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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사랑할 수 없다

 

 

 

 

 

 

누렇게 물든 바지보다도 추악하고, 악마보다도 더 악마 같은 형들 탓에 스타벅스 알바에서 잘린 나는, 그 열기가 식어갈 즈음 형제들의 눈을 피해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소마츠형이나 쵸로마츠형은 [다른 형제들은 다 니트인데 혼자 일하려니 좀 그러네- 하는 생각 안 들어?] 라고 말했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간 평생 아르바이트를 못할 거다. 동정인 형들과 달리 나는 여자애들과 놀아야 해서, 돈이 얼마가 있어도 모자라다.

 

 

 

 

그날은 선배와 단 둘이서 6시간 정도 근무했던지라, 시각은 저녁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1시간 남았네~]

[그렇네요~]

 

이 편의점은 큰 길에서 벗어나 조금 구석진 곳에 위치해서인지, 이 시간대에는 사람이 그다지 오질 않는다. 게다가 예전에 근처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던 건지, 이 편의점은 다른 곳과는 달리 23시에 문을 닫았다. 시골이냐, 라고 츳코미를 날리고 싶지만, 손님도 많이 없고 이렇게 밤늦게까지 근무를 하면 형들에게 들킬 위험이 없으니 나름 만족하고 있다.

 

 

나와 선배는 매출을 확인하거나 걸레를 빠는 등, 끝없이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대강 정리를 끝내고 출입구를 열쇠로 잠그자, 시간은 약 2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타임카드를 찍는 건 23시가 조금 지나서, 라는 규칙이 있었기에 나와 선배는 직원실에 앉아 만화를 읽었다.

 

 

그 때였다.

 

 

 

-------띵또-, 띵또-......--

 

차임벨이 울리는 소리에 나와 선배는 고개를 들었다. 참고로 차임벨이란 건, 편의점에 누군가 들어오면 울리는 벨이다.

 

 

[어라? 누가 온 건가...?]

[내가 가서 보고 올게-]

 

선배가 천천히 일어서서 매장으로 향했다. 나는 가게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화면을 입구쪽으로 전환해 확인했다.

 

어떤 여성이 서있는 게 보였다. 머리가 길고 하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확인하러 간 선배가 화면에 잡혔고, 선배는 입구와 바깥을 확인하고는 다시 돌아왔다.

 

[선배 밖에 어떤 여자가 서있던데. 그냥 무시하고 와도 되는 건가요?]

귀찮아서 무시한 거겠지 싶었지만 일단 확인 차 물었다.

 

 

이 편의점은 문을 닫고도, 23시 영업이라는 걸 모르는 손님들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에는 조심스럽게 대응해 돌려보내곤 했다.

 

[? 나말고 아무도 없었는데?]

[또 그런다~ 저 모니터로 보고 있었거든요~ 있었다구요? 여자가]

웃으며 그렇게 답하자, 선배는 눈살을 찌푸리며,

[진짜? 전혀 몰랐는데....내가 못 본 건가..?]

아니, 눈앞에 서있었잖아, 언제까지 농담할 생각이야 이 사람

하고 생각했지만, 나도 선배 입장이라면 귀찮아서 같은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 아무렴 어때]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 웃은 우리는, 다시 모니터를 되돌리고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힐끗,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분이 지나있었다. 만화책으로 다시 눈을 돌리려는 순간, 모니터가 시야에 잡혔다.

모니터는 3초 간격으로 가게의 다양한 장소를 비추는데, 마침 그때 주류코너를 비추고 있었다. , 하고 화면이 전환되더니 이번엔 잡지 코너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입고된 성인잡지 이치마츠형이 좋아할만한 잡지네

라며 후후 웃던 그때였다.

아까 봤던 그 여자가 잡지 코너 정면 유리창 앞에 서서 편의점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거기에 가만히 서서 감시카메라를 응시하는 듯이 보였다. 그 순간, 이번에는 과자 코너가 화면에 비춰졌다.

 

 

뭐지, 미친 사람인가...? 이제 곧 퇴근인데, 괜히 얽히지 않았음 좋겠네~

라며 그때의 나는 태평하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 이번에는 도시락 코너가 보였다.

[......? , 저기 선배!]

당황해서 선배를 부르자, 날 따라서 모니터를 바라본 선배의 얼굴이 확 굳어진다.

 

 

아까까지 가게 밖에 있던 여자가, 도시락 코너 앞에 서있었다.

 

[....선배, 이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떨리는 손으로 선배의 팔을 잡자, 선배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 진정해....] 라고 중얼거린다.

 

 

그 때,

 

 

-------뚜루루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전화가 울렸다. 나와 선배는 깜짝 놀라며 전화를 쳐다보았다.

 

전화는 2번 정도 울리고는 끊겼다.

