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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가슴의 심장

 

 

 

 

 

눈은 두 개. 귀도 두 개.

팔 두 개. 다리도 두 개.

하지만, 이 가슴 속 심장은 하나뿐.

어째서라고 생각하나요?

얼 정도로 추운 밤. 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열을 함께 나누던 할멈은 내게 그렇게 물었다.

그에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아마, 심장이 2개나 있으면 시끄러우니까,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꿈도 희망도 없는 그 답변에, 할멈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는 내 가슴에 주름진 손바닥을 얹고 말했다.

 

언젠가 당신이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와 만났을 때, 그 답을 알게 될 거랍니다.

 

그러니, 그 때까지 답은 미루도록 하지요.

부드럽게 웃는 할멈의 목소리는, 그때 마시고 있던 핫 밀크처럼 달콤해서.

정답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 조금은 불만이었지만, 할멈이 이런 얼굴을 하고 있다면 잠깐 참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그날의 나는 잠에 빠졌다.

 

 

그 답이 수수께끼에 가려진 채, 십년.

양손을 꼽아 나이를 셀 수 있게 되었을 무렵부터, 나도 내 주변도 무척이나 변했다.

답을 알기도 전에 할멈은 죽고, 겨울이 긴 변방에서 대륙의 중앙에 있는 왕도로 거처를 옮겼다.

비바람을 맞는 오두막 집 같은 작은 집은, 이 나라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성으로 변했고,

마일 제일의 악동은 이 나라의 왕위 첫 번째 계승자가 되었다.

눈을 치우고, 밭을 갈고, 말을 기르는 생활은 단번에 변해, 정치에 훈련에 공부에 상담에, 분주하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었다.

하지만 우연히, 한순간에, 그날 밤 할멈이 했던 말이 되살아났다.

 

 

언젠가 당신이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답을 알게 될 거랍니다.

 

소중한 누군가라는 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분명 기적이나 운명이라고 부르는 종류일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바라지만, 손에 넣는 건 극소수의 사람뿐.

대개의 사람들은 기적도 운명도 모르고, 다른 길을 택하고 만다.

 

(뭐어, 현실이란 그런 거겠지)

 

오소마츠는 눈을 굴리며 옆에 -옆이라고는 해도 2미터 거리지만- 앉은 인물을 힐끗 보았다.

곱고 풍성한 레이스를 단 하얀 드레스는, 군데군데 피어난 청색이나 분홍색의 장미가 포인트였다.

소매나 목덜미까지 레이스로 덮여 맨살을 조금도 노출하지 않은데다, 머리끝에서 가슴까지 늘어뜨린 은빛 베일로 얼굴도 전혀 보이지 않아 훔쳐보는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오소마츠 또한, 머리에 금실로 엮은 비단결의 얇은 천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라곤 반쪽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의 오랜 전통으로, 결혼을 앞둔 남녀가 얼굴을 보이는 일은 금기시 되었다.

서민은 3일에서 1주일 정도, 귀족은 한달, 왕족은 석 달간 서로의 만남을 금했다.

그래서 오소마츠는 혼인 의식을 치르고 있는 지금도 옆자리의 인물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젊은이 그렇지 않은지조차 모른다.

이웃 나라인 재의 나라에서 시집 온 공주님이 오소마츠가 통치하는 이곳, 즉 이 나라에 온 것은 대략 한 달 전이다. 그런데 이렇게 존재를 인식하게 된 건 이 의식을 시작하고 나서라니 우스개도 안 된다.

 

(누구라도 좋아)

 

쓰읍, 하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콧구멍을 자극하는 것은 강한 꽃내음이다. 방에 흩날리는 향냄새.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건, 내 운명이 아니야)

 

언젠가 당신이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와 만났을 때, 그 답을 알게 될 거랍니다.

할멈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울린다.

언젠가 만날 누구인가. 나의 운명. 나의 짝.

 

(운명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아)

 

오소마츠는 홀로, 자신만의 운명을 원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만남은 의외로 가까이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

 

전혀 실감이 되지 않는 혼인 의식을 끝내고 며칠, 시찰이라고 말하고 성을 빠져나가 찾아간 마을.

공주님의 혼례에 기회를 잡아 입국했다는, 재의 나라의 상단으로 이뤄진 가게에 놀러갔을 때였다. 다양한 색으로 염색한 아름다운 천과 반짝반짝 빛나는 금세공의 액세서리, 본 적도 없는 수입품의 산에 묻히듯이, 오소마츠의 운명은 나타났다.

할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가 당신이――........

 

 

 

 

 

 

 

 

 

 

오른쪽 가슴의 심장

 

 

 

 

 

 

 

오소마츠의 운명은 자신을 카라라고 말했다.

재의 나라 출신의 변방의 마을에서 자랐고, 나이는 동갑인 남자. 오소마츠의 운명.

이 나라의 왕자와 혼인이 결정된 공주님이 여기에 온 것과 동시에 행상을 위해 이 나라에 온 것 같다.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카라는 술술 전부 답해줬다.

 

재의 나라는 섬유업과 가공업으로 대륙에 이름을 떨친 장인의 나라이다. 나무와 꽃, 조개껍질로 색을 만들고, 고치에서 뽑아낸 실에 색을 넣어 천을 짠다.

복잡한 무늬에 색을 넣어 만든 천은 고가에 팔렸고, 즉의 나라에서도 호평인 듯했다.

오소마츠가 통치하는 즉의 나라는, 풍부한 땅과 자원을 가진 낙농업과 광산의 나라이다. 재배와 사육과 채굴로 재산을 이루고 자원 수출로 나라를 지탱하고 있다.

자원이 풍부한 즉의 나라의 차기 왕과, 그 자원을 가공해 상품으로 만드는 재의 나라의 공주의 혼인은 참으로 합당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혼인으로 동맹을 맺게 되어, 원자재의 매입이 싸서 가공한 여러 가지 상품의 매매가 편해졌다고 말하며 카라는 웃었다.

 

조개껍데기에서 얻은 염료로 염색했다는, 선명한 푸른색을 바탕으로 흰색이나 빨간색, 보라색에 모양이 그려진 스톨을 머리에서 목까지 친친 감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늠름한 눈썹과 크고 푸른 눈이 특징적이고, 잘 웃는 녀석이구나 하고, 오소마츠의 개인적인 감상은 가능했다. 그리고, 어린 얼굴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낮지만 달콤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군]

 

곤란한 듯이 카라가 웃었다. 눈썹이 살짝 아래로 내려간다.

뭐가, 라고는 묻지 않았다.

오소마츠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명의 만남은 극소수이다.

설마 자신이 그 한줌에 들어간다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남녀라는 첫 성과는 별개로, 두 번째 성별을 갖고 태어난다.

그것은 버스성이라고 불리며, α、β、Ω의 세가지로 나뉘며 각각의 특성이 존재했다.

오소마츠는 α였다. 일반적으로 지배 계급으로 알려진 α는 전체 인구 중에 1할 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왕족 α인 오소마츠는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반면, 카라는 Ω였다. 탄생의 성이라고 불리는 Ω는 남성이라 할지라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며, α와 마찬가지로 전체 인구 중 1할 밖에 되지 않지만 그 입장은 심하게 정반대였다.

그러나, Ω의 입장을 안정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짝을 만드는 것이다.

Ωα와 쌍을 지어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얻는다. 세 달에 한번 오는 발정기 때 짝이 없다면 누구든 상관없이 유혹하는 페로몬을 뿜지만, 짝의 존재가 있으면 그 페로몬은 오직 한명에게만 향하기 때문이다. αΩ라면 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본능적으로 이끌려 짝이 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불린다.

운명의 상대와 만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운명의 짝으로 만나는 것은 기적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나 오소마츠는 만나고 말았다.

카라야말로 오소마츠의 운명이다.

 

 

 

 

[운명의 상대는 진짜로 보자마자 한번에 알 수 있구나]

 

한번에 보고 알았다.

이것이, 자신의 Ω라고.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본능이 외치고 있다. 세포 하나하나가 눈앞의 남자를 원했다.

게다가 냄새도 달랐다.

α인 오소마츠는 후각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했다. 어느 정도 냄새로 사람이 판별 되었다. 좋아하는 향과 싫어하는 향, 즉 궁합이었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이 운명이 발하는 냄새는, 비유하자면 바다의 과수원 속에 있는 것처럼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그렇다고 너무 달지도 않은.

한마디로 나타낸다면, 오소마츠가 너무도 좋아하는 향기였다.

 

의외였던 것은 예상외로 냉정하게 운명의 상대와 대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운명의 짝을 만나는 순간, 발정기의 스타트로 공개 얼레리꼴레리가 됐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오소마츠는 만약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순간이 다가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이야아, 전혀 반응 안 하네-]

[당연하잖아. 억제제 먹고 있고]

 

아하하, 하고 웃으며 최악인 말을 슬쩍 본인 앞에서 하면 카라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게다가 나, 결혼했고]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발언을 했다.

