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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널 주지 않아

 

 

 

 

 

 

어느 날 나는 내가 오소마츠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깨달은 그 순간, 깔끔하게 포기했다.

 

동성인 것도 모자라 피를 나눈 형제였으니까....., 사랑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다.

 

 

안 그런가?

 

 

 

 

 

* * *

 

 

 

 

최근 오소마츠가 이상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치비타한테 납치당해 생긴 상처들이 거의 나았을 무렵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일이 많아졌고, 행동이 어딘가 수상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물어도, 아무것도 아니라며 숨기기 바빴다.

하지만 오소마츠의 표정을 봐선, 뭔가 고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둔하고 둔한 나라도 알 정도로 뻔히 보였다.

 

 

[오소마츠, 낚시하러 가겠나?]

동생들이 있는 곳에선 말하기 힘들겠단 생각에 낚시를 가자며 불러냈다. 오소마츠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내가 끈질기게 권하자 결국 포기하고 날 따라나섰다. 어쩔 수 없잖아,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소마츠의 고민이 뭔지 알고 싶으니까. 평소에 낙천적인 오소마츠가 고민을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고, 그걸 동생에게 들킬 정도로 티를 내는 건 인생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다. 이 기회를 눈앞에서 놓칠 수는 없다. 아니, 마음이 약해졌을 때 공략하는 그런 비겁한 수를 쓸 생각은 없다.

전혀 없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지만. 하지만 오소마츠를 향한 마음은 확실히 접었다. 오소마츠는 나의 소중한 형이다. 순수하게 형을 도와주고 싶단 마음을 비난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오소마츠, 최근에 무슨 일 있는가?]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정말인가?]

 

그 대화를 끝으로 둘은 잠자코 낚시를 했다. 그러다 내가 먼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오소마츠. 요즘 뭐 고민스러운 일 있는 거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 말하게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혼자서 고민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다]

[내가 아니라, 쵸로마츠나 토도마츠한테 상담하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동생에게 상담하기 힘들단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지만은 마라. 우리들은 오소마츠한테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오소마츠는 누구한테도 의지할 수 없다니, 그런 건 싫다]

그 누구한테도 의지할 수 없다는 건 괴롭잖아. 동생들 앞에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건 이해한다. 내가 그러니까. 멋진 형으로 있고 싶어서, 속이 빈껍데기로 온몸을 두르고 있는 나다.

하지만, 내겐 오소마츠가 있다. 괴롭고 힘들 때는 오소마츠에게 상담하면 된다. 그러면 오소마츠는 내가 원하는 말을 해주고, 늘 나를 위로해준다.

하지만, 이렇게 늘 동생들을 도와주는 오소마츠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다니, 무척이나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 않은가.

설령 자존심이 방해하더라도, 우리들이 의지가 되지 않아도, 정말 곤란할 때는 의지해줬으면 한다.

설령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슴속에 담아두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니까.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역시 틀렸나, 하고 포기하려던 순간. [누가 뒤를 따라와] 라고 오소마츠가 말했다.

 

[......스토커인가?]

[아마도. 잘 모르겠어. 아까도 있었어. 계속 날 따라와]

전혀 몰랐다. 생각도 못했다. 스토커, 스토커인가. 오소마츠는 남자인데.

스토커의 피해자는 대체로 여성이라고 생각해왔기에, 나는 꽤 충격을 받았따.

[여자인가?]

[몰라.....남자인 것 같기도 하고, 여자인 것 같기도 해........그보다, 한명이 아닌 것 같아]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오소마츠의 나약한 목소리.

 

그러면 안 되지만, 나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오소마츠가 곤란해하고 있다. 나한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 오소마츠가.

 

[..........]

 

조금 떨어진 펜스 너머에서 사람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후드 앞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삐딱하게 서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후드를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게 오소마츠가 말한 스토커임은 단박에 알아챘다.

 

[오소마츠]

말을 걸자, 오소마츠도 상대를 눈치챈 듯했다. 릴에 걸려있던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소마츠, 돌아갈까]

나는 낚싯줄을 감아올려 돌아갈 준비를 했다. 오소마츠도 잠자코 준비를 했다.

 

돌아가는 길, 나와 오소마츠는 입을 꾹 다문 채 걸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뒤를 따라왔다. 내가 있어서인지, 손은 대지 않았다. 점점 커져가는 공포와 스트레스에, 집까지 가기도 전에 위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다른 날, 이치마츠에게 티켓을 2장 받았다. 고양이 카페에서 받은 연계점포의 할인권이었다. 놀랐다. 왜 내게 이걸 준 거지. 늘 짠대응으로 일관하는 녀석인데.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하기 이전에 공포로 마음이 가득 찼지만, [오소마츠형이랑 갔다오는 게 어때] 라고 툭 내뱉은 이치마츠에 그 이유가 납득이 갔다. 최근 상태가 이상한 장남을 모른 척했지만, 이 상냥하고 눈치가 빠를 사남은 신경이 쓰였던 거겠지. 나보고 기분전환으로 데리고 갔다오라는 거다. 어째서 자신이 가지 않는 건지 신경이 쓰였지만, 그냥 감사히 받기로 했다.

 

오소마츠와 카페테리아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을 때도, 오소마츠는 불안정해 보였다. 시선을 신경쓰고 있는 거겠지.

갑자기 오소마츠가 어깨를 움찔하며 놀란다.

[왜 그래?]

[여길 보고 있는 녀석이 있어]

오소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네 뒤에] 라고 속삭이며 내 등뒤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나는 거울을 꺼내 머리를 정돈하는 척하며넛 뒤를 비춰보았다.

카페테리아를 에워싸듯이 자리한 근사한 나무들 사이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였다. 뚫어져라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위험한 느낌이 들어,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오소마츠, 여기서 나가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들은 서둘러 출구로 향했다. 재빨리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여태 오소마츠가 말했던 시선들이 기분탓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무서울 일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짜 이쪽을 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카페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자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집어든 오소마츠의 표정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난폭하게 수화기를 내려놓고, 초조한 걸음으로 거실로 향하는 오소마츠의 뒤를 따랐다.

[오소마츠, 왜 그러나?]

[어서와, 라고 그랬어. 어디선가 감시하고 있는 거야]

날카로운 눈으로 방을 둘러보던 오소마츠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쳤다. 그 행동에 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소마츠형, 왜 그래?]

[커튼치지 마, 어둡잖아]

오소마츠는 휙 동생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뻐끔거리기만 하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분명 동생들에게 쓸데없이 걱정끼치고 싶지 않은 거겠지. 형은 [-, 짜증나. 파칭코에서 돈도 다 잃고-] 라고 말하며 방을 나가버렸다. 그 순간 나는 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카라마츠형, 오소마츠형 무슨 일 있어?] [상태 좀 이상하지 않아?]

[아니, 파칭코에 같이 갔는데, 내는 따고 오소마츠는 잃어서 그런 것뿐이다] 그래서 삐진 거지, 라고 덧붙였지만 쵸로마츠들은 여전히 납득이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더는 입을 열지 않자, 각자 다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소마츠가 숨기고 있는 걸 내가 다 말해버리는 건 아니잖나. 흘긋 방구석에 앉아있는 이치마츠를 봤다. 이치마츠는 우리들이 파칭코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쓸데없는 말을 해서 들키면 안 되니까, 주의를 주려 노려봤지만 이치마츠는 고양이와 놀기만 할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한 나는 자리에 앉아 거울을 꺼냈다.

 

 

 

 

 

[오소마츠형, 뭐가 왔는데-]

택배를 받으러 나간 토도마츠가 종이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헤에, 나한테 온 거? 누군데?]

헬스클럽과 바둑클럽에 다니는 토도마츠나, 이런저런 응모나 면접 등으로 편지나 택배가 올 일이 많은 쵸로마츠에 비해, 오소마츠는 그런 것들을 받을 일이 거의 없다.

[글쎄, 모르겠는데] 라고 말하며 봉투를 건네는 토도마츠.

오소마츠는 봉투를 받아 마구잡이로 찢어 뜯고는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

오소마츠가 봉투에서 황급히 손을 빼냈다. 빼낸 손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왜 그래!?]

소리에 놀라 돌아본 쵸로마츠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황급히 오소마츠에게서 봉투를 뺏었다. 안에서 뭔가 짤랑짤랑 하는 금속음이 들려 봉투 속을 들여다보니, 커터칼의 칼날이 가득 담겨 있었다. 명백히 악의를 담긴 선물에 소름이 끼쳤다.

[쵸로마츠! 거즈하고 소독할 것들 좀 가져와!]

멍하니 서있던 쵸로마츠에게 소리쳐 지시하자, 퍼뜩 정신을 차리곤 튀어나갔다.

 

쵸로마츠한테 옥시돌(소독약)과 거스를 받은 나는 정성스럽게 상처를 소독하고 거즈를 붙였다. 소독약이 스며들어 따가운지, [이야야......]하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안, 오소마츠. 다치게 만들어서.....]

[무슨 소리야, 네 탓이 아니라고]

[하지만, 오소마츠가 다치는 걸 막지 못했다]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니까. 따지자면 부주의한 내가 잘못한 거지]

내가 반쯤 울상으로 오소마츠의 손을 치료하는 사이, 오소마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이쪽이 치료받는 듯한 느낌이다.

[뭐어, 진짜 나쁜 건 그걸 보낸 사람이지만 말이야]

오소마츠가 봉투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아아. 다음부턴 조심하자고]

뿌득, 이를 갈며 봉투를 노려본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에서 겨우 목소리를 짜내 말했다.

 

그 뒤로 매일같이 다양한 물건들이 배달됐다. 저번처럼 칼날 같이 다칠 수 있는 물건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골판지 상자에 짐승의 사체가 들어있거나, 노르스름한 액체나 탁한 흰색의 액체가 든 병이 오거나 하는 걸 보아, 그는 정신적인 공격으로 루트를 바꾼 듯했다. 오소마츠형은 그걸 받을 때마다 기분 나쁜 표정을 하며, 때때로 화장실에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나는 그런 오소마츠의 등을 어루만져 진정시킨 후, 그것들을 하나하나 처분했다.

 

그 물건들은 다량의 오소마츠형의 자신과 함께 동봉되어 배달됐다. 어제 파칭코에 가는 오소마츠나, 편의점에 있는 오소마츠, 목욕탕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오소마츠 등. 놀랍게도 그 누군가는 오소마츠와 다른 형제들을 구분하는 듯, 사진은 전부 명확하게 오소마츠였다. 옛 사진들도 무더기로 보내졌다.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의 수학여행과 야외활동 때 찍은 사진들이었다. 오소마츠 이외의 사람은 볼펜으로 얼굴이 마구 칠해져있어, 으스스한 느낌을 더했다.

사진들은 다른 형제들에게 걸리지 않도록 오소마츠와 내가 전부 찢어 버렸다. 범인은 그 시절의 인물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 시절의 같은 반 아이들의 현재 모습은 알지도 못하고, 범위도 너무 넓어서 범인을 추려내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전화도 집에 몇 번인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끈질기게도 울려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때도 있는 반면, 웃음소리만 잔뜩 들려오는 때도 있었다. 여성의 목소리, 남성의 목소리, 고음과 저음 등 다양했다. 다른 형제가 받을 때면, [오소마츠군 있나요?] 라고 물었다. 오소마츠가 전화를 받으면 다시 키히히히히, 쿠히히히히, 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오소마츠의 핸드폰에도 표시제한으로 몇 번인가 전화가 걸려왔다. 메일도 하루에 200통 넘게 오는 듯했다. 수신 거부를 해도 메일을 바꿔 몇 번이고 전화와 메일을 보냈다. 오소마츠가 번호를 바꿔도 변함없이 메일이 날아와, 오소마츠는 메일이 올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역시 오소마츠도 스트레스가 쌓였을 테지. 메일의 내용은 대체로 오소마츠의 행동을 관찰한 내용이었지만, 때때로 오소마츠를 매도하는 메일이나 성희롱적인 내용도 왔다.

 

 

 

그런 일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집에는 나와 오소마츠 둘뿐이었다. 오소마츠는 핏기라곤 하나 없는 얼굴로 멍하게 있었다.

[오소마츠, 코코아 마시겠나?] 라고 묻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이는 오소마츠에 안심한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여전히 오소마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무시하고 발을 내딛었다.

 

코코아를 내밀자 오소마츠다 양손으로 컵을 받아들었다. 컵에 입을 댄 오소마츠의 목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 바라보던 나는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 오소마츠]

콰앙!! 유리창에 뭔가 부딪힌 듯한 불쾌하고 큰소리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나와 오소마츠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 벨이 울렸다.

바깥에서 창문을 쾅쾅 두드렸다. 창문 너머로 유리를 내리치는 하얀 손이 보였다.

쿵쿵쿵. 현관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덜컹덜컹, 하고 문손잡이가 흔들렸다. 덜걱덜걱 벽이 울렸다. 방 곳곳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소마츠는 몸을 둥글게 말고 새파랗게 질려 떨고 있다. 나도 엄청 무서웠다. 무서워서, 누가 도와줬으면 해서, [, 오소마츠...]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의 공포에 찬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오소마츠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나약한 표정으로 새파랗게 질려 떨었다.

나는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그를 꼭 끌어안았다.

[오소마츠는 넘겨주지 않아]

무서운 건 여전했다. 지금도 내 몸은 공포로 떨리고 있다. 하지만, 오소마츠를 뺏기는 건 싫었다. 오소마츠가 없는 세계를 나는 견딜 수 없을 거다. 누구라 하더라도 오소마츠는 절대 넘겨줄 수 없다. 반드시 지킬 거다.

 

오소마츠를 꽉 껴안았다. 오소마츠가 내게 매달렸다. 지금이라면 안 들키지 않을까. 이런 위험한 상황인데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선 불순한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오소마츠의 머리에 슬쩍 입을 가져다댔다. 살랑거리는 머리칼의 감촉이 입술을 타고 전해졌다.

 

드디어 소리가 멎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동생들은, 창백한 얼굴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는 우리를 보고 아연실색하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후, 오소마츠가 납치됐다.

파칭코에 갔다오겠다며 나간 뒤로 밤이 깊어가도록 소식이 없다. 평소에도 술을 마시느라 늦게까지 안 들어오기도 했고, 성인 남성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긴 했지만, 최근 스토커 사건으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전화가 울렸고 이내 전화를 받은 쵸로마츠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거실로 달려왔다.

[큰일이야!! 오소마츠형이 납치당했어!!]

[오소마츠형이!!?]

다급한 소리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다른 형제들도 놀란 듯 보였으나,

[-? 그치만 오소마츠형이니까 납치한 놈들 때려눕히고 돌아올 걸?]

이라는 토도마츠의 말에 다들 수긍한 듯 자리에 앉아 다시 제 할 일을 했다.

가만히 선 채로 나는 쵸로마츠와 얼굴을 마주했다. 듣고 보니, 오소마츠형이라면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방안에 밝은 멜로디가 울렸다. 띠링. 띠로리로링. 띵똥. 제각기 다른 벨소리가 5개의 핸드폰에서 울려퍼졌다. 당황하며 전화를 꺼내자, 메시지가 와있었다. 보낸이는 적혀있지 않고, 내용도 없이 딸랑 사진 한 장만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터치하자,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사진에는 상반신이 벗겨진 남성이 있었다. 그는 묶여있었고, 그의 몸에는 수많은 멍과 칼로 낸 상처들이 보였다.

[이게 뭐야!!]

쵸로마츠가 소리쳤다. 동생들에게도 같은 메시지가 온 모양이었다.

[....잠깐, 이거 진짜야? 오소마츠형이 잡히다니....]

[농담이지..?]

[일단 빨리 구하러 가자고!]

내가 분노 섞인 목소리로 외치자, 동생들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리곤 나는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낡아빠진 창고에 다다랐을 땐 이미 새까만 어둠이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끼기긱, 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창고 안을 희미한 불빛으로 비추자, 바닥에 나뒹구는 남성이 보였다.

[오소마츠!!]

나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나갔다.

[오소마츠!! 걱정했다..!!]

상처투성이가 된 오소마츠를 슬쩍 끌어안았다.

[카라마츠...?]

잔뜩 쉰 목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의식이 있단 것에 놀라며 안심한다.

[그래, 카라마츠다. 오소마츠, 미안, 미안하다. 이런 심한 짓을....]

나는 갈라져서 꺼칠꺼칠해진 입술을 쓰다듬으며, 필사적으로 사과했다. 여전히 양 팔은 오소마츠를 끌어안은 채로.

떨고 있는 오소마츠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며, 오소마츠를 등에 업기 위해 뒤로 돌았다.

[정말 미안하다, 오소마츠]

[네 탓이 아니, 잖아....]

[...구하러 오는 게 늦어서, 미안하다]

힘없이 등에 업힌 오소마츠가 옅은 신음소리를 흘려, 더욱 가슴이 죄어왔다.

 

집에 도착하자, 걱정스런 표정을 한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오소마츠를 발견한 동생들을 그를 에워싸곤 울먹이는 표정으로 치료를 해주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에 의하면, 누군가 뒤에서 오소마츠를 기습했고, 뒤통수를 맞은 오소마츠는 그대로 잡혀버렸다고 한다. 아무리 기습이라곤 해도, 경계심이 강한 오소마츠형을 그렇게 간단히 붙잡다니 그쪽도 장난아니네, 라며 토도마츠가 다정한 손길로 오소마츠형의 몸을 닦아내며 살짝 웃었다. 붙잡힌 후에는, 눈을 가린 채로 막무가내로 두들겨 맞고 몸 구석구석을 만져졌다고 한다. 당시에 그곳에 여러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고 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몰라,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 오소마츠를 덮친 놈들에게 복수조차 하지 못한 우리들은 그저 이를 갈며 갈 곳 잃은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가능한 오소마츠의 곁을 떠나지 않도록 했다. 오소마츠는 어딜 가든 따라오는 내가 다소 귀찮은 듯 보였지만, 동생들도 그걸 말리지 않고 오히려,

[카라마츠형, 오소마츠형 잘 지켜]

라며 부추기는 태도를 보이자, 결국 포기했다.

한 날은 지나가듯, [너 그렇게 시간 낭비해도 괜찮아?] 라고 말했지만, 원래 카라마츠걸을 기다리는 데에만 쓰던 시간이라, 그걸 오소마츠를 위해 쓴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 진짜, 안쓰러워 미치겠네. 그 망할 탱크톱 좀 그만 입으라고]

[쿠소마츠 너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만]

[카라마츠....역시 이건 커버 못 쳐주겠다]

동생들의 냉랭한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희미한 바람을 만끽하며, , 하고 웃어보인다.

[왜 그러나, 브라더. 이 탱크톱이 그렇게나 마음에 드는가]

옷에 흥미를 보이는 게 기뻐서,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열렬히 설명하기 시작하자,

[, 맞아. 나 데이트 약속있었지~]

[난 고양이 밥 주러 간다]

[냐짱 CD 예약하러 가야지]

[야구!!!!]

다들 약속이 있다며 하나둘씩 방을 떠났다. 풀이 죽어 울상이 된다. 오랜만에 다들 내게 관심을 가져줬다 생각했는데.

남아있는 건 오소마츠와 나뿐이었다. 오소마츠에게는 이미 이 탱크톱을 선보인 적이 있기에, 달리 더 할 말이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오소마츠 옆에 가 앉자, 오소마츠가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 차였네~]

[아아, 망아지 같은 아기고양이들이니 어쩔 수 없지]

[망아지라는 거야 고양이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오소마츠가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오소마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내 배에 얼굴을 파묻고 부벼온다.

[뭐야, 어리광부리고 싶은 건가?]

라며 작게 웃자, 오소마츠는 [으응-] 이라며 예스인지 노인지 모를 애매한 답을 한다.

오소마츠가 납치된 그날이후, 오소마츠는 내게 이렇게 어리광부리는 날이 많아졌다. 동생들 앞에서는 평소대로 명랑한 형으로 있지만, 나와 단 둘일 때는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어리광쟁이인 형이 된다. 여태까진 내게도 강한 척하며 의지되는 형을 연기해왔었으니, 이건 엄청난 발전이다.

 

, 나는 이 변화가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5명의 동생 중 한명이 아니라, 오소마츠의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기쁘다.

게다가 최근에 오소마츠와의 스킨십도 늘었다. 어쩌다 손을 잡게 되거나, 볼을 잡아당기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오소마츠와 우리들에게 있어 무서운 경험일 뿐이었지만, 하지만 나는 아주 살짝 그 경험들에 감사하고 있다. 이 경험들이 없었다면, 오소마츠와 이렇게 거리를 좁히게 될 일은 없었을 테니까.

 

 

 

 

......어쩌면,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리 꿈같은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가당찮은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무릎 위에 잠든 오소마츠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 * *

 

 

 

 

 

[되갚아주고 싶다. 부탁하지]

우리들은 붕대를 온몸에 칭칭 감은 남자를 둘러싸고 섰다. 이 남자는 마츠노 카라마츠로, 중학교 동창이자 같은 연극부의 부원이며, 보기 드문 여섯 쌍둥이의 차남이다.

 

그리고 그 여섯 쌍둥이의 형제들 때문에, 카라마츠는 유괴당하고 이렇게 큰 상처를 입었다. 문병을 온 우리들은 그를 크게 동정했다. 그의 취급은 옛날부터 심했었지만, 그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을 줄이야. 아니, 더 심해졌잖아?

 

그는 우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형제들을 겁줘서 되갚아주고 싶다고!

 

우리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연극부가 나설 차례다. 잊고 있던 그리운 감각에 모두가 눈을 빛냈다.

 

 

 

 

 

카라마츠의 병실을 떠날 즈음,

[포기할까 보냐. 꼭 손에 넣고 말겠다..]

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건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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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카라]지만 러브적 요소는 없습니다※

















이 날이 오기를 죽어라 기다렸던 건 아니다. 이 날이 오기를 죽어라 바랐던 건, 이미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거의 수십년만에 마주한 바깥세상은, 너무도 많이 변해있었다. 눈부시게 화려한 색색의 조명들에 눈이 시렸다. 겨우 수십년이라 여길 정도로 짧은 시간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고도 남을 20년이란 세월의 변화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너무도 커져버린 세계에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나는, 마음속의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아......]

 

무의미한 한숨을 내뱉고, 눈부신 세상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듯 고개를 떨궜다. 콘크리트의 색은 이전과 다름없음에 살짝 안심을 하며, 한 발, 조심스레 내딛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분명 이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분주하게 흘러갈 테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과거, 양손에 거머쥐었던 쾌감이 마음 시릴 정도로 작아져 갔다. 속아넘어간 일반인을 깔보는 즐거움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쾌감에 젖었던 그 흥분감도, 설렘에 두근거리던 교전도, 긴장도, 전부, 고개를 들 때마다 겁을 먹고 멀리 도망쳐 버린다. 기다려줄 사람도 없는데 어쩐지 버림받은 기분이다. 발걸음이 무겁다. 원인모를 소란스러움이 귀에 거슬린다. 이런 세상에도, 아직 과거의 동족들이 남아있을까. 있다고 한들, 식칼 하나로 협박을 하거나 하진 않겠지. 그런 녀석이 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무서운 일이다.

 

 

그리 많지 않은 작업 포상금으로 표를 끊어, 몇 정거장 앞의 신사로 향했다. 만일 붙잡혔을 때를 대비해 훔친 돈을 신사나 무덤가에 묻어두었다. 숲처럼 개발될지 모르는 장소를 피하다보니, 천벌을 받을 만한 장소밖에 남지 않았지만, 애초에 오컬트 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믿지도 않아 상관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한밤중에 그곳에 가는 건 꺼려졌지만.

 

시간상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목적지인 역에 내려 번화가를 벗어나 나뭇잎이 이리저리 흩어진 길로 나아갔다. 인적이 드문 신사의 신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 그 앞에 쭈그려 앉고서야, 삽을 사오는 걸 깜빡했음을 깨달았다. 맨손으로 땅을 만지자, 차갑고 촉촉한 흙의 감촉이 전해진다. 사람을 죽이던 손이, 그날과 다름없는 것을 만지고, 누르고, ―― 생각하기를 관뒀다.

 

예쁘고, 추억이 담긴 물건이 들어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것은 내게 있어 마치 타임캡슐과도 같았다.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뚜껑을 열자, 그럭저럭 돈이 들어있다.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린 자가 갖고 있던 돈. 그렇게 생각한 탓일까, 희미하게 희열이 돌아온다. 하지만 분명, 이런 칙칙한 희열은 이 눈부신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싸구려 지갑에 돈을 잔뜩 우겨넣고, 가방에도 적당히 넣어둔다. 삼분의 일 정도 꺼내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차가운 흙속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는 근처에 사람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한 뒤에야 신사를 벗어난다.

 

그 때, 잡히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 강도로서의 감각을 선명하게 갖고 있었을까. 흘러가는 시대에 적응해 변화하며, 그때의 그 희열과 쾌감이 퇴색되는 일 없이, 변함없이, 그대로, 나대로, 지내고 있었을까.

 

[..............오소마츠, , 치비타........였던가]

 

입에서 툭 튀어나온 건, 마지막으로 보았던 일반인들의 이름. 나이도 다 차지 않은 두 놈들 때문에 수십년이란 긴 세월을, 아니 그보다도 감각들을 전부 잃어버린 게 더 크다. 그 두 놈들 때문에, 그 두 놈들이 날 방해하지 않았다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분노인가, 증오인가, 아니면 살의인가. 강도로서의 기쁨을 앗아간 그들에게, 이제 와서 분노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들은, 지금 어쩌고 있을까.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아직, 두려움 가득한 얼굴을 보일까.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잃어버린 감각들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전차를 갈아타고 아카츠카로 돌아가니, 그곳은 예상외로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처음 맞닥뜨린 세상의 인상과 변화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탓에 그렇게 보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변함없는 거리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의지할 곳이 늘어난 것만 같아, 숨이 트였다. 그러면서도 작업도구나 마찬가지인 식칼을 사려하고 있으니, 역시 타고난 범죄자인 거겠지. 마음의 어두운 이면을 스쳐가는 부정의 말들을 애써 무시하고, 저렴한 서양 식칼을 구입했다. 감각을 억지로 되돌리려 애쓰는 모습에 어쩐지 서글퍼져, 무시하고 싶어졌다.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이 애용하던 녀석과는 다른 것도.

 

어느새 날이 저물어, 살짝 쌀쌀해졌다. 예전의 작업복이자 평상복인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한밤중에는 얼어죽을지도 모른다. 가게가 닫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해 옷가게에 들러, 옅은 갈색의 베스트와 검은색 머플러를 구입했다. 코트류는 부피가 커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구입한 것들을 입고 가게를 나오니, 하늘은 거의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 그럼 어디로 갈까..........]

 

새 것의 냄새가 풍기는 머플러에 얼굴을 묻고, 낮보다 사람의 왕래가 적어진 길을 걸었다. 혼자 살만한 집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고민이 됐다. 다시 하숙이라도 할까, 하고 중얼거렸지만 딱히 주소를 아는 것도 안내를 받는 것도 아니었기에 막막했다.

발길을 여섯 쌍둥이가 살던 집으로 돌리면서, 오소마츠라도 불러낼까 하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저건.....]

 

무심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시선 끝에, 오뎅, 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붉은색 노렝이 걸린 포장마차가 보였다. 손님은 한 명. 아담하고, 분주한 세상과 동떨어진 그 가게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 그는 분명 오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겨우 그 정도의 접점이었을 뿐이었는데도, 어째선지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천천히 한 발씩 나아갔다.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들려오는 점주의 목소리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앳된 목소리였다.

 

아아, 그다. 그가 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손님 한 명쯤 있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돌아가기를 기다리면 그만이고, 적당히 돌려보내는 것도 좋다. 그 정도는 내게 있어 손쉬운 일이었다.

손을 뻗으면 노렝에 닿을 거리까지 왔다. 두근거림이 흥분으로 바뀌었다. 나를 보고 새파랗게 질리거나, 속은 것에 분노하는 모습을 떠올린 탓이었다.

 

[오랜만이군, 치비타]

[, ..어서오세, ....]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며 가게로 들어가 이름을 불렀다. 수십년만에 보는 것임에도, 체격도 얼굴도 기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그리움을 넘어 희미하게, 하지만 점차 명확하게 살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에게 상냥한 미소를 건네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점점 돌아오는 온갖 감각들에 미소가 일그러질 것 같았다.

 

[당신, 어떻게 내 이름을......아니, 잠깐? 어디서 본 듯한......]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치비타에, 나는 가만히 선 채로 그가 나를 떠올리길 기다렸다.

