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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보지 마라, 마츠노의 이름을3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서성이는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두 사람 다 아무 말 않고 맑게 갠 가을 하늘을 바라만 보고 있다.

 

[이치마츠 보내도 괜찮겠어? 카라마츠]

 

붉은 기모노에 담뱃재가 떨어지기 전에, 손끝으로 툭툭 바닥에 재를 털어낸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는 깊은 한숨과도 같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당연하단 듯이 답한다.

 

[상관없다. 조직원들에게 몰래 살펴보라고 할 거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알리러 오겠지]

[쿨하네. 형아 의외여서 놀랐어. 너라면 절대 안 보낼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치마츠도 이제 애가 아니니까. 우리들의 일이 위험하단 건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냉담히 말하는 카라마츠에,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팔로 감싸듯 끌어안는다.

 

[본심은~?]

 

카라마츠는 후핫, 하고 웃는다.

 

[형님에겐 못 당하겠군]

[형아를 얕보면 안 된다구요~]

[알겠다, 말하지]

 

카라마츠가 입을 살짝 삐죽이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치마츠는 미인이잖나]

[-, 그렇지. 쵸로마츠나 토도마츠랑 똑같이 예쁜 얼굴이지만, 뭔가 이치마츠는 고귀해 보인다고 할까, 섣불리 만졌다간 할퀼 것 같다고 할까. 조심하지 않으면 도리어 당할 것 같은 느낌? 그 점이 미스테리어스 해서 오히려 호감이 간단 말이지]

[그렇지?]

 

카라마츠는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늘 녀석에게 놀아나는 기분이다. 미인계까지는 아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나도 모르게 그만 눈길을 빼앗기고 만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몸짓마다 색기가 넘쳐흐른다.

예를 들자면, 내가 보는 앞에서 립스틱을 바른다고? 그 작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고, 부드러움을 강조하듯 입술을 살짝 눌려가며 바르는 그 모습을 보는 건 마치 고문과도 같다....]

[으하하.....아니, 묘사가 너무 세세하다고!! 그래서 뭐? , 평소에 그렇게 당하는 게 분해서 적진에 애인을 내팽개친 거야?]

[그런 게 아니다. 그저....남자란 정말 위험한 생물이란 걸 깨닫게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하면 좀 더 조심해서 행동하지 않겠나? 적어도 눈앞에서 립스틱을 바르지는 않겠지. 나는 지금까지 매우 참아왔다. 더 이상 못 참게 되기 전에 알려주고 싶다...]

 

오소마츠는 얼빠진 얼굴로 동생을 쳐다봤다. 뭐야, 그 동정티 팍팍 나는 이유는. 전반은 괜찮았는데, 후반에 뭐야. 그게 그렇게 자신해서 말할 일이야?

 

[너희들....아직 한번도 안 잤지..?]

[!? 어떻게 알았나!?]

[말하는 게 그럴 것 같아서]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오그라든 카라마츠의 등을, 오소마츠는 위로하듯 약하게 툭툭 쳤다.

 

[그 기분 이해한다고~? 미녀인만큼 손대기 힘들다는 거 말이야. 지금까지 나한테도 미인계로 접근한 여자들이 몇 있었지만, 반대로 허들이 너무 높아서 오히려 손대기 힘들더라고. 역시 나한테는 쵸로마츠밖에 없다니까~]

[그거 지금 자랑하는 건가?]

[응 맞아나의 쵸로짱은 그쪽의 미인씨와는 다르다구~. 얌전한 얼굴을 하고선, 눈빛 하나로 조직원놈을 제압한다던가. , 그때 너도 있었던가?]

[있었다. 박력이 엄청났지. 눈빛이 사나운 이치마츠라도 그런 박력은 못 낸다. 하마터면 나도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 때를 떠올린 두 사람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몇 년전, 오소마츠가 마츠노 조직의 우두머리 자리에 앉았을 때, 몇몇 조직원 놈들이 한동안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소마츠도 어느 정도 각옥했던 일이기도 했고, 일단 이 세계의 선배나 마찬가지인 그들에게 엄중히 주의를 주는 것도 거북했다. 그런 오소마츠의 생각이 무색하게도, 쵸로마츠는 단번에 이 일을 해결해버렸다. 기모노 옷자락을 들어올려 한쪽 다리를 정강이가 훤히 보일 정도로 드러내고선, 박력 넘치게 쾅! 하고 다다미를 밟으며. [너희들이 이 조직에 몸담고 있는 자라면, 선대의 신뢰와 조직의 장래를 짊어질 이 남자를 평생을 바쳐 따라라!!] 라고 늠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모습에 반항하던 이들 모두 그 자리에서 도게자를 했다. 오소마츠가 마츠노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인정받게 된 건 모두 쵸로마츠 덕분이었다. 그 이후, 조직원들에게 [누님] 이라 불리며, 존경과 두려움을 한몸에 받게 된 쵸로마츠는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지금은 익숙해져 평연하게 살고 있다.

 

[배짱이 그렇게나 두둑하면서, 조금만 애정표현해도 금방 얼굴이 빨개진다니까. 그게 또 너무 귀여워서 무심코 덮쳐버릴 것 같단 말이지. 난 나쁘지 않아! 귀여운 그 녀석이 나쁜 거지!]

[나도 형처럼 그렇게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만......]

 

카라마츠는 울상을 지으며, 오소마츠의 어깨를 마구 흔들며 말했다.

 

[이치마츠는 빈틈이 너무 많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어느날 갑자기 덮쳐버려도 [뭐야?] 라고 되물을 것 같단 말이다!! 어느 의미로 너무 무방비해서 손을 댈 수가 없어.....손을 댔다간 자제할 수 없을 것 같다...]

 

힘없이 툭 떨어진 손에 오소마츠는 또 다시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너도 고생이 많구나]

[가르쳐주겠나....형이라면 어쩔 건가?]

[, ?]

 

그렇네, 라며 오소마츠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평소에 하는 거라면....그냥 평범하게, 묻는 거?]

[물어?]

[오늘밤에 어때?라고]

[........무리다]

[너는 힘들겠지]

 

양자납득.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저기. 어쩌다 얘기가 이렇게 흘렀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치마츠가 무사히 돌아오는 거잖아. 소중한 이치마츠를 잠깐이라곤 해도 다른 사람한테 뺏기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너는 왜 그렇게 태평한 거야?]

 

그러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카라마츠가 얼굴을 들며 말했다.

 

[그건 말이지...]

 

 

 

 

 

 

마츠노 이치마츠는, 미나즈키회의 간부인 남자와 같이 있었다. 사전에 사진과 이름, 성격 등의 정보를 토도마츠에게 받아보니, 제일 캐내기 쉬워 보인다고 생각했던 사내였다.

 

[오늘 즐거웠어, 잇짱]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다시 꽉 고쳐쥐며 말한 남자는, 이치마츠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이치마츠는 입가를 올려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나도, 즐거웠어]

[그럼, 우리 집으로 갈까. , 걱정 마. 부인은 1년 전에 나가버려서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끌며, 눈이 멀 정도로 반짝이는 유흥가의 불빛에서 멀어져갔다.

 

이치마츠가 그 남자, 야마기시 도고와 접촉한 건 일주일 전이었다. 마츠노 조직 관할에 위치한 그의 단골 캬바클럽에 신입으로 취직해, 야마기시에게 접근했다. 원래 좀 미스테리어스한 여성이 취향이었던 듯해, 이치마츠를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일주일 내내 이치마츠를 지명했다. 오늘밤은 캬바클럽의 폐점 후, 서비스로 야마기시의 집에서 데이트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접촉하는 건 금지였다. 캬바클럽 뒤에 마츠노 조직이 있다는 걸 그도 알기에, 미나즈키회의 간부인 그가 룰을 깰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가 마츠노 조직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절대 이치마츠에게 손을 댈 리 없다.

 

야마기시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집이었다. 게다가 차는 고급차에 흠집 하나 없고, 마당 또한 잘 손질되어 있어 돈을 엄청 들였다는 게 눈에 보였다.

 

[, 어서 들어와. 맛있는 술이 있는데, 마실래?]

[......아까 가게에서 잔뜩 마셨고, 괜찮아]

[그런 말 말라고. 모처럼 집에서의 데이트잖아? 평소에는 못 해보던 걸 해보고 싶단 말이지~]

 

집에 들어서자마자 야마기시는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어쩔 수 없이 탁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치즈와 이런저런 안주가 담긴 접시와 함께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잇짱, 와줘서 고마워]

 

건배, 라고 작게 외치며 잔을 부딪치는 야마기시. 이치마츠도 잔을 받아 입에 댔다.

 

[......야마기시씨는, [뒷세계] 사람이라고 했던가? 총 같은 거 쏘고 그러는 거야?]

[갖고 있긴 해. 쓸 일은 그다지 없지만]

[그래?]

[. 실제로 배반이나 파벌 싸움 같은 건 그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거든. 그냥....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 있으면, -, 하고 쏘는 거지 뭐]

[후후, 무섭네]

[진짜라니까! 미나즈키회의 본가가 마츠노 조직이었다는 거 알아?]

[몰랐어-. 우리 클럽이 마츠노 조직의 관할이라는 건 알지만....그럼 야마기시씨는 친정아빠가 하는 가게에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달라]

[.....무슨 뜻이야?]

 

야마기시는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며, 이치마츠의 손을 잡았다.

 

[어느쪽인가 하면, 장인어른께, 따님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하러 가는 느낌...이랄까?]

[야마기시씨도 참~. 놀리지 말라구]

 

이치마츠는 슬쩍 손을 빼며 잔을 내밀었다.

 

[한잔 더, 안 할래? 야마기시씨한테 한잔 받고 싶은데]

[좋아~. 정말, 그런 귀여운 말을 잘도 하는구나]

 

기분이 좋아진 야마기시는 위스키를 이치마츠의 잔에 따랐다.

 

[야마기시씨, 최근에 -!한 적, 있어?]

[최근에는 없네~. 오히려 회사원 같이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거래라든가, 회의라든가 이래저래 바빠. 여기저기 팔고 있는 물건이 있는데, 그게 좀처럼 안 나가서 고생이야]

[흐응.....야마기시씨도 큰일이네]

[이해해 주는 거야?? 이제 진짜 진저리가 난다니까. 여기서만 하는 얘긴데, 나는 마츠노 조직토벌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단 말이야. 아니, 그건 아닌가? 세력이 넓어지면 그만큼 돈도 들어올 테니까. 그래도 일이 늘어나는 건 싫단 말이지]

[마츠노 조직...토벌...?]

[-, 말해버렸네, 바보라니깐 나도]

 

야마기시는 완전 술에 취한 모양이다. 완전히 풀린 얼굴로 히죽거리며 웃고 있다. 독한 술을 마신 건 이치마츠도 마찬가지였찌만, 야마기시 정도는 아니다.

 

[맞아맞아. 마츠노 조직을 무너뜨릴 생각이야. 그걸 위해서 약을 여기저기 팔아서,, 마츠노 조직의 구역을 어지럽히는 거야. 어차피 풋내기 꼬마들이 운영하는 조직이니, 이런 세계의 지식 같은 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판매하는 놈을 직접 죽여서 유통을 막으려 하다니.....멍청하기 짝이 없다니까]

 

킥킥 웃으며 말하는 야마기시에게 좀전까지의 상냥함은 보이지 않았다. 슬슬 물러날 때라고 생각한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즐거웠어, 야마기시씨. 또 가게에 들러줘]

 

제 할 말만 빠르게 내뱉은 이치마츠는 뒤돌아 나가려 했지만, 야마기시가 이치마츠의 어깨를 콱 붙잡는다.

 

[가지 말라구~? 오늘밤은 나한테 투자하는 게 어때? 돈이라면 줄테니까....]

 

잇짱. 하고 귓가에 속삭이는 녀석에, 이치마츠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 저기...야마기시씨. 이러면...]

[괜찮아, 괜찮아~. 마츠노 조직 같은 건 이제 안 무섭다고....어차피 무너질 조직이니까. , , , 나랑 좋은~짓 하자? 꽤 자신 있다고, .....]

 

그렇게 말하며 이치마츠의 허리를 끈적하게 쓰다듬는 야마기시. 손길에 움찔움찔 떠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야마기시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잇짱....잇짱.....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널 갖고 싶었어.....겨우, 겨우 여기까지 왔다구........, 정말 기뻐.....]

[, 이거 놔]

[~]

[그만.....그만하라고!!]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몸을 세게 튼 탓에 스륵, 하고 이치마츠가 입고 있던 원피스가 살짝 내려가면서 이치마츠의 등이 드러났다.

 

그 순간, 야마기시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소나무.....문신?]

 

이치마츠의 등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문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야마기시는 그 문신을 알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무시하고 깔봤던, 자신이 속한 조직의 본가의 문신이었다.

 

[-.....봐버렸네]

 

얼어붙은 야마기시에게서 벗어난 이치마츠는 무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미안, 봐버렸어]

 

챙그랑!!! 큰 파열음과 함께 유리창이 깨지며 무언가 뛰어 들어왔다. 야마기시가 놀라서 바라보자, 한 사내가 서있었다.

 

[, 보이지 말라고 했잖나, 이치마츠?]

 

눈을 번쩍이며 사내는 일본도를 꺼내들었다.

 

[.....그랬지. 그래서 기다렸어, 카라마츠]

 

이치마츠는 뺨을 붉히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야마기시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곤 외쳤다.

 

[, 거짓말......젠장, 네놈 마츠노 조직이구나?!!!!]

[마츠노 조직의 사제두, 마츠노 카라마츠다. 저승길 선물로 잘 기억해둬라]

 

그 말을 끝으로, 번쩍이는 칼날이 야마기시의 몸을 사선으로 갈랐다. 최후의 순간 야마기시의 눈에 비친 건,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새파란 잔상이었다.

 

 

 

 

왜 그렇게 태평한 거야? 라고 오소마츠가 물었을 때, 카라마츠는 이렇게 답했다.

 

필요 이상으로 이치마츠에게 손을 대려 하는 걸 용서할 리 없잖아? 아주 살짝이라도 옷이 벗겨지게 된다는 나는 녀석을 죽이러 갈 거다

 

[무섭네~......독점욕 제일 강한 건, 너잖아]

 

이치마츠를 감시하고 있던 부하의 연락을 받고 뛰쳐나간 카라마츠를 배웅하며, 오소마츠는 못 말리겠단 얼굴로 담배를 피웠다.

 

 

 

 

 

이윽고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집에 도착했다. 오소마츠를 포함해 형제 전원에게 성과를 보고하고, 본가의 여성에게 손을 댔다라는 죄목과 토벌을 꾀하려 했다란 혐의로 미나즈키회를 박살내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오소마츠를 죽이려한 인간에 대해 아는 놈이 있으면, 가차없이 심문할 것을 카라마츠에게 명했다. 이렇게 이치마츠의 첫 잠입수사는 막을 내렸다.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의 방은 장지문으로 칸막이가 쳐져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부부라서 그런 것 없이 한 이불에서 같이 잔다. 쵸로마츠는 그 때문에 고생도 하는 것 같지만, 그건 부부의 문제이무로 간섭은 불필요했다.

 

[이치마츠, 들어가겠다]

 

문을 열고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방에 들어선다. 이치마츠는 이불 위에 늘어져있다가 카라마츠를 보곤 벌떡 일어났다.

 

[카라마츠와의 약속, 깨버렸네]

 

이치마츠는 만족스러운 듯 환하게 웃었다.

 

[...일부러 그런 건가?]

[글쎄.....후후]

 

이치마츠는 즐거운 듯 웃었다.

약속이라함은, 옷이 벗겨지는 일이 없게 할 것...., 등에 있는 마츠노 조직의 소나무 문신을 상대에게 보인다면, 진심으로 화낼테니 조심하라고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일러두었다.

 

[진심으로 화내는 거, 보여줘 카라마츠]

 

이치마츠의 양손이 카라마츠의 목덜미를 감싸, 옴짝달싹 못하게 잡아둔다.

 

[카라마츠라면 혼나도 좋아]

 

그 말에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오비로 손을 내렸다.

 

[사정없이 화낼거다만?]

[각오하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강렬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 아침, 허리가 비명을 질러도 난 모른다-]

 

 

 

 

 

 

 




요즘 계속 일본어만 들여다봤더니

한국어가 안 되네요

문맥이 이상하더라도 자비롭게 넘겨주새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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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生産的完成品 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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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카라]지만 러브적 요소는 없습니다※

















이 날이 오기를 죽어라 기다렸던 건 아니다. 이 날이 오기를 죽어라 바랐던 건, 이미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거의 수십년만에 마주한 바깥세상은, 너무도 많이 변해있었다. 눈부시게 화려한 색색의 조명들에 눈이 시렸다. 겨우 수십년이라 여길 정도로 짧은 시간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고도 남을 20년이란 세월의 변화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너무도 커져버린 세계에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나는, 마음속의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아......]

 

무의미한 한숨을 내뱉고, 눈부신 세상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듯 고개를 떨궜다. 콘크리트의 색은 이전과 다름없음에 살짝 안심을 하며, 한 발, 조심스레 내딛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분명 이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분주하게 흘러갈 테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과거, 양손에 거머쥐었던 쾌감이 마음 시릴 정도로 작아져 갔다. 속아넘어간 일반인을 깔보는 즐거움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쾌감에 젖었던 그 흥분감도, 설렘에 두근거리던 교전도, 긴장도, 전부, 고개를 들 때마다 겁을 먹고 멀리 도망쳐 버린다. 기다려줄 사람도 없는데 어쩐지 버림받은 기분이다. 발걸음이 무겁다. 원인모를 소란스러움이 귀에 거슬린다. 이런 세상에도, 아직 과거의 동족들이 남아있을까. 있다고 한들, 식칼 하나로 협박을 하거나 하진 않겠지. 그런 녀석이 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무서운 일이다.

 

 

그리 많지 않은 작업 포상금으로 표를 끊어, 몇 정거장 앞의 신사로 향했다. 만일 붙잡혔을 때를 대비해 훔친 돈을 신사나 무덤가에 묻어두었다. 숲처럼 개발될지 모르는 장소를 피하다보니, 천벌을 받을 만한 장소밖에 남지 않았지만, 애초에 오컬트 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믿지도 않아 상관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한밤중에 그곳에 가는 건 꺼려졌지만.

 

시간상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목적지인 역에 내려 번화가를 벗어나 나뭇잎이 이리저리 흩어진 길로 나아갔다. 인적이 드문 신사의 신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 그 앞에 쭈그려 앉고서야, 삽을 사오는 걸 깜빡했음을 깨달았다. 맨손으로 땅을 만지자, 차갑고 촉촉한 흙의 감촉이 전해진다. 사람을 죽이던 손이, 그날과 다름없는 것을 만지고, 누르고, ―― 생각하기를 관뒀다.

 

예쁘고, 추억이 담긴 물건이 들어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것은 내게 있어 마치 타임캡슐과도 같았다.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뚜껑을 열자, 그럭저럭 돈이 들어있다.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린 자가 갖고 있던 돈. 그렇게 생각한 탓일까, 희미하게 희열이 돌아온다. 하지만 분명, 이런 칙칙한 희열은 이 눈부신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싸구려 지갑에 돈을 잔뜩 우겨넣고, 가방에도 적당히 넣어둔다. 삼분의 일 정도 꺼내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차가운 흙속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는 근처에 사람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한 뒤에야 신사를 벗어난다.

 

그 때, 잡히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 강도로서의 감각을 선명하게 갖고 있었을까. 흘러가는 시대에 적응해 변화하며, 그때의 그 희열과 쾌감이 퇴색되는 일 없이, 변함없이, 그대로, 나대로, 지내고 있었을까.

 

[..............오소마츠, , 치비타........였던가]

 

입에서 툭 튀어나온 건, 마지막으로 보았던 일반인들의 이름. 나이도 다 차지 않은 두 놈들 때문에 수십년이란 긴 세월을, 아니 그보다도 감각들을 전부 잃어버린 게 더 크다. 그 두 놈들 때문에, 그 두 놈들이 날 방해하지 않았다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분노인가, 증오인가, 아니면 살의인가. 강도로서의 기쁨을 앗아간 그들에게, 이제 와서 분노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들은, 지금 어쩌고 있을까.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아직, 두려움 가득한 얼굴을 보일까.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잃어버린 감각들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전차를 갈아타고 아카츠카로 돌아가니, 그곳은 예상외로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처음 맞닥뜨린 세상의 인상과 변화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탓에 그렇게 보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변함없는 거리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의지할 곳이 늘어난 것만 같아, 숨이 트였다. 그러면서도 작업도구나 마찬가지인 식칼을 사려하고 있으니, 역시 타고난 범죄자인 거겠지. 마음의 어두운 이면을 스쳐가는 부정의 말들을 애써 무시하고, 저렴한 서양 식칼을 구입했다. 감각을 억지로 되돌리려 애쓰는 모습에 어쩐지 서글퍼져, 무시하고 싶어졌다.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이 애용하던 녀석과는 다른 것도.

 

어느새 날이 저물어, 살짝 쌀쌀해졌다. 예전의 작업복이자 평상복인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한밤중에는 얼어죽을지도 모른다. 가게가 닫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해 옷가게에 들러, 옅은 갈색의 베스트와 검은색 머플러를 구입했다. 코트류는 부피가 커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구입한 것들을 입고 가게를 나오니, 하늘은 거의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 그럼 어디로 갈까..........]

 

새 것의 냄새가 풍기는 머플러에 얼굴을 묻고, 낮보다 사람의 왕래가 적어진 길을 걸었다. 혼자 살만한 집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고민이 됐다. 다시 하숙이라도 할까, 하고 중얼거렸지만 딱히 주소를 아는 것도 안내를 받는 것도 아니었기에 막막했다.

발길을 여섯 쌍둥이가 살던 집으로 돌리면서, 오소마츠라도 불러낼까 하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저건.....]

 

무심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시선 끝에, 오뎅, 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붉은색 노렝이 걸린 포장마차가 보였다. 손님은 한 명. 아담하고, 분주한 세상과 동떨어진 그 가게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 그는 분명 오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겨우 그 정도의 접점이었을 뿐이었는데도, 어째선지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천천히 한 발씩 나아갔다.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들려오는 점주의 목소리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앳된 목소리였다.

 

아아, 그다. 그가 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손님 한 명쯤 있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돌아가기를 기다리면 그만이고, 적당히 돌려보내는 것도 좋다. 그 정도는 내게 있어 손쉬운 일이었다.

손을 뻗으면 노렝에 닿을 거리까지 왔다. 두근거림이 흥분으로 바뀌었다. 나를 보고 새파랗게 질리거나, 속은 것에 분노하는 모습을 떠올린 탓이었다.

 

[오랜만이군, 치비타]

[, ..어서오세, ....]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띠며 가게로 들어가 이름을 불렀다. 수십년만에 보는 것임에도, 체격도 얼굴도 기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그리움을 넘어 희미하게, 하지만 점차 명확하게 살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에게 상냥한 미소를 건네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점점 돌아오는 온갖 감각들에 미소가 일그러질 것 같았다.

 

[당신, 어떻게 내 이름을......아니, 잠깐? 어디서 본 듯한......]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치비타에, 나는 가만히 선 채로 그가 나를 떠올리길 기다렸다.

그때의 일인칭은 보쿠였는데, 안 본 사이에 자잘한 부분이 바뀐 걸 보고 있으니 어쩐지 즐거웠다.

하지만 역시 가게의 점주이니만큼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 많겠지. 살짝 힌트라도 줄까. 표정을 살짝 풀고, 입을 열었다. 다른 손님이 돌아가기 전까지는, ‘이 녀석 본모습을 숨기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중간한 연기를 보이는 게 딱이다.

 

[수십년만이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수십년.......? 아니.............어이, 잠깐만.......]

[하하하, 기억났나?]

 

과거의 호탕한 웃음까지 더해 보이자, 치비타는 눈알이 빠질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자아, 새파랗게 질릴까, 아니면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 화를 낼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몰래 꿀꺽꿀꺽 기대감의 군침을 삼키자, 그와 동시에 치비타가 입을 열었다.

 

 

[, 토고씨 아닌가]

 

 

[............?]

 

 

 

하지만 들려온 건 치비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치비타의 열린 입은 움직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좀 더 낮고 온화한 어른의 목소리였다. 지금 제3자가 분명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다소의 놀라움이 담긴, 마치 친구의 친구를 만난 듯한 적의도 경계도 없는 목소리가, 옆에서.

 

[놀랐다고.......오랜만이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숨을 삼켰다.

 

살짝 술기운이 돈 듯한 녀석은, 머리에 아파 보일 정도로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얼마나 심한 부상을 입은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비스듬히 감긴 붕대는 오른쪽 눈을 가렸고, 더욱이 왼쪽 뺨에는 커다란 거즈가 붙어 있었다. 이렇게나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여섯 쌍둥이 중 한명이란 걸 단박에 알아챘다. 옛 얼굴이 아직 남아있다고는 해도, 잘도 알아챘다며 스스로도 감탄했다.

 

하지만 상처는 얼굴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잘 살펴보니, 삼각건으로 매달린 왼팔에도 손가락만 겨우 보일 정도로 붕대가 감겨있다. 안쪽에 목발이 세워져있는 것으로 보아, 보이지는 않지만 발도 성하진 않은 모양이다.

 

뭐지 이 녀석은. 입원중인 병원에서 탈출이라도 한 건가. 여섯 쌍둥이 중 누구인지 고민하는 것보다도, 그런 평범한 의문이 떠오르는 자신을 질책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 토고잖냐!! 너 이 자식 잘도 날 속였었겠다...!!!]

[치비타, 거기서 바주카를 쏘면 나도 맞으니 그만둬라]

[시꺼-!! 네가 피하라고, 카라마츠!!]

[대체 얼마나 화가 난 건가.....]

 

아니, 아니아니. 잠깐만, 치비타는 대체 뭘 꺼내들고 있는 거야. 다친 사람한테 네가 피하라고 하는 건 또 무슨 경우야.

 

[나의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벌이다!!!]

[, ]

[우앗]

 

뜨거운 오뎅이 날아들었다. 왜 뜨겁다는 걸 알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넣어둬라, 그것이 내 얼굴을 스쳐갔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저걸 피하다니, 나도 아직 쓸만하구나 하고 또 한번 스스로 감탄했다. 그보다, 어이 잠깐 치비타, 너는 대체 오뎅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거냐. 뒤에서 철컥하는 소리를 내며 서있는 녀석을 보자니, 겉모습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내용물은 상당히 바뀌었음을 알았다. , 적어도 전 강도범에게 맞설 정도로 굳세게 변한 모양이었다.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공격당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치비타, 이미 몇 년도 더 된 이야기잖나]

[그런 이유로 간단히 잊겠냐, 임마-!! 나는 지금 엄청 화가 났다고-!!]

[정말이지, , 이거 줄 테니까.....그보다, 토고씨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건가? 탈옥이라도 한 건가?]

 

아니, 탈출한 건 너겠지. 분명 치비타가 카라마츠라고 했었지. 카라마츠는 어째서 이렇게 침착한 걸까. 자신과 가족을 협박하고, 형제를 인질로 잡는 걸 가까이에서 봤을 터이다. 너무 충격적이라 오히려 침착해진 걸까. 어릴 적의 일이라곤 해도 트라우마가 될 법한 일이었다. 무섭지도 않은 건가, 아니면 요 수년간 위기관리 능력이 망가지기라도 한 건가. 게다가 방금 치비타한테 뭘 준 거야. 사탕이었지. 그것도 막대 사탕. 주머니에서 사탕이 나오다니, 평소에도 들고 다니는 거냐. 그걸로 얌전해지는 치비타도 치비타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지만, 일단 탈옥이 아님을 설명한다.

 

[........아니, 출소했다]

[, 너무 빠르지 않나?]

[, 그런 거지]

 

예상외의 전개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출소한 건 사실이다. 경찰에게 살인은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증거도 없었기에, 나는 절도죄 및 공갈죄, 유괴 미수 등의 죄목으로 잡혀들어갔다. 사람을 죽인 건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형기가 가벼워진다면야 그 정도 사실을 숨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보다 카라마츠, 너는 탈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침착했던 거냐. 대체 뭐냐, 너는.

 

[임마 토고! 오늘은 카라마츠 봐서 봐주는 거라고!! 다음번에 만났을 땐 죽을 줄 알라고!!]

[, 토고씨도 사탕 먹겠는가?]

 

제발. 제발 그만.

 

 

 

 

 

 

* * *

 

 

 

 

 

[그보다, 당신 옛날이랑 하나도 안 변했구만.........]

 

간만에 진귀한 손님이 왔다며, 비꼬듯이 치비타가 토고를 본다. 수십년도 더 된 기억이라 거의 희미했지만, 토고는 옛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했다. 특히나 저 눈매는 제 기억과 똑같았다. 체형이나 목소리는 살짝 달라졌지만, 카라마츠가 알아볼 정도라면, 틀림없이 그 토고가 맞겠지. 화냈다가 냉정해지자, 자신의 기억이 부정확했음을 자각했다.

 

[아니, 너희들이 너무 변한 거겠지....]

[그런가?]

[, 나도 어엿한 성인 남성이 되었으니 말이다....카라마츠 girls에게 어울리는 남자로]

[...........성인인가?]

[]

 

살짝 지쳐보이는 토고와는 달리, 카라마츠는 지금 이 상황이 꽤 즐거운 모양이다. 토고가 오기 전까지 축 쳐져있던 걸 생각하면, 자신을 속인 것쯤은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비타만으로는 카라마츠를 위로하기 힘들 정도로 다운되어 있었으니까. 멋을 부리는 모습이 살짝 재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미소를 띠는 카라마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고씨는 언제 출소한 건가?]

[...............오늘]

[그렇군! 그럼 출소를 축하해야겠군!]

[오늘은 치비타가 내게 마음껏 먹어도 좋다고 했거든! 그러니 이건 내가 쏘는 거다!]

 

라며 사방에 꽃을 뿌려대며 웃던 카라마츠는 자기 그릇에 담겨 있던 계란과 무를 토고의 그릇으로 옮겼다. 아니, 그보다 잠깐만.

 

[어이, 카라마츠!! 그건 너만 그렇다는 거라고...!!]

[치비타의 오뎅은 최고다! , 소힘줄도 맛있다!!]

[, 비행기 태우지 말라고, 임마아~! 치쿠와부도 줄까?]

 

카라마츠의 칭찬에 기분 좋아진 치비타는 토고의 그릇에 치쿠와부와 곤약 등을 멋대로 옮겨 담았다. 계속 교도소에 있었다면 이렇게 맛있는 건 못 먹었을 거라며 배부르게 먹고 가란 말과 함께 기쁘게 웃었다.

 

[토고씨, 안 먹을 건가? , 설마 이미 배가 부른 건가?]

 

카라마츠의 말을 들으며, 산더미처럼 쌓인 어묵 위에 다음으로 뭘 더 줄까하고 고민하던 찰나였다.

 

[너희들..........지금 나랑 장난하냐.........?!]