무심코, 하아아아아아!? 하고 고함을 지른 오소마츠였으나 본인 또한 얼마전에 혼인을 맺었던 것을 생각해냈다.

 

 

 

 

 

 

오늘도 오늘도, 마을의 가장 큰 길, 거기에 자리한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흥겨운 음악이 울리고 쾌활한 사람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카라는 거액의 계약이 잡힌 듯, 대롱모양으로 묶인 천을 몇 개나 팔에 안고 가게에서 마차로 몇 번이고 왕래했다.

상단의 다른 사람들도 다들 바빴다.

이 나라의 차기 왕에게 시집 온 것이 재의 나라의 공주님이라 이 상단의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 나라에 재의 나라에서 들여온 옷감으로 짠 옷이 유행하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일 것이다.

상단의 가게로 이뤄진 큰길가의 끝자락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소마츠와 눈이 마주친 카라는 눈썹을 살짝 내리고 반갑게 웃었다.

그것에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주면, 더욱 활짝 웃는 카라에 가슴 안쪽이 뜨거워진다.

 

카라는 가게 앞에 서서 다른 상인과 교환하는 일이 많았지만, 마찬가지로 거리 밖을 나가는 일도 많았다.

원자재가 채굴된 광산이나 물감의 원형이 되는 화초가 우거진 야산의 시찰.

그 외에도 장사와 관계없는 마을과 밭, 낙농지 등에서 말을 달리게 하는 모양이었다.

카라는 지금까지 고향인 재의 나라에서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여러 가지로 둘러보고 싶었다며 웃었다.

좋은 나라구나, 하고 웃었다.

그렇게 웃어줬을 뿐인데, 열심히 한 것에 보상 받는 기분이 들어 오소마츠는 기뻤다.

 

[, 로소 아냐! 또 카라를 만나러 온 건가?]

[, 그렇지~]

[뜨겁구만~~]

 

카라와 만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을 내서 성을 빠져나와 카라를 만난 지 벌써 한달째니, 그 동안 눈치가 보여 가게 일을 도와주기도 했고, 원래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인 오소는 상단의 멤버와는 상당히 친해져 있었다.

오소마츠와 카라의 눈빛 교환을 본 상단 멤버에 놀림당한 오소마츠는 가볍게 넘겼다.

이런 일도 이제 당연하다는 듯이 넘겼다.

 

참고로, 로소란 오소마츠의 가명이다.

역시 새로운 왕인 오소마츠가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었기에 비밀스럽게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반드시 로소라는 이름을 썼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었다. 어느새 로소는 이 마을의 인기인이 되어 있었다.

 

[로소!]

[카라! 일은?]

[, 지금은 휴식 시간이다]

 

그렇게 말하며 카라는 오소마츠 옆에 걸터앉았다.

처음 만났던 때와 변함없이 둘둘 감고 있는 파란 옷감이 더워보였다.

 

일년 중 대부분이 온난한 기후인 이 나라는,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는 기온이 상당히 올라간다.

오소마츠처럼 그늘에만 있으면 온화한 기후지만, 이제까지 뛰어다닌 카라의 천 사이로 보이는 하얀 피부는 땀으로 축축했다.

선탠을 마다할 카라는 노출되어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기에, 이렇게 가끔 보이는 흰 피부는 오소마츠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 로소! 이거 먹지 않을래? 손님한테 받았거든!]

 

허리에 차고 있던 가죽 부대를 꺼내 안을 뒤지던 카라는 원하던 것을 찾았는지 활짝 웃었다. 얼굴에 감정이 정말이지 잘 드러나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꺼낸 건 코를 자극하는 새콤달콤한 향기가 나는 붉게 익은 과일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니, 분명 혼례로 문호를 열면서 인근 다른 나라에서 몰려든 상인들이 들여온 것일 거다.

 

[헤에, 못 보던 과일이네. 그치만, 하나밖에 없잖아]

[반 가르면 되잖아?]

[에에~, 그럼 네 몫이 줄어들잖아. 괜찮아?]

[난 너랑 먹고 싶어!]

 

기다려라! 라며 의기양양하게 꺼낸 것은 접이식의 작은 칼이었다.

카라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르륵 껍질을 깎았다.

하얀 과육이 모습을 드러내자, 새콤한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과즙을 듬뿍 담은 부드러운 과육은 분명 매우 뭉개지기 쉬워보였다.

이를 증명하듯 과일은, 카라가 이렇게나 섬세한 손놀림으로 껍질을 벗겼지만, 과일을 쥔 손끝의 작은 힘으로도 짓눌러져 과즙이 카라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팔을 걷어붙인 카라의 하얗고 군살 없는 팔에 시원한 과즙이 흘러내리고, 그것을 핥으려 늘어난 혀의 붉은색이 강하게 오소마츠의 심장을 때렸다.

꿀꺽, 하고 메마른 침으로 목을 축였지만,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로소?]

[!!]

 

카라가 걱정스럽게 오소마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가까움에 놀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것을 쫓듯 카라가 따라온다.

가깝다.

아주 조금 거리를 줄이면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아 버릴 정도로.

 

[멍하니 있지 말라고. , 다 깎았다]

[-, . 고마워]

 

카라가 깎아 준 과일을 집는다.

부드러운 과육은 쉽게 이에 뭉그러져 입 안에 완숙한 과실의 단맛이 퍼졌다.

맛있다. 이번에 성에도 사들이자.

 

[그렇게 먹고 싶었다면, 두 개 받아둘 걸 그랬네]

[아니, 이걸로 됐어]

[그런가?]

 

카라도 하얀 과육에 이를 세웠다.

넘치는 과즙을 마시면서 츄릅, 하는 소리가 귀 안에 울렸다.

 

[그치만, 배가 고프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땀이 밴 하얀 피부를 타고 흐르는 달콤한 물방울.

그것을 핥는 붉은 혀가 눈 속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카라가 맨살을 숨기고 있어 다행이라고, 오소마츠는 깊이 생각했다.

처음 만났던 때에는 없던 걱정이 이미 오소마츠 안에서는 커져가고 있었다.

만약 카라가 탱크탑에 핫팬츠를 입은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분명 가슴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격정에 몸을 맡겨 버렸을 거다.

 

[..........배는, 차지 않아]

 

먹고 싶은 건 다른 것이었다.

 

 

 

 

 

 

 

 

이건 불륜이 되는 걸까.

차기 왕으로서, 시청 공무를 묵묵히 하면서 오소마츠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카라였다.

카라. 내 짝. 나의 운명.

하지만 그때마다 스쳐가는 건, 얼굴도 모르는 왕비의 존재였다.

두달 전에 열린 혼례에서 옆에 서있었을 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공주님.

 

(불쌍한 공주님. 너의 남편은 다른 남자에게 러브러브 중입니다)

 

흰 드레스와 은빛 베일. 쭉 뻗은 등줄기가 인상적인.

하지만 그것뿐이다.

이 나라에서 Ω인 공주라는 것만으로 뽑힌 상대다. 오소마츠와 공주 사이에는 요만큼의 사랑도 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이라면 있을지도 모른다. 불쌍한 사람이라는, 연민의 정이라면.

오소마츠의 운명의 짝은 카라.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 그 공주에게도 오소마츠가 아닌 달리 본래 짝을 지어야할 존재가 있다는 소리다.

짝이라는 건 처음 만난 순간 알 수 있다.

운명과 만날 수 없는 αΩ도 모두 똑같이 불쌍하다.

그럴게, 그들은 혹은 그녀들은- 자신의 분신과 만난 기쁨을 모르니까.

하지만 동시에 몰랐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도 생각한다.

왜냐면 카라는 이미 오소마츠가 모르는 인간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카라는 행상의 일 때문에 이 나라에 왔다고 했지만, 사실은 좀 다른 이유다.

그는 이 나라에 있는 α에게 시집을 온 것이라고, 몇 번째의 밀회에서 사실을 털어놨다.

카라의 집은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집안이었지만, 재정이 어려운 자신이 시집을 가는 것으로 집뿐 아니라 통치하는 지역도 구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상대는 이 나라의 이름 있는 집안으로 나이도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 α의 남자라고 했다.

Ω가 낳은 아이는 대체로 α이기 때문에 카라의 집안도 고려되어 혼수가 정해진 모양이다.

그러니 Ω라서 다행이야, 라고 웃는 카라마츠에 오소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되도록 맨살을 드러내지 않도록 둘둘 감은 푸른 천은 햇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볕에 하얀 피부가 타지 않도록.

가끔 보이는 손목도 발목도 가늘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다.

카라는 먹는 것을 좋아하며, 무엇이든 맛있게 먹지만 그 양이 적었다.

