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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의 숨겨진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5

 

 

 

 

 

1월 마지막주 일요일, 오늘은 눈도 그치고 구름 사이로 태양이 고개를 내민 따스한 날이다. 서리가 낀 창문을 닦으며 본 창고의 온도계는 영하 5였지만.

근사한 카페 바 같은 방안, 안쪽에는 당구대와 다트가 있고, 고풍스런 커다란 테이블과 편안해 보이는 푹신한 소파가 자리하고 있다.

나와 쥬시마츠는 카운터 자리에 걸터앉아, 주문한 카페라떼가 나오길 기다렸다.

눈앞에는, 아케의 미소[각주:1]를 띠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근사한 바리스타가 서있다. 새하얀 셔츠에 감색빛의 나비 넥타이, 검은 베스트. 그 위로 보이는 차마 감춰지지 않은 탄탄한 가슴근육과, 더욱 강조된 늘씬한 허리 라인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에스프레소가 담긴 컵을 몇 번인가 기울면서, 우유를 천천히 붓고는 긴 꼬챙이로 슬쩍슬쩍 무늬를 그려나갔다.

제법 잘 그려졌는지, 슬쩍 입가가 올라간다.

[여기]

매끄럽게 컵을 내려놓는 그 손은 마디가 툭 불거져 그야말로 야성미가 넘쳤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컵을 들여다보니 데포르메[각주:2] 냐짱이 윙크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마시는 게 아까울 정도의 솜씨라서, 1분간 쳐다만 보다가, 사진을 찍고 미련이 남기 전에 스푼으로 휙휙 저어버렸다.

알맞게 식은 커피를 입에 머금자, 우유로 살짝 옅어진 쓴맛과 제대로 남아있는 깊은 향. 아아-, 맛있어!! 완전 힐링돼~!

점심시간, 분위기 좋은 휴게실에서 맛있는 식사를 만끽한 후, 이 바리스타, 즉 카라마츠가 내어준 카페라떼를 마시면, 오전중의 피로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굉장해-, 야구다아!! 쵸로마츠형, 이거 봐!!]

옆자리의 쥬시마츠 컵에는, 타자가 공을 받아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커피랑 우유로 잘도 이런 걸 그렸네. 그보다, 이 녀석 그림은 못 그리면서 왜 이런 건 잘하는 거야?

나와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은 후, 쭈욱, 커피를 들이킨 쥬시마츠가 우후후, 하고 웃었다.

[, 카라마츠형 커피 엄청 좋아해!!]

[, 나도 좋아해. 이제 다른 카페는 못 갈지도]

둘이서 감상을 주고받고 있자, 완전히 영업미소를 띠고 바리스타의 모습을 보이던 차남이, 완전히 풀어진 얼굴로 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라떼아트는 혼자서 연습했다는 모양으로, 2, 3일 간은 컵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오늘은 요렁이 꽤 붙은 건지 만족한 표정이다.

[역시, 좋은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니 맛있군]

휘휘 섞은 컵을 들고 내 옆에 앉은 카라마츠는 환하게 웃었다. 아니, 기계가 아니라 네 팔을 칭찬하라고.

여기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레스토랑에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셰프인 우시지마 토미오씨가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사온 것이었다.

버튼 하나로 완료되는 그런 손쉬운 타입이 아닌, 추출 과정을 살피고, 압력을 조절해야 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맛을 추구할 수 있는 만큼 조작이 어렵다.

친가 옆에 있는 카페를 가끔 도와줬다는 것 같지만, 토미오씨가 사용하는 걸 몇 번인가 봤기에 나는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하다고 생각하는데 카라마츠는 그걸 모른다.

여기에 오고부터 더욱 잘 알게 됐다. 우리 차남은 자신이 가진 스펙이 얼마나 높은지를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무자각이라는 것을.

그런 점마저 사랑스럽다 느껴버리는 요즘.

[, 다들 수고. 디저트 남았는데 먹을래?]

주방으로 연결된 문에서 토미오씨가 커다란 손에 판나코타[각주:3] 3개가 든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물론, 답은 하나. 감사합니다, 라고 동시에 외치며 받아들었다.