 

토고가 어깨를 떨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탁자에 둔 손을 꽉 쥐고, 목소리를 낮게 내리 깐 채로 입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카라마츠도 치비타도 입을 다물었다. 베일 정도로 날카롭게 노려보는 녀석의 눈은, 피곤함에 쩔어 있긴 해도 범죄자의 눈이었다. 치비타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걸 느꼈다.

 

[알고는 있는 거냐!! 나는!! 너희들을 협박했던 강도라고!!? 사람을 죽이고!! 돈을 훔친!!! 잊은 거냐?!! 네놈들은 경계심도 없는 거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소리로 외치는 토고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게 포장마차 불빛에 비쳐 제대로 보였다. 겹겹이 쌓인 오뎅의 산이 그 충격으로 무너진다. 이를 잔뜩 드러내고, 셋만의 세계를 뒤흔든다. 무서운 눈이다. 무서운 목소리다. 마치 사람을 죽일듯한 분위기를 뿜으며, 토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의 가족을 협박하고!! 형제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억지로 일을 돕게 하고!! 네 형제를 인질로 삼아 유괴하려던 사람이라고!!!]

 

, 큰일이다. 라고 치비타가 생각했을 땐 이미 늦었다.

 

[알고 있는 거냐, 카라마츠!!!! , ]

 

커다란 노성에 어울리지 않게 뒤따른 얼빠진 소리에는 놀람과 불안이 담겨있었다.

 

[.........그렇군, 미안하다 토고씨]

 

토고의 시선 끝에 보인 카라마츠의 눈에는 치비타 같은 두려움도, 토고 같은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평온하고 은은하게 외로운 듯이 흔들리는 세계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무섭지 않다. 경계를 할 정도로 토고씨가 무섭지 않다. 그런 옛날 일에 화를 낼 생각도 안 들고]

[, 하아?]

[, 아니면 설마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그렇다면............, .........아니, 내가 상대해줄, 테니까, ................, 형제한테는, , 대지..............]

 

더듬더듬 말하던 카라마츠는 결국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이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듯, 카라마츠의 안색이 안 좋다. 반사적으로 치비타는 카라마츠의 옆으로 달려가 말을 걸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토고는 내버려둔 채, 치비타는 카라마츠를 달랬다. 그 일이 있은 직후이니, 형제를 두둔하긴 역시 힘들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관두는 건, 나중의 카라마츠에게 후회가 될 뿐이었다. 그건 안 된다. 토고의 목적이 진짜 복수라고 할지라도, 아니, 그렇다면 더더욱 카라마츠를 괴롭게 둘 수는 없다. 조용히 입을 다문 채로 가슴을 문지르는 카라마츠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져주었다.

 

[카라마츠, 정신 차리라고]

[치비타............]

[...............제대로 말해둬]

[........., , ................]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 카라마츠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한 눈물이 가득했다.

 

[, 대지 마..........., ]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말을 끝마치자마자 둑이라도 터진 듯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저 정도로 크게 울면 머리에 울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일단 카라마츠 좋을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탁자에 엎어져 우는 모습을 보자니 죄책감이 살짝 들었지만, 빙글빙글 어지러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그것만으론 가라앉지 않는다. 초조함, 불신, 슬픔, 그것들을 전부 집어삼키고, 치비타는 토고에게 자리에 앉으라 손짓했다.

 

[미안해, 카라마츠도 일이 좀 있거든]

[.............대체 뭐냐고, 너희들.......]

[-, 그게, ............최근에 카라마츠, 형제들 손에 죽을 뻔했거든]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좋을지 고민하며 슬쩍 내뱉은 말에, 토고는 눈을 크게 떴다.

 

[.........?]

[녀석들 전부 니트거든. 이것들이 오뎅을 매일같이 외상으로 먹고 갚지를 않기에 카라마츠를 유괴해서 몸값으로 외상값을 받아내려고, 내가 꾀를 냈단 말이야]

[, 잠깐잠깐]

 

아직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토고가 말을 막는다. 아까까지 그렇게 화를 냈던 사람으론 보이지 않는 얼빠진 얼굴이다. 하긴, 그렇게나 장난꾸러기였던 녀석들이 전원 니트라고 하니 어이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치비타가 한 짓은 거의 토고가 했던 짓들과 비슷하고. 토고는 몸값을 요구하진 않았으니, 유괴의 건만 따지자면 치비타보다 토고의 죄가 가벼울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에 기둥을 세워 묶어뒀는데, 그게, 아무도 구하러 오질 않은 거야]

[아니, 잠깐만, 이해가 안 되는데]

[? 어디서부터?]

[전부]

[그럼 그냥 들어. 전화를 했는데, 흥미라곤 없는 녀석에, 심지어 기뻐하는 녀석까지 있었다고. 그러다 결국은 엄마가 가져온 배에 관심이 끌려선 다들 카라마츠를 잊어버린 거야]

[잠깐만............진짜 그 여섯 쌍둥이의 얘기인 거냐? 그거]

 

치비타의 말을 끊은 토고는 이미 이해력 한계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토고의 안에서 여섯 쌍둥이의 이미지는 사이좋고, 밝고, 여섯명이 하나란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아이들이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토고가 오소마츠를 유괴했을 때, 바로 경찰이 오지 않았다. 오소마츠가 다칠까 염려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소마츠도 가족을 걱정해 혼자 떠안았다. 평소에는 개구쟁이지만, 형제들이 위험할 때는 총명하고 듬직해지는 녀석이었다. 그럴 터였다.

 

[, 그래서 장난이라 생각하고 무시한 건가 해서, 이번에는 카라마츠를 녀석들 집앞으로 끌고가서 화형을 시켰거든]

[너는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아니, 카라마츠가 진짜 없어지면 얼마나 슬플지를 알려주려고..........]

[...........................-, 됐어 계속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이 현대의 유괴나 협박이란 말인가.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해도 별수 없을 정도로, 토고에게 있어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토고는 이미 한계였다.

 

[.....-, 그래서, 이 녀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면 구하러 나오라고 했더니, ........그랬더니 말이야, 녀석들 2층에서 카라마츠한테 둔기를, 던졌다고.........]

[...................?]

[방망이나, 후라이팬, .......맷돌, 까지.......]

 

점점 말을 흐리는 치비타를 토고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쩐지 기분이 찝찝하고 거북해진 치비타가 시선을 피하자, 그 옆에 있던 카라마츠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잠들어 있다. 울다 지쳐버린 거겠지. 머리에 감긴 붕대의 한 쪽이 느슨해져 밑으로 내려와 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라서 말이야...]

[카라마츠한테 던진 거냐, 진짜?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고?]

[.................]

[오소마츠는!? 그 녀석도!?]

[..........누가 뭘 던졌는지까지 다 기억하진 못 한다고...]

 

괴로운 표정으로 말하는 치비타에, 토고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토고의 세계가, 변하지 않았다며 안심했던 세계가, 숨이 탁 트여 편안했던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무의식적으로 그 세계의 축이 되어있던 여섯 쌍둥이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원동력이 된 여섯 쌍둥이가, 너무도 변해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변했다고 단언할 정도로, 토고는 그들의 어린 시절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과정을 하나도 몰랐다. 이 세계의 주민이라 부르기에 토고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무지했다.

 

[카라마츠 녀석, 늘 연기하듯이 멋진 말을 해댔거든. 뭐라더라, 괴롭힘 당하는 캐릭?? 같은.........]

[..................]

[아니, 도가 지나치다는 건 알지만 말이야...........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냐고 물어도 이 녀석 전혀 말해주질 않고...........결국 그것 때문이 이렇게 된 거라고!!]

[...................]

[사실은 말이야! 녀석들도 카라마츠를 좋아한다고!! , 연기 잘 못하니까...카라마츠처럼 자연스럽지 못하니까, ...........내가 벌인 일이니까, 그래서 장난이라 생각해서...............]

[......................................]

 

마치 무언가에 용서를 구하듯 두서없이 말하는 치비타. 그에게 있어서도 이번 일은 너무 커서, 아직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정리가 안 된 듯했다. 무심코 그 자리에서 혼자 도망쳐 버리기까지 했으니, 이미 치비타도 한계일 터였다. 당황한 상태로 구급차를 부른 탓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겠지. 집에 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다음날 부랴부랴 병원으로 뛰어간 건 기억하고 있지만. 사고라고 우기는 카라마츠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도, 의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어떻게 둘러댔는지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고, 카라마츠에게 부탁한 옷을 챙겨 병원에 간 건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치비타도 한계였다.

 

[............뭐어, 외상값을 내지 않은 녀석들도 나쁘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나도 녀석한테 크게 잘못했, ............]

[.................]

[, 토고..........?]

[?]

[, 아니, ..............미안...]

[.......................]

 

차가운 밤공기가 세명의 세계를 감싼다. 들리는 소리라곤 탁자에 엎어진 이의 들릴락 말락한 숨소리뿐이라, 침묵이 세계를 점점 빠르게 침식해간다. 분위기 때문인가 날씨 때문인가 모를 추위에 몸을 떨며 치비타는 현실도피를 하려는 듯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아무리 성인 남성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처로 혼자 집에 돌려보내기엔 불안하다. 막 잠에서 깨어, 몸까지 이렇게 식어서야 분명 감기에 걸리고 말 것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긴 껄끄러울테니, 자기 집에 데려가 재우려, 치비타가 카라마츠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던 순간이었다.

 

 

 

[치비타, 손 들어]

 

토고는 치비타에게 가방에서 꺼낸 식칼을 겨눴다. 아직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새 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소리 없이 치비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 ?]

[말해두겠는데, 이건 진짜 칼이고, 농담도 아니니까]

 

너무도 갑작스런 전개에 치비타의 사고가 정지했다. 눈앞에까지 들이닥친 칼날과, 코앞까지 다가온 토고의 얼굴. 자신과는 명백히 다른 범죄자의 눈을 한 토고에, 치비타는 전에 없던 공포를 느꼈다.

 

언뜻 토고가 무언가 하는 게 보이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잔뜩 풀이 죽어 있는 그가, 갑자기 이런 일을 저지를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까. 아니,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

 

[, 토고...........?]

[시끄럽게 굴면 죽인다. 손 들어]

 

땅을 기듯이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치비타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미 본능이 몸을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땀이 멈추질 않는다. 시야가 기분 나쁠 정도의 채도로 뒤덮여 간다. 협박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 시끄럽게 굴 여유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칼날은 눈앞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고, 토고는 그야말로 코앞까지 다가와있다.

 

그 순간, 칼날이 카라마츠의 목덜미로 향했다.

 

[, 카랏]

[그대로 움직이지 마.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카라마츠의 목숨은 끝이니까]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는 토고에, 이제 치비타는 답을 할 수 조차 없었다.

 

[어이, 일어나라 카라마츠]

[............, ...........?]

[일어나라고]

 

탁자에 엎어진 카라마츠의 귓가에 대고 큰소리로 불러 깨운다. 술을 마셨다고는 해도 얼마 마시지 않았기에, 카라마츠는 금방 일어났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치비타에게 있어 불행일 수밖에 없었다.

 

[..........토고, ?]

[깼냐. 깼으면 일어나]

[, ?]

[네가 그랬지. 복수할 거라면 자기한테 하라고]

 

아직 몽롱한 카라마츠의 눈에는 사각지대라 식칼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인자이자 강도인 토고의 무시무시한 표정만이 보일 뿐이었다. 살짝 당황은 한 듯했지만 공포는 담겨 있지 않은 푸른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에 취해있던 눈은 이젠 거의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형제에게는 손을 대지 말라고 그랬지]

 

이젠 완전히 잠에서 깬 카라마츠가 잠시 침묵하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아, 그랬지]

[나는 원래 치비타와 오소마츠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곳에 온 거거든. 이 두놈 때문에 잡힌 거니까]

[.......모처럼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고 싶은 건가?]

[닥쳐. 나한테 그 수십년이 얼마나 큰 건지 네놈은 모르잖냐]

 

칼날이 카라마츠의 목에 닿고서야 카라마츠는 그 존재를 알아챈다. 이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자신의 생사가 걸려있다. 그 때와 같은 식칼을 든 토고가 이번에는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

 

뭐어,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은 얘기지만.

 

[지금 여기서 치비타를 첫 희생자로 만드는 건 간단한 일이야. 치비타를 죽이고 싶지 않다면, 내 말대로 따라. 네가 치비타와 오소마츠의 대신이 된다면, 다시는 둘을 노리지 않겠다. 내 말 알겠냐?]

[..........알았어. 그렇게 하지]

[카라마츠!!]

[일어서]

 

다시는, 이라는 건 또 잡혀들어가더라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오늘처럼 우연히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마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다. 혼자 있을 때 마주한다면 끔찍한 전개가 될 것이다.

카라마츠는 토고의 말에 승낙하곤 그의 말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한 손으로 목발을 쥐었다. 포장마차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어둠에 선 카라마츠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치비타, 여기로 택시를 불러. 잔꾀는 부리지 말라고]

[...........토고, 카라마츠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다간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죽이진 않을테니 부르기나 해]

 

카라마츠한테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치비타는 전화번호부를 꺼내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코웃음으로 받아친다. 짜증난다.

전화가 연결되고, 여전히 카라마츠를 응시한 채 상대방에게 주소를 불러준다. 혀를 씹을 것만 같다.

 

[고마워. 난 괜찮다, 치비타]

[너는 앉아있어]

[]

[보고만 있어도 아프다고. 얌전히 기다려]

 

자신이 했던 모든 생각과 말을 철회하게 만든 그 한마디에는 분명하게 카라마츠를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에 치비타는 어떠한 가설을 세웠다. 이건 어쩌면 토고의 연기인 게 아닐까. 형제들에게 너무도 모진 취급을 받는 카라마츠를 위해, 과거에 가해자였다는 점을 이용해 신빙성을 살려 형제들을 움직이게 만들 작전인 건 아닐까, 하고.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치비타는 전화 너머의 낯선 상대의 질문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상처가 다 나으면 내 일을 좀 도와줘야겠다]

[뭘 도우면 되는 건가?]

[시체를 처리하는 거다. 먹으라곤 안 해]

 

아니, 역시 기분 탓인 듯하다. 시체를 처리하라니 뭐야. 해체해서 바다에라도 버리는 건가. 아니면 산에다 묻으려는 걸까. 전화를 끊고 둘을 보았다. 언뜻 봐선 마치 부상자와 그 보호자 같다. 식칼은 이미 가방에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10분 후면 택시 올 거야]

[그래]

 

토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로 있고, 카라마츠는 그 오른쪽에 앉아있다. 치비타는 그 왼쪽에 앉아 택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차없이 쳐들어오는 침묵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뭐라 할 말도 딱히 없을뿐더러,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기, 토고씨]

[?]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

[대놓고 물어보는 거냐]

 

카라마츠는 치비타의 걱정과 망설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곧 살인범에게 유괴당할 처지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아니, 알고서 저러는 거라면 더 무섭다. 오컬트를 넘어서 사이코패스라니 감당이 안 된다고.

 

[그걸 알아서 어쩌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거라면, 그 마음의 준비라는 걸 해야 되지 않겠나...]

[돌아올지 어쩔지는 네 하기 나름이라고]

[흐음...............]

[.......토고, 진심이냐. 갑자기 표정까지 바꾸고 그렇게 말하다니.........]

[농담이라고 생각할거면 그러라고]

[그럼 치비타, 브라더들에게는 잘 말해주겠나. 이 마츠노가 차남, 마츠노 카라마츠. 사랑하는 브라더들의 가디언이 되어, 잠시 악마의 속삭임을 따르기로 했다고.......]

[누가 악마라는 거냐]

 

카라마츠는 평소와 같았다. 토고도 아까와는 달리 살의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광경 속에서, 단 한 사람, 변하지 않은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너무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토고와 얘기하는 그에 연기를 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토고가 한 말이 그 가능성을 낮게 만든다. 연기라고 한다면, 본심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까. 아니, 그건 숨기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뭔가 작전이라도 있는 걸까. 부탁이니,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토고]

[하아.........이번엔 또 뭐야]

[처음엔 우릴 죽일 생각이었던 거냐?]

[그래]

[.................정말로?]

 

재차 확인하려는 듯 거듭 묻자, 토고는 잠자코 치비타를 내려다봤다. 노려보는 것도, 무언가를 탐지하는 것도 아닌, 그냥 치켜올라간 눈으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다 토고는 슬쩍 자신의 오른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바닥을 위로한 채, 무언가 커다란 것을 지탱하듯이, 그러면서도 그것에 매달리듯이. 하지만 치비타는 그걸 보는 토고의 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

[.........그런가]

[하지만, 이제..........너로서는 의미가 없거든]

[?]

[택시 왔네. 카라마츠, 가자]

[, 잠깐!! 토고!!]

 

끝에 툭 내던진 중얼거림에는 마치 체념한 듯한 묘한 느낌이 들어, 치비타는 무심코 토고에게 달려들었지만 토고는 이를 무시했다. 택시 기사와 뭔가 말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치비타가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강경하게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그저 반보 뒤에서 잠자코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치비타]

[.......카라마츠........]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목발로 지탱하고 선 카라마츠가 있었다. 희미하게 역광이 되어, 치비타에게 카라마츠의 그림자가 졌다. 미소를 띠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 미소에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아,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것이 분해서, 치비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마라. 전언, 부탁한다]

[......., 그런 거지 같은 말 전해줄까 보냐. 네가 없어지고 녀석들도 따끔한 맛을 한번 봐야하지 않겠냐]

[그건 곤란하다고, 치비타]

[녀석들은 곤란해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토고가 다급한 목소리로 카라마츠를 불렀다. 치비타는 그 자리에 박혀 움직이지 못했다. 카라마츠는 치비타에게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토고에게 다가갔다. 가버린다. 카라마츠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토고와 함께.

가버린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카라마츠]

 

치비타의 손이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잡았다.

 

[치비타?]

[.................가지 마, 카라마츠]

[...............]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오소마츠도, 토고 따위한테 당할 놈이 아니..........]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아플 정도로, 푸른색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제 쪽으로 당긴다. 그럼에도 카라마츠는 미동도 없다. 그건 치비타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게 두려워서, 치비타는 고개를 떨궜다. 붕대가 감긴 발이 눈에 밟혀서, 평범해 빠진 그 신발이 눈에 밟혀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치비타, 양손은 내보지 않겠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위를 보자, 카라마츠는 오른손에 뭔가를 쥔 채 내밀고 있었다. 목발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탓에 자세가 불안정하다. 위험한 걸, 하고 치비타는 멍하니 양손을 카라마츠 오른손 쪽으로 내밀었다. 치비타의 손에서 빠져나온 옷자락이 구깃구깃하다.

 

[이걸 주지. 내가 네게 주는 마음이다. 받아주겠나]

 

오른손을 펼쳐 치비타의 양손에 떨군 것은, 아까 받았던 것과 같은 막대 사탕이었다. 밀크맛인지 하얀색 사탕이었다.

 

[그럼 잘 지내라, 치비타]

 

그 말을 끝으로 카라마츠는 택시에 올라탔다. 사탕이 양손 가득 자리하고 있어, 떠나가는 카라마츠에게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치비타는 그저 멀어져가는 카라마츠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슬로모션으로 흘러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치비타가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어둠속에 치비타 혼자 서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듯한 침묵에 휩싸여, 치비타는 누군가 있었다는 자취를 양손에 꼭 쥔 채로 눈물을 흘렸다.

 









오/의역 많습니다

문학적인 표현(?)이 몇 있어서 애를 먹었네요ㅠ


사실 토고 말투도 갈수록 뭔지 모르겠습니다..ㅎ





-


일단 이번 업로드는 이걸로 끝인데요

지금 식자 작업을 할 생각인데

제가 피곤함에 때려치지 않는다면

올리고 자겠습니다


....기다리진 마세요.....

올린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눈이 너무 아파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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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혼에 안녕을 2

 

 

 

 

 

 

카라마츠가 청년을 상당히 의존하게 됐을 무렵.

 

[저기, 카라마츠형! 카라마츠형!!! 어디 가는 거야?! 무시하지 말라고!!]

 

토도마츠는 핸드폰을 탁자에 거칠게 내려놓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나가, 밖으로 나가려는 카라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아아, 토도마츠인가. 왜 그러나]

[왜 그러냐니....뭐야, 내 말 못 들은 거야? 오랜만에 낚시하러 가자고 했잖아. 그게, 요즘 카라마츠형이랑 같이 놀지를 못 했으니까-..]

[....나는 됐다]

 

토도마츠의 말을 잘라먹으며 답한 카라마츠는 붙잡힌 팔을 뿌리쳤다.

최근 카라마츠의 상태가 이상하다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한 건 처음보는지라 토도마츠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안하다, 토도마츠.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카라마츠 보이가 있거든. 나는, 나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에게 가고 싶다]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어딘가 공허한 눈으로 토도마츠를 향해 옅게 따스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돌아 집을 나가버렸다.

 

[, 저기, 잠깐-]

 

그를 붙잡으려 뻗은 손은 허공에 멈춰서고. 토도마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의 그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파트너이자 귀여운 동생인 토도마츠의 약속을 우선시했을 터였다. 형제 랭킹을 매기려 하면, 1위가 되려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비위를 맞추고, 싸움에 휘말리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그게 마츠노 카라마츠라는 사람인데.

 

[......거짓, . 어째서...카라마츠 보이라니 뭐야.........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톳티! 왜 그래애? 설마, 응가 지렸어!?]

[.......그런 거 아니야, 쥬시마츠형. 미안, 지금은 좀 혼자 있고 싶어..]

 

토도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비틀비틀 2층으로 사라졌다.

 

 

 

 

* * *

 

 

 

 

한편, 카라마츠는 청년에게 줄 액세서리를 고르고 있었다. 자신과 얼굴이 닮았으니까, 분명 멋진 액세서리가 잘 어울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카라마츠는 은색의 해골마크가 붙은 팔찌를 2개 구입했다.

좀 비쌌지만, 용돈을 받은 직후였고, 최근에는 그다지 놀러다니지도 않은 탓에 백수치고 돈이 꽤 있었다.

 

카라마츠는 다른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잘 살피고, 가방에서 깃털을 꺼냈다. 이 깃털이 현세와 그 공간을 이어주는 열쇠다.

 

텐구의 칠흑 같은 깃털이 이계로 이어지는 열쇠라니, 이 얼마나 간지나는 아이템인가!

하고, 잠시 황홀감에 잠겨있던 카라마츠는 평소대로 신사에 깃털을 꽂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 카라마츠와 신사를 둘러쌌다. 누가 보면 그가 흑마술이라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주변이 안개에 휩싸이더니 갑자기 어두워지고, 거친 바람이 불어왔다. 의식을 잠시 잃었다 눈을 뜨면, 눈앞에는 낯익은 신사와 무덤이 보였다.

카라마츠의 방문을 알아챈 청년이 상냥한 미소로 가까이 다가왔다.

 

[또 와주셨군요]

[물론이지. 오늘은 선물도 있다]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화과자를 꺼냈다. 옅은 푸른색이 아름다운 화과자와 함께 양갱도 들어있다. 청년은 호오, 하고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현세의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네요]

[그렇지? 마음에 들면, 또 사오겠다]

 

카라마츠는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둘은 돌계단에 앉아 화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카라마츠가 일방적으로 떠들고, 그걸 즐겁다는 듯 청년이 들었다.

결코 카라마츠의 말을 비웃거나 끊어먹지 않았다. 그게 카라마츠에게 있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 누가 알겠는가.

 

[......저기, 한 가지....아니, 두 가지만 물어봐도 되는가?]

[, 뭐든지]

[으음, 그럼....., 저기....형씨는, 내가 좋은가? , 아니 이상한 의미로 묻는 건 아니다! 그게, 난 모두에게 미움을 받으니까......형씨는 어떤가 해서...]

 

카라마츠의 절실한 질문에 청년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괜찮습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 정말인가!? 형씨는 역시 카라마츠 보이였군!]

 

청년의 대답에 카라마츠는 뛸 듯이 기뻤다. 원래 카라마츠는 승인욕구가 남달랐는데, 그의 성격 탓인지 다들 농담으로 여기거나 비웃으며 표현해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사실은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

 

[카라마츠 보이, 라는 건?]

[아아, 미안하군. 카라마츠 보이란 건 이 카라마츠를 좋아하는 맨...아니, 남성을 말한다. 참고로 카라마츠 걸이란, 카라마츠를 좋아하는 여성을 뜻하지!]

[그렇습니까. 당신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인기가 있군요]

 

청년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먼 산을 바라보며 이마에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기 바빴다.

 

[, 아니...카라마츠 보이는 형씨가 처음이다. 걸즈도 아직 없고......아무래도 카라마츠 보이들도 걸들도 샤이...아니 부끄럼쟁이인 모양이군......]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초대 카라마츠 보이가 되겠습니다]

 

청년이 시원스런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카라마츠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도 그럴게, 그리도 염원하던 카라마츠 보이였으니까.

 

[..........!! , 기쁘다...! , 그럼! 이거!! 카라마츠 보이에게 주는 기념 프레젠트, 아니 선물이다!!]

 

카라마츠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해골 팔찌를 두 개 꺼내 청년에게 주었다. 아무래도 청년은 처음 보는 물건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촉루[각주:1]입니까]

[촉루....? 으음, 이건 해골이다! 멋지지? 이렇게 하는 거다]

 

카라마츠는 자기 손목에 팔찌를 끼곤 그것을 자랑스럽게 보였다.

 

[헤에....이걸 제게 주는 겁니까]

[그럼! 카라마츠 보이라는 증표다!]

 

카라마츠는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순진한 모습에 청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카라마츠와 똑같이 팔찌를 착용했다.

짙은 푸른색의 유카타에 어울리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청년은 옆모습은 어딘가 기뻐보였다.

 

[, 또 하나 물어봐도 되겠는가?]

[, 괜찮습니다]

[형씨의 이름은 뭔가? 계속 형씨라고 부르는 것도 좀 그렇잖나]

 

카라마츠의 질문에 청년은 눈언저리를 살짝 움찔하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잠시 침묵한 청년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사실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쭉 혼자였으니까, 필요가 없어서..]

 

그 말을 들은 카라마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름이 없다니,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왜 버린 건지 궁금했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한두가지는 있을 테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동정할 거라면 제게 이름을 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내가...이름을?]

[. 어차피 내 이름을 부를 사람은 당신뿐이니, 당신이 붙여주는 게 낫겠죠]

 

그 말에 카라마츠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모처럼 생긴 카라마츠 보이의 부탁이다. 이렇게 된 거, 센스와 재각(재주와 지각)이 넘치는 멋진 이름을 지어주자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지붕 위에 올라가 태양을 쬐고 있을 때면 늘 멋진 단어들이 잔뜩 떠올랐었는데.

 

[죄송합니다,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군요. 역시 이름 같은 건 필요없-]

[, 잠깐, 웨이트! 잠깐, 잠깐만! ......., 그래! ......훗훗, 나라는 사람이 이런 미스테이크를! 형씨는 카라마츠 보이지. 그러니 내 이름에서 따오면 되지 않나! 으음...카라.....카라()는 어떤가]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 바닥에 라고 썼다. 그리곤 의기양양한 얼굴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청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놀란 얼굴을 보였다. 그의 크게 뜨인 눈에 옅게 물기가 차올랐다.

 

[, ]

[...카라. , 좋은 이름이군요. 감사합니다]

 

카라마츠가 말을 걸려 입을 열자, 청년은 평소대로 돌아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 *

 

 

 

 

그날, 웬일로 일찍 귀가한 카라마츠는 2층이 소란스러운 걸 느꼈다.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 방문을 빼꼼 열어 안을 살폈다.

 

[이치마츠, 그 고양이 어디서 주워온 거야]

[......몰라 아마 공원앞]

 

이치마츠의 무릎 위에 붕대가 감긴 검은 고양이가 둥글게 몸을 말고 앉아 있다. 아무래도 다친 고양이를 이치마츠가 주워와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뭐야 모른다니]

[....녀석을 발견하자마자 급하게 주워서 집까지 뛰어왔으니까 그런 걸 기억하고 있을 리 없잖아]

 

쵸로마츠는 어이없다는 듯 이치마츠를 보았다. 쥬시마츠가 고양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 이치마츠, 이 녀석 꼬리 좀 이상하지 않아? 다른 고양이들은 다 꼬리가 하나잖아? 근데 이 녀석은 뭔가 꼬리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소마츠가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흥미라곤 조금도 없는 말투와 표정으로 고양이의 꼬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소마츠의 말대로 고양이의 꼬리는 두 개였다.

 

[원래는 하나지. ..., 아마 기형으로 태어난 거겠지. 그래서 다른 고양이들 무리에 끼지 못한 거 아닐까]

[~, 불쌍하네~. 꼬리가 한 개든 두 개든 상관없잖아]

 

이치마츠는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토도마츠가 핸드폰을 보며 영혼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다들 그를 노려보았다.

 

[....나왔다, 드라이 몬스터. , 진짜 자기 이외의 생물에는 흥미라곤 없구나]

[꼬리가 두 개라는 건 인간으로 치자면 엉덩이가 두 개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우엑, 기분 나빠~. .....그럼 자X도 두 개인가?]

 

오소마츠가 그렇게 말하며 고양이를 들어올리려 하자, 이치마츠가 그 손을 쳐냈다. 그 때, 카라마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 다녀왔다]

 

우물쭈물하며 들어가자, 화기애애했던 방의 분위기가 갑자기 확 식는다. 마치 타인이 갑자기 무리에 끼어든 듯한 분위기에 카라마츠는 안절부절못했다.

 

[...저기, , 이치마츠. 고양이....데려온 건가? 큐트하군]

 

카라마츠가 고양이에게 손대려 하자, 이치마츠가 그 손을 찰싹 쳐냈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얌전했던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들고 카라마츠를 향해 하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 ..., 미안......]

[....왜 갑자기 위협을....어이, 쿠소마츠 너 이 녀석한테 무슨 짓한 거 아냐?]

[, 갑자기 왜 위협하는 거? 방금까진 아무런 반응도 않더니만]

 

이치마츠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카라마츠를 쏘아보고, 오소마츠는 히죽거리며 카라마츠를 보았다. 쥬시마츠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채로 뭔가 생각에 잠긴 듯햇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카라마츠형, 이상한 냄새 나]

[, 냄새?? 별로 아무런 냄새도...]

 

쥬시마츠의 말에 카라마츠는 자신의 옷을 끌어올려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그에겐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형제한테 차가운 시선을 받은 카라마츠는 도무지 이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고양이가 카라마츠형을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고양이가 나을 때까지 밑에서 자. 괜찮지? 어차피 늦게 들어오니까]

 

토도마츠가 말을 꺼내자, 다들 찬성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불쌍하다, 늘 늦게 들어오니까 고양이를 깨우면 민폐다, 라며 입을 모아 말하는 그들을 보며 카라마츠는 눈물을 글썽였다.

토도마츠는 뇌리에는 오늘 아침 카라마츠가 자신을 무시했던 광경이 떠올랐다. 엄청 상처를 받은 탓에, 이 정도의 복수는 괜찮을 거라며 카라마츠의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게다가 카라마츠형, 우리보다 친구들이 더 좋잖아? 그럴거면 그냥 들어오지 말지 그래. 뭐랬더라,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고 싶다”...라고 했던가?]

