오소마츠에게 떨리는 손을 뻗었다. 오소마츠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무엇 하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결국 이 모든 걸 카라마츠의 연기라 단정짓고, 짜증과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는 저 불쌍한 동생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오소마, 츠. 오소마츠! 어딜 가는 건가!! 날 혼자 두지 마라!!]
[네네. 잠시 저쪽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거니까. 금방 돌아올게-]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붙잡는 카라마츠에게 그렇게 말하곤 오소마츠는 한손을 휙휙 흔들며 방을 나가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방의 온도가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불쌍하게도.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건가]
아무도 없어야 할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쿵쿵 거칠게 뛰고,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딸랑, 딸랑, 하는 방울소리가 점점 커지며 뇌내에서 울렸다.
[사랑에 굶주린 인간의 아이여. 나의 신사로 오라]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온몸을 경직시킨다. 그리곤 이내 가위가 풀렸다.
카라마츠는 덜덜 떨며 뒤를 돌아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고 바닥에 새의 것으로 보이는, 하지만 그보다 조금 큰 검은색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
[기, 깃털...?]
카라마츠는 그걸 집었다. 그러자 카라마츠의 뇌리에 본 적 없는 신사가 스쳐지나갔다. 본 적이 없어 모르는 게 당연한데, 어째선지 가는 길이 떠오르며, 몹시 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카라마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에 들어하던 선글라스나 가죽재킷도 버린 채 빈손으로 집을 나섰다.
비틀비틀, 마치 꼭두각시처럼 오직 목적지만을 향해 걸었다. 그의 한 손에는 커다란 깃털이 들려있었다.
[어라, 카라마츠. 어디 가는 거야, 곧 저녁시간이라고]
아이돌 라이브에서 돌아온 쵸로마츠가 앞쪽에서 걸어오며 말을 걸었지만, 카라마츠는 무시하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무시라니...! 뭐야, 아침에 무시했다고 화난 거야? 어쩔 수 없었다고, 나 바빴으니까]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카라마츠가 쵸로마츠를 흘끗 쳐다봤지만, 그의 눈동자는 공허해, 쵸로마츠도 그 무엇도 비춰지지 않았다.
그것에 소름이 돋은 쵸로마츠는 팔을 놓았다.
[뭐야, 됐어...! 오소마츠형이랑 쥬시마츠가 밥 뺏어먹어도 모른다고!!!]
쵸로마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 카라마츠의 등을 바라보며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카라마츠에게 닿지 않았다.
타들어가는 석양에 휩싸이듯 카라마츠는 앞으로 나아갔다.
* * *
그날 카라마츠가 돌아온 건 아침해가 뜰 무렵이었다. 방에 누가 들어오는 걸 느낀 쵸로마츠는 잠에서 깼다. 그 누군가가 카라마츠라는 걸 깨달은 순간 그의 팔을 잡아끌어 복도로 나갔다.
[카라마츠, 지금이 몇시라고 생각하는 거야? 게다가 저녁에 내 말을 무시하고 말이야!!]
쵸로마츠는 카라마츠를 추궁했다. 기분 탓인지 카라마츠는 초췌해 보였지만 어쩐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아, 미안하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네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만....]
카라마츠는 감정이라곤 없는 목소리로 말하곤, 쵸로마츠 옆을 스쳐지나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카라마츠한테서 묘한 향기가 났다.
카라마츠는 이불로 들어가 눈을 감고 오늘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그 후, 카라마츠의 정신이 돌아온 건 인적이 드문 신사 앞에 도착한 후였다.