그때의 일인칭은 보쿠였는데, 안 본 사이에 자잘한 부분이 바뀐 걸 보고 있으니 어쩐지 즐거웠다.

하지만 역시 가게의 점주이니만큼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 많겠지. 살짝 힌트라도 줄까. 표정을 살짝 풀고, 입을 열었다. 다른 손님이 돌아가기 전까지는, ‘이 녀석 본모습을 숨기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중간한 연기를 보이는 게 딱이다.

 

[수십년만이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수십년.......? 아니.............어이, 잠깐만.......]

[하하하, 기억났나?]

 

과거의 호탕한 웃음까지 더해 보이자, 치비타는 눈알이 빠질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자아, 새파랗게 질릴까, 아니면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 화를 낼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몰래 꿀꺽꿀꺽 기대감의 군침을 삼키자, 그와 동시에 치비타가 입을 열었다.

 

 

[, 토고씨 아닌가]

 

 

[............?]

 

 

 

하지만 들려온 건 치비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치비타의 열린 입은 움직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좀 더 낮고 온화한 어른의 목소리였다. 지금 제3자가 분명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다소의 놀라움이 담긴, 마치 친구의 친구를 만난 듯한 적의도 경계도 없는 목소리가, 옆에서.

 

[놀랐다고.......오랜만이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숨을 삼켰다.

 

살짝 술기운이 돈 듯한 녀석은, 머리에 아파 보일 정도로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얼마나 심한 부상을 입은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비스듬히 감긴 붕대는 오른쪽 눈을 가렸고, 더욱이 왼쪽 뺨에는 커다란 거즈가 붙어 있었다. 이렇게나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여섯 쌍둥이 중 한명이란 걸 단박에 알아챘다. 옛 얼굴이 아직 남아있다고는 해도, 잘도 알아챘다며 스스로도 감탄했다.

 

하지만 상처는 얼굴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잘 살펴보니, 삼각건으로 매달린 왼팔에도 손가락만 겨우 보일 정도로 붕대가 감겨있다. 안쪽에 목발이 세워져있는 것으로 보아, 보이지는 않지만 발도 성하진 않은 모양이다.

 

뭐지 이 녀석은. 입원중인 병원에서 탈출이라도 한 건가. 여섯 쌍둥이 중 누구인지 고민하는 것보다도, 그런 평범한 의문이 떠오르는 자신을 질책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 토고잖냐!! 너 이 자식 잘도 날 속였었겠다...!!!]

[치비타, 거기서 바주카를 쏘면 나도 맞으니 그만둬라]

[시꺼-!! 네가 피하라고, 카라마츠!!]

[대체 얼마나 화가 난 건가.....]

 

아니, 아니아니. 잠깐만, 치비타는 대체 뭘 꺼내들고 있는 거야. 다친 사람한테 네가 피하라고 하는 건 또 무슨 경우야.

 

[나의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벌이다!!!]

[, ]

[우앗]

 

뜨거운 오뎅이 날아들었다. 왜 뜨겁다는 걸 알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넣어둬라, 그것이 내 얼굴을 스쳐갔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저걸 피하다니, 나도 아직 쓸만하구나 하고 또 한번 스스로 감탄했다. 그보다, 어이 잠깐 치비타, 너는 대체 오뎅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거냐. 뒤에서 철컥하는 소리를 내며 서있는 녀석을 보자니, 겉모습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물은 상당히 바뀌었음을 알았다. , 적어도 전 강도범에게 맞설 정도로 굳세게 변한 모양이었다.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공격당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치비타, 이미 몇 년도 더 된 이야기잖나]

[그런 이유로 간단히 잊겠냐, 임마-!! 나는 지금 엄청 화가 났다고-!!]

[정말이지, , 이거 줄 테니까.....그보다, 토고씨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건가? 탈옥이라도 한 건가?]

 

아니, 탈출한 건 너겠지. 분명 치비타가 카라마츠라고 했었지. 카라마츠는 어째서 이렇게 침착한 걸까. 자신과 가족을 협박하고, 형제를 인질로 잡는 걸 가까이에서 봤을 터이다. 너무 충격적이라 오히려 침착해진 걸까. 어릴 적의 일이라곤 해도 트라우마가 될 법한 일이었다. 무섭지도 않은 건가, 아니면 요 수년간 위기관리 능력이 망가지기라도 한 건가. 게다가 방금 치비타한테 뭘 준 거야. 사탕이었지. 그것도 막대 사탕. 주머니에서 사탕이 나오다니, 평소에도 들고 다니는 거냐. 그걸로 얌전해지는 치비타도 치비타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지만, 일단 탈옥이 아님을 설명한다.

 

[........아니, 출소했다]

[, 너무 빠르지 않나?]

[, 그런 거지]

 

예상외의 전개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출소한 건 사실이다. 경찰에게 살인은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증거도 없었기에, 나는 절도죄 및 공갈죄, 유괴 미수 등의 죄목으로 잡혀들어갔다. 사람을 죽인 건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형기가 가벼워진다면야 그 정도 사실을 숨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보다 카라마츠, 너는 탈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침착했던 거냐. 대체 뭐냐, 너는.

 

[임마 토고! 오늘은 카라마츠 봐서 봐주는 거라고!! 다음번에 만났을 땐 죽을 줄 알라고!!]

[, 토고씨도 사탕 먹겠는가?]

 

제발. 제발 그만.

 

 

 

 

 

 

* * *

 

 

 

 

 

[그보다, 당신 옛날이랑 하나도 안 변했구만.........]

 

간만에 진귀한 손님이 왔다며, 비꼬듯이 치비타가 토고를 본다. 수십년도 더 된 기억이라 거의 희미했지만, 토고는 옛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했다. 특히나 저 눈매는 제 기억과 똑같았다. 체형이나 목소리는 살짝 달라졌지만, 카라마츠가 알아볼 정도라면, 틀림없이 그 토고가 맞겠지. 화냈다가 냉정해지자, 자신의 기억이 부정확했음을 자각했다.

 

[아니, 너희들이 너무 변한 거겠지....]

[그런가?]

[, 나도 어엿한 성인 남성이 되었으니 말이다....카라마츠 girls에게 어울리는 남자로]

[...........성인인가?]

[]

 

살짝 지쳐보이는 토고와는 달리, 카라마츠는 지금 이 상황이 꽤 즐거운 모양이다. 토고가 오기 전까지 축 쳐져있던 걸 생각하면, 자신을 속인 것쯤은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비타만으로는 카라마츠를 위로하기 힘들 정도로 다운되어 있었으니까. 멋을 부리는 모습이 살짝 재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미소를 띠는 카라마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고씨는 언제 출소한 건가?]

[...............오늘]

[그렇군! 그럼 출소를 축하해야겠군!]

[오늘은 치비타가 내게 마음껏 먹어도 좋다고 했거든! 그러니 이건 내가 쏘는 거다!]

 

라며 사방에 꽃을 뿌려대며 웃던 카라마츠는 자기 그릇에 담겨 있던 계란과 무를 토고의 그릇으로 옮겼다. 아니, 그보다 잠깐만.

 

[어이, 카라마츠!! 그건 너만 그렇다는 거라고...!!]

[치비타의 오뎅은 최고다! , 소힘줄도 맛있다!!]

[, 비행기 태우지 말라고, 임마아~! 치쿠와부도 줄까?]

 

카라마츠의 칭찬에 기분 좋아진 치비타는 토고의 그릇에 치쿠와부와 곤약 등을 멋대로 옮겨 담았다. 계속 교도소에 있었다면 이렇게 맛있는 건 못 먹었을 거라며 배부르게 먹고 가란 말과 함께 기쁘게 웃었다.

 

[토고씨, 안 먹을 건가? , 설마 이미 배가 부른 건가?]

 

카라마츠의 말을 들으며, 산더미처럼 쌓인 어묵 위에 다음으로 뭘 더 줄까하고 고민하던 찰나였다.

 

[너희들..........지금 나랑 장난하냐.........?!]

 

토고가 어깨를 떨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탁자에 둔 손을 꽉 쥐고, 목소리를 낮게 내리 깐 채로 입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카라마츠도 치비타도 입을 다물었다. 베일 정도로 날카롭게 노려보는 녀석의 눈은, 피곤함에 쩔어 있긴 해도 범죄자의 눈이었다. 치비타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걸 느꼈다.

 

[알고는 있는 거냐!! 나는!! 너희들을 협박했던 강도라고!!? 사람을 죽이고!! 돈을 훔친!!! 잊은 거냐?!! 네놈들은 경계심도 없는 거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소리로 외치는 토고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게 포장마차 불빛에 비쳐 제대로 보였다. 겹겹이 쌓인 오뎅의 산이 그 충격으로 무너진다. 이를 잔뜩 드러내고, 셋만의 세계를 뒤흔든다. 무서운 눈이다. 무서운 목소리다. 마치 사람을 죽일듯한 분위기를 뿜으며, 토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의 가족을 협박하고!! 형제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억지로 일을 돕게 하고!! 네 형제를 인질로 삼아 유괴하려던 사람이라고!!!]

 

, 큰일이다. 라고 치비타가 생각했을 땐 이미 늦었다.

 

[알고 있는 거냐, 카라마츠!!!! , ]

 

커다란 노성에 어울리지 않게 뒤따른 얼빠진 소리에는 놀람과 불안이 담겨있었다.

 

[.........그렇군, 미안하다 토고씨]

 

토고의 시선 끝에 보인 카라마츠의 눈에는 치비타 같은 두려움도, 토고 같은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평온하고 은은하게 외로운 듯이 흔들리는 세계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무섭지 않다. 경계를 할 정도로 토고씨가 무섭지 않다. 그런 옛날 일에 화를 낼 생각도 안 들고]

[, 하아?]

[, 아니면 설마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그렇다면............, .........아니, 내가 상대해줄, 테니까, ................, 형제한테는, , 대지..............]

 

더듬더듬 말하던 카라마츠는 결국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이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듯, 카라마츠의 안색이 안 좋다. 반사적으로 치비타는 카라마츠의 옆으로 달려가 말을 걸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토고는 내버려둔 채, 치비타는 카라마츠를 달랬다. 그 일이 있은 직후이니, 형제를 두둔하긴 역시 힘들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관두는 건, 나중의 카라마츠에게 후회가 될 뿐이었다. 그건 안 된다. 토고의 목적이 진짜 복수라고 할지라도, 아니, 그렇다면 더더욱 카라마츠를 괴롭게 둘 수는 없다. 조용히 입을 다문 채로 가슴을 문지르는 카라마츠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져주었다.

 

[카라마츠, 정신 차리라고]

[치비타............]

[...............제대로 말해둬]

[........., , ................]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카라마츠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한 눈물이 가득했다.

 

[, 대지 마..........., ]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말을 끝마치자마자 둑이라도 터진 듯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저 정도로 크게 울면 머리에 울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일단 카라마츠 좋을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탁자에 엎어져 우는 모습을 보자니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빙글빙글 어지러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그것만으론 가라앉지 않는다. 초조함, 불신, 슬픔, 그것들을 전부 집어삼키고, 치비타는 토고에게 자리에 앉으라 손짓했다.

 

[미안해, 카라마츠도 일이 좀 있거든]

[.............대체 뭐냐고, 너희들.......]

[-, 그게, ............최근에 카라마츠, 형제들 손에 죽을 뻔했거든]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좋을지 고민하며 슬쩍 내뱉은 말에, 토고는 눈을 크게 떴다.

 

[.........?]

[녀석들 전부 니트거든. 이것들이 오뎅을 매일같이 외상으로 먹고 갚지를 않기에 카라마츠를 유괴해서 몸값으로 외상값을 받아내려고, 내가 꾀를 냈단 말이야]

[, 잠깐잠깐]

 

아직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토고가 말을 막는다. 아까까지 그렇게 화를 냈던 사람으론 보이지 않는 얼빠진 얼굴이다. 하긴, 그렇게나 장난꾸러기였던 녀석들이 전원 니트라고 하니 어이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치비타가 한 짓은 거의 토고가 했던 짓들과 비슷하고. 토고는 몸값을 요구하진 않았으니, 유괴의 건만 따지자면 치비타보다 토고의 죄가 가벼울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에 기둥을 세워 묶어뒀는데, 그게, 아무도 구하러 오질 않은 거야]

[아니, 잠깐만, 이해가 안 되는데]

[? 어디서부터?]

[전부]

[그럼 그냥 들어. 전화를 했는데, 흥미라곤 없는 녀석에, 심지어 기뻐하는 녀석까지 있었다고. 그러다 결국은 엄마가 가져온 배에 관심이 끌려선 다들 카라마츠를 잊어버린 거야]

[잠깐만............진짜 그 여섯 쌍둥이의 얘기인 거냐? 그거]

 

치비타의 말을 끊은 토고는 이미 이해력 한계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토고의 안에서 여섯 쌍둥이의 이미지는 사이좋고, 밝고, 여섯명이 하나란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아이들이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토고가 오소마츠를 유괴했을 때, 바로 경찰이 오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다칠까 염려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소마츠도 가족을 걱정해 혼자 떠안았다. 평소에는 개구쟁이지만, 형제들이 위험할 때는 총명하고 듬직해지는 녀석이었다. 그럴 터였다.

 

[, 그래서 장난이라 생각하고 무시한 건가 해서, 이번에는 카라마츠를 녀석들 집앞으로 끌고가서 화형을 시켰거든]

[너는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아니, 카라마츠가 진짜 없어지면 얼마나 슬플지를 알려주려고..........]

[...........................-, 됐어 계속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이 현대의 유괴나 협박이란 말인가.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해도 별수 없을 정도로, 토고에게 있어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토고는 이미 한계였다.

 

[.....-, 그래서, 이 녀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면 구하러 나오라고 했더니, ........그랬더니 말이야, 녀석들 2층에서 카라마츠한테 둔기를, 던졌다고.........]

[...................?]

[방망이나, 후라이팬, .......맷돌, 까지.......]

 

점점 말을 흐리는 치비타를 토고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쩐지 기분이 찝찝하고 거북해진 치비타가 시선을 피하자, 그 옆에 있던 카라마츠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잠들어 있다. 울다 지쳐버린 거겠지. 머리에 감긴 붕대의 한 쪽이 느슨해져 밑으로 내려와 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라서 말이야...]

[카라마츠한테 던진 거냐, 진짜?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고?]

[.................]

[오소마츠는!? 그 녀석도!?]

[..........누가 뭘 던졌는지까지 다 기억하진 못 한다고...]

 

괴로운 표정으로 말하는 치비타에, 토고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토고의 세계가, 변하지 않았다며 안심했던 세계가, 숨이 탁 트여 편안했던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무의식적으로 그 세계의 축이 되어있던 여섯 쌍둥이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원동력이 된 여섯 쌍둥이가, 너무도 변해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변했다고 단언할 정도로, 토고는 그들의 어린 시절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과정을 하나도 몰랐다. 이 세계의 주민이라 부르기에 토고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무지했다.

 

[카라마츠 녀석, 늘 연기하듯이 멋진 말을 해댔거든. 뭐라더라, 괴롭힘 당하는 캐릭?? 같은.........]

[..................]

[아니, 도가 지나치다는 건 알지만 말이야...........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냐고 물어도 이 녀석 전혀 말해주질 않고...........결국 그것 때문이 이렇게 된 거라고!!]

[...................]

[사실은 말이야! 녀석들도 카라마츠를 좋아한다고!! , 연기 잘 못하니까...카라마츠처럼 자연스럽지 못하니까, ...........내가 벌인 일이니까, 그래서 장난이라 생각해서...............]

[......................................]

 

마치 무언가에 용서를 구하듯 두서없이 말하는 치비타. 그에게 있어서도 이번 일은 너무 커서, 아직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정리가 안 된 듯했다. 무심코 그 자리에서 혼자 도망쳐 버리기까지 했으니, 이미 치비타도 한계일 터였다. 당황한 상태로 구급차를 부른 탓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겠지. 집에 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다음날 부랴부랴 병원으로 뛰어간 건 기억하고 있지만. 사고라고 우기는 카라마츠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도, 의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어떻게 둘러댔는지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고, 카라마츠에게 부탁한 옷을 챙겨 병원에 간 건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치비타도 한계였다.

 

[............뭐어, 외상값을 내지 않은 녀석들도 나쁘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나도 녀석한테 크게 잘못했, ............]

[.................]

[, 토고..........?]

[?]

[, 아니, ..............미안...]

[.......................]

 

차가운 밤공기가 세명의 세계를 감싼다. 들리는 소리라곤 탁자에 엎어진 이의 들릴락 말락한 숨소리뿐이라, 침묵이 세계를 점점 빠르게 침식해간다. 분위기 때문인가 날씨 때문인가 모를 추위에 몸을 떨며 치비타는 현실도피를 하려는 듯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아무리 성인 남성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처로 혼자 집에 돌려보내기엔 불안하다. 막 잠에서 깨어, 몸까지 이렇게 식어서야 분명 감기에 걸리고 말 것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긴 껄끄러울테니, 자기 집에 데려가 재우려, 치비타가 카라마츠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던 순간이었다.

 

 

 

[치비타, 손 들어]

 

토고는 치비타에게 가방에서 꺼낸 식칼을 겨눴다. 아직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새 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소리 없이 치비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 ?]

[말해두겠는데, 이건 진짜 칼이고, 농담도 아니니까]

 

너무도 갑작스런 전개에 치비타의 사고가 정지했다. 눈앞에까지 들이닥친 칼날과, 코앞까지 다가온 토고의 얼굴. 자신과는 명백히 다른 범죄자의 눈을 한 토고에, 치비타는 전에 없던 공포를 느꼈다.

 

언뜻 토고가 무언가 하는 게 보이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잔뜩 풀이 죽어 있는 그가, 갑자기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까. 아니,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

 

[, 토고...........?]

[시끄럽게 굴면 죽인다. 손 들어]

 

땅을 기듯이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치비타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미 본능이 몸을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땀이 멈추질 않는다. 시야가 기분 나쁠 정도의 채도로 뒤덮여 간다. 협박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 시끄럽게 굴 여유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칼날은 눈앞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고, 토고는 그야말로 코앞까지 다가와있다.

 

그 순간, 칼날이 카라마츠의 목덜미로 향했다.

 

[, 카랏]

[그대로 움직이지 마.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카라마츠의 목숨은 끝이니까]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는 토고에, 이제 치비타는 답을 할 수 조차 없었다.

 

[어이, 일어나라 카라마츠]

[............, ...........?]

[일어나라고]

 

탁자에 엎어진 카라마츠의 귓가에 대고 큰소리로 불러 깨운다. 술을 마셨다고는 해도 얼마 마시지 않았기에, 카라마츠는 금방 일어났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치비타에게 있어 불행일 수밖에 없었다.

 

[..........토고, ?]

[깼냐. 깼으면 일어나]

[, ?]

[네가 그랬지. 복수할 거라면 자기한테 하라고]

 

아직 몽롱한 카라마츠의 눈에는 사각지대라 식칼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인자이자 강도인 토고의 무시무시한 표정만이 보일 뿐이었다. 살짝 당황은 한 듯했지만 공포는 담겨 있지 않은 푸른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에 취해있던 눈은 이젠 거의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형제에게는 손을 대지 말라고 그랬지]

 

이젠 완전히 잠에서 깬 카라마츠가 잠시 침묵하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아, 그랬지]

[나는 원래 치비타와 오소마츠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곳에 온 거거든. 이 두놈 때문에 잡힌 거니까]

[.......모처럼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고 싶은 건가?]

[닥쳐. 나한테 그 수십년이 얼마나 큰 건지 네놈은 모르잖냐]

 

칼날이 카라마츠의 목에 닿고서야 카라마츠는 그 존재를 알아챈다. 이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자신의 생사가 걸려있다. 그 때와 같은 식칼을 든 토고가 이번에는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

 

뭐어,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은 얘기지만.

 

[지금 여기서 치비타를 첫 희생자로 만드는 건 간단한 일이야. 치비타를 죽이고 싶지 않다면, 내 말대로 따라. 네가 치비타와 오소마츠의 대신이 된다면, 다시는 둘을 노리지 않겠다. 내 말 알겠냐?]

[..........알았어. 그렇게 하지]

[카라마츠!!]

[일어서]

 

다시는, 이라는 건 또 잡혀들어가더라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오늘처럼 우연히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마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다. 혼자 있을 때 마주한다면 끔찍한 전개가 될 것이다.

카라마츠는 토고의 말에 승낙하곤 그의 말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한 손으로 목발을 쥐었다. 포장마차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어둠에 선 카라마츠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치비타, 여기로 택시를 불러. 잔꾀는 부리지 말라고]

[...........토고, 카라마츠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다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죽이진 않을테니 부르기나 해]

 

카라마츠한테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치비타는 전화번호부를 꺼내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코웃음으로 받아친다. 짜증난다.

전화가 연결되고, 여전히 카라마츠를 응시한 채 상대방에게 주소를 불러준다. 혀를 씹을 것만 같다.

 

[고마워. 난 괜찮다, 치비타]

[너는 앉아있어]

[]

[보고만 있어도 아프다고. 얌전히 기다려]

 

자신이 했던 모든 생각과 말을 철회하게 만든 그 한마디에는 분명하게 카라마츠를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에 치비타는 어떠한 가설을 세웠다. 이건 어쩌면 토고의 연기인 게 아닐까. 형제들에게 너무도 모진 취급을 받는 카라마츠를 위해, 과거에 가해자였다는 점을 이용해 신빙성을 살려 형제들을 움직이게 만들 작전인 건 아닐까, 하고.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치비타는 전화 너머의 낯선 상대의 질문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상처가 다 나으면 내 일을 좀 도와줘야겠다]

[뭘 도우면 되는 건가?]

[시체를 처리하는 거다. 먹으라곤 안 해]

 

아니, 역시 기분 탓인 듯하다. 시체를 처리하라니 뭐야. 해체해서 바다에라도 버리는 건가. 아니면 산에다 묻으려는 걸까. 전화를 끊고 둘을 보았다. 언뜻 봐선 마치 부상자와 그 보호자 같다. 식칼은 이미 가방에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10분 후면 택시 올 거야]

[그래]

 

토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로 있고, 카라마츠는 그 오른쪽에 앉아있다. 치비타는 그 왼쪽에 앉아 택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차없이 쳐들어오는 침묵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뭐라 할 말도 딱히 없을뿐더러,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기, 토고씨]

[?]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

[대놓고 물어보는 거냐]

 

카라마츠는 치비타의 걱정과 망설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곧 살인범에게 유괴당할 처지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아니, 알고서 저러는 거라면 더 무섭다. 오컬트를 넘어서 사이코패스라니 감당이 안 된다고.

 

[그걸 알아서 어쩌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거라면, 그 마음의 준비라는 걸 해야 되지 않겠나...]

[돌아올지 어쩔지는 네 하기 나름이라고]

[흐음...............]

[.......토고, 진심이냐. 갑자기 표정까지 바꾸고 그렇게 말하다니.........]

[농담이라고 생각할거면 그러라고]

[그럼 치비타, 브라더들에게는 잘 말해주겠나. 이 마츠노가 차남, 마츠노 카라마츠. 사랑하는 브라더들의 가디언이 되어, 잠시 악마의 속삭임을 따르기로 했다고.......]

[누가 악마라는 거냐]

 

카라마츠는 평소와 같았다. 토고도 아까와는 달리 살의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광경 속에서, 단 한 사람, 변하지 않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무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토고와 얘기하는 그에 연기를 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토고가 한 말이 그 가능성을 낮게 만든다. 연기라고 한다면, 본심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까. 아니, 그건 숨기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뭔가 작전이라도 있는 걸까. 부탁이니,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고]

[하아.........이번엔 또 뭐야]

[처음엔 우릴 죽일 생각이었던 거냐?]

[그래]

[.................정말로?]

 

재차 확인하려는 듯 거듭 묻자, 토고는 잠자코 치비타를 내려다봤다. 노려보는 것도, 무언가를 탐지하는 것도 아닌, 그냥 치켜올라간 눈으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다 토고는 슬쩍 자신의 오른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바닥을 위로한 채, 무언가 커다란 것을 지탱하듯이, 그러면서도 그것에 매달리듯이. 하지만 치비타는 그걸 보는 토고의 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

[.........그런가]

[하지만, 이제..........너로서는 의미가 없거든]

[?]

[택시 왔네. 카라마츠, 가자]

[, 잠깐!! 토고!!]

 

끝에 툭 내던진 중얼거림에는 마치 체념한 듯한 묘한 느낌이 들어, 치비타는 무심코 토고에게 달려들었지만 토고는 이를 무시했다. 택시 기사와 뭔가 말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치비타가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강경하게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그저 반보 뒤에서 잠자코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치비타]

[.......카라마츠........]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목발로 지탱하고 선 카라마츠가 있었다. 희미하게 역광이 되어, 치비타에게 카라마츠의 그림자가 졌다. 미소를 띠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 미소에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아,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것이 분해서, 치비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마라. 전언, 부탁한다]

[......., 그런 거지 같은 말 전해줄까 보냐. 네가 없어지고 녀석들도 따끔한 맛을 한번 봐야하지 않겠냐]

[그건 곤란하다고, 치비타]

[녀석들은 곤란해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토고가 다급한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렀다. 치비타는 그 자리에 박혀 움직이지 못했다. 카라마츠는 치비타에게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토고에게 다가갔다. 가버린다. 카라마츠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토고와 함께.

가버린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카라마츠]

 

치비타의 손이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잡았다.

 

[치비타?]

[.................가지 마, 카라마츠]

[...............]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오소마츠도, 토고 따위한테 당할 놈이 아니..........]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아플 정도로, 푸른색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제 쪽으로 당긴다. 그럼에도 카라마츠는 미동도 없다. 그건 치비타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게 두려워서, 치비타는 고개를 떨궜다. 붕대가 감긴 발이 눈에 밟혀서, 평범해 빠진 그 신발이 눈에 밟혀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치비타, 양손은 내보지 않겠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위를 보자, 카라마츠는 오른손에 뭔가를 쥔 채 내밀고 있었다. 목발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탓에 자세가 불안정하다. 위험한 걸, 하고 치비타는 멍하니 양손을 카라마츠 오른손 쪽으로 내밀었다. 치비타의 손에서 빠져나온 옷자락이 구깃구깃하다.

 

[이걸 주지. 내가 네게 주는 마음이다. 받아주겠나]

 

오른손을 펼쳐 치비타의 양손에 떨군 것은, 아까 받았던 것과 같은 막대 사탕이었다. 밀크맛인지 하얀색 사탕이었다.

 

[그럼 잘 지내라, 치비타]

 

그 말을 끝으로 카라마츠는 택시에 올라탔다. 사탕이 양손 가득 자리하고 있어, 떠나가는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치비타는 그저 멀어져가는 카라마츠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슬로모션으로 흘러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치비타가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어둠속에 치비타 혼자 서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듯한 침묵에 휩싸여, 치비타는 누군가 있었다는 자취를 양손에 꼭 쥔 채로 눈물을 흘렸다.

 









오/의역 많습니다

문학적인 표현(?)이 몇 있어서 애를 먹었네요ㅠ


사실 토고 말투도 갈수록 뭔지 모르겠습니다..ㅎ





-


일단 이번 업로드는 이걸로 끝인데요

지금 식자 작업을 할 생각인데

제가 피곤함에 때려치지 않는다면

올리고 자겠습니다


....기다리진 마세요.....

올린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눈이 너무 아파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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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공포증 <후편>

 

 

 

 

쿠당.

 

 

 

 

뭐지,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평소대로 거실에서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있으니, 2층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뭐가 쓰러진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도 둔탁한 소리였다.

뭐가 쓰러져야 저런 소리가 나지? 나는 의문을 잔뜩 품은 채 다시 시선을 거울로 돌렸다. 지금 이 방에는 나뿐이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지만, 이치마츠는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장보러 나갔다. 오늘은 통 보질 못했지만, 아마 오소마츠는 2층에 있을 것이다.

나는 아까 그 소리의 원인이 여전히 신경 쓰여, 거울을 보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만약 가구라면 쾅, 정도의 단순한 소리일 텐데..... 그보다 애초에 지진도 없었는데 갑자기 쓰러질 리가.

 

 

.............어째선지 엄청 신경 쓰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신경이 쓰여 나는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거울은 탁자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실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얼른 원인을 찾아내서 해결하자.

그렇게 결심한 나는 우리가 쓰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을 대강 둘러보니 별로 변한 건 없었다. 큰 물건이 넘어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넘어진 흔적 자체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여기가 아니라 오소마츠의 방인가?