[, 그건......너희들이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토도마츠는 핸드폰을 소파에 내려놓고 일어나 자기 이불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카라마츠에게 흥미라곤 없다는 듯한 무심한 시선을 보냈다.

 

[갑자기, 날 좋아하는가, 라든가 뭔가 지켜보는 것 같다는 둥, 그런 실없는 소리나 해대는데 진지하게 들어주는 게 이상하지 않아? 아무리 나라도 그건 힘들다고~. ....그럼, 난 이제 잘테니까 빨리 불 꺼, 오소마츠형]

[...2병도 적당히 하라고, 카라마츠]

[카라마츠형, 냄새!]

[얼른 밑으로 꺼지라고, 쿠소마츠. 꺼져, 쿠소마츠]

[-. 막내 화났잖아~. 됐어, 카라마츠군은 밑에서 자는 걸로]

 

토도마츠, 쵸로마츠, 쥬시마츠, 이치마츠, 오소마츠가 차례로 한마디씩 하며 이불로 들어갔다. 그리곤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는 카라마츠에 아랑곳 않고 방의 불이 꺼버린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객실로 들어가 이불을 편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이를 꽉 물어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주륵주륵 흘러 이불을 축축하게 적셨다.

 

[.......역시 나는 글렀다. 필요 없다, 필요 없는 존재다. 이곳에 더는 내가 있을 자리가 없어..]

 

카라마츠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필요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건 마치 저주의 말처럼 뇌에 짙게 깔리며 퍼져나갔다. 깊고 깊은 어둠속으로 떨어지는 듯한, 검은 감정이 카라마츠의 투명한 마음을 지배해 갔다.

 

카라마츠 잠든 후, 딸랑, 하는 아름다운 방울 소리가 울리며 갑자기 카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라마츠의 옆에 앉아 잠시 그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 카라는 눈을 살짝 감고는 다시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 * *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카라마츠는 카라에게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찾아갔다. 때때로는 형제들에게 도망치고 싶어, 갖은 이유를 붙여가며 오랜 시간 있기도 했다.

하지만, 카라는 이유를 캐묻지 않고 잠자코 옆에 있어 주었다. 그것이 점점 카라마츠를 늪으로 끌어당겼다.

 

[.......네가 내 형제였다면 좋았을텐데]

 

어느날 무심코 카라마츠가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카라는 카라마츠 몰래 입가를 슬쩍 올리며 답했다.

 

[.......그럼 계속 이곳에 있겠는가. 카라마츠, 그대는 내 모습을 보고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건가]

[......]

 

카라는 그렇게 말하며 카라마츠 앞에 섰다. 말투가 갑자기 바뀌고, 어딘지 모르게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카라마츠는 당황했다.

 

[그대라면, 내 본모습을 보여도 좋다]

 

카라는 그렇게 말하곤 씨익 웃으며 한 손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카라마츠에게 받은 팔찌가 치링, 소리를 냈다.

그 순간, 까마귀가 어디선가 날아와 카라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날았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카라마츠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카라는 태연한 표정으로 이번에는 커다란 부채를 꺼내들어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주면이 순식간에 안개에 휩싸였다.

 

이윽고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짙은 푸른색의 수도승 복장에 높은 왜나막신을 신고, 칠흑과도 같은 커다란 날개와 텐구의 가면을 쓴 카라가 눈앞에 서있었다. 딸랑, 하고 방울소리가 울렸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신성함과 불길함이 동시에 전해져, 카라마츠는 무심코 숨을 죽였다.

 

[, ......, 카라...인가..?]

[......그래, 내가 카라다. 그리고, 예부터 이 신사에 모셔진 카라스텐구이기도 하지]

 

그 때, 처음으로 카라마츠는 그가 정말 카라스텐구라는 것과, 그것이 요괴라는 걸 깊이 깨달았다. 본모습. 칠흑의 날개를 크게 펼친 그 모습을 보고, “어느날노을이 지던 하늘에서 보았던 것이 카라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설마, 그 선량하고 다정하던 그가 카라스텐구 그 자체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카라마츠는 입을 뻐끔거리기만 했다.

 

[왜 그러나. 말도 나오지 않는가]

 

카라의 머릿속에 자신을 잔혹하게 괴롭히던 인간들이 떠올랐다.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며 돌을 던졌다. 그것은 아프지도, 심지어 가렵지도 않았지만 가슴 한구석은 계속해서 기분 나쁘게 욱신거렸다. 인간이란 족속들은 저들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고 배척한다. 그들과 똑같이 살아 숨쉬고, 같은 땅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역시, 너도 내가 무서운-]

[, 굉장하다!! 멋있군, 카라!!]

 

카라가 포기하고 입을 연 순간, 카라마츠가 감탄하며 외쳤다.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며, 그 안에 순수한 동경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에, 하고 얼빠진 소리를 높인 카라였다.

 

[무섭지, 않은가.....?]

[-, 무섭지 않다. 모습이 바뀌었다한들 그 또한 카라지 않나. .....그랬던 건가. 그럼, 그 시선도 카라였었군]

[시선.......? 그대의 곁에 있었던적은 있었다만]

 

방에 있을 때면 항상 누군가의 시선을 느껴 늘 두려움에 떨었지만, 사실은 그게 친구였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정체가 카라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어째선지 안심이 됐다.

 

[그랬군. 다행이다, 안심했다. 혹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으응~?]

[.....우쭐해하지 마라. 그래도 그대를 두렵게 만든 건 사과하지. 다음에는 그대에게만 들리도록 방울을 울리겠다]

 

카라는 그렇게 말하며 연한 파란색의 아름다운 방울을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딸랑, 하고 낯익은 소리가 귓가에 작게 울렸다.

 

[알겠다. 기다리고 있겠다]

 

 

 

 

 

* * *

 

 

 

 

카라마츠가 돌아간 후, 카라는 신사의 지붕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곳의 하늘은 해질녘과 밤하늘만 비출 뿐이라, 푸른 하늘을 못 본 지도 몇백년이었다.

땅거미가 진 어둠에 묶인 카라는, 해질녘과 어둑한 밤에만 활동할 수 있었다.

 

[........평생 혼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존재가 이리도 커질 줄이야]

 

카라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장난삼아 현세에 내려갔던 그날이 떠올랐다. 달이 아주 아름답던 밤이었다.

칠흑의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던 때, 좁은 길목에서 화형에 처해지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죄를 저지른 사람인가 했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그건 아닌 듯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 남자에게 물건을 내던지는 남성들이 그와 같은 얼굴이었다. 그들이 남자의 형제라는 걸 단숨에 알아챘다. 게다가 마음 탓인지, 자신과 그 남자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 상황에 의문을 품은 카라가 천리안을 써 남자의 과거를 살폈더니, 남자는 대죄는커녕 별다른 죄도 저지르지 않은 듯 보였다.

 

.....저 자도 형제의 제물이 된 건가. 불쌍하게도......

 

날아드는 물건들을 머리에 맞은 남자는 힘없이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불길에서 해방되어 그대로 길가에 방치되었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더니, 이내 생기가 없어져 갔다.

아마도 이대로 두면, 새벽을 못 넘어 숨이 끊어질 거라 여긴 카라는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옛날 자신이 구했던 빈사상태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 그 아이도 자신 때문에 죽어 버렸지만.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무언가의 연이겠지. 어쩌면 그 아이가 이끌어준 걸지도 모르겠구나......

 

카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가를 올려 웃었다. 그리곤 단숨에 남자의 곁으로 내려가 바닥에 엎어진 그의 어깨를 쥐어 똑바로 눕혔다. 잠시 남자를 바라보던 카라는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들어, 제 손가락에 살짝 상처를 냈다.

 

.......텐구의 가호를 네게 내려주겠다

 

그리고 카라는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피를 남자의 입에 흘려넣었다. 그리고는 턱을 들어올려 억지로 삼키게 했다. 요괴 중에서도 요력이 높기로 유명한 카라스텐구의 피에는 회복력을 경이적으로 높여주는 힘이 있었다.

인간의 체내에 흘려보내 흡수시킴으로써, 그 요력을 가호로 누릴 수 있으며, 남자의 회복력도 높아지게 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군. 뒤는 그대에게 달렸다

 

본래, 고의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요괴의 모습은 평범한 인간에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카라스텐구의 피가 섞인 카라마츠는 예외로, “보이거나 들리거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석양이 지는 하늘에 떠 있는 카라스텐구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저 구해주기만 하고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고독의 깊이가 너무도 깊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불러내버린 것이다.

 

[너무 지나친 간섭이었다곤 생각하지만.....그래도 그 자를 살린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누군가가 자신을 의지하고 바라는 건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몇 백년간의 고독이 다 덮이고도 남을 따스함이 가슴에 와닿았다.

하지만, 인간은 약하다. 그러니 언젠가는 목숨이 다해 죽을 것이다. 상처나 병은 낫게 해주면 될 일이지만, 흘러가는 세월은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다. 그것은 천명이니까. 아무리 카라스텐구라고 할지라도, 하늘에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또 자신은 긴 세월 고독에 잠길 것이다.

따스함을 알아버린 카라는 그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만약 카라마츠가 자신을 택해준다면. 함께 있어준다고 한다면. 그를 요괴로 만들어버리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카라마츠의 얼굴을 떠올리며 카라는 생각에 잠겼다.

 

 

 

 

 

* * *

 

 

 

 

며칠후, 카라마츠는 객실에 틀어박혀, 카라와 자신을 이어주는 깃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방안의 공기가 바뀌더니,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카라인가? 아직 낮이다만..........지금 옆에 있는 거지? 그렇다면 방울 소리를 울려주겠나]

 

카라마츠는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방울을 울려달라 부탁했지만, 방울 소리가 울리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찌를 듯한 시선이 사방팔방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카라? 카라, 맞지? , 놀리지 말아라]

 

카라마츠는 긴장감에 꿀꺽 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간만의 공포에 고동이 빨라졌다.

그 순간.

 

무수한 눈이 방에 나타나더니, 카라마츠를 핥듯이 바라보았다. 천장에도, 벽에도, 바닥에도.

수많은 눈이 방안에 가득 차,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 히익........!!]

 

카라마츠는 사슬로 묶인 것처럼 바닥에 꼭 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비명을 지르려 해도, 갈라진 쇳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새파랗게 질린 카라마츠가 정신을 잃어갈 즈음, 갑자기 눈앞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상하군요. 까마귀의 냄새가 나는 듯하여 와보았더니, ....평범한 인간이군요]

 

카라마츠가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자, 거기에는 짙은 녹색의 기모노를 입고서 온몸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쵸로마츠와 닮아 있었다.

남자는 카라마츠를 한번 훑어보더니, 그의 손에 들린 텐구의 깃털을 뺏어 들었다.

 

[........이건...텐구의 날개, 군요.....아니, 그뿐만이 아니야.....이 인간의 몸에서도 까마귀의 냄새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카라마츠의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밀어 킁킁거렸다. 다시 원래의 고고한 자세로 돌아간 남자는 흐트러진 옷자락을 고치며 텐구의 날개를 바라보았다.

 

[, ....................]

 

카라마츠는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짜내어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뻗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눈은 괴로움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걸 본 남자는 조금 놀란 표정을 보였다.

 

[........이거 놀랍군요. 설마하니 제 주술을 푸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뭐어, 좋습니다. 그대의 노력을 높게 쳐, 이건 돌려드리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카라마츠의 손에 깃털을 돌려놓았다. 카라마츠는 안도의 표정을 띠었다. 그걸 본 남자는 카라마츠가 텐구와 무언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인간. 아무래도 텐구와 아는 사이인 모양이군요. 그가 있는 곳을 말하십시오. 만일 거부한다면, 그대의 눈을 도려내, 제 일부로 만들겠습니다]

 

남자는 카라마츠를 차갑게 쏘아보며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쥐었다. 남자의 손바닥에 박힌 눈동자가 자신을 희번덕거리며 노려보자, 카라마츠는 경악과 공포로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카라마츠의 머릿속에 카라의 따스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마도 제 눈앞에 서있는 남자도 카라와 같은 요괴겠지. 만약 내가 카라의 거처를 불어 그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면, 나는 제 몸을 지키자고 카라를 판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녀석들과 같아지는 게 아닌가.

 

[, .........., ..., , ................, ...]

[......그 이름을 어떻게.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 듯한데, 저는 텐구의 형제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위해를 가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 때, 복도에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리더니 카라마츠가 있는 객실 문앞에서 멈춰섰다.

 

[...........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것 같군요.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좋은 답볍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남자가 눈앞에서 슥, 사라짐과 동시에 쥬시마츠가 방에 들어왔다. 방안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던 눈알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카라마츠는 갑자기 속박에서 풀려나, 바닥에 쓰러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시마츠.....무슨 일인가...?]

[카라마츠형이 부른 것 같아서 와봤어!!]

[..........., ?]

 

쥬시마츠는 코를 킁킁거리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카라마츠는 숨을 고르며 손에 쥐고 있던 깃털을 쥬시마츠가 보지 못하게 이불 밑에 숨겼다.

 

[카라마츠형...여기, 냄새나....형한테도 같은 냄새가 나....저기, 카라마츠형. 이제 밖에 나가지 마. 이대로면, 형이 형이 아니게 되어-]

[쥬시마아츠. 그건 안 된다, 쥬시마츠. 아무리 동생의 부탁이라도, 그건 들어줄 수 없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의 말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쥬시마츠가 조금 일찍 그런 제안을 했다면, 승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카라의 존재가 압도적으로 커져, 의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 , 나랑 야구하자!!]

[안 된다, 안돼...쥬시마츠. 나는 이제 야구를 할 수 없다. 방망이가...무섭다...]

[, 그럼! 야구 말고, 파칭코는? 파칭코 가자-!! 카라마츠형이 따도 비밀로 할게!! 그러니까, 이제 혼자서 나가지 마!]

 

쥬시마츠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늘 헤실헤실 웃으며, 독특한 세계관에 살고 있는 쥬시마츠가 진지한 얼굴로 부탁하고 있다. 나와 함께 있고 싶다며, 같이 놀고 싶다며. 아마도 저건 마음의 외침이겠지.

하지만.

 

[......., 나는!!!!!]

 

갑자기 카라마츠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쥬시마츠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나는, 카라와.....카라마츠 보이랑 있고 싶다!! 카라는 나를 원하니까!! 제대로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니까!! , 너희들은 상처 입은 내게 뭘 해줬나...? 나를 무시했지 않나!! 하지만, 카라는 나를 아껴주고 필요로 하고 있다......그러니까,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미안하다, 쥬시마츠.....!]

 

쥬시마츠가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카라마츠의 어두운 감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자신이 매달렸을 때는 무시했으면서, 어째서 나는 그들의 애원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카라마츠는 숨겨두었던 깃털을 꺼내들고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로 나오니 그곳에는, 오소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가 있었다. 세명과 눈이 마주친 카라마츠는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아무래도 큰 소란에 몰려들어, 전부 엿듣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색한 감정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카라마츠는 더는 이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그대로 집을 뛰쳐나갔다.

 

[카라마츠........]

 

이치마츠와 토도마츠는 흐느껴 우는 쥬시마츠에게 다가가 그를 다독였다.

쥬시마츠의 우는 소리와, 오소마츠의 중얼거림이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 * *

 

 

 

 

카라마츠는 앞만 보고 달려 카라가 기다리는 신사로 향했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머릿속이 꽉 차서, 주변을 신경 쓸 여유도 없이 평소처럼 깃털로 의식을 행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순간 라이브에서 돌아오던 쵸로마츠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만다. 울면서 달려가는 카라마츠를 발견한 쵸로마츠가 그의 뒤를 쫓은 것이었다.

 

[카라마츠 녀석, 왜 이런 곳에......]

 

쵸로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카라마츠에게 다가가려 공터에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카라마츠의 주변에 갑자기 까마귀들이 모여들었다. 뿌연 안개가 걷히고서야 정신을 차린 쵸로마츠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카라마츠는 없어진 후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저기에 있었을 카라마츠가 보이지 않았다.

 

[, , 카라마츠......? 사라졌어..........!?]

 

쵸로마츠는 카라마츠가 사라진 곳으로 달려가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곳은 담벼락으로 둘러쌓여 있어, 숨을 곳이라곤 단 한 곳도 없었다. 마치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진 듯한 광경에 쵸로마츠는 어안이 벙벙했다.

 









카라스텐구(카라)의 본모습은

공식의 텐구 카라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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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은 내일 확인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댓글로 요청해주시는 분들이 몇 계시던데

요청은 방명록에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


댓글에 요청을 하면 다른 일반 댓글에 묻혀서 확인도 어렵고

나중에 거절인지 허락인지 알려드릴 때도 찾기가 어렵습니다ㅠㅠ

댓글이나 방명록 검색 기능이 있긴 하지만 제대로 안 되더라구요..ㅠ


그러니 가능한 요청은 방명록에 해주세요

방명록 오류거나 방명록을 못 찾겠다면 댓글로 도움을 요청해주세요!






  1. (해골과 같은 말입니다. 청년이 쓴 해골(されこうべ)는 카라마츠가 쓴 해골(ドクロ)보다 약간 옛말? 고전적인 느낌이라 촉루라고 썼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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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업로드는 

여행 때문에 없습니다!




따로 공지할 거지만

혹시 몰라서 여기도 남깁니당 :D




8월1일부터 4일까지 여행이라

번역할 수가 없습니다ㅠㅠ



고로, 업로드는 한주 쉬고

그 다음주인 8월11일이나 12일에 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건 공지 올라오면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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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西八十三 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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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의 숨겨진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5

 

 

 

 

 

1월 마지막주 일요일, 오늘은 눈도 그치고 구름 사이로 태양이 고개를 내민 따스한 날이다. 서리가 낀 창문을 닦으며 본 창고의 온도계는 영하 5였지만.

근사한 카페 바 같은 방안, 안쪽에는 당구대와 다트가 있고, 고풍스런 커다란 테이블과 편안해 보이는 푹신한 소파가 자리하고 있다.

나와 쥬시마츠는 카운터 자리에 걸터앉아, 주문한 카페라떼가 나오길 기다렸다.

눈앞에는, 아케의 미소[각주:1]를 띠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근사한 바리스타가 서있다. 새하얀 셔츠에 감색빛의 나비 넥타이, 검은 베스트. 그 위로 보이는 차마 감춰지지 않은 탄탄한 가슴근육과, 더욱 강조된 늘씬한 허리 라인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에스프레소가 담긴 컵을 몇 번인가 기울면서, 우유를 천천히 붓고는 긴 꼬챙이로 슬쩍슬쩍 무늬를 그려나갔다.

제법 잘 그려졌는지, 슬쩍 입가가 올라간다.

[여기]

매끄럽게 컵을 내려놓는 그 손은 마디가 툭 불거져 그야말로 야성미가 넘쳤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컵을 들여다보니 데포르메[각주:2] 냐짱이 윙크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마시는 게 아까울 정도의 솜씨라서, 1분간 쳐다만 보다가, 사진을 찍고 미련이 남기 전에 스푼으로 휙휙 저어버렸다.

알맞게 식은 커피를 입에 머금자, 우유로 살짝 옅어진 쓴맛과 제대로 남아있는 깊은 향. 아아-, 맛있어!! 완전 힐링돼~!

점심시간, 분위기 좋은 휴게실에서 맛있는 식사를 만끽한 후, 이 바리스타, 즉 카라마츠가 내어준 카페라떼를 마시면, 오전중의 피로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굉장해-, 야구다아!! 쵸로마츠형, 이거 봐!!]

옆자리의 쥬시마츠 컵에는, 타자가 공을 받아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커피랑 우유로 잘도 이런 걸 그렸네. 그보다, 이 녀석 그림은 못 그리면서 왜 이런 건 잘하는 거야?

나와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은 후, 쭈욱, 커피를 들이킨 쥬시마츠가 우후후, 하고 웃었다.

[, 카라마츠형 커피 엄청 좋아해!!]

[, 나도 좋아해. 이제 다른 카페는 못 갈지도]

둘이서 감상을 주고받고 있자, 완전히 영업미소를 띠고 바리스타의 모습을 보이던 차남이, 완전히 풀어진 얼굴로 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라떼아트는 혼자서 연습했다는 모양으로, 2, 3일 간은 컵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오늘은 요렁이 꽤 붙은 건지 만족한 표정이다.

[역시, 좋은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니 맛있군]

휘휘 섞은 컵을 들고 내 옆에 앉은 카라마츠는 환하게 웃었다. 아니, 기계가 아니라 네 팔을 칭찬하라고.

여기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레스토랑에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셰프인 우시지마 토미오씨가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사온 것이었다.

버튼 하나로 완료되는 그런 손쉬운 타입이 아닌, 추출 과정을 살피고, 압력을 조절해야 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맛을 추구할 수 있는 만큼 조작이 어렵다.

친가 옆에 있는 카페를 가끔 도와줬다는 것 같지만, 토미오씨가 사용하는 걸 몇 번인가 봤기에 나는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하다고 생각하는데 카라마츠는 그걸 모른다.

여기에 오고부터 더욱 잘 알게 됐다. 우리 차남은 자신이 가진 스펙이 얼마나 높은지를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무자각이라는 것을.

그런 점마저 사랑스럽다 느껴버리는 요즘.

[, 다들 수고. 디저트 남았는데 먹을래?]

주방으로 연결된 문에서 토미오씨가 커다란 손에 판나코타[각주:3] 3개가 든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물론, 답은 하나. 감사합니다, 라고 동시에 외치며 받아들었다.

 

집을 나온 지 벌써 약 2개월이 지났다. 아르바이트 계약 3분의 2가 지난 것이다.

첫날 밤, 전원을 켠 핸드폰에 토도마츠가 보낸 대량의 메일이 뜬 걸 보고, 카라마츠는 굉장히 기쁜 듯 환하게 웃었다.

[다들 아직 나를 걱정해주는구나]

라며, 당연한 말을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에, 심장이 꽈악 죄여오는 것 같아 쥬시마츠와 둘이 껴안았다.

그후, 전화로 두고온 형제들에게 불평을 퍼붓고, 내 분노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의외로 쥬시마츠가 그들을 용서하기까진 거의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녀석들이 제대로 연락을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 꽤 엄한 성격이었지.

오소마츠형과 이치마츠도 바로 핸드폰을 사서, 그 뒤로 매일 친가조의 3명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메일이나 LINE으로 끝내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있을 땐 통화도 하고 했지만 크리스마스에도 연말연시에도 친가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오너는 휴가를 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일이 바빠서 힘들다고 했다. 뭐어, 실제로도 바빴으니까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신에, 해산물과 징기스칸 전골세트를 셋이서 돈을 모아 사서 보냈다.

전화 너머로 얘기는 자주 했지만, 매년 항례였던 선물교환도, 여섯명이서 다 함께 하던 시끌벅적한 첫 참배도 없었다.

냐짱의 라이브나 이벤트도 가지 못했다.

왕복 교통비가 든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그냥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족이 소중한 것도, 냐짱을 응원하는 마음도 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생활이 우선순위가 높았다.

그 정도로 여기서의 생활에 충실했다.

매일 이래저래 바쁘고, 물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을 건 계속 니트였던 우리들을 고용한 오너들이었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이 분주함도 만족감으로 바뀌었다.

 

내 담당이 객실이나 로비 청소가 되었을 때, 아니나 다를까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걱정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의 결벽증은 중증이 아니고, 친가에서도 청소와 세탁은 종종 해왔다. 게다가 내가 만족할 때까지 깨끗해진다면, 대개의 사람들이 만족할 정도일 테니까.

애초에 쥬시마츠처럼 체력에 자신도 없고, 카라마츠처럼 자격증도 없으니까 이렇다 저렇다 따지지 말고 할 수 있는 건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형제와 자신을 타이르며, 작업복으로 보이지 않는 멋진 유니폼을 입고 일을 시작한 첫날, 갑자기 나타난 메이드에게 다른 의미로 긴장하게 됐다.

[당신이 새로운 아르바이트인가요? 마루이케 유메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며 스커트를 살짝 들어보이며 정중히 인사한 여성은 옅게 미소를 띠었다.

우와아아!! 진짜 메이드다, 코스프레가 아니라 훌륭한 저택에서 일하는 그런 메이드!

검은 블라우스에 볼륨 있는 스커트, 프릴이 달린 하얀 앞치마. 복장만 봐선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메이드 같은데, 머리는 일본 인형처럼 깔끔히 자른 단발머리로, 전체적으로 메이지 다이쇼의 근사한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 같았다.

[마츠노, 쵸로마츠,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딱딱한 자기소개와 함께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유메노씨는 다시금 옅게 웃으며 내 팔을 살짝 잡았다.

[, ]

[자아! 힘내서 청소하자구요!]

가냘픈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힘으로, 질질 끌려다니며 나는 그녀에게 일을 배웠다.

다행히, 방이 적어서 처음 일하는 나라도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쵸로마츠씨는 깔끔하시네요]

유메노씨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3일째의 휴식시간. 홍차를 마시며 만족감에 젖은 그녀에, 그걸 내어준 카라마츠가 곤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또 걱정하는 거겠지, 이 녀석은.

말할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자, 유메노씨가 웃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보다도 더 세세한 곳까지 청소하시고. 훌륭합니다!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겠어요]

무척이나 기뻤다. 인정받았다는 것이.

그런 시시한 사건에 얽매여 생겨버린 어정쩡한 결벽증이란 귀찮은 성질이 남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거창하지만 마치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내가 기뻐하는 게 얼굴에 드러났는지, 카라마츠가 안심한 얼굴로 쿠키에 손을 뻗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유메노씨에게 결벽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뭔가 과대평가된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말해주셔서 기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대신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며, ‘너 언제부터 이렇게 솔직한 캐릭터였어?!’ 라고, 속으로 자신에게 츳코미를 날렸다.

원래 악동이었으니까, 야단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칭찬받은 기억은 좀처럼 없다.

그러니까, 자신이 칭찬받으면 성장하는 타입이란 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칭찬에 들뜬 탓인지, 이후 나는 타락한 니트 생활을 보냈던 게 거짓말처럼 완벽히 일을 해내려 노력했다.

큰 실수를 한 적은 없고, 손님으로부터 불평을 들은 적도 없으니까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은 벤씨가 사냥하는 곳에 데려가 준대! 큰 사슴 잡아올게!!]

판나코타를 입에 가득 넣고, 맛나아!! 라고 뺨을 잡으며 외치는 쥬시마츠.

[오오, 그거 재밌겠군!]

그 말과 동시에 카라마츠의 핸드폰이 찰칵, 하고 울렸다. 찍힌 사진에는 만족감에 젖어 헤벌쭉한 내가 찍혀 있었다.

오늘도, 내 형제가 귀여워서 행복합니다.

나 자신도 여기에 와서 꽤 변했다는 자각이 있지만, 쥬시마츠도 변했다.

눈의 초점이 제대로 맞게 되고, 터무니 없는 언행도,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줄고, 마츠노가 오남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썽쟁이가 아니게 됐다.

타인을, 그 자리의 분위기까지 읽고 행동하는 밝고 상냥한 사람 좋은 청년. 그게 여기서의 쥬시마츠.

무리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으니까, 분명 이게 본래의 쥬시마츠라는 게 나와 카라마츠의 견해다.

[주변 사람들 덕분인 거 아닌가? 여기에는 쥬시마츠의 천진난만함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잖아?]

카라마츠의 말대로, 여기의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무척이나 따스하게 대해준다.

쥬시마츠를 직접 지도한 건, 펜션의 관리를 맡은 와카무라 벤씨. 살짝 기른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로,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지만 오랫동안 비계공[각주:4]으로 일했던 탓인지 몸놀림이 가볍고, 남을 돌보길 좋아하는 아저씨였다.

[쥬시마츠는 정말 부지런하구나. 요즘 젊은이들과는 다르군]

가하하, 하고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제대로 칭찬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쥬시마츠도 기뻤던 건지, 금방 벤씨를 따르고, 일도 순식간에 배웠다.

원래 좋아하는 건 금방 이해하고 습득하는 녀석이니까, 지금은 보일러의 조정도 담당하게 되면서,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도 했다.

[그럼, 오후에도 힘내볼까!]

[그래]

판나코타를 실컷 만끽한 우리는 셋이서 동시에 합장하며 잘 먹었다 위치곤 분담해서 각자 식기를 치웠다.

디너의 재료를 옮기는 걸 돕게 된 카라마츠와 헤어지고, 나와 쥬시마츠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로비로.

이제부터 밤까지 나는 프론트, 쥬시마츠는 도어맨과 벨보이, 카라마츠는 주방과 홀을 담당함과 동시에 룸 서비스에도 대응한다.

 

경험자인 카라마츠는 몰라도, 나와 쥬시마츠까지 접객을 하게 된 건, 내가 유메노씨에게 칭찬을 받은 다음날, 즉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단 4일째인 목요일이었다.

목요일은 레스토랑의 정기휴일이니까, 셰프인 토미오씨와 웨이터인 카나죠 라이야씨는 본래 휴일이지만, 토미오씨는 전날 밤 여기서 마신 뒤에 여기서 자고 갔기에, 아침밥도 같이 먹었다.

참고로, 여기는 숙박이 기본이라 아침은 토미오씨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옵션으로 아침을 선택한 손님 몫은 근처 도시락 전문점에 부탁하고 있다.

오너와 사이가 좋은 단골분들은, 우리와 함께 먹기도 했다.

[숙취가 좀처럼 안 사라지네-]

[촌스러-, 비프(*우시지마의 우시가 소라서 그렇게 부르나 봅니다)! 늙은 거 아냐?]

[시끄러, 바보 호랑이(*오키토라의 토라가 호랑이). 너도 똑같잖냐]

[나는 아직 팔팔하거든!!]

식당으로 모인 오키로라 오너와 토미오씨가 느긋하게 그런 식의 잡담을 나누는 걸 본 카라마츠가 아침밥 준비하길 자청했다. 오늘 아침은 마츠노가의 맛이 나올 듯하다.

[-, 맛있어!! 역시 술 마신 다음날에는 된장국이지. 일본인이 매일 빵과 스프만 먹곤 못 살지]

두부와 미역이 든 맛 좋은 된장국을 후루룩 마신 오너가 진심이 담긴 감상과 함께 친구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저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매일 빵과 스프만 나온 건 아니다.

첫날에는 그랬지만, 대체로 만드는 건 라이야씨로 아일랜드 요리였고, 매일 저녁은 타이가 선배가 아르바이트로 키운 근육진 팔을 한껏 걷어올리고 중국 요리를 대접했다.

[미안하구만, 유럽식밖에 못 만들어줘서. 불만이면 스스로 만들어 먹으라고]

오너의 말을 적당히 넘긴 토미오씨는, 몽글몽글하게 잘 구워진 계란말이를 한입 떠먹고, “, 맛있군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나중에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토미오씨에, 살짝 수줍어하는 카라마츠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아침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벤씨와 유메노씨가 출근하고, 다들 제각기 부서로 흩어진 뒤, 나도 오늘 숙박 예정인 방 하나를 깨끗하게 치웠을 즈음, 오키토라 오너한테서 [잠깐, 얘기 좀 하지] 라며 무전이 왔다.

