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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혼에 안녕을 3
눈앞을 뒤덮은 뿌연 안개들이 걷히고, 눈을 뜨자 그곳에는 낯익은 저녁노을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신사 지붕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날개를 흩날리며 카라마츠 앞에 내려왔다.
[카라마츠, 어서오게]
[카, 카라.....카라아......!!]
카라마츠는 카라의 얼굴을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카라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등을 어루만져 카라마츠를 위로했다.
카라마츠가 진정하는 사이, 카라는 천리안으로 그의 과거를 엿보았다. 그리곤 경악에 가득찬 표정으로 눈을 떴다.
[카라마츠, 그대.....도도메키를 만난 건가...!]
[도도메키...? 눈이 엄청나게 많은 청년말인가?]
[아아, 그래. 녀석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요괴다. ....설마하니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이야]
이렇게 크게 동요하는 카라를 본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도도메키가 카라를 “의형제”라고 했다. 하지만, 카라의 반응을 보아, 의형제를 만나 기뻐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또 내게서 소중한 걸 빼앗을 셈인가.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잘 들어라, 카라마츠.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녀석을 따라가선 안 된다]
카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목에 걸려있던 부적을 빼 카라마츠 목에 걸어주었다. 이 부적은 먼 옛날 다른 요괴들과의 연을 끊기 위해 요력을 써서 만든 것이었다.
[카라, 이건....]
[여기에는 특별한 기운이 담겨있다. 몸에 지니고 있으면 나보다 요력이 낮은 요괴들은 절대로 그댈 찾을 수 없을 거다]
[카라보다 요력이 높은 요괴들은 찾아낼 수 있는 건가? 그 도도메키란 녀석은...]
[녀석은 나보다 낮다. 이래보여도 난 상당히 고위 요괴거든. ........단 한명, 나와 비슷한 녀석이 있긴 하다만]
그렇게 말한 카라는 쓸쓸한 얼굴로 회상에 잠겼다.
카라마츠는 의문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첫 번째는, 어째서 의형제가 있으면서 혼자 외로이 이 공간에 있는가. 둘째는, 어째서 의형제가 카라를 찾는가.
[....저기, 그 도도메키라는 요괴, 카라를 찾고 있었다. 만나줄 수는 없는가]
[.....이제 와서 대체 뭘ㄹ....그대는 모르지 않나...녀석은...녀석들은...! 나를 이곳에 가두었단 말이다!!]
카라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쥐어짜내는 듯한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대체 왜 나만...나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카라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마치 미아가 된 아이처럼 작게 웅크린 카라에, 카라마츠는 마음이 아팠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주변에 메아리쳐서인지 더욱 비통하게 느껴졌다.
[.....저기, 카라. 괜찮다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겠나]
카라마츠는 카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카라의 마음을 세게 뒤흔들었다.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약한 모습이 전부 까발려진 듯한 감각에 휩싸여, 공포로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공포보다 따스함이 더 크게 그를 뒤덮었다.
[.....별로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카라의 얘기를 들려줘]
그 말에 카라는 단념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먼 과거에 잠겨있는 듯했다.
--이 일대는, 과거 큰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각기 종족이 다른 고아 6명이 형제처럼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한명은 구미호, 한명은 카라스텐구, 한명은 도도메키, 한명은 네코마타에, 다른 한명은 로쿠로쿠비, 마지막 한명은 설녀(남)였다.
출신도 외견도 모두 달랐지만, 다들 사이좋게 살아갔다. 그들 중에서 가장 요기가 강한 자는 대텐구의 사생아인 카라였다.
그걸 처음으로 알게 된 건, 함께 살게 된 지 100년이 지났을 무렵으로, 산신(원문은 山の長인데, 산의 우두머리? 대장? 같은 개념인 것 같은데 뭔지 잘 모르겠네요..산신이랑 같은 개념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이 인간에게 살해당했을 즈음이었다.
산의 요괴가 카라에게 찾아와, “너는 대텐구의 아들이니, 이 산을 지킬 힘 정도는 있을테지. 다음 산신은 너다” 라고 말했다. 그것이 운명의 갈림길의 시작이었다.
산에 살던 요괴들이 차례로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고, 악질적인 장난에 그 수가 줄어갔다. 이제 요괴에겐 미래가 없고, 바람 앞의 등불(풍전등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카라가 차기 산신으로 임명받은 이후, 형제들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카라를 노골적으로 피하고 폄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카라를 정신적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결국, 카라는 5명에 의해 이 신사에 봉인되었다. 대텐구의 피를 이어받은 카라조차도 풀 수 없는 강력한 주술로, 아무리 울며 난리를 쳐도 아무도 풀어주지 않았다.