 

집을 나온 지 벌써 약 2개월이 지났다. 아르바이트 계약 3분의 2가 지난 것이다.

첫날 밤, 전원을 켠 핸드폰에 토도마츠가 보낸 대량의 메일이 뜬 걸 보고, 카라마츠는 굉장히 기쁜 듯 환하게 웃었다.

[다들 아직 나를 걱정해주는구나]

라며, 당연한 말을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에, 심장이 꽈악 죄여오는 것 같아 쥬시마츠와 둘이 껴안았다.

그후, 전화로 두고온 형제들에게 불평을 퍼붓고, 내 분노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의외로 쥬시마츠가 그들을 용서하기까진 거의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녀석들이 제대로 연락을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 꽤 엄한 성격이었지.

오소마츠형과 이치마츠도 바로 핸드폰을 사서, 그 뒤로 매일 친가조의 3명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메일이나 LINE으로 끝내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있을 땐 통화도 하고 했지만 크리스마스에도 연말연시에도 친가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오너는 휴가를 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일이 바빠서 힘들다고 했다. 뭐어, 실제로도 바빴으니까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신에, 해산물과 징기스칸 전골세트를 셋이서 돈을 모아 사서 보냈다.

전화 너머로 얘기는 자주 했지만, 매년 항례였던 선물교환도, 여섯명이서 다 함께 하던 시끌벅적한 첫 참배도 없었다.

냐짱의 라이브나 이벤트도 가지 못했다.

왕복 교통비가 든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그냥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족이 소중한 것도, 냐짱을 응원하는 마음도 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생활이 우선순위가 높았다.

그 정도로 여기서의 생활에 충실했다.

매일 이래저래 바쁘고, 물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을 건 계속 니트였던 우리들을 고용한 오너들이었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이 분주함도 만족감으로 바뀌었다.

 

내 담당이 객실이나 로비 청소가 되었을 때, 아니나 다를까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걱정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의 결벽증은 중증이 아니고, 친가에서도 청소와 세탁은 종종 해왔다. 게다가 내가 만족할 때까지 깨끗해진다면, 대개의 사람들이 만족할 정도일 테니까.

애초에 쥬시마츠처럼 체력에 자신도 없고, 카라마츠처럼 자격증도 없으니까 이렇다 저렇다 따지지 말고 할 수 있는 건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형제와 자신을 타이르며, 작업복으로 보이지 않는 멋진 유니폼을 입고 일을 시작한 첫날, 갑자기 나타난 메이드에게 다른 의미로 긴장하게 됐다.

[당신이 새로운 아르바이트인가요? 마루이케 유메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며 스커트를 살짝 들어보이며 정중히 인사한 여성은 옅게 미소를 띠었다.

우와아아!! 진짜 메이드다, 코스프레가 아니라 훌륭한 저택에서 일하는 그런 메이드!

검은 블라우스에 볼륨 있는 스커트, 프릴이 달린 하얀 앞치마. 복장만 봐선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메이드 같은데, 머리는 일본 인형처럼 깔끔히 자른 단발머리로, 전체적으로 메이지 다이쇼의 근사한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 같았다.

[마츠노, 쵸로마츠,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딱딱한 자기소개와 함께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유메노씨는 다시금 옅게 웃으며 내 팔을 살짝 잡았다.

[, ]

[자아! 힘내서 청소하자구요!]

가냘픈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힘으로, 질질 끌려다니며 나는 그녀에게 일을 배웠다.

다행히, 방이 적어서 처음 일하는 나라도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쵸로마츠씨는 깔끔하시네요]

유메노씨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3일째의 휴식시간. 홍차를 마시며 만족감에 젖은 그녀에, 그걸 내어준 카라마츠가 곤란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또 걱정하는 거겠지, 이 녀석은.

말할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자, 유메노씨가 웃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보다도 더 세세한 곳까지 청소하시고. 훌륭합니다!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겠어요]

무척이나 기뻤다. 인정받았다는 것이.

