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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카라]지만 러브적 요소는 없습니다※

















이 날이 오기를 죽어라 기다렸던 건 아니다. 이 날이 오기를 죽어라 바랐던 건, 이미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거의 수십년만에 마주한 바깥세상은, 너무도 많이 변해있었다. 눈부시게 화려한 색색의 조명들에 눈이 시렸다. 겨우 수십년이라 여길 정도로 짧은 시간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고도 남을 20년이란 세월의 변화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너무도 커져버린 세계에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나는, 마음속의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아......]

 

무의미한 한숨을 내뱉고, 눈부신 세상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듯 고개를 떨궜다. 콘크리트의 색은 이전과 다름없음에 살짝 안심을 하며, 한 발, 조심스레 내딛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분명 이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분주하게 흘러갈 테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과거, 양손에 거머쥐었던 쾌감이 마음 시릴 정도로 작아져 갔다. 속아넘어간 일반인을 깔보는 즐거움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쾌감에 젖었던 그 흥분감도, 설렘에 두근거리던 교전도, 긴장도, 전부, 고개를 들 때마다 겁을 먹고 멀리 도망쳐 버린다. 기다려줄 사람도 없는데 어쩐지 버림받은 기분이다. 발걸음이 무겁다. 원인모를 소란스러움이 귀에 거슬린다. 이런 세상에도, 아직 과거의 동족들이 남아있을까. 있다고 한들, 식칼 하나로 협박을 하거나 하진 않겠지. 그런 녀석이 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무서운 일이다.

 

 

그리 많지 않은 작업 포상금으로 표를 끊어, 몇 정거장 앞의 신사로 향했다. 만일 붙잡혔을 때를 대비해 훔친 돈을 신사나 무덤가에 묻어두었다. 숲처럼 개발될지 모르는 장소를 피하다보니, 천벌을 받을 만한 장소밖에 남지 않았지만, 애초에 오컬트 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믿지도 않아 상관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한밤중에 그곳에 가는 건 꺼려졌지만.

 

시간상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목적지인 역에 내려 번화가를 벗어나 나뭇잎이 이리저리 흩어진 길로 나아갔다. 인적이 드문 신사의 신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 그 앞에 쭈그려 앉고서야, 삽을 사오는 걸 깜빡했음을 깨달았다. 맨손으로 땅을 만지자, 차갑고 촉촉한 흙의 감촉이 전해진다. 사람을 죽이던 손이, 그날과 다름없는 것을 만지고, 누르고, ―― 생각하기를 관뒀다.

 

예쁘고, 추억이 담긴 물건이 들어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것은 내게 있어 마치 타임캡슐과도 같았다.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뚜껑을 열자, 그럭저럭 돈이 들어있다.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린 자가 갖고 있던 돈. 그렇게 생각한 탓일까, 희미하게 희열이 돌아온다. 하지만 분명, 이런 칙칙한 희열은 이 눈부신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싸구려 지갑에 돈을 잔뜩 우겨넣고, 가방에도 적당히 넣어둔다. 삼분의 일 정도 꺼내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차가운 흙속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는 근처에 사람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한 뒤에야 신사를 벗어난다.

 

그 때, 잡히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 강도로서의 감각을 선명하게 갖고 있었을까. 흘러가는 시대에 적응해 변화하며, 그때의 그 희열과 쾌감이 퇴색되는 일 없이, 변함없이, 그대로, 나대로, 지내고 있었을까.

 

[..............오소마츠, , 치비타........였던가]

 

입에서 툭 튀어나온 건, 마지막으로 보았던 일반인들의 이름. 나이도 다 차지 않은 두 놈들 때문에 수십년이란 긴 세월을, 아니 그보다도 감각들을 전부 잃어버린 게 더 크다. 그 두 놈들 때문에, 그 두 놈들이 날 방해하지 않았다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분노인가, 증오인가, 아니면 살의인가. 강도로서의 기쁨을 앗아간 그들에게, 이제 와서 분노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들은, 지금 어쩌고 있을까.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아직, 두려움 가득한 얼굴을 보일까.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잃어버린 감각들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전차를 갈아타고 아카츠카로 돌아가니, 그곳은 예상외로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처음 맞닥뜨린 세상의 인상과 변화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탓에 그렇게 보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변함없는 거리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의지할 곳이 늘어난 것만 같아, 숨이 트였다. 그러면서도 작업도구나 마찬가지인 식칼을 사려하고 있으니, 역시 타고난 범죄자인 거겠지. 마음의 어두운 이면을 스쳐가는 부정의 말들을 애써 무시하고, 저렴한 서양 식칼을 구입했다. 감각을 억지로 되돌리려 애쓰는 모습에 어쩐지 서글퍼져, 무시하고 싶어졌다.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이 애용하던 녀석과는 다른 것도.