사백년 정도 지났을 무렵, 그렇게나 강력했던 주술도 서서히 약해져,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 이미 산은 깎여 사라지고 인간의 마을과, 텅 빈 공터에 자신이 갇혀있던 신사만이 남아 있었다.
다섯명을 찾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짓을 당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함께 웃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 조차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카라는 절망했다.
토지신에게 물으니, 사백년 전, 인간이 산에 쳐들어와 요괴들을 몰살시켰다고 했다. 더는 형제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면서도, 자신을 신사에 봉인한 벌을 받은 거라 생각하면서 카라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이후로 카라는 인간을 증오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든 인간을 돕는 등 모순적이게 살아갔다. 혼자인 게 두려웠다.
하지만, 카라는 그 남자아이가 죽임을 당한 날, 원념으로 마을 하나를 궤멸시켰다. 아이가 잠든 무덤가가 마을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하여, 이곳을 “아카츠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대가 알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변함없는 경치속에서 홀로 있다는 고독을]
그 말에 카라마츠는 고개를 떨구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곤 살짝 카라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런 온기에 카라는 당황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카라마츠는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자신을 위해 울어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기에, 카라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잘 견뎠다...! 계속 외로웠겠지...!]
카라는 이 상황에 크게 당황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 전체가 포곤해지는 느낌에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카라는 눈을 슬며시 감았다. 그러자 이미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 지면에 얼룩을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부드럽게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카라마츠. 인간의 몸을 버리고 요괴가 되어주지 않겠나. 더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
[....카라, 그 말은.....!!]
[어차피 형제에게 버림받은 몸이지 않나. 같은 처치의 동지로서, 사이좋게 살아보세. 그대가 원하는 요괴로 만들어주겠다. 뭐가 좋은가. 그래, 아오안돈은 어떤가? 아아, お仕え狐도 좋겠군]
카라가 온화한 표정으로 말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카라가 카라마츠를 자신에게 확 떼어놓았다.
[왜, 왜 그러나, 카라.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방금, 땅이 흔들렸다]
[아아, 지진이라도 난 건가. 자주 있는 일이지 않나]
카라마츠는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카라는 여전히 험악한 표정이었다.
[......이곳에서는 지진은 물론이고 그 어떠한 변화도 일어난 적이 없다. 비도 내리지 않거니와, 눈도, 진눈깨비조차도 내리지 않지.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이다]
카라는 미간을 잔뜩 구기곤 생각에 잠겼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원인은 현세와의 시간이 이어져있다는 것뿐이었다. 시공의 뒤틀림이 변동을 가져온 거겠지.
하지만, 이곳과의 조화를 위해 비가 오거나, 아침부터 낮까지는 막아두었을 터다.
그렇다면.
[....뭐어, 괜찮겠지. 카라마츠, 슬슬 돌아가는 게 좋겠군. 오늘은 한심한 모습만 보여 미안하군. 마음 깊은 곳에 묻어뒀으면 좋겠군]
제 눈앞에 있는 카라마츠가 이곳에 오는 걸 누군가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한번 뒤틀려버린 시공은 흐르기 시작한 모래시계처럼 멈출줄을 모른다. 이 끝은 분명 완전한 붕괴일 것이다. 즉, 현세로 왔다갔다 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이 공간에 완전히 갇혀버린다는 의미다.
[....카라마츠. 아까 했던 말은 부디 잊어주게]
[아, 카라....! 잠깐.......!!]
카라는 옅은 웃음을 띠우고는,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강제로 카라마츠를 현세로 돌려보냈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라면 그렇게 힘을 들이지 않는 행위일 테지만, 시공이 뒤틀려 부하가 걸린 탓이니 생각보다 요력의 소모가 컸다.
[.......슬슬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군]
카라는 단념한 듯 눈을 감으며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그 주변에 까마귀 몇 마리가 날아들었다. 이들은 현세에서 데려온 녀석들로, 때때로 카라의 말벗이 되어 주었다.
카라는 손을 뻗어 까마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그 날을 경계로, 가끔이지만 깃털을 써도 카라가 있는 곳에 갈 수 없는 날이 종종 생겼다.
이미 카라에게 가는 게 일과가 된 카라마츠의 마음은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어째서, 어째서 카라에게 갈 수 없는 건가. 벌써 2일째다...!!]