많이 먹으면 먹은 만큼 커버리니까. 근육이 붙어 튼튼한 사나이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결혼식은 올렸지만 아직 제대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거든. 하지만 상대는 분명 평범한 여자를 좋아하겠지. 나는 Ω지만, 여자가 아니니까 부드럽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희고 가냘픈 몸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말한 카라의 옆모습이 어딘가 쓸쓸해보여 오소마츠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아. 그대로의 네가 좋아, 카라]

 

카라는 조금 놀란 듯 푸른빛의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의 운명이, 너라서 다행이다]

 

그렇게 말한 카라를 오소마츠는 껴안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있다, 지금 여기서 끌어안는다면 오소마츠에게도 카라에게도 좋지 않다는 걸.

 

나의 Ω. 나의 짝.

절대로 내 것이 되지 않을, 나의 운명.

 

 

 

 

 

 

 

 

[왕자]

 

 

 

측근의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다.

조금만 생각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깊게 생각에 잠겨있었던 모양이다.

서류를 뒤적이던 손도 사인하던 펜도 멈춰있고, 서류 뭉치는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상당히 늘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아까부터 손이 멈춰있는데, 뭔가 상태라도 안 좋으십니까?]

[아니, 그냥 잠깐 딴 생각하고 있었어~~ 괜찮아 괜찮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것도 부탁드립니다]

[우아악!]

 

은근 무례하게 느껴지는 말 뒤로, 쿵 하는 큰소리와 동시에 서류 뭉치가 쌓였다.

잘도 안 쓰러지네, 라고 쓸데없는 감상을 한 것은 분명 이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서겠지.

 

[잠깐마안, 쵸로짱. 이렇게 일이 많다니 말도 안 된다구우~ 끝나지 않잖아~~]

 

궁시렁거리며 떼를 쓰자,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혀 차는 소리.

 

[당신이 최근 성을 나가서 마을로 내려가는 바람에 일이 많아져서 서류도 쌓인 탓이잖습니까]

[.....어라라, 들켰어?]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감탄스러운 머리로군요]

[...........쵸로마츠 너무해-]

 

오소마츠의 측근인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유모의 친자식이다. 우연히도 같은 날에 태어나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젖 형제이기도 한 그는 태어나자마자 친구였다.

북쪽 변방에 있을 때도, 왕도에 돌아왔을 때도 그는 언제나 오소마츠 옆에서 오소마츠를 섬기며, 오소마츠를 떠받들었다.

신분 차이 등을 의식하지 않았던 시절의 흔적, 차기 왕과 그 측근이라는 입장이 된 지금도 아직 둘만의 집무실과 사석에서는 친구 혹은 형제-처럼 대하게 되었다.

 

[결혼 초부터, 이쪽의 잘못으로 이혼이라던가 웃기지도 않으니까 그만두세요]

 

후우, 하고 지친 듯 어이없는 한숨을 쏟는 그의 말에, - 알고있었구나. 라고 오소마츠는 생각했다. 밀정인지 뭔지, 거리로 내려갈 때마다 희미하게 기미는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소마츠가 시찰이라며 거리로 내려갈 때마다 따라붙는 옵션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디까지 조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상태라면 카라의 존재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Ω의 남자. , 손만 대지 않으면 아직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만, 위험해지기 전에 그만 만나도록 하세요]

 

생각하는 걸 꿰뚫는 듯한 타이밍에 못을 박는다.

긍정도 부정도 오소마츠는 하지 않는다. 불가능했다.

나라의 일,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이제 카라를 만나지 않는 게 좋다는 건 오소마츠라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허용할지 어떨지는 다른 얘기였다.

아직은 어떤 답변도 내리고 싶지 않다.

입을 꽉 다물고서 새로운 서류에 손을 뻗은 오소마츠의 모습에 쵸로마츠는 기가 찬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 네가 여기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지금은 일단 그건 됐고]

 

책상의 빈 공간에 소리 없이 놓인 것은 따뜻한 김을 모락모락 내는 차였다.

평소에는 찬 음료를 선호하는 오소마츠지만, 조금 풀 죽은 지금은 측근인 이 남자의 배려가 고맙다.

 

[네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 힘들어했는지, 나는 알아. 알고 있기에 이 중요한 시기에 어설픈 짓은 하고 싶지 않아]

 

그런 건 알고 있다고.

쵸로마츠가 내린 차는 언제나 맛있다. 까탈스러운 그가 싼 찻잎으로도 맛있게 마실 수 있도록 시행착오한 끝에 얻은 맛이다.

 

――미래의 왕에게는, 맛있는 걸 먹이고 싶어!

어린 시절 그의 말을 떠올리며 오소마츠는 씁쓸한 기분을 꿀꺽 삼키려 차를 마셨다.

적당히 식은 홍차는 목에 열을 남기지 않고, 은은한 향기만을 남기며 배로 흘러간다.

어째설까. 지금 까닭없이 카라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오소마츠는 현 국왕의 13번째 아들이다.

덧붙여서, 누나까지 포함하면 20번째 아이에 해당한다. 동생도 포함하면 오소마츠의 형제는 서른 몇 명이나 되지만 자세한 숫자는 안타깝게도 기억하지 못했다.

본래라면 왕위 계승권은 있어도 실제로 계승하는 일은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 오소마츠는 왕위 첫 번째 계승권을 가진 왕자로서, 차기 왕의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어째서냐고?

간단한 얘기다.

이미 오소마츠 이외에 왕위 계승권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시집을 가고, 어떤 이는 계승권을 포기하고 서민이 되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미 이 세계에 없다.

죽은 것이다.

 

오소마츠의 아버지인 현 국왕은 매우 색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지금은 중병을 앓아 그런 짓도 하지 않게 된지 오래지만, 왕으로서 앞에 나와 *정무에 힘쓰고 있을 때는, 밤의 공무에도 정력적으로 힘을 쓰곤 했다.

(*정무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

*정비 한명과, 정비를 제외한 왕비가 열명. 첩이 십여명. 그 이외에 창녀와 시녀, 동네 처녀에 이르기까지 맘에 드는 여자는 꼭 건드렸다.

(*정비 왕의 본처)

번식력이 강한 α여서 대부분의 여성 가끔 Ω인 남자도 있었지만- 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왕으로서는 우수하지만, 희대의 색정광. 그것이 오소마츠의 아버지였다.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열명의 왕비 중 가장 지위가 낮은 지방 귀족의 딸이었다.

북쪽이 고향인 사람답게 차가워 보이는 흰 살결과, 빛을 모은 듯이 빛나는 금발, 전 세계에 있는 붉은색의 아름다운 부분만 추출한 듯한 홍옥의 눈동자 오소마츠의 눈동자 색은 엄마를 닮았다 가 왕을 사로잡았고, 12살의 나이에 시집을 가 오소마츠를 품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마음에 둔 상대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시종인 청년 α로 어머니의 운명의 상대였다.

그런 상대와 억지로 떨어져 억지로 처음 보는 남자에게 안겨져 원치 않는 목숨을 모체에 품은 어머니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오소마츠를 낳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당시 *총비를 잃은 왕은, 매우 슬퍼했다는 것 같다――진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총비 임금의 총애를 받는 여자를 이르는 말)

오소마츠가 태어났을 무렵엔 이미 아버지의 병세는 악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때문에 차기 왕을 정하고 나라를 다스릴 이가 없는 상태였고, 정비에게는 왕자는 없고 공주만 있다는 것이 싸움의 불씨가 되었다.

9명으로 줄어든 왕비.

그 왕비가 낳은 왕자만 해도 오소마츠를 포함해 6. 첨과 불의의 태생의 왕자도 포함하면 더 많았다.

차기 왕의 자리를 놓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답은 쉽다.

피로 피를 씻듯이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싸움이 벌어졌다.

많은 형과 동생이 죽었다.

 

오소마츠를 어머니의 생가인 북방 영토로 보내진 것은 오소마츠가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많던 형제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고, 오소마츠도 식사에 담긴 독으로 사경을 헤맨 뒤였다.

어린 왕자의 목숨을 보장하기 위해서거나, 지나친 다툼 끝에 왕가의 피를 말리기 싫어서거나.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오소마츠는 누가 내렸는지 모를 이 결단으로 목숨을 건졌다.

틀림없이 그대로 성에 머물렀다면 두 손으로 나이를 세기도 전에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오소마츠는 열다섯의 나이까지 북쪽 땅에서 자랐다.

짧은 여름에는 말이나 소를 키우며 밭을 갈고, 길고 긴 겨울에는 광산에서 캔 원석을 닦았다.

크나큰 성과와는 달리 작은 집에서 살았다.

거기에 있던 것은 성에서 북쪽 땅으로 그를 찾아온 유모와 그녀의 아들 쵸로마츠,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보살피던 할멈과―― 어머니의 운명인 청년이 있었다.

오소마츠는 처음 청년과 만났을 때에 그는 아직 어른의 일은 조금도 모를 때였지만, 그의 복잡한 표정이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머리 한 구석에 선하다.

증오와 분노와 슬픔과, 그리고 넘치는 사랑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오소마츠는 사랑한 소녀와 그 소녀를 빼앗아 유린한 증오스런 남자의 아들이다.