얼른 이 찝찝한 마음을 어떻게 하고 싶어 발길을 돌려 방을 나왔다. 옆방 앞까지 가자, 나는 발을 뚝 멈췄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문을 열어 버리면, 오소마츠가 놀랄지도 모른다. 그 후로 이 방에 들어갈 때에는 일단 말을 건 후에 들어가는 게 우리들의 암묵의 룰이 되었다. 나는 문에 손을 뻗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들아간다]

 

문을 열자 다다미 위에 오소마츠가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일단 방안을 가볍게 둘러봤지만, 특별히 뭐가 넘어진 흔적은 없었다. 그 소리.........내 기분 탓이었던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다니 이 얼마나 깜찍한 형님인가. 이대로는 감기 걸린다고? 정말 못 말리는 브라더다. 내가 이불을 준비해야 하지 않은가!!

나는 벽장에서 오소마츠가 쓰는 1인용 이불을 꺼내 다다미에 깔았다. 베개도 꺼내 놓아두어 준비를 끝내고, 오소마츠를 깨우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일어나라, 오소마츠. 그런 곳에서 자면 감기 걸린다]

[......................]

[오소마츠?]

 

오소마츠에게 말을 걸었지만 답이 없다. 어찌 된 일인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지만, 아무래도 푹 잠든 것 같아 그냥 들어 옮기려 오소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오소마츠를 옮기기 위해 일단 똑바로 눕혀야겠지. 어깨를 가볍게 잡아 살짝 힘을 줘 옆으로 뒤집었다. 그러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오소마츠가 괴로운 듯 숨을 헐떡이고 있어,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인가!? 엄청 괴로워 보이는데!?

..............설마 아까 그 소리의 정체는 이건가!!

 

[하아.........하아..........]

[어이!! 오소마츠!! 정신 차려라!!]

[하아............................]

 

가볍게 어깨를 흔들자, 닫혀있던 눈꺼풀이 느릿하게 열렸다. 눈동자가 뿌옇게 흐려지고 괴로움에 옅게 흔들렸다. 의식은 있든 듯했지만 체력은 없는 모양인지 힘없이 다다미 바닥에 축 늘어졌다.

, 어쩌면 좋은가...!! 운 없게도 다른 브라더들은 나가고 없다...!! 어째서 이럴 때만 나 혼자인 건가!!

나는 머리를 싸맸다. 아니, 일단 진정하자. 형님이 이렇게나 괴로워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그래!! 1층에 마미가 있지 않나!! 빨리 가서 불러오자!! 나는 오소마츠를 이불에 눕히기 위해 오소마츠의 등과 무릎 뒤에 팔을 넣고 들어올렸다. 무거울 거라 생각해 한껏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났지만, 생각보다 쉽게 일어섰다. 예상외의 가벼움에 나는 살짝 휘청거렸다. 어떻게든 발에 힘을 줘 균형을 잡았다.

!? 너무 가벼운 거 아닌가!? 말랐다고는 생각했지만....이렇게나 쉽게 들어올려지다니...

축 늘어진 오소마츠를 이불 위에 조심히 눕히고, 뺨에 손등을 맞댔다. 살짝 뜨겁다. 열이 나는군. 잘 보니 이마에 땀이 맺혀있다. 처음부터 열이 나고 있었던 걸ᄁᆞ. 나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돌아오겠다. 잠시만 참아라]

 

나는 방에서 뛰쳐나가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부엌으로 달려갔지만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거실로 향하자, 탁자를 닦고 있던 엄마가 집안을 뛰어다니는 날 보고 놀란 듯 올려다 보았다.

 

[어머, 카라마츠. 급하게 뛰어다니고, 무슨 일이니?]

[, 엄마!! 오소마츠가!! 오소마츠가!!]

[오소마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쓰려졌다!! 열이 있는 것 같은데, 엄청 괴로워하고 있다...., 아무튼 빨리!]

[알겠어. 바로 준비할테니 조금만 기다리렴]

 

내 얘기를 들은 엄마는 탁자를 닦던 행주를 들고 부엌으로 돌아갔따.

빨리!! 빨리 와줘!!

3분이 지나지도 않아, 엄마가 부엌에서 날 불렀다. 나는 급히 엄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것 좀 들고가렴. 쏟지 않게 조심하고]

 

부엌 탁자 위에는 둥글고 하얀 세숫대야가 놓여 있었다. 안에는 물이 담겨 있고, 얼음이 둥둥 떠다녔다. 아무래도 수건으로 이마를 식힐 용도인 모양이다. 딱 봐도 엄청 차가워 보였다.

나는 그걸 양손으로 조심히 들어올렸다.

 

[그럼, 가자]

 

나는 엄마 뒤를 따라서 오소마츠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가자, 오소마츠가 후우, 후우 하고 작게 괴로운 듯 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오소마츠의 옆에 얼음물이 든 대야를 내려놓고, 엄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엄마는 오소마츠의 뺨이나 이마를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엄마는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열이 심하네. 거기 있는 구급상자에서 체온계 좀 가져다줄래?]

 

구급상자? 주변을 둘러보자 다다미 위에 놓여 있었다. 초조함에 몰랐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들고 올라온 듯했다. 나는 바로 구급상자를 열어 체온계를 꺼내 엄마한테 건넸다. 체온계를 받아든 엄마는 오소마츠의 겨드랑이에 그걸 끼웠다. 그러자 다시 오소마츠가 굳게 닫힌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후으.........................?]

[그래. 괴롭지. 엄마가 알아서 할테니까, 푹 쉬렴]

 

오소마츠의 시선에 엄마에게서 내게로 옮겨간다. 날 잠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눈을 감는다. 엄마가 이불 위에 축 늘어진 오소마츠의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이 거리에서도 이마에 맺힌 땀이 보일 정도로 잔뜩 맺혀 있었다.

 

[땀이 굉장하네. 좀 닦아야겠어. 카라마츠, 거기 얼음물에 수건 좀 짜서 건네주렴]

[, 알겠다!!]

 

나는 엄마가 들고 온 하얀 수건을 3개 정도 얼음물에 집어넣었다.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지만 내게는 이런 걸로 끙끙거릴 여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오소마츠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수건에 물을 잔뜩 먹여, 1개씩 꽉 짜냈다. 그리곤 차가워진 수건을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그걸로 얼굴과 목 언저리를 닦기 시작했다. 잠시후 엄마가 날 쳐다보지도 않고 지시했다.

 

[오소마츠의 파자마 좀 가져오렴. 새로 빨아둔 게 장롱에 있을 거야]

[알겠다!!]

 

나는 황급히 방을 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장롱을 열어 재빠르게 오소마츠의 파자마를 꺼내, 그대로 2층으로 뛰어서 돌아갔지만, 갑자기 아까전의 오소마츠가 떠올랐다.

땀이 엄청났다. 그 정도로 땀을 흘렸다면 탈수증세가 올지도 모르니, 물이 필요할 거다. 가지고 가자!!

나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안을 뒤져보니, 운 좋게도 500ml 페트병의 물이 보였다.

누구 건지 모르겠지만 빌리겠다!! 브라더 거라면 미안하다!! 나중에 사서 되돌려놓겠다!!

그걸 움켜쥐고 거칠게 문을 닫으며 2층으로 뛰어갔다. 살짝 숨을 헉헉거리며 방으로 돌아가서, 파자마를 엄마에게 건넸다. 하지만 엄마는 눈썹을 찌푸린 채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 손에는 아까 오소마츠의 겨드랑이에 끼웠던 체온계가 들려 있었다.

 

[, 얼마나 나는가?]

[.....38.4도네.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나을지도]

 

엄마는 체온계를 구급상자에 넣으며 말했다. 그걸 본 나는 부탁받은 파자마를 엄마에게 다시 건넸다. 엄마가 파자마를 받아들며 내가 들고 온 페트병을 바라보았따.

 

[어머, 물도 가지고 온 거니? 고마워]

[필요할 것 같아서...나도 갈아입히는 거 돕겠다]

[부탁할게. 나는 오소마츠 몸을 닦을테니 갈아입히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오소마츠의 파카를 재빠르게 벗겼다. 생각보다 옷이 땀에 축축하게 젖은 탓에 몸에 달라붙어 벗기기 힘든 듯했다. 옷을 다 벗긴 엄마가 오소마츠의 몸을 닦았다. 오소마츠는 피부에 닿는 차가운 수건의 감촉이 좋았는지,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점점 풀렸다. 엄마는 오소마츠의 상반신을 다 닦고,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곤 수건을 바꿔 아까처럼 찐득하게 젖은 몸을 닦아나갔다. 나는 페트병을 다다미에 놓아두고 엄마가 하반신을 닦는 사이 파자마 상의를 입혔다. 파자마를 오소마츠 위에 덮어씌워 축 늘어진 팔을 알맞게 끼워 입혔다. 단추를 다 채우자 마침 엄마도 다 끝났는지 얼음물에 수건을 담갔다. 나는 계속해서 바지를 갈아입혔다. 완전히 다 갈아입히자, 엄마는 오소마츠를 조심히 안아 올렸다.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물 가져왔으니까 마시렴]

 

나는 페트병을 뚜껑을 열어 엄마에게 건넸다. 오소마츠가 눈을 뜬 걸 확인한 엄마는 페트병을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오소마츠는 양손으로 병을 잡아 입에 대고 천천히 목을 축였다. 꿀꺽이는 소리가 나고, 페트병 안의 물이 4분의 1 정도 마신 오소마츠는 엄마에게 병을 건넸다. 엄마는 병을 받아들고 다시 오소마츠를 이불 위에 천천히 눕혔다.

 

[오소마츠, 머리나 배가 아프지는 않니?]

[...... ......괜찮..................]

 

오소마츠가 띄엄띄엄 대답을 하자, 엄마는 오소마츠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얼음물로 차가워진 수건을 꽉 짜내어 오소마츠의 이마에 내려놓았다. 나는 페트병을 받아 뚜껑을 닫았다.

 

[이걸로 괜찮겠지. 일단 상태를 지켜보자]

[고마워. 엄마]

[너도 수고했어. 잘했어]

 

어느새 오소마츠의 호흡이 안정됐다.

엄마가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을 뿐. 나 혼자였다면 이렇게 제대로 대처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엄마가 집에 있어 살았다. 우리가 어릴 때 열이 나거나 하면, 이런 식으로 간호했던 걸까. 역이 우리들의 엄마다. 이렇게 엄마에게 쓰다듬어지는 것도 오랜만이군. 나는 뭔가 수줍어져 살짝 웃었다.

 

 

 

 

결국 저녁이 되어버렸다.

장을 보고 돌아온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집에 아무도 없는 걸 의아하게 여겨 오소마츠 방을 살피러 왔다. 이불에 누워 엄마의 간호를 받고 있는 오소마츠형을 보고 놀란 눈치다. 놀라는 것도 당연하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바싹 다가와 물어오는 동생들을 나는 옆방으로 끌고 가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모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문득 창밖을 보니,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치마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군. 투둑투둑 비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동생들의 대화소리에 섞여들어 희미하게 울려퍼졌다.

동생들에게 설명한 뒤, 거실로 내려가 다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려 했지만 어째선지 내키지 않았다. 기분이 마치 바깥 날씨 같았다. 오소마츠의 상태가 계속 신경이 쓰여, 결국 나는 오소마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에게 상태를 묻자, 열은 거의 내려갔다고 했다. 딱 봐도 호흡이 안정된 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능한 옆에 있고 싶어서, 오늘만은 오소마츠의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때때로 오소마츠의 상태를 묻곤 했던 나를 알기에, 엄마는 내게 오소마츠의 간호를 맡겼다. 엄마는 중간중간 물수건을 바꿀 것과,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를 부를 것 등의 말을 남기곤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나는 엄마가 말한 대로 몇 번씩이나 부지런히 물수건을 교체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점차 방도 어둑어둑해졌다.

슬슬 불을 켜야겠지? 하지만 오소마츠는 자고 있으니까.... 모처럼 잘 자고 있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다. 쿨쿨 잔느 오소마츠의 뺨을 쓰다듬자, 아까 만졌을 때보다 체온이 떨어진 게 느껴졌다.

다행이다. 이대로 괜찮아지면 좋겠는데.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한 탓일까,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참지 못하고 후아암~ 하고 크게 하품을 한다.

이런. 완전 졸려. 오소마츠의 열도 내린 것 같고, 잠시 눈 좀 붙일까. 나는 오소마츠 옆에 누워 무거워진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후으...................우윽.............]

 

괴로운 신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으으응.....자버렸군.

몽롱한 의식으로 눈을 떴지만,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잔 거지...........자기 전에 뭘 했더라..........

그래.......오소마츠의 간호를..........

!!!

 

나는 바닥을 짚으며 벌떡 일어났다.

설마라고 할 것도 없지만, 방금 그건 오소마츠의 소리!?

나는 황급히 방의 불을 켰다. 그러자 거기에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작게 신음하고 있는 오소마츠가 보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땐 정면으로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엎드린 채다. 엎어졌을 때 떨어진 건지 수건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는 재빨리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나!? 어디가 아픈가?!]

[우으.......................]

 

내가 수건을 갈아주는 걸 잊어서 그런 건가!? 자버렸으니까.........!! 부탁이니 죽지만 말아다오!!

견디기 힘든 죄악감에 나는 울상이 되어 오소마츠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힘겹게 눈을 뜨고는 작은 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했다.

 

[속이, , 좋아...........................]

[속이 안 좋은가!? 봉지 가져올테니 기다려라!!]

 

나는 황급히 방을 뛰쳐나가 계단을 내려갔다. 쿵쾅쿵쾅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내려온 탓에 쵸로마츠가 거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쿵쾅쿵쾅 시끄러워. 어라, 카라마츠형? 쥬시마츠라고 생각했는데]

[, 엄마, 엄마는!?]

[........저녁 준비하고 있을 걸...]

 

쵸로마츠의 답을 듣자마자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으로 가자 엄마가 칼로 야채를 썰고 있었다.

 

[엄마!! 오소마츠형이 토할 것 같은 모양이다!! 봉지!! 봉지를!!]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야채를 썰던 손을 멈추고 바로 봉지를 꺼내주었다. 그리곤 그걸 내게 건네주며,

 

[엄마도 나중에 상태 보러 갈테니까. 그때까지 좀 부탁할게]

[고마워, 엄마!! 맡겨줘!!]

 

나는 재빨리 부엌을 나와 오소마츠가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곤 엎어져 있는 오소마츠에게로 달려갔다.

 

[많이 기다렸지!! 토할 것 같은가!?]

[구으...................]

 

나는 토하기 쉽게 오소마츠를 일으켜 세우려 손을 뻗었다. ,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멈춰 버렸다.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도 역시 싫겠지........아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오소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싫어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그럴 여유조차 없는 모양이다.

일단 엎어진 오소마츠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안아 일으켰다. 오소마츠를 이불 위에 앉히고, 엄마에게 받은 봉지를 벌려 오소마츠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까 반응이 없었기에 만져도 괜찮겠다 생각해, 나는 오소마츠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괜찮은가? 토할 것 같으면 거기에 토해라]

[우으.....................]

 

오소마츠가 봉지 앞에서 괴로운 듯 신음했다. 오소마츠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잠들기 전에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지금은 핏기가 싹 가신 듯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열 다음은 구토기인가. 헛되게 체력을 뺏긴 오소마츠를 보고 있자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면 좋으련만.

 

[후윽.........!! 우에에에에에에에엑!!]

 

오소마츠는 몇 번인가 불규칙하게 봉지에 대로 토했다. 쓰러져서 아무것도 못 먹은 탓에 위액만 토해냈다. 내놓을 것도 없는데 쥐어짜진 위에, 오소마츠의 체력은 상당히 소모됐다. 굉장한 고통에, 오소마츠의 뺨에 눈물 타고 흘렀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리적으로 나온 거겠지. 나는 새로운 수건을 들어 눈물을 살짝 닦아주었다.

 

[하아...............]

[어떤가? 아직도 토할 것 같은가?]

[.......괴로.......]

 

진정한 듯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시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바라면서 다시 오소마츠의 등을 쓸어주었다.

보고 있는 것밖에 못하다니. 너무도 답답하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엄마가 온 듯하다.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

 

[오소마츠의 상태는 어떠니?]

 

엄마가 오소마츠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봉투를 향해 불규칙적으로 구역질을 해대는 오소마츠를 본 엄마는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괴로워 보이네. 어때? 열은 좀 내려갔니?]

[아직 체온계로 재보지는 않아서 모르겠다만 내려간 것 같다]

[그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에서 나갔다. 복도까지 나간 엄마는 뒤돌아보며 내게 말을 걸었다.

 

[바로 돌아올테니까, 오소마츠 좀 부탁할게. , 체온계로 열도 좀 재두고]

 

그렇게 말하곤 계단을 내려갔다. 뭘 가지러 간 걸까..

일단 체온계부터 가져오자. 나는 오소마츠한테서 떨어져 구급상자를 열어 체온계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들고 오소마츠에게 되돌아갔다.

 

[잠깐 실례하겠다]

 

나는 오소마츠의 파자마 단추를 2개 정도 열고, 체온계를 옆구리에 끼웠다.

 

[체온을 재겠다. 잠깐만 이걸 끼고 있어라]

 

그렇게 말하자 오소마츠는 슬쩍 팔을 내려 체온계를 옆구리로 꽉 붙들었다. 마침 2번째 큰 구토감이 밀려왔는지 크게 구역질을 했다.

 

[......!! 구으........!!]

 

나는 불규칙적으로 튀어오르는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솔직히 보고 싶지 않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팠다.

 

[괜찮....지 않겠지.... 힘내라..]

[.....! 오에에에에에엑!!!]

 

다시 오소마츠는 봉지를 향해 구토했다. 하지만 아까보단 양이 적었다. 토한 후라서 위도 조금 진정했는지 횟수도 줄어들었다.

 

[읏하아, 하아..........힘들엇......]

[괴롭겠지. 수고했다]

 

등을 계속해서 쓰다듬고 있자, 엄마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 타이밍에 삐빅, 하고 체온계가 울렸다. 나는 다시 오소마츠의 가슴 쪽으로 손을 뻗어 체온계를 빼냈다. 체온계를 보니, 36.8도였다.

다행이다, 열은 내려간 것 같다.

나는 오소마츠의 체온을 엄마게에 알리고, 오소마츠가 토한 봉투를 받아들어 새로운 봉투로 바꿔주었다.

 

[전화로 확인해보니 아카츠카 병원 아직 열려있대. 열은 내린 것 같지만 역시 가봐야할 것 같아서]

 

엄마는 오소마츠의 이마에서 떨어진 수건을 주워들어 주변을 간단히 정리했다. 나도 체온계를 구급상자에 다시 돌려놓았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오소마츠의 입가를 수건으로 닦고 내게 말했다.

 

[카라마츠도 따라오렴]

[물론이지!! 엄마!]

[덕분에 살았어. 이 상태라면 스스로 일어서는 것도 힘들테니까, 차로 좀 옮겨주렴]

[걱정마라, 내게 맡겨줘!]

[그럼, 오소마츠를 등에 업혀줄테니까, 거기 앉아보렴]

 

나는 오소마츠를 등지고 앉았다. 그러자 등이 따스해졌다. 부시럭 소리가 나며 봉투를 쥔 손이 목에 둘러진다. 오소마츠의 구토기는 진정된 것 같지만, 작게 신음하고 있었다.

 

[읏차. , 오소마츠. 카라마츠한테 제대로 업히렴. 떨어질라]

 

엄마 말에, 오소마츠가 힘을 살짝 줘서 껴안는다.

오소마츠를 업고 조심히 계단을 내려가 그대로 현관으로 향한다. 재빠르게 다리만 움직여 신발을 신고, 오소마츠를 다시 고쳐 업는다.

뒤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거실에서 나온다. 아마 봉투를 버리고 지갑이나 휴대폰을 챙겨 온 거겠지. 거실에서 나온 엄마 뒤에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따라 나왔다. 내 등에 축 늘어져 업힌 오소마츠를 보고 상당히 놀란 듯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오소마츠형 괜찮아!? 죽은 거 아니지!?]

[형 엄청 힘들어 보여..]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우으.............]

 

내 어깨에서 가냘픈 숨소리를 내던 오소마츠는 동생들에게 반응할 기력도 없는지 작게 신음만 했다.

이거 진짜 위험한 거 아닌가? 빨리 병원에 가서 진찰 받아야겠어....!!

 

[아카츠카 병원에 갔다 올게. 가능한 빨리 올테니까 저녁밥 조금 기다리렴]

[다녀오겠다]

 

걱정스레 바라보는 동생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차에 가자 엄마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충격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오소마츠를 좌석에 눕혔다.

 

[후으........하아........]

[조금만 참아라]

 

문을 닫고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했다. 엄마가 차에 시동을 켰고, 우리는 아카츠카 병원으로 향했다.

 

 

 

 

아카츠카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오소마츠는, 속도 안 좋은데 차가 흔들려서인지 멀미를 심하게 해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얼굴은 완전히 새파랗게 질렸고, 기적적으로 아직까지 손에 들린 봉투에는 살짝 위액이 차있었다. 오소마츠를 다시 등에 업었지만, 이젠 날 붙잡을 힘도 없는지 팔을 그냥 걸치고만 있었다.

잘못해서 떨어뜨리지 않도록 구부정한 자세로 엄마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오소마츠를 업고 진찰실로 들어가자, 의사는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사의 지시대로 의자가 아닌 근처에 있는 침대에 오소마츠를 눕혔다. 의사는 오소마츠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엄마와 얘기를 나눴지만, 결국 확실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낮에 열이 났었는데, 그게 감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의사가 탈수 증세가 있는 것 같다며, 오늘은 일단 수액을 맞고 상태를 지켜보자며 오소마츠에게 링거 주사를 팔에 꽂았다. 수액을 다 맞자, 접수처에서 엄마가 구역질을 막는 약의 처방전을 받아왔다. 체력이 어느 정도 붙어 쿨쿨 잠든 오소마츠를 보니, 여기에 왔을 때보다 안색이 편해진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 잠든 오소마츠를 업고 다시 뒷좌석에 눕힌 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자 우리들이 아카츠카 병원에 간 사이 이치마츠도 돌아온 듯, 동생 전원이 집앞까지 마중나와 있었다. 현관에 모여 눈썹을 축 늘어뜨린 동생들을 지나 2층으로 갔다.

미안하다, 브라더. 걱정하는 건 알겠다만, 일단 오소마츠를 눕혀야 하니까 말이다. 나중에 다 설명할테니 지금은 조금만 기다려주게. 그 전에 마미가 얘기해주겠지만.

계단을 올라 오소마츠 방으로 가서 아직 그대로 깔려 있는 이불에 오소마츠를 천천히 눕혔다. 아까 병원에서 열을 쟀을 땐 평균 체온이었으니 아마 괜찮겠지. 아직도 구역질이 나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이 추우면 또 열이 날지도 모르니, 이불을 꼭 덮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토닥토닥, 오소마츠의 가슴부근을 가볍게 두드리자, 졸린 듯 감긴 눈이 슬쩍 열린다.

설마 깨워버린 건가?

 

[미안하다. 깨워버린 건가]

[...아니. 괜찮아]

 

오소마츠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냥 저절로 눈이 떠진 거라며 눈을 살짝 찡그렸다.

 

[상태는 어떤가?]

[....아직 조금, 속이 안 좋은...것 같아..]

[...그런가.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으니, 이걸 먹어라]

 

나는 차에서 내릴 때 엄마한테 받은 처방전을 아카츠카 병원에 속한 약국에 가져가 알약을 받아왔다.

아 맞아, .......

방을 둘러봤지만 물은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가기 전에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둔 모양이다. 1층에 내려가 봐야겠군. 약을 먹으려면 뭘 먹는 게 위에 부담도 안 갈테고.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지. 뭐 먹을 수 있겠는가?]

[.....필요없어]

 

그럴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소식을 했던 게 위에 상당한 부담을 줬을 거다. 게다가 오늘 구토까지 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먹일 수는 없다.

 

[약만 먹으면 위에 안 좋다고]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조금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나는 무언의 반항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먹어도 토할 것 같아서 싫은 건 이해하겠다만, 그래도 약을 먹지 않으면 계속 괴로울 거다]

[...............알겠어]

 

살짝 저항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납득한 듯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간호하고 있을 때 쵸로마츠들이 장을 보러 가서 푸딩이랑 젤리를 사왔다고 했었지?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 엄마가 그랬었으니까.

 

[젤리랑 푸딩 어느게 좋은가?]

[.....젤리, 무슨 맛?]

[아마 복숭아일 거다]

[.....그럼 젤리로]

[알겠다. 금방 돌아오겠다]

 

나는 물과 젤리를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쵸로마츠가 방에 들어왔다. 쵸로마츠의 발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카라마츠. 오소마츠형 어때, 괜찮대?]

[쵸로마츠인가. 열은 내렸지만 아직 속이 안 좋은 모양이다]

[....그래. , 이거 엄마가 갖다주래]

 

쵸로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가까이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손에 들린 건 복숭아맛 젤리와 물이었다. 아까 오소마츠가 말했던 젤리와 물을 쵸로마츠가 대신 가져온 덕분에, 가지러 가려 일어섰던 나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물은 그렇다 치지만, 젤리는 어떻게 알고 가져온 거지?!

타이밍이 맞아서 우리들 얘기를 듣고 가져온 건 아닐테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날 쵸로마츠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뭔가 떠오른 듯 눈썹을 축 내리고 나와 오소마츠를 향해 머뭇거리며 말했다.

 

[......설마 푸딩이 더 좋았어..? 다시 가져올까?]

[아니, 그거면 됐다. 아니 오히려 그거여야 한다. 오소마츠가 그걸 원했거든]

[그래? 그럼 다행이고. 뭘 가져갈까 고민했는데, 어쩐지 이게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느낌으로 가져온 건가. 쵸로마츠라면 둘 다 가져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정말 이럴 땐 여섯 쌍둥이란 걸 실감한단 말이지.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 나도 가끔 경험하니까 이해한다.

예전에, 어쩐지 감자칩이 먹고 싶어져서 사들고 집에 와서 먹고 있으니, 형제들이 다 하나같이 손에 감자칩을 들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음식에 관한 것만 치자면 2자릿수는 훨씬 넘고도 남을 것이다.

 

[약 먹어야 하잖아? 그럼 이거 조금이라도 먹어]

 

그렇게 말하는 쵸로마츠를 슬쩍 본 나는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소마츠, 일어날 수 있겠는가?]

[.....]

 

오소마츠는 짧게 답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는 아직 조금 졸린 듯 눈을 천천히 꿈뻑거렸다. 쵸로마츠가 숟가락으로 젤리를 떠서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 - ]

[-...]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순순히 입을 벌렸다. 입에 젤리를 넣자, 우물우물 씹기 시작하는 오소마츠는 몇 번인가 씹어 삼키더니 입을 꾹 다물곤 열지를 않았다. 그리곤 숟가락을 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이제 됐어]

[...반쯤 먹었으니 괜찮겠지]

 

쵸로마츠의 손에 들린 젤리를 보니, 3분의 2 정도 줄어있다. 이 정도 먹었으니 충분하겠지.

나는 쵸로마츠한테 눈짓을 하며 아까 꺼낸 알약을 오소마츠에게 줬다. 쵸로마츠는 먹다만 젤리를 바닥에 두고 물이 든 페트병 뚜껑을 따서 비어있는 오소마츠의 반대쪽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 먹으면 속이 좀 편해질 거다]

 

오소마츠는 약을 입에 털어넣고 페트병을 기울여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약을 삼킨 오소마츠는 페트병을 입에서 떼고 쵸로마츠에게 건넸다.

 

[지쳤지. 이제 푹 쉬어라]

[오소마츠형,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해]

[.......]

 

대충 식사를 마친 오소마츠를 다시 이불에 눕히고, 쵸로마츠가 이불을 오소마츠의 턱밑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오소마츠는 작게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꿈속으로 떠난 오소마츠를 본 나와 쵸로마츠는 얼굴을 마주보며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빨리 건강해지면 좋겠네]

[그러게]

[, 엄마가 곧 저녁 다 된다고 하던데. 아마 지금쯤 다 됐지 않았을까. 밑에 내려가자]

[그렇다면 내려가야지. 가자, 쵸로마츠]

 

쵸로마츠가 젤리와 페트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나도 일어나려다, 어쩐지, 정말 어쩐지 그냥 만지고 싶어져서 오소마츠의 뺨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는 쵸로마츠의 뒤를 따라 재빨리 방을 떠났다.