[뭘까요?]

[출동인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다녀오세요]

원래 소방대원이었던 오너와, 유메노씨의 남편분인 지에이씨는 이 지역의 소방단을 하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길 때면 경찰이나 소방관이 올 때까지 현장에서 대처를 맡고 있다고 한다.

유메노씨와 함께 로비로 달려가 보니, 오늘 휴일이었을 라이야씨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소파에 몸을 묻고 있었다.

트레이닝 바지에 투박한 소재의 가디건,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세팅하지 않은 채로, 양키 고등학생처럼 앞머리만 핀으로 살짝 고정해놓은 모습이었다.

자다 깬 듯한 모습에 불량스러운 느낌을 팍팍 뿜어댔지만, 역시 잘생긴 사람은 이래도 멋지구나.

오너는 그런 라이야씨에게 살짝 어이없는 듯하면서도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빨리 얘기하라며 재촉했다.

임신한 누나가 어제부터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출산도 임박했고, 혹시나 해서 예정보다 빨리 입원을하게 됐다고.

[그런데, 그 자식, 출장이니 뭐니 하면서 월요일까지 못 돌아온다잖아!! 처자식 내버려두고 일이라니. 뭐가, [건강할 때도 아플 때도] !! 어느 맹세 하나 지켜진 게 없잖아!! 젠장, 그러니까 나는 그딴 얼간이 녀석 반대한 거라고!!]

매형의 불만을 한껏 토해내고, , 하고 주먹으로 소파 팔걸이를 내려친다. 평소 당당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의, 여유 잃은 모습에 우리들은 살짝 당황해 일제히 시선을 마주했다.

[부모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냐?]

토미오씨의 질문에 라이야씨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가겠다고는 했는데, 비행기가 없어서 일요일에나 돌아온다나 봐]

라이야씨의 본가는, 국내 최저 기온을 찍은 거리로, 위도는 높고 해양성 기후인 아일랜드 쪽이 더 따뜻하기에 매년 피한 목적으로 귀성한다는 모양이다.

우리도 새해에 매번 좀 찾아오라며 아우성인 친척 이모들이 있지만, 이쪽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올해는 특히 손자가 생겨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나 성 패트릭 축제 때에도 가지 않았던 탓에 인사 겸해서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옆에 있고 싶어. 너무 제멋대로인 건 알지만]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쉰 라이야씨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오키토라 오너를 바라보자, 모두와 마찬가지로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팔짱을 끼고 천장을 노려보던 오너, 분명 라이야씨에게 휴가를 주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레스토랑 예약은 가득 찼고, 투숙객도 새로 찾아들었다.

적어도 우리들이 조금 도움이 되기라도 했다면, 오너도 흔쾌히 OK를 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무겁던 침묵을 깬 건 타이가 선배였다.

[카라마츠, 네가 대역이야. 행동은 라이형을 따라하고, “대본은 일단은 이거. 거기에 없는 대사는 애드리브로. “역할의 설정은 거기에 적어뒀어. “본방은 내일부터]

담담하게 말하면서 언제 가져왔는지 대본이라며 식당 메뉴를 주고, 그 위에 뭔가 적힌 로비의 메모지가 붙어 있다.

[가능하면, “리허설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오늘 정오]

건네받은 대본과 설정을 확인한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카씨의 요구도 뜬금없었지만, 그걸 받아들인 카라마츠도 카라마츠였다.

오너, 하고 삼촌이 아닌 직급으로 오키토라씨를 부른 타이가씨는 씨익 웃었다.

[그런고로, 리허설 볼래? 그걸 보고 납득하면, 카라마츠가 라이형의 대신이 될 거야.

내가 주방일 도와주고, 프론트는 쵸로마츠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에엣! , 제가 프론트?!]

갑작스런 지시에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니, 잠깐만요. ,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으니까, 접객에 안 맞다구요.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쵸로마츠, 하고 타이가씨가 부른다.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어. 내가 보증하지]

[저도 쵸로마츠씨가 적임이라고 생각해요]

고개를 드니, 타이가씨와 유메노씨가 엄지를 치켜들고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어째선지 그걸 보고 있으니 납득이 가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아-! 무슨 짓이냐 나!! 이거 해버리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잖아!!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오너는 고민하던 걸 관두고, 조카의 말에 수긍했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것도 잠시니까 다들 조금만 참자!]

[!! 저는 뭘 하면 됨까?]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든 쥬시마츠에게, 나는 문득 자신을 회고했다.

[쥬시마츠군한테는, 벨보이를 부탁하지. 손님의 짐을 방까지 옮겨주면 된다네]

오너가 윙크와 함께 지시하자, 열심히 하겠슴다!! 하고 바로 수긍하는 쥬시마츠. 그렇구나 나도 어리광을 부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 후, 나는 남은 객실을 치우고, 쥬시마츠는 제설작업을 한 탓에, 카라마츠가 어떻게 연습을 했는지 둘 다 모른다.

점심시간이 되고, 나랑 쥬시마츠는 타이가씨에게 말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문 밖에서 타이가씨가 비디오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있고, 창문에서 안을 보니 오너와 토미오씨, 라이야씨가 나란히 앉아있다.

[그럼, 두 사람은 손님 역할. 내가 시작, 이라고 하면 들어가. 카라마츠지만 낯선 웨이터가 있다는 설정으로 가자고!]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타이가씨가 씨익 웃으며 비디오카메라를 향해 외친다.

[리허설 설정A, 스타트!!]

꿀꺽, 침을 삼키고 문을 열자 딸랑, 하고 도어벨이 울린다. 벨이 울리자마자 흰 셔츠에 앞치마를 한 카라마츠가 다가와, 내가 어설프게 열어둔 문을 제대로 잡아주었다.

? 뭔가, 가깝지 않아? 그보다, 분위기, 다른 사람 같은데?!

아침마다 뿌리는 향이 짙은 데오드란트가 풍겨온다. 셔츠를 두 번째 단추까지 풀고 있으니, 쇄골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단련된 흉근의 골마저 보일 듯 말 듯했다.

우와아아아, 어디의 호스트냐 너는!! 여기 레스토랑인데!? 그것도 점심!!

[어서오십시오, 예약하셨습니까?]

우와, 목소리, 위험해. 나한테는 좀처럼 들려주지 않는, 색기 넘치는 저음이 등뼈를 지나 허리를 간질였다. 심박수 급상승.

[, . 두 명 예약했어요, 마츠노입니다]

간신히 손님 같은 대사를 말하자, 카라마츠는 어디서 배운 건지 매력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아니아니, , 진짜 누구야?! 내 품에 안긴 여자가 셀 수 없을 정도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하지 말라고!! 나랑 같은 동정 차남은 어디 갔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츠노님. 추운데 먼 길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좌석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잠깐, 부탁이니까 그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말하지 말라줄래? 그보다, 추파 던지지 마! 이것 봐, 쥬시마츠도 완전 얼어붙었잖아!! 손님을 꼬셔서 어쩌겠다는 거야!! 여기는 레스토랑이라고, 이 멍청이가!!! 동정한테는 너무 힘들다고, 바보!!

심지어 내 등에 슬쩍 손까지 대다니!! 우와, 이 녀석, 이렇게 색기 넘치는 꼴로 에스코트할 생각이야?!

[스톱!!]

타이가씨의 한마디에, , 하고 손을 뗀다. , 다행이다, 살았어. 이대로 에스코트 당했다간 진짜 똥꼬털 다 타버린다고!

내 심장은 쿵쿵 거세게 뛰고, 쥬시마츠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살짝 구부정한 자세다. , 나도 남자니까 지적은 않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이 카라마츠 놈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오고 말이야. 몸은 여전히 떡 벌어졌지만, 그 두려울 정도로 넘쳐흐르던 매력은 온데간데없고 평소의 차남이다.

젠장! , 기억해두라고. 자기 전에 간지럼형을 내려줄 테니까! 동정을 가지고 논 죄는 무겁다고!

[이 설정은 좀 아닌 걸. 미안하지만, 런치용이 아니라고 할까]

[당연하죠. “눈빛으로 넘어오게 만든다라니, 의미를 모르겠다고요. 애초에, 동정한테 이런 걸 요구하지 말아주시죠]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하는 카라마츠에 타이가씨는 그런 걸 소화하는 게 배우잖아, 라고 답한다. 아니, 카라마츠, 솔직하게 동정발언 하지 말아줄래.

[? 뭐야, 방금, 그런 설정의 역이었어?]

[그렇다. 설정A전 넘버원 호스트. 페로몬 잔뜩 뿜어대며 손님을 남녀불문 않고 눈빛 하나로 넘어오게 함이더군.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나?]

[.........레스토랑 웨이터의 설정이 아니지 않나..?]

[나도, 이건 관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들 셋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오너와 토미오씨는 연기에 감명 받은 듯 아까부터 계속 배를 부여잡고 껄껄, 히히, 웃어댔다.

[크하하하하! 굉장하군, 카라마츠군!! 라이야와 똑같아!]

발을 동동 굴리며 웃는 오너에, 대뜸 이름을 불린 본인이 뭐? 라며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다.

[웃기지 말라고, 호랑이 아재! 어디가 나랑 닮았다는 거야!]

[아니, 마음에 든 손님한테 이러잖아]

이번에는 토미오씨가 눈가에 눈물을 맺고서 가차 없이 공격했다.

[진짜?!]

진짜냐며 두 사람에게 되물은 라이야씨는 힘없이 고개를 축 떨구었다.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손님을 꼬시는 건 곤란하니까. 이 설정은 관두지]

조금 진정된 오너의 말대로, 설정A는 무사히 기각됐다.

그런 웨이터는 라이야 한명으로 족하다는 중얼거림이 들린 듯하지만, 무시하자.

 

[나도 이건 그냥 여흥으로 즐길 생각이었어. 예상외로 카라마츠가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다시 문밖으로 나온 나와 쥬시마츠에게 타이가씨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 카라마츠형, 엄청 에로했어]

맞아, 그건 동의. 설정대로 페로몬 뿜뿜 뿜어댔지. 동정이면서 그런 걸 바로 소화하는 카라마츠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해!

[부탁이니 우리 차남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가지 말아주세요!]

나로서는 같은 얼굴의 형제의 색기 넘치는 모습에 빠지고 싶지도 않거니와, 가능한 체험하고 싶지도 않다. 게다가 같은 얼굴의 형제에게 이리저리 페로몬을 뿌려대는 것도, 그만뒀으면 한다.

[미안, 미안. 그럼 다시 정신 차리고, 설정B로 가자. 이건 실전용이니까 괜찮을 거야! , 주문하는 건 이거야]

살짝 믿음이 가진 않지만, 타이가씨가 스타트! 라고 말했으니, 나는 받아든 메모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맞이하는 이 웨이터가, 나는 아까와 같은 인물, 그것도 우리 카라마츠라곤 바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검은 조끼에 나비 넥타이를 한 차림이었다. 게다가 은은히 감도는 향기. 하지만 다른 건 복장만이 아니라, 감도는 분위기와 인품도 달라진 듯했다.

[예약이요, 마츠노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츠노님.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대사는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저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 톤, 말투 등 그런 세세한 부분이 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인상이 달라질 수가 있을까?

겉옷을 받아들며 환한 미소로 자리를 안내했다. 의자를 빼주는 타이밍도 딱이었다.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메뉴를 펼친다. 솔직히 와인이 마시고 싶었지만, 일하는 중이니 물로 참았다.

바로 깨끗하게 닦인 잔과 시원한 물이 담긴 병이 나오고, 카라마츠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물을 따랐다.

다음은 요리인데, 이 레스토랑은 기본적으로 점심도 저녁도 예약제라서 코스요리밖에 없어, 가격에 따라 재료가 달라질 뿐이었다.

어렵고 다양한 요리명을 기억할 필요가 없는 대신, 그 날의 메뉴를 웨이터가 설명해야만 했다.

[오늘의 생선요리는 제철인 무당게를 이용한 크레페와 산탄데르[각주:5] 풍으로 구운 대구 오븐구이. 육류는, 오리를 이용한, 알칸타라식 찜과 손수 만든 소세지의 엠파다스[각주:6]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빠에야[각주:7]는 가리비와 오징어의 발렌시아 풍과, 유기농 채소 중 한 가지 골라주시면 되겠습니다]

아까 받은 메모에는, 코스C, 대구와 엠파다스, 야채 빠에야라고 적혀있다. 생각보다 호화스러운 식사라 기분이 좋아졌다.

주문하려다 뭔가 떠올라, 웨이터인 카라마츠에게 질문했다.

[저기, 산탄데르 풍이란 건 어떤 느낌인가요? 그리고, 엠파다스? 라는 것도 무슨 요리인지 모르겠어서..]

갑작스런 애드리브였는데, 카라마츠는 환하게 웃으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설명이 부족해서 혼란을 드린 점, 죄송합니다. 산탄데르는,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의 중심 도시의 지명입니다. 이 지방에서는, 생선에 파슬리를 섞은 빵가루를 묻혀 오븐에 구운 요리가 있는데, 현지에서는 정어리를 주로 사용하지만, 오늘은 지금 제철인 대구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엠파다스는 포르투갈 북부, 갈리시아 지방의 서민음식으로, 여러 재료를 파이 반죽으로 감싸 구운 것입니다]

술술 막힘없이 말하는 카라마츠. 컨닝페이퍼를 보는 것 같지는 않고, 머리에서 나온 지식인가? 원래 알고 있던 걸까. 아니면 이 몇 시간 사이에 다 외운 걸까.

[그렇습니까. , 그럼, 런치코스C 2인분으로, 대구요리와 엠파다스, 그리고 야채 빠에야 부탁드립니다]

반면 나는 메모대로 말할 뿐, 그조차도 낯선 음식 이름에 더듬거린다.

[알겠습니다]

공손하게, 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게 인사한 카라마츠는 등을 곧게 펴고 주방으로 향했다.

[하아아-]

[후이이-]

반대편에 앉은 쥬시마츠가 한숨을 내쉰다. 이런 레스토랑에 온 적이 없으니까, 연습이란 걸 알지만 긴장하고 만다.

더군다나, 카라마츠는 카라마츠가 아닌 것 같고.

[카라마츠형, 굉장해. 아까도 그렇고 방금도 그렇고, 완전 딴 사람 같아]

[, 그러게. 이게 녀석의 연기력인 건가]

 

이 연습은 그야말로 카라마츠의 무대였다.

오랜 시간 봐왔던 차남은 온데간데없고, 상큼한 미소를 띤 채, 요리를 내오고, 다 먹은 접시를 치우고, 잔에 물을 채운다. 그 타이밍이 너무도 완벽해, 우리는 애타게 기다릴 필요조차 없었다.

물론, 이번에는 토미오씨가 요리를 다 만들어둔 덕분에 그냥 옮기기만 할 뿐이고, 손님도 우리 두 명뿐이라 여유가 있는 거겠지만.

나도 쥬시마츠도, 이런 최상의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올바른 판단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카라마츠의 움직임은 그간 몇 번인가 보아온 라이야씨의 움직임만큼이나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디저트와 식후 커피마저 다 마시고, 계산 하는 척을 하며 다시 레스토랑을 나온 나와 쥬시마츠가 타이가씨에게 손짓을 하자, 오너와 토미오씨가 카라마츠에게 박수를 보냈다.

[진짜 굉장하잖아, 카라마츠군! 이거라면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어]

[그러니까. 라이야보다도 상큼하던 걸]

[시끄러, 아저씨들!]

두 사람을 물어뜯을 듯 노려보며 소리치던 라이야씨는 볼을 잔뜩 부풀리곤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 진짜 짜증나. 이몸이 몇 년이나 걸려서 몸에 익힌 걸 단 몇 시간만테 마스터하다니! 열 받아!]

[그런 거 아닙니다]

상큼한 웨이터에서 평소의 카라마츠로 돌아온 녀석이 눈썹을 살짝 낮추며 말했다.

[나는 단순한 연기니까요. 설정B의 웨이터를 연기할 때만 그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라이야씨처럼 몸에 익은 행동이 아니니까요. 긴장을 늦추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올 걸요]

거기서 한번 한숨을 내쉬고, 낮췄던 눈썹을 다시 반듯하게 올리고 눈에 힘을 줘 말한다.

[하지만, 제대로 연기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까, 라이야씨는 부디 누님 곁에 있어주세요]

놀란 건지, 라이야씨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곧 힘을 빼고 하핫, 하고 웃는다.

[건방진 말 하기는-]

일어나 카라마츠를 내려다보던 라이야씨는 그대로 카라마츠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오른손을 슥 내밀었다.

[부탁할게]

악수에 응한 카라마츠는 눈을 가늘게 하고 웃으며 네, 하고 강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가볼게. 화요일에는 돌아올 테니까]

손을 흔들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라이야씨는 펜션을 나갔다.

[뭐야, 점심 정도는 먹고 가지]

안 먹고 갈거면, 담아서 가져가기라도 하지, 라고 덧붙이며 토미오씨가 부엌으로 향했다.

[더는 한심한 모습 보이기 싫은 거겠지. - 배고프다. 우리들도 밥 먹자고]

카라마츠군, 라이야 몫까지 먹어도 돼, 라고 덧붙인 오키토라씨가 기지개를 켜며 토미오씨를 뒤따라갔다.

[하핫, 아무리 제가 먹성이 좋아도 2인분은 무리라구요]

마지막으로 카라마츠가 헤실헤실 웃으며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극장의 막이 내려간 것처럼, 레스토랑의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어쩐지 아직도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나는 손짓에 이끌려 타이가씨 건너편에 앉았다. 쥬시마츠도 따라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설정B, 어떤 인물로 설정한 건가요?]

[계속 동경해오던 웨이터 일을 처음 하는 청년. 일이 즐거워 참을 수 없음이라고 썼어. 그 뒤의 세세한 부분은 녀석이 덧붙인 거겠지]

그런 간단한 말로 녀석은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감탄을 넘어서 살짝 두려울 정도다.

[놀랐어?]

[. 솔직히, 다른 사람 같아서]

[괜찮아, 자기도 연기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으니까. 부상의 후유증도 없어 보이고, 다행이네-]

욱신, 가슴이 아파오는 건, 나보다도 카라마츠를 더 잘 아는 선배에 대한 질투와 죄책감 때문일 테지.

[저 상처, 저희 형제가 그런 거예요]

입밖으로 튀어나온 말들은 자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지독한 짓이었는지를 재확인시켰다.

나는 이 손으로, 카라마츠를 죽일 뻔했다. 죽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녀석의 자유를 빼앗을 뻔했다.

괴롭다, 녀석의 몸이 무식할 정도로 건강했던 덕분에 목숨에 지장이 없었지만, 머리는 7바늘을 꿰맸고, 왼팔과 왼발은 뼈에 금이 갔다.

그랬구나, 라고 중얼거린 타이가씨는 어째선지 나와 쥬시마츠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이미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녀석을 괴롭히진 말라고. 저 녀석 우리 간판 배우니까 말이야]

[카라마츠형, 그 때, 타이가씨한테 갔어?]

[왔어, 붕대를 감은 채로 말이야. 오랜만에 축 쳐져서 왔으니까, 기분이 풀릴 때까지 같이 대본을 읽었지]

저 녀석, 우리 때문에, 우울증, 다시 생겼을 거야, 분명, 몇 번이고 죽여왔겠지. 진짜로 죽지 않도록.

죽을 만큼 괴로웠을 텐데, 살기를 택해준 거구나.

[역시, 알고 계셨군요. 카라마츠의, , ]

내가 말하기를 망설이자, 타이가씨는 그걸 헤아리곤, 알고 있었어, 라며 끄덕였다.

[부활동 하면서 몇 번이고 실신했을 정도니까, , 부장이었고, 내버려둘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물어봤는데, 솔직히 쇼크였어. 그래도 연극부에 넣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조금은 치유가 되는 것 같았으니까]

이 일을 계기로, 타이가씨는 심리학을 배우게 되었다.

임상 심리사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아르바이트까지 뛰는 바람에 학점이 떨어져 지금은 휴학중이라고 했다.

한심하게 생각 말라고 선배는 웃었다. 이 사람은 남이나 마찬가지인 후배를 이렇게나 아끼는데, 그에 비해 우리들은 피와 세포를 나눈 형제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이번에 카라마츠가 너희들 두 사람을 데려와서 엄청 안심했어. 형제한테 연극이나 이런저런 얘기를 제대로 하게 됐구나, 하고]

[우리들이 억지로 말하게 만든 거예요]

그렇게 말하자, 타이가씨는 녀석 고집불통이니까, 라며 살짝 웃었다.

[가능하면 응원해줬으면 해. 나르시스트 탐정은 이제 그만둔 것 같고]

[, 응원할게!! 앞으로는 제대로 형한테 좋아한다고 할 거야!]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네요]

고개를 든 내게 타이가씨는 안 늦었다고, 라며 씨익 웃었다.

나와 쥬시마츠는 그 후, 오너에게 프론트나 벨보이의 일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뭔가를 한번에 외우기는 고교 이래로 처음이라 갑자기 피곤이 쏟아졌다.

게다가, 타이가씨에게 받은 카라마츠의 웨이터 영상 2종류를 의문의 텐션으로 편집하는 바람에, 카라마츠에게 간지럼형을 내리겠다고 결심했던 걸 말끔히 잊어버렸다.

 

다음날부터 카라마츠는 낮에 3시간, 저녁에 4시간, 설정B의 웨이터 연기를 선언대로 깔끔하게 해냈다.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는 오너도 웨이터 일을 거들었고, 그 동안에 타이가씨는 주방일을, 나와 쥬시마츠는 로비를 지켰다.

정신없는 2일째가 끝나가는 밤, 프론트를 오너에게 넘기려던 때, 카라마츠는 단 하루만에 연기와 상관없이 라이야와 똑같이 일을 해내게 되었다, 라고 오너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라이야한테 말하면 또 삐질테니까 비밀이네]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오키토라 오너는 다시금 씨익 웃었다.

[너희들도야. 덕분에 라이야가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네]

[정말임까? 에헤헤, 아싸아-!!]

이렇게 면전에 대고 칭찬받는 건 엄청 기쁘긴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엄청 부끄럽다.

쥬시마츠처럼 솔직하게 기뻐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평소에는 청산유수처럼 터져나오던 말들이 지금은 전혀 나오질 않는다.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금 새빨개지는 얼굴을 보고, 재밌다는 듯 웃은 오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따.

[이런 건 나보다 타이가가 더 잘하지]

살짝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오키토라씨는, 조카바보지, 라며 웃는다.

[그 녀석, 극단에서 감독인지 연출인지를 해서 그런지,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게 특기란 말이지]

[그래서 우리들도 그렇게 간단히 채용하신 건가요?]

[그런 것도 있네. 타이가가 데려온 녀석한테 흠은 없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실례인지도 모르겠다만, 흥미가 있었거든. 녀석한테 카라마츠군은 종종 들었고, 형제들에 관해서도 들어봤으니까 말이야. 니트라는 거라든가]

[하하, 부끄럽네요]

[, 하지만 같이 일해 보니까,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단 걸 깨달았네. 자네들, 괜찮은 녀석들이야]

그렇지 않다, 고 생각한다. 나는 자격증도 갖고 있지 않고, 남보다 뛰어난 점도 없다. 지금은 그저, 이 성가신 성격이 우연하게도 도움이 됐는지 모르지만, 다른 곳이었다면 그다지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능력보다도 용기를 내느냐 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네]

그러니 자신을 가지렴, 이라고 오키토라씨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자, 목이 타들어갈 듯이 뜨거워졌다.

 

한 주가 끝나고 화요일 아침, 라이야씨는 완전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것도 완전히 조카바보가 돼서.

큰맘 먹고 입원시킨 게 옳았던지, 누님의 컨디션도 회복되고, 무사히 건강한 딸아이가 태어났다는 모양이다.

[정말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더라니까, 한심하게도. 옆에 있어주는 것밖에 못한다고]

분만실에 따라간 라이야씨는, 장렬한 분위기에 압도된 채 계속 누님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게, princess! cute!]

역시 혼혈. 라이야씨는 깔끔한 발음으로 princess를 연발하며 모두가 아침밥을 먹는 옆에서 핸드폰으로 찍어온 사진을 들이밀었다.

사진 속에는 흑발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성과, 그 품에 안겨서 푸른색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바라보는 작고 귀여운 아기, 그리고 두 사람을 지키듯이 누님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은 채 사진을 찍는 라이야씨가 있었다. 이거, 누님의 남편분이 있을 자리가 없어 보이는데.

[보라고, 누님이랑 똑같지? 그야말로 princess!! 머리와 눈동자 색은 날 닮았다고!]

[어이, 그 말은 좀 위험하잖나. 네가 말하면 농담이 아닌 것 같다고]

[남들한테는 제대로 격세유전[각주:8]이라고 말하라고-. 네가 아니라 네 아버지를 닮은 거니까]

[아니, 내가 누님을 더럽힐 리가 없잖아. 오히려, 처녀 수태라고 하는 게 더 현실적이겠다]

헤실헤실한 얼굴로 사진을 보면서, 그 멍청한 자식이랑은 안 닮았으니 진짜 그럴지도, 라고 중얼거리는 라이야씨를 본 오너와 토미오씨가, 못 말리겠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시끌벅적한 대화를 바라보며, 형제들 중에 누군가가, 예를 들어 카라마츠나 쥬시마츠가 훗날 결혼을 하고 애를 갖게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두 사람 다 아이들을 좋아하니 자식바보가 되는 건 틀림없겠지. 행복한 표정으로 두 사람과 똑 닮은 아이를 안고서 내게도 보여주겠지.

쵸로마츠 이것 봐라, 쵸로마츠형 이것 봐! 그래, 라고 말하며 나는 두 사람의 듬직한 팔에 편안하게 안긴 자그마한 생명을 상냥하게 쓰다듬거나 하겠지.

그런 상상을 했더니, 어쩐지 라이야씨의 마음이 무척이나 이해가 됐다.

 

 

 

 

* * *

 

 

 

 

욕실에서 나와 거실로 가니, 먼저 들어갔던 형 두명이 제각기 흩어져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왔어]

그렇게 말한 오소마츠형은 안심한 얼굴로, 빨리 보자고, 라며 날 자리에 앉혔다.

[먼저 봐도 되는데]

[아니아니, 이 편이 감상 말하기 쉽잖아]

이치마츠형은 여전히 방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과 입이 누그러져있다.

1월도 곧 끝이 나는 월요일, 10, 훗카이도에 있는 3명도 이 시간에는 한가한 모양인지 매일 이런저런 연락을 보내온다.

전화 너머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메일도 자주 쓴다.

훗카이도로 가버린 3명과 연락이 닿은 2일후, 오소마츠형과 이치마츠형은 짜고 치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핸드폰을 사서, 다같이 LINE을 하게 됐다.

둘 다, 카라마츠형이 보내준 사진에 있던 것과 같은 기종을 사와서, 어쩐지 쓸쓸해진 나도 같은 기종으로 바꿨다.

그걸 엄마한테 말했더니, 같이 가게에 가서 사면 깎아줄지도 모르는데, 라고 했다.

아니, 상가의 옷가게랑은 다르다구, 마츠요씨.

오소마츠형의 재촉에 내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자, 내게도 세명과 똑같은 메일이 와있다.

쵸로마츠형은 선언대로 쥬시마츠형과 카라마츠형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종종 보냈다.

그 동영상의 편집기술의 퀄리티가 신경 쓰여서 검색을 좀 해봤더니, 우리 삼남님은 아이돌 오타쿠 동료들과 함께 동영상을 편집해 올리곤 했던 모양으로.

발견한 계정의 팔로 수는 3만을 넘어, 글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평가는 모두 높아서 단골 랭킹러였다. 솔직히 좀 깼다.

춤춰보았다, 같은 영상이 많았는데. 예의 하시모토 냥으로 시작해서 여러 아이돌의 곡에 맟춰, 딱 봐도 오타쿠스러운 복장의 남성 세명이, 외형만 봐선 상상이 안 되는 발랄한 댄스나 오타계 댄스 등을 선보였다.

다들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센터에서 제일 신나서 추는 게 우리 삼남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다가, [신강림!] 이나 [야생의 프로] 같은 코멘트가 넘쳐나는 걸 봤을 때의 나는 거의 부처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모든 것을 체념한 수준이었다.

 

[그럼, 우선 쵸로마츠부터]

오소마츠의 말에 메일함을 열었다.

오늘은 캐릭터 붕괴 주의!라는 제목으로 짧은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같은 얼굴인데 엄청난 미남으로 봐버리는 난 이미 틀린 걸지도 몰라

라는 드물게 담담하게 적어 보낸 문자에서 쵸로마츠형의 감정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진지한 얼굴의 카라마츠형이 하얀색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고, 나비넥타이를 한 채 위에 단추를 하나 풀어헤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가 있다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그 장소의 일부인지, 당구대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오른손을 턱에 댄 채로 공의 위치를 내다보고 있다.

살짝 낮은 위치에서 찍는 바람에, 어쩐지 깔보는 듯한 기분, - 이거, 위험하다.

나인볼(당구의 종목 중 하나)을 하는 건지, 8번은 브레이크 샷으로 이미 떨어졌고, 테이블에는 7번과 9번만 남아있다.

하지만, 수구에 가까운 건 9, 어떠한 테크닉을 써서 먼저 안쪽의 7번을 떨어뜨려야 승산이 있다.

천천히 당구대를 둘러본 카라마츠형은 수구 근처에 멈추고는 자세를 낮춘 후, 먹이를 쫓는 맹수 같은, 평소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두 적구를 쳐다본다.

정면샷에 줌까지 땡기다니, 쵸로마츠형, 이러면 내가 노려지는 것 같잖아.

목표를 정한 건지 큐대를 다시 고쳐 잡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딱, 하고 수구를 한번에 쳐낸 카라마츠형은 씨익 입가를 올려 웃는다. 그 표정에서 수컷의 향이 넘쳐흘러 깜짝 놀랐다.

이것 봐, 역시 위험하다고!! 네네, 알겠다구요. 엄청난 미남이란 거 알겠다구요!

, 꽤 하는데

아아. 좋은 궤도로군

같이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손님일까.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남자들의 말대로, 따닥, 하고 흰색공은 당구대 끝에 부딪혀 궤도를 바꾸고 7번공을 친다.

데굴데굴 구멍에 이끌리듯 굴러간 7번공은 그대로 떨어진다.

그걸 끝까지 지켜본 듯, 큐볼은 다시 모서리에 부딪혀 날아가 하나 남은 9번공에 직격한다.

Bien!

박수와 환호성 사이에 외국어가 섞여 들려온다.

이미 카라마츠형의 특기는 실컷 봤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지만, 정말 당구 같은 건 어디서 배운 건지.

으갹! 당했다아! 너 말이야, 선배한테 져준다던가 그런 거 없는 거냐?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 상대는 나가소네 타이가씨인 것 같았다. 카라마츠형을 아르바이트에 꽂아준 장본인이자 연극부의 전 부장.

죄송합니다. 그걸 조절할 정도로 잘하지는 않아서

큭큭 웃으며 말하는 카라마츠형은 아까까지 보였던 짐승 같은 모습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평소처럼 폼도 잡지 않은 채 눈썹을 아래로 낮추며 오히려 귀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어쩐지 분해진다. 어째서 저 미소를 보이는 게 내가 아닌 건지.