 

어느새 날이 저물어, 살짝 쌀쌀해졌다. 예전의 작업복이자 평상복인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한밤중에는 얼어죽을지도 모른다. 가게가 닫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해 옷가게에 들러, 옅은 갈색의 베스트와 검은색 머플러를 구입했다. 코트류는 부피가 커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구입한 것들을 입고 가게를 나오니, 하늘은 거의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 그럼 어디로 갈까..........]

 

새 것의 냄새가 풍기는 머플러에 얼굴을 묻고, 낮보다 사람의 왕래가 적어진 길을 걸었다. 혼자 살만한 집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고민이 됐다. 다시 하숙이라도 할까, 하고 중얼거렸지만 딱히 주소를 아는 것도 안내를 받는 것도 아니었기에 막막했다.

발길을 여섯 쌍둥이가 살던 집으로 돌리면서, 오소마츠라도 불러낼까 하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저건.....]

 

무심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시선 끝에, 오뎅, 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붉은색 노렝이 걸린 포장마차가 보였다. 손님은 한 명. 아담하고, 분주한 세상과 동떨어진 그 가게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 그는 분명 오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겨우 그 정도의 접점이었을 뿐이었는데도, 어째선지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천천히 한 발씩 나아갔다.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들려오는 점주의 목소리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앳된 목소리였다.

 

아아, 그다. 그가 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손님 한 명쯤 있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돌아가기를 기다리면 그만이고, 적당히 돌려보내는 것도 좋다. 그 정도는 내게 있어 손쉬운 일이었다.

손을 뻗으면 노렝에 닿을 거리까지 왔다. 두근거림이 흥분으로 바뀌었다. 나를 보고 새파랗게 질리거나, 속은 것에 분노하는 모습을 떠올린 탓이었다.

 

[오랜만이군, 치비타]

[, ..어서오세, ....]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며 가게로 들어가 이름을 불렀다. 수십년만에 보는 것임에도, 체격도 얼굴도 기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그리움을 넘어 희미하게, 하지만 점차 명확하게 살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에게 상냥한 미소를 건네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점점 돌아오는 온갖 감각들에 미소가 일그러질 것 같았다.

 

[당신, 어떻게 내 이름을......아니, 잠깐? 어디서 본 듯한......]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치비타에, 나는 가만히 선 채로 그가 나를 떠올리길 기다렸다.

그때의 일인칭은 보쿠였는데, 안 본 사이에 자잘한 부분이 바뀐 걸 보고 있으니 어쩐지 즐거웠다.

하지만 역시 가게의 점주이니만큼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 많겠지. 살짝 힌트라도 줄까. 표정을 살짝 풀고, 입을 열었다. 다른 손님이 돌아가기 전까지는, ‘이 녀석 본모습을 숨기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중간한 연기를 보이는 게 딱이다.

 

[수십년만이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수십년.......? 아니.............어이, 잠깐만.......]

[하하하, 기억났나?]

 

과거의 호탕한 웃음까지 더해 보이자, 치비타는 눈알이 빠질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자아, 새파랗게 질릴까, 아니면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 화를 낼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몰래 꿀꺽꿀꺽 기대감의 군침을 삼키자, 그와 동시에 치비타가 입을 열었다.

 

 

[, 토고씨 아닌가]

 

 

[............?]

 

 

 

하지만 들려온 건 치비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치비타의 열린 입은 움직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좀 더 낮고 온화한 어른의 목소리였다. 지금 제3자가 분명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다소의 놀라움이 담긴, 마치 친구의 친구를 만난 듯한 적의도 경계도 없는 목소리가, 옆에서.

 

[놀랐다고.......오랜만이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숨을 삼켰다.

 

살짝 술기운이 돈 듯한 녀석은, 머리에 아파 보일 정도로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얼마나 심한 부상을 입은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비스듬히 감긴 붕대는 오른쪽 눈을 가렸고, 더욱이 왼쪽 뺨에는 커다란 거즈가 붙어 있었다. 이렇게나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여섯 쌍둥이 중 한명이란 걸 단박에 알아챘다. 옛 얼굴이 아직 남아있다고는 해도, 잘도 알아챘다며 스스로도 감탄했다.