카라마츠는 불안에 가득 찬 표정으로 객실에서 안절부절하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뭔가 그를 불쾌하게 만든 걸까. 아니면 카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카라를 만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카라마츠의 뇌리에 슬픈 과거를 말하는 카라의 표정이 떠올랐다. 모든 것에 체념한 듯한, 포기한 듯한 표정에, 카라마츠는 그를 절대로 혼자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카라마츠으, 잠깐 괜찮아? 들어간다~]
생각에 잠겨있던 중, 오소마츠가 방에 들어왔다. 갑작스런 방문자에게 카라마츠는 눈만 슬쩍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오~ 무서워. 너 인상 나쁘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냐니, 말투가 왜 그래? 돈을 빌려달라고 온 건 아니니까 표정 풀라구~? 그냥 좀...나랑 잠깐 나가지 않을래? 아니, 마츠요가 심부름을 시켰는데, 다른 마츠들은 다 나가고 없고 역시 혼자는 힘들어서...]
그냥 오소마츠가 같이 놀자고 하는 거라면 거절했겠지만, 엄마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 없다고 생각한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다 지금 가지]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방에서 나간 걸 확인한 후, 깃털을 이불 밑에 숨기곤 오소마츠의 뒤를 따라갔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자, 오소마츠는 지갑을 두고 왔다며 이층으로 향했다.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자, 그곳에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있었다. 이치마츠는 고양이와 놀고 있고,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나갈 거야. 가능한 빨리 하라고]
[알겠어. ....고마워, 오소마츠형]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곤, 그대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기다리는 현관으로 향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다른 마츠들은 나가고 없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방에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니, 이것은 하나의 작전이었다.
일의 발단은 어젯밤이었다.
취침전, 다섯명은 형제회의를 열었다. 의제는 물론 카라마츠였다. 원래도 상태가 이상했던 카라마츠였지만, 최근들어 더욱 이상해졌기 때문에 역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형제회의를 시작할게~. 주제는 차남에 관해서인데....뭐어, 솔직히 말해서 그 녀석 요즘 좀 이상하단 말이지』
오소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푹 숙였따.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있어 유일한 형이자, 대등한 위치였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취급이 다른 마츠들에 비해 냉정한 편이었고, 자신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날. 유괴당한 카라마츠를 버려둔 이후로, 카라마츠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하나하나에 다 겁을 먹고, 형제들에게 거리를 두었다.
자신들 때문이란 건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 탐탁치만은 않을 일이었다. 카라마츠의 한없이 긍정적인 면이나, 안쓰러운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냥한 점인 좋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자신이 좋아하던 카라마츠는 마치 어디론가 가버린 듯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 건 “그날”부터잖아. 치비타에게 유괴당했던 날.....역시 쿠소마츠라도 싫어진 게 아닐까』
이치마츠는 무릎을 꼭 끌어안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날 밤, 자신이 카라마츠에게 결정타를 날렸다는 자각은 있다. 하지만 그건 평소에 하던 작은 괴롭힘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붕에서 밀어 떨어뜨려도, 바주카로 날려버려도 카라마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하루가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너무 심했단 거? 그래도 일단 사과는 했다고~? 녀석도 괜찮다고 했고.....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는 거야 뭐야? 끄아악~, 형아 이런 거 잘 모른다구우-!!』
『오소마츠형 무신경하니까!』
머리를 감싸쥔 오소마츠에게 쥬시마츠가 일격을 날렸다.
『크헉! 쥬시마츠, 너 임마, 그랬겠다아.... 너희들도 보고도 못 본 척했으니까 똑같다고!! 아니, 그보다 어떻게 해야 좋냐고오!! ...토도마츠, 너 카라마츠 파트너잖아? 뭐 아는 거 없냐?』
오소마츠에게 지명당한 토도마츠는 어깨를 으쓱하며 외면했다. 입을 삐죽이며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로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른다고. 아니, 그 전에 카라마츠형한테 거절당했거든. 모처럼 내가 같이 낚시하러 가자고 했는데.....카라마츠 보이가 기다리고 있다나 뭐라나 하면서 가버렸다고. 말도 안 되지 않아!?』
『카라마츠 보이!? 켁, 그런 녀석 있는 거냐~!?』
오소마츠는 과장하며 놀란 척을 했다. 카라마츠 보이란 말을 들은 순간, 이치마츠의 귀가 움찔했다.
『그거, 평소에 자주 지껄이는 망상의 카라마츠 걸이랑 같은 거 아냐? 만약 카라마츠 보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그 녀석이라면 호구 잡힐 게 분명해』
쵸로마츠가 팔짱을 끼고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말했다.