무심코 흘러나온 한숨. 오소마츠형도 같은 타이밍에 한숨을 내쉰다.

[정말 카라마츠형한테서 안쓰러움을 빼버리면 위험하네]

이제, 이거 그냥 단순한 훈남이잖아. 같은 얼굴이라고 아무도 생각 안 할걸.

[그러게-. 내 동생, 완전 멋지잖아]

내 말에 동의한 오소마츠형은 말투와 달리 살짝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는 간다. 지금까지 몰랐던 카라마츠형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쩐지 마음의 거리마 멀게만 느껴진다.

[이치마츠, , 티슈]

오소마츠형이 각티슈를 던진 곳에는, 이치마츠형이 얼굴을 붉힌 채 헉헉 거리며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 설마, 아까 그 짐승 같던 카라마츠형한테 흥분한 거야?

 

이치마츠형이 코에 휴지를 말아넣는 걸 흘끗 보고는, 쵸로마츠형한테 온 동영상을 끄고 다음 메일인 쥬시마츠형의 메일을 열었다. 쥬시마츠형은 사진과 영상을 보내왔다.

사진은 삼남이 딱 붙은 침대 옆까지 굴러가서 차남의 팔을 껴안고 자는 장면이었다.

형들이 사이가 좋아 보여서, 나도 기뻐!! 손을 잡고 자면, 그 날의 싱크로율이 높아진대!

쥬시마츠형, 단순히 손을 잡기만 한 레벨이 아니라고, 이거. 그보다, 쵸로마츠형 우리집에서는 가만히 누워서 잤으면서, 이렇게 굴러다니다니. 원래도 높은 카라마츠형과의 싱크로율을 그렇게 더 높이고 싶은 거야?

동영상은, 두 사람이 판나 코타를 먹으면서, 탱글탱글하네!』『탱글탱글하네라며 겉모습을 본 감상을 동시에 말하고, 스푼을 들어 똑같이 움직여 큰 접시에 담긴 판나코타를 떠 입에 넣으며 맛있어!』『맛있네!라 크게 외치면서 동시에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짜고 치는 거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마, 두 사람도 무의식이겠지.

[우와-, 놀래라. 쵸로짱이 귀여워-]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하는 오소마츠형. 말투는 밝지만, 표정은 예전의 미소와 어딘가 다르다.

[이거, 위험한데. 쥬시마츠형과 카라마츠형이라면 이해하지만, 쵸로마츠형한테 이런 깜찍함 없으니까]

그렇게 답하자, 오소마츠형은 그렇지? 라고 말하며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세 사람이 나간 후부터, 장남은 어딘가 부족한 듯한 미소를 곧잘 짓게 되었다.

하는 말이나 말투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표정은 나이에 맞게 어쩐지 차분해졌다. 처음에는 위화감만 들었지만, 2개월이 지난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다.

흘끗, 방구석을 보자 이치마츠형이 이번에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번민하고 있었다.

뭐어, 이해는 하지만.

 

마지막 한 통, 카라마츠형한테서 온 메일에는 사진이 2개가 왔다.

두 사람 다 제법 호텔 종업원답지 않나

라는 메시지와 함께 첨부된 사진 한 장에는, 제복차림의 쥬시마츠형이 오른손에는 손님의 짐을 들고, 왼손으로는 여성손님을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쥬시마츠형이 뭔가 재밌는 말이라도 한 건지, 여성과 그녀의 부모님이 즐겁게 웃었고, 쥬시마츠형도 마찬가지로 기뻐보였다.

소매에서 제대로 손을 내놓고, 긴 바지를 입은 쥬시마츠형은 입을 헤- 하고 벌리지도 않았으며 초점도 제대로 맞았다.

다른 한 장은, 쵸로마츠형이 프론트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사진이었다.

깔끔하게 정돈한 머리에,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셔츠. 본가에 있을 때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세련되어 보이는 게 미스테리다.

화를 내는 것도 식는 것도 빠르고, 희로애락이 금방 얼굴에 드러나는 삼남이, 이렇게 차분한 표정으로 접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구에서 이겨서, 리프트 할인권을 얻었다. 그래서 모레 셋이서 타러 갈 예정이다~

그렇구만, 할인권이 걸려 있어서 그렇게 진지했던 거구나.

내기에 약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조금 안심을 한다. 게다가 어미에 물결표시 붙이는 것도 변하지 않았고.

펜션 근처에 스키장이 있어 쉬는 날에 종종 간다는 걸 얼마전에 들었다.

그 직후에 보내온 동영상에, 쵸로마츠형이 스키, 카라마츠형과 쥬시마츠형이 스노보드를 타고 있었다. 세 사람 다 프로 선수 못지않은 실력이었다.

[......모레가, 기대 돼]

어느새 부활한 이치마츠형이 구석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낟.

[그렇네. 분명 엄청난 동영상을 또 보내오겠지?]

고개를 끄덕인 이치마츠형은 입가가 평소보다 살짝 올라가 있다. 오소마츠형과는 다른 방면으로 사남은 변했다.

어떤 화학변화를 일으킨 건지, 카라마츠형과 연락이 닿고 이틀 후, 이치마츠형은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쓰는 모습을 봤을 땐, 너무 놀라서 살짝 이성을 잃을 정도였다!

아르바이트 장소가 우연히 카라마츠형이 일했던 곳이어서, 그것을 계기로 친구라곤 고양이밖에 없던 이치마츠형이 직장 사람들과도 곧잘 지내는 모양이다.

때때로, 카라마츠형한테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 목소리가 전보다 부드러워진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오히려 카라마츠형을 좋아한다는 걸 조금도 숨기지 않아서 살짝 기분 나쁠 정도다.

 

두달 동안, 나도 다소의 성장을 거쳤다.

이치마츠형보다 일주일 늦게, 대략 12월 중순부터 셀렉트샵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카페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카페나 음식점 같은 가게에서는 카라마츠형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섹시계? 큐트계?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보내온 건 쵸로마츠형. 세명이 저쪽에 가고 대략 5일 정도 지났을 무렵의 영상인 것 같았다.

눈앞에서 이걸 당했다고. 나랑 쥬시마츠의 기분을 느껴!!라며 뒤에 빠직 표시를 붙인 문자에, 뭐지? 라며 궁금증을 안고 누른 링크에는, 어떤 동영상 사이트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삼남의 계정인 듯, 한정적으로 공개된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문자와 효과음, 무의미하게 편집 된 영상 속에서 카라마츠형이 섹시함과 큐트, 두가지 버전의 웨이터로 변신해 있었다.

오소마츠형한테 카라마츠형이 옆 카페 일을 도왔다는 걸 듣긴 했지만, 어째서 갑자기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섹시 버전은, 웨이터라기보다 호스트에 더 가까워, 나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요염함이 넘쳐흘렀다.

큐트 버전은, 분위기만이라면 나도 가능할 정도였지만, 손끝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쓴 그 몸짓만큼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딱히 나와 겨루겠단 생각으로 보낸 건 아니란 걸 알지만, 카라마츠형 이상의 퍼포먼스는 나로선 불가능하단 것이 억울했다.

그래서, 카라마츠형이 못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해서 고른 것이 옷가게 아르바이트.

손님을 접대하는 건 카페나 여기나 마찬가지지만, 다루는 게 음식이 아닌 의복이라면 내 특기니까 자신 있다.

안쓰러운 복장의 중2병이 연기였다는 모양인데, 가죽재킷이나 커다란 해골이 박힌 벨트는 자기가 좋아서 입은 거라고 하니까.

안 어울렸던 건 아니지만, 카라마츠형의 패션센스가 좀 그렇다는 걸 알게 되어 기뻤다.

마음에 들어 하던 퍼펙트 패션은, 어떤 심정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처분해 버린 것 같고, 돌아올 때 내가 세 사람의 옷을 코디해주자, 그렇게 결심했기에 아르바이트 중에도 형들에게 어울릴 코디를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음식을 보내줬는데, 전화로 고맙단 말밖에 전하지 못해 조금 슬펐다.

그럴게, 펜션의 주소도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고, 보내오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특정할 수 있을만한 정보마저도 적어서, 검색으로 몇 가지 후보를 추려봤지만 세명이 있는 정확한 장소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안다고 해서 만나러 갈 용기는 없지만.

그래서 요즘 들어, 빨리 돌아와 줬으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만.

나도 그렇게 솔직한 성격이 아니니까, 본심을 직접적으로 전하지는 못한단 말이지.

 

 

 

 

 

* * *

 

 

 

 

 

[Bonjour, frères Matsuno! (안녕, 마츠노 형제!)]

[우오!]

[우악!]

[우햐!]

화요일 아침,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려 휴게실에 들어선 순간, 누군가가 우리 셋을 확 끌어안는다.

범인은 실벵 니베르씨, 지난주부터 아프로디테방에 묵고 있는 프랑스인으로, 패션 디자이너라고 한다.

나는 그 브랜드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토도마츠한테 얘기했더니 이러니까 싼티마츠형은-’ 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20분가량을 거창하게 설명했다. 아무래도 유명한 브랜드인 모양.

[아아, 좋은 아침입니다, 실벵씨]

[실벵씨!! 오하, 4, 6, 3노 겟츄-!!]

[Bonjour, Sylvain! Vous êtes aussi belle que toujours. (좋은 아침입니다, 실벵. 당신은 언제 봐도 아름답군요)[각주:9] ]

카라마츠가 오랜만에 폼을 잡고 늘씬하고 고운 갈색 손등에 입을 맞추자, 실벵씨가 아이 차암~이라며 몸을 배배 꼬았다.

뭐라고 말했냐고 옆에 있던 차남에게 작은 목소리로 묻자, 오늘도 아름답군요, 라고 했단다.

2병 캐릭터는 관뒀지만, 카라마츠는 결국 이런 로맨틱하고 오글거리는 게 좋은 모양이다.

[우후후,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걸! , 그보다 쥬짱 그 용로쿠(앞에 쥬시가 한 4,6,3노 겟츄)란 게 뭐야?]

[으음, 야구 용어야!]

야구 정말 좋아하는구나, 라고 그녀는 웃으며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아침 같이 드실래요?]

[으음. 그래도 괜찮아, 쵸로짱? 사실 일식이 먹고 싶어서 카라짱한테 부탁하러 온 참이거든]

부탁이라니, 우리 차남의 답은 정해져있을 텐데.

[Bien entendu(물론이죠!)]

이 대사는 몇 번이고 들었으니 나도 기억하고 있다. “물론이죠!” 였지.

발랄하게 앞치마를 두른 카라마츠를 본 실벵씨는 귀여워서 버틸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 지어도, 안 줄 겁니다. 이건 우리 차남이라구요.

 

모델도 겸해서인지, 키도 크고 몸매도 좋다. 머리는 옅은 핑크빛의 숏컷으로, 얼굴도 예쁘장한 미형이지만, 그녀는 어엿한 남성. , 오카마다.

그녀가 체크인했을 때 내가 프론트 담당이어서, 오너에게 미리 일본어가 가능하다는 것도 오카마라는 것도 들었지만, 시커먼 코트에 몸을 감싼 키 큰 여성이 날 내려다보고 있어서 솔직히 식은땀을 흘렸다.

[, 봉쥬르 마담 니베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라마츠에게 배운 프랑스어를 더듬더듬 말하자, 무슈가 아니라 마담[각주:10]이라고 한 게 마음에 들었던지, 실벵씨는 활짝 웃었다.

[, 옮겨드리겠슴다!]

마침 장부 기록을 끝냈을 때, 쥬시마츠가 기운 좋게 등장했다. 나와 같은 얼굴이어서인지 실벵씨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 Bonjour, madame! Bienvenue à Ville Étoile! (안녕하세요, 마담! 빌라 에투알에 어서오세요!)]

게다가, 룸 서비스를 끝내고 돌아오던 카라마츠가 등장하자 그녀는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다.

[Êtes-vous triples?! (너희들 세쌍둥이니?!)]

[En fait, nous sommes sextolet. AhSorry, I can't say in French. The other brothers are at home. (사실, 여섯명입니다.[각주:11] ...죄송해요, 프랑스어를 잘 못합니다. 다른 형제들은 집에 있어요) ]

중간에 영어로 바꿔 말하며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축 늘어뜨리는 카라마츠의 어깨에 실벵씨가 손을 툭 얹으며 씨익 웃었다.

[괜찮아. 여긴 일본이니까. 프랑스어를 사용해준 것만으로 기뻐! 발음이 엄청 좋구나! 그보다, 6명이라니, 굉장한 걸. 처음 봤어]

원어민에게 칭찬을 받아 기뻤던 건지 카라마츠가 수줍은 듯 웃는다. 그 미소는 내가 봐도 귀여웠는데, 역시나 이 누님에게도 그랬던 건지 어머나~ 라고 외치며 카라마츠를 확 껴안았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지 그대로 안겨 있는 카라마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 멍하니 서있는 나와 쥬시마츠. 이 수습 불가능한 상황을 정리해준 건 오너인 오키토라씨였다.

[얌마, 실벵! 우리 종업원은 터치 금지라고!]

아무리 친구라지만 상대는 손님. 하지만 가차 없이 핑크색 머리에 꿍, 하고 주먹을 박는다.

[아프다구! 무슨 짓이야]

[내가 할 말이거든. , 내려 놔 얼른!]

[또 귀여운 애들을 뽑았잖아~ 오키토라. 이런 취향?]

[타이가의 후배인 마츠노 카라마츠군과 그 형제인 쵸로마츠군과 쥬시마츠군]

[그렇구나. Sylvain Nivers. 실벵이라고 불러줘]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하며 그녀와 악수를 나눴다.

머무는 동안 즐거울 것 같아, 라고 말하곤 쥬시마츠의 에스코트에 따라 싱글벙글 웃으며 객실로 향하는 그녀를 배웅한 오너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적당히 봐달라고. 그래도 너무 봐주면 엉덩이 만져대니까 그건 막아]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우리 셋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 토미오씨가 당하는 걸 본 적은 종종 있지만.

 

카운터식 주방에서 카라마츠가 솜씨 좋게 아침밥을 만드는 걸, 우리는 똑같이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국물을 내는 동안에, 된장국에 넣을 유부와 소송채를 썰고, 계란말이를 뒤집고, 그릴로 생선을 굽는 걸 잠자코 보았다.

잘도 저렇게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구나, 싶었다.

나는 요리에는 재주가 없다. 요리를 태운다거나 간을 못 맞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번에 여러 음식을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한가지 음식을 만드는 거라면 괜찮지만,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게 도무지 되질 않아서, 한끼 식단을 차려내거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된장의 냄새가 감돌고, 오너와 토미오씨, 타이가씨, 라이야씨가 들어왔다.

[-, 럭키. 카라마츠의 아침!!]

[Bonjour! 실례 좀 할게. 타이가, 여기로 와]

실벵씨 말대로 타이가씨가 싱글벙글 웃는 실벵씨 옆에 앉고, 다른 셋은 뒷자리에 앉았다.

앞치마를 벗은 카라마츠가, 나와 쥬시마츠 사이에 앉음과 동시에 다들 손을 합장했다. 나는 우선 된장국을 먹었다.

본가에서 쓰는 된장과는 달라서인지 엄마가 해주는 된장국과는 맛이 달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맛에 익숙해졌다.

[어머, 이 달걀 맛있네. 너희 마마의 맛?]

[. 어머니께서 가르쳐준 겁니다]

[그렇다기 보단, 이미 카라마츠의 맛이나 마찬가지지만요. 중학교 때부터 녀석이 도시락을 만들어 줬거든요]

[나도, 카라마츠형의 달걀말이 좋아해!!]

오늘 건 김이 들어있었다. 기쁜 걸, 내가 좋아하는 거야.

[그렇군. 어쩐지, 많은 양의 요리에 익숙해 보이더라니]

뒤쪽 테이블에서 말한 건 토미오씨였다. 그야, 우리는 8인 가족이니까. 게다가 고교 시절에는 형제들 전원 식욕이 엄청났었고.

오너가 된장국의 맛을 칭찬했고, 나는 연어가 딱 알맞게 구워져서 좋다며, 라이야씨가 덧붙였다.

[, 언제라도 좋은 사위가 될 수 있겠는 걸]

[우리 집에 와도 된다고? 세명 묶어서, 대 환영!]

농담을 던진 타이가이쎄 실벵씨가 진지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런 대화를 들으면서 카라마츠가 쑥쓰러운 듯, 하지만 기쁜 듯한 미소를 지었다.

, 돌아가고 싶지 않아. 라고 갑작스럽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왜 이 타이밍에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 계속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 먹었습니다. 엄청 맛있었어!]

다 먹은 실벵씨는 방으로 돌아가려 자리를 떴다.

카라마츠의 앞치마 차림에 영감을 얻었으니, 잊어버리기 전에 그려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청소 안 해도 괜찮아]

[알겠습니다. 나중에 시트만 교체하러 가겠습니다]

토미오씨와 카라마츠는 오늘의 메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아직 시간이 남은 라이야씨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었다.

타이가씨와 오너가 옷을 갈아입으러 나가려는 순간, 벤씨와 유메노씨가 출근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의 뒤로, 위장복을 입은 체격이 좋은 남성이 무표정으로 서성거렸다.

[여어, 지에이. 좋은 아침]

토미오씨의 인사에 가볍게 손만 꺼내 든 그 사람은 유메노씨의 남편으로, 벤씨의 사냥 동료이기도 했다.

일본인답지 않게 뚜렷한 이목구비, 흰머리가 드문드문 섞인 장발을 질끈 묶었고,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길게 연결되어 자라있었다. 귀에는 귀걸이, 발목부터 온몸을 담쟁이 넝쿨이 휘어감은 듯한 문신이 있었다. 그리고 왼쪽다리는 허벅지 중간부터 의족이었다.

이 모습만 봐선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을 법도 하지만, 마루이케 지에이씨는 오키토라 오너의 구급대원 시절 동료로,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부상을 당해 구급대원을 그만두고, 원래 인간보다 식물을 좋아했다며 삼림 관리과에 재취업했다고 한다.

주에 몇 번인가 유메노씨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기에 자주 만나지만,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주고받게 된 건 최근이다.

유메노씨가 말하길, 부끄럼쟁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날씨가 개서 다행이구만. 좋아, 슬슬 나갈까. 쥬시마츠, 겉옷 챙겨라]

[여기있슴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코트를 입은 쥬시마츠, 카라마츠가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며 벤씨와 지에이씨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쥬시마츠를 잘 부탁합니다]

[, 우리가 쥬시마츠랑 같이 가고 싶은 것뿐이라고. 그렇지, 지에이?]

벤씨의 말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지에이씨에 카라마츠는 안심한 듯이 옅게 웃었다.

[벤씨, 차랑 식사 준비했으니까 가져가]

토미오씨가 내민 보온병과 봉투를 받아든 쥬시마츠가 스노 부츠를 제대로 고쳐 신고는 히죽 웃었다.

[그럼 다녀오겠스루-!!]

[아아, 조심히 다녀와라]

[두 분 말씀 잘 듣고, 위험한 행동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알고 있다구요, 쵸로마츠 엄마!]

사슴 사냥을 떠난 셋을 배웅한 나는 유메노씨와 서로 눈이 마주쳐, ‘오늘도 청소 힘내요!’라는 의미를 담아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비를 둘이서 반짝거리게 닦아둔 후, 분담해서 각자 객실로 향했다.

스키여행을 온 사람들은 대개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방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우선적으로 청소한다.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두고, 먼지를 털고, 방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린다.

시트와 수건 등을 교환하고, 화장실과 세면대, 욕실을 깔끔하게 닦아둔 뒤에는 마지막으로 현관을 쓸어 정리한다.

, 만족. 깔끔해진 방을 보는 건 역시 기분이 좋네. 방과 함께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한, 좀 과장이긴 하지만, 그런 느낌이다.

3개의 정리를 끝내고, 다음 방으로 이동하려 로비로 돌아가니, 옆쪽 복도에서 걸어오던 손님과 눈이 마주친다.

[안녕하세요. 하나요시씨]

[아아, 안녕. 쵸로마츠군]

일주일 전부터 아폴로 방에 묵고 있는 우사기 하나요시씨. 한자만 봐선 여자이름 같지만, 읽을 땐 [하나요시]라고 읽는다.[각주:12]

아름다운 꽃[각주:13]이란 이름대로 미남자다. 젊은 나이로 컨설턴트 회사를 운영하는 우수한 사람으로, 매년 이 시기에 몰아서 휴가를 받아 이 펜션에 묵는다는 모양이다.

[식사하러 가시는 건가요? 이곳에서 드실거라면 그 사이에 제가 방을 청소해둘게요]

[그럼, 그럴까]

이 사람은 아침에 약한 모양인지, 늘 점심 전에 일어나 느긋하게 밥을 먹는다.

[, 바니, 좋은 아침, 이라고 해도 벌써 점심 때지만-]

[나는 바니가 아닙니다. 게다가 언제 일어나든 제 자유 아닙니까]

프론트에 돌아온 오너가 하나요시씨를 놀렸다.

이건 뭐, 늘상 있는 일로, 성이 [우사기[각주:14]]라서 [바니]라는 단순한 별명을 오너가 붙인 모양이다.

본인은 엄청 싫어하지만, 매일 꼭 한 번은, [바니]라고 불리는 게 일상이다.

[성으로 부르면 이 아저씨가 놀리니, 괜찮다면 이름으로 불러주시겠습니까?]

체크인할 때, 옆에서 히죽거리는 오너에게 질색이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서, 나는 [하나요시씨]라고 부르고 있다.

[밥 먹을 거면, 휴게실로 가. 이제 곧 붐빌텐데, 네가 오랫동안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방해라고]

실벵씨도 그렇고, 하나요시씨도 그렇고 오키토라 오너는 단골손님한테 너무 엄하다.

그래도 매년 찾아오는 걸 보면 사이가 좋은 거겠지.

[네네, 알고 있다구요]

하품 섞인 말투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휴게실로 향하는 하나요시씨를 바라보며, 카라마츠한테 무선을 넣는다.

무슨 일인가, 쵸로마츠?

[하나요시씨, 점심 드시러 그쪽으로 갔으니까]

그래, 알겠다

올해는 홀담당으로 라이야씨 말고 다른 직원이 있다는 걸 알고, 하나요시씨는 뛸 듯이 기뻐하며 브런치 담당으로 늘 카라마츠를 지명하게 됐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라이야씨도 꽤 이것저것 참견이 많은 사람이니까 조용히 먹고 싶은 사람에겐 좀 거북했을 테지.

오늘 점심 메뉴는 뭘까, 좋은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하는 레스토랑을 뒤로하고 아폴로 방으로 향했다.

하나요시씨는 나와 마찬가지로 살짝 결벽증이 있는 듯, 체크인 다음 날 방이 깨끗해졌다며 매우 기뻐했다.

[유메노씨 이외의 사람이 청소해서 이렇게나 만족스러웠던 적은 처음입니다!]

라며, 이름대로 주변에 꽃이 만발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로 말했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칭찬 받으면 더 성장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내일도 점심때까지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다른 방보다 15분의 시간을 써 청소를 끝내고, 만족감에 젖어있다 보니, 또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기에 있으면 쥬시마츠도 카라마츠도 엄청 즐거워 보이고, 나도 즐거운 걸.

그럼, 돌아갈 필요 따위 없잖아?

 

 

 

 

* * *

 

 

 

 

1월이 끝에 다다른 화요일, 아침 6.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대에 일어나서 부모님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오늘은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 7시부터 4시까지 일해서 일당 9280엔을 받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렴. 조심하고]

엄마가 웃으며 현관까지 배웅하는 건 살짝 오글거리면서도 기쁜 것이 뭔가 오묘하다.

신발을 신고 지갑과 핸드폰을 겉옷 주머니에 넣어둔 걸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칼날과도 같이 얼굴과 두피를 스쳐지나가, 잠이 확 달아난다.

집에서부터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아직 어둑어둑한 탓인지 사람이 없어 한산한 거리를 조용히 거니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여섯 형제들 중에서 반이 집을 나간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적을 돌아보곤 우울감에 빠졌다.

밥을 씹어 삼키는 것조차 고역일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고, 쵸로마츠형한테 혼쭐이 났을 땐 심장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다시 회복되는 걸 보면 나도 정말 단순한 듯하다.

토도마츠와 오소마츠형은 카라마츠가 이런저런 일들을 비밀로 하고 있었단 사실에 쇼크를 받은 듯했지만, 나는 오히려 기뻤다.

재주가 뛰어나고 머리가 좋은 뭐든 척척 해내는 차남은, 나 같은 쓰레기는 물론, 형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땅한 곳에 제대로 발휘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니트족이 아닌, 하고 싶은 대로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극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 사실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기뻤다.

초등학생 5학년 때 처음으로 녀석에게 품었던 순수한 동경을 10년만에 다시금 맛보게 되었다.

이것 봐, 역시 카라마츠는 엄청난 녀석이었잖아? 라며, 어릴 적의 내가 머릿속에서 속삭이며 쿵 하고 가슴으로 떨어졌다. 동경해도 좋아, 라며.

입밖으로 낼 정도로 솔직하게 구는 건 아직 힘들고, 약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지만, 내 안에 소용돌이치던 끈적한 감정은 싹 사라지고 말끔해진 기분이었다.

녀석은 내가 행복해질 것을 믿는다고 했다.

취직할 수 있다든가, 회사에서 잘 해낼 거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를 바랐다.

마츠노 이치마츠는 나 한 명뿐이라고, 녀석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간질이듯 들려왔을 때, 나는 온몸을 떨어댈 정도로 기뻤다.

나라는 존재를 여섯 쌍둥이로 한데 묶어버린 게 아니라, 제대로 나라는 사람을 인정해주었다.

 

다음날, 전날 자지 못한 몫을 채우듯 오후까지 잔 후, 토도마츠가 만들어둔 잡탕죽[각주:15]을 느긋하게 먹어치웠다.

[감사 인사해도 좋다고?]

라며, 귀염성이라곤 하나 없는 대사를 날려댔지만, 부드럽고 부담 없는 맛이라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몸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슬리퍼를 끌며 밖에 나가자, 지금까지 보아왔던 경치도 어쩐지 새롭게 보여,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내 안에 갇혀 살았던 거냐며 코웃음을 쳤다.

어제, 토도마츠가 발견한 장소로 가보니, 점심때라 그런지 고양이는 1마리밖에 없었다. 고등어태비의 길고양이가 찹찹 캔을 먹는 걸 보면서, 이자카야의 외벽에 기대어 안쪽에서 들려오는 라디오게 귀를 기울였다.

모여드는 길고양이들과 정체 모를 남성을 못 본 척해주는 이 이자카야의 주인은 영업 준비를 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내가 이곳에 올 때 즈음에는 벽 너머로 잔잔하게 음악이 들려온다.

다음은, 아카츠가에 거주 중인 20대 남성분의 리퀘스트입니다. 삼일천하의 아직 늦지 않았어”. 이 곡은 11월에 발매된 싱글앨범 이 몸에 잠든 짐승의 커플링 곡[각주:16]이죠-. 현지 출신 밴드네요, 응원하겠습니다! 아카츠카에 계신 다른 애청자분들도 응원 메시지 잔뜩 보내주세요-

밴드 이름에 깜짝 놀라 벽에 귀를 바짝 붙였다.

내가 좋아하는 현지의 인디 밴드는 11월 말경, 세명이 나가기 직전에 스카웃 당해 메이저로 데뷔했다.

개인용 CD 플레이어를 갖고 있지 않은 나는 CD를 사지 않았고, 그 뒤로 늘 컴퓨터를 빌려주던 삼남은 집을 나가버린 탓에 이 곡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럼, 감상하시죠. 삼일천하, “아직 늦지 않았어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되는 전주, 마치 이야기를 하는 듯 노래를 부르는 보컬.

 

이 세계는 조금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

가령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지

그렇다고 나는 모든 걸 포기하지 않아

너를 안심시켜줘야 하니까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너는 여전히 이 삶을 끝내고 싶어해

그런 말 말고 어떻게든 살아가보는 건 어때?

지금은 괴로울지라도 분명 언젠가는 완전히 뒤바뀔 거라고

아직 늦지 않았어 앞으로 180도 방향전환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이 목숨은 두 번 다시 네게 돌아오지 않아

한탄하기 전에 어떻게든 살아가보는 건 어때?

지금이 괴로울지라도 분명 언젠가는 완전히 뒤바뀔 테니까

아직 늦지 않았어 이제부터 역전극이 시작되는 거야

 

 

벽 너머로도 제대로 전해지는 목소리, 듣는 동안 저녁 때 통화했던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네가, 네 자신을 되찾고, 가능 한 행복해지는 거다

마츠노 이치마츠는, 너밖에 없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명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일까.

[냐앙]

뺨에 닿는 까칠까칠한 고양이의 혀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눈물로 얼굴이 젖어있다.

[, 상냥하네. 위로해주는 거야?]

[냐아아앙]

무릎으로 전해지는 따스함에 잠시 등을 어루만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다음에 또 보자]

머리를 쓰다듬으자, 고양이는 지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배웅하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토도마츠에게 줄 한정품이란 스티커가 붙은 롤케이크를 사고 무료 아르바이트 정보지를 챙겼다.

 

집에 돌아가니 가족 전원 나간 모양인지 현관이 잠겨있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고, 수돗물로 대충 목을 축인 뒤 거실 한가운데에 정보지를 펼쳤다.

3페이지의 한 칸에 시선이 머물렀다.

고딕체의 급구! 라는 글씨와 함께 이중으로 동그라미가 쳐진 구인글은, 쓰레기 수거 아르바이트였다.

학력불문, 미경험자 환영, 당일부터 일할 수 있는 분을 기다립니다!

쓰레기 같은 사람이 쓰레기를 수거하다니, “자신을 되찾는첫 걸음으로 딱이라고 생각했다.

일손이 상당히 부족한 모양인지, 하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니, 다음날 10시에 바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쵸로마츠형에게 끌려서 갔던 할로워크에 갔을 때 사뒀던 남은 이력서를 찾아, 같이 발견한 증명사진을 그 위에 붙였다.

가능한 또박또박 글씨를 써내려가고 있으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녀왔어-”라는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와. 냉장고에 아침의 답례 넣어뒀으니까]

[? 정말?! 고마워-, 아니, 그보다 이치마츠형! 그거, , 설마, 이력서?!]

[, 아르바이트 하려고. 내일, 면접보러 가]

다 쓴 이력서를 봉투에 집어넣으려는 찰나, 갑자기 토도마츠가 내 어깨를 붙잡고는 앞뒤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 이치마츠형이 아니지!! 우리 사남은 늘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어둠오라를 풍겨대는 히키코모리 니트족이라서 그런 액티브한 일은 안 한다고!!]

토도마츠, 너 그렇게 날이 선 목소리도 낼 수 있구나, 심한 말을 한 것 같지만 뭐어, 스스로도 놀랄 정도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 진짜 이치마츠라고. 그러니까, 떨어져 안 그럼 흥분, 해버릴지도]

이번에는 팟, 손을 떼고는 진짜다..라고 중얼거렸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혼자서 콩트라도 하는 거야? 아니면 뭔가 잘못 먹었어? 열이라도 있는 거 아냐?]