 

하지만 상처는 얼굴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잘 살펴보니, 삼각건으로 매달린 왼팔에도 손가락만 겨우 보일 정도로 붕대가 감겨있다. 안쪽에 목발이 세워져있는 것으로 보아, 보이지는 않지만 발도 성하진 않은 모양이다.

 

뭐지 이 녀석은. 입원중인 병원에서 탈출이라도 한 건가. 여섯 쌍둥이 중 누구인지 고민하는 것보다도, 그런 평범한 의문이 떠오르는 자신을 질책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 토고잖냐!! 너 이 자식 잘도 날 속였었겠다...!!!]

[치비타, 거기서 바주카를 쏘면 나도 맞으니 그만둬라]

[시꺼-!! 네가 피하라고, 카라마츠!!]

[대체 얼마나 화가 난 건가.....]

 

아니, 아니아니. 잠깐만, 치비타는 대체 뭘 꺼내들고 있는 거야. 다친 사람한테 네가 피하라고 하는 건 또 무슨 경우야.

 

[나의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벌이다!!!]

[, ]

[우앗]

 

뜨거운 오뎅이 날아들었다. 왜 뜨겁다는 걸 알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넣어둬라, 그것이 내 얼굴을 스쳐갔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저걸 피하다니, 나도 아직 쓸만하구나 하고 또 한번 스스로 감탄했다. 그보다, 어이 잠깐 치비타, 너는 대체 오뎅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거냐. 뒤에서 철컥하는 소리를 내며 서있는 녀석을 보자니, 겉모습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물은 상당히 바뀌었음을 알았다. , 적어도 전 강도범에게 맞설 정도로 굳세게 변한 모양이었다.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공격당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치비타, 이미 몇 년도 더 된 이야기잖나]

[그런 이유로 간단히 잊겠냐, 임마-!! 나는 지금 엄청 화가 났다고-!!]

[정말이지, , 이거 줄 테니까.....그보다, 토고씨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건가? 탈옥이라도 한 건가?]

 

아니, 탈출한 건 너겠지. 분명 치비타가 카라마츠라고 했었지. 카라마츠는 어째서 이렇게 침착한 걸까. 자신과 가족을 협박하고, 형제를 인질로 잡는 걸 가까이에서 봤을 터이다. 너무 충격적이라 오히려 침착해진 걸까. 어릴 적의 일이라곤 해도 트라우마가 될 법한 일이었다. 무섭지도 않은 건가, 아니면 요 수년간 위기관리 능력이 망가지기라도 한 건가. 게다가 방금 치비타한테 뭘 준 거야. 사탕이었지. 그것도 막대 사탕. 주머니에서 사탕이 나오다니, 평소에도 들고 다니는 거냐. 그걸로 얌전해지는 치비타도 치비타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지만, 일단 탈옥이 아님을 설명한다.

 

[........아니, 출소했다]

[, 너무 빠르지 않나?]

[, 그런 거지]

 

예상외의 전개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출소한 건 사실이다. 경찰에게 살인은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증거도 없었기에, 나는 절도죄 및 공갈죄, 유괴 미수 등의 죄목으로 잡혀들어갔다. 사람을 죽인 건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형기가 가벼워진다면야 그 정도 사실을 숨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보다 카라마츠, 너는 탈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침착했던 거냐. 대체 뭐냐, 너는.

 

[임마 토고! 오늘은 카라마츠 봐서 봐주는 거라고!! 다음번에 만났을 땐 죽을 줄 알라고!!]

[, 토고씨도 사탕 먹겠는가?]

 

제발. 제발 그만.

 

 

 

 

 

 

* * *

 

 

 

 

 

[그보다, 당신 옛날이랑 하나도 안 변했구만.........]

 

간만에 진귀한 손님이 왔다며, 비꼬듯이 치비타가 토고를 본다. 수십년도 더 된 기억이라 거의 희미했지만, 토고는 옛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했다. 특히나 저 눈매는 제 기억과 똑같았다. 체형이나 목소리는 살짝 달라졌지만, 카라마츠가 알아볼 정도라면, 틀림없이 그 토고가 맞겠지. 화냈다가 냉정해지자, 자신의 기억이 부정확했음을 자각했다.

 

[아니, 너희들이 너무 변한 거겠지....]

[그런가?]