카라마츠는 옛날부터 한번 빠지면 완전 푹 빠져 그것 하나에만 열중하곤 했다. 연극과 오자키, 꾸며낸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에게, 하물며 오랫동안 염원했던 카라마츠 걸과 보이가, 자신이 약해져 있는 사이 짠하고 나타났으니 흔들리지 않을 수 없겠지.
다섯명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묘하게 납득했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 그 카라마츠 보이가 생긴 거야아?....그보다 어떤 사람? 우리들이 아는 사람?』
쥬시마츠가 손을 번쩍 들며 말하자, 다른 형제들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오소마츠가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 기억나? 전에 카라마츠가 뭔가에 겁먹고 벌벌 떨었던 일. 나, 카라마츠랑 둘만 있을 때, 갑자기 녀석이 “누가 보고 있다. 이 방에 있다” 라고 한 적이 있어』
『긋, 그그, 그만두라구, 오소마츠형!! 나 무서운 이야기 싫단 말이야!!』
말을 더듬으며 귀를 틀어막은 토도마츠를 무시하고, 오소마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세명은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꿀꺽 침을 삼켰다.
『그래서, 방안을 여기저기 둘러봤는데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래서 난 그냥 내 관심을 끌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 생각해서 내버려두고 파칭코에 갔거든. 그랬더니 카라마츠 녀석, 혼자 어디 나가선 한밤중에 돌아왔다니까? 적어도 저녁부터 외출하기 시작한 건 그날부터인 것 같아』
『우와, 오소마츠형 쓰레기네. 나랑 거의 막상막하 수준의 쓰레기야...... 그나저나, 그 소린 오소마츠형이 내버려두고 나가버렸으니까 쿠소마츠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
『아니아니, 그치만 어쩔 수 없었다고!! 완전 맛이 간 듯한 카라마츠랑 단둘이 있는 건 지옥이라니까!? 게다가 나 2시간만 있다가 다시 돌아갔거든!?』
이치마츠는 경멸하는 눈으로 오소마츠를 봤다. 그때, 쵸로마츠가 손을 슬쩍 올리곤 입을 열었다.
『.....아마 그 날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 그때 밖에 있던 카라마츠랑 만났어.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뭐라고 할까......마치 누구한테 홀린 것처럼....., 완전 혼이 나가버린 것 같아서 무서웠어...... 게다가 얼마전에도-』
『거기야, 거기!! 너 왜 안 데리고 온 거야??』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에게 휙휙 삿대질을 해대며 외쳤다. 그런 오소마츠에 쵸로마츠는 중지를 올리며 오소마츠를 노려보았다.
『하아!? 왜 날 나쁜 놈으로 만드는 건데!! 오소마츠형이 카라마츠를 혼자 두고 나간 게 나쁜 거잖아!!』
『자자, 둘 다 그만!! 쵸로마츠형, 방금 뭐라고 하려고 했어? 얼마전에 뭐?』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던 그때, 어느새 귀를 막고 있던 손을 푼 토도마츠가 두 사람을 말렸다.
쵸로마츠는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 바닥에 붙이고,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한 뒤 말을 이어갔다.
『.....얼마전에, 나 봐버렸어. 라이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카라마츠를 발견했거든. 그래서 녀석 뒤를 밟았는데, 웬 이상한 공터로 가더라고.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카라마츠가 늘 지니고 다니던 까마귀..? 깃털 같은 걸 꺼내서 높이 치켜들더니 갑자기 안개가 생기더니 녀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어』
『....하? 너, 눈......아니, 머리 어떻게 된 거 아냐?』
이치마츠는 의심과 연민의 눈으로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쵸로마츠는 의외로 고개를 kr로 저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정말이라니까!!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카라마츠, 뭔가에 홀린 거 아닐까...응, 틀림없이 그럴거야』
『뭔가라니 그게 대체 뭔데!? 아니, 그보다 또 그런 얘기하고! 진짜 무서우니까 그만둬!!』
다시 귀를 틀어막은 토도마츠를 흘긋 쳐다본 쵸로마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사명감에 불타기 시작한 쵸로마츠를 보고,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는 시선을 마주쳤다.
『토도마츠 너, 안 믿는 거지!! ......좋아, 그럼 내가 카라마츠한테서 그 깃털 뺏어올테니까. 그러면 분명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재밌겠는데-. 그럼 내가 카라마츠를 데리고 나갈게. 그 사이에 방안을 뒤져서 찾아내. 역시 매일매일, 얼굴도 모르는 녀석한테 형제를 뺏기는 건 열받기도 하고. 마츠요가 심부름을 시켰다고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고로 형제회의는 여기서 끝! 난 이제 잔다~』
오소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이불로 들어갔고, 쵸로마츠나 토도마츠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기세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간단히 생각해버리는 3명이었다.