 

 

 

 

 

아카츠카 병원의 약 덕분인지 가족들의 간호 덕분인지 오소마츠형은 점점 상태가 좋아졌다. 오소마츠형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온 지 딱 2일째가 됐다. 우리들은 늘 그렇듯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때 엄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거실로 들어왔다.

이걸 데자뷰라고 할까. 나쁜 느낌은 안 들지만, 어쩐지 오소마츠형에 관한 일임을 짐작했다. 지금 단계에서 예상하긴 힘들지만.

엄마는 우리들이 전부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에 대한 건데]

 

, 역시나. 딱 보면 안다니까.

특히 안 좋은 일에 관해서는 더욱 더.

 

[아카츠카 병원에서 오소마츠의 열이나 구토의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던 거, 전에 말했었지. 그 원인 말인데...]

 

누군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순간적으로 살짝 머뭇거리더니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있다더라고....]

 

엄마의 말에 우리들은 서로 마주봤다.

스트레스..... 그 원인으로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

우리들이었다.

 

[역시 억지로 참고 있었나 봐]

 

엄마가 말하기 괴로운 듯 눈썹을 내리깔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해는 간다.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나도 눈썹을 축 내리까는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했으니까.

 

 

[너희들이 걱정하는 건 안단다. 엄마니까. 하지만, 지금 그 애한테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 건 역효과일 뿐이야. 당분간은 잠자코 있어주렴]

 

침묵이 우리들을 감쌌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침울한 표정으로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알겠어. 엄마]

 

먼저 침묵을 깬 건 카라마츠였다. 나도 뭔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조용히 말을 삼켰다.

이건 지금 할 말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다들 똑같을 거다.

 

[오소마츠를 만나지 말라고까지는 안 할게. 방에 찾아가는 횟수를 줄였으면 하는 것뿐이니까.

오소마츠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이제 우리들이 모인 거실에는 오지 않겠지.

이것만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그렇게 타일렀다.

 

 

 

 

* * *

 

 

 

 

기분 좋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그 다정한 손길이 마치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는 듯 조심스럽다.

 

잠겨있던 의식이 점차 돌아오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좀 더 쓰다듬어 줬으면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막 잠에서 깨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몸을 일으켜 남아있는 잠을 쫓아내려 눈을 부릅뜬다. 아무래도 나는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든 모양이다.

어째선지 움직임이 없는 상대에, 시선을 돌려 멍한 의식으로 쳐다봤다. 상대가 살짝 떨고 있는 걸 보고, 나는 겨우 그 상대가 오소마츠임을 알아챘다. 멍한 표정을 숨길 생각도 않고 중얼거렸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형님?]

[!!]

 

내 말에 반응한 오소마츠는 다시 한 번 몸을 움찔하고 떨며 당황했다. 갈 곳 잃은 손이 허공을 맴돈다.

 

[.....그게.........,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갔다.

뛰면 위험하다, 라고 불러 세울 틈도 없이 오소마츠는 이미 방 저편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옆방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의문과 함께 방에 혼자 남겨진 나는 멍한 머리를 열심히 굴려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그 답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이 1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2시부터 쥬시마츠와 나가기로 했으니 슬슬 준비해야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올려 기지개를 켰다. 앉아서 잔 탓에 뻐근해진 등이 뚜둑뚜둑 소리를 냈다.

 

 

이제 곧 쥬시마츠와의 약속 시간이다.

준비를 마친 나는 2층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참고로 쥬시마츠는 아침부터 배트를 휘두르러 간 모양이었다. 제대로 시간 맞춰서 돌아오려나. 아마 돌아오겠지. 쥬시마츠니까 날아서라도 돌아올 거다. 실제로 단 한번도 늦게 온 적이 없었으니까. 어느 의미로 존경스럽다. 대부분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이지 지루하다. 팔꿈치를 탁자에 대고 턱을 괸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다. 거실에는 나뿐이다. 나와 오소마츠 말고는 다 외출한 듯, 아까 현관을 슬쩍 보니 신발이 없었다.

.....그래. 거울이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야겠군. 그거라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우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로 행동에 옮겼다. 2층방으로 돌아가 마음에 든 파란색 손거울을 서랍에서 꺼낸 뒤 서랍문을 닫았다. 그리곤 재빨리 거실로 돌아가 아까 앉았던 곳에 다시 앉았다. 나는 평소처럼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으음~. 오늘의 나도 정말 멋있군. 변함없이 COOL하다.

나는 손거울의 각도를 바꾸거나, 포즈를 취하는 등 거울 속의 나에게 심취했다. 그렇게 한동안 심취해있자, 현관에서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쥬시마츠가 돌아온 거겠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좀 더 즐기고 싶었다만...

손거울에서 시선을 돌려 시계를 보자, 2시였다. 드르륵 현관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우다다, 하고 기운 넘치는 발소리를 내며 쥬시마츠가 거실에 들어왔다.

 

[다녀왔스루!!]

[어서와, 쥬시마츠]

 

나는 쥬시마츠를 보며 손거울을 탁자에 내려뒀다.

 

[카라마츠형!! 준비 다 됐어!?]

[물론이다, 브라더-. 언제라도 출발해도 된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옷 갈아입고 올게!]

 

내 답을 듣기도 전에 쌩하니 거실을 나가는 쥬시마츠.

그럼, 쥬시마츠가 옷 갈아입고 오는 동안 거울을 치워야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또 다시 우다다 하는 발소리가 나면서 쥬시마츠가 거실로 돌아왔다. 유니폼에서 낯익은 노란색 후드로 갈아입은 쥬시마츠.

몇 분....아니 몇 초만에 옷을 갈아입었다고!? 놀란 내게 쥬시마츠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래? 카라마츠형]

[...?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이유는 간단!! 그건 내가 쥬시마츠니까!]

[...그런가]

 

왠지 나는 그 어처구니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됐다.

쥬시마츠라면 가능하지.

 

[준비 다 됐으면 가자!]

 

쥬시마츠가 옷자락에 감춰진 손을 뻗어 재빠르게 내 팔을 잡아 밖으로 끌고 갔다.

여전히 아이 같군, 아니, 지금 그럴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여차하면 끌려갈 정도의 힘이다. 보는 것만으론 그 힘을 알 수 없겠지만.

 

[논논논, 쥬시마-?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목적지는 도망치지 않는다고~? 그러니 일단 이 손 좀 놓겠나]

[아이!!]

 

내 말을 들은 쥬시마츠는 재빨리 손을 놓았다. 나는 거실을 나가 현관으로 향했다. 내 뒤를 쥬시마츠가 깡총거리며 따라왔다.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왔다.

밖은 아주 쾌청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파칭코나 카라마츠 girls를 만나러 가지 않았군. 나도 모르게 그렇게나 오소마츠를 간호했던 건가. 이제 간호할 필요 없고, 게다가 앞으로는....... 어쩐지 그 뒤는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 생각하길 그만뒀다.

집을 나선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내 뒤를 따라오던 쥬시마츠가 내 옆으로 와서 발을 맞춰 걸었다. 그런 쥬시마츠를 흘끗 보곤 신경 쓰였던 걸 물었다.

 

[저기, 데카판 박사란 어떤 사람인가]

 

오늘, 쥬시마츠와 갈 곳은 파칭코가 아니다. 쥬시마츠와 친하게 지내는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를 가보기로 했다. 어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쥬시마츠가 같이 가자고 권유를 했다. 특별한 예정도 없었던 나는 쥬시마츠의 권유를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그게 말이야-! 데카판 박사는 엄청난 사람이야!! 뭐든 만들어!]

[그런가]

[기분약도 데카판 박사가 만든 거야!! 굉장하지-!!]

[? ...........아아, 굉장한 사람이군]

 

손을 활짝 벌리며 웃는 쥬시마츠에 나는 그렇구나, 라며 맞장구를 쳤다.

방금 전에 말한 기분약이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굉장한 약인 건 틀림없다. 잠시 쥬시마츠와 정신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으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쥬시마츠가 발을 멈춰, 나도 따라 멈춰 섰다.

 

[도착했어!! 여기가 박사의 연구소야!]

 

쥬시마츠가 붕붕 소매를 흔들며 연구소를 가리켰다.

시선을 옮기자 거기엔 하얀색 건물이 있었다. 연구소라고 들었는데, 상상과는 달리 별거 없는 건물이었다. 쥬시마츠는 뿅뿅 뛰듯이 계단을 올라가 건물 앞에 섰다. 그러자 자동문인지 문이 좌우로 스르륵 열렸다. 나도 쥬시마츠를 따라 건물 앞으로 갔다.

 

[이리오너라-!! 이리오너라-!]

 

연구소 입구에서 쥬시마츠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커다란 트렁크에 백의를 걸친 남성이 나타났다. 이 사람이 쥬시마츠가 말한 데카판 박사인 걸까. 남성은 우리들 쪽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그래도 저 차림은 너무 춥지 않은가?

 

[호에호에. 쥬시마츠군다스까!!]

[안녕! 데카판박사!]

[. 안녕이다스]

 

쥬시마츠는 데카판 박사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내게 시선을 돌리곤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 뭔가? 나도 인사하라는 건가?

 

[-, 처음 뵙겠습니다. 카라마츠입니다]

[호에. 처음 뵙겠다스. 데카판 박사다스]

 

데카판 박사는 나와 인사를 하곤 웃으며 우리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데카판 박사의 안내를 받아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마침 일도 끝난 참이었다스. 오늘은 무슨 일로 왔다스?]

[그냥!! 그치만 뭔가 재밌는 약 같은 거 있어??]

[호에호에. 잠깐 기다려 보라다스]

 

그렇게 말한 데카판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선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알약이 든 병 4개 정도를 양손으로 들고 돌아와 그걸 탁자에 놓았다. 병들이 부딪혀 카랑, 하는 소리가 났다.

 

[이게 추천작이다스. 몸에 피해는 없으니 걱정은 말라다스. 그 전에 이걸 먼저 봤으면 한다스]

 

데카판 박사가 4개의 병들 중, 특별할 것도 없는 흰색 알약이 든 라벨 없는 병을 꺼내, , 하고 우리들 앞에 내려놓았다.

 

[이걸 오소마츠군에게 줬으면 한다스]

[!?]

 

갑자기 오소마츠의 이름이 나와 나는 무심코 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데카판 박사는 오소마츠를 만난 건가!?

쥬시마츠가 눈앞에 놓인 알약이 든 병을 받았다.

 

[알겠어!! 줄게!!]

[, 자자, 잠깐만 쥬시마~~? 그건 무슨 약인가~?]

[몰라-]

[Oh.........]

 

나는 머리를 싸맸다.

설마 하던 답이 돌아왔다. 이래선 납득을 할 수가 없잖나.

게다가 뭔가 찝찝하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안 좋은 예감이 맞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데카판 박사에게 약의 용도를 물으려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데카판 박사. 이건 무슨 약인가?]

[이건 정반대약이다스. 상대방을 향한 마음을 정반대로 바꾸는 약이다스]

 

그 답을 들은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뭐라고? 상대방을 향한 마음을 정반대로 만드는 약이라고?

설마....아니,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

정신 차리자.

 

[오소마츠한테 부탁받은 건가..?]

[그렇다스]

 

심상치 않은 내 심경의 변화에, 쥬시마츠가 헤아린 듯 걱정스러운 눈으로 잠자코 날 바라봤다.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던 나는 데카판 박사에게 질문을 했다.

 

[전에도 오소마츠한테 준 게 있는가?]

[있다스. 대개 한달에 한병씩 준다스]

 

한달에 한병?

점점 의문이 명확해진다.

마치 짙은 안개가 걷히는 듯하다.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언제부터, 준 건가?]

[작년부터 줬다스. 아마 1년 정도 된 것 같다스]

 

1.

그 단어를 들은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침내 알아냈다.

땀이 내 뺨을 타고 흘렀다.

빨리, 빨리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갑자기 벌떡 일어선 나를 쥬시마츠가 당황하며 올려다본다.

쥬시마츠, 미안하다. 모처럼 놀러 나왔는데.

하지만 빨리 돌아가야 한다.

나는 쥬시마츠의 팔을 잡아 일으켜, 쥬시마츠가 갖고 있던 병을 받아 들었다. 그걸 탁자에 세게 내려놓으며 데카판에게 말했다.

 

[모처럼 만들어줬는데 미안하지만, 이건 받을 수 없다]

[호에호에!? 갑자기 왜 그러는 거다스!?]

[이제 오소마츠에게 이 약은 주지 않을 거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알겠다스]

 

설마 거절당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듯 크게 놀란 데카판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걸 확인한 나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쥬시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가자, 쥬시마츠]

[!?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고, 카라마츠형!!]

[중요한 일이 생겼다. 다음에 또 오지]

[중요한 일? 그럼 어쩔 수 없네!! 알겠어!! 미안, 데카판 박사!! 우리들 이만 가볼게!!]

 

진지한 내 목소리에 쥬시마츠는 거리낌 없이 납득했다. 그리고 데카판 박사를 향해 쥬시마츠가 그렇게 말했다.

이해가 빨라 다행이다. 너의 그런 점이 정말 좋다.

 

[그렇슴까....알겠다스. 다음에 또 오라다스]

[물론이지!! 또 올게!!]

 

마지막으로 쥬시마츠가 데카판 박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쥬시마츠의 펄렁이는 소매를 잡아 빠른 걸음으로 연구소를 나왔다. 내 손에 끌려나온 쥬시마츠는 내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를 나와 멈추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일단 집에 가면 오소마츠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하자.

그 뒤에 쵸로마츠랑 이치마츠, 토도마츠에게 연락을 하자.

자세한 이야기는 모두 모였을 때 하는 게 좋겠지.

 

[...카라마츠형. 화났어?]

[그런 건 아니다. 네가 잘못한 건 더더욱 없고. 모두 오소마츠가 잘못한 거다]

 

쥬시마츠의 말대로 나는 화난 걸지도 모른다.

쥬시마츠의 소매를 끌며, 부글부글 치미는 감정이 속에 들끓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말할 여유도 없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꾹 다문 채 걷기만 했다.

 

 

 

 

 

 

아아.

 

나는 오늘도 평소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집에서 나가고 며칠이 지났을까.

-....오늘이 며칠인지, 몇시 몇분인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모든 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체내시계[각주:1]가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해, 감각을 알 수 없게 됐다.

왠지 모르겠지만 최근 식욕이 없다.

엄마한테는 미안해서 말하지 않았지만, 전에는 맛있기만 하던 밥이 요즘은 전혀 맛있지 않다.

맛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 걸 먹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워서, 날을 거듭할수록 점점 밥을 남기게 됐다.

억지로 먹은 날에는 구역질이 치밀어 참다못해 결국 토하고 만다.

 

미각상실에 거식증?

하핫. 그럴 리 없잖아.

농담이 지나치다고.

나는 카리스마 레전드 장남님인 걸.

이렇게 센 척을 해도 결국은 이 집에는 나 혼자.

그래. 이 집에는 나만 남았어.

 

 

......이제 장남이고 뭐고 관계없잖아.

 

 

 

 

 

하아.

 

안 된다. 이대로면 난 정말 망가지고 만다.

이미 충분히 엄마에게 걱정을 끼쳤을 테고.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쥬시마츠의 지인 중에 데카판 박사라고 굉장한 아저씨가 한명 있다던데.

언제인진 잊어버렸지만, 쥬시마츠가 즐거운 듯 얘기했던 기억이 있어.

쥬시마츠 말로는, 기분약의 개발자라고 했었지.

에스퍼 냥코가 상대의 기분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준 약.

굉장하잖아.

 

.....그 아저씨라면 지금의 내 상태를 어떻게든 해줄 약 같은 걸 줄지도 몰라.

쥬시마츠의 지인이니까 아마 좋은 사람이겠지.

 

 

 

 

가봐야겠어.

 

 

나는 뭔가에 사로잡힌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휘청휘청, 위태롭게 걸으며 쥬시마츠의 말을 더듬어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로 향했다

 

 

 

[데카판 박사 있어~?]

 

나는 쥬시마츠한테 들은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 위치를 필사적으로 떠올려 어떻게든 도착했다.

가려고 마음 먹으면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갈 수 있는 거구나.

내 부름과 동시에 연구소 자동문이 윙-, 하고 열리고 안에서 트렁크에 백의를 걸친 아저씨가 나왔다. 나를 보며 놀란 듯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호에!? 무슨 일이다스!? 자네, 안색이 안 좋다스!!]

[-....원래 이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보다 쥬시마츠 지금 있어?]

[호에호에. 쥬시마츠군이라면 일하러 나갔다스]

 

다행이다.

예상대로 쥬시마츠는 일하러 나갔구나.

역시 지금의 나는 보여줄 수 있을만한 상태가 아니니까 말이야.

모처럼 자립해서 나갔는데 쓸데없이 걱정 끼치고 싶진 않다.

....장남으로서 방해하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가능한 녀석들과 만나는 건 피하고 싶다.

 

[쥬시마츠군한테 용무가 있는 거라면 안에서 기다리겠다스?]

[-, 오늘은 데카판 박사를 보러 온 거야. , 오소마츠. 쥬시마츠의 형]

[그렇다스? 그럼, 사양 말고 들어오라다스]

 

데카판 박사는 초면인 나를 흔쾌히 연구소로 들였다. 데카판 박사는 나를 안으로 안내하며 손님용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라 권했다. 내가 순순히 자리에 앉자, 메이드 옷을 입은 아저씨가 트레이에 주스를 올려 들고왔다.

 

[다요-]

 

그걸 내 앞에 탁, 하고 내려놓고는 메이드복을 입은 아저씨는 발길을 돌려 돌아갔다. 데카판 박사도 내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내놓을 거면 주스 말고 술이나 내놓지,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 있자, 데카판 박사가 말을 꺼냈다.

 

[그래서, 무슨 일이다스?]

 

나는 주스를 바라보던 시선을 올려 데카판 박사를 쳐다봤다.

 

[쥬시마츠한테 들었는데, 기분약, 데카판 박사가 만든 거라며?]

[그렇다스!! 내가 만들었다스!]

[그럼 말이야, 엄청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미련을 끊는...그런 약 같은 건 없어? ,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엄청 곤란한 처지거든]

[요컨대, 소중한 사람들에게 미련이 있다는 거다스?]

[, 그렇지]

[-. 잠시 기다리라다스]

 

데카판 박사는 내 말을 듣자마자 의자에서 뛰어내리곤, 근처 찬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까 나한테 주스를 내어준 메이드도 찾는 걸 거들었다.

 

[있다스!!]

[다요옹~~]

 

조금 지나자 무사히 찾은 모양인지 병을 한손에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데카판 박사가 병을 내게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약은 정반대약이라는 거다스. 미련을 없애는 건 못하지만, 정반대의 마음을 갖게 되니까, 아마 미련자체를 갖지 않았던 걸로 할 수는 있을 거다스. 아쉽지만 오소마츠군의 요구에 맞는 약은 이것뿐이다스...]

 

가능하면 잊어버리는 계열의 약을 바랐지만, 지금의 내가 바뀔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

나는 데카판 박사한테 향해 표정을 그다지 바꾸지 않고 말을 걸었다.

 

[저기, 박사. 그거, 나한테 줄래?]

[갖고 싶은 거다스? , 내가 갖고 있어도 쓰지 않으니까 주겠다스!]

 

데카판 박사가 그 약을 내게 건네줬다. 양손으로 병을 받아든 나는 병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안에는 흰색의 알약이 잔뜩 있었다.

그냥 평범한 약으로 보이는데. 게다가 라벨도 없고.... 뭐어, 자세히 써져있는 것도 그런가.

 

[고마워. 역시 쥬시마츠랑 친하고 볼 일이네]

[반대로 바꾸고 싶은 마음을 상상하면서 복욕하면 된다스. 하루 1, 2알 먹으면 2일 가는 식의 약이다스. , 그리고 가급적 식후에 먹는게 좋다스]

[-]

[기본적으로 상대를 향한 마음을 반대로 하는 거지만, 좋아하는 건 싫게, 더 좋아하는 건 더 싫게 만드는 식으로 반대가 된다스. 마음이 크면 도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스. 잘 생각해서 복용하는 게 좋다스]

[-. 알겠어]

 

나는 반쯤 흘려들으며 맞장구를 쳤다. 얘기 길다고-, 라면서 약이 든 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긴 이야기는 지루해서 싫어하는데, 몸이 안 좋은 상태라 듣기가 힘든 나는 결국 얘기를 거의 흘려들었다.

모처럼 설명해줬는데 얘기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미안하지만.

 

어느새 약의 설명이 다 끝나고, 나는 약을 소중하게 들고 의자에서 내려와, 연구소 문으로 향했다.

이 약, 빨리 먹어보고 싶네. 조금은 생활패턴이 나아지면 좋겠는데.

배웅하러 데카판 박사와 메이드가 출구까지 따라나왔다. 밖으로 나가려 발을 한 발 내딛은 순간, 나는 무언가가 떠올라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 이런. 완전 잊어버릴 뻔했잖아.

 

[, 쥬시마츠한테는 내가 여기 왔다는 거 비밀이야]

[알겠다스]

 

데카판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나는 손을 흔들며 연구소를 나왔다.

쥬시마츠의 말대로 데카판 박사는 좋은 사람이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부탁해도 되겠지. 이 약의 효과에 달렸겠지만.

나는 집에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집에 돌아간 후, 밤까지 평소처럼 지붕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받은 약을 빨리 시험해보고 싶었지만, 신후에 먹으라고 했던 말이 걸려서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데카판 박사의 설명, 제대로 기억나는 건 이것뿐이지만.

하늘을 보고 있으니, 의외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 금방 날이 저물었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밤이다. 슬슬 추워지니 방으로 돌아갈까. 내가 방에 돌아가자, 마침 엄마가 밥먹으라며 부르러 왔다.

1층에 내려가 거실에서 혼자 저녁을 묵묵히 먹었다. 혼자서 먹는 이 분위기도 꽤 익숙해진 듯하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양이 적어진 저녁을 먹어치우고, 식기를 부엌으로 날랐다. 약을 먹기 위해 컵에 물을 담아 2층으로 올라갔다. 탁자 위에 컵을 두고 흰 알약이 든 병의 뚜껑을 열었다. 병을 기울여 톡톡 살짝 두드리자 알약 하나가 툭 떨어졌다. 병을 탁자에 내려두고 물이 든 컵을 들었다. 나는 희미하게 출렁이는 수면을 바라보았따.

 

이 약을 먹으면 뭔가가 변한다.

지금보다 훨씬 편해지겠지.

괴로운 거나 힘든 건 이제 끝이다.

 

나는 주저 않고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안녕. 지금까지의 나]

 

 

 

꿀꺽.

 

 

나는 각오를 다지며 약을 삼켰다.

 

 

 

 

 

* * *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소마츠의 신발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다.

우리들이 외출하기 전과 같은 위치에 빨간색 신발이 있다.

 

다행이다. 집에서 나가지 않은 것 같다.

그 다음 나는 핸드폰을 꺼내 쵸로마츠, 이치마츠, 토도마츠에게 오소마츠의 일로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돌아와라고 메일을 보냈다.

이걸로 이제 모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으려 하자,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 쵸로마츠한테 답신이 왔다.

벌써 답이 온 건가. 역시 쵸로마츠로군.

메일을 확인하니, 바로 갈게라 적혀있다. 그로부터 20분도 안 돼서 이치마츠와 토도마츠한테 답이 왔다. 쵸로마츠와 같은 답이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한숨을 내쉰 나는 데카판 박사한테 들은 얘기를 다시 떠올렸다. 우리들이 본가로 돌아왔을 때 엄마한테 들은 오소마츠가 우리를 무서워한다는 얘기.

 

그래.

엄마한테 들은 앨범사건이 대략 1년 전이다.

데카판 박사는 분명 상대를 향한 마음이 정반대가 되는 약이라고 했다.

정반대약을 그때부터 받아먹은 거라면....

평소에는 허세도 심하고 마음을 읽기 힘들지만,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큰 오소마츠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들을 두려워하게 된 계기가 이거라면, 모든 정황이 간단히 이해된다.

이 설이 진짜라면, 오소마츠는 지금도 그 약을 먹고 있을 것이다.

상태가 나아지질 않는 걸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그런데 왜 그 약을 먹은 거지?

오소마츠는 우리들이 싫어졌으면 했던 건가?

아니면 너를 두고 나가버린 우리들에게 화가 나서?

........모르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한들 소용이 없다.

어차피 몇 시간 후면 진상을 알게 될 거다.

나는 먼저 거실에 있던 쥬시마츠 옆에 앉았다.

 

 

 

 

[이 바보가!!]

 

내 얘기를 들은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을 박차고 나가려 했다. 그걸 쥬시마츠가 황급히 막았다.

 

[, 안돼안돼!! 진정해, 쵸로마츠형!!]

[쥬시마츠. 이거 놔. 녀석을 한 대 갈기지 않으면 내 분이 안 풀릴 것 같다고]

 

쵸로마츠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잘 보니 쵸로마츠의 주먹을 꽉 쥔 채 떨고 있었다. 내 자리에선 뒷모습만 보여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대충 어떤 표정인지 알 것 같았다.

쵸로마츠는 완전히 열이 받은 상태였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쵸로마츠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쵸로마츠, 기분은 알겠지만 일단 진정해라]

[.....!! 그치만!! 그치마안!!]

 

쵸로마츠는 내가 쥬시마츠에 가세해 자신을 말리자 괴로운 표정으로 외쳤다.

 

[그 자식, 나한테 영양제라고 했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먹어놓고!!

거짓말을 치다니 용서 못해!!]

[...................]

[.....그게, 정말이야?]

 

토도마츠가 작게 되물었다. 나는 처음 듣는 사실에 벙 쪄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쵸로마츠.....방금 말한 그 약을 먹는 걸 본 건가.

나는 쵸로마츠의 팔을 놓고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2층에 있을 거다. 지금부터 오소마츠랑 얘기를 해볼 생각이다]

[!! 나도 갈래]

 

쵸로마츠가 달려들 듯 외쳤다. 그와 반대로 쥬시마츠는 눈썹을 늘어뜨린 채 입가에 손을 얹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럿이서 가면 무서워할 거야...]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형들만 갔다 와. 하고 싶은 말, 잔뜩 있잖아? 우리들은 밑에서 기다릴게.....제대로 전부 얘기하고 와]

 

토도마츠가 그렇게 말하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시선이 나와 쵸로마츠에게 모였다. 다들 반대하지 않는 듯 아무 말고 하지 않는다.

 

[물론이다, 브라더. 걱정하지 마라]

[알아버린 이상, 끝을 봐야지]

 

쵸로마츠를 데리고 나는 거실에서 나왔다. 걱정스런 표정의 동생들을 뒤로 하고 나와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있는 방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조심해달라는 엄마의 부탁 이후, 방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오소마츠의 방 앞까지 가서 멈춰 선 우리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안에 있을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카라마츠랑 쵸로마츠다]

[..............]

[들어가지]

 

답은 없었지만 상관 않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방 중앙에 편히 앉은 오소마츠가 보였다.

근처에 널부러진 만화책들. 어깨에는 빨간색 담요가 걸쳐있다. 나와 쵸로마츠는 방안으로 들어가 오소마츠 앞에 섰다. 오소마츠는 방에 들어온 우릴 보고 놀라 어깨를 움찔하고 떨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우리를 바라보는 오소마츠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오늘 네게 중요한 할 말이 있다]

[뭔데.......?]

 

걱정스런 눈빛의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와 나를 번갈아 봤지만, 너무도 진지한 표정의 우리들이 무서웠던 건지 이내 시선을 피해버렸다.

 

[오소마츠형. 전에 영양제 먹었었지. 그거 어디 있어?]

[................저기 선반 위에, 있는데...]

 

작은 목소리로 답하는 오소마츠에, 나는 선반 앞으로 가 약을 찾았다. 약은 찾기 쉬운 곳에 놓여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걸 들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에 든 흰색 알약.

같은 병.

라벨도 없었다.

 

틀림 없다.

아까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에서 봤던 것과 같은 약이다.

 

 

 

나는 그걸 한 손에 들고 오소마츠 앞으로 다시 돌아와 앉았다.

 

[오소마츠. 이건 이제 그만 먹어라]

[......?]

[이거, 영양제 아니잖아]

 

쵸로마츠도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오소마츠에, 내가 따지듯 물었다.

 

[데카판 박사한테 받은 약이잖아, 이거]

[어떻게...그걸.........]