[, 나도 어엿한 성인 남성이 되었으니 말이다....카라마츠 girls에게 어울리는 남자로]

[...........성인인가?]

[]

 

살짝 지쳐보이는 토고와는 달리, 카라마츠는 지금 이 상황이 꽤 즐거운 모양이다. 토고가 오기 전까지 축 쳐져있던 걸 생각하면, 자신을 속인 것쯤은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비타만으로는 카라마츠를 위로하기 힘들 정도로 다운되어 있었으니까. 멋을 부리는 모습이 살짝 재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미소를 띠는 카라마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고씨는 언제 출소한 건가?]

[...............오늘]

[그렇군! 그럼 출소를 축하해야겠군!]

[오늘은 치비타가 내게 마음껏 먹어도 좋다고 했거든! 그러니 이건 내가 쏘는 거다!]

 

라며 사방에 꽃을 뿌려대며 웃던 카라마츠는 자기 그릇에 담겨 있던 계란과 무를 토고의 그릇으로 옮겼다. 아니, 그보다 잠깐만.

 

[어이, 카라마츠!! 그건 너만 그렇다는 거라고...!!]

[치비타의 오뎅은 최고다! , 소힘줄도 맛있다!!]

[, 비행기 태우지 말라고, 임마아~! 치쿠와부도 줄까?]

 

카라마츠의 칭찬에 기분 좋아진 치비타는 토고의 그릇에 치쿠와부와 곤약 등을 멋대로 옮겨 담았다. 계속 교도소에 있었다면 이렇게 맛있는 건 못 먹었을 거라며 배부르게 먹고 가란 말과 함께 기쁘게 웃었다.

 

[토고씨, 안 먹을 건가? , 설마 이미 배가 부른 건가?]

 

카라마츠의 말을 들으며, 산더미처럼 쌓인 어묵 위에 다음으로 뭘 더 줄까하고 고민하던 찰나였다.

 

[너희들..........지금 나랑 장난하냐.........?!]

 

토고가 어깨를 떨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탁자에 둔 손을 꽉 쥐고, 목소리를 낮게 내리 깐 채로 입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카라마츠도 치비타도 입을 다물었다. 베일 정도로 날카롭게 노려보는 녀석의 눈은, 피곤함에 쩔어 있긴 해도 범죄자의 눈이었다. 치비타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걸 느꼈다.

 

[알고는 있는 거냐!! 나는!! 너희들을 협박했던 강도라고!!? 사람을 죽이고!! 돈을 훔친!!! 잊은 거냐?!! 네놈들은 경계심도 없는 거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소리로 외치는 토고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게 포장마차 불빛에 비쳐 제대로 보였다. 겹겹이 쌓인 오뎅의 산이 그 충격으로 무너진다. 이를 잔뜩 드러내고, 셋만의 세계를 뒤흔든다. 무서운 눈이다. 무서운 목소리다. 마치 사람을 죽일듯한 분위기를 뿜으며, 토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의 가족을 협박하고!! 형제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억지로 일을 돕게 하고!! 네 형제를 인질로 삼아 유괴하려던 사람이라고!!!]

 

, 큰일이다. 라고 치비타가 생각했을 땐 이미 늦었다.

 

[알고 있는 거냐, 카라마츠!!!! , ]

 

커다란 노성에 어울리지 않게 뒤따른 얼빠진 소리에는 놀람과 불안이 담겨있었다.

 

[.........그렇군, 미안하다 토고씨]

 

토고의 시선 끝에 보인 카라마츠의 눈에는 치비타 같은 두려움도, 토고 같은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평온하고 은은하게 외로운 듯이 흔들리는 세계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무섭지 않다. 경계를 할 정도로 토고씨가 무섭지 않다. 그런 옛날 일에 화를 낼 생각도 안 들고]

[, 하아?]

[, 아니면 설마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그렇다면............, .........아니, 내가 상대해줄, 테니까, ................, 형제한테는, , 대지..............]

 

더듬더듬 말하던 카라마츠는 결국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이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듯, 카라마츠의 안색이 안 좋다. 반사적으로 치비타는 카라마츠의 옆으로 달려가 말을 걸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토고는 내버려둔 채, 치비타는 카라마츠를 달랬다. 그 일이 있은 직후이니, 형제를 두둔하긴 역시 힘들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관두는 건, 나중의 카라마츠에게 후회가 될 뿐이었다. 그건 안 된다. 토고의 목적이 진짜 복수라고 할지라도, 아니, 그렇다면 더더욱 카라마츠를 괴롭게 둘 수는 없다. 조용히 입을 다문 채로 가슴을 문지르는 카라마츠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져주었다.