혼자서 콩트를 하는 취미는 없고, 열도 없으며, 네가 만들어준 잡탕죽밖에 먹지 않았다고 답하자, 그건 그것대로 문제일지도, 라며 토도마츠가 얼굴을 찡그린다.

[알겠어, 일단 간식 먹으면서 얘기하자]

재빨리 부엌으로 가서 홍차와 내가 사온 롤 케이크를 챙겨 돌아온 토도마츠는 롤 케이크를 숟가락으로 딱 이등분해서 건넨다.

[, 좋아-! 이거 엄청 좋아하거든. 금방 팔려버리니까 자주 먹진 못하지만. , 이치마츠형 거]

억지로 떠넘겨진 숟가락을 쥔 나는 롤 케이크를 먹으면서 어젯밤의 마음 변화를 얘기했다.

입 밖으로 내니 자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게 더욱 명백하게 느껴져, 이건 절대로 이해받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토도마츠는 아무렇지 않게 잘 됐네라고 말했다.

[엄청 이치마츠 형다운데.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거 아냐? 카라마츠가 멋진 게 하루이틀 일이야?]

일부러 을 떼고 카라마츠를 이름으로 부른 토도마츠는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케이크를 반쯤 먹은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다 쓴 이력서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저기, 오소마츠형한테도 제대로 말해두라구?]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하지만 걱정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드라이 몬스터는 빈정거리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녀석도 꽤 상냥하구나, 하고 칭찬인지 악담인지 모를 생각을 했다.

[, 알아. 돌아오면 말할 생각]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라 보고를 하자, 부모님은 뛸 듯이 기뻐했고, 오소마츠형은 한순간이었지만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정장을 빼입고 약속시간에 맞춰 면접을 갔다.

오소마츠형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일하지 않으면 또 몹쓸 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정차되어 있는 몇 대의 수거차 앞을 지나 건물에 들어갔다. 접수대에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하자 거기에 앉아있던 여성이 밝게 웃었다.

[어머! 오랜만이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이곳이 카라마츠가 일했던 회사라는 걸 알아채곤 얼굴에 핏기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맞아, 전화로 그 녀석이 말했잖아.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에는 건설회사에서 일했는데 그곳이 경영부진으로 망하자 청소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급구! 라는 건 카라마츠의 후임이 구해지지 않았다는 건가. 그렇다는 건 즉, 내가 녀석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건가.

얼굴을 새파랗게 질려서 이를 다각다각 떨고 있는 내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한 접수처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등을 살짝 두드렸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제 곧 면접이니까. 마츠노씨인 걸 알았다면 과자라도 사둘 걸 그랬네]

아니, 나도 마츠노긴 하지만 당신이 아는 마츠노는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걷고 있자, 작업복을 입은 남성 두명이 나를 알아보고 역시나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마츠노잖아! 돌아온 거냐! 다친 건 다 나았고?]

[, 뭐야, 정장까지 빼입고! , 은근 진지한 면이 있다니까. 사장님도 참 의외로 엄격하다니까 일부러 면접 같은 걸 보고 말이야]

돌아온 게 아니라 오늘이 처음입니다, 선배님. 게다가 녀석의 상처는 저희들이 그런 거구요. 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지만 목구멍이 착 달라붙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회의실이라는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접수처 누님이 가볍게 문에 노크를 했다.

[실례합니다. 면접 보러 왔는데요]

[오오, 그래. 들여보내게]

말하는 대로 얌전히 파이프 의자에 마주보고 앉자, 복도에서 본 남성들과 똑같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 두 명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도 참 짓궂네요. 마츠노씨라는 걸 말해줬으면 좋았잖아요]

접수처의 누님의 말에 왼쪽에 있던 남성이 말했다.

[그도 마츠노인 건 맞지만 다른 사람이다. 마츠노 카라마츠군의 형제지]

! 그런가요?! 라며 누님이 이쪽을 바라봐,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죄송합니다. , 몰랐어요]

[괜찮습니다. 그런 일 자주 있어서]

정정될 수 있어 살짝 안심한 탓인지 어떻게든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낮고 위축된 목소리지만.

원래 이런 목소리인데 누님은 내가 목이 말랐다고 생각한 건지 서둘러 차를 내왔다.

[그럼 확인을 위해 이름을 말해주겠나]

[마츠노, 이치마츠입니다]

차를 마신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 밝은 목소리가 나왔다.

면접은 어이없이 끝나고, 나는 그곳에서 바로 채용이 확정되었다. 직무 내용을 듣고, 건물을 안내받은 뒤, 아르바이트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런 나라도 아직 늦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물어가는 겨울의 해가 어쩐지 눈부셔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휴대폰 가게에 들러 집을 나간 세명과 똑같은 기종의 핸드폰을 샀다.

반쯤은 자신을 다그치기 위함이었다. 매달 내야하는 휴대폰 요금이란 목적이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있겠지.

나머지 반은 이게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는 부적과도 같은 거였다.

집에 돌아가니 오소마츠형이 나와 똑같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생각하는 게 똑같구나, 싶었다.

 

그 뒤로 나는 주에 3, 가정 쓰레기를 수거했다.

처음에는 히키코모리 생활로 굳어버린 몸이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2주 정도 지나자 근육통도 사라졌고 지금은 토도마츠와 비슷할 정도로 몸도 튼튼해진 듯하다.

최근에는 같이 목욕탕에 가질 않고, 본인에게 물어보면 화낼 테니까 확신은 못하겠지만.

회사 사람들은 다들 내게도 가볍게 말을 걸어주고, 면접 때 복도에서 만났던 두 사람은 날 카라마츠로 착각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하군. 우리들이 너무 성급하게 굴었어]

[살짝 분위기가 다른 것 같긴 했다만, 다쳤던 탓이라고 생각했거든]

형제들 중 누군가로 착각하는 건 날 때부터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두 사람의 사과에 오히려 놀랐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내가 말하자, 고작 그런 일이 아니잖아, 라고 답했다.

[아무리 일란성이라 서로 닮았다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인 거잖나. 다른 누군가로 착각하는 건 그 누구에게나 실례인 일이라고]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기에, 나는 놀람과 동시에 기뻤다.

다들 나와 카라마츠를 비교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아 어쩐지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저번의 마츠노는 좀 더 일을 잘 해냈는데, 이번의 마츠노는 그렇지 않다. 같은 말 정도는 들을 거라고 각오했었으니까,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아르바이트에 금방 익숙해져갔다.

 

화요일은 옆마을에서 타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로, 나는 선배 두명과 함께 수거차에 올라탔다.

카라마츠도 옆마을을 담당했었다는 모양이다. 아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건 부끄럽다느니 둘러댄 모양이지만, 아마 진짜 이유는 형제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니트인 우리들이 이런 이른 아침부터 옆마을에 있을 일은 드물었으니까.

[-, 도착했다고]

담당지역에 도착한 뒤론 줄곧 도로변이나 쓰레기통에 든 쓰레기를 수거차 뒷칸에 던져넣기만 했다.

냄새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고양이들이 잔뜩 있는 곳에서 뒹굴어댄 탓에 익숙해진 건지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 것보다도 운동부족인 탓에 숨이 찬 것이 큰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체력이 붙어서 괜찮아졌지만. 쓰레기를 지정된 봉투에 담았는지나, 타는 쓰레기 이외의 것을 버리지 않았는지 등을 체크하는 것도 전보다 빨라졌다.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해 차에 싣고,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기를 몇 시간인가 반복한 뒤, 차에 쓰레기가 가득 차면 쓰레기 처리장으로 이동한다. 낮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몇 시간 동안 일을 한다.

모든 쓰레기를 수거하면 회사에 돌아가 목욕을 한다.

카라마츠가 저녁 전에 샴푸냄새를 풍기는 게 좀 의아했었는데, 이유는 이거였던 거구나.

[그럼 이치마츠, 수고했어]

여기서는 이치마츠라고 불린다. 카라마츠를 마츠노라고 불렀으니까 구별을 위해서라는 모양이다.

그런 작은 배려가 조금 부끄럽지만 기뻤다.

[,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타임카드를 찍은 후, 마지막으로 접수처의 누님에게 인사를 한다.

[수고하세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수고했어, 이치마츠씨. , 맞다. 받은 건데, 이거 괜찮으면..]

이렇게 때때로 과자를 받는 경우가 있다. 손님이 사온 것으로 전원 받는 거겠지만, 역시 기쁘다.

쿠키를 받아들고 인사를 하자, 누님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집에 돌아가니, 빨간색 신발이 한 켤레 현관에 놓여 있었다.

거실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어서, 일단 받은 쿠키를 먹고 2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들 방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방을 나와 건너편 방으로 가 지붕을 올려다보니, 오소마츠형이 빨래를 걷고 있었다.

[이치마츠, 어서와-]

[.......다녀왔어]

태평한 말투는 전과 똑같지만, 뒤돌아보며 헤죽 웃는 얼굴은 어딘가 평소와 달라 보인다.

엄마의 명령으로 지금은 이 사람이 가사를 돕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무리 말해도 손도 까딱 안 하던 그 오소마츠형이.

처음에는 실패하기 일쑤였지만, 재주가 좋은 사람이니까 엄마한테 합격을 받을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토도마츠는 분명 천재지변이 일어날 거야! 라고 했지만, 다행히 아직 그런 징조는 없다.

빨래를 다 걷은 오소마츠형이 손에 바구니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내용물, 뭐였어?]

[....뭐가?]

[? 너한테 우편 왔던데? 탁자에 놔뒀잖아]

그러고 보니 뭔가 놓여 있던 것 같다. 나한테 올 물건이 없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끔하게 마른 빨래를 개기 시작하는 오소마츠형 건너에 앉아 나도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어땠어?]

내가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면, 형은 매번 이 질문을 한다. 토도마츠한테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평소랑 똑같지 뭐]

처음에는 피곤하다든가 힘들었다 같은 말을 했었지만,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내 대답은 매번 같았다. 토도마츠도 비슷한 듯했다.

오소마츠형은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나나 토도마츠가 어딘가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토도마츠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여기에 계속 있을 거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애초에, 떨어져서 산다고 해도 가족이란 건 변함없고.

그렇게 말해볼까 하고 몇 번인가 생각도 했지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어쩐지 모르겠어서 아직까지 말을 못하고 있다.

세명이 집을 나가게 된 계기가 된 건 나고, 그런 나를 원망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니까 적어도 속죄로서 집에 있을 때만큼은 옆에 있으려고 한다.

 

빨래를 전부 개고, 나는 우리들의 옷을, 오소마츠형은 부모님의 옷과 수건 등을 분류해 각 자리에 집어넣었다.

거실에 돌아가 보니, 탁자 위에 두툼한 봉투가 하나 놓여있었다.

[짜잔-, 형님이 차를 끓여 왔답니다-]

[고마워]

고맙다고 말하자, 오소마츠형은 헤헷, 하고 웃으며 코밑을 비볐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던 나는 봉투를 집어들었다.

봉투 겉에는 우리 주소와, 정확하게 마츠노 이치마츠님이라고 적혀있다.

배송료 400엔을 들여가면서까지 누가 보내온 거지? 라고 생각하며 봉투를 뒤집어 발신인을 확인한 나는 하?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마스야마 류타로군은 분명 카라마츠의 친구였었지?]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고]

그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인 삼일천하의 보컬이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친구의 형제라곤 하지만 무슨 이유로 내게 이런 걸 보낸 걸까. 고등학교는 같았지만 딱히 인사를 나누거나 한 적은 없는데.

신중하게 봉투를 열자, 안에는 잡지의 카피와 편지 한통, 그리고 CD 2장이 들어있었다.

[, 이거, 최근에 나온 거지? 아카츠카 출신이라 그런지 편의점에서도 팔더라. 마스야마군, 유명인이네-]

오소마츠형이 말한 대로, 한 장은 최근에 발표된 그들의 첫 앨범으로, 멤버들의 사인이 적혀있었다.

다른 한 장은, 직접 녹음한 CD인지, 곡명과 날짜만 적힌 새하얀 CD가 케이스에 들어 있었다.

 

 

 

 

* * *

 

 

 

 

특집! 삼일천하 메이저 데뷔 기념 인터뷰

애니메이션 주제가 이 몸에 잠든 짐승4주 연속 차트 1! 만반의 준비를 하고 메이서 데뷔한 삼일천하, 그들의 본심을 파헤쳐보자!

 

삼일천하란?

(보컬, 피아노, 기타), 잇사(기타, 코러스), 카이(베이스, 코러스), 자키(드럼, 코러스) 이렇게 4인으로 결성된 얼터너티브록 밴드. 아카츠카 중심지에 있는 라이브 하우스에서 활동. 발표 곡은 전부 동영상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 이 몸에 잠든 짐승으로 메이저 데뷔. 퍼스트 앨범인 예상외1월 하순에 나올 예정.

 

――우선은, 강렬한 메이저 데뷔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솔직히 처음인데 이렇게까지 팔리다니, 진짜 삼일천하가 될 것 같네요(웃음)

잇사 : 그것도 좋지 않아? 밴드 이름이랑 딱이고.

 

――오늘은, 삼일천하의 이곳저곳을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우선, 밴드명의 유래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 멤버끼리 모였을 때 잡담으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차트에 올라가면 어떨 것 같아?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잇사 : 너무 인기 많아도 큰일이지 않아? 라고 내가 말했었지?

자키 : 3일 정도라면 괜찮지 않겠슴까, 하고 제가 말하고

카이 : 그럼, “삼일천하로 하자. 라는 느낌으로 지었습니다.

 

――삼일이라고 할까, 벌써 한달 이상이나 1위입니다만...

: 그렇죠-, 우리들이 제일 놀랐다니까요. 그 사이에 본업의 손님에게 들켜서 엄청 놀림 받았죠

카이 : , 저희들 평소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전원 다른 곳이지만. 류는 Web 디자이너, 잇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자키와 저는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잇사 : 컴퓨터 계열 전문학교에서 알던 사이야. 그러니 자신들의 Web 페이지는 완전히 자기 부담이지

: 남한테 부탁할 돈도 없으니까 말이지-. 덧붙여서, 굿즈와 이번 CD 자켓 일러도 전부 잇사군의 일러스트입니다

 

――밴드를 결성하게 됐을 때에 대해서 물어도 될까요?

: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니 괜찮아요. 어쩌다 마음이 맞아서 하게 된 거라

카이 :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 멤버가 모이게 된 걸까 싶다니까요. 다들 취향도 다른데

 

――취향이란 건 음악의 방향성 말인가요?

잇사 : 맞아맞아. 나는 하드계열을 좋아하고, 카이는 메탈, 자키는 컨트리계와 클래식락. 이렇게 뒤죽박죽인 걸 잡식인 류가 잘 정리해준 거라고 생각해

: 잡식이라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보다, 나 그렇게 중요한 포지션이었어?

잇사 : 아마

카이 : 적당하네(웃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원래 취향이 다 달랐으니까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알려주려고 한 결과 이 밴드가 된 거 아냐?

자키 : -, 알 것 같슴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건지 전혀 몰랐는데, 세명이 가르쳐준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슴다!

 

――참고로, 류씨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나요?

: 처음에는 재즈였어요. 어머니께서 그쪽 계통 종사자여서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쳤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재즈 다음으로는...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요. 각종 락음악에, 블루스, 포크송도 좋아해요. 요즘에는 라틴계열 음악도 자주 들어서, 어쩌면 조만간에 그런 계열의 곡을 쓰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잇사 : 아니, 벌써 말했잖아. 저번주에 가져온 데모가 그런 거였거든.

 

――오오, 신곡의 예감! 조금 다른 얘기지만, 류씨는 라이브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시네요

: -, 이쪽이 원래 모습이에요. 원래 소심한 성격이거든요, . 살아가는 방식도 전혀 록 같지 않고. 늘 안패(버리더라도 아무 지장이 없은 안전한 패)를 갖고 다니거든요(웃음)

카이 : 라이브에서는 (오레)”라고 하지만, 평소에는 (보쿠)”라고 하지

: 컨셉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라이브 때는 긴장해버리니까 이상하게 텐션이 올라간단 말야

자키 : 진짬까! 처음 알았슴다. 계속 그냥 그런 컨셉이라고 생각했어요

잇사 : 그럴 리가! 이 녀석 블로그만 봐도 티 팍팍 나잖아. 팬들도 다 알고 있다고

 

――다음으로, 최근 발표된 데뷔앨범 예상외에 관한 건데요. 이건 지금까지의 발표곡을 수록한, 베스트 음반이라고 보면 될까요?

: 솔직하게 말하자면 회사의 의견이었어요(웃음). 우리들은 원래 우리들의 곡에 값을 매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만든 곡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들은 동영상 투고 사이트에 올렸거든요. 누군가 들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라고 생각해서

잇사 : 하지만 이 몸에 잠든 짐승이 팔렸으니까, 지금이라면 이것들도 팔리지 않을까? 라고 레코드 회사 사람이

카이 : 메이저 데뷔에 앨범을 내다니 이거 꿈이지?! 라고, 그래서 타이틀도 그대로 예상외

: 그래서, 전곡 우리들의 Web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으니까, 사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뇨아뇨! 이 기사가 나가면 예상외로 팔릴 거라구요! 앨범을 산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켓 뒤의 [K에게 바칩니다]라는 건 누굴 말하는 건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 가요?

: 그건 불치병으로 멀리 떠나버린 제 약혼녀...라는 건 거짓말이구요. 고등학교 친구입니다. 참고로 지극히 건장한 남성입니다. 고교 때 연극부에 들어갔던 애인데, 지금도 연극배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툭 까놓고 말하자면, 극단AKTK 소속의 카라노 카라마츠군[각주:17]이란 사람입니다. , 본인한테 본명을 말해도 된다고 제대로 허가 받았으니까 걱정은 마세요. 극단의 선전이 될지도 모르니 잔뜩 선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초회한정판의 마지막 곡은 그를 위한 건가요?

: , 맞아요. 그는 머리도 좋고 스포츠도 만능에 기타도 노래도 잘하거든요. 게다가 상냥하기까지 해서 정말 히어로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내 친구가 이렇게 멋지다! 라고 자랑하고 싶어서..

잇사 : 같이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녀석이야, 정말

카이 : 동감. 순수하고, 좋은 의미로 천연이라고 할까.

자키 : 저한테 있어선 이미 5번째 멤버나 마찬가짐다. 카라마츠씨가 없었으면 이 밴드 벌써 해산됐을 테니까요

 

――? 대체 무슨 일이?

: 이 멤버로 밴드를 시작하고 약 1년째인 11월에 잇사군과 카이짱이 크게 싸워서 일시적으로 잇사군이 탈퇴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이미 연말 라이브가 예정되어 있었고, 인기도 조금씩 얻고 있던 시기라서 상황이 엄청 안 좋았죠. 회장 캔슬 요금이나 티켓 환불비 같은 걸로 파산할 각오까지 할 정도였다니까요.

자키 : 싸운 이유도 터무니없었죠. 음악에 관한 것도 아니고, 당시에 방영하던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들 중에 누가 가장 귀여운가로 싸웠다니까요

카이 : 면목 없네요. 저랑 잇사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 라이브까지 한달이었지? 밴드를 하는 지인들한테 부탁하기도 시간이 애매해서 거절당했었고. 그래서, 카라마츠군한테 울며 매달렸어요. 이제 너밖에 없다면서. 그랬더니 흔쾌히 받아들이더라구요. 극단의 공연도 연초에 있었는데 새벽이나 심야에 와서 연습을 했어요

자키 : 그 라이브는 잊을 수가 없슴다. 여태 했던 라이브 중 가장 신나서 공연했슴다. 카라마츠씨, 엄청 멋있었고

: 스테이지 위에서 잇사군한테 한방 날렸었지-. 빨리 화해하라고

잇사 : 사전에 연락이 왔었어. 라이브 보러 오라고. 내가 삐져있던 거 알고 있던 거겠지. 원래 나보다 기타 잘 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발 당한 게 분해서 결국 다시 돌아갔어. 그 뒤로 기타도 엄청 열심히 연습했다고. 일단 녀석을 뒤를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 이런 이유로 그에게는 엄청 신세를 지고 있어서, CD를 내면 그에게 바치는 노래를 내겠다고 전부터 얘기했었는데 이번에야말로 실현시킨 겁니다

 

(이하생략)

 

* * *

 

 

먼저 잡지 기사를 펼쳤다. 흑백으로 복사된 A3 사이즈의 종이에는 멤버들의 사진과 함께 특집 타이들이 중앙에 크게 적혀있었다.

우편을 보낸 마스야마군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내 기억보다 머리가 더 긴 듯하다.

앞 페이지에 실린 기사인지 작은 수가 종이 끄트머리에 적혀있고, 그 옆에 잡지의 이름이 있다.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메이저한 음악잡지였다.

이 말은 즉, 그들의 인기가 상승세라는 것.

그런 사람들이 인터뷰의 3분의 1을 카라마츠의 얘기로 소비했다. 그것도 여기에 나온 연말 라이브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즉흥적으로 갔었던 그 라이브인 것 같다.

흥분으로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는 내 옆에서 기사를 들여다보던 오소마츠형이, 이미 익숙해져버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이 라이브 보러 갔었다고 말할까 어쩔까 30초 정도 고민하다, 결국 말하지 않기로 했다.

기사를 원래대로 접어두고 편치를 펼쳤다.

 

 

* * *

 

 

마츠노 이치마츠님

 

갑자기 편지를 보내, 깜짝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들과 같은 학교를 다녔고, 3년간 카라마츠군과 같은 반이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소속된 밴드의 첫CD가 발매되어 이렇게 멋대로 이치마츠군에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치마츠군이 저희들의 음악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카라마츠군에게 전해들었을 때,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 얘기를 하는 카라마츠군도, 마찬가지로 기뻐 보였습니다.

 

동봉된 인터뷰 기사에도 적혀있겠지만, 카라마츠군은 저희 밴드에 있어 구세주 같은 존재입니다.

그 당시 카라마츠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삼일천하는 해체되었을 겁니다.

멤버가 한명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라이브 당일 저는 어째선지 긴장도 하지 않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텐션이 올라버렸습니다.

체력도 없는 주제에 처음부터 전력을 내버려서, 어깨까지 덜덜 떨려 중간에는 피아노를 치지 못할 정도가 되었지만요.

그 라이브 뒤에도 저희는 서포트를 구할 수가 없어, 몇 번인가 카라마츠군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내 음색에 오늘 밤()] 취해보라느니 말했던 탓에, 두 번째부터는 드럼 옆에서 드러나지 않게 기타를 치는 모습이 그다워서 웃음이 났었습니다.

저희들이 곡을 쓰다 막히면, 정확히 캐치해서 의견을 내는 것도 카라마츠였습니다.

인기곡 중 몇 개는 그의 의견을 받아 완성한 곡들입니다.

 

CD의 마지막에 수록된 곡처럼 고등학교 때도 저는 카라마츠군의 도움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입학식 날, 긴장한 저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주거나, 시험 전에 모르는 문제를 알려주거나 했었죠.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고3의 문화제 때의 일입니다.

경음부 소속이었던 저는 축제의 마무리로 스테이지에서 연주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같은 멤버였던 애가 방학 후에 수험공부에 전념하면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둬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밴드의 후배가 자기 밴드에서 연주하라 했지만, 3학년이 후베들 사이에 끼는 것도 조금 그렇고, 무엇보다 저는 소극적이어서...

결국 문화제에 나갈 수 없게 된 저는 반에서 혼자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카라마츠군이 제게 그럼 나랑 하겠나?”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도 그때는 연극부 부장이라서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연습해도 된다며, 나와 너라면 최고의 연주를 할 수 있을 거라 해주었습니다.

그가, [어쿠스틱 라이브도 멋있지 않나?] 라고 해서, 관현악부의 친구에게 부탁해 베이스와 퍼커션을 빌렸습니다.

이치마츠군이 그 연주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저의 고교 마지막 무대는 저의 취미를 양껏 펼쳐 올드한 멜로디의 재즈 어레인지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카라마츠군의 목소리와 연주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자주 노래해달라고 보채곤 했었습니다.

그것도 CD로 구워 넣어두었습니다.

본인에게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집에서만 들어주세요.

 

메이저 데뷔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사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카라마츠군은, [그럼, 이치마츠에게 CD를 보내주겠나] 라고 하여 이렇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밀로 하고 싶었을 아닐까 생각했지만, 입막음 당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솔직하게 전부 털어놓습니다.

이미 저희들의 음악에 질렸을지 모르니, 만약 그러시다면 적당히 처분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만약, 마음에 들어하신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요.

 

길고 시시한 문장을 써서 죄송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삼일천하의 보컬담당, , 마스야마 류타로.

 

 

* * *

 

 

[이치마츠는, 경음부 공연 보러 갔었어?]

가지 않았다고 답하자, 오소마츠형도 나도, 라고 답한다.

[갔으면 좋았을텐데-. 연극부의 공연도 봐둘 걸 그랬어]

[]

고교 시절의 나는, 적극적으로 친구를 만드는 걸 포기한 상태이면서, 완전히 고립될 용기도 없었던 탓에 최대한 적도 만들지 않겠다는 주의였다.

3 문화제는 솔직히 귀찮아서, 하루종일 반에서 하는 귀신의 집 보는 걸 맡아주고만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지만.

편지를 접고 CD를 펼쳤다. 자켓 뒤에는 기사에 말하던 대로 [K에게 바칩니다]라고 적혀있다.

초회 한정판을 넣어준 건, 마스야마군의 친절인 걸까, 아니면 잡지에서 언급된 미발매곡을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카라마츠를 위해 썼다는 이 곡은, 뒷자리의 히어로라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곡명이었다.

 

 

* * *

 

처음 들어선 교실 / 주변은 낯선 녀석들뿐

입학식부터 계속된 / 긴장으로 손에는 땀이 흥건

먼저 말을 걸 그런 용기는 / 내게 없어서

멍하니 앞만 보고 있으니 / 덜덜 떨리는 어깨 위로 / 상냥한 손길

[괜찮은가? 어디 아픈 건가?]

당황스러움에 / 뒤를 돌아보며 [괜찮아] / 겨우 답하자

뒷자리의 녀석이 / 환하게 웃었어

 

겨우 그 간단한 대화로 / 긴장이 씻은 듯이 사라져

어느새 나도 / 그를 따라 웃고 있어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험 전 / 수업시간에 졸았던 자신을 저주해

수업을 지루하게 한 / 선생님이 나쁜 거라며

책임전가를 하며 / 교과서와 눈싸움

하나도 모르겠어 / 풀죽은 어깨에 / 상냥한 손길

[괜찮다. 이걸 외워라]

선생님 흉내를 내며 / 교과서를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 정말 똑같아

웃어대는 사이에 / 공식이 외워졌어

 

배부되는 시험지 / 녀석이 알려준 게 딱 나와서

낙제점을 피해 /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얼마나 구원받았는지 / 아마 너는 모르겠지

그래 / 너는 / 무자각 히어로

 

 

이 교가를 부르는 것도 / 오늘이 마지막인 졸업식

내일부터는 더는 / 뒷자리에 네가 없겠지

불안함으로 / 떨리는 어깨 위에 / 상냥한 손길

[괜찮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처음과 변함없는 / 눈부신 미소로 / 너는

 

[괜찮다]는 너의 목소리와 / 어깨로 느껴지는 따스함

그걸 떠올리면 /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로부터 벌써 몇 년 / 조금은 강해진 나

그러니 만약 네가 / 위험에 처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 늠름한 어깨 위에 / 손을 얹을 거야

[괜찮아. 내가 있어] 라고

믿음직스런 웃음을 보이며 / 너도 따라 웃길 바라며

그렇게 둘이서 / 어깨를 서로 두드리며 나가아면 되잖아?

 

 

듣고 있니? / 뒷자리의 / 나의 히어로

 

 

* * *

 

 

[그거, 들어보자]

언제 가져왔는지 오소마츠형이 부모님 방에서 아빠의 CD카세트를 가지고 와서는 콘센트에 꽂고 있었다.

[뭐야 이거, 코드가 너무 짧잖아]

오소마츠형이 불평했지만, 애초에 라디오 카세트는 코드가 길게 나오지 않는다.

탁자까지 카세트가 닿지 않아서, 우리들이 그쪽으로 이동해 벽에 기댔다.

초회 한정판 CD를 넣고 트랙 14를 선택.

크레디트에는 전곡이 밴드명으로 적혀있는데, 이 곡은 마스야마군이 만든 거라서 그런지 마스야마군의 이름만 적혀있다.

피아노가 메인인 재즈풍 분위기의 곡으로, 이 밴드치고는 꽤 밝은 곡조였다.

데모판이라서 그런지 어쩐지 음질이 거칠고, [낙제점 회피]란 가사 부분에서 누군가가 짧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도 섞여들었다.

편지에도 적혀있었듯이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던 거겠지.

마지막에 살짝 목소리가 떨린 걸 보아, 어쩌면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카라마츠는 그의 바람에 응했을까. 형제들에게는 좀처럼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 녀석도, 남들에게는 도움을 청하기도 하는 걸까.

가령, 치비타의 유괴사건 때라던가.

그러고 보니, 그때 맷돌을 던진 거,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최악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더니, 4분 조금 넘는 곡이 끝나고, 대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어-. 어라? 웬일로 둘이서 음악을 듣고 있어?]

거실에 들어온 토도마츠는 탁자에 놓인 케이스를 발견하곤 집어들며 말했다.

[, 이거 이치마츠형이 좋아하는 밴드 아냐? 최근에 메이저 데뷔했잖아? 보컬이 카라마츠형의 친구였다던가?]

그렇다고 답하며 새하얀 CD로 바꿔 넣는다.

[설명, 귀찮으니까 이거 봐]

받은 편지와 잡지기사를, 토도마츠는 흥미롭다는 듯 펼쳐들곤 읽었다.

미간이 찌푸려져 가는 걸 흘끗 쳐다보며, 재생버튼을 눌렀다.

one, two, one, two, three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구호 소리에, 토도마츠가, 카라마츠형이다! 라며 고개를 들었다. 옆에 있던 오소마츠형이 카라마츠네, 라며 그리움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고요한 전주, 카라마츠의 목소리, 코러스는 마스야마군, 라이브 때도 생각했지만 이 두 사람 목소리의 상성이 엄청 잘 맞는다.

[무슨 곡이더라? 들어본 적 있는데]

[사운드 오브 사일런즈]

[이치마츠형, 잘 아네]

전부 녀석이 알려줬다. 해외음악, 국내음악 가리지 않고 녀석은 오래된 곡들도 잘 알았다.

어쿠스틱 기타에 맞는 애절한 느낌의 멜로디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줄을 튕기던 녀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지금처럼 감정을 담아 노래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건지, 음질은 아까 들었던 데모판과 똑같았다. 때때로 대화소리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메인인 어쿠스틱 기타는 카라마츠의 특기였다. 곡을 연주할 때면, 누군가가 다른 악기를 연주하거나 코러스를 넣거나 했다.