어린 오소마츠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지금은 그의 마음을 잘 안다.

 

얼마나 미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지만 청년의 굉장한 점은 그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것은 초면인 그 순간뿐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그런 기색 등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교육 담당자로서 오소마츠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북쪽 땅에서의 생활.

귀족으로서의 예의범절.

무인으로서의 싸움 방식.

왕족으로서의 지식.

끝은 남자로서 세속적인 이야기까지.

 

청년에게서 배운 것이 많아, 오소마츠는 그를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당장 도움이 되는 것부터 그렇지 않은 것, 왕으로서 소중한 것이나 하찮은 일 등 다양한 지식은 아직도 오소마츠 안에서 숨쉬고 있다.

북쪽 땅에서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오소마츠는 분명, 남의 눈을 피하면서까지 성으로 내려오지도 못했을 거고, 그렇지 않았다면 국민의 생활이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우수한 스승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가족의 온기를 모르는 오소마츠에게 있어서, 스승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열다섯의 해를 맞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몹시 추운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북쪽 땅에서 십년을 보낸 오소마츠였지만 계승권은 반납하지 않았다. 성에서 지내지 않았어도 명목상 왕자인 그는 그 지위가 어디든 왕의 계승권을 가진 왕가의 남자였다.

 

한편 왕위를 건 형제 간 다툼은 더욱 격해져갔다.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첫 왕자가 암살당하고 셋째, 넷째 왕자도 나란히 내란으로 죽었다.

병상으로 쓰러진 국왕도 마찬가지로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히 살아 있으니 삶에 대한 집착은 상당한 걸로 보인다.

 

북쪽 땅에까지 소문이 흘러들어오고 오소마츠가 나날을 보내는 작은 집에도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소마츠는 13번째 왕자였지만, 왕비가 낳은 아이가 우선시 된다는 계승권에 따르면 그의 권위는 여섯 번째였다.

 

[미래의 왕이니까 제대로 하라고!]

[우리 왕님은 언제까지나 아이로군요]

 

쵸로마츠나 할멈은 그렇게 가끔 오소마츠를 왕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그냥 말일 뿐이랄까, 농담이 섞인 것으로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소마츠가 왕위에 애착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알고 있고, 피투성이의 경쟁에 뛰어든 자신들의 주인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우수한 α였다.

스승에게 철저히 배운 무술 솜씨는 상당했고, 해박한 지식으로 머리 회전도 빨랐다. 성격도 밝아 사람을 잘 따르고, 어디에 있어도 자연스레 사람이 주변에 모이는 카리스마는 누가 봐도 왕에 걸맞아 보였다.

언젠가 이렇게 될 것은 이미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오소마츠의 따스하고 온화한 세계는 그날 갑자기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많은 *영민이 죽고 동네에 불이 나고 많지도 않은 자산을 빼앗겼다.

(*영민 영주 지배하에 있는 백성)

몇 번째인지 모를 왕자의 수병이 쳐들어온 것인지 어쩐건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 형제 싸움에 많은 사람을 한번에 잃어버린 것은 분명했다.

상냥했던 유모도 따뜻한 할멈도 강하고 믿음직한 스승님도 오소마츠를 감싸다 죽었다.

오소마츠의 팔 안에서 조용히 호흡을 멎어가는 스승님이 마지막으로 불렀던 것은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겨우 만났다는 듯이, 사랑스러운 듯이 눈물을 흘린 스승님은 어쩌면 계속 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αΩ의 업의 깊이를 깨달았다.

운명이란 것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소마츠를 부추긴 건 타오르는 불길 같은 분노였다.

그 뒤는 순식간이었다.

살아남은 영민들을 모아 성으로 달려가 왕위를 둘러싼 싸움에 참가했다.

절반밖에 연계가 없었지만, 분명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를 이 손으로, 오소마츠는 길고 긴 왕위를 둘러싼 내란을 거두어 보였다.

 

피를 토할 정도로 살을 깎아내린 다툼 후, 시작된 것은 군주제도 개혁이었다.

모든 것을 왕족과 그에 준하는 귀족이 정하는 게 아니라, 각지의 영민이 뽑은 대표자를 두고, 신분에 관계없이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길과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국내외를 불문하고 사람이나 물건이 오갈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αΩ처럼 자기 의사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에 부조리를 받지 않도록 지원 제도도 확립했다.

성인까지 몇 개월, 그때까지 정식으로 왕위에 오를 수는 없지만, 오소마츠는 명실상부한 차기 왕으로 이 나라를 바꾸려고 힘쓰고 있다.

 

두 번 다시는, 어머니처럼 우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두 번 다시는, 스승님처럼 상처 받는 사람이 없도록.

두 번 다시는, 유모나 할멈처럼 죽는 사람이 없도록.

 

이웃 나라인 주의 나라의 Ω인 공주님과의 혼인도 전적으로 그 때문이다.

왕인 자신이 Ω인 공주를 얻어 존중하고 소중히 다루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도록 만들어 의식 개혁을 노린 것이다.

타국의 공주님을 정비로 맞은 것으로 국교의 활성화, 무역을 간소화함으로써 국고의 이윤도 노릴 수 있다.

 

나라가 좋아지면 국민의 생활도 윤택해진다.

생활이 넉넉해지면, 일부러 몸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싸움을 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정한 정략결혼.

사랑은 없어도 흥미를 갖지 않아도, 적어도 소중히 대하자고 생각했다.

아버지처럼 많은 왕비를 갖지 않고, 한명의 왕비와 몇 명의 애들만으로 좋았다.

 

색에 미치지 말자.

αΩ에 갈등하지 말자.

운명에, 놀아나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슨 연유인지 오소마츠는 자신의 운명을 만나고 말았다.

카라.

집안 때문에 α에게 시집왔다는, 오소마츠의 짝.

오소마츠는 차기 왕이다.

이 나라에서 현재 오소마츠보다 강고한 지위를 가진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소마츠가 한마디, 이는 내 짝이고 나의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누구도 그를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오소마츠는 아버지와 같아진다.

어머니를 상처 주고 스승님을 절망에 빠뜨린 아버지.

분명 어머니 외에도 그 때문에 운 여성은 많을 것이다.

지금은 죽어 없는 형제들도 틀림없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었을 것이다.

카라를 왕비로서 성에 들여도, 일부다처제인 왕가는 별 문제 없이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재의 나라의 공주님은 분명 상처받을 것이다.

 

많은 희생 위에 지금이 성립되었다는 자각이 있는 오소마츠는, 더 이상 누군가를 희생하기도 상처주기도 싫었다.

 

 

 

 

 

 

이제 혼례를 올린 지 석달이 지나려 하고 있다.

만남을 금하고 있는 기간이 끝에 임박하면서 성 안의 분위기도 어딘가 들뜬 듯했다.

왕가에 후계자가 늘어나는 일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으면 왕가의 혈통은 끊긴다. 그것은 역사가 있는 이 나라의 끝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번 내란에 의해서 피가 끊기기 직전까지 가고 말았던 이 나라에 오소마츠의 혼인과 왕비의 임신은 기대가 되는 일임이 당연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오소마츠는 초조함과 비슷한 짜증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평소처럼 활기 넘치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오소마츠는 큰길을 걷고 있었다.

이렇게 밖을 나다니는 일은 지금까지 묵인되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오소마츠가 왕자였다는 이유가 컸다.

 

이 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는 것은, 왕자인 오소마츠였다. 현왕은 병상에 누워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러나 아직 왕자의 입장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현왕이 생존하고 있음과 오소마츠가 아직 성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1년도 되지 않아 성년의 날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날이 대관식이 된다.

대대적으로 고지되지는 않았지만, 국민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비교적 자유로운 신분이 왕자인 그는, 시찰이라는 이름의 이 짓에 따라붙는 이도 없어 남몰래 지켜보는 이가 있었지만 성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지만, 대관하면 그럴 수 없게 된다.

오소마츠의 검 솜씨는 누구나 잘 알고있지만, 그게 왕을 내버려둘 이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 밖으로 쉽게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카라도 이제 볼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언제 봐도 변함없는 미소를 지으며 접객에 힘쓰는 카라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던 오소마츠는 심장이 꽉하고 조이는 것을 느꼈다.

 

[로소! 오늘도 왔구나!]

[안녕, 카라. 오늘도 일하고 있네]

[너도 일하라고, 니트]

[넘해-]

 

로소는 직업 미상의 방탕아라는 설정이다.

카라와 만나기 전부터 마을에 내려오면 가끔 이곳저곳에서 심부름 등을 하며 푼돈을 벌어들였다.

참고로 자주 갔던 곳은 경마장. 첫 번째 계승권을 얻은 후 오소마츠가 세웠다.

 

[, 맞아. 오늘 밤에 한가한가? 당연히 한가하겠지만]

[, 뭐야 그 단정. 나도 예정 같은 거 있다구~!]

[바쁜 건가?]

[아니, 한가하지만. ? 무슨 일이라도 있어?]