 

[카라마츠, 정신 차리라고]

[치비타............]

[...............제대로 말해둬]

[........., , ................]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카라마츠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한 눈물이 가득했다.

 

[, 대지 마..........., ]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말을 끝마치자마자 둑이라도 터진 듯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저 정도로 크게 울면 머리에 울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일단 카라마츠 좋을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탁자에 엎어져 우는 모습을 보자니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빙글빙글 어지러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그것만으론 가라앉지 않는다. 초조함, 불신, 슬픔, 그것들을 전부 집어삼키고, 치비타는 토고에게 자리에 앉으라 손짓했다.

 

[미안해, 카라마츠도 일이 좀 있거든]

[.............대체 뭐냐고, 너희들.......]

[-, 그게, ............최근에 카라마츠, 형제들 손에 죽을 뻔했거든]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좋을지 고민하며 슬쩍 내뱉은 말에, 토고는 눈을 크게 떴다.

 

[.........?]

[녀석들 전부 니트거든. 이것들이 오뎅을 매일같이 외상으로 먹고 갚지를 않기에 카라마츠를 유괴해서 몸값으로 외상값을 받아내려고, 내가 꾀를 냈단 말이야]

[, 잠깐잠깐]

 

아직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토고가 말을 막는다. 아까까지 그렇게 화를 냈던 사람으론 보이지 않는 얼빠진 얼굴이다. 하긴, 그렇게나 장난꾸러기였던 녀석들이 전원 니트라고 하니 어이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치비타가 한 짓은 거의 토고가 했던 짓들과 비슷하고. 토고는 몸값을 요구하진 않았으니, 유괴의 건만 따지자면 치비타보다 토고의 죄가 가벼울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에 기둥을 세워 묶어뒀는데, 그게, 아무도 구하러 오질 않은 거야]

[아니, 잠깐만, 이해가 안 되는데]

[? 어디서부터?]

[전부]

[그럼 그냥 들어. 전화를 했는데, 흥미라곤 없는 녀석에, 심지어 기뻐하는 녀석까지 있었다고. 그러다 결국은 엄마가 가져온 배에 관심이 끌려선 다들 카라마츠를 잊어버린 거야]

[잠깐만............진짜 그 여섯 쌍둥이의 얘기인 거냐? 그거]

 

치비타의 말을 끊은 토고는 이미 이해력 한계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토고의 안에서 여섯 쌍둥이의 이미지는 사이좋고, 밝고, 여섯명이 하나란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아이들이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토고가 오소마츠를 유괴했을 때, 바로 경찰이 오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다칠까 염려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소마츠도 가족을 걱정해 혼자 떠안았다. 평소에는 개구쟁이지만, 형제들이 위험할 때는 총명하고 듬직해지는 녀석이었다. 그럴 터였다.

 

[, 그래서 장난이라 생각하고 무시한 건가 해서, 이번에는 카라마츠를 녀석들 집앞으로 끌고가서 화형을 시켰거든]

[너는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아니, 카라마츠가 진짜 없어지면 얼마나 슬플지를 알려주려고..........]

[...........................-, 됐어 계속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이 현대의 유괴나 협박이란 말인가.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해도 별수 없을 정도로, 토고에게 있어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토고는 이미 한계였다.

 

[.....-, 그래서, 이 녀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면 구하러 나오라고 했더니, ........그랬더니 말이야, 녀석들 2층에서 카라마츠한테 둔기를, 던졌다고.........]

[...................?]

[방망이나, 후라이팬, .......맷돌, 까지.......]

 

점점 말을 흐리는 치비타를 토고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쩐지 기분이 찝찝하고 거북해진 치비타가 시선을 피하자, 그 옆에 있던 카라마츠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잠들어 있다. 울다 지쳐버린 거겠지. 머리에 감긴 붕대의 한 쪽이 느슨해져 밑으로 내려와 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라서 말이야...]

[카라마츠한테 던진 거냐, 진짜?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고?]

[.................]

[오소마츠는!? 그 녀석도!?]

[..........누가 뭘 던졌는지까지 다 기억하진 못 한다고...]