[내가 데카판 박사한테 직접 들었으니까]

 

오소마츠는 이제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몸을 작게 웅크리곤 어깨에 걸치고 있던 담요를 꽉 움켜쥐었다.

 

[......................싫어]

 

오소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내가 들고 있던 병을 빼앗으려는 듯 갑자기 손을 뻗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

 

[!! 돌려줘!! 돌려달라고!!!!!]

 

오소마츠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다. 그래도 나는 약을 꽉 잡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게 없으면 나는 다시 돌아갈 거야. 싫어, 그건 싫어, 싫다고!! 싫단 말이야!!!!!!]

[오소마츠!!!! 이건 이제 필요없다!!]

 

오소마츠는 마치 중독자처럼 약을 돌려달라 소리치며 손을 계속해서 뻗어왔다. 잠시 공방전이 이어졌지만, 내가 죽어도 돌려주지 않자 오소마츠는 포기하고 힘없이 손을 내렸다.

 

[.........어째서............]

[오소마츠. 너야말로 왜 그런 건가]

[오소마츠형은 우리들을 싫어하고 싶었던 거야?]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도무지 결착이 나지 않아 답답했던지 결국 쵸로마츠는 폭발해 오소마츠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매번 이런 식이지!! 왜 우리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 혼자서 전부 짊어지고!! 그렇게 우리들이..]

[쵸로마츠]

[.............]

 

잔뜩 열받은 쵸로마츠를 내가 말리자,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자코 있던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

[?]

 

 

 

[......괴로웠어]

 

 

 

 

 

. 투둑.

 

 

다다미 위로 눈물이 떨어져 스며들었다.

오소마츠는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너희들이, 너희들이!! .....두고 갔으니까!!]

 

드문드문 내뱉는 물기 어린 말들이, 오소마츠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과 함께 다다미 위로 스며들었다.

 

[, 나는, 점점, 이상해졌어..!! 뭘 해도, 재미가 없고, 뭘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어]

 

고개를 숙여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말을 하는 걸까. 눈물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몇 번이나 말을 흐렸다.

 

[어차, 어차피, 너희들은, 언젠가 여길, 나갈, 거잖아! 그렇다면, 난 이대로 있고 싶어!!

내가 너희들을 싫어하는 채로, 두려워하는 채로 있으면...!! 더는, 더는 그런 생각,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오소마츠를 세게 끌어안았다. 오소마츠의 몸이 살짝 튀어 올랐다. 하지만 새어나오는 건 울음뿐. 약의 효과로 굉장히 싫을 텐데, 저항하지 않았다.

 

 

[이제 됐다. 네 마음,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오소마츠는 내게 안겨 안심한 건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쵸로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보고 화 낼 마음도 사라졌는지 눈썹만 축 늘어뜨리고 있다. 달래려 툭툭 등을 두드리자, 오소마츠는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옆에서 흐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뭔가를 전하려는 듯 오소마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으.........외로웠어!!]

[못 알아채서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했다]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했는데....!! 그랬는데...!! 다들 날 두고 가버리고!! ? 왜 두고 간 거야? 이 거짓말쟁이들!! 다 미워!! 완전 미워!!]

 

밉다며 울부짖으면서도, 오히려 내게 매달리듯 강하게 끌어안았다. 쵸로마츠가 내 어깨에 턱을 대며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니까 일하긴 해야 한다는 거, 알잖아?]

[알아, 안다고!! 하지만 집에서 나갈 필요는 없잖아! 나를 혼자 둘 필요는 없었잖아!!]

[오소마츠형........]

[바보!! -!!! 얼굴 보기도 싫어!! 저리 가!!]

 

엉엉 울며 말하는 오소마츠에게 위압감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던 탓인지, 쵸로마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눈썹만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내 품속에서 엉엉 우는 오소마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뭔가를 알아차렸다.

 

쵸로마츠가 나가기 전날의 일.

혼자 축하도 하지 않고 잠자코 밥만 먹던 오소마츠의 모습.

그건 화났던 게 아니었다.

 

 

참고 있었던 거였다.

 

마츠노 오소마츠이기 이전에 장남인 그는 자존심 때문에 자기 마음을 꾹 참은 결과, 당연하게도 축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거야. 진짜 바보네]

[우윽....................히끅, ]

[-, 이제 그만 울어. 못생겨진다?]

 

쵸로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흐느낄 때마다 떨리는 오소마츠의 눈가를 티슈로 닦았다. 아직 멈추지 않은 눈물이 소용없다는 듯 볼을 타고 흘렀다.

 

[괜찮아. 우리들은 이제 무리하게 집을 나가거나 하지 않아. 이제 오소마츠형을 혼자 두지 않아]

[.........정말?]

 

쵸로마츠의 말을 들은 오소마츠는 나와 쵸로마츠를 올려다봤다. 그 눈동자에 눈물이 불안함에 흔들렸다. 그걸 본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들은 여섯명이서 하나. 나는 너고 너는 나잖아? 그럼 함께여야지]

 

내 말에 오소마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뭔가 잘못 말했나?

뭔가 불안해져 쵸로마츠를 바라보자, 쵸로마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잘못했나.

달리 대체할 말을 찾고 있자, 오소마츠가 툭툭 내 가슴을 때렸다.

놀라울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바보!! 바보바보!!! 좀 더 빨리 깨달으라고!! 이 바보!!]

[아까부터 말이 험하잖아, 오소마츠형. 이젠 그냥 바보란 말밖에 안 해]

 

쵸로마츠가 다시 티슈로 오소마츠의 뺨을 닦았다. 나도 그에 가세하듯 툭툭 일정한 리듬으로 등을 두드렸다.

몇 분간 계속 등을 두드리자,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점점 진정되고 있는 듯하다. 오소마츠는 내 몸에 두르고 있던 팔에 힘을 빼며 천천히 내 품에서 떨어졌다.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던 온기가 사라져, 어쩐지 조금 쓸쓸하다.

왜 그러나 싶어 오소마츠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만족스러울 정도로 다 운 건지 눈가가 새빨갛다. 눈물은 이미 멎어있었다. 오소마츠가 겸연쩍은 듯 고개를 떨군 채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말하겠는데, 너희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 그렇게 강하지 않아. 센 척한 것뿐이라고. 겉보기만 그런 거야. 너희들은 장남이니까 괜찮겠지 생각했겠지만....그렇지 않아. 괜찮지, 않아...]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도 아무 말 않고 지켜본다.

 

[이렇게 의지가 안 되는 형아라...........미안...]

[......뭐야 이제 와서.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형이라니까. 이 바보장남]

 

옆에서 손이 뻗어나와 오소마츠의 뺨을 꼬집었다.

쵸로마츠였다.

 

[, 아흐아]

[이 정도는 참아. 마음 같아선 한껏 후드려패고 싶으니까]

[, .......]

 

쵸로마츠는 바로 손을 뗐다. 오소마츠는 꼬집힌 뺨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결심한 듯 얼굴을 들고 나와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이제 날 혼자 두지 마]

 

 

일렁이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당연한 거 아닌가.

답은 하나다.

 

쵸로마츠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혼자 둘 리가 없잖아. 그치, 카라마츠]

[당연하지. 약속하겠다]

 

그 말에 오소마츠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버릇이던, 코 밑을 문지르면서.

오랜만에 본 오소마츠의 버릇. 대략 2년 반 만이다.

 

 

그걸 본 나와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역시 너는 웃는 게 제일 어울린다.

앞으로 계속 우리들에게 그 미소를 보여줘.

 

[.....시끄러]

[?]

 

내가 모르는 사이, 뒷말이 입밖으로 나와 버린 모양인지, 그걸 들은 오소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숙였다.

어쩐지 어색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저기, 오소마츠형. 안아도 돼?]

[.....그런 거 묻지 말라고. 해도..]

 

쵸로마츠가 그렇게 묻자 오소마츠는 부끄러운 듯 투덜거리면서도 양팔을 펼쳐보였다. 쵸로마츠는 웃으며 오소마츠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그리곤 꽈악, 부드럽게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오소마츠형의 냄새........뭔가 그립네]

[....냄새 맡지 마. 뭔가 부끄럽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소마츠는 싫지 않은지 쵸로마츠를 끌어안았다. 쵸로마츠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오소마츠형]

[.....?]

[..........내 이름, 불러줘]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오소마츠는 잠시 머뭇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어 이름을 불렀다.

 

[........쵸로마츠]

[, 좀 더. , 불러줘]

[쵸로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

 

어리광부리는 강아지처럼 파고드는 쵸로마츠의 부탁대로 오소마츠는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쵸로마츠가 팔을 들어 눈가를 슥슥 비볐다.

 

[어라? 이상하네. 오소마츠형 눈물이 옮겨왔나........안 멈춰..]

 

쵸로마츠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오소마츠는 그런 쵸로마츠를 보며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못 생겨진다]

[그거 아까 내가 했던 말이잖아. 너한테 그런 말 듣기 싫거든]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걸 본 나는 어쩐지 혼자 버려진 기분이라 황급히 오소마츠에게 부탁했다.

쵸로마츠만이라니, 치사하다.

나도 오소마츠한테 이름 불리고 싶다.

 

[오소마츠!! 나도, 나도 이름 불러줘!!]

[.............싫어]

[, 어째선가 브라더-!!]

 

지금 상황이라면 분명 OK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하며 몸을 불쑥 내밀며 외쳤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답했다.

 

[울 것 같은 걸. 카라마츠]

 

말을 끝내고서야 이름을 부른 걸 깨달은 듯 오소마츠는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오랜만에 이름을 불러준 게 기뻐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더 불러도 좋다, 라고 하자 오소마츠는 오늘은 이걸로 끝!! 이라며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 날 이후, 오소마츠형은 약을 끊었다.

약을 끊은 덕분인지 이제 우리들을 보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기쁘게 웃으며 반응했다.

양이 줄어들었던 식사도 차차 양이 늘게 되었다.

오랜 시간, 적게 먹은 탓에 위가 줄어들어 한번에 많은 양을 먹기 힘든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식사를 거부했지만, 조금씩 양을 늘려간 덕분인지 토하지도 않고, 마침내 우리들과 같은 양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깡말랐던 몸도 점점 살이 붙어 안심이 되었다.

이래저래 2년 전, 내가 집을 나가기 전의 오소마츠형으로 돌아왔다.

 

[저기이-. 쵸로마츠으-. 한가하잖아~?]

[-, 시끄러워. 보면 알잖아, 나 바쁘다고. 저리 가]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형아랑 놀자아- 외로워서 죽어버린다구-]

 

원래대로 돌아오니, 그 때의 일들과 감정들이 거짓말인 것처럼 짜증이 났다.

외로워서 죽다니...

토끼냐....

 

[- 진짜, 알았어. 알았다고. 놀아줄게]

[!? 진짜!!? 놀아줄 거야!? 럭키-!!]

 

너무 끈질겨서 결국 포기해버렸다.

오소마츠형은 어느 정도 회복하자, 이전과 똑같이 우리를 발견하기만 하면 끈질기게 놀아달라며 들러붙게 되었다.

전과 다르지 않은 오소마츠형.

 

 

 

 

 

 

 

 

 

 

 

그래.

 

기적의 바보에, 초등학생 6학년 정도의 정신연령인 어리광쟁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들의 장남.

 

 

 

마츠노 오소마츠의 이야기.

 

 

 

형제공포증

 

 

 

 

 

 

 



오타지적 환영! 'ㅂ')/















  1. (뇌와 몸의 다양한 장기가 낮과 밤의 리듬을 조절하는 시스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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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24화 뒷이야기 망상소설*

















가장 먼저 나간 건 쵸로마츠.

솔직히 취직한다면 네가 제일 먼저 될 거라고 생각은 했어. 그렇게 취활 어필을 해대더니, 결국 해냈구나. 이제 와서 이런 말해도 이미 늦었겠지만, 역시 형으로서 좀 더 제대로 축하해줬어야 했는데. 카라마츠가 내 대신에 잔뜩 축하해준 것 같던데, 고생이 많았네.

하지만, 미안.... 그때의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

쵸로마츠가 취직한 건 물론 축하해야 마땅한 일이란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친가에서 나가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인 걸. 우리들 여섯 쌍둥이잖아. 평생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쵸로마츠는 잔소리쟁이에 자의식 라이징이나 해대는 동생이지만......그래도 나가버리면, 쓸쓸하다고.

 

 

 

알아. 나도 안다고.

 

취직해서 자립하다니, 좋은 일이지. 굉장한 성장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알잖아. 형아 바보인 거.

평생을 함께 바보처럼 뒹굴며, 아무 생각도 않고 그렇게 여태처럼 살아갈 거라고 믿어왔어. 그런 거, 언젠가는 끝나버릴 게 당연한데 말이야.

도중에 쥬시마츠가 몇 번인가 내게 부딪혔잖아?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쥬시마츠는 나도 대화에 끼어들게 만들려고 했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여유가 없었던 나는 완전히 열 받아서 있는 힘껏 쥬시마츠를 발로 차버렸어. 완전히 분풀이였어. 쥬시마츠가 시끄럽고 정신없게 구는 건 늘상 있는 일인데 말이야. 원래라면 쵸로마츠를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는 게 당연한 건데.....

 

내 마음이 계속 방해를 했어.

 

동생한테 분풀이를 하다니, 나 완전 최악이네.

그 후, 카라마츠는 내 뺨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치곤,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나를 무시하고서 멱살을 부여잡아 밖으로 끌고 나갔어. 솔직히 카라마츠가 그렇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생각해. 카라마츠가 말려주지 않았다면,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니까. 나도 날 잘 모르겠는 걸.

 

싸늘한 밤공기를 느끼자마자 카라마츠가 내 멱살을 힘껏 위로 들어올렸어.

그리곤,

 

[오소마츠. 적당히 해라.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

 

머리에 피가 솟구쳐있던 나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단숨에 식어버려, 겨우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됐어. 그리고 자기혐오감에 빠졌지.

 

 

 

.....뭔가 이제 형아 글러먹었는지도 모르겠네.

생기 없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올려다보자, 예상대로 잔뜩 화가 나있었어. 카라마츠가 진심으로 폭발하다니, 드문 일이지만 당연하겠지.

, 동생이 다치는 걸 제일 싫어하니까. 형아니까 다 안다고.

 

[지금은 쥬시마츠도 잘못했지만 그렇게 세게 찰 필요는 없지 않나. 해도 될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는 거다, 오소마츠]

[안다고.......내가 잘못했어. 머리 좀 식히고 올게.....]

 

그런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는 멱살을 잡은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그대로 집에서 벗어났어. 카라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겠지.

 

 

미안해.

아무래도 지금의 나로는 분위기를 나쁘게 만들 뿐이야. 역시 너희들끼리 쵸로마츠를 축하해줘.

나는 오랫동안 밖을 멍하니 돌아다니다, 집에 불이 다 꺼지고서야 돌아왔어.

 

 

 

 

 

 

 

 

쵸로마츠를 배웅해야 할 날이 결국 다가왔어.

지금쯤, 집앞에는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쵸로마츠와 이별을 나누고 있겠지. 나는 배웅하러 나가지 않고, 혼자 2층 방에 남아 있었어. 어제 그렇게나 최악의 분위기를 만든 내가 오늘 무슨 낯짝으로 나가겠어. 제대로 배웅을 할 자신이 없었어. 게다가 이별의 말을 쵸로마츠 입으로 직접 듣다니, 그야말로 더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만 같아서 불안했어.

정말 겁쟁이네, . 형아 자격 실격이야.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뭔가 퍽하고 내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갈겼어. 나는 쥬시마츠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열이 받아서, 휙 뒤를 돌아봤더니 거기에 있던 건 막내인 토도마츠였어.

 

[이 망할 장남!! 왜 쵸로마츠형 배웅하러 안 나온 거야!! 이제 못 만난다고!!!]

[아앙!? 무슨 짓이야!! 아프잖아 임마!!]

[이익!!]

 

나는 주저하지 않고 토도마츠의 얼굴을 갈겼어. 내 마음도 모르면서 멋대로 지껄이지 말라고!!

큰소리를 내며 토도마츠가 뒤로 벌러덩 자빠졌어. 그 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토도마츠를 때려버린 걸 깨달았어. , 또 동생을 상처 입혔어. 녀석들한테 잘못은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나는 다시 자기 혐오감에 빠졌어.

아마, 카라마츠가 이걸 본다면 또 엄청 화내겠지.

 

[이제 나한테 상관하지 마!! 내버려 두라고!!]

 

더는 동생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어. 나는 나자빠진 토도마츠를 내버려두고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왔어. 기적적으로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다급히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어.

밖으로 나왔지만 파칭코도 경마도 갈 기력이 없어서, 그날은 근처 공원 벤치에서 밤이 될 때까지 시간을 멍하니 보냈어.

 

 

 

 

 

이러니저러니 해서 쵸로마츠의 뒤를 따르듯, 토도마츠, 카라마츠, 쥬시마츠, 이치마츠가 차례로 집을 나가기 시작했어.

어느새 집에는 나 혼자만 남겨졌어.

 

 

 

쵸로마츠가 나가버린 시점에서 사실 조금 예상은 했어. 이러다 다들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그렇게나 시끌벅적하던 집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어. 당연하겠지. 집에는 이제 나뿐인 걸. 혼자는 쓸쓸하다는 걸 다시금 온몸으로 실감했어.

밥을 먹을 땐 탁자에 6명이 빙 둘러 앉아 밥을 먹었었는데. 딱히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게 좋았어. 잘 때도 6인용 이불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걸 깔고 누웠는데, 정말 쓸데없이 넓더라. 뭔가 도무지 진정되질 않아서 평소 자던 위치에서 자려고 다시 누워봤는데....역시 너무 춥고 허전했어. 목욕탕도 혼자 가려니 뭔가 좀 그래서, 집에 있는 욕실을 쓰게 됐어. 그렇게 내 생활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어. 그렇게 바보처럼 수시로 드나들던 파칭코나 경마도 뭔가 의미 없게 느껴지고 재미가 없어서 최근에는 아예 가질 않게 됐어. 아무것도 할 의욕이 안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붕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며 지내게 됐어. 하늘을 천천히 헤엄치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밤이 되곤 했어.

 

 

요 근래 나는 계속 이런 생활을 해왔어.

 

 

 

 

거실에 걸린 아카츠카 선생의 사진을 올려다보며,

이걸로 됐다, 고 그렇게 생각했어.

 

 

아무도 집에 돌아오질 않는 걸 봐선, 아무래도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아.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걸까.......하지만, 역시 좀 더 녀석들과 바보처럼 시끌벅적하게 살고 싶었어. 외동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역시 난 너희들과..........

 

점점 슬픈 감정이 흘러넘치기 시작했어.

 

 

......이제 더는 6명이서 같은 파카를 입을 일은 없는 걸까.

 

 

 

하지만 이걸로 된 거겠지. 아카츠카 선생.

 

 

 

 

 

.

 

다다미 위에 눈물이 떨어져 만들어낸 얼룩에, 나는 울고 있음을 깨닫고 파카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았어. 소매에 스며든 눈물이 옷을 짙은 붉은빛 바뀌어 마치 피처럼 보였어.

 

 

이걸로 된 거야.

살아가기 위해선 취직하지 않으면 안돼.

옛날에는 니트여도 6명이서 서로 도와가며 살면 되겠지, 라고 말했지만.

역시 무리겠지.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애초에 내 고집 때문에 녀석들의 인생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

 

 

 

이걸로.............이걸로 된 거야.

 

 

 

 

 

 

 

 

 

[오소마츠, 편지가 왔단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에게 울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가능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로부터 2. 시간이란 무심히도 빠르게 흘렀다.

쵸로마츠는 흔들리는 열차에 몸을 맡기며 본가로 향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점점 작업도 안정되어 갔다. 타인과 관계를 쌓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어떻게든 열심히 해나갔다.

본가로 향하는 이유는, 드물게도 기적적으로 다른 형제들과 장기휴일이 겹치게 되어 함께 집에 가자는 얘기가 나와서다. 나는 대략 일주일가량의 휴가가 떨어졌다.

형제들과 2년만의 재회에 기대감으로 가슴이 도무지 진정되질 않았다.

 

나는 제일 처음 집을 나와서 자세한 사정은 잘 몰랐는데, 엄마의 연락으로 오소마츠형 이외의 형제들이 내 뒤를 따르듯 집을 나갔다는 걸 알게 됐다.

다들 무사히 자립이랑 취직한 걸까........ 오소마츠은 뭘 하고 지내려나. 글러먹은 장남이니까 아직 니트인 채로 있겠지. 오랜만에 만나는 거지만 가면 엄하게 잔소리를 퍼부어줘야지. 취직을 좀 더 제대로 권해봐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집 근처의 역인 아카츠카역에 전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초록색 가방을 등에 짊어지며 전차에서 내렸다. 빨리 모두를 만나고 싶어 나는 발을 재촉해 개찰구로 향했다.

 

 

그리운 집앞에 도착하자, 카라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와 마주쳤다. 굉장한 타이밍에 무심코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섯 쌍둥이는 무슨 짓을 해도 여섯 쌍둥이구나, 하고 실감했다. 마치 짠 듯이 타이밍이 이렇게 맞다니.

얼마만이야. ....뭔가 그립네.

 

 

[역시 여섯 쌍둥이네. 집에 오는 타이밍이 같다니]

[!! 쵸로마츠형이다아---------!!!!!]

 

내 목소리에 바로 반응한 쥬시마츠가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 말에 카라마츠가 날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쵸로마츠!! 잘 지냈는가?]

[물론이지. 카라마츠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네. 다른 애들도]

 

카라마츠한테 시선을 돌리며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를 차례로 바라봤다. 그러자 토도마츠가 반가운 듯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봤다.

 

[어라-? 쵸로마츠형 뭔가 어른스러워진 것 같네-]

[? 그런가? 아니 그보다 우리 원래 어른이었거든?]

 

이런 시답잖은 대화도 정말 오랜만이다. 혼자 살고부터는 당연하지만 이런 대화는 좀처럼 하질 않았으니까 말이지-.

 

[.......그보다, 집에 안 들어갈 거야?]

 

이치마츠가 우리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토도마츠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하지만, 뭔가 들어가려니 긴장되는 걸]

[- 이해해.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좀 망설여지네]

 

나도 그 말에 수긍했다.

 

[...........뭐어, 나도 이해는 가는데]

[긴장돼! 머스루!! 머스루!!!]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나]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문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가자고]

 

카라마츠가 문을 열자, 우리들은 동시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 [ [ [ [ 다녀왔습니다아-----------!!!! ] ] ] ] ]

 

 

 

 

현관에 들어서자, 엄마가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아빠는 회사에 가고 없었지만.

일단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선 우리들은 짐들을 대충 거실에 두고 탁자 앞에 앉았다. 뻐근한 어깨를 풀려 양팔을 쭉 뻗어 크게 기지개를 켰다. 가방을 계속 짊어지고 있었더니 살짝 무리가 간 듯했다. 근육통만 안 오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오소마츠형이 안 보이네. 거실에는 없으니까 2층이려나.

신경 쓰인 나는 부엌으로 가서 엄마에게 물었다.

 

[저기, 엄마. 오소마츠형은? 아직 니트지?]

[그렇지-. 분명 니트일 걸]

 

토도마츠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어째선지 곤란한 표정으로 뭔가 망설이듯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라면 2층에 있단다. 그런데.......]

[그럼, 내가 가서 불러올게]

[나나나나나-!! 나도!! 카라마츠형! 나도 갈래-!!]

[쥬시마츠형이 가면 나도-]

[...........나도]

 

카라마츠가 불러오겠다 말하자, 엄청난 기세로 쥬시마츠가 손을 번쩍 들며 자신도 가겠다 외쳤다. 그에 따르듯 토도마츠랑 이치마츠도 가겠다며 차례로 말을 이었다.

 

[잠깐만!! 사람이 너무 많잖아!! 그냥 부르러 가는 건데 혼자면 충분하다고!]

[어라? 쵸로마츠형은 안 갈 거야?]

 

여전히 엄청난 기세로 쥬시마츠가 의아한 듯 물었다.

 

[.............갈 거지만]

[, 사양할 필요없다 브라더. 다들 사이 좋게 데리러 가자고]

[귀가 썩으니까 닥쳐 쿠소마츠]

[]

 

어째선지 날 선두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우리는 2층 방앞까지 걸어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낯익은 붉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몇 번이나 보아왔던 뒷모습.

2년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소마츠형이다.

너무나도 반갑고 그리워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이 흥분됐다.

 

 

[.........!!!]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오소마츠형이 움찔하고 떨며 뒤를 돌아 우리를 쳐다봤다. 그런데 어째선지 우리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오소마츠형은 시간이 멈춘 듯이 단숨에 굳어버렸다. 그러더니 이내 무서운 거라도 본 듯이 작게 몸을 떨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명백히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좀처럼 이해불가한 행동에 나는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며 한 발자국 다가갔다.

 

[오소마츠형? 왜 그래?]

[.....오지마!!]

 

오소마츠형은 고함을 질렀다.

갑작스레 닥친 강력한 거부반응에 앞으로 다가가던 발을 멈췄다. 하지만, 내 뒤에 있던 카라마츠가 그 외침에 아랑곳 않고, 나를 제치며 재빨리 오소마츠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소마츠형의 눈높이를 맞추듯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왜 그러나? 어디 아픈가?]

[!! 멈춰!! 만지지 마!]

 

카라마츠가 걱정스러워 손을 뻗자, 과장될 정도로 오소마츠형이 크게 떨기 시작했다.

그 카라마츠도, 뭔가 무서운 건지 작게 몸을 움츠리고 눈을 꼭 감은 채 필사적으로 공포를 견뎌내는 오소마츠형에게 닿지 못했다. 얌전히 오소마츠형에게서 손을 치운 카라마츠. 그걸 본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여전히 멈춘 채 서있는 나를 지나쳐 카라마츠 옆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다. 토도마츠, 쥬시마츠, 이치마츠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오소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오소마츠형 뭔가 좀 이상한데. 왜 그래?]

[오소마츠형!! 괜찮아!! 기운내! 야구할래!? 기운날 거라구!]

[아니, 쥬시마츠....지금은 야구를 할 때가..........]

[싫어!! 싫어!! 싫다고!!!!!!!!]

 

오소마츠형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뭔가를 뿌리치려는 듯이 눈을 꼭 감은 채로 좌우로 머리를 흔들어댔다.

이 경우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위치에서 보고 있으면 마치 늑대에게 둘러싸인 양 같았다. 오소마츠형은 평소의 이치마츠처럼 방구석에 작게 몸을 웅크린 채 떨었다. 살면서 처음 보는 오소마츠형의 반응에 나는 동요했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될 것 같지만...........마치 우리들이 아는 오소마츠형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정도로 겁을 먹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카라마츠도 나와 같은 기분인 듯, 노골적으로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손을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자 오소마츠형에게선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으.........읏하아, 하아, ]

[, 형님!?]

 

그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오소마츠형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호흡이 툭툭 끊기기 시작했다. 오소마츠형은 괴로운 듯 가슴을 손으로 억누르며 움켜쥐었다. 붉은색 파카에 그려진 소나무가 불쌍할 정도로 찌부러졌다. 갑작스런 오소마츠형의 이변에 순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오소마츠형이 바닥에 쓰러졌다. 카라마츠가 재빨리 다가가 오소마츠형의 어깨를 흔들었다.

 

[형님!!!정신 차려라 오소마츠!!]

[하아, 하앗, 하아, ]

 

오소마츠형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호흡은 아까보다 더 거칠어졌다. 이런 상태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설마 과호흡!?

토도마츠가 눈물 맺힌 눈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 오소마츠형 죽는다고!!]

[, 엄마 불러올게!]

 

문쪽으로 달려가는 쥬시마츠에 길을 비켜주자,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왔다.

 

 

과호흡으로 괴로워하는 오소마츠형.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들.

 

방의 처참한 상황에 엄마는 곤란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카라마츠들을 좌우로 밀어헤치듯 오소마츠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자아, 오소마츠. 진정하렴. 괜찮단다]

[후으.......크읏, 허억, , 하아, 하악]

[엄마 호흡에 맞춰서 숨을 쉬어보렴. 들이쉬고......내쉬고......들이쉬고.......내쉬고......그래, 잘하네]

 

엄마가 천천히 호흡을 하자, 오소마츠형도 그에 맞춰서 숨을 쉬었다.

조금 지나자 점차 호흡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많이 놀랐나 보구나. 피곤하지? 좀 쉬렴]

[하아.................]

 

엄마가 오소마츠형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자,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렸다.