그런 시시한 사건에 얽매여 생겨버린 어정쩡한 결벽증이란 귀찮은 성질이 남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거창하지만 마치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내가 기뻐하는 게 얼굴에 드러났는지, 카라마츠가 안심한 얼굴로 쿠키에 손을 뻗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유메노씨에게 결벽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뭔가 과대평가된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말해주셔서 기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대신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며, ‘너 언제부터 이렇게 솔직한 캐릭터였어?!’ 라고, 속으로 자신에게 츳코미를 날렸다.

원래 악동이었으니까, 야단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칭찬받은 기억은 좀처럼 없다.

그러니까, 자신이 칭찬받으면 성장하는 타입이란 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칭찬에 들뜬 탓인지, 이후 나는 타락한 니트 생활을 보냈던 게 거짓말처럼 완벽히 일을 해내려 노력했다.

큰 실수를 한 적은 없고, 손님으로부터 불평을 들은 적도 없으니까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은 벤씨가 사냥하는 곳에 데려가 준대! 큰 사슴 잡아올게!!]

판나코타를 입에 가득 넣고, 맛나아!! 라고 뺨을 잡으며 외치는 쥬시마츠.

[오오, 그거 재밌겠군!]

그 말과 동시에 카라마츠의 핸드폰이 찰칵, 하고 울렸다. 찍힌 사진에는 만족감에 젖어 헤벌쭉한 내가 찍혀 있었다.

오늘도, 내 형제가 귀여워서 행복합니다.

나 자신도 여기에 와서 꽤 변했다는 자각이 있지만, 쥬시마츠도 변했다.

눈의 초점이 제대로 맞게 되고, 터무니 없는 언행도,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줄고, 마츠노가 오남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썽쟁이가 아니게 됐다.

타인을, 그 자리의 분위기까지 읽고 행동하는 밝고 상냥한 사람 좋은 청년. 그게 여기서의 쥬시마츠.

무리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으니까, 분명 이게 본래의 쥬시마츠라는 게 나와 카라마츠의 견해다.

[주변 사람들 덕분인 거 아닌가? 여기에는 쥬시마츠의 천진난만함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잖아?]

카라마츠의 말대로, 여기의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무척이나 따스하게 대해준다.

쥬시마츠를 직접 지도한 건, 펜션의 관리를 맡은 와카무라 벤씨. 살짝 기른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로, 키가 작고 통통한 편이지만 오랫동안 비계공[각주:4]으로 일했던 탓인지 몸놀림이 가볍고, 남을 돌보길 좋아하는 아저씨였다.

[쥬시마츠는 정말 부지런하구나. 요즘 젊은이들과는 다르군]

가하하, 하고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제대로 칭찬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쥬시마츠도 기뻤던 건지, 금방 벤씨를 따르고, 일도 순식간에 배웠다.

원래 좋아하는 건 금방 이해하고 습득하는 녀석이니까, 지금은 보일러의 조정도 담당하게 되면서,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도 했다.

[그럼, 오후에도 힘내볼까!]

[그래]

판나코타를 실컷 만끽한 우리는 셋이서 동시에 합장하며 잘 먹었다 위치곤 분담해서 각자 식기를 치웠다.

디너의 재료를 옮기는 걸 돕게 된 카라마츠와 헤어지고, 나와 쥬시마츠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로비로.

이제부터 밤까지 나는 프론트, 쥬시마츠는 도어맨과 벨보이, 카라마츠는 주방과 홀을 담당함과 동시에 룸 서비스에도 대응한다.

 

경험자인 카라마츠는 몰라도, 나와 쥬시마츠까지 접객을 하게 된 건, 내가 유메노씨에게 칭찬을 받은 다음날, 즉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단 4일째인 목요일이었다.

목요일은 레스토랑의 정기휴일이니까, 셰프인 토미오씨와 웨이터인 카나죠 라이야씨는 본래 휴일이지만, 토미오씨는 전날 밤 여기서 마신 뒤에 여기서 자고 갔기에, 아침밥도 같이 먹었다.

참고로, 여기는 숙박이 기본이라 아침은 토미오씨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옵션으로 아침을 선택한 손님 몫은 근처 도시락 전문점에 부탁하고 있다.

오너와 사이가 좋은 단골분들은, 우리와 함께 먹기도 했다.

[숙취가 좀처럼 안 사라지네-]

[촌스러-, 비프(*우시지마의 우시가 소라서 그렇게 부르나 봅니다)! 늙은 거 아냐?]