 

괴로운 표정으로 말하는 치비타에, 토고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토고의 세계가, 변하지 않았다며 안심했던 세계가, 숨이 탁 트여 편안했던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무의식적으로 그 세계의 축이 되어있던 여섯 쌍둥이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원동력이 된 여섯 쌍둥이가, 너무도 변해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변했다고 단언할 정도로, 토고는 그들의 어린 시절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과정을 하나도 몰랐다. 이 세계의 주민이라 부르기에 토고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무지했다.

 

[카라마츠 녀석, 늘 연기하듯이 멋진 말을 해댔거든. 뭐라더라, 괴롭힘 당하는 캐릭?? 같은.........]

[..................]

[아니, 도가 지나치다는 건 알지만 말이야...........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냐고 물어도 이 녀석 전혀 말해주질 않고...........결국 그것 때문이 이렇게 된 거라고!!]

[...................]

[사실은 말이야! 녀석들도 카라마츠를 좋아한다고!! , 연기 잘 못하니까...카라마츠처럼 자연스럽지 못하니까, ...........내가 벌인 일이니까, 그래서 장난이라 생각해서...............]

[......................................]

 

마치 무언가에 용서를 구하듯 두서없이 말하는 치비타. 그에게 있어서도 이번 일은 너무 커서, 아직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정리가 안 된 듯했다. 무심코 그 자리에서 혼자 도망쳐 버리기까지 했으니, 이미 치비타도 한계일 터였다. 당황한 상태로 구급차를 부른 탓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겠지. 집에 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다음날 부랴부랴 병원으로 뛰어간 건 기억하고 있지만. 사고라고 우기는 카라마츠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도, 의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어떻게 둘러댔는지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고, 카라마츠에게 부탁한 옷을 챙겨 병원에 간 건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치비타도 한계였다.

 

[............뭐어, 외상값을 내지 않은 녀석들도 나쁘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나도 녀석한테 크게 잘못했, ............]

[.................]

[, 토고..........?]

[?]

[, 아니, ..............미안...]

[.......................]

 

차가운 밤공기가 세명의 세계를 감싼다. 들리는 소리라곤 탁자에 엎어진 이의 들릴락 말락한 숨소리뿐이라, 침묵이 세계를 점점 빠르게 침식해간다. 분위기 때문인가 날씨 때문인가 모를 추위에 몸을 떨며 치비타는 현실도피를 하려는 듯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아무리 성인 남성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처로 혼자 집에 돌려보내기엔 불안하다. 막 잠에서 깨어, 몸까지 이렇게 식어서야 분명 감기에 걸리고 말 것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긴 껄끄러울테니, 자기 집에 데려가 재우려, 치비타가 카라마츠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던 순간이었다.

 

 

 

[치비타, 손 들어]

 

토고는 치비타에게 가방에서 꺼낸 식칼을 겨눴다. 아직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새 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소리 없이 치비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 ?]

[말해두겠는데, 이건 진짜 칼이고, 농담도 아니니까]

 

너무도 갑작스런 전개에 치비타의 사고가 정지했다. 눈앞에까지 들이닥친 칼날과, 코앞까지 다가온 토고의 얼굴. 자신과는 명백히 다른 범죄자의 눈을 한 토고에, 치비타는 전에 없던 공포를 느꼈다.

 

언뜻 토고가 무언가 하는 게 보이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잔뜩 풀이 죽어 있는 그가, 갑자기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까. 아니,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

 

[, 토고...........?]

[시끄럽게 굴면 죽인다. 손 들어]

 

땅을 기듯이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치비타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미 본능이 몸을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땀이 멈추질 않는다. 시야가 기분 나쁠 정도의 채도로 뒤덮여 간다. 협박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 시끄럽게 굴 여유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칼날은 눈앞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고, 토고는 그야말로 코앞까지 다가와있다.

 

그 순간, 칼날이 카라마츠의 목덜미로 향했다.

 

[, 카랏]

[그대로 움직이지 마.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카라마츠의 목숨은 끝이니까]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는 토고에, 이제 치비타는 답을 할 수 조차 없었다.

 

[어이, 일어나라 카라마츠]

[............, ...........?]

[일어나라고]

 

탁자에 엎어진 카라마츠의 귓가에 대고 큰소리로 불러 깨운다. 술을 마셨다고는 해도 얼마 마시지 않았기에, 카라마츠는 금방 일어났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치비타에게 있어 불행일 수밖에 없었다.

 

[..........토고, ?]

[깼냐. 깼으면 일어나]

[, ?]