, 그 여자..!’

멍때리던 시선을 돌려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지만, 도시락 코너에 그 여자는 없었다.

 

[......]

 

모니터 앞에 가서 화면을 전환했다.

 

. 잡지코너. 없다.

. 주류코너. 없다.

. 과자코너. 없다.

. 카운터...................있다.

 

카운터 안에 아까 그 여자가 감시 카메라를 뚫어져라 응시한 채 서있었다.

 

 

[, 선배......점점 다가오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거의 반쯤 우는 상태였다. 이럴 때 오소마츠형이나 쵸로마츠형이 옆에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악마같은 쿠소동정 형들이지만, 어쩔 땐 엄청 의지된다.

 

 

[...마츠노. 도망치자]

선배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 그치만....]

반대쪽에 문이 있기는 하지만, 밖에 나가려면 결국은 매장을 지나야 한다. 여자와 마주칠 위험이 있다고 말하려던 그 순간,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선배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니터를 보자.......여자가 목을 180도로 꺾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면이 등인 상태로......여자는 히죽 웃고있었다.

 

[.......으아.............]

엄청난 공포감에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 위험해위험해위험해!!! 마츠노 도망가자!!!]

패닉에 빠진 선배가 외쳤다. 선배와 나는 앞다투어 입구로 달려나갔다.

집으로 돌아가자, 형들이 있는 거실로 돌아가자. 그런 생각밖에 나질 않았다.

 

 

지지직, 하는 소리가 나고 모니터의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을 봤지만 어디를 비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냐면................여자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얼굴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부는 새하얗고, 입술은 새빨갰다. 게다가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먼저 문앞에 도달한 선배가 고함을 지르며 풀썩 쓰러졌다.

[, 선배!?]

당황해 선배에게 달려갔지만 이미 선배는 기절한 뒤였다.

 

 

......, 라며 의아해하던 나는 고개를 들고 선배와 마찬가지로 비명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문 너머에서 여자가 이쪽을 들여다보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새된 목소리로 미친 듯이 웃었다.

[, 하지마!!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그렇게 외치자 여자는 히죽 웃었다.

 

 

, , 문을 두드린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살려줘, .....]

울면서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여자가 문앞에서 사라졌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멍하니 있자,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아까전의 그 기세와는 완전히 다른 소리였지만, 밖에 나갈 용기는 나지 않아 덜덜 떨고 있자, 이번에는 [실례합니다-] 하는 나직한 목소리다 들렸다.

 

낯익은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들자, 누군가 문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

나를 알아본 그가 이쪽을 보고 깜짝 놀란다.

 

 

[.....토도마츠?]

 

 

 

....카라마츠형!!!

 

[카라마츠형!!!]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문을 박차고 나가 카라마츠형을 끌어안았다. 형은 나의 기세에 놀란 듯 잠시 주춤했지만 제대로 받아냈다.

 

[왜 그러나, 토도마츠. 브라더와의 만남에 뜨거운 포옹을 나누다니, 토도마츠답지 않군. 그보다, 편의점에서 알바라도 하는 건가?]

[...... 그런데 카라마츠형은 여기 웬일이야?]

[아아, 나는 카라마츠 걸과 밤의 아방튀르를-]

[무슨 소리야]

[, 아무튼 일단 카라아게 좀 주지 않겠나? 그걸 사러 온 거다]

미안 이미 문을 닫았거든, 이라고 말하려다 그 이상한 여자가 문득 떠올랐다.

 

 

어째서 카라마츠형은 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입구는 열쇠로 잠겨있었는데.

 

 

 

 

 

고개를 들자, 방긋 웃고있는 카라마츠형과--

 

 

 

----아까 그 여자가 형 뒤에 서있었다.

 

 

 

 

 

 

 

 

 

 

◇◇◇

 

 

 

 

 

 

 

[거기 너, 얼마?]

낯선 남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풍채 좋은 거한이 미소를 머금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카라마츠 걸과의 만남을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다, 어느새 형형색색의 네온불빛이 거리를 밝히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말을 건 것은 카라마츠 걸도 아닌 자신보다 2배는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건장한 남성이다.

 

얼마냐니, 무슨 말일까.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쳐다만 보고있자, 남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한테 한 말이라고? 못 들은 거야? 그래서, 얼마면 돼?]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남자가 하는 말은 마치 남성들이 여자를 살 때나 할 듯한 말이다. 하지만 난 남자다. 게다가 여자로 착각할 차림새도 아니다. 평생 살아오면서 여자같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여자로 착각한 건 분명 아닐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오자키처럼 멋지고 퍼펙트한 차림이다. 여자로 착각했을 리가 없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자의 대사를 보아, 이건 내게 한 말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내 뒤는 벽이고, 그런 말을 들을만한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

 

 

 

, 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꿀꺽 침을 삼켜 견뎠다.