【여, 여긴.....어디인가. ....핫! 설마 나는 카미카쿠시 1라도 당한 건가...!!】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고,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음침하게 땅거미 속에 메아리쳤다. 카라마츠는 일단 경내 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토리이 2를 지나자 고마이누 3 두 개가 험상궂은 얼굴로 바라본다. 건물 주변에는 사당과 작은 무덤이 있었다. 카라마츠는 사당이 신경 쓰여, 가까이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게 신경 쓰이십니까】
그 때, 갑자기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까진 아무도 없었고, 기척도 못 느꼈는데. 카라마츠는 깜짝 놀라며 조심조심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짙은 파란색의 기모노를 입은, 전에 봤던 그 청년이 서있었다. 놀란 표정을 짓자 청년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그, 그 때 봤던 형씨.......!】
【어서오십시오. ...거기에 이끌려 오신 거군요】
청년의 시선은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깃털에 꽂혔다. 카라마츠는 그걸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입가를 살짝 올리곤 사당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사당에는 카라스텐구가 모셔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카라스, 텐구....그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건가】
【네. 인간의 형상에 검은 날개를 달고 있습니다. 마침 그대가 갖고 있는 그것이 그 날개의 깃털. 그대는 카라스텐구의 마음에 든 모양이군요】
그걸 들은 카라마츠의 뇌리에, 언젠가 석양 속에서 보았던 실루엣과 날마다 느껴지는 시선이 떠올랐다. 그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진짜였던 거다!
【카라스텐구에 대해 들어보시겠습니까】
청년의 제의에 카라마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청년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 이 사당에는 카라스텐구가 모셔져 있다고 믿어, 귀중하게 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믿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사당에 바쳐지는 제물도 사라져 점점 초라해져만 갔다.
그 때문에 카라스텐구는 이곳에 가호를 내리는 걸 관뒀다. 그러자, 주변 마을에 기근이 덮쳤다. 식량이 없어 곤란해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거칠어져만 갔고, 강탈은 물론이요 어린이나 노인들을 굶기거나 쫓아내 입을 줄이기까지 했다.
어느날, 한 남자아이가 피를 철철 흘리며 빈사상태로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걸 카라스텐구가 발견했다. 카라스텐구는 그를 가엾게 여겨, 자신의 피를 먹여 아이의 상처를 고쳤다.
원래는 카라스텐구의 존재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지만, 그 피를 섭취한 남자아이에게는 그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카라스텐구에게 점점 정을 붙였다.
처음으로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카라스텐구는 남자아이에게 가호를 내려 그를 보호했다.
하지만 어느날, 이 기근이 카라스텐구의 저주란 얘기가 돌면서, 마을사람들은 결국 사당을 부수려했다. 아이는 그걸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죽었어야 할 아이가 살아있는 걸 보고 놀란 마을사람들은 ‘이 아이는 역귀다! 이 아이가 재난의 원인이다!’라고 소리치며 아이를 잡아다 고문하여 죽였다. 창백하게 식어버린 아이를 본 텐구는 분노하여, 마을을 모조리 궤멸시켰다.
남자아이의 죽음으로 사당은 지켜졌지만 카라스텐구가 아끼던 아이는 사라져버렸다.
청년은 이야기를 끝내곤 슬픈 듯 웃었다. 그리고 작은 무덤을 가리키며, 저것이 남자아이의 무덤이라 말했다.
상당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풍화되지 않고 깔끔히 정돈된 무덤주변을 보아, 누군가에 의해 소중히 관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군.....하지만 그 아이는 카라스텐구의 옆에서 잠들어 행복하겠군.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이렇게나 소중하게 지켜지고 있으니까 말이야】
카라마츠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무덤 앞으로 가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 위를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그 모습을 청년은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 아이는 텐구를 감싸다 죽었습니다. 텐구가 없었다면, 이라고 생각하진 않나요】
【.....아니, 애초에 텐구가 없었다면 죽었을 목숨이다. 이 아이에게 있어, 혼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보다 텐구에게 사랑받으며 죽는 편이 더 행복하지 않겠나. ....사랑 받지 못하는 인간만큼 불쌍한 건 없으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어쩐지 실수한 듯한 기분에 살짝 침울한 얼굴이 된다.