[]

 

카라가 수줍게 웃는다.

오소마츠가 좋아하는 웃음이다.

 

[오늘밤, 축제가 있거든. ........가지 않겠는가? 같이]

 

수줍음으로 얼룩진 뺨.

홀린 듯이 열이 오른 자신의 심장을 옷 위로 움켜쥔 오소마츠는,

 

[..........]

 

하고 작게 대답을 돌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두컴컴한 밤의 장막이 내린 거리를 황황히 타는 불빛이 밝히고 있다.

낮과는 또 다른 정취의 흥겨운 음악이 들리고, 템포에 맞춰 북소리가 울린다.

횃불의 빛에 비친 행인들은 다들 즐겁게 어울렸다.

향냄새와 술 냄새, 노점에서 본 적도 없는 음식이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3개월 간 계속되던 축제의 소란은 오늘밤으로 끝이 난다.

이 나라의 차기 왕이 재의 나라의 공주님과 혼인.

그 일이 있은 지 딱 석달이 지나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는 기간은 오늘밤으로 끝나고 내일이면 겨우 두 왕자님과 공주님이 만날 것이다. 그리고 몸을 섞어 그 피를 다음 세대로 이어간다.

그것을 축하하는 축제의 밤이다.

 

(자신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제에 참가하다니, 역시 좀 이상하네)

 

오소마츠는 언제나의 장소에서 카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라가 있는 상단이 평소 가게를 열던 길가의 카라와 만났던 장소.

축제 열기에 달아올랐는지, 다들 즐겁게 뺨을 물들이고서 웃고 있다.

축제를 즐기는 이유라고 하더라도 이만한 사람들이 오소마츠의 혼인을 축하해 주고 있는 게 솔직히 기쁘게 느껴졌다.

카라는 아직 오지 않는다.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고 낮에 말했기에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원래 마음이 느긋한 성격인 오소마츠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언제나의 장소에 걸터앉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열기, 냄새.

모두가 평화를 나타내는 듯하다.

이것을 부술 수는 없다.

스읍,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 최근 맡아온 가장 익숙한 냄새가 난다.

두 번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오소마츠는 얼굴을 들려다 멈춘다.

 

역시나, 라고 할까, 눈앞에 카라가 서있다.

그러나 항상 둘둘 감고 있는 파란색의 천은 감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나 파란 천에 가려져서 보이기 힘든 눈동자는, 지금 훤히 드러나 횃불의 불꽃에 반사되어 파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카라, .........]

[아아]

 

지금은 밤이니까, 탈 염려도 없으니까 말야.

아무것도 아닌 듯 선뜩 대답하는 녀석에 오소마츠는 반대로 할 말을 잃었다.

 

몰랐다.

카라의 머리가 푸른빛을 띤 긴 생머리라는 것도. 두터운 귓불도. 날카로운 턱라인도.

목젖의 형태도. 의외로 탄탄한 어깨 라인도.

드러난 목덜미가 새하얀 것도.

 

여기서 한시도 눈을 떼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본능을 이성으로 억지로 굴복시킨 오소마츠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의식하고 허리에 손을 올렸다.

 

[, 늦어~ 기다리다 지쳤다고오-]

[, 미안하다! 조금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입술을 내밀고 그렇게 말하며 허둥대는 카라는 또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언제나 두르고 있던 천이 없어 표정도 행동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강아지 같은 모습에 오소마츠의 심장은 다시 괴로워진다.

싫은 괴로움은 아니었다.

 

[기다리게 한 사과의 의미로 뭔가 쏘겠다! 로소, 뭐가 먹고 싶은가?]

[~일 비싼 거!]

[뭔가, 그게!]

 

즐겁게 카라가 웃는다. 즐거운 밤이 될 것 같다며, 오소마츠도 따라 웃었다.

 

 

 

 

저게 보고 싶어, 이게 먹고 싶어, 라며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면 녀석의 소매를 끌고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보고 다녔다.

망설이는 카라를 오늘 정도는 괜찮잖아, 라며 설득하여 닥치는 대로 마구 사먹은 결과, 배는 산처럼 커져 탱탱해졌다.

이렇게 먹은 건 오랜만이라던 카라는, 매콤달콤한 양념장이 발린 소꼬치를 입맛을 쩝쩝 다시며 행복한 얼굴로 먹었다.

추의 나라가 요리로 유명했기에 맛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분명 옆에서 맛있게 먹는 이 녀석의 탓도 있다고, 오소마츠는 생각했다.

무엇을 먹어도 카라는 맛있어, 맛있어 하며 기뻐했다.

손도 입 주변도 끈적끈적 걸신이 들린 아이 같아서.

못 말리는 녀석이네, 라고 생각하며 손수건을 내밀면 수줍게 뺨을 물들이는 그 모습은 어딘가 소녀다웠다.

노점에는 음식점만이 아니라 잡화상점도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뭔가 마음에 드는 거라고 있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걸음도 멈췄던지, 의아해하던 카라가 오소마츠가 어떤 가게를 응시하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물어왔다.

같이 가게를 들여다보면, 아아, 납득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너희 가게?]

[그렇다. 뭐어, 원자재는 너희 나라거지만]

 

나란히 줄지어 있는 건, 섬세하게 가공된 장신구였다.

, , 백금 등이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가운데, 어린 아이들을 위한 값싼 유리구슬이 박힌 장난감 같은 것도 있었다.

광산이 많아 금도 은도 보석도 많이 나오지만, 가공 기술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훌륭한 세공품이었다.

 

[예쁘네]

[그렇지. 우리나라의 자랑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가늘게 뜬 푸른 눈동자가 액세서리의 빛을 받아 더욱 반짝였다.

아아, 예쁘다.

 

[아저씨, 이거 줘]

[오냐!]

 

가게 앞을 지나면서부터 줄곧 오소마츠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을 주인에게 내민다.

간단히 포장하려는 것을 막고, 요금만 지불하고 물건을 받았다.

 

[? 뭔가 산건가?]

[-]

[흐응......그럼 나도, 이거. 주세요]

 

휙하고 순식간에 계산을 끝낸 오소마츠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이 돌아오지 않자 카라는 조금 못마땅했는지, 보복인 양 손에 쥔 물건을 보이지 않으려 재빨리 계산을 끝냈다.

뭘 샀는지 묻자, 비밀이라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댈 뿐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 행동만으로도 너무 귀여워 순식간에 마음이 녹았다.

 

가게에서 나와 다시 노점을 돌았다.

잡화점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술을 마시고 고기도 먹고 단것도 먹었다.

그리고 광장으로 가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사교댄스는 대강 배웠을 텐데도, 손을 맞잡은 카라는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 모양인지 몇 번이나 발을 밟곤 했다.

그럼에도 점점 익숙해져, 둘이서 적당히 리듬에 맞춰 움직였다.

하나, , 빙그르르 턴.

웃고, 놀라고, 화내고, 다시 웃고.

즐거운 밤이었다.

터질 듯한 그의 미소도, 처음 잡아본 그 손의 온기도.

분명 평생 잊히지 않겠지.

 

 

 

 

 

 

 

 

 

 

[카라, 이쪽. 발 밑 조심하고]

 

거리에서 가까운 광산으로 카라를 데리고 왔다.

광산이라고 해도 성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경관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대부분 채굴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많은 나무들이, 두 사람의 모습을 느긋이 지켜보고 있었다.

정비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오소마츠는 성큼성큼 무성한 잎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뒤에서 따라오는 카라가 지나가기 쉽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기, 어디까지 가는 건가?]

 

당황한 듯한 카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조금 술을 마신 탓일까. 그렇게 긴 거리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것도 아닌데 호흡이 조금 가빠졌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완만한 산길을 오르는 두 사람 사이로 대화가 아닌 축제의 소란이 바람을 타고 멀리서 울리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말대로 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얼마 되지 않는 곳이었다.

환하게 펼쳐진 그곳은 광장처럼 넓고 높기도 높아, 마을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

 

축제의 날이어서 성을 중심으로 수많은 횃불의 불꽃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포근한 오렌지 색이 두둥실 떠다니며 흔들거리는 모습은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위를 보면, 만천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시커먼 천 위에 별사탕을 흩뿌린 듯한 수많은 별들 사이에 환히 빛나는 보름달은 하늘 또한 오늘의 경사를 축복하는 듯했다.

입을 떡 벌린 채 그 경치를 바라보던 카라의 뺨이 서서히 서서히 장밋빛으로 물들어 갔다.

파란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모은다.

무심코 흘러나온 목소리는, 마치 탄성과도 같은 소리였다.

 

[...........굉장해]

[그치~? 여기라면 마을도 성도 전~부 볼 수 있다고]

 

오소마츠가 처음 이곳을 발견한 것은 변방에서 왕도로 찾아와 우격다짐으로 내란을 가라앉힌 바로 뒤였다.