 

 

내 바로 왼쪽에 자그마한 소녀가 서있었다.

칠흑같은 검은 긴 머리칼에, 흰색에 가까운 옅은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여성이 다가왔다면 몰랐을 리가 없는데, 어째선지 소녀는 무척이나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덕분에 깜짝 놀라 심장이 쿵쾅쿵쾅 정신없이 뛰어댔다.

얼마전 오소마츠형이 놀래켰을 때는 깜짝 놀라 강에 빠졌었고, 돌이 창문을 깨고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깜짝 놀라 창문을 들이받아 큰 부상을 입었었다.

이렇듯 나는 갑자기 놀래키는 것에 무척 약하다.

 

날 놀래킨 소녀에게 잠시 불합리한 분노를 품었지만 진정시키고, 나는 이제야 이 남자의 언동을 납득했다. 남자는 이 소녀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이곳은 길티 가이들이 모이는 저녁거리고, 혼자 거리를 배회하면 이렇게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고개를 들고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까지는 당황해서 알아채지 못했지만, 남자의 눈에는 음흉한 속셈과 흥분이 훤히 드러났다.

흘끗 옆의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남자가 말을 걸었음에도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무서운 걸까. 어쩌면 이 소녀는 가출을 해서 돌아갈 곳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운 좋게도 자신을 지켜줄 든든한 나이스 가이를 발견해, 안심하고 옆에서 몸을 숨긴 채로 가만히 떨고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분명하다. 99퍼센트 그럴 것이다. 뜻밖의 생각에 납득함과 동시에 소녀에게 동정심이 들어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사연을 알았으니 내가 지켜줘야겠군.

이런 경우에는 뭐라고 해야 할까. 보통, [얘는 내 여자다] 라고 말하며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하던데. 앞전에 토도마츠가 여자들과 대화를 하려면 그들에게 유행하는 걸 따라야 한다며 AV와 함께 빌려왔던 순정만화에나 어울릴 대사로군. 거기선 배경이 바다였는데, 여긴 바다가 아니지만 써도 괜찮겠지. 멋있어서 말해보고 싶었어. 한번쯤 말해보고 싶었다고.

 

 

안쓰럽네에~~~!!

갑자기 귓가에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카라마츠 걸이라니 뭐야!? 카라마츠형을 좋아하게 될 여자의 입장이 되어 보라고! 너무 불쌍하잖아!?

 

으윽, 하고 신음을 흘렸다. 지금에서야 떠올랐다. 전에 토도마츠가 말했던 말들이. 토도마츠 말로는, 세상에는 카라마츠 걸이 되는 걸 불쾌하게 여기는 여자들이 많다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카라마츠걸, 카라마츠걸, 하지 말라고라며 토도마츠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토도마츠는 나보다 여자들 마음을 잘 알고, 여성과의 교류가 나보다 훨씬 많으니까 분명 토도마츠의 말이 맞을 것이다. 다른 형제들도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었고. 그 사실은 내게 있어서 무척이나 슬펐지만, 어쩌면 이 소녀도 그런 여성 중 한명인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 한, [내 여자니까]라는 경솔한 말을 내뱉을 수는 없다.

 

나는 결국, [...죄송합니다. 오늘은 좀...] 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아아, 꼴사납다. 하지만 나는 애드리브에 약하단 말이다. 적어도 소녀 대신에 거절하는 게 낫겠지. 넌 얘의 뭔데 나서는 거야, 라고 물으면 끝이지만.

[그러지 말고, 어떻게 안 될까?] 남자가 눈썹을 내리깔며 말했다. 왜 네가 대답하냐,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왠지 이 남자는 집요할 것 같다. 물러나게 하려면 골치 아프겠는 걸, 이라며 옆을 흘긋 봤지만 여전히 소녀는 꼼짝도 않고 있다.

[죄송합니다, 상태가 영 아니라서...]

[에에~]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소녀는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니 어딘가 아픈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자는 물러나지 않고 끈질기게 물어왔다. 이 정도 줄테니까, 어때? 라며 눈앞에 만엔을 흔들어댔다.

소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지, 남자는 내게 물어왔다. 아니, 진짜 그만두라고. 나는 거의 울상이었다. 마치 성매매 알선 업자가 된 기분이다.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고 생각한 나는, [그럼 다음 다시 오실래요? 오늘은 정말 좀 그래서...]라고 답했다.

남자는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그럼 이름이랑 연락처만이라도 알려줘] 라며 떨떠름하게 수긍해주었다. 됐다!! 속으로 환호하며 옆의 소녀를 보았지만, 미동도 없다. 아니, , 그렇겠지. 이름이나 연락처를 알려줄 리가 없겠지, 낯선 남자한테.