【저기, 형씨. 아까 내가 카라스텐구의 마음에 들었다고 했지. 왜 나인가】
카라마츠의 질문에 청년은 시선을 슬쩍 돌렸다. 하지만 곧바로 시선을 마주하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그 아이와 닮았으니까】
그걸 들은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닮았다 해도 본 적도 없는 상대이니 좀처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군....역시 나,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쿨가이..】
【응....?쿨가이...?】
【훗, 아무것도 아니다....그보다 여긴 어딘가? 나는 아카츠카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런 곳은 처음 본다만】
카라마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을 뒤덮을 듯 울창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려 바스락거리며 흐느끼고,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애수를 자아냈다.
【전에 저와 만났던 장소, 기억하시나요? 이곳이 그곳입니다】
그 말을 들은 카라마츠는, 있어야 할 공원이 없어지고 사당만 남았던 그곳을 떠올렸다.
【아니, 그건 기억한다만....그곳은 그냥 공터였지 않나. 이렇게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 곳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예,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의 옛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카라스텐구는 그 지위와 요력이 굉장한 요괴입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건 물론, ....사람을 홀연히 데리고 가는 것도 가능하죠】
청년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라마츠는 빙글빙글 혼란스러운 머리를 갸웃거렸다.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게 가능하다, 라는 건 날 말하는 건가. 그렇다는 건 이건 카미카쿠시!!
【시, 싫다싫다싫다아-!! 갑자기 카미카쿠시라니 싫-다아-!!】
머리의 한계치를 넘어버린 카라마츠는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갑작스런 반응에 청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지, 진정하세요. 그렇게 가둬두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는 현세로 돌려보내는 것도 가능하죠】
【에, 그런 건가...? ......나,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이성을 잃어버리다니, 쿨하지 않군.....】
카라마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본 청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쿨”이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여기, 이걸 받아주세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소매에서 사탕을 꺼내 카라마츠에게 건넸다. 그건 호박색을 띠고 있어, 아름답게 빛이 났다.
사탕을 받아들어 입에 넣어 굴리자, 서서히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고맙다....저기, 형시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저, 말입니까. 저는.....이 사당과 무덤을 지키는 자입니다. 오랜 세월 이렇게 이승에 몸을 숨기며 영원의 시간을 보내고 있죠】
그 말을 들은 카라마츠는 청년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계속 이 쓸쓸한 공간에 혼자 있었다는 건가.
【형씨, 대단하군. 외롭지 않은 건가】
【외로워...? 외로움...인가. 그런 감정은 버린 지 오래입니다. 저는 금기를 범했습니다. 그저, 이 목숨이 다하기를 기다릴 뿐이죠】
【금기....? 그게 형씨를 이곳에 묶어둔 이유인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카라마츠의 질문에 청년은 천천히 입가를 올렸다. 그 미소가 어딘가 텅 비어 보여,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자, 옛날 이야기는 이걸로 끝입니다. 이제 그대가 현세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기 전에 현세로 돌려보내야 되겠군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우선 4을 꺼내 살짝 휘둘렀다. 그러자, 카라마츠의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자, 잠깐.........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
【.....그럼요. 그걸 가지고 해가 질 무렵에 그 장소로 오신다면, 언제든지】
딸랑, 하는 방울소리가 고막에 울리더니, 카라마츠는 어느새 집앞에 서있었다. 잠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어 멍하니 서있던 카라마츠는 손에 들린 칠흑 같은 깃털을 보고 현실임을 깨닫는다.
분명 집을 나온 건 저녁무렵이었는데, 설마하니 새벽녘에야 돌아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브라더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건가】
카라마츠는 편안한 얼굴로 깃털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그 날을 경계로 카라마츠와 청년은 사이가 좋아졌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만났지만, 점차 그 횟수가 늘어 거의 매일 가게 되었다.
집에는 있을 곳이 없는 카라마츠에게 있어, 청년이 만들어낸 그 공간은 마음의 안식처나 마찬가지였다. 청년은 자신만을 보고, 상냥하게 말을 걸며, 때때로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저녁에 나가 새벽녘에 귀가하는 카라마츠를 형제들이 수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안녕을 위한 행위가 반대로 자신을 집에서 몰아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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