[시끄러, 바보 호랑이(*오키토라의 토라가 호랑이). 너도 똑같잖냐]

[나는 아직 팔팔하거든!!]

식당으로 모인 오키로라 오너와 토미오씨가 느긋하게 그런 식의 잡담을 나누는 걸 본 카라마츠가 아침밥 준비하길 자청했다. 오늘 아침은 마츠노가의 맛이 나올 듯하다.

[-, 맛있어!! 역시 술 마신 다음날에는 된장국이지. 일본인이 매일 빵과 스프만 먹곤 못 살지]

두부와 미역이 든 맛 좋은 된장국을 후루룩 마신 오너가 진심이 담긴 감상과 함께 친구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저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매일 빵과 스프만 나온 건 아니다.

첫날에는 그랬지만, 대체로 만드는 건 라이야씨로 아일랜드 요리였고, 매일 저녁은 타이가 선배가 아르바이트로 키운 근육진 팔을 한껏 걷어올리고 중국 요리를 대접했다.

[미안하구만, 유럽식밖에 못 만들어줘서. 불만이면 스스로 만들어 먹으라고]

오너의 말을 적당히 넘긴 토미오씨는, 몽글몽글하게 잘 구워진 계란말이를 한입 떠먹고, “, 맛있군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나중에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토미오씨에, 살짝 수줍어하는 카라마츠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아침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벤씨와 유메노씨가 출근하고, 다들 제각기 부서로 흩어진 뒤, 나도 오늘 숙박 예정인 방 하나를 깨끗하게 치웠을 즈음, 오키토라 오너한테서 [잠깐, 얘기 좀 하지] 라며 무전이 왔다.

[뭘까요?]

[출동인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다녀오세요]

원래 소방대원이었던 오너와, 유메노씨의 남편분인 지에이씨는 이 지역의 소방단을 하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길 때면 경찰이나 소방관이 올 때까지 현장에서 대처를 맡고 있다고 한다.

유메노씨와 함께 로비로 달려가 보니, 오늘 휴일이었을 라이야씨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소파에 몸을 묻고 있었다.

트레이닝 바지에 투박한 소재의 가디건,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세팅하지 않은 채로, 양키 고등학생처럼 앞머리만 핀으로 살짝 고정해놓은 모습이었다.

자다 깬 듯한 모습에 불량스러운 느낌을 팍팍 뿜어댔지만, 역시 잘생긴 사람은 이래도 멋지구나.

오너는 그런 라이야씨에게 살짝 어이없는 듯하면서도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빨리 얘기하라며 재촉했다.

임신한 누나가 어제부터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출산도 임박했고, 혹시나 해서 예정보다 빨리 입원을하게 됐다고.

[그런데, 그 자식, 출장이니 뭐니 하면서 월요일까지 못 돌아온다잖아!! 처자식 내버려두고 일이라니. 뭐가, [건강할 때도 아플 때도] !! 어느 맹세 하나 지켜진 게 없잖아!! 젠장, 그러니까 나는 그딴 얼간이 녀석 반대한 거라고!!]

매형의 불만을 한껏 토해내고, , 하고 주먹으로 소파 팔걸이를 내려친다. 평소 당당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의, 여유 잃은 모습에 우리들은 살짝 당황해 일제히 시선을 마주했다.

[부모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냐?]

토미오씨의 질문에 라이야씨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가겠다고는 했는데, 비행기가 없어서 일요일에나 돌아온다나 봐]

라이야씨의 본가는, 국내 최저 기온을 찍은 거리로, 위도는 높고 해양성 기후인 아일랜드 쪽이 더 따뜻하기에 매년 피한 목적으로 귀성한다는 모양이다.

우리도 새해에 매번 좀 찾아오라며 아우성인 친척 이모들이 있지만, 이쪽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올해는 특히 손자가 생겨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나 성 패트릭 축제 때에도 가지 않았던 탓에 인사 겸해서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옆에 있고 싶어. 너무 제멋대로인 건 알지만]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쉰 라이야씨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오키토라 오너를 바라보자, 모두와 마찬가지로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팔짱을 끼고 천장을 노려보던 오너, 분명 라이야씨에게 휴가를 주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레스토랑 예약은 가득 찼고, 투숙객도 새로 찾아들었다.