체력을 꽤 소모한 모양인지 오소마츠형은 완전 녹초가 되었다. 지친 탓인지 오소마츠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에서 빨간담요를 꺼내 오소마츠형 위에 덮어주었다.

 

[역시 안 되나보네. 오소마츠 빼고 다들 거실로 좀 내려오렴. 할 얘기가 있단다]

 

 

엄마는 계단으로 향하며 우리들에게 손짓했다.

 

 

 

엄마에게 불려 우리들은 거실에 모였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오소마츠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다들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오소마츠형의 이해불가한 반응의 원인은 대체 뭘까. 모르는 새에 우리들이 무슨 짓이라도 한 걸까.....

평소라면 오소마츠형이 앉았을 자리에 엄마가 앉았다. 우리들의 얼굴을 차례로 훑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많이 놀랐지? 역시 먼저 말해뒀어야 했는데. 이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렴]

[엄마, 오소마츠형 상태가 이상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들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던지 모두의 시선이 엄마에게로 집중됐다. 카라마츠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솔직하게 말해줘, 엄마]

[물론이지. 애초부터 다 말할 생각이었으니까.... 너희들이 집을 나가고 며칠간은 엄청 풀이 죽어 있었단다, 그 아이.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갑자기 기운을 차리더구나........기운을 차려서 안심했었는데.......]

 

엄마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오소마츠형이 풀이 죽어있었다는 걸 알았다.

최악의 경우, 그저 삐져서 당분간 열 받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풀이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우리들과 떨어져 있는 게 싫었던 걸까.

오소마츠형이니, 아마 다른 형제들에겐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을 게 뻔했다.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어느날 2층에서 큰소리가 나서 황급히 올라갔더니,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오소마츠가 있었단다. 왜 그러니? 라고 물었더니, [무서워, 무서워!!] 라며 앨범을 가리키더구나........그때부터 앨범과 너희들이 집에 두고 간 물건들만 보면 굉장히 두려워했단다. 엄마도 원인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

 

엄마는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 주변에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전혀 몰랐어.

 

[사실은 오소마츠한테 오늘 너희들이 돌아온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래서 갑작스런 상황에 놀랐던 걸지도 모르겠네. 역시, 말해뒀어야 했는데..]

[.......오소마츠형이랑 이제 야구 못 하는 거야?]

 

 

쥬시마츠가 정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확실히 지금 상태의 오소마츠형으론 야구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대화도 힘들 거다. 우리들이 나간 뒤, 오소마츠형은 뭘 하며 보낸 걸까. 신경 쓰였던 나는 엄마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우리들이 나간 뒤에 오소마츠형이 어땠는지 말해줘]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그러네.....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파칭코나 경마에 가지 않더구나. 으음.....대강 이치마츠가 나간 후부터려나]

 

엄마의 말에 우리들은 충격을 받아 눈을 부릅떴다.

 

[!? 그 오소마츠형이!?]

[거짓말이지!? 정말이야!? 도박을 그만두다니 완전 중증이잖아!!]

[..........큰일인데]

[큰일이야!! 큰일-!!]

[, 엄마. 다른 건 또 없어.....?]

[기본적으로 집밖에 나가질 않게 됐어. 내가 알기론 지붕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거실에서 아카츠가 선생을 보거나 했단다]

 

우리들이 아는 그 능글맞고 제멋대로인 오소마츠형은 어디론가 가버린 것만 같았다. 이 얘기를 듣고 우리들만이 아니라 오소마츠형 또한 많이 변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슬슬 배고프지? 저녁 준비할게. 오랜만이니 힘 좀 써볼까. 오늘은 카라아게란다]

[카라아게!]

[아싸아-!! 카라마아!! 카라아게!!]

[지금 바로 차려줄게]

 

제일 빨리 반응한 건 카라마츠. 카라아게란 말에 빠른 반응을 보이는 건 여전하다. 카라마츠에 이어 쥬시마츠가 기뻐하며 퍼덕퍼덕 소매 자락을 흔들어댔다. 그 사이에 기쁘면서도 솔직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카라아게보다도 오소마츠형이 더 신경 쓰였다. 딱딱하게 굳은 미소를 보이며 대충 그 분위기를 넘겼다.

 

 

 

친가에서 오랜만에 먹는 저녁식사. 탁자 한가운데에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가득 쌓인 카라아게. 굉장히 좋은 냄새가 풍겨, 식욕이 올랐다. 너무도 맛있어 보여 군침이 흐를 정도였다. 쥬시마츠는 진짜 금방이라도 침을 질질 흘릴 것 같아 위험할 지경이었다. 살짝 지적하자, 소매로 거칠게 입술을 훔쳤다.

하지만 단 하나, 쓸쓸하게 텅 빈 오소마츠형의 자리가 신경 쓰여 견딜 수 없었다. 여섯명이 빙 둘러 앉았던 탁자에, 오소마츠형만 없다. 6명 다 같이 먹고 싶었는데. 어딘가 부족한 느낌에 살짝 쓸쓸해졌다. 잘 보니 오소마츠형 자리에 밥이 없다. 설마 안 먹는 건가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 엄마를 찾았다. 그러자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 엄마가 보였다.

 

[그거, 오소마츠형 거야?]

[그래. 진정되질 않으니까 오소마츠는 혼자서 먹고 싶대]

[..........그래]

 

역시 피하고 있어.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잖아.

우리들의 뭐가 오소마츠형을 두렵게 만든 건지 모르니까, 함부로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갖다 줄게. 그래도 돼?]

[그래. 혼자라면 괜찮을지도 모르니까.... 좀 부탁할게. 하지만 아까처럼 싫어하는 짓은 하면 안돼. 패닉에 빠져 버리니까]

[알아]

[그리고 2층방이 아니라 옆의 객실로 옮겼으니까. 너희들은 평소 쓰던대로 그 방을 쓰면 돼]

엄마한테 저녁을 건네받았다. 그때 자연히 시선이 쟁반쪽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은 분명 카라아게였지. 근데 뭐야 죽!? 그것도 양이 반 정도밖에 안 되잖아.

무심코 입밖으로 소리를 내버렸다.

 

[!? 왜 죽이야!? 양도 왜 이렇게 적어!?]

[그 애, 늘 이 정도밖에 안 먹거든. 너무 많이 먹으면 다 토해버리는 것 같고....게다가 오늘은 여러 가지로 힘들었으니까 위에 부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죽으로 했단다]

[..........]

[좀 더 먹어서 체력을 좀 키웠으면 좋겠는데 이것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몰랐다. 라고 할까 모르는 것들뿐이다. 이렇게 변했을 거라고는. 식욕이 없어......? 그 오소마츠형이?

아까 봤을 때 좀 말랐다고 생각은 했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걱정이 몇 배로 불어나 속이 타들어간다.

엄마한테 받은 저녁밥을 들고 조심히 계단을 올랐다. 아까 오소마츠형과 만났던 방을 지나 객실 앞에서 멈춘다. 일단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조심스레 말을 건다.

 

[..........오소마츠형]

[흐아, , !?]

 

가능한 조심스럽게 불렀는데 요상한 대답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저녁밥 가지고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

[.................]

 

뭔가 들어가기 힘드네. 그보다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본인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나는 재빨리 팔꿈치로 문을 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은 오소마츠형이 나를 빼꼼 쳐다보고 있었다. 주변에 만화책 2권이 나뒹굴고 있는 걸 보아, 방금까지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천천히 오소마츠형 앞까지 다가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여기. 저녁밥 가져다 줬으니까 제대로 다 먹어야 해. 남기면 안돼]

[....고마워]

 

솔직하게 전해져온 감사의 말에, 쟁반을 내려놓으려 떨군 시선을 올려 오소마츠형을 보았다. 오소마츠형은 눈에 띄게 움찔하고 몸을 떨며,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눈을 피해버렸다. 이렇게 대놓고 피해버리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다. 게다가 안에 들여보내주긴 했지만 꽤나 주저했었고.

 

[또 뭔가 필요한 건 없어?]

[....괜찮아]

[그럼 나는 이제 가볼테니까,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 괜찮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내가 있으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테고, 눌러앉아 있는다고 좋을 것도 없을 게 뻔했다.

다시 거실로 돌아가려고 복도로 나가 뒤를 돌아보자, 다시 불안해하는 오소마츠형이 보여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역시 전과 비해서 많이 말랐고, 어딘가 이치마츠처럼 음울한 말투라 생각하며 거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어라? 오소마츠형 부르러 간 거 아니었어?]

 

토도마츠가 볼에 음식을 잔뜩 넣은 채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불안해할 것 같아서 따로 먹겠대]

[-. 그럼 이 카라아게는 5등분이란거네]

[아니 얼마나 카라아게가 먹고 싶은 거........잠깐!? 내가 없는 사이에 엄청 줄었잖아!!?]

 

오소마츠형한테 저녁을 갖다주기 전에는 산처럼 쌓여있던 카라아게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반 이상이나 줄어있었다.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사라지다니.

너무 오랜만이라 완전 방심하고 말았다.

 

[브라더-? 늘 말했잖나? 식사는 전투라고]

[방심한 놈이 잘못이지...]

[이 자비 없는 놈들!! 내 몫도 남기라고!]

[잘 먹었습니더-----블 헤더!!]

[!? 빨라!!? 난 아직 젓가락도 안 들었는데!!]

 

여전히 빠르게 밥을 먹어치운 쥬시마츠가 방을 나갔다. 밥그릇을 치우러 부엌으로 간 거겠지. 나는 황급히 젓가락을 들어 카라아게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엄마가 만든 카라마아게는 엄청 맛있었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예전처럼 다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2년만의 다 함께 하는 목욕에 기쁘고 설렜지만 물론 거기에 오소마츠형은 없었다. 기뻐해야 할 일인데 나는 솔직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또 다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네.

잘 때도 그리웠던 6인용의 커다란 이불에서 함께 잤다. 하지만 오소마츠형의 자리는 텅 비어, 마치 내 마음 같았다.

 

 

 

언젠가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그렇게 바랄 수밖에 없었다.

 

 

 

 

 

 

형님이 안 보인다.

 

 

본가에 돌아온 지 4일째, 상태를 살피려 옆방으로 가서 슬쩍 말을 걸었지만 답이 없다. 자는 건지 아니면 그냥 없는 건지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방은 텅 비어있다. 빨간색 담요만 아무렇게나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외출한 건가 싶어 현관으로 가봤지만, 빨간색 신발은 아직 거기에 있었다. 신발이 있는 걸 보아 나간 건 아닌 것 같다.

그럼 어디에 있는 거지? 우리들이 있는 1층이나 2층방에 있지는 않을 거다. 지붕? 욕실? 아니면 화장실? 떠오르는 장소를 여기저기 찾아왔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는 내게 거실에 있던 쵸로마츠가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뭐라도 찾아?]

[오소마츠 못 봤는가? 안 보이던데]

[오소마츠형?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종일 못 봤네]

[신발은 있었으니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나도 찾아볼게]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오래 앉아있어서 찌뿌둥하겠지. 등쪽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어딜 찾으면 돼?]

[생각나는 곳은 다 찾아봤다만 아무데도 없더군]

[그럼 다시 찾아보자. 나는 2층을 찾을테니까 넌 1층을 찾아]

[알겠다. 찾거든 불러라]

 

그렇게 말하며 쵸로마츠는 거실에서 나와 계단을 올랐다. 나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 찾았던 곳을 다시 봤지만 여전히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없어. 아무데도 없다.

1층의 모든 곳을 찾아봤지만, 먼 곳에서도 훤히 보이는 붉은색의 옷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쵸로마츠가 찾았으면 좋겠는데.

대충 둘러본 나는 쵸로마츠를 살피러 2층으로 향했다. 우리들이 쓰는 방을 들여다보자, 벽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쵸로마츠가 보였다. 원래 이 방에 있었던 건지 토도마츠도 쵸로마츠 뒤에 앉아 있었다.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저번처럼 싫어하는 짓은 안 할 거니까...?]

[오소마츠형. 진정해]

 

거기에 있었던 건가. 그냥 둘러봐선 못 찾는 게 당연하다. 설마 거기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쵸로마츠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벽장 안에 몸을 웅크린 오소마츠가 보였다. 손에는 만화책을 꽉 부여잡은 채 불안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오소마츠, 거기에 있었던 건가]

[방금 막 찾았어]

[왜 거기에 있는 건가?]

[...................]

 

오소마츠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다정하게 손짓했다.

 

[, 일단 나와 봐]

[............우으]

 

오소마츠는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며 벽장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아, 속이 탄다. 너는 우리들의 장남이잖아. 정신 차리라고. 거기서 그러고만 있으면 제대로 얘기조차 할 수 없잖아.

나는 오소마츠의 팔을 잡았다. 움찔하고 떨었지만 아랑곳 않고 벽장에서 끌어냈다. 오소마츠가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저항했다. 그걸 본 쵸로마츠가 나를 말리려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 멈춰!! 억지로 그러면 안 된다고!!]

[미안.........미안해. 사과할게....그러니까 놔!! 놓으라고!!]

 

왜 사과하는 거지. 너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갈 곳 잃은 응어리가 안개처럼 마음에 자욱하다.

오소마츠의 저항은 아무런 효과도 없이, 그대로 상반신이 끌어내졌다. 오소마츠가 패닉상태라는 건 딱 보면 알 수 있었다.

토도마츠가 쵸로마츠와 같이 오소마츠을 달랬다.

 

[오소마츠형. 진정해]

[싫어! 무서워!! 도와줘!! 무서워!!!]

 

그 때, 내 안의 무언가가 뚝, 하고 끊겼다.

 

[적당히 해라!!! 우리들이 네게 무슨 짓이라도 한 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본심이 입밖으로 나가버린 뒤였다. 그것도 분노를 더해서.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었다.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긴장감에 젖어 오소마츠를 봤을 땐, 아까의 패닉상태가 거짓말처럼,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것도 잠시,

 

 

 

, 투둑.

 

 

소리 없이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오소마츠의 눈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그 눈물을 신호로, 막을 틈도 없이 엄청난 양의 눈물이 터져나왔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둔 채,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흐르는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 스며들어간다.

우리 3명은 그저 그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오소마츠가 운다.

 

 

잠시후 오소마츠는 끅끅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얼음처럼 굳어있던 우리는 땡, 하고 풀린 듯 정신을 차렸다. 토도마츠가 진심으로 혐오한단 표정으로 날 보았다.

 

[우와, 오소마츠형을 울리다니 최악-]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바카라마츠]

 

쵸로마츠도 토도마츠의 뒤를 이어 날 다그쳤다.

역시 이건 내가 잘못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명백히 내 잘못이다. 나는 잡고 있던 팔을 놓고, 오소마츠를 달려래 필사적으로 말을 건넸다.

 

[우윽......흐으............]

[오소마츠!! 내가 잘못했다!! , 울지마라!]

[.......흐윽.............]

 

어쩔 줄을 몰라 나는 오소마츠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벽장에서 완전히 끄집어냈다. 오소마츠는 완전히 힘이 탁 풀린 상태라 쉽게 나왔다. 일단 오소마츠를 가능한 한 소중히 껴안았다. 흐느낄 때마다 튀어오르는 몸과 쿵쿵 울리는 심장소리가 전해졌다.

 

[자아, 그래그래. 괜찮으니까]

[아니, 울린 건 너거든]

[놀랐지. 미안하다]

[흐윽.........]

[이래선 누가 형인지 모르겠네]

 

오소마츠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축축히 눈물로 젖어드는 어깨가 따스하다.

잠시후 날 조심스럽게 꽉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미움 받지 않은 모양이다. 사소한 거였지만 나는 진심으로 안심했다. 점점 오소마츠도 진정해가는 건지 훌쩍이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이제 진정했는가?]

 

얼굴을 들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걸 본 나는 아이를 달래듯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서, 형님은 왜 여기에 있었던 건가?]

[....만화, ...찾으러 온 것뿐]

[만화?]

 

다시 벽장안을 들여다보니, 끌어냈을 때 떨어뜨린 만화가 3권정도 떨어져 있었다.

뭐야. 만화를 가지러 온 것뿐인가. ? 근데 왜 안까지 들어간 거지?

 

[만화를 가지러 온 건데 왜 안쪽에 틀어박혀 있었던 건가?]

 

내 생각을 읽은 듯 쵸로마츠가 날 대신해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벽장에서 읽으려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책을 읽기엔 너무 어둡고, 그럴 거면 그냥 가지로 옆방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오소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눈물은 멈췄지만 눈가가 살짝 붉어져있다. 하지만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다시 숙이며 답했다.

 

[만화 꺼내는데 누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서..]

[]

[당황해서 벽장에 숨었는데 누가 들어와서...]

[?]

[타이밍....을 몰라서 나가질 못했어]

 

오소마츠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쵸로마츠가 말이 끝나자 토도마츠를 노려봤다. 의아하게 생각한 나도 그를 따라 토도마츠를 바라봤다. 결과적으로 토도마츠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토도마츠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서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거 내 탓이라는 거야!?]

[토도마츠네]

[톳티-, 네가 원인이었던 건가]

 

오소마츠의 말대로라면, 오소마츠가 만화를 챙기던 도중에 막내 토도마츠가 운 없게도 방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당황해서 숨어버린 오소마츠는 그대로 나가지 못했다는 것.

이 무슨 bad 타이밍인가.......Oh.......

 

[에에-!! 그걸 어떻게 알아!! 그보다 지금 오소마츠형, 이치마츠형보다 기척 못 느끼겠다고!! 알 리가 없잖아!]

[뭐어, 그야 그렇지만]

 

토도마츠는 요란스럽게 머리를 싸맸다. 쵸로마츠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며 팔짱을 끼고선 맞장구를 쳤다. 오소마츠는 내 등에 둘렀던 손을 풀고, 다리를 끌어안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내 품속에서 어느 정도 진정한 듯했다.

다행이다. 이걸로 조금은 편히 얘기를 나눌 수 있겠지.

나는 오소마츠의 등을 약하게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토도마츠도 토도마츠지만, 너도 나빴다. 여기에 있다는 걸 알렸다면, 토도마츠도 알아채고 일단 방에서 나가줬을지도 모르잖아?]

[........]

 

오소마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토도마츠가 어째선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그랬을지도 모른다구!! 오소마츠형!]

[뭐야, 방금. 그보다 토도마츠라면 벽장에서 소리가 난 시점에서 유령!? 이라면서 방에서 뛰쳐나갔을 걸?]

[......부정은 못 하겠다...]

 

그 때, 쵸로마츠가 한 말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걸 토도마츠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결과적으로 방에서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 알 리가 없는 나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방에 없어서 찾았다고. 형은 지금 정신이 불안정하니까 걱정 끼치지 말아주겠나]

[....미안]

[우리들은 형제잖아?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형은 귀찮을 정도로 엉기는 게 더 형다우니까!]

[너무 엉겨붙는 것도 곤란하지만 말이지]

[...노력해 볼게]

 

이걸로 일단 해결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이다. 형이 울음을 터뜨렸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안심하자, 아까 오소마츠를 끌어안았을 때 생각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그런데 너 너무 마른 거 아닌가? 아까 안았을 때 생각했는데, 쵸로마츠보다 마른 것 같다만]

 

몸을 만지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자, 오소마츠는 몸을 움찔 떨며 경직된다. 그 반응에 잊어버렸던 게 떠올랐다.

그래. 얼떨결에 내 품에 안겼지만, 닿는 걸 싫어했었지. 만지는 걸 싫어한다는 건 오소마츠와 재회했을 때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날은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겁에 질린 눈으로 오소마츠는 내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건 명백한 거절이었다.

 

[-, 미안하군. 안 만지겠다. 안 만질테니까]

 

공중에 멈춰 갈 곳 잃은 손을 내렸다.

 

[여기, 만화. 읽고 싶었던 거지?]

[....]

 

내 말에 쵸로마츠가 벽장에서 만화를 재빨리 꺼내들어,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또 뭐 읽고 싶은 만화 없어?]

[없어..]

 

오소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내 품에서 나와 쵸로마츠에게 만화책을 받았다. 방금까지 온기로 따스했는데, 순식간에 차게 식어 조금 쓸쓸해졌다.

 

[그럼, 이거면 된 거지?]

[..........., 고마워]

 

오소마츠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도망치듯 방을 나가버렸다.

오소마츠가 고맙다고 했어..? 나와 마찬가지로 토도마츠도 놀란 눈치였지만, 어째선지 쵸로마츠는 뭔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뭔가 낯가림 심한 초등학생 같은 느낌이네]

[왠지 모르겠는데 뭔가 알 것 같아]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정말 오소마츠형이지? 다른 사람 같은데]

[우리들이 없을 때 잃어버린 걸지도 모르겠군]

 

나는 생각을 그대로 입밖에 내버렸다.

오소마츠는 지금 여기에 없으니, 말해도 괜찮겠지.

내 말에 토도마츠가 의문스럽게 말했다.

 

[잃어버리다니 뭘...?]

[“을 말이지]

 

내 말대로 오소마츠는 형을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혹은 의도적으로 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오소마츠의 이변을 내가 알아차렸다면, 도와줬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적어도 나만이라도 오소마츠와 함께 있었다면, 오소마츠는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꽉 조여왔다.

 

 

 

 

* * *

 

 

 

 

나는 2년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이유는 간단. 오소마츠형을 더 이상 혼자 둘 수가 없어서다.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게 다른 형제들에게도 전해졌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미노처럼 하나둘 회사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사이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다시 2년 전으로 돌아왔다. 니트 생활로. 다시 할 일 없이 뒹굴거리는 매일을 보내게 되겠지.

 

오소마츠형 이외에는.

 

 

 

 

큰소리를 내서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열었다.

방 한가운데에 자리한 붉은색의 얇은 이불이 볼록하게 솟아있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오소마츠형, 잠깐 얘기 좀 하자]

[.............]

[오소마츠형?]

 

반응이 없다.

자고 있을지도 몰라 살금살금 다가가 귀를 기울이자, 아니나 다를까 안정된 숨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자고 있었나.

살짝 이불을 들어 안을 들여다보자,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무릎을 끌어안은 포즈로 잠들어 있었다.

추운 걸까. 이불도 얇고, 감기 걸린다고?

나는 조용히 벽장을 열어 오소마츠형이 쓰는 1인용 이불을 꺼냈다. 그걸 쿨쿨 자고 있는 오소마츠형에게 덮어 주었다. 이걸로 춥지는 않겠지. 문득 시선을 돌리자, 오소마츠형 머리 근처에 만화가 펼쳐져 있다. 읽다가 잠든 게 분명했다. 나는 오소마츠형 옆에 앉아,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어날 기미는 전혀 없어 보였다.

 

[잘 때는 전이랑 전혀 다를 게 없는데]

 

나는 장난스레 오소마츠형의 뺨을 쿡쿡 찔렀다. 그러자 오소마츠형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작게 신음했다.

 

[으응............]

 

오소마츠형이 입을 쩝쩝거렸지만,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들었다.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웬만해선 잠이 깨지 않는 건 옛날부터 변하지 않는구나.

우리들이 본가로 돌아온 지 오늘로 6일째. 그 동안 오소마츠형의 많은 변화를 발견했다.

폼으로 파트너를 자칭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먼저, 우리들과 눈을 마주치질 않는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마주쳐도, 금방 도망치듯 고개를 돌린다.

또한, 우리들과 접촉하는 것에 공포를 보였다. 만지려 손을 뻗으면, 과하게 겁을 내며 노골적으로 피했다.

게다가 도망치듯 모습을 숨기는 일이 많아졌다. 오소마츠형은 우리들과 만나고 싶지 않은 듯, 공용 장소를 사용할 때는 괜히 시간을 끌곤 했다. 실제로, 우리들이 오소마츠형에게 가까이 간 적은 있어도, 오소마츠형이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온 적은 슬프게도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우리들이 2년만에 돌아왔을 때부터, 오소마츠형은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돌아온 지 6일째 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형제들에게 물어도 다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걱정인 건, 그 특유의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웃는 걸 한번도 보지 못했다. 2년전에는 매일같이 볼 수 있었던 미소를 전혀 볼 수가 없다. 그걸 알아챈 나는 그 순간 느낀 엄청난 슬픔과 쓸쓸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또 그 미소가 보고 싶어.

언젠가 보여줄 거지?

같이 있으면 웃어줄 거지?

 

 

오소마츠형.

 

 

 

나는 오소마츠형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고는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로부터 대략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오소마츠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패닉에 빠지지는 않게 되었다. 처음과 달리 과호흡 상태가 되지 않는 걸 보면, 다소 우리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일상대화도 아직 어딘가 부자연스럽지만, 그래도 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불안해지면 벌벌 떨면서 이상한 기색을 보였지만. 처음에 비하면 훨씬 낫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오소마츠 벽장사건 이후, 드물지만 거실에 내려오게 되었다.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지만, 우리들이 신경 쓰이는지 가끔 시선이 느껴졌다. 오소마츠가 거실에 있을 때는 대개 그냥 누워 있거나, 간식을 먹고 있거나 했다. 봄이 왔음에도 여전히 거실에 자리하고 있는 코타츠에 어깨까지 푹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았다. 종종 이치마츠와 쵸로마츠랑 같이 몸을 녹이는 걸 보았다.

그 일로 쵸로마츠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오소마츠의 발에 쵸로마츠의 발이 닿았다는 모양인데. 코타츠니까. 공간이 좁으니 발이 닿는 건 드문 일도 아니지만, 오소마츠는 피하듯이 발을 움츠렸다는 듯하다.

 

 

그것도, 엄청 빠른 속도로.

 

 

뭔가 엄청 나쁜 짓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쵸로마츠의 입장이라면 나도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거실 문을 여니, 드물게도 오소마츠가 코타츠에 들어앉아 귤을 까먹고 있었다. 방에는 오소마츠와 똑같이 코타츠에 들어앉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있었다. 거실을 둘러본 순간, 분명하게 들릴 정도로 이치마츠가 크게 혀를 찼다.

 

[....쿠소마츠는 안 불렀거든. 2층으로 꺼져]

[으응~? 미안하군, 브라더. 오늘은 거실에 있고 싶은 기분이다. Are you OK?]

[닥쳐. 귀가 썩어]

[]

 

울상을 지었지만, 쵸로마츠는 늘 있는 일이잖아, 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와 이치마츠의 시비스런 대화에 오소마츠도 신경 쓰지 않는 듯,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귤을 까고 있다.

Oh.......쳐다보지도 않는 건가......아니, 애초에 구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뭐라고 할까...........신경 좀 써줬으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소마츠의 왼쪽이 비어있어, 거기에 앉아 코타츠에 발을 넣었다. 꽤 전에 전원을 켠 듯, 딱 알맞게 후끈후끈 따뜻했다. 아까 가지고 온, 애용하는 푸른 손거울을 한 손으로 들고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오늘의 나도 정말 멋지군~!! 몇 시간이고 들여다봐도 질리지가 않아!! 눈썹에 힘을 주어 또렷하게 세우자 더 멋있고 세련되어 보인다. ~, 그러고 보니 새로운 컬러 렌즈가 발매된 것 같던데. 스카이 블루라니 엄청 쿨~하지 않겠나? 한눈에 반해버려 바로 예약해 버렸다!! 이로써 나의 멋짐은 한층 더 성장하게 되겠군!! 기다려라. 카라마츠 girls!!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오소마츠 쪽이었다.

천천히 손거울에서 시선을 돌려 오소마츠를 보자, 몸을 움찔하며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귤을 입에 털어놓았다. 그렇게 급하게 먹을 것 없다고. 내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던 모양인지, 그걸 본 쵸로마츠도 덩달아 어색하게 웃었다.

 

[오소마츠형,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사레들린다?]

[갠하나]

 

입을 우물거리며 말하는 오소마츠를 보자니, 래서팬더가 떠올랐다.

나는 시선을 다시 손거울로 돌렸다.

~. 오늘도 멋진 나!!

 

[저기, 오소마츠형]

[~?]

[머리 쓰다듬어도 돼?]

 

그 말에 손거울을 떨어뜨릴 뻔했다. , 어떻게든 붙잡았다. 잘못하다 깰 뻔했다. 위험하군. 위험해. 그보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쵸로마츠. 오소마츠를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쵸로마츠, 너 오소마츠가 만지는 거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

 

[조금이라도 괜찮으니까, ?]

[............., 알겠어]

 

오소마츠는 꽤 당황한 듯했지만, 쵸로마츠가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손을 모으고 부탁을 해오자,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오소마츠, 역시 무리하고 있군. 힘들어 보이면 역시 말려야겠지.....

나는 손거울을 보는 척하며 흘긋흘긋 두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그럼, 할게?]