소등 후, 이치마츠는 잠들지 못해 몸을 일으켰다. 카라마츠가 있던 옆자리를 쳐다보다, 이불 가장자리를 바라보자 쥬시마츠도 잠이 오지 않는지 일어나있었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이치마츠가 복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쥬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불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이치마츠가 차를 내려, 쥬시마츠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거실에 둘이 앉아 차를 홀짝이며 얘기를 나눴다.
『......넌 어떻게 생각해, 쥬시마츠. 녀석은 홀리기만 한 걸까』
『아니.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얼마전에 카라마츠형한테 나가지 말라고 했을 때, “카라는 나를 필요로 한다. 날 원하고 있다” 라고 했어!』
『.....카라라니 누구야 그거』
이치마츠는 찻잔을 양손에 들고 수면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모르겠어! 아마 카라마츠 보이일 거야!』
『......쳇. 그런 그런 녀석이 있는 거냐고....히히, 녀석답네. 인정해주거나 조금만 상냥하게 대해주면 바로 들러붙는 거』
이치마츠는 평소 카라마츠를 괴롭히지만, 사실은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패션센스를 마음에 들어하고, 자신도 기타를 좋아해서 카라마츠와 음악 취향도 비슷하다.
하지만, 비굴한 자신에 비해 우호적이고 당당한 카라마츠를 보고 있으면 괴롭고 답답한 마음에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같은 얼굴, 같은 유전자,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자신은 카라마츠처럼 될 수 없는 걸까.
그런 비틀어진 마음을 무심코 카라마츠에게 풀어버리는 것이다.
『.....저기, 이치마츠형』
『......뭐야』
『....카라마츠형한테 상냥하게 대해줘. 아마, 이 이상 멀어지게 되면 돌아올 수 없게 될지도 몰라』
쥬시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단숨에 차를 마시곤 일어서서 부엌에 찻잔을 두고 방을 떠났다.
이치마츠는 혼자 거실에 남겨졌다. 쥬시마츠의 말이 머리에 빙글빙글 맴돌았다. 어ᄍᅠᆷᅟᅧᆫ 쥬시마츠는 뭔가 알아챈 걸지도 모른다.
『.....상냥하게 대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그랬을 거라고....』
* * *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집을 나간 순간, 쵸로마츠는 계단을 순식간에 뛰어내려가, 카라마츠가 쓰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치마츠는 2층 창문가에 앉아, 카라마츠가 돌아오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선 쵸로마츠는 검정색 깃털을 찾기 위해 옷장과 서랍장을 뒤졌다.
애초에 심부름 같은 건 없었다. 있을 리가 없지. 가능한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지만, 거짓말이란 걸 알면 카라마츠는 바로 돌아올 거다. 그리고 또 깃털을 들고 밖에 나가선 저녁노을 속으로 사라지겠지.
쵸로마츠는 그때 그 광경을 떠올리며 입을 앙 다물었다. 카라마츠가 어딘가에 뺏긴 것만 같아서 진심으로 두려웠다. 치비타에게 유괴되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가 느껴졌다.
[어디야....대체 어디에 둔 거야....]
만약 이대로 둔다면, 분명 카라마츠는 자신들 앞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지금의 카라마츠는 이미 말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된 건 자신들 탓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쵸로마츠는 옷장이나 서랍속을 뒤지는 걸 관두고, 카라마츠가 쓰는 이불을 뒤적거렸다.
[있다......!!]
그러자 그곳에 커다란 검정색 깃털이 주인 없는 이불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깃털은 불길하고 검은빛을 내는 듯 보였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깃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긴장감에 꿀꺽 침을 삼킨 쵸로마츠는 주뼛주뼛 깃털을 집어들었다. 그러자, 빠직하고 강렬한 정전기 같은 게 쵸로마츠의 손을 덮쳤다. 깜짝 놀라 깃털을 바닥에 떨어뜨린 쵸로마츠는 손을 어루만지며 다시 깃털을 주워들었다.
이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딘가 광채가 없어진 듯 보였다.
[이치마츠, 이치마츠!!! 있었어, 있엇다고!!]
쵸로마츠는 그 작은 변화보다도 찾아냈다는 것에 흥분해, 이불을 재빨리 돌려놓고 깃털을 쥔 채로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뭐야 그거. 엄청 크잖아. 얼마나 큰 새인 거야.......]