[네가 그랬지. 복수할 거라면 자기한테 하라고]

 

아직 몽롱한 카라마츠의 눈에는 사각지대라 식칼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인자이자 강도인 토고의 무시무시한 표정만이 보일 뿐이었다. 살짝 당황은 한 듯했지만 공포는 담겨 있지 않은 푸른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에 취해있던 눈은 이젠 거의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형제에게는 손을 대지 말라고 그랬지]

 

이젠 완전히 잠에서 깬 카라마츠가 잠시 침묵하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아, 그랬지]

[나는 원래 치비타와 오소마츠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곳에 온 거거든. 이 두놈 때문에 잡힌 거니까]

[.......모처럼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고 싶은 건가?]

[닥쳐. 나한테 그 수십년이 얼마나 큰 건지 네놈은 모르잖냐]

 

칼날이 카라마츠의 목에 닿고서야 카라마츠는 그 존재를 알아챈다. 이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자신의 생사가 걸려있다. 그 때와 같은 식칼을 든 토고가 이번에는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

 

뭐어,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은 얘기지만.

 

[지금 여기서 치비타를 첫 희생자로 만드는 건 간단한 일이야. 치비타를 죽이고 싶지 않다면, 내 말대로 따라. 네가 치비타와 오소마츠의 대신이 된다면, 다시는 둘을 노리지 않겠다. 내 말 알겠냐?]

[..........알았어. 그렇게 하지]

[카라마츠!!]

[일어서]

 

다시는, 이라는 건 또 잡혀들어가더라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오늘처럼 우연히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마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다. 혼자 있을 때 마주한다면 끔찍한 전개가 될 것이다.

카라마츠는 토고의 말에 승낙하곤 그의 말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한 손으로 목발을 쥐었다. 포장마차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어둠에 선 카라마츠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치비타, 여기로 택시를 불러. 잔꾀는 부리지 말라고]

[...........토고, 카라마츠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다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죽이진 않을테니 부르기나 해]

 

카라마츠한테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치비타는 전화번호부를 꺼내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코웃음으로 받아친다. 짜증난다.

전화가 연결되고, 여전히 카라마츠를 응시한 채 상대방에게 주소를 불러준다. 혀를 씹을 것만 같다.

 

[고마워. 난 괜찮다, 치비타]

[너는 앉아있어]

[]

[보고만 있어도 아프다고. 얌전히 기다려]

 

자신이 했던 모든 생각과 말을 철회하게 만든 그 한마디에는 분명하게 카라마츠를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에 치비타는 어떠한 가설을 세웠다. 이건 어쩌면 토고의 연기인 게 아닐까. 형제들에게 너무도 모진 취급을 받는 카라마츠를 위해, 과거에 가해자였다는 점을 이용해 신빙성을 살려 형제들을 움직이게 만들 작전인 건 아닐까, 하고.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치비타는 전화 너머의 낯선 상대의 질문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상처가 다 나으면 내 일을 좀 도와줘야겠다]

[뭘 도우면 되는 건가?]

[시체를 처리하는 거다. 먹으라곤 안 해]

 

아니, 역시 기분 탓인 듯하다. 시체를 처리하라니 뭐야. 해체해서 바다에라도 버리는 건가. 아니면 산에다 묻으려는 걸까. 전화를 끊고 둘을 보았다. 언뜻 봐선 마치 부상자와 그 보호자 같다. 식칼은 이미 가방에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10분 후면 택시 올 거야]

[그래]

 

토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로 있고, 카라마츠는 그 오른쪽에 앉아있다. 치비타는 그 왼쪽에 앉아 택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차없이 쳐들어오는 침묵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뭐라 할 말도 딱히 없을뿐더러,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기, 토고씨]

[?]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

[대놓고 물어보는 거냐]

 

카라마츠는 치비타의 걱정과 망설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곧 살인범에게 유괴당할 처지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아니, 알고서 저러는 거라면 더 무섭다. 오컬트를 넘어서 사이코패스라니 감당이 안 된다고.

 

[그걸 알아서 어쩌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거라면, 그 마음의 준비라는 걸 해야 되지 않겠나...]

[돌아올지 어쩔지는 네 하기 나름이라고]

[흐음...............]

[.......토고, 진심이냐. 갑자기 표정까지 바꾸고 그렇게 말하다니.........]

[농담이라고 생각할거면 그러라고]

[그럼 치비타, 브라더들에게는 잘 말해주겠나. 이 마츠노가 차남, 마츠노 카라마츠. 사랑하는 브라더들의 가디언이 되어, 잠시 악마의 속삭임을 따르기로 했다고.......]