나는 고민 끝에, [저기, 제 번호를 알려줘도 될까요.....] 라며 이 아이의 연락 중개를 한다는 둥 그런 말을 우물우물 덧붙였다. 당연히 거짓말이지만. 그치만 나 이 소녀의 전화번호 모르고. 지금 이 상황만 피하면 되니까. 도망치는 게 이기는 거다. 내 연락처가 알려져도 그리 문제될 건 없고, 이 소녀가 남자에게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다.

어쩌면 남자가 떼를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당연하지!] 라며 환한 미소로 답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카라마츠군] 하고 귓가에 속삭인다. 우와, 기분 나빠. 연락이 와도 절대 안 받을 거다. 라며 속으로 다짐했다.

 

 

 

[, 괜찮은가?]

남자가 떠나고, 나는 소녀에게로 몸을 돌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위로의 의미로 어깨에 손을 얹자, 소녀의 몸이 꿈틀하고 떨렸다. 무심결에 손을 움츠렸다. 그래, 나도 이 소녀에겐 똑같은 남자다.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지.

[미안하다, . 무섭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손을 거두고 악의는 없었다는 걸 전하자,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녀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소녀의 얼굴이 거리의 불빛에 환하게 비춰진다.

 

소녀가 무서워하지 않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소녀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뭐야, 이게]

이치마츠의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이치마츠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항상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부릅뜬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뭐야, 라니 대체 뭐가? 이치마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평범하게 말을 걸어준 것이 기뻐 마음이 조금 설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가 말인가?] 라고 되묻자, 이치마츠는 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혹시 안 보이는 거야....?] 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파란 후드티에 반짝거리는 스키니가 보였다. 평소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극단적으로 체형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다시 이치마츠를 바라보면, 역시 그는 내 얼굴을 노려보고 있다. 그렇게 꼴이 말이 아닌 건가, 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보자, 내 어깨에 턱을 얹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카라마츠 걸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것 외에는 평소와 달라진 게 조금도 없는 복도의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평소에 형제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곧잘 화나게 만들곤 하니까, 미안한 마음에 [미안하다, 이치마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라 솔직하게 말했다. 이치마츠는 눈을 크게 뜬 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저었지만, 여전히 이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몸만 뒤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괜찮은가?] 걱정스러워 한발 다가서며 그렇게 묻자, [오지마!!!] 하고 이치마츠가 소리를 질러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이치마츠는 그대로 천천히 뒷걸음질 치더니, 거실문에 다다르자 엄청난 기세로 거실로 뛰어들어갔다.

[, 어이 다들!!! 카라마츠가 위험하다고!!!!]

이치마츠의 울 듯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일까. 오랜만에 이치마츠가 큰 소리를 냈다. 잘은 모르겠지만 건강한 것은 좋은 일이다.

 

 

 

전날 밤에 소녀를 도와준 뒤로, 소녀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꼭 들러붙더니 결국 집까지 들어왔다.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거냐고 물었지만,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집에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예전에 내게 보답을 위해 찾아온 플라워처럼, 소녀와 함께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지만. 말하는 것 오로지 나 혼자고 소녀는 잠자코 내 얘기를 들을 뿐이다. 플라워와 달리 내게 직접적으로 뭔가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소녀는 가느다란 손으로 내 옷자락을 꽉 잡아 늘 곁에 두었다. 분명 날 필요로 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소녀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플라워 때처럼 형제들이 구석에서 가만히 우릴 쳐다봤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소녀에게 열심히 오자키 얘기를 했다. 소녀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아서, 내게 안쓰럽다거나 닥치라거나 하지도 않고 잠자코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카라마츠형]

며칠 지나자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토도마츠가 창백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왜 그러나?]

[그 여자, 누구야]

토도마츠가 마치 목소리를 쥐어짜내듯이 말했다.

[저기, 그 여자 대체 뭐야. 왜 우리집에 있는 거야? 어디서 데려온 거냐고]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잡고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추녀잖아!!!라고 말했던 토도마츠를 떠올렸다.

플라워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하고, 째려보았었다.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투덜거렸다. 워낙 동정 니트에 뒹굴거리기만 하는 우리는, 결속력이 강한 여섯 쌍둥이였다. 전원 적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서로 남을 따돌리고 앞서나가는 건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확실히 플라워는 약간 일반 여성들보다 외모가 조금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얼굴이 전부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날 위해 나타난 플라워를 사랑했고, 플라워도 나를 필요로 했다. 내가 그녀의 요구에 답하지 않자, 그녀는 죽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난 원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걸이 곁에 있어 나는 행복했다.