정식으로 왕위 첫 번째 계승권을 얻어 앞으로 여러 가지로 살려야 하는 것이 산처럼 쌓여있었고, 오소마츠는 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그날 처음으로 마을을 둘러봤다. 무너진 집, 거칠어진 밭, 살 기력을 잃은 듯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

그때 겨우 오소마츠는 자기가 짊어지고 있는 짐의 무거움을 깨달았다.

내가 해내지 못한다면. 내가. 내가!

그리고 달아났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달렸는지, 무얼 봤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오소마츠는 도망쳤다.

국민으로부터.

책임에서.

형제를 죽여버린, 자신이 저지른 죄로부터.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말이야.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청 힘들었던 때였거든]

 

마을을 지나 산을 올랐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할멈이, 스승님이 보고 싶었다. 혼자는 싫었다.

 

[저기 나무 그늘에 숨어서 울었어. 진심의 진심을 다해 통곡했어]

[진짠가]

[그렇다고~, 정말 엄청 울어서 말야. 나중에는 눈이 퉁퉁 부어서 완전 못생겨져 있었다구~]

[후후, 그건 좀 보고 싶을지도]

[안 보여줄 거거든, 그런 거]

 

나무 그늘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아무도 없으니 그냥 큰소리로 울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 안의 긍지가 그것을 막아섰다.

 

[여기에 올라왔을 때는 오전 중이었을텐데, 어느새 어두워져있어서 말야~ 나 얼마나 운 거야~ 하고 놀랐다니까. 그치만]

 

너무 울어 어질어질한 머리를 안고 천천히 고개를 들면, 주위는 깜깜해져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렇게 흐르던 눈물도 단번에 쏙 들어갔다.

울고 울어서 속이 좀 시원해진 탓인지 머리는 냉정을 되찾았고, 이건 좀 위험한 걸, 이라며 급히 일어서는 순간.

 

[이 경치를 봤구나]

 

그때가 몇시였는지, 그날의 오소마츠는 몰랐지만. 달의 위치를 보고, 꽤나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대부분의 인간이 잠들었을 시간대이다. 그런데.

 

성은 황황히 불이 켜져있고 마을에도 횃불에서 나온 흔들거리는 불꽃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드문드문 민가에 불이 켜지고, 가는 초승달이 희미한 빛을 비추는 아주 밝은 밤이었다.

 

오소마츠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따스한 빛이었다.

자신이 앞으로 지킬 나라. 지켜야 하는 나라. 지키고 싶은 나라.

이제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아마도 이때 오소마츠는 처음으로 자신의 책임도 죄도 기대도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 뒤 긴장이 풀린 오소마츠는 그 자리에 홀로 잠이 들었다.

이미 밤도 늦었고, 하산을 내일 하자고 생각하면서.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밤에 일렁이던 불꽃들은 오소마츠를 찾던 수색대의 불길이었던 모양이다. 유괴니 암살이니 성안이 소란스런 가운데, 태연한 척하던 자신의 측근이 그날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는 건 훗날 메이드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 뒤로, 뭔가 있을 때마다 여기에 왔어. 뭔가 힘을 얻는 듯한 기분이랄까]

[알 것 같아]

 

부드럽게 웃으며 카라가 스윽, 오른팔을 들었다.

그러고는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을 가리키며,

 

[저 빛이 보이는가? 저건 재의 나라의 부두에 세워진 등대의 불빛이다. 어두운 바다에서도 제대로 항구로 돌아가도록 일년 내내 꺼지지 않고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그리운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의 상냥한 말투는 마치 잠 못 이루는 밤의 자장가 같았다.

 

[그 등대에서 보는 바다는, 정말 아름다워서 말이야.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거기에 가서 울곤 했다. 맑은 날에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모르게 될 정도로 아름다워서]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군.

작고 작은 속삭임은 맥없이 스러졌다. 오른팔을 들고 있을 기운조차 없게 된 걸까, 축 힘없이 내려간 팔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오소마츠는 알아챘다.

카라가,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오소마츠의 진의를 알아챘음을.

카라 또한 오소마츠와 같은 것을 전하려 한다는 것을.

 

[카라,]

 

무심코 이름을 불렀다.

카라가 오소마츠를 본다. 거의 키 차이가 없어 같은 위치에서 마주한 눈빛.

카라는 울고 있었다.

 

[이제 만날 수 없다]

 

뚝뚝, 굵은 물방울이 턱을 타고 흘렀다.

물기를 띤 푸른 눈동자는 마치 조용한 바다 같아서, 이런 때에도 아름다웠다.

 

[결혼 상대를 만나게 됐다. 지금까지처럼 자유롭게 나다니는 것도 이제 할 수 없어. 그러니 이제 볼 수 없다]

 

가지 말라고 외치면 편할 텐데.

가지 말라고 하면, 얼마나.

 

 

하지만 오소마츠는 세게 주먹을 쥐어 그 충동을 억눌렀다.

손바닥에 손톱이 깊게 파고들고, 시큰한 통증이 전해졌다.

미간에도 힘을 주어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참았다.

 

[.............나도]

 

눈물 대신 떨어뜨린 그 목소리는 작고 가냘팠다.

아아, 언제나 이 애 앞에서는 밝고 멋있는 카리스마 레전드였는데.

 

[나도, 그걸, 전하려 왔어]

[그래]

[]

 

억지로 웃어보였다.

눈은 웃지 않고 입가만 올라간 얼굴은 얼마나 꼴불견인 웃음일까.

평소처럼 웃지 않으면.

평소처럼 웃으면서.

웃으면서 고맙다고, 잘있으라고, 건강하라고, 행복하라고.

웃으면서 말하지 않으면.

 

[―――――으읏]

 

말할 수가.

없는데.

 

그것은 충동이었다,

의지가 없고. 이성도 없는. 그저 본능대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충동.

충동적으로 카라의 몸을 껴안았다.

꿈속에서, 망상 속에서 수차례 해왔던 것을,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해냈다.

분명한 살결의 감촉.

따스한 체온에 꿈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충족감을 느꼈다.

 

꼭 붙어버린 몸.

하나가 된 가슴 속, 카라의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같은 소리로, 같은 리듬으로, 강하고 강하게 오소마츠의 가슴을 두드렸다.

문득 그날의 할멈의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 당신이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와 만났을 때, 그 답을 알게 될 거랍니다.

 

아아, 아아.

심장이 하나밖에 없는 이유를, 지금 깨달았다.

내 심장은, 또 하나의 심장은, 부족한 심장은.

 

 

여기에.

 

 

이 팔 안에 감싸고 있는 이 사람 안에.

카라 안에 있다.

 

 

오소마츠는 북받치는 격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카라의 어깻죽지의 옷 색을 진하게 바꿨다.

오소마츠 또한 목덜미에 축축한 감촉을 느꼈다. 카라도 울고 있다.

카라의 향기로 온몸을 채우려는 듯, 오소마츠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흐릿한 울음소리를 흘리는 카라의, 드러난 하얀 목덜미가, 지금은 열에 달아올라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입술을 대었다.

하나, , 입술을 떼어내면, 그 때마다, 하나, , 새하얀 목덜미에 꽃이 피었다.

본능이 외쳤다.

이건 내 것이라고. 내 짝이라고. 나의 Ω라고.

 

(누구에게도)

 

누구에게도, 줄 수 없어!

목덜미를 강하게 강하게 빨아올리면 그곳에 하나, , 자국이 남고, 오소마츠는 뾰족해진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물어줘, 로소]

 

작고 작은 속삭임을, 받아들였다.

부드러운 살의 감촉. 약간의 땀의 맛.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카라의 냄새.

본능에 흔들리는 와중에, 작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오소마츠의 이성을 두들겨 깨웠다.

 

[물어줘. 로소의 것으로 만들어줘. 다른 사람의 것은 되고 싶지 않아. 로소의 옆에 있게 해줘.....부탁이야, 로소......]

 

덜덜 떨리는 카라의 팔이, 의지하듯 매달리며 오소마츠의 등을 끌어안았다.

흐느낌에 듣기 힘든 말을 하던 카라는 울면서 되뇌었다. 부르고 있었다.

로소 .

 

부드러운 살에, 아주 살짝 파고든 이가 떨리고 있었다.

벌어진 입 여기저기서 흘러넘치는 침이 카라의 목덜미를 더럽혔다.

온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땀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이대로, 턱에 힘을 주어 목덜미에 잇자국을 남겨버리고 싶다.

목에 자국을 남긴다는 건, 짝이 성립된다는 것.

카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물어뜯으라고, 본능이 외친다.

물어뜯어 흔적을 남기라고, 이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외친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꽉 눈을 감았다.

 

[로소]

 

다시 눈을 떴을 때에 눈앞에 보이는 건, 놀라 눈을 크게 뜬 카라의 얼굴이었다.

망연히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는 그 얼굴은,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미아 같아서.

눈물로 마구 흐트러진 그 얼굴은, 어째선지 너무도 아름다웠다.