[....., ]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팔을 뻗어 천천히 머리에 손을 얹었다. 예상외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오소마츠의 몸은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경직되어 있었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에 손을 얹자, 오소마츠는 눈을 꼭 감고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흘렸다. 참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고 있다.

 

[우으...........-......]

[못 참겠는가]

 

나는 보다 못해서 손거울을 책상에 내려두고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에서 손을 치웠다.

 

[역시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네. 미안]

[.......]

 

이치마츠도 나와 마찬가지로 신경 쓰고 있었는지,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만져지는 건 힘들어도 만지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잖아?]

[오오!! 그거 맹점이로군!! 역시 이치마츠다!]

[닥쳐 쿠소마츠. 죽인다, 쿠소마츠]

[Oh.......]

 

이치마츠의 제안을 칭찬하자, 망설임 없이 욕을 퍼부어 온다.

나는 알고 있다고....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는 거지? 브라더~?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귀여운 동생이군

쵸로마츠가 우리들의 대화가 어이없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매일매일 질리지도 않나 보네. , 오소마츠형. 나 만져볼래?]

[? .........., ?]

[힘들면 도중에 그만둬도 괜찮으니까]

 

오소마츠는 갑작스런 제안에 곤란한 눈치였다.

그도 그렇겠지.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살짝 닿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만지라고 하는 건.

-, 하고 고개를 숙이며 살짝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 조금만이라면]

[정말!?]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는 고개를 끄뎍였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코타츠 위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오소마츠의 시선이 그 손에 향했다.

 

[처음이니까 손이면 돼]

[그렇네]

[오소마츠형이 괜찮을 때 하면 되니까]

 

쵸로마츠가 그렇게 덧붙이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쵸로마츠의 손 근처까지 가서 딱 멈춰섰다.

 

[괜찮아. 안 움직일 테니까]

[......]

 

조심조심 움직여 손을 건드리려 다가가지만, 주저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다가갔을 땐 살짝 손끝이 닿았다. 오소마츠에게는 그게 고작인 듯 닿은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이마에 살짝 땀이 맺혔다. 오소마츠가 목소리를 쥐어짜듯 말했다.

 

[......................이게, 한계, ......]

[역시 바로는 안 되나~. 이제 떼도 돼]

 

쵸로마츠가 그렇게 말하자, 오소마츠는 닿았던 손을 황급히 떼었다.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가슴 앞에 손을 모은다. 고개를 푹 숙이곤 작게 중얼거리는 오소마츠.

 

[....미안]

[왜 사과하는 거야. 오소마츠형은 잘 했다고? 그 의사만으로도 기쁘니까]

[그래, 오소마츠.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조금씩 익숙해지면 되는 거니까]

[.....]

 

이 상태라면 만질 수 있게 될 때까지, 아직 한참의 시간이 걸릴 거다.

하지만 가능한 빨리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노골적으로 피해지면 기분이 좀 그러니까 말이지. 지금은 힘들지만 무사히 회복되면, 오소마츠를 맘껏 안아주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다 같은 생각이겠지.

 

 

 

 

-.

 

갑자기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울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자 자그마한 검은 고양이가 오소마츠가 있던 코타츠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검은 고양이는 코타츠에서 튀어나와 근처에 있던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무릎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소마츠는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고양이가 자기 무릎에 올라타는 일은 좀처럼 없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이치마츠가 나른한 표정으로 코타츠에 있던 귤을 하나 집어들었다.

 

[...오소마츠형, 어차피 한가하지? 그 애가 마음에 드는 것 같으니까 놀아주는 게 어때]

 

쵸로마츠가 놀란 표정으로 이치마츠에게 말했다.

 

[그보다, 고양이 있었어? 언제부터!?]

[-. 내가 여기에 왔을 때부터 있었는데]

[진짜!? 전혀 몰랐는데...]

[아직 2마리 더 있을 걸]

 

이치마츠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쵸로마츠형이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귤을 까기 시작했다.

 

[하아!? 뭐야 그 눈은!! 내 반응이 그렇게 이상해!?]

[조용히 좀 하라고. 놀라서 도망치면 어쩔 거야. , 내 친구들 걷어차면 죽인다]

[뭐야 그게, 무서워!! 너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잖아!]

 

쵸로마츠가 오버스럽게 머리를 싸맸다.

나도 고양이가 있는 줄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 내 발에 닿는 푹신푹신한 건 이치마츠의 친구인가? 발에 닿았을 뿐, 차지는 않았으니 아무 문제 없겠지!!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돌리자, 검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고 있다. 오소마츠가 목아래를 쓰다듬자 고롱거리며 기분 좋은 듯이 눈을 살짝 감았다.

솔직히, 부럽다. 나도 오소마츠를 만지고 싶고, 만져지고 싶다. 고양이가 부러워지는 날이 오다니....인생이란 뭐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로군.

아차.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쏟았지만, 슬슬 재개해야겠군.

나는 탁자에 둔 손거울을 다시 들고, 그 안에 비치는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배고파-]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

 

토도마츠가 손을 뻗으며 코타츠에 푹 엎드렸다. 거실 시계를 보니, 마침 7시 가리키고 있다. 거실에는 오소마츠형, 토도마츠, 그리고 내가 있다.

오소마츠형이 거실에 있을 때는 가능한 같이 있으려 했다. 오소마츠형이 거실에 온다는 건 조금이라도 우리들에게 다가가려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싫다면 방에 처박혀 있을 테고. 실제로, 단순한 나는 오소마츠형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게다가 가능하다면 얼른 극복해줬으면 한다. 그래도 조금은 우리들 시선에 익숙해진 듯 아주 잠깐 동안은 마주보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 미세한 정도지만 그걸 알아챘을 땐 정말이지 기뻤다. 조금이라도 오소마츠형의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계속 거실에 있었지만 특별히 할 일은 없어서, 계속 뒹굴거리고만 있다.

 

문이 드륵드륵 하고 힘차게 열리는 소리가 현관 쪽에서 들려왔다.

 

[다녀왔스루!! 머스루머스루!! 허스루허스루!!]

[.....다녀왔어]

[드디어 쥬시마츠형들도 돌아온 모양이네]

 

토도마츠는 핸드폰을 한손에 들고 거실을 나가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 나도 무거운 허리를 들어올렸다.

 

[끄응차]

 

일어섬과 동시에 옷깃을 누가 잡아당겼다.

뭔가 싶어서 보자, 오소마츠형이 내 파카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잡고 있었다.

 

[왜 그래? 이제 곧 저녁 먹어야 하니까 카라마츠 부르러 가려고 했는데...]

[...나도 갈래. 슬슬 방으로 가려고...]

 

내 옷자락을 놓고 오소마츠형도 일어섰다.

오소마츠형을 데리고 거실을 나가자, 계단을 내려오던 카라마츠랑 마주쳤다.

 

[쵸로마츠...랑 오소마츠인가. 어디 가는 건가?]

[아니, 너 부르러 가려고 했는데 마침 내려오네]

[그런가. 저스트 타이밍이로군!]

[그래그래]

 

폼 잡으며 말하는 카라마츠에 적당히 답을 했다.

카라마츠가 내려왔으니 내 용무는 끝났지만, 오소마츠형을 방에 데려다주긴 해야겠지. 거실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보내고 가도 부자연스럽진 않으니까.

그 순간 현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야키소바!! 야키소바 냄새!! 오늘 저녁은 야키소바야!! 분명 야키소바!!]

[, 냄새가 나!? 전혀 안 나는데!!]

[, 쥬시마츠 코 얕보면 안 된당께]

[누구야 그거!!?]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걸 본 오소마츠는 나와 카라마츠를 말없이 번갈아 보았다.

....설마....

 

 

[....아아...!!]

 

 

역시나다.

우왕좌왕하며 황급히 거실로 뛰어가는 오소마츠형을 쫓아가자, 아까 그 위치로 돌아가 코타츠에 머리끝까지 푹 기어들어가 있었다. 오소마츠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많아....무리, 무리야]

 

이럴 때, 안심시키기 위해 쓰다듬어 준다는 선택지가 없어져 정말 골칫거리다. 오소마츠형의 경우, 역효과가 나니까.

뭔가 안심시켜줄 방법이 있다면 좋을텐데.

11이라면 나름대로 상대를 해주는데, 3명만 되어도 불안한 표정으로 침착성이 없어진다.

4명 이상이 되면 완전히 완전 패닉에 빠진다. 그러니까, 오소마츠형이 방에 있을 땐 3명만 있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나는 덜덜 떠는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오소마츠형]

[, ....?]

[, 같이 먹을래?]

[....]

 

오소마츠형은 예상외의 내 발언에 고개를 들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역시 거실에서 다 같이 먹는 건 아직 힘들지? 오늘만이라도 나랑 오소마츠형 방에서 같이 먹어도 될까?]

[그거라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저녁이니 쥬시마츠들이 거실로 올 거다.

일단 오소마츠형을 2층에 데려다 줘야겠지.

내가 뒤돌자, 언제 왔는지 카라마츠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내 뒤에 서있었다.

-, 아까 당황하며 거실로 뛰어갔으니 당연하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2층에 데려다주고 올테니까 쥬시마츠들 부탁할게]

[알겠다, 브라더. 내게 맡겨라]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카라마츠는 재빨리 거실에서 나갔다.

여전히 상대의 중대한 일에는 놀라울 정도로 이해력이 빠른 녀석이다. 자신에 관해선 기막히게 둔하면서. 그걸 자신한테도 발휘하라고. 카라마츠 답다면 답지만.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었다.

 

[, 애들이 오기 전에 빨리 나가자]

 

오소마츠형이 느릿한 움직임으로 코타츠에서 나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오소마츠형을 데리고 문을 나선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며 안심하다.

카라마츠가 해결을 한 모양이다. 계단 앞까지 가서 오소마츠형한테 말을 걸었다.

 

[먼저 방에 가있어. 나는 밥 가지고 올라갈게]

[....알겠어]

 

오소마츠형은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급하게 가지 않아도 괜찮은데. 넘어질까봐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올라간 것 같다.

나는 오소마츠형이 계단을 오르는 걸 다 보고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훅 풍겨져 왔다. 식욕을 돋구는 냄새에 가까이 다가가자, 맛있어 보이는 야키소바가 접시에 담겨있다. 쥬시마츠의 말대로 야키소바다.

후각 굉장하네. 개였던 건가, 그 녀석.

 

[어머, 배고파서 온 거니? 이제 곧 다 되니까, 잠깐 기다리렴]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엄마가 말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 오늘은 2층에서 오소마츠형이랑 같이 먹기로 했으니까 내가 밥 가져갈게]

[어머, 그러니? 알겠어. 바로 준비해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렴]

 

엄마는 조금 놀란 표정을 보였지만, 솜씨 좋게 오소마츠형과 내 몫의 야키소바를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야키소바를 담은 그릇을 쟁반에 담아 건넸다.

 

[많이 담아서 쏟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렴. 특히 계단 오를 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애도 아니고]

 

쟁반을 들어 양손이 가득 찬 나를 걱정한 엄마가 부엌문을 대신 열어주었다. 나는 쏟아지지 않게 천천히 오소마츠형이 잇는 방으로 갔다. 무사히 2층으로 올라가 방문 앞까지 도착했다. 갑자기 들어가면 놀랄지도 모르니, 들어가기 전에 말을 걸었다.

 

[오소마츠형, 들어갈게]

 

재빨리 팔꿈치로 문을 열었지만, 순간 쟁반에 있던 물컵이 흔들리면서 물이 쏟아질 뻔해서 마음이 덜컥했다. , 위험했다. 눈앞에서 엎을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다.

오소마츠형은 내게 등을 돌린 채 무릎을 끌어안고 누워있고, 방 중앙에는 접이식 원형탁자가 놓여 있었다. 아마 식사 때에 오소마츠형이 쓰는 거겠지. 테이블 옆에 쟁반을 내려두고 저녁밥을 탁자 위로 옮겼다.

엄마한테 쟁반을 받았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오소마츠형의 양 엄청 적구나. 그때부터 바뀌지 않은 건가. 좀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상을 다 차리고 오소마츠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얼굴을 살짝 들여다보니,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잠깐, 왜 자는 거야. 밥 먹을 거라고 했잖아.

나는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일어나. 오소마츠형, 자지 말라고]

 

내 목소리에 닫힌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형이 나를 발견하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본 자다 깬 얼굴.

어쩐지 기뻐서 무심코 웃음을 지어보였다.

 

[...잔 거 아니야]

[딱 봐도 잔 건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침이나 닦으라고]

 

오소마츠형은 내 지적에 졸린 눈으로 입가를 쓱쓱 닦았다. 내가 탁자에 앉자, 오소마츠형도 내 앞에 앉았다. 그걸 본 나는 가슴 앞에 합장을 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소마츠형도 합장하곤 잘 먹겠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배가 엄청 고팠기에, 젓가락을 쥐고서 허겁지겁 야키소바를 먹었다.

으응~!! 맛있어-!! 엄마가 해주는 야키소바 오랜만이네-!! 역시 엄마!! 엄청 맛있어!

잠깐 야키소바의 맛에 흠뻑 젖어있었지만, 오소마츠형이 잘 먹는지 궁금해 시선을 돌렸다.

상당히 느릿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입을 우물거리는 게 보였다. 입안에 면을 가득 넣기 싫은 건지, 도중에 면을 잘라내었다.

밥 먹는 속도가 이렇게나 떨어지다니...

 

[어때? 맛있어?]

[....]

 

나는 야키소바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아무런 말도 않고,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딱 멈추고 오소마츠형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그건, 오소마츠형이 지금 젓가락으로 쥐고 있는 저것의 정체 때문이었다. 오소마츠형은 그걸 거리낌 없이 입안에 넣어 씹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형이 피망을 먹고 있어....]

[?]

 

옛날부터 피망만은 죽어도 안 먹던 오소마츠형이, 피망을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그것도 싫은 표정 하나 짓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먹어 보였다. 얼빠진 표정의 나를 의아한 듯, 오소마츠형은 여전히 입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먹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렇게 싫어했는데!!?]

[? .....뭐가?]

[피망!! 이런 건 먹을 게 못 된다면서 카라마츠한테 떠넘겼었잖아!!]

 

오소마츠형은 내 기세에 눌렸는지, 시선을 피하며 살짝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는 건 아니지만...못 먹을 정도는 아니, 려나]

 

이런.

흥분해서 평소처럼 말해 버렸다. 오소마츠형이 긴장하고 있다. 일단 나부터 진정하자.

탁자에 올라탈 기세로 내민 몸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목소리 톤도 낮춰서.

 

[쓰지 않아...?]

[........뭐라고 해야 할까...딱히 아무런 맛도 없다고...해야 하나]

[진짜냐...]

 

내가 먹었을 땐 그냥 평범한 피망의 맛이었는데....설마 미각을 잃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오소마츠형이 그렇게나 싫어하며 편식하던 피망을 먹게 되다니....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나는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잘 먹었습니다]

 

오소마츠형은 다 먹었는지 손을 합장하고 인사를 했다. 접시를 보니 야키소바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드물지만 적은 양이라면 다 먹긴 하는 모양이다. 남기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다 먹어주었다.

다행이다. 먼저 식사를 끝낸 오소마츠형을 따라, 조금 남은 야키소바를 마저 먹고 나도 합장하고 인사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만복감에 숨을 후, 내쉰다.

후우. 나는 기지개를 쭉 펴며 뒤로 드러누웠다. 이제 씻고 자기만 하면 되네. 배부르면 늘 졸려진단 말이지-. 지금도 그렇고.... 다들 슬슬 다 먹었으려나.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자,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 무슨 소리지? 단숨에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뭔가를 입에 넣는 오소마츠형과 탁자에 놓인 흰 알약이 든 병이 있었다.

 

 

.....약 먹는단 얘긴 처음 듣는데.

 

 

 

 

[뭐야 그거]

 

언짢은 목소리로 물었다.

명백히 내 기분이 목소리에 드러났는지, 현저히 낮아진 내 목소리에 오소마츠형이 움찔 몸을 떨었다. 마침 물을 마시고 있었던 탓에 물이 입가에 살짝 흘러내렸다.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컵을 탁자에 탁, 하고 내려둔다. 오소마츠형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 인데...]

[그건 보면 알아. 솔직히 말해줘. 어디 아픈 거야?]

 

탁자 위에 놓인 투명한 병을 집어들었다. 안에는 하얀 얄약이 반쯤 들어있었다. 빙글, 병을 돌려 보았지만, 라벨은 붙어있지 않아서 무슨 약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나는 오소마츠형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움찔 몸을 떨며 당황하더니 이내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리곤 오소마츠형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냐....그냥 영양제야. 아픈 거 아니야]

[..........정말?]

 

그런 수상한 기색을 보이며 말하면, 믿을 수가 없잖아.

하지만 예전의 오소마츠형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의 오소마츠형이라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확률은 반반이다.

 

[, 많이 못 먹으니까.....먹고 있는 것뿐이야..]

 

오소마츠형은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는 마치 오소마츠형의 감정을 드러내는 듯했다. 이 이상 추궁했다간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나는 체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픈 건 아닌 거지?]

[아픈 건 아냐. 정말, 이야]

[그럼 됐어. 걱정하게 만들지 말라고, 정말]

 

다 먹은 접시와 컵을 쟁반위로 치웠다.

오소마츠형에게는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지만, 슬슬 나가지 않으면 목욕탕이 닫을지도 모른다.

 

[...안 했던가..]

[안 했어!! 애초에 약먹는다는 것도 몰랐다고!]

[...미안...]

[말하지 않은 거 잔뜩 있거든. 톳티도 아니고 그런 중요한 건 말해 달라고. 알겠어?]

[, 알겠어]

[알았으면 됐어]

 

오소마츠형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빈 접시가 놓인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그대로 방문 앞까지 걸어나가 문을 열었다. 그리곤 복도로 나가 오소마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나 가볼테니까. 오소마츠형도 빨리 씻으러 가]

 

다시 오소마츠형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나는 문을 닫고 부엌으로 향했다.

 

 

 

 

 

 

 

 

쓸쓸함은 이미 잔뜩 겪었다.

아주 잔뜩.

2년 동안 쓸쓸함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데, 다시금 온기에 느껴 떠올리고 싶진 않다.

쓸쓸한 건 싫다.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존재.

그러니까 나는 외로움이란 존재를 죽였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걸로 녀석들을 만나지 않아도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런데 동생들이 돌연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기도 다시 내게 손을 뻗어왔다.

그만둬.

제발 그만둬.

건드리지 마.

, 이제 너희들과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아.

..............

끈질기네, 제발 부탁이니까 나 같은 건 내버려 둬.

안타깝지만, 이지 너희들이 아는 장남은 없어.

 

 

없어져 버렸어.

너희들이 아는 장남은, 이제 없어.

이미 늦었다는 건, 나밖에 모르겠지만.

 

 

 

 

 

 

 





저저번주에 올리려고 했는데

1페이지 있는 줄 몰라서

빼먹고 번역해서 못 올렸습니다 ;ㅂ;



후편도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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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꿀 때2






언젠가, 그 날의 저녁 노을에 다가갈 수 있을까.

 



 

 ===============================================

 

 






카라마츠는 자신이 사랑 받기 위한 예행연습으로, 먼저 파트너인 토도마츠를 택했다.

 

 

선택한 이유는 매우 간단.

 

 

평소에는 드라이몬스터 느낌을 뿜어내지만, 사실은 혼자서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겁쟁이에 울보이기 때문에 반응을 알기 쉬워서다.

 

 

오늘 집에 있는 건, 토도마츠뿐. 어떻게든 둘만 있을 때에 접촉하려 기회를 노리다 보니, 그 날로부터 일주일이나 지나버렸다.

 

일이 없는 니트는 매우 가난하다. 그 탓에 뭔가 하고 싶고, 어딜 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다.

 

 

거기서 카라마츠가 노린 건, 용돈을 받는 날 이후. 장남인 오소마츠는 도박을 좋아하니까 분명 용돈을 받으면 경마나 파칭코로 가겠지. 평소에는 돈이 적으니까 귀가도 빠르고 집에서 뒹굴거리지만, 용돈을 받은 다음날은 꽤나 늦게 온다.

삼남인 쵸로마츠는 엄청 좋아하는 지하 아이돌에게 간다. 귀가가 제일 늦다.

사남인 이치마츠는 길 고양이와 노는 게 삶의 이유인 녀석이니까, 돈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잘 나다니지만, 용돈을 받은 날에는 특별히 비싼 고양이 캔을 사가지고 간다. 그 때는 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오남 쥬시마츠는 용돈의 유무에 관계없이, 야구 유니폼을 입고, 배트와 볼을 들고 어딘가로 향한다. 신출귀몰해서 가장 행동을 읽기가 힘들다. 하지만, 용돈을 받은 날은 조금 멀리 있는 해변가로 나가는 탓에 돌아오는 게 비교적 늦다.

육남 토도마츠는, 기본적으로 용돈을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옷이나 소품, 패션 용품 등에 쓴다. 나머지는 소개팅에서 쓴다.

 

 

토도마츠의 경우 비교적 계획성이 있기 때문에, 그 날까지 용돈을 쓰지 않거나, 얼마를 남겨둘지를 정해두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 사흘 후에 원하는 옷이 나와서, 그걸 사고 싶으니 돈을 아끼기 위해 오늘은 집에서 지낸다는 거다.

 

 

하지만, 아직 실제로 토도마츠에게 뭘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노 플랜인 상태다.

 

 

최근에는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기 때문에, 일단은 얘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어쩌면 평소처럼 대해줄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서.

 

 

 

 

 

 

 

 

 

 

카라마츠가 거실에 있자,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누구 있어? ......, 카라마츠형이냐....]

 

토도마츠는 카라마츠를 보자마자, 노골적으로 실망한다.

 

[, 토도마츠. 뭔가 내게 볼일이라도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지]

 

카라마츠는 탁자에 손을 대고 몸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토도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 됐어됐어. 그보다, 그거, 어떻게 안 돼? 뭐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 눈치 보는 짓만 해대고 말야]

 

카라마츠는 그렇게 지적당하자, 크게 당황한다.

 

[, 딱히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는 것뿐이다. 그럴게, 너희는 소중한 브라더니까]

 

[하아~~, 그게 아니라고, 왜 못 알아듣는 거야. 전의 이따이마츠형이라면 아직.....아니, 백보 양보해서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형은 무리. 불쌍한 자기한테 심취해있는 거? 아니면, 뭐야, 우리들을 비꼬는 거야?]

 

토도마츠는 기막힌다는 듯한 시선으로 카라마츠를 바라본다. 그건 마치 생판 모르는 남을 대하는 듯한 냉정한 표정에 카라마츠는 무심코 가슴을 부여잡았다, 심장이 꽈악 조여드는 감각과 몸속의 혈액이 역류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만, 그런 눈으로 날 보지마! 나는, 너희를 비꼬려던 게 아니다!!]

 

[흐응, 그럼 왜 붕대도 전부 풀었는데, 우리랑 같이 안 자는 거야? 목욕도 같이 안 가잖아!?]

 

토도마츠에게 그렇게 지적당한 카라마츠는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카라마츠는 그 날부터 계속 1층에서 자고 있다. 덧붙여서, 옷을 갈아입는 것과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어, 혼자 집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그건..........]

 

--너희들의 그 고리 안에 들어가는 걸 잊어버렸으니까.

 

 

라는 말을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더듬거린다. 미적지근한 태도에 질렸는지, 토도마츠는 깊은 한숨을 토했다.

 

[......이제 됐어. 마음대로 해]

 

 

토도마츠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곤 고개를 돌리고 거실을 떠났다. , 하고 카라마츠가 그를 붙잡으려는 듯 팔을 뻗는다.

 

 

하지만, 허공만 잡을 뿐,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에게서 멀어졌다.

 

 

--또다, 또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 내게서 멀어져가는 건가. 나는 이제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는 걸까.

 

 

뇌리에는 그날의 고독한 석양 하늘이 떠올랐다.

카라마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카라마츠의 마음이 식어 간다. 칙칙한 검은 안개가 그의 마음을 둘러싼 듯했다.

 

 

[.....싫다, 싫어. 혼자 두지 마]

 

카라마츠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깨를 살짝 떨더니, 고개를 팟, 하고 쳐들었다.

그리곤 토도마츠가 있는 2층방을 향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 뭐야!? 뭔데!?]

 

눈물을 가득 머금고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카라마츠의 눈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토도마츠는 무심코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린다.

 

[......어떻게 하면 날 봐줄 건가? .....내게 상냥하게 대해줄 건가? ...? 말해봐라, 토도마츠!!!]

 

 

큰소리로 그렇게 외치면서 토도마츠에게 다가갔다.

 

[, , 잠깐, 오지마!! 싫어!! 그런 게 싫다는 거잖아!! , 사이코패스!!!]

 

갑자기 카라마츠가 가까이 다가오자 놀란 토도마츠는, 카라마츠를 피해 달아났다.

 

 

! 하는 큰 소리를 내며 복도에 쓰러진 카라마츠는 놀라움에 눈을 부릅뜨고 토도마츠를 바라본다. 올려다본 토도마츠의 눈에는 거절의 눈빛이 머물고 있었다.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뭔가 말하려 입을 뻐끔뻐끔 움직이지만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 , 미안. 미안, 토도마츠...., 내가,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하면, 싫어하지 않을 건가. 어떻게 해야....]

 

 

-- “나를 좋아해줄 건가

 

 

카라마츠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넋이 나간 듯한 그 울림에 토도마츠는 섬뜩함을 느꼈다.

 

--누구야, 이 녀석. 정말 카라마츠형인 거야? 몰라. 이런 형, 모른다고!

 

[? 토도마츠!! 말해봐....말해보라고...!!]

 

카라마츠의 외침에 토도마츠는 핫,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낟.

 

 

[....그럼, 사라져. 빨리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꺼져!!!!]

 

 

토도마츠는 서서히 소리를 높였다. 그에 카라마츠는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알겠다]

 

 

유리로 된 모래시계가 챙강, 하고 어디선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더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듯이.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슬쩍 입가를 올린다.

눈물은 이미 멎어있었다.

 

[고맙다, 토도마츠]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손을 흔들고 방을 나갔다.

 

[, 뭐야....정말]

 

남겨진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의 변화에 안 좋은 예감을 느끼면서도, 진이 빠진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카라마츠가 향한 곳은 욕실. 카라마츠는 세면대에 면도기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면도기를 분해해 날만 따로 빼냈다.

 

그런 다음 샤워로 찬 물을 틀어둔다. 상처에 찬물이 닿으면 피가 멎지 않는 걸 이용하려 한 것이다.

 

 

[역시, 토도마츠로군. 몰랐어. 죽으면 편해질 수 있고, 모두 나를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겠지]

 

 

--토도마츠는 고교 시절, 나를 주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줬다. 그 결과, 나는 무대위에 주연으로서 설 수 있게 되었다. 직소의 원망을 사긴 했지만.

지금도 그렇다. 토도마츠는 또 다시 날 주역으로 만들어 주었다!

 

 

카라마츠는 면도날에 엄지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그러자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피다.......]

 

 

이 피를 보고 쥬시마츠가 상냥하게 대해줬다. 치료를 하고, 진심으로 걱정해줬다.

 

 

[.....아아, 그때는 정말 기뻤는데]

 

 

가능하다면, 다시 그 기분을 맛보고 싶다. 무대 위에서 박수갈채를 받는 그때와 같은 기쁨을!!

 

 

그런 생각을 하며, 카라마츠를 시선을 돌려 면도칼을 오른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왼팔을 그었다.

 

 

 

 

 

 

 

 

 

 

그 무렵, 토도마츠는 답답한 심정으로 거실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라, 형 없네.....너무 말이 심했나. 아니, 그치만 안 그랬으면 물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토도마츠는 멍하니 휴대폰 화면을 바라본다.

 

 

방금전의 정신 나간 듯한 눈을 가진 카라마츠는,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그런 형은 처음봐. 뭐인 거야, 이따이마츠 주제에]

 

 

토도마츠는 탁자에 폰을 내려놓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 때, 작게 물소리가 들렸다.

 

 

[........물소리? 그 인간 대체 뭘 하려는 거야...]

 

토도마츠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는 욕실로 가까이 다가갔다.

 

 

[.....역시 물소리가 맞네. 이런 대낮부터 왜 샤워를 하고 그러는 거야]

 

 

카라마츠는 밖에 나갔다고 생각했던 토도마츠는, 놀라면서도 역시 안쓰럽네~ 라며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어차피 불결함을 씻어 낸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 라며 문고리를 잡았다.