어차피 녀석들은 나와 플라워의 결혼식에도 오지 않은 박정한 놈들이다. 여성의 진정한 좋은 점을 영원히 모를 동정놈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무슨 소린가, 여자라니. 그런 거 없다고?] 라며 야유를 담아 말했다. 적어도 네가 말하는 추녀는 없다. 있는 건 멋진 카라마츠 걸뿐이다.

 

내 말에 토도마츠는 힉, 숨을 삼켰다. 그렇게 분했던 건지, [안 보이는 거야?] 라며 작게 중얼거리곤 눈물범벅의 얼굴을 한 채 어딘가로 가버렸다.

 

소녀는 늘상 내게 꼭 붙어있지만, 거실에 있을 때만은 형제들 앞이라 부끄러운지 내게서 떨어져 방구석에 가만히 서있었다. 구석을 좋아하다니, 마치 이치마츠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이치마츠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니까, 과묵한 소녀와 잘 맞지 않을까 아주 조금 기대했지만, 이치마츠는 그저 가끔 흘끗흘끗 소녀에게 눈길만 줄뿐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이해는 간다. 여자가 옆에 있으면 무척 신경이 쓰이지만, 좀처럼 말을 걸 수는 없으니까.

 

 

 

 

소녀를 집에 들이면서 가장 곤란한 건 목욕이다.

여자들은 도대체 어떤 샴푸를 쓰는 걸까. 내가 쓰는, [상쾌한 남자를 위한 샴푸!!] 라는 선전문구가 써있는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빌려주는 건 좀 그런 것 같아, 슈퍼의 일용품 코너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복숭아 향기의 샴푸세트를 구입했다. 뭘 골라야 소녀가 기뻐할지 알 수가 없어서, 적당히 골랐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핑크색의 귀여운 케이스에 혹해서 고른 느낌이 나긴 하지만, 내 샴푸를 빌려주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내게 다가온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플로럴 향이 나지 않는가?]라고 오소마츠형에게 말했더니 [, 뭔가 고기 썩는 냄새가 나네] 라며 오소마츠형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은 복숭아 향이 거북한 걸까.

 

 

날이 저물어갈 무렵,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휴대폰 게임을 하던 중 [꺄아아아아아아아아]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집에는 나와 토도마츠밖에 없으니까, 이 목소리는 아마 토도마츠의 비명일 것이다. 토도마츠는 평소엔 귀여운 척하지만 비명소리는 전혀 귀엽지 않구나, 오히려 낮아서 더 남자 같다. 그렇게 감탄하면서도 걱정이 되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토도마츠가 거실로 들어오더니,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 기세에 나는 있는 힘껏 뒤로 쓰러져 바닥에 등을 부딪쳤다.

 

[크읏.........]

 

통증에 정신이 아득했지만 꾹 참고 토도마츠를 끌어안았다.

 

[...왜 그러나, 마이 브라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 씻으려고 욕실에 갔는데.......분명 아무도 없을텐데 자꾸..샤워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유리너머로 사람 실루엣이 보여서.......]

오열하며 말하는 토도마츠를 바라보며,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거 설마 카라마츠 걸 아냐? 욕실을 써도 된다고는 했지만 (샴푸까지 선물했고), 아무 말도 없이 욕실을 쓰다가 형제들이 갑자기 들어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무리 동정이라고 해도 남자는 모두 늑대다. 만남의 계기도 그렇고, 그녀는 좀 더 남자에게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의를 좀 해둬야겠다.

 

 

토도마츠를 달래고 있자, 갑자기 문이 열렸다.

 

[나 왔어-, 어라, 카라마츠랑 토도마..........]

쵸로마츠가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쵸로마츠 눈에는 이렇게 보일 것이다.

전신 나체&울상으로 형 위에 올라탄 막내 동생을 껴안고 있는 형(전과 있음).

 

[거실에서 뭔 짓이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쵸로마츠의 절규가 온 집안에 울렸다.

 

 

[아니, 오해다. 나랑 토도마츠는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전에 이치마츠 건도 오해랄까...]

 

나는 팔짱을 끼고 서있는 쵸로마츠의 눈앞에 정좌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덮쳐진 건데 왜 나만.

 

 

[그럼 왜 토도마츠가 울고있는 거야]

아무래도 쵸로마츠가 화를 내는 이유는 귀여운 막내를 내가 울렸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잖아. 애초에 할 생각도 안 하지만. 오히려 울어야 할 쪽은 나라고. 나는 호모가 아닌데. 비록 오소마츠형에게 고백했던 이치마츠를 쓰려뜨렸고, 토도마츠에게 깔리기까지 했지만 호모가 아니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해도, 단 하나의 진실을 알아차려주길 바란다. 나는 결백하다.