이치마츠는 그걸 손에 쥐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게 쥬시마츠가 말했던 “카라” 라는 인물과 카라마츠를 이어준다고 생각하자, 어쩐지 화가 났다.
그때, 옆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고양이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깃털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 [ 앗 ] ]
그러자, 단단해보였던 깃털이 어이없게도 툭, 부러지고 말았다. 고양이는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두갈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부, 부러졌다....어, 어쩌지 이치마츠..]
[....어쩌냐니, 너 이거 가져와서 어쩔 생각이었는데? 설마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거냐...]
설마 부러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쵸로마츠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돌아온 카라마츠는 분명 깃털을 찾아다닐테지. 만약 부러졌다는 걸 알기라도 하면....
쵸로마츠는 뭔가 붙일 거라도 찾아올게, 라며 1층으로 내려가려 일어났다.
쵸로마츠가 방문을 연 순간, 눈앞에 카라마츠가 서있었다.
카라마츠는 심부름이 거짓말이란 걸 알아채자마자 바로 오소마츠를 뿌리치고 집으로 달려왔다.
[힉, 아, 카, 카라마츠...!]
[쵸로마츠, 내가 갖고 있던 깃털 못 봤는가...!? 그건 내게 엄청 중요한 거다!! 그게 없으면 나는, 나는....!!]
슬슬 날도 저물어 가기도해서, 오늘이야말로 갈 수 있겠지 라고 기대하고 있던 카라마츠였지만, 중요한 깃털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챘다. 분명 이불 밑에 숨겨뒀을텐데 없다는 건 누군가 가져갔다는 거다. 어쩌면 얼마전에 봤던 카라의 의형제란 사람이 했을지도 모르지만, 오소마츠와 외출한 사이에 없어졌다는 걸 봐선 단순한 우연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오소마츠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작당을 해서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게다가, 집에는 아무도 없다고 오소마츠가 그랬는데, 이렇게 2층에 올라와보니 쵸로마츠가 있다
그 순간, 완전히 속아넘어갔다는 걸 알아차렸다.
[기, 깃털 말이지....그게, 그건...........]
[.....! 쵸로마츠, 거기서 비켜라!]
카라마츠는 동요하는 쵸로마츠를 밀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건 이치마츠가 부러진 깃털을 양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치마츠. 그거,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아, 이건..........칫,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한 것뿐이라고]
이치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깃털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카라마츠는 튕겨져나가듯 달려나가 쓰레기통에서 부러진 깃털을 꺼냈다.
손에 쥐어진 그것은 평소처럼 빛나지 않았다. 부러진 탓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만져서인지 윤기를 잃어버려, 요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뇌리에 카라와 보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이치마츠가 부러뜨린 선글라스와 거울도 떠올랐다.
카라마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때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동생을 때릴 수는 없었기에 필사적으로 참았다.
[어, 째서....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건가...!]
어쩌면 이치마츠에게도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카라마츠는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듯한 분노를 꾹 눌러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아? 어째서냐고? 그런 게 있으니까 네가 이상해진 거잖아!! 됐으니까, 그거 이리 넘겨, 쿠소마츠....버리고 올테니까....!]
이치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깃털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카라마츠는 그걸 품에 강하게 끌어안으며 이치마츠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만, 그만둬 제발. 맷돌이든 뭐든 던져도 상관없으니까, 이것만은 뺏지 말아줘...! 선글라스도 탱그톱도 네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이건 정말 내게 소중한 거다!]
카라마츠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치마츠의 뇌리에 울렸다. 지금까지 눈앞에서 선글라스나 거울을 부숴도 그냥 울먹거리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왜. 그딴 더러운 깃털 따위가 뭐라고...!!]
이치마츠가 분에 못 이겨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외친 순간. 카라마츠가 쾅, 바닥을 내리쳤다. 심한 진동이 방안에 울리며 바닥에 스며들었다. 쵸로마츠도 이치마츠도 그 굉음에 어깨를 움츠렸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강하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 이상 말했다간 가만히 있지 않겠다. 이건 나의 소중한 친구가 준 거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일지도 모르겠군. 어쩔 건가,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면. ....네 탓이다, 이치마츠...네 탓이란 말이다!!!!]
[카라마츠, 아니야! 그건 이치마츠가 아니라 저 고양이가 그런 거라고...! 아마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고....!]
당황한 목소리로 외친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의 어깨를 잡고 방구석에 몸을 둥글게 말고 늘어진 고양이를 가리켰다. 이치마츠가 황급히 고양이에게 달려가 지키려는 듯 안아 올렸다.