 

 

[저기, 그렇게 물 틀어두면 엄마한테-!!]

 

한마디 하려 그렇게 말을 꺼냈지만, 그 말을 다 끝마치지도 못한 채 말문이 막혀버린다.

 

 

왜냐면, 그곳에는 목욕탕 타일을 붉게 물들이며 벽에 기대어 고개를 떨군 형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경악스러운 광경에 놀라 눈을 크게 뜬다.

 

 

[히익---]

 

왼손에 그인 몇 가닥의 붉은 선에서 혈액이 흘러내려 배수구를 향해 빨간 줄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면도칼이 쥐어져있었다.

 

 

[, , 잠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토도마츠는 패닉에 빠져, 물을 끌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카라마츠의 팔에 물을 쏟아붓는 샤워기를 욕조로 치워버린다.

 

[저기, , 살아있어!? 저기!! 어이!!! 카라마츠형!!!!!!!!!!]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앞뒤로 흔들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에서 수건을 들고와 상처부위를 꾹 눌렀다.

 

 

[....., . 살아있다고.....왜 그러나, 토도마츠. 죽을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겠나]

 

 

카라마츠는 정신을 차리고, 토도마츠를 보며 신기한 듯 그렇게 중얼거린다.

 

 

질척하게 수건을 붉게 물들였지만, 그렇게까지 상처가 깊지는 않았던지 금방 피가 멎었다.

 

 

[왜 그러나, 가 아니잖아!! 이 바카마츠!!! 바보!! 멍청이!! 왜 죽으려는 거야!? 설마 아까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거야!? 바보야 진짜!!!?]

 

 

카라마츠가 의식이 있다는 걸 확인한 토도마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 어째서 우는 건가, 토도마츠. 어디 아픈 건가, 괜찮아?]

 

 

카라마츠를 당황하며 토도마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픈 건 형이잖아!! 애초에, , 면도칼 따위로 죽을 리가 없잖아!! 안쓰러워!! 안쓰럽다고!!]

 

 

토도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카라마츠의 가슴을 때렸다.

 

 

[, 미안하다....다음에는 좀 더 제대로 할테니까...]

 

[, 그만하라고. 훌쩍, 죽지마, 죽지 말라고오오!!]

 

 

토도마츠는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 드라이한 토도마츠가 지금 자신을 위해 울어주고 있다.

 

 

동생이 울고있다면 달래주는 것이 형의 도리이지만, 이 때의 카라마츠는 조바심이나 죄책감보다는 우월감과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미안, 미안해, 카라마츠형! 이제 사라지라고 안 할테니까아아!!]

 

 

지금보다 더 만신창이였을 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차가운 눈으로 쳐다왔는데.

 

 

엄청난 기쁨에 등골이 움찔움찔 떨려왔다.

 

 

[.......미안, 토도마츠]

 

 

카라마츠는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리곤 토도마츠를 부드렵게 껴안았다.

그건 무엇에 대한 사과였던 걸까-

 

 

쥬시마츠 때에는 정말 우연이었다. 토도마츠의 경우엔 대화의 흐름을 탔을 뿐. 공통적인 부분은 주위에 다른 형제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자학 행위를 했다는 것. 별로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당황했다.

 

 

얼마나 상냥함과 사랑에 굶주렸던 걸까, 처음 자위를 했을 때처럼 강한 배덕감과 쾌감이 온몸을 누볐다.

 

 

한번 그 느낌을 맛보면, 더는 멈출 수 없다.

 

 

울음을 그친 토도마츠는 그 후, 카라마츠의 상처를 치료해줬다. 핏자국을 깨끗이 닦아내고, 다친 곳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소독했다.

 

 

[어떡해....이거 분명 흉터남을 거야....나 때문에...]

 

 

죽죽 그어진 그것을 보며 토도마츠는 또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걸 알아챈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이건 내 부주의로 그런 거라고 하면 된다. 그러니까, 너는 모르는 척해주겠나]

 

 

그리고 그런 제안을 꺼낸다.

 

 

 

--다른 형제들에게 들키는 건 금방이다. 하지만 나는 한명한명에게 상냥함을 받고 싶으니까.

 

 

크게 다쳤을 때는 별로 흥미도 없던 주제에, 이렇게 살짝 팔을 그은 것 정도로 크게 당황하는 걸 보면, 상당히 자기 탓으로 만들기 싫었던 모양이다.

 

 

옛날부터 장난을 치는 것도 여럿이서 했기 때문에, 혼날 때에도 누군가 곁에 있었다. 그 때문에, 죄책감도 몇분의 일 정도밖에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층에서 물건을 집어던져 큰 부상을 입힌 것도, 다 함께 한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발단은 토도마츠 단 한명. , 혼자만 악인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걸 계기로 형제들의 우리 안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게 무서워서 토도마츠는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쯤은 전부 알고있다고. 그럴게, 여섯 쌍둥이니까!

 

 

 

다른 이가 본다면 이건 쓰레기 같은 사고라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여섯 쌍둥이이다.

 

 

[, 모르는 척....?]

 

[아아, 만일 이게 들킨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너도 녀석들에게 추궁당할 거다]

 

 

카라마츠라 그렇게 말하면, 토도마츠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빙고, 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다시 한번 밀어붙이면, 토도마츠를 완전히 넘어간다.

그렇게 생각한 카라마츠는 눈을 내리깔고, 목소리를 낮추고 슬픈 듯이 이렇게 중얼거린다.

 

 

[.....저기, 토도마츠. 형제들한테 멸시받고 싶지 않잖아....?]

 

 

카라마츠가 그렇게 말하면, 토도마츠는 조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 알겠어 형. 이번 일은 비밀로 할게]

 

[.....고마워, 토도마츠]

 

 

토도마츠가 수긍하는 걸 보고 카라마츠는 입가를 올렸다.

 

[왜 형이 고마워하는 거야]

 

[?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한다고. 그럴게, 나를 이렇게 걱정해줬지 않나]

 

[, 그거 말이지. 그치만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고......]

 

 

토도마츠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뭐어, 나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말이지]

 

 

카라마츠는 씨익 웃는다, 마치 농담을 하듯이 쉽게 말한다. 그걸 본 토도마츠는 등이 서늘해지는 걸 느낀다.

카라마츠는 입가를 올리며, 눈을 가늘게 뜬다.

 

 

[, 무슨.........]

 

[다녀왔스루머스루-!!!]

 

 

토도마츠가 말을 꺼낸 그 순간, 불온한 분위기를 깨는 발랄한 목소리가 뛰어들어왔다.

 

 

[, 쥬시마츠가 돌아왔군. 토도마츠, 수건을 들고 마중나가주겠나. 아마 땀으로 범벅일테니]

 

 

그 순간, 카라마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걷어붙이고 있던 소매를 내리고는 세면장으로 가서 수건을 들고 돌아왔다.

 

 

[왜 그러나. , 토도마츠. 나는 욕실을 청소할테니까. 얼른 갖다주지 않으면 쥬시마츠가 불쌍하다고]

 

 

카라마츠는 멍하니 있는 토도마츠의 눈앞에 수건을 들이밀며,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틀어, 피가 들러붙은 바닥과 벽을 향해 물을 뿌렸다. 그러면 순식간에 녹아내려 배수구로 흘러간다.

 

 

카라마츠는 왼손의 소매를 걷어올린다. 적당한 깊이로 자른 탓인지, 그게 아니면 마비 때문인지 그다지 통증은 없었다.

 

토도마츠가 감아준 붕대를 슬쩍 풀면, 아파 보이는 상처가 모습을 드러낸다. 카라마츠를 그걸 날름, 핥는다.

 

 

소독약과 진한 피맛이 났다.

 

 

[, 하하....역시 이 방법이 최고지 않나]

 

카라마츠는 발견당했을 때의 토도마츠의 표정을 떠올렸다. 경악에 차 눈을 부릅뜨고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그 눈동자. 그리고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 향한 그 순간을!!

 

 

오싹오싹, 하고 온몸이 근지럽다. 쾌감이 등을 내달린다.

 

 

고통은 이미 익숙하다. 이치마츠의 고양이가 몇 번이나 날 할퀴었고, 바주카도 많이 맞았다. 쵸로마츠에게 화풀이 당하는 것도, 쥬시마츠에게 던져지는 것도 이골이 났다.

 

 

다행히 몸은 튼튼하니까, 상냥하게 대해주기만 한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누구로 할까.....]

 

 

샤워기를 끄고 욕실에서 나왔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발을 닦고 있으면, 쵸로마츠가 들어왔다.

 

 

[, 쵸로마츠 어서와라. 빨리 왔군]

 

카라마츠가 그렇게 말을 걸면, 쵸로마츠는 기분 나쁘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 . 별로 상관없잖아. 너하고는 관계없으니까]

 

 

평소보다 말에 가시가 돋힌 걸 보면, 아마 라이브 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거겠지.

 

[, 미안......그렇지, 나랑은 관계없지]

 

카라마츠가 그렇게 말하면, 쵸로마츠는 다시 기분 나쁜 듯이 눈살을 찌푸린다.

 

 

[뭐든 사과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화풀이하고 있다는 거 알고는 있어? , 카라마츠의 그런 점이 정말 싫다고]

 

 

쵸로마츠는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카라마츠에게서 등을 돌리고 그곳을 떠났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꽉 쥐었다.

싫어라는 말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카라마츠형, 수건 고마웠스루!! ......근데 무슨 일임까? 어디 안 좋아보이구먼요]

 

 

쥬시마츠는 수건을 붕붕 돌리며 세면장으로 들어왔다.

 

 

[, 아아.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보이면,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손바닥과 손등을 찬찬히 살폈다.

 

 

[, 뭔가]

 

[! 다 나았네! 상처!]

 

 

쥬시마츠는 씨익 웃으며, 손을 놓았지만, 아직 붕대를 감지 않은 팔의 상처를 보자마자 굳는다.

 

[카라마츠형, 그거.....뭐야. 엄청 아파보임다]

 

카라마츠는 바로 발견되어 버린 것에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생각해? ......그래, 리크스 컷이지. 이렇게, 스윽, 하고 살짝 면도칼로 그은 것뿐이다]

 

카라마츠는 집게 손가락으로 흉터를 쓸었다. 쥬시마츠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런 짓, 하면, 아프다구...?]

 

[....아아, 물론 아프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예를 들면, 너희들에게 무시당해 괴로워지더라도 괜찮아지지]

 

카라마츠가 그렇게 말하면, 쥬시마츠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 상태를 본 카라마츠는 훗, 하고 웃는다.

 

 

[......라니. 농담이다, 쥬시마츠. 그냥 다쳤을 뿐이야]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소매를 내리곤 쥬시마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자리를 떴다.

 

 

[아아,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겠나. 너라면 내 마음, 알아주겠지, 쥬시마츠]

 

 

쥬시마츠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가 떠난 후에도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로.













아아ㅠㅠ카라마츠으으ㅠㅠㅠ


이번 작품은

고독이랑은 뭔가 좀 다른 느낌이네요

똑같이 카라짱이 불쌍하지만ㅠㅠㅠㅠ





이거 3편 번역후에

카테고리로 빼겠습니다 'ㅂ'

아직 안 나왔지만.......




-

홈 스위트 홈!

번역 중입니다 ;ㅂ;

조금 걸릴 것 같아여....ㅠ

그래도 조만간 가져올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거 말고도 하고 싶은 거 많은데ㅠㅠ

얼른 끝내야지ㅠ흑흐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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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꿀 때 1

 

 

 

 


찾았다. 나를 사랑해줄 방법을.

 

 

 

==========================================

 

 



 

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네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꿀 때




 

 

 

 

[아파, 아파.....괴로워, 아파아.....!]

 

 

카라마츠는 객실에 깔려진 이불에 누워, 홀로 신음을 내질렀다. 머리와 왼손과 왼발에는 애처로울 정도로 하얀 붕대가 친친 감겨있다.

 

원래라면 2층방에서 특별 주문한 6인용 이불에서 자고있을 터였지만, 방해되고 신음이 시끄럽다며 내쫓겨졌다.

 

 

이렇게 큰 부상을 입게 된 건, 예의 카라마츠 사변이라 불리는 그 사건 때문이다.

 

 

여섯 쌍둥이는 니트이기 때문에, 어차피 수입원이라곤 부모님께 받는 용돈이 전부다. 그렇기에, 소꿉친구인 치비타의 오뎅가게에서 수없이 무전취식을 되풀이했다.

견디다 못한 치비타는 한가지 작전을 결행했다.

그건 여섯 쌍둥이 중 누군가를 유괴해, 몸값으로 지금까지의 외상값인 100만엔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치비타는 거기서 차남, 카라마츠를 목표로 정하고, 유괴에 성공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오뎅에 수면제를 탔을 뿐이었다. 단순한 카라마츠는 손쉽게 인질이 되었다.

치비타는 카라마츠를 바다위에 세워진 나무에 도망칠 수 없도록 꽁꽁 묶었다.

 

거기까지는 순탄했다. 하지만, 치비타가 간과한 건, 여섯 쌍둥이들의 세계에서도 카스트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들은 누군가를 위해 절대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카라마츠는 버려졌다. 게다가, 간식으로 나온 배 이하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설마 정말로 버려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카라마츠는 오열했다.

그걸 미안하게 생각한 치비타는, 한방 먹여줄 다음 작전을 세웠다. 그건, 마츠노가 앞에서 카라마츠를 묶어두고 그 주변에 불을 피우는 거였다. 이렇게까지 하면, 아무리 냉정한 형제들이라도,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했다.

 

치비타는 메가폰으로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서 타오르는 불을 보며 생명의 위험을 느낀 카라마츠도, 다른 의미로 소리쳤다.

그러자, 2층방의 창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성공했다, 고 치비타는 생각했다. 카라마츠도 구하러오는구나,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건 배트나 꽃병 따위였다. 뇌가 상황을 이해하려는 순간에는 이미 엄청난 고통이 머리를 습격한 후였다. 어째서, 라며 위를 올려다보면, 이번에는 커다란 그림자가 머리위에 드리웠다.

 

맷돌이었다.

 

이것들을 던진 형제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 정말 민폐구만, 하는 얼굴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마음이 저릿해지는 감각과 함께 카라마츠는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아니, 포기했다.

 

, 하는 충격과 함께 의식이 멀어져갔다.

 

 

 

기적적으로 눈을 떴을 때에는, 하얀 천장이 보였다. 유난히 튼튼한 몸이, 목숨을 구했다는 것 같다.

 

하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왼쪽 팔은 마비되고, 왼쪽 눈은 시력저하가 생겼다. 다행이다, 일상생활에 그렇게까지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

 

 

.....신에게 사랑받아, 목숨을 건진 나.....!

 

 

카라마츠는 기적적인 회복력을 보여, 바로 퇴원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형제들은 단 한명도 문병을 오지 않았다. 어쩌면, 입원 사실을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야야.....마중 정도는 와줘도 괜찮지 않나, 브라더-

 

왼팔에 마비가 와 목발을 사용하기가 힘들고, 왼눈은 잘 보이지 않아 걷는 게 힘들었다. 때문에 카라마츠는 몇 번이고 전신주에 부딪히거나 넘어지거나 했다.

 

 

--그럼에도, 이 꼴을 보면 분명 형제들도 죄악감을 가지고 돌봐줄 거다! 상냥하게 대해줄 거다!

이 생각이 카라마츠를 움직이게 했다.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인 마츠요한테 형제들이 모두 외출했음을 전해들었다.

 

브라더-! 혹시 비밀스레 날 마중나가기라도 한 건가? 오우, 미스테이크! 엇갈리고 말았군...!

 

카라마츠를 그리 말하며, 힘든 몸을 이끌고 밖을 나섰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솔직히 입원중에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단 한마디라도 상냥한 말을 걸어준다면, 전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저도 모르게 점점 걸음을 서둘렀다. 원래라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그런 것조차 용서해줄 정도로 사랑에 굶주려있었다.

 

고통으로 맺힌 땀방울들이 뺨을 타고 흘러 지면에 떨어진다.

그럼에도, 걱정스러운 형제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는 힘을 낼 수 있었다.

 

 

.....어디에도 없군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집에서 잠자코 기다리는 편이 더 나았으려나.

 

그리 생각한 카라마츠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다리는 덜덜 떨리기 시작해, 안 되겠다 생각한 카라마츠는 근처 공원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

 

거기에는 형제 5명이 모여있었다. 중심에는 이치마츠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웃고 있었다. 찾아서 다행이다, 걱정했어, 라며 카라마츠가 바라고 바랐던 말들이 던져지고 있었다.

 

뭔가, 브라더.....

 

한발 내디딘 그 순간, 균형이 무너져 다리부터 콰당, 하고 크게 넘어진다.

 

 

어째서.....

 

손을 짚어 일어서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정신적인 대미지가 더 컸다.

 

 

취급이, 취급이.......전혀 다르잖아아아!!!

 

눈물을 줄줄 흘리며 무심코 소리쳤다. 석양에 비추어지며 다섯명은 카라마츠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를 뒤로한 채 떠나갔다.

 

 

그 뒤, 카라마츠는 없는 돈을 긁어모아, 택시를 타고서 집에 돌아갔다.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형제들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으면, 시계의 짧은 바늘이 12를 가리킬 즈음에 형제들이 돌아왔다. 눈물 자국을 슥슥 닦아내고, 마중을 나갔다.

 

 

어서와라, 브라더-! , 술냄새!

 

 

- 카라마츠쟝~. ~끔 마셨을 뿐이라고

 

오소마츠는 비틀거리며 거실에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쵸로마츠, 토도마츠, 만취한 이치마츠와 이치마츠를 업은 쥬시마츠가 들어왔다.

 

이치마츠형, 잠들었스루머스루!!

 

쥬시마츠는 그리 말하며 기세 좋게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 카라마츠형 있었어?

 

토도마츠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저기, 다들 너무한 거 아닌가. , 오늘 퇴원일이었다고

 

카라마츠는 탁자 위로 몸을 들이밀며, 물을 마시는 형제들에게 그리 말을 걸었다.

 

 

, 카라마츠 입원했었어? 뭔가 안 보인다고는 생각했지만

 

하지만 쵸로마츠한테서 돌아온 것은 충격적인 한마디. 애초에 그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는 의미였다.

 

 

?

 

이제 자자~. 카라마츠도 말야, 우리들 이미 잔뜩 지쳤다구~? 얘기라면 내일 들어줄테니까

 

 

오소마츠는 기지개를 켜며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마치 자신에게 흥미가 없다는 듯한 말에 쿵, 하고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 잠깐만. 오늘, 나를, 찾으러 갔던 게, 아니었던 건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 이상 들었다간 상처를 받을 거라는 건 뻔했지만, 그럼에도 어째선지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아? 그니까 우리들 네가 입원했다는 것도 몰랐다니까?

 

쵸로마츠의 붉어진 얼굴로 짜증스럽게 카라마츠를 보았다. 카라마츠는 부들부들 떨며,

 

기대했던 게, 바보 같지 않나. 어찌할 건가

 

그리 말하며 고개를 떨군다. 눈앞이 눈물로 흐릿해져, 어떤 눈이 시력저하로 보이지 않게 된 눈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멋대로 기대해놓고, 어찌해줄 거냐니.......하아....대체 뭐하는 거야, 카라마츠형. 오늘은 평소의 몇배로 짜증난다고

 

알겠어~ 알겠다고~. 내일 들어줄테니까! 그럼, 잘자~

 

오소마츠가 그렇게 말하면,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전원 자리를 뜬다.

 

거실에 혼자 남겨지자, 뺨을 타고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헛된 기대도, 흙발로 짓밟힌 기분이었다.

 

 

 

 

 

 

 

 

 

 

결국, 다음날에도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평소의 신경써달라는 제스쳐라고 그냥 넘겨버렸다.

 

그게 오히려 카라마츠를 신경쓰이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여섯 쌍둥이로서 스스럼없이 대해왔던 모든 것들에서 내쫓기고는 살아가지 못한다. 그걸 알기에 카라마츠는 서툴게 입을 놀릴 수는 없었다.

 

미움 받지 않도록, 이 이상 버려지지 않도록.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느 때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그건, 평소처럼 여섯명이서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그 날, 카라마츠는 악몽을 꿨다. “그 날의 일을 다시 떠올리며 가위에 눌렸다.

온몸의 상처가 쑤셔, 카라마츠는 비명을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악!!!

 

 

--기분 나쁜 꿈을 꿨다. 싫다싫다싫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

카라마츠는 굵은 땀방울을 닦으면서 눈을 꾹 감았다.

 

 

응냐...뭐야, 카라마츠.....자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 시끄럽다고...쿠소마츠!!

 

....으응, 뭐야아, 카라마츠형. 완전 민폐니까 그만 좀 할래?!

 

.....-, 시끄럽다고, 카라마츠. 적당히 좀 해라

 

 

오소마츠, 이치마츠, 토도마츠, 쵸로마츠가 차례로 잠에서 깨어나 불평했다.

 

 

, 미안하다....악몽을 꿔서.....그치만 너희들이 그런 짓을 해서........!

 

하아? 꿈까지 우리 탓을 할 작정? ,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했잖아. 자게 해달라고

 

 

쵸로마츠의 노호에 어깨를 움찔한 카라마츠는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자꾸 그럴거면, 밑에서 자라구...

 

-.....그거 좋네. 너 목발이라든가 위험하고 방해되니까

 

쿠소마츠, 그렇게 정해졌으면 빨리 아래로 꺼지라고

 

 

토도마츠, 오소마츠, 이치마츠의 한마디에 카라마츠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젠 여기서 자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이 어릴 적부터 변함없는 따스한 온기가 좋았는데.

 

 

미안하군.....그렇게 하겠다.....그러니, 이번 일은 용서해주게...

 

카라마츠는 그리 말하며 베개를 들고 이불을 나왔다. 혼자서 한밤중에 내려가는 계단은 무서웠다. 일단 객실에 이부자리를 폈다. 평소라면 무난히 해치웠을 일이 중노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힘들었다.

 

혼자서 자는 잠자리는 춥고, 넓고, 외로웠다.

뚝뚝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내가, , 잘못한 건가.....너희들에게, 그저, 사랑 받고 싶었을, 뿐인데.....!

 

오열하며 오른팔로 얼굴을 닦아낸다. 결국 그날은 플래시백에 덜덜 떨며, 내내 울었다.

 

다음날부터, 카라마츠는 형제와 마주할 때마다 움찔움찔 떨며 두려워하게 되었다. 미움 받는 게 무섭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대하는 법을 잊게 만든 것이다.

 

물론 형제들에게 있어서도 그 일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자신들을 볼 때마다 일일이 두려움에 떨어대는 건 탐탁지 않았다.

 

 

미움 받지 않으려 신경을 썼던 것이, 공교롭게도 카라마츠의 입장을 더욱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수개월 후

 

 

[......괴로워. 살아가는 게 괴로워. 누구라도 좋으니까, 사랑해줘......]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카라마츠는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붕대는 전부 풀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조금도 낫지 않았다.

 

 

[.....어째서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거야. 너희들 때문에 왼쪽눈도 왼팔도 불편해졌는데]

 

 

갑자기 밖이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더니 이윽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마치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장대비가 창문을 두드렸다.

 

 

[나는 이제 필요없는 건가. 형제로 인정해주지 않는 건가....?]

 

거울 손잡이를 잡은 손에 꽈악, 힘이 들어간다. 식은땀이 주륵, 뺨을 타고 흘렀다.

 

 

[싫어....싫어싫어.....그런 건 싫어!!!!!]

 

카라마츠는 거울을 든 오른손을 쾅, 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챙강, 하는 소리와 함께 거울이 부서져버렸다.

 

 

[누군가, 나를, 봐줘!!!!! 사랑해줘!!!!!!!!!]

 

쾅쾅, 하고 몇 번이고 깨진 거울을 후려쳤다. 그러자 주먹이 파편에 긁혀 피로 물들었다.

후우-, 후우-,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고통을 호소하는 주먹을 잡았다.

 

 

[다녀왔스루머스루!! 와하~ 엄청난 비구먼요!! 허스루허스루!! 머스루머스루!!]

 

그 때, 쥬시마츠가 뛰어들어오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는 비틀비틀 일어서서 현관으로 마중을 나갔다.

 

[, 쥬시마츠. 어서와라. 엄청난 비로군]

 

[, 나 완전 흠뻑 젖었어!!]

 

[목욕물 받아둘테니까....들어갈텐가?]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욕실로 향했다. 그 순간, 오른손에서 뚜욱, 피가 흘렀다.

 

 

[잠깐, 카라마츠형. 손에, 피남다!!]

 

[, 아아. 별거 아니다. 그러니, 신경쓰지마라]

 

쥬시마츠는 슬리퍼를 벗고, 축축한 양말로 복도를 걸어 카라마츠의 오른손을 잡았다.

카라마츠는 움찔, 어깨를 떤다.

 

 

[우오오, 아프겠다! 치료하자-! 목욕은 나중에 해도 됨닷!!]

 

 

쥬시마츠는 그렇게 말하고는 구급상자가 있는 부엌으로 카라마츠를 끌고갔다.

 

끌려가면서, 카라마츠는 속에서 위화감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쥬시마츠가 나를,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 상냥하게 대해주고 있어.

 

쥬시마츠의 서투른 치료를 받으면서, 오랜만에 마음이 가득차는 걸 느꼈다.

 

 

 

--이거다. 이거야말로, 내가 쭉 바라오던 거다!

 

 

상냥함에 굶주려있던 카라마츠는, 그걸 손에 넣는 방법을 찾고서,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보다, 카라마츠형. 왜 이렇게 다친 검까?]

 

[..........그건]

 

 

카라마츠는 말을 더듬거리면서, 힐끔힐끔 시선을 거실로 돌렸다.

 

쥬시마츠도 그쪽으로 시선을 따라 돌린다. 그리고 놀란 듯이 달려가 거울은 집어든다.

 

 

마치 스스로 후려갈겨서 깨진 듯한 모양새에 쥬시마츠는 숨을 헉, 하고 삼킨다. 파편과 파편 사이에 카라마츠의 검붉은 피가 스며들어있다.

 

[카라마츠혀...]

 

[쥬우시마~. 추궁은 멋없다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주겠나]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의 말을 가로막았다. 말투는 가볍지만 표정은 진지하다.

쥬시마츠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카라마츠는 그걸 만족스럽게 보고는, 치료받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그날밤.

객실에서 혼자 자던 카라마츠는 쥬시마츠가 감아준 엉망진창인 붕대를 보며 입가를 올린다.

 

[드디어 상냥하게 대해줬다....]

 

오후에 느꼈던 가슴의 따스함은 무엇보다도 감미로운 감정이었다. 좀 더, 좀 더 맛보고 싶어 붕대위로 상처를 날름, 핥았다.

 

--쥬시마츠는 원래 마음이 따뜻한 아니니까, 이 정도 상처로도 걱정해준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이 정도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거다.

 

 

 

카라마츠는 연국 대본을 생각하듯이, 머릿속에서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괜찮다. 너희들이 나한테 한 짓에 비하면, 이 정도는 용서해줄테지. 나는 사랑 받고 싶다, 그것뿐이니까!

 

 

[첫타자는 누구로할까.....]

 

 

카라마츠는 형제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자, 파트너였던 토도마츠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히죽, 입가를 올린다.

 

 

카라마츠는 주먹을 꽉 쥔 오른손을 천장으로 높게 쳐들고, 엄지와 검지를 들었다. 그리고 BANG, 하고 총을 쏘는 시늉을 한다.

 

 

[.........반응이 기대되는군, 파트너]

 

 

 

 

 

 

 

 

 

 

 

 

 


고독 작가님의 신시리즈입니다

다음편 바로 가져올게요 'ㅂ')/

 

 

 

 

 








몰랐는데 이것도 같이 올라와있었네여 'ㅂ')a

나 왜 이제 본 걸까..................



암튼 이것도 마찬가지로

작가님 픽시브에 올려져있습니다


이건 R18이 아니라 성인인증은 필요없어여!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787886















이 작품은 작가님의 요청으로

작가님 픽시브에 올려져있습니다!



링크를 걸테니

작가님 픽시브 페이지에서 감상해주세요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7887951



참고로 R18이라

성인인증이 필요합니다

성인이 아니신 분은 죄송합니다 ;ㅂ;






+ 토고오소 작품도 같은 방식으로 게재됩니다.

작가님께서 업로드하시면 링크 올리겠습니다 '▽'/


++ SU 라는 건 저입니다!! 'ㅂ')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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