[오해다, 나는 거실에 있었는데 토도마츠가 울면서 뛰어들어온 거다]

라고 필사적으로 변명을 시도했다. 그렇지, 토도마츠. 라며 토도마츠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토도마츠는 담요를 뒤집어쓴 채 오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답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쵸로마츠가 눈썹을 낮추고 걱정스럽게 토도마츠를 바라본다. 그리고 날 돌아보는 쵸로마츠의 얼굴은 매섭게 변해있었다. 히익, 겁먹은 내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형이 돌아올 때까지 정좌하고 있어] 라며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나는 [......]라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얘들아~ 형아가 왔다고~~] 라는 태평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울고있던 토도마츠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소마츠형을 껴안았다. 징징거리는 토도마츠에 오소마츠형은 약간 놀란 듯했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토도마츠를 껴안았다.

[.....왜 그래?]

 

[오소마츠형 나 좀 도와주겠나. 내가 호모가 아니란 걸 해명해줘]

진지하게 그리 부탁하자, [하아? 무슨 상황이야 이거] 라며 의아하다는 표정의 형이 눈살을 찌푸리며 우리를 쳐다봤다.

 

 

 

 

요즘 쥬시마츠가 힘이 없다. 평소 같으면 아침 일찍부터 이치마츠를 방망이에 묶어 휘두르는 녀석인데, 요즘은 방바닥에 뻗어있기만 한다.

[쥬시마츠 무슨 일인가. 기운이 없어 보이는군. 나랑 같이 야구하러 안 갈텐가?]

라고 물었지만, 쥬시마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카라마츠형은 요즘 잘 자고 있어?]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아, 언제나 숙면을 하고 있지] 라고 답했다. 그보다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할 사람은 쥬시마츠인 것 같은데. 쥬시마츠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와 있었다. 평소 쥬시마츠라면 생각지도 못할 얼굴이다.

[쥬시마츠 너 제대로 자고 있는 건가?]

[- 그게 요즘 잠을 잘 못자]

아니나 다를까 쥬시마츠가 그렇게 대답했다.

걱정스럽게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자, 동생은 곤란한 듯이 웃어보였다.

[뭔가 잘 때마다 계속 누가 날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날 째려보고 있어. 마치 내게 죽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쥬시마츠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 여자가 웃으면서 내 목을 졸랐어. 눈은 시커멓게 뚫려있고, 거기서 피가 줄줄 흘러나와...,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아서 그럴 수가 없었어....어쩌지, ...]

나는 쥬시마츠의 말에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쥬시마츠를 올려다 봤다. 그런 무서운 여자가 우리집에 있을 리가 없으니, 분명 그건 쥬시마츠의 악몽이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악몽에서 쥬시마츠를 구해낼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오소마츠형이라면 쥬시마츠를 잘 달래서 안심시켜주지 않을까. 정말 한심하군, 나란 놈은.

[오소마츠형에게 상답해보지 그래]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자 쥬시마츠는, [그럴까] 라며 아쉬운 표정으로 웃었다. 그 미소는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형제들이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눈도 전혀 마주치지 않는다. 내가,

[오늘은 어디 가는 건가?] 라든가 [뭔가 먹고 싶은 게 있는가?] 라고 말을 걸어도 무시를 한다. 나랑 마주칠 때에도 전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갔다. 오소마츠형만, 내가 [어서와] 라고 말하면 [다녀왔어] 라고 작게 답해준다. 하지만 오소마츠형도 그 답을 할 때조차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쳐다보지 않을 때에는, 형제들이 흘끗흘끗 나를 째려본다.

나는 거울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그 원망스러운 시선을 견뎌냈다. 가끔 소녀가 위로하는 듯이 내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저기, 카라마츠. 너 액막이라도 하는 게 어때]

간식으로 푸딩을 먹던 중, 오소마츠형이 나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형제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거는 건 오랜만이라 기뻤지만,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어 나는 가만히 형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노골적으로 오소마츠형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사람 얼굴을 보고 메스꺼운 표정을 하다니, 상처로군.

 

[갑자기 액막이라니 무슨 소린가] 라고 묻자, [나쁜 놈을 없애자.....]라며 말끝을 흐린다.

[나쁜 놈이라니 남한테 부탁하지 않고, 오소마츠형이 없애면 되지 않나]

라고 말하자 오소마츠형이 이상한 표정을 한다.

[....., 평범한 거라면 그러겠는데....이번에는 적한테 최공 세콤이 있다고 해야 할까.....]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만]

[-, 그니까 평소에는 아군이었던 녀석이 이번에는 적이라서 무너뜨리기 힘들다고]

[뭐라고? 오소마츠가 배반당했다는 건가? 뒤통수를 맞은 건 아니겠지? 다치지는 않았고?]

[- 굳이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달까...]

[그런가, 배신당한 건가. 오소마츠한테 그런 힘든 일이 있었는데 나는 태평하게 푸딩이나 먹고 있다니....]