사이먼&가펑클로 시작해서, 비틀즈, 이글스, 빌리 조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니켈백, 내가 모르는 아티스트들의 노래가 몇 곡.

해외 음악들 사이에, 고 히로미, 체커즈, 오다 카즈마사, 사잔 올 스타즈, 샤란Q, 70년대부터 90년대의 히트곡이 끼어있어, 우리들은 그걸 잠자코 들었다.

 

[분할 정도로 잘하잖아]

토도마츠가 CD에 대한 메모를 읽으며, 선곡이 너무한다며 불평을 했다. 그 눈은 평소보다 물기가 많이 어려있다.

[, 이 특유의 저음, 좋아해. 왜일까, 나랑 성대도 같을 텐데. 음역이 전혀 달라]

오소마츠형은 아까부터 눈을 꼭 감고 벽에 기대고 있어서 자는 건가 했는데, 제대로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

마스야마군이 골라준 15곡째. 마지막 곡은, 메모를 보지 않아도 첫음만으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벽 너머의 라디오에서 들려와서 알게 된 커플링 곡. 핸드폰을 사고 바로 다운로드판을 사서 매일같이 듣고 있으니까.

, 안돼. 녀석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버리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도 그렇게나 떨렸는데.

[왜 그래, 이치마츠형?]

[이거, 안돼]

정지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알고 있다. 사실은 듣고 싶다는 거.

[? 처음 듣는데, 좋은 곡이잖아? 나는 좋은데]

나도 좋아,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카라마츠가 불러버리면 눈물샘이 터져버릴 거야.

그러던 중, 노래는 끝에 접어들었다.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 이 목숨은 두 번 다시 / 네게 돌아오지 않아

한탄하기 전에 / 어떻게든 / 살아가보는 건 어때?

지금이 괴로울지라도 / 분명 언젠가는 / 완전히 뒤바뀔 테니까

아직 늦지 않았어 / 이제부터 역전극이 시작되는 거야

 

 

카라마츠의 힘찬 목소리가 귀에 꽂히고, 머릿속을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그 감촉은, 좁아져가는 내 껍질을 부수기에 충분한 위렵을 갖고 있었다.

기타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좋은 곡이로군, 노래를 끝마친 녀석의 중얼거림을 마이크가 잡아낸다.

이치마츠에게 불러주고 싶군

폭탄발언을 끝으로 CD는 끝난다.

심박수가 급상승한다. 몸이 뜨거워지고,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을 새빨개져 있다는 걸 직감했다. 이것 봐, 눈물샘 고장나 버렸잖아.

토도마츠와 오소마츠형이 똑같이 히죽거리며 나를 본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거 저주나 마찬가지잖아. 이런 짓을 해버리면, 나는 두 번 다시 비굴함의 껍질을 쓸 수가 없게 되잖아.

 

그날 밤은, 카라마츠가 야생적인 모습을 한 쥬시마츠의 사진을 보내왔다.

직장 동료분을 따라 사냥에 따라갔다는 모양이다. 동료분이 잡은 사슴이라는 듯하지만, 커다란 사슴을 어깨에 짊어진 쥬시마츠의 모습은 퍽 어울렸다.

쥬시마츠는 자신에 관한 건 쏙 빼놓고, 차남과 삼남의 바텐더 영상을 보내왔다.

셔츠와 조끼차림에 나비넥타이를 한 같은 복장의 두 사람은 완전히 똑 닮은 플레어 바텐더[각주:18]였다.

움직임이 완전히 똑같았는데, 그 꼴을 보던 토도마츠가 기분 나쁘다고 하면서도 메모리에 저장을 했다.

쵸로마츠형한테는 앞치마를 한 카라마츠가 아침을 만드는 동영상이었다.

마츠노가의 맛은 여기서도 인기입니다

그걸 본 오소마츠형이,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인데라며 못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 같이 전화로 몇 분간 통화를 한 후, 혼자 2층으로 올라가 다시 카라마츠에게 전화를 걸어 치비타의 유괴사건 때의 일을 사과했다.

이제 와서 사과냐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도, 녀석은 어째선지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내 입으로 직접 듣는 게 기쁘다며, 그 때 시끄럽게 해서 잠을 깨워버려 미안하다고 했다.

[오늘 마스야마군한테 CD 받았어]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억지로 말을 돌렸다.

그래. 벌써 들었는가?

[. 널 위한 노래만 들어봤어]

? 설마, 초회 한정판이었나?

[. 그리고, 네가 노래한 걸 모아둔 CD도 들어있어서, 그건 다 같이 들었어]

좋았다고 솔직하게 감상을 말하자, 전화 너머에서 당황한 목소리로 원망한다, 류타로라나 뭐라나,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을 테지. 꼴좋다, 나한테 저주를 내린 벌이다.

[고마워, 네가 부탁한 거지? CD, 나한테 보내달라고]

망할 녀석, 뭘 다 까발린 거야

고맙다고 말하자, 대신 불평을 쏟아낸다.

[그래서, 대학, 도전해볼까 해, 내년이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건 수학뿐이지만, 그렇다면 좀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네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어.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말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해봐라. 응원할테니까!

자신과 똑같은, 하지만 어딘가 다른, 기분 좋은 목소리가 몸속에 스며든다.

[. 그럼, 잘자]

아아, 잘자라. 좋은 꿈꾸길

전화를 끊고, 기분이 센치해진 탓인지, 커튼을 열어젖혔다. 관동의 겨울답게 구름 한 점 없는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이따금 반짝이는 걸 바라보며, 격에 맞지 않게 예쁘네-’라고 생각했다.

 

 

 

 

 

* * *

 

 

 

 

 

화면을 가득 채운 건, 뽀얗고 탱탱한 피부. 이제 막 씻고 나온 참인지 옅게 분홍빛이 감돈다.

은은하게 흔들리는 열기와 함께 비누의 청량한 향기도 감도는 듯한 느낌에, 무심코 코를 핸드폰에 갖다댄다.

카메라가 찍고 있는 건, 아름다운 가슴골. 탱탱하게 부푼 두 가슴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찌르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러잉~ 부끄러워-

콧소리 섞인 고음에 장난기가 섞여, 진심으로 싫어하는 건 아닌 듯하다. 그 증거로 우후훗, 하는 귀여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전부 보여주지 않으려나, 밥공기를 엎어놓은 듯한 형태면 좋겠네, 젖꼭지는 무슨 색일까?

선명하게 보이는 쇄골, 그 중간에서 약간 왼쪽편에 자리 잡은 점이 색기가 넘쳐 좋다.

구헤헤-, 좋은 가슴이로군-

촬영하던 남자의 집게손가락이 매혹의 골짜기를 쓰다듬는다. 아아, 부럽다!!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 나랑 바꿔!”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잉. 변태~

가차없이 사타구니를 공격하자, 어리광 부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정에게는 매우 힘든 상황. 슬슬 한계, 세명 모두 코피가 뿜어져 나오기 일보직전이다.

티슈라도 옆에 가져다두려고 손을 뻗자, 갑자기 화면에 비치던 가슴 모양이 낯익은 모습으로 바뀐다.

기다리던 전체샷. 젖꼭지는 예쁜 핑크색에 가슴도 어느 정도 부풀어 있긴 하지만, 밥그릇이라기보다는 접시에 가깝다.

줌아웃한 카메라에 찍힌 튼실한 목과 자신과 똑같이 톡 튀어나온 중앙에, 나는 골짜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고 말았다.

짜잔-!! 카라마츠형이었습니다!! 놀랐어? 놀랐어~?

눈을 뒤집어 깐 채로 양쪽 중지를 콧구멍에 집어넣고선, 메롱-.

순식간에 수준 높은 얼굴개그를 선보인 사람은, 현재 북쪽 땅에 가있는 우리 차남.

아하하! , 엄청난 얼굴이네!

.

탁자에 머리를 처박는 소리가 세 개. 1월의 마지막 수요일 아침 8시경에 울려퍼졌다.

[이게 뭐야아!! 뭐 하는 거야, 이 두명!]

[쥬시마츠니까-. 살짝 예상은 했는데 말이지]

설마 카라마츠가 저렇게 귀엽고 색기 넘치는 목소리를 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고는 말 못해.

대신에 젖꼭지가 핑크빛인 건 알고 있었지만, 쇄골에 점이 있는 건 몰랐다, 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관뒀다.

이 이상 피해를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라고 생각하며 똑같이 공격을 당한 두 사람을 바라보니.

귀까지 시뻘개져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토도마츠는 귀염성이라도 있지만, 동공이 풀린 이치마츠는 좀 무섭다.

아침부터 심야 텐션의 동영상을 보내온 건 차남을 따라간 오남. 본문은 없고 제목만 직접적으로 가슴!

동영상은 여전히 재생되고 있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던 카라마츠는 표정을 풀고선 속았는가?”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었다.

너 말이야, 동정을 놀린 죄는 무겁다고!! 기억해둬라!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거다! 봐라!

우람한 두 팔로 가슴 근육을 바짝 당겨 모으는 카라마츠. 아니, 그 정도는 아니까, 빨리 잠옷이나 입으라고.

[-, 정말 알고 있다구! 네네, 가슴 엄청나시네요! 됐으니까 빨리 옷이나 입어!]

같은 생각을 한 토도마츠가 핸드폰에 대고 불평을 하자, 아직 재생되고 있는 화면을 가득 채운 풍만한 수컷 가슴으로 불쑥, 손이 튀어나온다.

나도, 만지게 해줘

카라마츠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들이민 건 눈이 풀린 쵸로마츠. , 이거 완전 취했구만. 술버릇 나쁘다니까, 우리 삼남은.

휴일 전날이라서 저녁 때 좀 많이 마신 거겠지. 전화기 너머의 세 사람은 평소보다 더 밝고, 뒤에서 다른 사람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상관 없다만, , 으아, 아프다! 쵸로마츠, 좀 더 상냥하게 해주겠나?

우하핫, 쵸로마츠형, 엄청 만지고 있어!

아니아니, 카라마츠군, 아무리 형제라도 가슴을 만지게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만. 상냥하게 하면 더 애매한 광경이 되어버리니까 말이야. 쥬시마츠군도 찍지말고 말리라고, 저 바보 같은 두 형을.

라고 마음속으로 츳코미를 날리고 있으니, 삼남의 힘이 쭉 빠지고 카라마츠 위로 엎어진다.

어라? 쵸로마츠? 쵸로마-?

쵸로마츠형, 잔다!

-, 너무 마셨나. 그러니까 욕조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 쵸로마츠, 적어도 팬티 정도는 입고 자라고?

차남의 가슴을 주무르며 골아떨어진 삼남의 편안한 얼굴과, 오남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동영상은 끝났다.

[, 정마알!! 대체 뭐야, 이 사람들! 우리들한테 어쩌고 싶은 거야?!]

[이건 진심 위험해. 복근 경련 일어날 것 같아!]

[........팬티, 입혔을까?]

[그만둬, 이치마츠형! 상상해버리면 안돼! 내장까지 경련 일어날지도 모른다구! 그보다, 코피나 닦아!]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천연과 술주정의 수습 불가능한 콩트에, 고간과 복근을 동시에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던 중 삼남에게 LINE이 왔다.

아까, 쥬시마츠가 보낸 동영상은 너희들의 머릿속에서 당장 지워버려. 안 그랬다간 내가 직접 원자 수준까지 뽀개버릴테니까

[바보네, 쵸로마츠형. 이렇게 재밌는 걸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오히려, 가보로 삼고 싶을 정도라고~]

엉큼한 얼굴로 말한 토도마츠는 아마 다른 메모리 카드에도 카피해둘 예정인 듯하다.

[팬티 입혀줬는지 물어볼까?]

그렇게 말하자, 토도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곤 바닥을 뒹굴었다. 이치마츠는 코피를 흘리면서 반쯤 죽은 생선마냥 움찔움찔 떨고 있었다.

[그만, 둬어! , 진짜, 무리! 죽을 것 같아!]

붕괴직전의 복근에 결정타를 날리듯 카라마츠에게서 LINE이 왔다.

좋은 아침이다! 쵸로마츠는 제대로 팬티와 잠옷을 입혀서 침대에 재웠으니 걱정 마라!정말, 이 녀석은 이럴 때만큼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니까.

천연 차남의 정직한 메시지에 우리 세명의 복근은 완전히 붕괴됐다.

 

 

[-, 배 아프다. 오늘 체력 벌서 다 써버린 느낌-]

불평을 쏟아낸 토도마츠는 나갈 준비를 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후 계단을 내려왔을 즈음에는 이미 배는 멀쩡해져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패션 업계에서는 이제 봄을 의식해야 할 시기여서, 쵸로마츠가 두고 간 초록색 쳐스와 치노 팬츠에 자신의 흰 가디건을 걸쳤다.

[그럼, 다녀올게]

코트를 껴입고 신발을 신고 있으니, 뒤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 다녀와. 맛있는 거 사와]

싫거든, 이라고 쏘아붙인 토도마츠는 현관을 나섰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토도마츠는 3번에 1번 정도 간식거리를 사들고 왔다.

[음식점은 카라마츠형한테 이길 수가 없으니까]

그런 이유를 들며 토도마츠는 셀렉트 샵인지 뭔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5, 하루 7시간 일하는 녀석은 더 이상 니트가 아니다. 고작 아르바이트지만 먹고 살기 충분한 풀타임이다.

직원 할인도 있어서, 용돈이 줄고나서 포기했던 옷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매번 자기가 갖고 있는 옷들과, 주로 쵸로마츠가 두고 간 옷들을 잘 조합한 근사한 차림으로 외출을 한다.

그걸 쵸로마츠한테 말했더니, “시끄러 멍청아라고 간만에 욕지거리를 들었다.

돌아왔을 때도 다소 지쳐보이지만, 오늘은 이런이런 손님이 왔었다며 직장 얘기를 할 때만큼은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쉬는 날에도 잡지를 보며 유행을 연구하거나, 컬러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딸 거라며 자격증 공부를 했다. 나랑 마찬가지로 공부라면 질색을 했던 주제에.

[잠깐 나갔다 올게]

이치마츠가 상의를 입으며 느릿느릿 현관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데? 고양이?]

[고양이랑 뭐, 이것저것. 점심 때는 돌아올게]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관을 나서는 이치마츠. 복장은 전혀 바뀌지 않았지만, 세명이 집을 나가고 가장 많이 바뀐 건 사남이다.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는데, 저쪽에서, 정확히는 카라마츠에게서 연락을 받은 이후로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하겠다 선언했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수거하는 거라고. 딱이지 않아?]

생각해 보면, 녀석의 비굴한 발언을 들은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수거차에 올라타는 건 꽤 체력이 필요한 모양이라, 처음 일했을 때는 완전 녹초가 되어서 돌아왔지만 지금은 익숙해진 듯하다.

청결한 샴푸 냄새가 어울리지 않게, 고양이등에 푸석푸석한 머리, 낡은 실내복 차림의 녀석은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집에 돌아온다. 전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말은 없지만, 자주 빨래를 개는 걸 도와주거나 한다.

지금도, 점심때는 돌아오겠다, 그렇게 늦지는 않을 거야, 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카라마츠 말대로 본성은 착한 녀석이다.

 

 

부모님도 자식 5명이 아르바이트라곤 해도 일하기 시작한 걸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다.

이야미가 권하거나, 옆집 아저씨가 부탁할 때는 경마장에 가지만, 파칭코에는 좀처럼 가지 않게 됐다.

대신 그렇게 싫어하던 집안일을 돕게 됐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우리집에도 이를 도입하기로 했단다]

라고 말하면 하는 수밖에 없지. 굶어 죽을지도 모르고.

처음에는 엉망이었다. 세탁기 하나 돌리지도 못하고, 청소기를 돌렸음에도 먼지가 남아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느니 자기가 하는 게 빠를 것임에도, 엄마는 뭐든 내게 부탁했다.

2주간의 훈련 끝에 요리 이외에는 다 합격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발랄하게 웃으며,

[이걸로 너도 이제 니트가 아니네] 라고 말했다.

훗카이도의 녀석들에게서 사진과 동영상을 받기 위해 바꾼 핸드폰으로 모피디아에 들어가 니트 항목을 찾아봤다.

그에 따르면, 니트란 15살부터 34살까지 일도 통학도 가사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가사는 중노동에 속한다고들 하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엄마는 내가 자기만 일하지 않는 걸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준 거겠지.

공교롭게도 내게 그런 고상한 자부심 같은 건 없고, 나만 무직인 것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금은 기분 전환도 되고, 뭐라고 할까....바보 같이 한심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나름의 염원 같은 것이다.

내가 제대로 집을 지키고 있으면, 형제들도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성인인 형제가 각자의 길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하는 곳도 사는 곳도 제각기 달라도 형제인 건 변함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몸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그럼 다녀올게. 오늘은 상점가가 세일하는 날이니까 가서 적당히 장 좀 봐줘]

[. 빨래하고 갔다 올게]

오늘 저녁밥과 내일 아침밥의 재료를 살 돈을 내게 건네준 엄마는 일하러 나갔다.

한 번 일어나면 할 일을 끝내기 전까지 앉지 않는다. 그게 내 나름의 집안일 철칙이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청소기를 단숨에 돌린다.

2층의 우리들 방과 부모님 방, 부엌, 거실, 평소에 자주 쓰는 방은 매일, 그렇지 않은 방은 3일에 한 번 청소한다. 복도와 계단은 코드가 닿질 않아서 꽤 번거롭다.

그걸 최근에 깨닫고 난 후부터, 가전제품점 광고지의 선 없는 청소기가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다음에 경마로 돈을 따면 살까 생각했지만,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는 모양이라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빨래가 다 됐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 멜로디는 대체 무슨 곡일까.

청소를 일단락 짓고, 이번에는 빨래를 바구니에 담아 2층으로 올라갔다.

옛날에는 마당이 좀 더 넓어서 거기에 건조대를 설치해두고 빨래를 널었었지만, 옆에 빌딩이 세워지면서 팔아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옥상에 빨래를 널고 있다.

수건은 제대로 팡팡 털어서 널고, 셔츠는 옷걸이에 걸어서, 바지는 주머니가 마르도록 뒤집어서, 양말은 같은 것들 끼리 나란히, 마츠요의 속옷은 안쪽으로 숨겨서.

이불까지 전부 널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겸사겸사 화장실 청소까지 한다.

바닥과 벽이 번쩍거릴 정도로 말끔히 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깔끔해진 집에 만족한 나는 장을 보러 현관을 나섰다.

상점가는 가게 사람들도 손님들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다들 짓궂게 장난을 걸었다.

무슨 마츠냐는 질문에 오소마츠라고 답하니, 믿을 수 없다며 웃었다. 정말 다들 너무 실례라고-.

뭐어, 이쪽도 뭘 사야 될지 몰랐으니까, 덕분에 야채 사는 법 같은 걸 세세하게 알게 되어 좋았지만.

[여어, 오소마츠 어서와! 이 상자에 든 건 전부 한 개에 100엔이라고!]

그렇게 말을 건 야채가게 아저씨한테 배추와 무, 시금치를 샀다.

건너편의 정육점에 가니 닭날개가 100g 58엔이라서 그걸 15개 사고, 두부 가게에서 유부와 연두부를 2,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토토코짱 가게에 들러서 자반연어 5조각을 샀다.

에코백을 어깨에 둘러메는 것도 제법 어울리게 됐구나.

 

 

집에 돌아가니 아직 이치마츠는 안 온 듯했다.

재료들을 냉장고에 넣고 나니, 이제 할 일도 없어져 2층으로 올라갔다.

소파에 드러누워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치비타의 외상값을 내려고 모아뒀던 돈을 써서 바꾼 핸드폰은 훗카이도의 3명과 같은 기종으로, 빨간색 케이스를 끼웠다.

여태까지 받았던 사진을 모아둔 폴더를 열어 착착 넘기며 감상했다.

세명 모두 다른 두 사람의 웃는 얼굴을 찍어 보내서, 이 폴더에는 행복한 얼굴이 넘쳐흘렀다.

쥬시마츠는 입을 활짝 벌리고 있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즐거워서 웃는 듯한 느낌.

바깥에서 막노동도 하는 것 같고, 벨보이였던가? 접객도 할 수 있게 됐다고, 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남이.

쵸로마츠도 이렇게 귀엽게 웃을 수 있게 됐고. 여기서는 화내는 얼굴이나 어이없다는 표정밖에 안 했었는데.

결벽이 의외로 도움이 된다면서 기쁜 듯이 말했는데, 지금은 프론트에서도 일하는 모양이다. 입이 험하던 그 녀석이.

레이카의 라이브 때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그곳에서의 생활이 제법 마음에 든 거겠지.

삼남은, 자타가 인정하는 오타쿠인 만큼, 좋아하는 대상에겐 맹목적으로 빠져드니까.

둘 다 성장했구나. 기뻐해야 할 일인데 어째선지 심장이 욱신거린다.

털어 넘기기 위해 담배를 피려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카라마츠가 두고 간 쓸데없이 무거운 지포라이터는 그대로 내가 가지게 되었다. 녀석이 마음에 들어하던 브랜드도 내가 이어받게 되었다.

[, 라이터 두고 갔떠라. 형아가 가질게-]

전화로 반쯤 농담으로 말했더니, 녀석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기름이 다 떨어졌으니까 이번 기회에 끊으려고 두고 왔다. 팔아도 상관없다만, 마음에 들어하던 거니까 오소마츠가 써주면 오히려 기쁘지

그렇게 내가 쓰게 되었다. 판다면 그럭저럭 값이 나가겠지만, 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니코틴 중독자인 나와는 달리 녀석은 가끔 피는 정도였으니까, 금연은 성공적이라는 모양이다.

훌륭하네, 라고 생각하는 반면 한편으로는 나와 공통점이 사라져 버려 조금 쓸쓸한 느낌도 든다.

창가에 앉아 찬 공기를 향해 연기를 내뿜는다. 카라마츠의 흉내를 내보면 조금은 녀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서 때때로 이렇게 폼을 잡아보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조금 알게 된 것도 있다. 녀석이 정적과 고독을 운운했을 때는 아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던다.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지만, 대신 뭔가를 숨기는 건 잘하니까.

그 어지러이 꾸며낸 말들 속에 녀석의 본심이 숨어있었다면, 좀 더 제대로 들어줄 걸 그랬다.

그걸 본인에게 말했더니, 과대평가라며 웃었다. 연기는 했지만 대사를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고, 꽤 적당히 내뱉었던 거라고 했다.

언제였더라, 다 같이 마시러 갔을 때 드물게 술에 취한 카라마츠가 상당히 들뜬 기분으로 평생 이 집에서 나가지 않을 거라고 했었는데, 아마 그것도 본심일 거다.

그런데 솔선해서 집을 나가 버렸다. 그 모순도, 지금은 대강 알 것도 같다.

녀석은 집밖에서 강고한 위치를 가졌다. 극단의 사람들도 그렇고, 어제 CD를 보낸 마스야마군이나, 다른 아르바이트 동료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시야가 넓어진 거겠지, 카라마츠는.

여섯 쌍둥이라는 울타리밖에 모르는 나와는 다르다.

그러니 이런 좁은 세계를 뛰쳐나가고 싶은 건 당연하다. 우리들이 너를 대하는 취급은 너무 지독했고, 너는 어디서든, 뭐든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재능을 가졌으니까.

한 발 먼저 바깥 세상에 나간 카라마츠가 이번에는 동생들의 손을 잡고 안내해주고 있는 거다.

이치마츠를 보고 있으면,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카라마츠에게 대들었던 주제에, 카라마츠의 말 한마디로 반 히키코모리 니트에서 벗어나고, 표정까지 밝아지다니 얼마나 영향을 받은 거야, 대체.

그 때,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던 쵸로마츠와 쥬시마츠는 물론이고, 원래 밖으로 나돌던 토도마츠는 더욱 눈에 불을 켜고 카라마츠를 쫓았다.

나만이 아직 그 손을 잡지 못했다.

알고 있다. 단순히 내가 겁쟁이일뿐이고, 내가 멋대로 경계하고 있다는 걸.

 

 

반쯤 피우지도 못하고 재가 되어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자, 집앞 길목에서 이치마츠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새우등으로 느릿느릿 현관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일정한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어서와, 이치마츠]

여섯 쌍둥이 방의 문이 열리자마자 말을 걸자, 이치마츠는 살짝 놀란 표정을 한다.

[.....다녀왔어...놀래키지 말라고]

[여기서 네가 집에 오는 게 보이길래]

[그래. 안 추워? 창문, 닫지 그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얼굴이 차가워졌음을 깨달았다. 이런-, 아까까진 낮이었는데 벌써 해가 졌잖아.

[이거, 하타보한테 받았어]

축 늘어진 비닐봉투 속에는 커다란 햄버거 두 개가 들어있다. 아직 따뜻한 게 열기가 피어오르고, 고기 냄새에 배가 그르렁 울린다.

[-, 맛있겠다]

이걸로 밥을 때우려고 둘이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물을 끓이고 이치마츠가 인스턴트 스프를 만드는 옆에서 커피를 탔다.

군침 도는 냄새와 외형만큼이나 맛있는 햄버거였다.

양상추가 아삭아삭하고, 고기는 포동포동하고 씹으면 육즙이 쫙 퍼졌다.

맛있네, 라고 했더니 이치마츠도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은 햄버거. 하타보가 줬다는데, 가게라도 연 건가?

형제 그룹 LINE에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하나둘씩 답했다.

분하지만, 점심은 버거로 해야겠어라고 보내온 건 토도마츠. 훗카이도조는 이쪽은 바다의 은총이다라며 해산물 덮밥과 오징어 구이의 사진으로 반격을 가해왔다.

맛은 있었는데,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겠어

마지막은 눈앞의 사남이 보낸 메시지. , 잠깐만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잖아.

어이, 설마 호러 전개!?

쵸로마츠의 츳코미에 이치마츠가 히힛, 하고 수상한 웃음을 짓는다. 깊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도 일단 따라 웃었다.

[왜 그래, 이치마츠으~. 우리들 죽을지도 모르는 거?]

[죽지는 않겠지. 불로 구웠고. 괴물은 될지도]

이미 벌어진 일인 거 상관없지 않겠냐고 이치마츠가 말했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해 이번에는 진심으로 웃었다.

움직이기 싫어지기 전에, 설거지를 해두고 다시 커피를 탔다.

[왜 하타보한테 간 거야?]

답변 대신에 이치마츠는 작은 검정색 조각 세 개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곤 하나를 내 앞에 두었다.

잘 보니, 마이크로 SD카드라고 적혀있다.

[어제 CD, 카라마츠가 불러준 거 말이야. 그거 넣어뒀으니까, 필요하면 줄게]

마스야마군이 보내준 그거 말이지. 그건, 마지막 곡을 이치마츠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다른 14곡을 추가로 녹음한 거겠지.

다른 형제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여우상에 빼빼 마른 몸.

그 남자는 3년간 쭉 카라마츠와 같은 반으로, 카라마츠의 앞자리에 앉았다. 나는 한번도 카라마츠와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고, 심지어 옆반도 아니었는데.

결국 졸업하고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고 말이야. 나는 기계를 통해서만 카라마츠의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라니, 바보 같네.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 했을 때 매번 무시했었는데 이제 와서 직접 듣고 싶다니.

어제, CD를 받은 이치마츠를 부럽다고 생각한 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이치마츠는 서투른 움직임으로 자신의 핸드폰에 메모리 카드를 집어넣고는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후드 주머니에서 핸드폰 패키지에 들어있던 이어폰을 꺼내 신중하게 핸드폰에 꽂는다.

어떤 앱을 켜고 재생버튼을 누를 때까지는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잘 들리는지 등뒤로 꽃이 보일 정도로 행복한 얼굴을 한다.

그런 이치마츠를 보며 필요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부러워했었고, 솔직하게 받아두기로 했다.

눈을 감고 잠시 감상한 이치마츠는 핸드폰을 끄고 이어폰을 뺐다.

[저기, 내년부터 대학에 도전해볼까 해]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미를 이해하고는 다시금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 진짜 이치마츠? 우리 사남은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애써 밝게 말하자 이치마츠는 푸핫, 하고 작게 웃었다.

[역시 똑같은 반응이네. 토도마츠도 똑같은 반응이었어. 아르바이트 한다고 했을 때]

[그야 그렇겠지. 뭐야뭐야, 왜 그래? 갑자기 할 마음이 들다니. 형아 너무 놀랐는데]

[미안]

드물게 명확한 목소리로 답하는 이치마츠. 반쯤 감겨 있던 눈도 제대로 뜨고 진지한 표정의 이치마츠에, 나는 녀석이 진심이라는 것과, 내 심장의 통증을 알아버렸음을 깨달았다.

저주에라도 걸린 걸까, 라며 웃는 이치마츠는 비굴해지기 전의 성실한 사남으로 돌아와 있었다.

[1년 해보고 안 되겠으면, 그걸로 됐어. 한번 해보려고]

녀석이라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겠지. 가족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원래 성실하고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으니까.

[좋네. 한번 해봐]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얼굴이 굳어지지 않도록, 애써 씨익 웃어 보이는 내게 이치마츠는 온화한 얼굴로 고맙다고 말했다.

[, 만약에 붙더라도 자취는 안 할 생각이니까. 당분간 잘 부탁해, 오소마츠형]

자기 말만 한 채 이치마츠는 핸드폰과 이어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빠른 걸음으로 2층에 올라갔다.

그만두라고, 정말. 이치마츠까지 날 울리려고 하고 말이야.

아아, 젠장. 이렇게 된 것도 전부 카라마츠 때문이야, 라며 멋대로 책임을 떠넘기며 메모리 카드를 핸드폰에 꽂아넣고 일부러 소리를 크게 틀어 2층으로 향했다.

서로 부끄러운 짓이란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잖아. 옷이 여기에 있는 걸.

[잠깐 나갔다 올게!]

지갑과 겉옷을 챙겨들고, 계단을 내려가자 빨간색 목도리가 머리위에 내려앉는다.

위를 보니, 문에서 이치마츠가 새빨개진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젠장, 대체 뭐냐고. 갑자기 솔직해지고 말이야.

 

 

역 하나 앞에 있는 커다란 전자제품 상가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1.5km, 고등학생 때는 여유였었는데, 지금은 숨을 헉헉거리며 갈 정도다. 얼마나 체력이 떨어진 거야.

1분간 쉬며 숨을 고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안내를 보며 살짝 돌아보고서야 겨우 멈춰선 곳은 이어폰 코너.

스마트폰에 추천!”이란 메시지가 한 귀퉁이에 적혀있다. 예쁘네, 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이어폰을 집어들었다. 카라마츠의 후드에 잘 어울리는 색.

아아, 정말! 무슨 짓이야, 나는. 얼마나 녀석을 의식하는 거냐고.

내팽개치고 싶은 걸 꾹 참고, 재빨리 옆에 있던 빨간색 이어폰으로 바꿔 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분명 얼굴 새빨갛겠지.

다시 무작정 걸었더니, 마침 강변에 치비타가 포장마차를 끌고 나오는 게 보였다.

여전히 작네. 우리들이 어렸을 때보다 더 작아진 것 같아, 아마. 하지만, 치비타는 확실히 나보다 넓은 세상에 산다.