 

[미안, 카라. 나 너를, 물 수 없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카라의 어깨를 붙잡고, 이성의 뜻대로 자신에게서 카라를 떼어 낸 오소마츠의 손은 재차 눈앞의 몸을 끌어안으려 했다.

그것에 맞서려 버티는 팔은 부르르 떨리고, 어깨를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어깨에 손끝이 파고든다.

분명 아플 텐데도, 카라는 별말이 없다.

그저 멍하니,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짝이 된다면, 아마 언젠가 분명 후회할 거야. 나에게도, 카라에게도 할 일이 있었을 텐데라고. 후회할테니까,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본능에 맡기고, 감정에 맡기고. 그걸로 만사 오케이. 하나 해결!

운명의 짝인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던가.

 

분명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럴게, 이건 동화가 아닌 걸.

그리고 무엇보다 오소마츠도 카라도 인간이다. 본능뿐인 짐승이 아니다.

이성과 마음을 가진 인간이니까.

 

후회할 거다.

오소마츠의 나라로 찾아온 공주님. 카라를 짝으로 택했던 그의 결혼 상대.

오소마츠, 자신만 걸린 일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이건 심성이 고운 카라도 걸린 일이다.

상대도, 공주님도, 주변도, 모두가 사라지게 되는 날이 언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오소마츠는,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버티면서 카라를 지탱하는 것이 가능할까?

[너를 좋아해. 사랑해. 이건 운명이라거나, 짝이라거나, αΩ도 관계없어. 너니까,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거야]

 

참혹한 삶을 걸어왔다.

오소마츠의 목숨은 수많은 타인의 생명 위에 있었다.

지금까지 소중히 생각한 사람은, 모두 오소마츠 때문에 죽어 갔다.

그러니까.

 

[웃어, 카라. 네가 어딘가에서 웃으며 살아간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은, 웃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오소마츠는 빌었다.

있는지도 모를 신에게.

여태 살아오면서 한번도 믿지 않았던 신에게.

혹시라도 신이 있다면, 이번만은, 이루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눈물이 그렁이는 카라의 푸른 눈동자에서, 오소마츠는 웃고 있었다.

억지웃음이 아닌, 평소와 다름없는 오소마츠의 미소였다.

 

카라는 알고있다.

오소마츠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걸.

그리고, 오소마츠의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어딘가 안도감에 물들어있다는 것을.

 

뭐라고 할 말을 찾을 수 없어, 뻐끔뻐끔하고 산소를 탐하는 금붕어처럼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카라는 이를 악물었다.

물어달라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물어주길 원했다. 그의 것이 되길 원했다. 그의 것이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잊고.

하지만, 그것만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눈앞의 남자에게 청했다.

자신을, 주변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라고는 조금도 없었던 주제에!

[미안]

 

카라는 울었다.

 

[미안, 로소, 미안해]

 

겁쟁이라서, 미안해.

떨리는 손을, 그에게 뻗었다.

비슷한 크기의 손바닥에 감싸지고, 그대로 끌어당겨져 그에게 안겼다.

강하게 강하게 끌어안는 팔 안에서, 카라는 울었다.

 

오소마츠도 울었다.

너무 울어서 체온이 오른 가슴 속, 뜨거운 혈액을 보내는 심장이 거세게 뛴다.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강하게 끌어안고.

이대로 하나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이대로 세상이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어느 쪽이었을까.

 

 

 

 

 

 

 

 

 

몸 안의 수분이란 수분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눈꺼풀이 무겁고, 목도 아프다. 눈물이 흘러 끈끈해진 뺨은 왠지 열이 올라있었다.

서로의 눈물을 받아낸 상의는 흐물흐물하게 더러워져 있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맞추고, 서로 껴안은 채, 둘이서 웃었다.

 

[, 지금, 엄청 못생겼어]

[사돈 남 말 하고 있군. 너야말로 최강의 못난이다]

[그런 꼴로 시집갈 수 있겠냐]

[, 안타깝지만 벌써 갔다고-]

[--, 그랬지 참]

 

 

분명 내일은 눈이 퉁퉁 부어오르고, 목은 쉬어서 심한 꼴이 되어있겠지.

만나면 안 되는 석달의 기간이 끝난 뒤, 기념해야 할 첫날인데 이런 얼굴이여서야 만날 수가 없다.

화내겠지-, 하고 투덜거리자, 나도 화낼 거야! 라고 답한다.

아무래도 둘 다 까다로운 녀석이 옆에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싫은 얼굴은 하지 않는 걸 보니 분명 카라에게 있어서 그 사람은 소중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야말로 오소마츠의 쵸로마츠처럼.

 

한바탕 서로 웃고, 오소마츠는 카라의 볼에 손가락을 대었다.

몇줄기의 눈물이 흐른 자국이 제대로 남아 아직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못생겼다니, 거짓말이야]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부어도.

 

[너는 언제나 귀엽다고]

 

아첨으로 귀엽다고 할 상태가 아닌데,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니 카라는 약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눈꺼풀이 부어 있어 평소의 절반도 안 됐지만-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하며 흘끗흘끗 오소마츠를 보곤,.

 

[나도, 거짓말이다. 너도 언제나 멋있어]

 

부끄러운 듯 그렇게 말했다.

아아, 정말, 어째서 이렇게 귀여운 걸까. 라니 사랑스러운 거겠지.

 

[카라, , 줘봐]

 

순순히 내민 오른손을 잡고 오소마츠는 품에서 꺼낸 뭔가를 카라의 손바닥에 얹어두었다.

엷은 달빛이 반사된 그것은, 붉은 보석이 달린 귀걸이였다. 주변은 금으로 되어 있었고, 자세히 보면 작게 세공이 되어 있었다.

 

[이거...]

[아까 가게에서 샀어. 너한테 주고 싶어서]

 

붉은 보석은 빛에 따라 달리 보였다.

마치 유리 속에 진짜 화염을 가둔 듯이 흔들흔들 일렁이고, 따스함을 머금은 빛을 발했다.

어딘가 안심되는 듯한 그 상냥한 빛은 색은 조금 다르지만, 오소마츠의 눈동자와 많이 닮았다.

 

[이거, 이 나라에서 꽤 유명한 보석이야. 예엣~~날에 폭발한 화산의 마그마가 그대로 굳어진 거라고 하는데. , 진짜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그렇게 말하면서, 오소마츠는 카라의 왼손도 끌어당겨 양손으로 꽉 쥐었다.

그대로 카라의 손을 감싸듯이 쥐고 이마로 갖다대고는 눈을 감았다.

따뜻한 손이다. 상냥한 열.

부디, 부디 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되기를.

오소마츠는 기도했다.

 

[식어도, 굳어도 붉은 색을 유지해서, 미래영겁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할 때 주는 거야]

 

빨강은 사랑의 색이다. 이 몸에 흐르는 피의 색이다. 박동하는 심장의 색이다.

그것을 보석으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상대에게 주는 것은 그 상대에게 마음을, 몸을 주겠다는 것.

 

[로소]

[...........받아 줄래?]

 

이마에서 손을 떼고 그래도 여전히 카라의 손을 잡은 채- 눈을 떠보니, 카라는 다시 울먹이고 있다.

한번 통곡하고 나니,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걸까.

끄덕끄덕, 카라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도 역시, 줄 것이 있다는 듯 잡힌 손을 풀고 자유로워진 왼손을 주머니에 꽂았다.

 

[나도 이거. 로소가 받아줬으면 좋겠어]

 

카라가 내민 것은 푸른 보석이 달린 귀걸이였다.

오소마츠가 건넨 것과는 달리 은 세공이 된 것에 보석이 박혀있었다.

짙은 감색에 가까운 색이나, 엷은 파랑, 빨강과 초록색을 띤 청색 등, 색이 다른 파란색이 뒤섞여 녹은 듯한 신기한 색의 보석이었다. 보석 자체에서 반사되는 빛은 적지만, 안에 미세하게 금가루가 흩어져 그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보석은 재의 나라의 해저에서밖에 얻을 수 없다고 들었다. 산호조각과 조개의 일종이라고도 하지. 여러 가지 색이 섞여있지? 바다의 색, 하늘의 색, 대지의 색, 초목의 색이다. 이 보석 안에 작은 세계가 갇혀있는 셈이지]

 

그것은 재의 나라에서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색이 다른 이 보석에는 작고 작은 세계가 펼쳐져 있고, 생명이 싹튼다고 한다.

산호인지 조개인지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원래는 살아있는 생명체에게서 태어난 돌이라는 얘기도 그 전설의 기반이 되었다.

 

[항해에 나서는 남자가,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거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나의 세계를 당신에게 맡깁니다

작은 세계를 중요한 사람에게 맡기고 육지에 남김으로써, 육체가, 영혼이, 미련 없이 그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한다.

 

[사는 곳이 다르더라도, 반드시 너의 곁으로 돌아오겠다]

 

제대로 웃지 못하고, 울먹이는 얼굴로 카라가 속삭였다. 오소마츠도 굳은 얼굴 근육을 간신히 풀어 웃어보였다.