[....아니, 너는 잘못 없으니까...]

오소마츠형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무리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다시 정색을 하고는, [, 잠깐 화장실 좀] 이라며 입을 틀어막고 달려나갔다.

 

 

나는 남은 푸딩을 떠서 삼켰다. 오소마츠형은 내 푸딩을 흘끗 보고 입을 막으며 뛰쳐나간 것처럼 보였는데, 대체 내 푸딩이 어떻게 보였던 걸까.

입 안을 씹은 건지, 마지막 한 입은 녹슨 철의 맛이 나는 듯했다.

 

 

 

다음날 우리는 유명한 신사로 향했다. 소녀가 나타난 뒤로는 카라마츠걸을 찾으러 갈 필요를 못 느껴 나는 계속 집에 있었다. 간만에 맡아보는 바깥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져,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계속 집에만 틀어박혀있고, 형제들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였던 걸지도 모른다. 돌아보자, 긴장한 표정의 형제들이 보였다.

 

이 액막이로 형제들의 고민이 사라지면 좋겠군, 하고 이름도 모를 신에게 빌었다.

 

신가에 도착하자 신주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쪽 객실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자, 차를 내주며 말했다.

[힘들었죠. 이제 괜찮습니다. 우리에게 맡기세요]

다정한 어감에 토도마츠들이 울기 시작했다.

 

신주가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삼엄한 모습의 젊은 남성들 4명이 방에 들어왔다.

우리 여섯 쌍둥이와 신주님 그리고 그 4명까지. 별로 넓지도 않은 방이 북적해졌다.

남자들이 사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방의 모든 문을 열자 거기에 같은 크기의 방이 있어, 방이 꽤나 넓어졌다. 오소마츠형들은 문을 넘어서 건넛방으로 갔다. 신주가, [의식 도중에 그가 난동을 부릴지도 모릅니다. 그의 의식이 돌아오게 말을 걸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나도 형들을 따라 건너가려 하자, [너는 거기에 있어] 라고 오소마츠형이 말했다. 거스를 이유도 없어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고 방 중앙에 서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4명의 남자들은 분주하게 방을 돌아다니며 방을 에워싸듯이 흰 가루를 바닥에 뿌렸다. 똑같은 하얀 가루를 든 신주가 내게 다가오면서, [상의를 벗어주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라 나는 옷을 벗었다. 그러자 신주는 갖고 있던 가루를 내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히익!?] 놀라서 무심코 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거기에 또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가루를 바르는 곳이 찌릿찌릿하다.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바르는 도중, 점점 몸이 달아올라 칠해진 부분이 뜨거워졌다.

그것이 신경쓰여 안절부절 못하고 있자, [괜찮습니까?] 라고 신주가 물었다.

[뜨거워서 아픕니다] 라고 답하자, [미안하지만, 그건 정화되고 있다는 거니 힘들겠지만 참으세요] 라고 말한다.

정화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바르고 있는 하얀 가루는 소금인 것 같다. 어째서 나는 소금을 몸에 바르고 있는 거지. 나는 평소에 잘 다쳐서 내 몸은 상처 투성이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면 아픈 게 당연하겠지. 도와달라는 의미로 오소마츠형을 바라봤지만, 오소마츠형은 슬픈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오소마츠형의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에 놀라,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아픔을 참았다.

 

 

겨우 소금을 다 바르고, 젊은 남자들도 준비가 다 끝난 듯 다섯명이 나를 에워쌌다. 뭐가 시작되는 건지 몰라 불안해져 주위를 둘러보면, 형제들이 근심 어린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신주가 뭔가 신비한 말들을 중얼거린다. 주문과 같은 말을 큰소리로 외치는 신주 옆에서 남자들이 빙글빙글 팔을 움직이다.

도대체 무슨 의식인 걸까. 무서워서 울 것 같다.

 

 

어느새 소녀가 내 앞에 서있다.

 

[..............]

카라마츠 걸이로군. 하고 말을 하려던 찰나, 엄청난 외침이 내 말을 끊었다. 온 힘을 다 해서 울부짖는 듯한, 마치 단말마의 비명 같은 그 소리에 나는 무심코 귀를 틀어막았다.

갑자기 뭐야!? 하고 놀라고 나서야 알았다.

 

 

.........이건, 내 목소리다.

 

 

자기 입에서 엄청 괴로운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무심코 목을 눌렀다. 목의 근육이 단단해지며, 사람을 저주하는 듯한 기분 나쁜 절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눈을 뜨고 앞을 보자, 소녀가 자신의 팔로 온 몸을 부여잡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였다.