그 고양이는 카라마츠를 본 순간부터 줄곧 날이 서 있었다. 설마 착한 남자가 고양이를 해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이치마츠는 고양이를 지키려 움직였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눈에는 고양이 따위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 마라. 고양이가 어디에 있단 건가! ....나니까 그런 뻔한 거짓말로 속여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런 건가...? 어째서 너희들은 그렇게까지 나를..........]
카라마츠의 말에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양이는 이치마츠가 끌어안고 있고, 쵸로마츠도 그걸 봤다.
그런데 카라마츠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오컬트적인 일이 있을 리 없다 생각한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노려보며 비꼬듯 말했다.
[....핫, 비극의 주인공 연기는 그만두지 그래. 애초에 그렇게 소중한 거라면 몸에서 떼어놓질 말아야지, 멍청하긴. ....고양이는 보이지 않으면서, 정체도 모르는 괴물 같은 건 보이는가 보지? 눈이 맛이라도 간 거 아냐?]
그 말에 카라마츠의 마음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리곤 그대로 이치마츠의 멱살을 잡았다.
[....쳐. ....닥쳐라!! 그 이상 카라마츠 보이를, 카라를 모욕했다간 용서하지 않겠다!!]
[.....읏, 커헉. ....카라마츠 보이? 기분 나빠.... 네놈은 상대해주기만 하면 다 좋은 거냐!? 아앙!?]
[....읏. 네가....너희들이 뭘 안다고!!! 나를 무시한 너희들이...!!]
이치마츠는 괴로움에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본 카라마츠는 정신을 차렸는지 멱살을 잡은 손을 풀어주었다.
“상대해주기만 하면 누구라도 좋은 거냐” 라는 이치마츠의 말이 가슴에 울렸다. 솔직히, 자신을 상냥하게 대해주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건 카라의 상냥함을 이용해 매달리고 있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비겁한 겁쟁이가 할 짓이지 않나.
그것을 깨달은 카라마츠의 눈에 눈물이 일렁였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있을 곳도 내어주지 않았으면서, 이런 불쾌한 사실까지 알게 만든 이치마츠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싫은가. 이치마츠. 그렇게 내가 싫냔 말이다!!]
[잠깐, 카라마츠. 진정...]
흥분상태인 카라마츠를 쵸로마츠가 필사적으로 달랬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주먹을 꽉 쥔 채로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카라마츠형한테 상냥하게 대해줘” 라는 쥬시마츠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이치마츠는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 너 같은 거 완전 싫다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치마츠는 그렇게 외치곤 허억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눈앞에 선 카라마츠의 표정을 본 순간, 자신의 실수를 후회했다.
둘째형이자, 남몰래 존경하고 있던 형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이치마츠!!!]
쵸로마츠가 이치마츠를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다.
카라마츠는 메마른 미소를 흘리며 그 자리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 군. 역시 그랬군.....당연하겠지.....좋아하는 사람에게, 형제라고 여기는 상대에게 맷돌을 던질 리 없으니까]
[카라마츠, 진정해. 이치마츠도 진심으로 말한 건........]
쵸로마츠는 고개를 푹 숙인 카라마츠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양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그런 쵸로마츠의 위로를 뿌리쳤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쵸로마츠. 너도 날 싫어하잖아. 적어도 한 개 150엔 정도인 배보다는 가치가 낮다고 여길테지. .....아아, 그 배는 받은 거니까 공짜인가. ....안다, 나도.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를 인정해줄거라 믿고 싶었다....!!]
[아니야, 카라마츠! 내 말 좀 들어. 나는 그때 널 구하러 가자고 했다고!! 그러니까, ]
[...그러니까? 그래서, 뭐? 그래도 결국은 구하러 오지 않았잖나. ....너와 브라더들이 뭐가 다르다는 건가]
그렇게 되묻는 카라마츠의 눈은 더 이상 눈앞의 쵸로마츠를 비추고 있지 않았다.
[너도, 나를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다. 그게 아니라면 내게 물건을 내던졌을 리 없지. 그 후에도, 계속해서 내 말을 무시했지 않나. ......됐다. 이제, 이제 그런 건 상관없다]
[카라마츠, 제발, 제발 내 말 좀 들어. 부탁이니까, 내 얘길]
[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지?]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엷게 웃었다. 그리곤 깃털을 내버려둔 채, 망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쵸로마츠와 이치마츠 옆을 지나 방을 나갔다. 이치마츠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 * *
방을 나가 계단을 내려가자 오소마츠가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쓸쓸한 뒷모습이 신경쓰였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쓸만한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그대로 신을 신고 집을 나가려 하자.