지금까지 하고 있던 귀걸이를 빼고 카라의 손바닥 위에 널브러진 푸른색을 구멍에 끼웠다.

카라의 귀에도 똑같이 해주었다.

자신의 색인 빨간색이 카라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그거 기뻤다.

 

[이 보석처럼 시들지 않는 사랑을, 이 피를, 이 심장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이 보석처럼 선명한 사랑을, 이 마음을, 이 세계를, 당신에게 바칩니다]

 

톡 부딪친 이마는 열기를 띠고 있었지만, 맞잡은 손끝은 차가웠다.

깜박거림 없이 그저 똑바로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넘치는 마음을 거짓 없이.

그저 똑바로 서로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나의 사랑.

영혼만은, 마음만은, 너의 곁에 있도록.

기도를 한다.

소원을 빈다.

밤이 끝난다.

 

 

아침이 온다.

 

 

 

 

 

 

 

그 뒤로.

새벽을 기다리다 산을 내려온 두 사람은, 안녕, 하고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이승에서의 이별이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간단히 인사를 남기고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소마츠는 돌아보지 않았다.

분명, 카라도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은 전부 저기에 두고 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잡았던 손의 온기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색을, 오소마츠는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성에 돌아오자, 문 앞에서 쵸로마츠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어라라, 쵸로짱 아냐~~ 뭐야뭐야, 이런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

 

 

평소처럼 말을 걸었지만, 눈을 부어있고, 코는 빨갛게 되어있어, 이 상태로는 평소의 오소마츠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라면 외박을 한 오소마츠에게 잔뜩 윽박지르고 설교를 시작해야할 측근이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서 오소마츠를 보며,

 

[...........끝난 거야?]

 

라고만 물었다.

너무 조용한 말투에 오소마츠는 맥이 빠지면서도 물어본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다.

 

[...........]

 

 

끝내고 왔어.

미소로 그렇게만 말한다.

그래, 라고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인 쵸로마츠는 분명 오소마츠의 갈등도 결단도 미련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제와는 다른, 이제부터 왕이 되는 주제에 너무 값싼 귀걸이를 달았음에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얼른 목욕하고 들어가서 자! 오늘 저녁에는 공주님과 상견례가 있으니까, 그 부어오른 못생긴 얼굴을 어떻게 좀 하라고]

[못생겼다니!! *너무우~~~쇼크얌-!!]

(*쇼와 풀코스 오소파트)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의 친절이 고마워서, 조금, 아주 조금, 가슴이 아팠다.

 

 

 

 

 

 

 

 

그날의 할멈의 말을 떠올렸다.

언젠가 당신이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와 만났을 때, 그 답을 알게 될 거랍니다.

 

 

오소마츠는 몰랐다.

오소마츠를 낳고 바로 죽어버린 어머니.

오소마츠를 감싸다 죽은 할멈과 유모.

오소마츠의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간 스승님.

왜 그렇게 되었는가.

, 누구를 위해 죽었는가.

왜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했는가.

 

오소마츠는 몰랐다.

 

 

그러나 카라와 만나고, 카라에게 끌리고, 카라를 사랑하고, 카라를 잃은 지금.

오소마츠는 알 것 같았다.

나의 운명. 나의 짝. 나의 심장. 나의 돌아갈 장소.

모든 것은, 그에게 있다.

 

 

오소마츠의 오른쪽 가슴의 심장 속에 있다.

 

 

똑똑, 조용한 방에 노크 소리가 울린다.

방 밖에서, 가실 시간입니다. 하고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려 오소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귓가에서 빛나는 피어스를 건드린다.

열기가 사라져 조금 미적지근해진 그것도, 언젠가 추억이 되는 것일까.

젊은 시절, 그런 사랑을 했었지 라며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될까.

그때는 재의 나라 공주님을, 조금이라도 좋으니,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지금 갈게]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기를, 하고 오소마츠는 생각했다.

 

 

 

 

 

 

 

 

 

 

혼례를 올린 날과 같은 곳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날 향기를 내던 독한 꽃의 향기는 없고, 바닐라 같은 달콤한 향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냄새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가급적 입으로 호흡했다.

 

[저기이, 쵸로짜앙~ 그날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향냄새 너무 심하지 않아? 코 이상해질 것 같아~!]

[이제 공주가 오니 조용히 하세요, 쿠소마츠 왕자. 어쩔 수 없잖습니까. 전에는 발정 방지를 위해 억제 효과가 있는 강한 향을 피웠습니다. 오늘은 잘 모르겠지만]

[, 갑자기 거칠지 않아, 쵸로마츠 재상 보좌?? 게다가 그런 거 들은 적 없다고오-!]

[지금 말했잖습니까]

[에에~....]

 

옆에 있는 쵸로마츠에게 작은 목소리로 불평하자, 매몰찬 잔소리만 돌아온다.

하지만 쵸로마츠 자신도 너무 강한 냄새에 견디지 못한 걸까, 오소마츠의 바람대로 향을 끄라고 뒤에 있는 시녀에게 지시를 한다.

향로 뚜껑을 덮자, 향기가 엷어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

 

향냄새 사이로 퍼지는 냄새.

그것은 비유하자면, 바다에 있는 과수원 같은.

상쾌하게 새콤한, 오소마츠가 좋아하는――.

 

[――!!]

[! 어이?!]

 

한가지 가능성이 떠오르자, 오소마츠는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대로 몇 미터 떨어진 문 쪽으로 뛰어나갔다.

쵸로마츠가 붙잡는 소리에도 그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설마. 아니, 그치만.

, 향기는――.

 

 

대신이 막아선다. 병사들이 막아선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전혀 없다.

기세에 몸을 맡기고 무거운 문을 열어젖히면 거기에는 이미 재의 나라 공주님의 일행이 서있었다.

마침 방으로 들어오던 중이었는지, 많은 시녀와 병사, 그리고 공주의 측근으로 보이는 소년이 한명.

그리고.

 

 

[..........................,]

 

 

얇은 천을 몇 겹 포개고 풍성하게 볼륨 있는 푸른 드레스의 풍성한 레이스가 바람에 흔들린다.

잘록한 허리. 살집 없는 얇은 몸. 피부 노출을 최대한 막아 하얀 살결.

긴 검을 머리를 땋아 파란색과 분홍색 장미로 장식한 머리.

거기에 입가까지 덮고 있던 천이 문이 열리는 풍압에 의해 날아올라 그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늠름한 눈썹. 시원스런 턱선. 귓가에 빛나는 붉은 보석.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 보석 같은 큰 눈동자.

 

카라.

 

나의, 심장.

 

바람이 가라앉아, 은의 베일이 눈을 가렸다.

그래도 시선이 마주쳤음을 알 수 있었다.

아아.

 

 

[꿈만 같아............]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린다.

흰 장갑에 감싸진 그 손이 닿자, 그가 가늘게 떨고 있음을 알아챘다.

열을 전하듯이 힘을 주면, 약한 힘으로 맞잡는다.

 

 

[.........즉의 나라 첫째 왕자, 왕위 첫 번째 계승자인 오소마츠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눈가가 뜨겁다. 방심하면 흘러넘칠 것 같아 오소마츠는 미간에 힘을 주고 참았다.

그러난 공주님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 재의, , 나라의, , 첫째, 공주........]

 

조각조각 나뉜 말에 눈물이 섞여 듣기 힘들었다.

오소마츠는 맞잡은 손 하나를 풀어 얼굴을 덮은 베일을 걷었다.

눈물이 가득 차올라 일렁이는 푸른 보석은 아름다워, 그 안에 비치는 오소마츠는 마치 바다에 있는 것만 같았다.

빠질 것만 같았다.

 

 

[, 카라마츠, 라고, , 니다....! , 우으, .........]

 

 

카라는, 카라마츠는 간신히 그렇게 말하며,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우아한 공주님의 우는 모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울음이다. 어린애 같다.

그러나 그런 점도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카라마츠 공주. 나의, 카라마츠. 내 곁에 있어주시겠습니까?]

[, 네에에~~...........!!]

 

 

끌어안은 몸속에서 오소마츠의 또 하나의 심장이 뛰고 있다.

즉의 나라 사람들도 재의 나라 사람들도 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야 그렇다. 오소마츠도 모른다.

그저 아는 것은, 두 사람이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하는 동화 속 이야기는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것과.

 

 

[카라마츠으, , 역시 우는 얼굴 못생겼네-!]

 

 

아무리 우는 얼굴이 못생겼어도 이 팔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은, 계속 변함없을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 나라 이름은 한자 그대로 번역해서 

조금 어색한 감이 있습니다 ㅠㅠㅠ






왕공에 오메가 조합이라니 최고네요!


오타 확인한다고 했는데 있을지도 모르겠네요ㅠㅠ

전 오타 상습범이니까요.........


아무튼, 오타가 있다면 큰소리로 불러주세요!

반응 느리지만 고치러 옵니다!!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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