[누가 악마라는 거냐]

 

카라마츠는 평소와 같았다. 토고도 아까와는 달리 살의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광경 속에서, 단 한 사람, 변하지 않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무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토고와 얘기하는 그에 연기를 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토고가 한 말이 그 가능성을 낮게 만든다. 연기라고 한다면, 본심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까. 아니, 그건 숨기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뭔가 작전이라도 있는 걸까. 부탁이니,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고]

[하아.........이번엔 또 뭐야]

[처음엔 우릴 죽일 생각이었던 거냐?]

[그래]

[.................정말로?]

 

재차 확인하려는 듯 거듭 묻자, 토고는 잠자코 치비타를 내려다봤다. 노려보는 것도, 무언가를 탐지하는 것도 아닌, 그냥 치켜올라간 눈으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다 토고는 슬쩍 자신의 오른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바닥을 위로한 채, 무언가 커다란 것을 지탱하듯이, 그러면서도 그것에 매달리듯이. 하지만 치비타는 그걸 보는 토고의 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

[.........그런가]

[하지만, 이제..........너로서는 의미가 없거든]

[?]

[택시 왔네. 카라마츠, 가자]

[, 잠깐!! 토고!!]

 

끝에 툭 내던진 중얼거림에는 마치 체념한 듯한 묘한 느낌이 들어, 치비타는 무심코 토고에게 달려들었지만 토고는 이를 무시했다. 택시 기사와 뭔가 말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치비타가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강경하게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그저 반보 뒤에서 잠자코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치비타]

[.......카라마츠........]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목발로 지탱하고 선 카라마츠가 있었다. 희미하게 역광이 되어, 치비타에게 카라마츠의 그림자가 졌다. 미소를 띠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 미소에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아,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것이 분해서, 치비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마라. 전언, 부탁한다]

[......., 그런 거지 같은 말 전해줄까 보냐. 네가 없어지고 녀석들도 따끔한 맛을 한번 봐야하지 않겠냐]

[그건 곤란하다고, 치비타]

[녀석들은 곤란해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토고가 다급한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렀다. 치비타는 그 자리에 박혀 움직이지 못했다. 카라마츠는 치비타에게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토고에게 다가갔다. 가버린다. 카라마츠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토고와 함께.

가버린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카라마츠]

 

치비타의 손이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잡았다.

 

[치비타?]

[.................가지 마, 카라마츠]

[...............]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오소마츠도, 토고 따위한테 당할 놈이 아니..........]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아플 정도로, 푸른색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제 쪽으로 당긴다. 그럼에도 카라마츠는 미동도 없다. 그건 치비타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게 두려워서, 치비타는 고개를 떨궜다. 붕대가 감긴 발이 눈에 밟혀서, 평범해 빠진 그 신발이 눈에 밟혀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치비타, 양손은 내보지 않겠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위를 보자, 카라마츠는 오른손에 뭔가를 쥔 채 내밀고 있었다. 목발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탓에 자세가 불안정하다. 위험한 걸, 하고 치비타는 멍하니 양손을 카라마츠 오른손 쪽으로 내밀었다. 치비타의 손에서 빠져나온 옷자락이 구깃구깃하다.

 

[이걸 주지. 내가 네게 주는 마음이다. 받아주겠나]

 

오른손을 펼쳐 치비타의 양손에 떨군 것은, 아까 받았던 것과 같은 막대 사탕이었다. 밀크맛인지 하얀색 사탕이었다.

 

[그럼 잘 지내라, 치비타]

 

그 말을 끝으로 카라마츠는 택시에 올라탔다. 사탕이 양손 가득 자리하고 있어, 떠나가는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치비타는 그저 멀어져가는 카라마츠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슬로모션으로 흘러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치비타가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어둠속에 치비타 혼자 서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듯한 침묵에 휩싸여, 치비타는 누군가 있었다는 자취를 양손에 꼭 쥔 채로 눈물을 흘렸다.

 









오/의역 많습니다

문학적인 표현(?)이 몇 있어서 애를 먹었네요ㅠ


사실 토고 말투도 갈수록 뭔지 모르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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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번 업로드는 이걸로 끝인데요

지금 식자 작업을 할 생각인데

제가 피곤함에 때려치지 않는다면

올리고 자겠습니다


....기다리진 마세요.....

올린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눈이 너무 아파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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