그렇게 생각한 탓일까, 작은 몸이 갑자기 커져 보인다.

[여어, 치비타]

[오소마츠, 아직 개점 전이라고]

[괜찮아. 잠깐 앉아있다 가게 해달라고. 피곤해-]

[방해하면 내쫓는다]

[안 할게~ 의자만 빌려줘]

마음대로 하라면서 치비타는 의자를 한 개 꺼내주고는 개점준비를 했다.

이 녀석도 열심이네, 나이는 우리랑 비슷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며 척척 움직이는 점주를 바라봤다.

[, 마침 잘 됐다. 오소마츠, 이걸 저 위 모퉁이에 달아주지 않겠나? 나는 손이 안 닿거든]

건네받은 건, 두께가 좀 되는 작은 액자. 안에는 꽃으로 동그라미가 세겹, 네겹, , 오뎅인가. 말린꽃으로 만들면 이렇게 입체적이고 선명하구나.

[너한테 꽃이라니! 안 어울린다고?]

[시꺼, 불평할 거면 너희 차남한테나 하라고, 임마]

[? 이거, 카라마츠가?]

닥치고 빨리 달기나 하라며 재촉하는 치비타에, 그의 말대로 액자를 색지 옆에 걸었다.

카라마츠에게 있어서 치비타는 꽃을 보낼 정도의 상대구나. 사이가 좋은 건 알았지만, 역시 분하다.

이 녀석, 카라마츠가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일하고 있는 것도, 이번의 시즌 아르바이트 건도 전부 당연하단 듯이 알고 있었다.

[올해는 이 포장마차도 5주년이거든. 카라마츠는 기억하고 있었던 거지. 정말이지, 감동시키지 말라고, 젠장]

같이 동봉된 편지에 의하면, 이 꽃은 프리저브드 플라워[각주:19], 시들지 않도록 특별히 가공한 거라고 했다.

[이 노란 게, “항상 전지”, 여기 꽃잎이 커다란 건 성공이란 의미고, 하얀 건 희망이라고 하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가 있다는 모양이다]

[꽃말이라는 거겠지. 이 녀석, 그런 거 좋아하니까]

2 캐릭터로 자신을 숨기고 있었지만, 카라마츠는 로맨틱한 말을 좋아해서, 순정만화를 보며 울고, 희곡 같은 사랑을 동경한다.

[그보다, 5년이나 오뎅가게 한 거야?]

[그렇다고. 중학교 졸업하고 스승 밑에서 1년간 배운 뒤에야 이 포장마차와 노점권리를 갖게 되었으니까]

이래봬도, 꽤 번성했다고. 개점 준비를 멈추지 않으며 치비타가 계속 말했다.

[처음에는, 그야, 잔품(팔다 남은 것)도 많았다고? 개점을 해도,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을 때도 많아서, 내가 속을 태우고 있을 때, 카라마츠가 왔어. 부원들과 함께 여기에 나란히 앉아서, 저녁 먹기 전에 배를 좀 채우고 돌아갈 거라면서 말이야. 큰 돈벌이는 되지 않았지만, 역시 기쁜 게 당연하잖냐. 손님이 내가 만든 걸 먹어준다는 건]

[뭐야 그게-, 나 처음 듣는데에-]

불평을 늘어놓자, 치비타는 일부러 말할 일도 아니잖냐, 라며 가볍게 넘겼다. 그런 녀석이었지, 너는.

[최근에 자주 생각하는 건데, 카라마츠, 너무 멋있지 않아? , 더는 못 따라가~]

제법 진심으로 말한 건데, 치비타는 하아? 라며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오소마츠, , 머리 괜찮냐?]

[안 미쳤거든- 정상이거든-]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걸. 그 녀석, 진짜 너무 멋있단 말이야. 나 같은 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야, 카라마츠는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멋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서투른 점도 많고, 울보에 천연이잖냐]

[무슨 소리야, 치비타]

녀석은 전혀 서툴지 않다고? 오히려 재주가 넘치지. 뭐든 다 해내잖아. 우는 거야, 이치마츠한테 멱살을 잡혀서 울먹거리는 경우는 있어도 진심으로 운 적은 거의 없다고, 고등학교 이후로는 거의 못 봤고.

대강 준비를 끝낸 건지, 치비타는 노렌(상점 출입구에 걸어두는 천)을 걸고, 남은 의자들을 전부 내놓았다. 그리곤 엽차가 든 컵을 양손에 들고 내 옆에 앉았다.

무언으로 건넨 찻잔을 받아들었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손을 잠시 덥히고 한모금 마셨다.

[그 녀석, 여기서 자주 너희들 불평을 했었다고. 이치마츠한테 맞았다든가, 네가 돈을 훔쳐갔다든가]

[바보 아냐, 그런 건 직접 말하면 될 텐데]

[나도 그렇게 말했다고. 나한테 말해도 소용없다고, 바로 돌아가서 직접 말하라고. 그래도 녀석은 고개를 저으면서, 미움 받고 싶지 않다, 같이 있고 싶으니까, 라는 말로 거절하더라]

[? 겨우 그런 걸로 싫어하진 않는다고?]

[그렇네. 하지만, 녀석은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그렇지 않아도, 연극이나 이런저런 걸 숨기려고 거짓말을 했었으니까 라면서 마지막에는 울더라고. 서투른 것에도 정도가 있지, 녀석은 얼마나 폰코츠인 건지..]

속내를 털어놓는 치비타의 얼굴에는 걱정이란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나 그렇게 못 미더워?]

[당연하지. 널 믿어서 무슨 득이 되겠냐]

딱 잘라 말한 치비타는, 웃으며 반쯤 농담이라 덧붙였다.

[너희들을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너무 가까운 거겠지. 녀석은, 너희 형제들을 엄청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거리를 둬야할지 모르는 거 아냐?]

우리들한테 미움 받고 싶지 않으니까, 불합리한 취급을 참는다. 괴로워도 슬퍼도, 약한 면은 전부 숨긴 채. 그렇게 무리를 해버리면, 언젠가 깨져버리는 건 당연한 일일 테지.

[인내심의 한계가 와서, 그래서 집을 나가버린 걸까나]

[-, 이번 아르바이트는 말이지, 내가 하라고 떠밀어준 걸지도 몰라]

미안하다며 고개를 푹 숙이는 치비타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 묻자, 화내지 말라며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내가 이상한 짓을 했었잖냐, 저번에. 그 뒤에 녀석이 찾아왔거든.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기에 돌아가서 자라고 했더니, 잠시 자기 얘길 들어달라고 하더라고]

우리들이 농담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유괴사건을 말하는 거겠지. 역시, 그게 원인인가.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그 녀석, “나는 이제 그 집에 못 있을 것 같다라고 하더라. 나는 바보 같은 말 말라고, 빨리 돌아가서 쉬라고 다그쳤는데, 녀석은 형제한테 미움 받았다는 말만 되풀이하더라고]

미움 받았다고 착각해도 어쩔 수 없겠지. 우리들 전부 녀석에게 상처를 줬으니까.

[그래서, 나도 점점 속이 부글부글거리고, 상처도 걱정되고 해서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했거든. 훗카이도의 아르바이트 얘기는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 상처로 스턴트맨 같은 건 무리일 테니까. 그랬더니 그 녀석, 뭔가 납득한 얼굴을 하고는 돌아가더라고]

[.........그래]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일을 당해도 참고서 우리들과 함께 있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우리들을 떠나기로 한 건가.

[어이, 오소마츠 화내지 말라니까]

[화내는 거 아냐]

자신의 한심함에 화가 났을 뿐이다. 연기에 속아 녀석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녀석이 아픔을 끌어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도, 어쩔 수 없다.

[슬슬 돌아갈게. , 고마워]

더 앉아있다간 홧김에 술을 마실 것 같다. 가서 저녁 준비도 도와야 하고.

치비타도 그걸 아는 거겠지. 게다가 방해 받기 싫은 것도 있어서인지, 만류하지 않았다.

[오뎅, 가지고 가. 슬슬 다 되어 가니까]

[됐어. 닭날개랑 무 넣고 졸여 먹을 예정인데 메뉴 겹치잖아]

일단 거절하긴 했지만, 치비타는 아침에 먹으라며 결국 봉투에 담아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이치마츠와 빨래를 다 정리하고 나니, 엄마가 돌아왔다.

내가 사온 것을 확인한 엄마가 정한 오늘 저녁밥은 역시 무와 닭날개 조림.

마츠요가 무를 돌려가며 껍질을 벗기고, 나는 칼집을 넣었다.

요리에 관해선 아직 어린애가 도와주는 수준. 그래도 나물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배추를 썰어 된장국에 넣을 차례. 줄기를 기준으로 세로로 잘랐다.

[!]

멍하니 있었던 탓에 고양이 손(칼질할 때 계란을 약하게 쥔 듯한 손모양을 말합니다)을 하는 걸 잊어버려 손가락을 살짝 베였다.

[그렇게 깊진 않네. 제대로 소독하고 반창고를 바르렴. 나머지는 엄마가 할테니까]

엄마는 재빨리 내 상처를 확인하고, 환하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들을 안심시켜주던 미소.

[미안]

[걱정하지 않아도 네 몫도 제대로 준비할 거니까]

오소마츠가 솔직하게 굴다니, 오히려 걱정인 걸이라며 마츠요는 작게 웃으며 나를 부엌에서 내쫓았다.

상처는 정말 별거 아니었다. 칼이 살짝 스쳤을 뿐이라, 이젠 아프지도 않았다.

소독약을 뿌리고, 반창고를 붙였다. 작은 반창고 겉으로 배어나오는 자신의 피를 보며, 갑자기 나는 녀석들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당연한 건데 내가 계속 무시했던 내가 너희고, 너희가 나가 아니라, “나는 나, 너희는 너희라는 사실.

이 상처는 나만의 것, 녀석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녀석들의 상처도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우리 6명은 하나의 수정란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지만 죽을 때는 함께가 아니다.

차차 받아들여져 가는 사실. 몸이 찢겨져 나갈 것 같고, 가슴이 욱신거린다.

[오소마츠형?]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이치마츠가 놀란 얼굴로 서있다.

[다친 거야? 그보다, 왜 울고 있어?]

눈앞에 웅크리고 앉은 이치마츠는 먼저 내 손가락을 살피더니 별거 아니라 판단한 듯, 이번에는 티슈를 뽑아 내 얼굴에 갖다댔다.

[이치마츠으, 나 말이야, 엄청난 걸 알아버렸어]

[, 뭔데?]

[나와 너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나와 토도마츠도, 쥬시마츠도, 쵸로마츠도, 카라마츠도, 전부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아무리 눈물을 닦아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치마츠는 내 얼굴을 제 가슴에 파묻었다.

[......., 그렇네. 그러니까, 이렇게 만질 수 있는 거잖아]

이치마츠의 후드는 어쩐지 짐승냄새가 났다. 이 녀석, 얼마나 고양이랑 뒹굴다 온 거야.

[다른 사람이니까, 네 형제일 수 있는 거야. 토도마츠도 쥬시마츠도, 나도 쵸로마츠도, 카라마츠도]

내 머리를 쓰다듬던 이치마츠의 손길이 기분 좋아서, 길고양이가 왜 그를 따르는지 납득이 갔다.

 

 

 

 

 

 

* * *

 

 

 

 

[.....하아아]

[쵸로마츠, 그렇게 풀 죽어있지 마라]

[미안, 쵸로마츠형, 내 비엔나 줄 테니까, 기운 내?]

1월 마지막 수요일, 아침 830.

오늘은 아르바이트 쉬는 날로, 셋이서 스노보드를 타러 가는 걸 기대했었는데, 말끔히 갠 하늘과는 반대로 내 마음은 먹구름이 잔뜩 드리웠다.

쥬시마츠가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잘못한 건 나, , 알고 있다.

오너를 필두로, 토미오씨도 라이야씨도 술꾼으로, 일이 끝나면 다 같이 한 잔 하는 게 이곳의 일상.

우리들은 그렇게 술이 세지 않으니까, 평소에는 정말 딱 한 잔만 마셨다. 카라마츠는 살짝 더 마시긴 하지만.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다음날이 휴가라서 그런지, 욕망에 져버려 한계까지 마시고 말았다.

거하게 취해선 목욕하러 들어가려는 내게, 카라마츠가 술 먹고 탕에 들어가면 안 좋다라고 했지만 끝끝내 괜찮다며 들어가 버렸다. 제대로 온천을 만끽하며 이런저런 주정을 부리던 나는 그의 말대로 갑자기 술기운이 돌았고,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괴롭다. 숙취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탕에서 나온 뒤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어쩐지 두려움이 몰려와 두 사람에게 어제 폐를 끼치지는 않았냐고 물었더니, 쥬시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쵸로마츠형 카라마츠형의 가슴 주무르면서 잠들었어!]

당연히 믿을 수 없어서 어떻게 된 일이냐며 따져 물었지만, 증거 영상을 본 나는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큰일이다. 너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무덤까지 끌고갈 리스트 중 하나인, 카라마츠의 가슴에 안겨서 자는 사진이 쥬시마츠에 의해 친가에 뿌려졌는데, 이것마저 뿌려질 수는 없다. 이 동영상은 꼭 봉인해둬야 한다. 내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거 재밌어서 모두한테 보내줬어!]

[우아아아아! 쥬우시마츠으!!!]

간만에 전력으로 소리를 지른 나 때문에 타이가씨가 셔츠를 제대로 입지도 못한 채 옆방에서 뛰쳐나와, 카라마츠가 아무 일도 아니라며 사과했다.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옷을 갈아입히고 헝클어진 머리도 정리해주었다.

열심히 일해서 영상에 관한 걸 잊자고 생각하며, 협박문자를 하나 본가의 세명에게 넣어두고, 두 사람에게 이끌려 휴게실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쵸로마츠 숙취?]

오늘 아침은 라이야씨가 만들었다. 아일랜드 풍의 아침으로, 소시지와 스크램블 에그, 소다 브레드와 야채 스프에 요구르트도 있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스프를 한 입 떠먹자, 따스함과 야채의 풍미에 살짝 기분이 풀렸다.

[, 쵸로마츠, 이제 괜찮은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내민 건, 프론트부터 주방일까지 뭐든 능숙하게 해내는 타이가 선배였다. 오늘은 카라마츠의 대리로 토미오씨를 돕는다는 모양이다.

[아까는 소리를 질러서 죄송했습니다]

스크램블 에그를 삼키고 사과를 하자, 양옆의 형제들이 쿡쿡 웃어댔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 진짜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거야?]

[?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바퀴벌레라도 나왔어?]

[아니에요. 제 실수가 본가의 형제들에게 들킨 것뿐...]

다시 정색을 하며 쥬시마츠가 찍은 영상을 보여줬더니, 타이가씨와 라이야씨가 폭소했다.

[하하하핫! 이야-, 이거 엄청 재밌잖아! 우와-, 직접 보고 싶었는데-! 돌아가는 게 아니었어!]

-, 눈물 난다라며 카운터에 머리를 푹 처박고 웃는 라이야씨의 머리를 타이가씨가 라이형 너무 웃잖아라며 살짝 쥐어박았다.

[술에 취해서 그런 거니까, 괜찮지 않아? 나도 술 때문에 이런저런 추태를 보인 적 있었고, 삼촌이랑 라이형도 만만찮으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말라고]

내 머리를 막 쓰다듬으며, 쥬시마츠와 카라마츠의 머리까지 쓰다듬은 타이가씨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래그래, 좋은 얘깃거리잖냐]

눈물을 닦으며 몸을 일으킨 라이야씨가, 탁탁 카운터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뭐어, 나님의 breakfast를 먹으면, 전부 괜찮아질 거라고]

이런 말을 스스로 해도 그럴듯하니까, 혼혈인 이케멘은 이득이구나, 라고 생각해 무심코 웃어버렸다.

[그렇네요. 스프, 맛있어요]

[나는 이 달걀 좋아! 푹신푹신!]

[나는 이 빵이 좋군]

[그렇지-? 그랜마한테 전수받은 거니까 말이야]

의기양양한 얼굴로 가슴을 탁탁 치며, 윙크를 날린다. 그 동작을 보던 카라마츠가, 오오, 라며 눈을 반짝인다.

, , 이런 거 좋아했지. 하지만, 순수 일본인인 네가 하면 그냥 안쓰러울 뿐이니까 말이야.

자신을 연기하기를 그만둔 카라마츠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라이야씨를 동경하는 것 같다.

라이야씨도 카라마츠가 웨이터를 하게 됐을 때부터 우리 차남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슬쩍슬쩍 관심을 내비쳤다.

지금도 커피를 마시며 소시지를 행복한 표정으로 먹는 카라마츠를,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보고 있고.

뭐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카라마츠의 저 표정은 정말 귀엽고, 힐링되니까.

 

 

맛있는 밥과 형제의 미소로 축 쳐져있던 기분도 회복되다니, 나도 단순하지.

신문을 보는 라이야씨에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감사인사를 전하자, 손을 가볍게 흔들어 답한다.

[쵸로마츠형, 기운 났어? 이제 타러 갈까?]

[, 덕분에. 잔뜩 타고 오자]

계단을 재빨리 뛰쳐내려가는 쥬시마츠의 뒤를, 나와 카라마츠가 뒤쫓았다.

지갑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펜션에 남아있던 스키복과 마찬가지로 빌린 신발을 신었다.

오너와 토미오씨, 라이야씨에게 빌린 보드를 짊어지고 뒷문을 통해 밖을 나서자, 벤씨가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재밌게 놀다 오라고-!]

셋이서 손을 흔들어 답하고, 걸어서 불과 10분 만에 초심자부터 상급자까지 즐길 수 있는 스키장에 도착했다.

리프트 매표소에, 카라마츠가 당구 내기로 얻은 할인권을 살짝 잘난 체하듯이 꺼내보이자, 이제는 얼굴을 익혀버린 아주머니까 아하하 웃었다.

[, 여기]

감사합니다, 하고 세명 동시에 말하는 것도 이젠 익숙한 풍경이다.

부모님이 스키에 푹 빠졌던지라 어릴 때부터 스키장에는 매년 데려가주었다. 하지만 스노 보드는 타본 적이 없으니, 모처럼이니까 도전해보자고 말을 꺼낸 건 나였다.

막상 오긴 왔지만, 초심자 셋이서 어쩌지도 못하고 서있자, 현지의 남학생 세명이 가르쳐주었다.

같은 얼굴 세명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웃겨서 말을 건 것 같았다.

동물적인 운동감각을 가진 쥬시마츠는 순식간에 보드를 익혔고, 재주가 많은 카라마츠도 금방 그럭저럭 탈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두 사람에 비하면 더디지만, 지금은 나도 양껏 재주를 부리며 탈 수 있게 되었다.

스피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턴을 하거나, 흐름에 맡겨 에어[각주:20]를 넣는 게 좋다.

평범하게 타는 걸로는 부족해진 쥬시마츠와 카라마츠는 하프파이프와 키커[각주:21]에 열중이다.

준비운동 삼아 셋이서 짧은 코스를 타고, 하프파이프로 이동.

[그럼 다녀올게!]

[제대로 보고 있을 테니까!]

[턱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줄서러 간 쥬시마츠에게 카라마츠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고, 나는 타이가씨한테 빌린 비디오 카메라를 작동시켜, 오늘 본가에 보낼 영상을 찍었다.

[쵸로마츠, 다음이다. 비디오 준비했나?]

[날 뭐로 보고, 준비만만이라고]

저 높은 곳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는지, 노란 헬멧을 쓴 쥬시마츠가 두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노 보드 어쩌고 게임, 하프파이프! 해설은 저 마츠노 쵸로마츠와 본고장인 미국에서 넘어오신 미스터 파인필드씨입니다!]

갑자기 발랄하게 말하는 날 보며, 카라마츠는 눈을 깜빡거리더니 히죽거리며 웃었다.

[Hello, everyone! I'm Pinefield. Now, I can't wait to see Jyushimatsu Matsuno's performance!]

텐션을 높여 유창하게 영어를 말하는 카라마츠는, 완전히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미국인 스노보드 해설자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 시즌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인데요! 자아, 슬슬 쥬시마츠 선수의 등장입니다!]

[First, backside one-eighty. So beautiful!]

[처음은, 백사이드 180,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Next is frondside three, and high air!]

[다음은 프론트 사이드 360. 그리고 에어! 오오, 꽤 높은데요!]

[Switch-stance, and wow! cab ten-eighty! Excellent! Oh my goodness! What a huge jump!]

[자세를 바꿔, 커브 1080! 굉장하네요! 다이나믹하게 마무리!!]

아주 간단히 기술을 선보인 쥬시마츠가 아래로 스르륵 내려온 것을 신호로, 나는 촬영을 중지했다. 열렬히 해설하던 미스터 파인필드는 환상 속 너머로 돌아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카라마츠와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엄청 기분 좋았어!!]

구경꾼들의 박수를 받으며 돌아온 쥬시마츠가 뛰어드는 걸 둘이서 받아냈다.

다음은 카라마츠의 키커, 꽤 상급자용으로, 높이는 5, 6m 정도다. 그런데 녀석은 처음부터 태연하게 타서, 오히려 가르쳐준 대학생들이 놀랐다.

[카라마츠형!!]

차례가 돌아오고, 대 위에 선 카라마츠에게 쥬시마츠가 양손을 흔들었다. 그쪽도 보고 있었는지, 이쪽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망설임 없이 슥, 하고 어프로치[각주:22]를 내려가, 가속을 해서 립에 도달. 그대로 카라마츠의 몸이 공중에 높이 날아오른다.

[우하-!! 높아아-!]

몇 번이나 도는 걸까. 빙글빙글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그대로 하늘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들 정도로 오랫동안 공중에 맴돌던 카라마츠는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카라마츠형 엄청나아-!! 엄청 멋져어어!!]

와와- 떠들어대는 쥬시마츠 옆에서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위험해, 엄청나다고, 내 형제 너무 멋져서 심장이 파열될 것 같아!!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보드를 탄 우리들은 펜션으로 돌아가 목욕으로 피로를 풀었다. 이 무슨 사치스러운 시간인가.

저녁은 사슴고기 전골로, 이것 또한 엄청 맛있었다.

쥬시마츠들이 어제 잡아온 커다란 사슴은 전문업자에게 부탁해 해체했다.

그래서 오늘 레스토랑의 메인 요리는 붉은 와인으로 졸인 사슴고기로, 손님들에게 호평이었다.

폐점 후 정리를 돕고, 내일은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고, 평일에는 투숙객들도 그리 많지 않으니, 오늘은 느긋하게 마시자, 라며 다들 휴게실에 모였다.

[, 쵸로짱이랑 카라짱의 그거, 또 보고 싶어]

[나도, 보고 싶은데]

여성 두 명이 졸라대는 탓에, 나와 카라마츠는 제대로 제복을 갖춰 입고 카운터 안에 섰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당연하게도 셰이커를 흘드는 카라마츠에 흠뻑 빠졌었다. 그래서 싱크로 바텐더의 영상을 찾아봤다.

[쵸로마츠,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라는 말에 꼬드겨져서, 연습하게 된 지 약 한달. 기본적인 칵테일을 만들 수 있게 된 이후, 우리들의 연회에서 그 성과를 선보이게 되었다.

나는 실벵씨의 마티니[각주:23], 카라마츠는 유메노씨의 스팅어[각주:24]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를 맡았다. 따로 구호는 필요 없다. 그저 눈을 마주칠 뿐. 그것만으로 서로의 호흡을 맞춘다.

그 증거로 셰이커를 테이블에 두는 타이밍이 딱 맞았다.

내가 진을 들어 한 바퀴 돌리자, 카라마츠가 브랜디를 들어 흔든다.

카라마츠가 페퍼민트 리큐르[각주:25]를 메저 컵(액체용 계량컵)에 부었다. 나도 따라서 베르무트[각주:26]를 메저 컵에 부었다.

셰이커 뚜껑을 덮고, 한 손으로 셰이커를 가지고 놀 듯 살짝 흔든다. 흔드는 손의 위치도, 횟수도 전부 똑같다.

신중하게 잔에 따르고, 여기있습니다, 라며 내밀자 박수가 쏟아진다.

물론 박수도 기쁘지만, 카라마츠와 일심동체가 된 것이 엄청 기뻤다.

[-, 돌아가기 싫어]

오너의 추천인 소주를 한 모금 마셔 뜨거워진 목에서 툭, 한마디가 튀어나온다.

작게 말했는데 마침 대화가 끊겼던 타이밍에 튀어나온 탓에, 어제부터 내 머리를 맴돌던 한마디를 모두에게 들키고 말았다.

[왜 그러나, 쵸로마츠?]

[생각해 보라고. 집에 돌아가면, 너는 또 불쌍한 취급을 받게 될 거라고? 게다가 쥬시마츠가 제대로 뭔가 하려고 하면 녀석들이 방해할지도 모르고. 나도 백수로 돌아갈지도 몰라]

이제 네가 부당한 취급을 받는 건, 보고 싶지 않아. 마지막 말은 제대로 전하지 못했지만, 카라마츠에겐 전해졌는지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기쁘면서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희 회사에 오지 않겠습니까?]

분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하나요시씨였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멍하니 있자, 라이야씨가 입을 열었다.

[, 또냐! 작년에도 그런 달콤한 말로 유혹해서 노바라짱을 데려갔잖냐]

오해를 살만한 말은 삼가주시죠, 라며 하나요시씨가 라이야씨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곤 우리들 쪽으로 다가왔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쵸로마츠군, 저희 회사에서 일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회사는 아카츠카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셋이서 살 정도로 큰 사원 기숙사도 있습니다. 급료 같은 건 여기서 말할 수는 없지만, 평균적인 금액이라 생각합니다. 사회 보험은 물론이고, 복리 후생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휴가도...제가 여기에 있는 걸 보시면 어느 정도 감이 오시겠죠?]

꽃미남 오라를 뿌려대며 말하는 하나요시씨. 아니, 잠시만요, 그렇지만, 저 지금까지 니트였고, 여기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한 것뿐인데, 그런 회사에 다니다니.

[저기, 어떤 일인가요? , 정말 여기서밖에 일해본 적이 없어서]

[아아, 실례. 저희 회사는 대학발 벤쳐기업을 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연구성과를 시장에 내놓으면, 그걸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요. 구체적으로는, 경영과 인사 면에서 조언을 하거나 함께 툴을 작성하거나 합니다]

어째서 그런 어렵고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일을 나한테 추천하는 거지. 이쪽은 고졸이라, 대학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는데.

[그거, 제가 할 수 있는 일인가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권유드리는 겁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랬죠? 당신이 청소한 방은 완벽하다고. 세세한 곳까지 제대로 살피고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형제분들과 있을 때, 당신이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인 것 같더군요. 그런 자질이, 저는 필요합니다]

과대평가라고 생각했다. 청소를 잘 해낸 건, 그저 내가 약하게 결벽증이 있었을 뿐이고,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내 의견을 들어줬기에 정리하는 것도 가능한 거다.

[-, 좋은 제안이지 않나 쵸로마츠군. 해보라고]

쿨하게 찬성해버린 오너의 뒤를 이어, 토미오씨와 유메노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무언가를 시작할 땐 다 처음이지. 한 번 도전해보고, 안 되겠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면 되는 거야. 바니의 회사가 별로라면, 우리 회사도 소개해주지. 아니면 여기로 돌아와도 되고]

[이래 봬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결정하는 것도 힘들테니, 조금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어젯밤 일을 반성삼아, 소주 2잔 마시고 자리를 떴다.

형제 LINE이 와서 보니, 이치마츠가 내년 대학 입시에 도전한다는 보고였다.

아마, 이치마츠한테 자극받은 건지,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기, 카라마츠. 부모님의 이혼소동. 기억해?]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의아함으로 가득차있다.

[그 때, 내가 그랬잖아. 널 부양해주겠다고. 그거, 지킬테니까 같이 살래? 쥬시마츠, 너도]

두 사람은 잠시 멍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봤다.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는 거겠지. 그러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동시에 외쳤다.

[물론이지!]

[갈게!!]

 

 

 

 

 

 





으아...드디어 끝냈다ㅠ

분량이 엄청나서 시간이 꽤 걸렸네요


6편부터는 아직 안 올라와서

이후에 업로드가 되면 번역할게요 :D

 

 

 

 

 

 

 

 

 

 

 

 

 



  1. (=아르카익(아르카이크)스마일. 초기 그리스 조각의 옅은 미소를 띤 표정을 말합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2. (쉽게 예로 들자면, SD캐릭터를 떠올리면 될 것 같아요 :) 자세한 설명은 검색을!) [본문으로]
  3. (이탈리아식 스위트 푸딩) [본문으로]
  4. (임시 비계에서 각종 작업에 종사하는 기능인. 건축 관련 종사자) [본문으로]
  5. (스페인 북부의 항만도시) [본문으로]
  6. (닭고기 등으로 속을 채운 작은 파이) [본문으로]
  7. (프라이팬에 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넣어 끓인 스페인 전통 쌀요리) [본문으로]
  8. (조부모나 선조의 형질이 유전된 것) [본문으로]
  9.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번역기 돌려서 나온 거라...) [본문으로]
  10. (무슈는 남성, 마담은 여성에게 쓰는 말입니다) [본문으로]
  11. (*일단 불어 느낌상 번역했어요...카라마츠가 뭔가 단어선택을 잘못..한 것도 같은데 전 불어를 안 배워서 모르겠습니다..;ㅂ;) [본문으로]
  12. (*일본의 한자는 같은 한자라도 읽는 법이 달라서, 이름도 마찬가지로 같은 한자를 쓰지만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따로 뒤에 읽는 법을 붙여둔 거고, 여기서 하나요시는 華美로 빛날 화, 아름다울 미, 라서 여자이름 같다고 한 것 같네요 :D) [본문으로]
  13. (빛날 화에는 꽃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14. (일본어로 토끼) [본문으로]
  15. (채소와 된장 따위를 넣고 끓인 죽) [본문으로]
  16. (싱글 CD에 들어가는 노래 2곡 중 타이틀곡이 아닌 다른 한 곡) [본문으로]
  17. (空野空松가 원문입니다. 여기서 카라는 텅텅 비었다는 의미로 쓴 것 같아요) [본문으로]
  18. (고객들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엔터테이먼트적 요소를 제공하는 바텐더) [본문으로]
  19. (생화에 착색제와 특수 보존액 처리를 한 후에 건조시킨 것) [본문으로]
  20. (보드 용어 같은데 모르겠네요) [본문으로]
  21. (보드류를 탈 때 타는 언덕 형태나 반원 형태의 장애물..? 같은 겁니다) [본문으로]
  22. (도움닫기 구간) [본문으로]
  23. (진(술의 한 종류)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 [본문으로]
  24. (브랜디(술의 한 종류) [본문으로]
  25. (리큐르(리쾨르)는 알코올에 설탕, 향료를 섞은 혼성주로 페퍼민트 향의 리큐르를 ‘페퍼민트 리큐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6. (이것도 리큐르의 일종입니다. 포도주에 베르무트초의 뿌리 따위를 우려낸 거라고 하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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