[.....기다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카라마츠는 괴로운 표정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너무도 꽉 잡혀 뿌리칠 수 없었다.
[....뭐야, 오소마츠. 이 손 놔라]
[.....어디 가려는 거야]
오소마츠는 얼굴을 숙이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일이 이렇게 된 건 오소마츠가 거짓말로 자신을 꾀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화가 났다.
[.....이 집에서 나갈 거다. 더는 너희들과 있을 수 없다]
카라마츠가 나직하게 말하자, 오소마츠는 얼굴을 확 치켜들었다. 그의 표정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보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동생들과의 대화를 들은 듯하다.
거실에서 쥬시마츠와 토도마츠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다.
[....나간다니....너 갈 곳도 없잖아. 설마 그 카라마츠 보이란 녀석한테 가는 거야?]
[........그렇다면 어쩔 건가]
카라마츠의 답을 들은 오소마츠는 재빨리 문앞으로 달려가 양팔을 활짝 펼쳐 길을 막았다. 절대로 보낼 수 없다는 듯이.
[.....못 가. 그 카라마츠 보이란 녀석, 위험한 녀석이지? 스토커처럼 널 지켜보고, 뭔지도 모를 깃털로 어디로 사라지거나 하는 거잖아]
[카라를 나쁘게 말하지 마라!! ....처음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지만 카라는 나를 원했다. 나를 인정해줬다.... 나를 버린 너희들은 이게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지!!]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오소마츠의 팔을 잡아 치우려 했다. 문의 유리창 너머로 저녁노을이 비쳐 들어왔다.
그 뒤로 희미하게 텐구의 그림자가 보였다.
[....비켜, “오소마츠”]
카라마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오소마츠의 몸이 사슬에 단단히 묶인 것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오소마츠는 제 몸의 변화에 당황하며 말했다.
[뭐, 뭐야..!? 안 움직여....젠장, 카라마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어이, 쥬시마츠, 토도마츠! 카라마츠를 막아!!!!]
오소마츠는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를 향해 외쳤다. 카라마츠는 두 사람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오소마츠와 마찬가지로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 두 사람은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카라마츠는 텐구의 피를 마신 탓에, 미약하게나마 요력이 몸에 흐르는 상태였다. 요괴는 감정의 기복에 따라 요력이 강해지는데, 카라마츠도 마찬가지로 감정이 격해지면서 요력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 오소마츠나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잘 있어라, 브라더. 지금까지 즐거웠고, 고마웠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손을 손쉽게 치우고 문을 열었다. 미지근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잠깐, 잠깐 기다려!! 미안, 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 카라마츠!! 아까 속여서 미안, 치비타한테 유괴됐을 때 구하러가지 않아서 미안....!!]
오소마츠는 필사적으로 말했지만, 그런 말 따위 닿지 않는다는 듯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좀 더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잖나. 이제 만날 일은 없을 거다]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닫았다. 오소마츠는 미끄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문 너머에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등을 맞대 듯 서있다.
희미해지는 시야로 석양을 올려다보았다.
[.....너희들은 내게 있어 태양과도 같은 존재였다. 함께 있으면 따스하고 눈이 부셨지. 그리고 멀어지면 춥고, 외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 * *
그 뒤, 카라마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흐르는 눈물을 팔로 닦아내며 터벅터벅 신사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길에, 카라마츠의 오열이 울렸다. 마치, 병원에서 홀로 돌아가는 석양 진 그 어느날 같았다.
카라마츠는 사당 앞에 섰다. 그 순간,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깃털도 없는데 어떻게... 라고 카라마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카라가 만들어낸 결계는 카라만이 열 수 있다. 그렇기에 카라는 자신의 요력을 담은 깃털을 카라마츠에게 주어, 그 결계를 넘나들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카라마츠는 카라의 요력을 몸에 휘감은 상태라, 깃털이 없어도 넘나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눈을 뜨자, 반가운 카라의 모습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그 모습이 시야에 다 차기도 전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카라, 나, 나를.......요괴로 만들어 줘.....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세계로, 데려가 줘...!!]
시리즈를 띄엄띄엄 번역하다보니
자꾸 사당이랬다가 신사라고 했다가
오락가락이네요
기억력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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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번 공지때 주말에 업로드한다고 그랬는데ㅠ
오늘이 일요일인줄 알았어요ㅠㅠ
깨달았을 땐 이미 밖이라..
들어와서 바로 업로드했습니다ㅠㅠㅠ
다음에는 여체카라 가지고 올게요! :D
주말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