 

소녀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주륵주륵 쏟아져, 바닥에 고인다. 뚜둑뚜둑 팔이 뒤틀리고 다리가 덜덜 떨리며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며 크게 입을 벌리고 포효한다. 그 목소리는 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똑같았다. 하지만 나보다 조금 더 높은 듯하다. 그녀는 괴로운지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탓에 그녀의 어깨가 고깃덩이처럼 이리저리 찢겼다. 괴로움에 머리를 쥐어뜯은 탓에 칠흑같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진다. 그대로 손톱이 두피를 찢겨나갔다.

 

그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어, [이제 그만둬!!] 라며 신주와 남자들에게 고함을 쳤지만, 주문을 읽는 목소리는 더욱 더 커지고 남자들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둬.......싫어.....싫다고!!!!]

 

 

 

울부짖으며 그녀의 곁에 달려가려 하자, 형제들이 내 몸을 눌러 막았다.

[...이거 놔!! 놓으라고!!!!! 어이!!!]

 

[안 돼.......]

그 이치마츠가 울면서 내 등에 매달렸다.

[카라마츠형 돌아와....!!]

[카라마츠형 돌려줘!!]

토도마츠와 쥬시마츠가 울며 외쳤다.

 

 

[이거 놔!! 놔줘 제발!!]

형제들의 팔을 뿌리쳤지만 다섯명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녀는 괴로워 울부짖고 있었다.

 

소녀를 도와주고 싶다. 왜 저렇게 괴로워하는 걸까.

 

[대체 무슨 짓인가!!]

신주를 째려보며 말했다. 다정한 얼굴을 한 그는 도무지 카라마츠걸을 괴롭힐 악마로는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신주는 우리를 맞아줬을 때와 달리 싸늘한 표정으로, [거긴 너의 자리가 아니다. 나가라!] 라고 고했다.

 

[지금 당장 이 의식을 그만둬라!!]

 

그렇게 외치자 그는, [그럼 그의 몸에서 나가라!!] 라고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도 없고, 그녀도 계속 괴로워하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소녀를 구하고 싶지만 신주와는 얘기가 통하지 않고, 몸은 형제들이 누르고 있다.

 

있는 힘껏 형제들을 뿌리친다. 형제들이 울부짖으며 내게 매달렸다.

 

소녀를 바라보며, 형제들을 몸에 휘감은 채로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신음했다. 이제 서있을 체력도 없는 걸까. 다다미를 질질 기며 소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을 쭉 펴서 한계까지 펴며 그녀에게 닿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녀가 느린 동작으로 이쪽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손 끝에 닿는다. 하지만 그 충격조차 견딜 수 없었던 건지 가늘고 작은 손가락이 톡,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손가락이었을 그것은 화산재처럼 검은 가루로 바뀌었다. 나는 더 힘을 내서 그녀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 옷자락을 잡던 가녀린 손. 내 손을 몇 번이나 움켜쥐고, 형제에게 무시당해 낙심하던 나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던 손. 그녀는 말은 하지 않았고, 말을 걸 예쁜 입술도 없었지만 그녀는 항상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그녀의 마음을 썼다.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희미한 힘으로 내 손을 맞잡는 그녀.

 

 

 

 

 

싸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의 몸이 재가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아...........]

 

 

 

눈앞이 흐릿해졌다.

 

뚝뚝, 다다미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단시간에 카라마츠걸을 잃어버린 나는 잠시 슬픔에 잠겼지만, 지금은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언제까지고 끙끙거리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 그런 건 지금은 없는 그녀도 원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녀가 사랑했던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형제들은 그 후 안심한 건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서로 부둥켜 안았다. 집에 돌아간 뒤에도 상기된 모습으로 뭔가 말했지만, 그녀를 잃은 쇼크로 멍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오소마츠형이 [네가 이상한 여자를 데려와서 힘들었다고-] 라며 투덜거렸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 카라마츠 걸이다. 라고 답하려 했지만, 오소마츠형은 가벼운 말투와 달리 왠지 울 듯한 표정이었기에 나는 잠자코 머리를 쓰다듬게 내버려두었다.

 

 

 

이리저리 밤거리를 쏘다닌 뒤, 집에 돌아가자 아직 집에 불이 켜져있는 게 보였다.

 

 

[다녀왔어~]

미닫이를 드르륵 열자, 거기에 서있는 건 오소마츠형이다.

[.......다녀왔어, 오소마츠형]

[어서와, 카라마츠]

몹시 상냥한 목소리에 오소마츠형을 빤히 쳐다본다. 오소마츠형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사실은 나, 오늘 뒷동네에 산책하러 갓는데, 이상한 아저씨가 말을 거는 거야. 카라마츠군 오랜만♡』하고. 저기, 무슨 일인지 알려줄래?]

 

 

. 미닫이를 도로 닫았다. 문 너머로 오소마츠형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도망치듯 우리집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어째서 오소마츠형이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도망칠 수밖에 없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 정신이 좀 없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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