적어도 우리들이 조금 도움이 되기라도 했다면, 오너도 흔쾌히 OK를 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무겁던 침묵을 깬 건 타이가 선배였다.

[카라마츠, 네가 대역이야. 행동은 라이형을 따라하고, “대본은 일단은 이거. 거기에 없는 대사는 애드리브로. “역할의 설정은 거기에 적어뒀어. “본방은 내일부터]

담담하게 말하면서 언제 가져왔는지 대본이라며 식당 메뉴를 주고, 그 위에 뭔가 적힌 로비의 메모지가 붙어 있다.

[가능하면, “리허설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오늘 정오]

건네받은 대본과 설정을 확인한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카씨의 요구도 뜬금없었지만, 그걸 받아들인 카라마츠도 카라마츠였다.

오너, 하고 삼촌이 아닌 직급으로 오키토라씨를 부른 타이가씨는 씨익 웃었다.

[그런고로, 리허설 볼래? 그걸 보고 납득하면, 카라마츠가 라이형의 대신이 될 거야.

내가 주방일 도와주고, 프론트는 쵸로마츠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에엣! , 제가 프론트?!]

갑작스런 지시에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니, 잠깐만요. ,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으니까, 접객에 안 맞다구요.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쵸로마츠, 하고 타이가씨가 부른다.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어. 내가 보증하지]

[저도 쵸로마츠씨가 적임이라고 생각해요]

고개를 드니, 타이가씨와 유메노씨가 엄지를 치켜들고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어째선지 그걸 보고 있으니 납득이 가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아-! 무슨 짓이냐 나!! 이거 해버리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잖아!!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오너는 고민하던 걸 관두고, 조카의 말에 수긍했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것도 잠시니까 다들 조금만 참자!]

[!! 저는 뭘 하면 됨까?]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든 쥬시마츠에게, 나는 문득 자신을 회고했다.

[쥬시마츠군한테는, 벨보이를 부탁하지. 손님의 짐을 방까지 옮겨주면 된다네]

오너가 윙크와 함께 지시하자, 열심히 하겠슴다!! 하고 바로 수긍하는 쥬시마츠. 그렇구나 나도 어리광을 부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 후, 나는 남은 객실을 치우고, 쥬시마츠는 제설작업을 한 탓에, 카라마츠가 어떻게 연습을 했는지 둘 다 모른다.

점심시간이 되고, 나랑 쥬시마츠는 타이가씨에게 말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문 밖에서 타이가씨가 비디오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있고, 창문에서 안을 보니 오너와 토미오씨, 라이야씨가 나란히 앉아있다.

[그럼, 두 사람은 손님 역할. 내가 시작, 이라고 하면 들어가. 카라마츠지만 낯선 웨이터가 있다는 설정으로 가자고!]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타이가씨가 씨익 웃으며 비디오카메라를 향해 외친다.

[리허설 설정A, 스타트!!]

꿀꺽, 침을 삼키고 문을 열자 딸랑, 하고 도어벨이 울린다. 벨이 울리자마자 흰 셔츠에 앞치마를 한 카라마츠가 다가와, 내가 어설프게 열어둔 문을 제대로 잡아주었다.

? 뭔가, 가깝지 않아? 그보다, 분위기, 다른 사람 같은데?!

아침마다 뿌리는 향이 짙은 데오드란트가 풍겨온다. 셔츠를 두 번째 단추까지 풀고 있으니, 쇄골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단련된 흉근의 골마저 보일 듯 말 듯했다.

우와아아아, 어디의 호스트냐 너는!! 여기 레스토랑인데!? 그것도 점심!!

[어서오십시오, 예약하셨습니까?]

우와, 목소리, 위험해. 나한테는 좀처럼 들려주지 않는, 색기 넘치는 저음이 등뼈를 지나 허리를 간질였다. 심박수 급상승.

[, . 두 명 예약했어요, 마츠노입니다]

간신히 손님 같은 대사를 말하자, 카라마츠는 어디서 배운 건지 매력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아니아니, , 진짜 누구야?! 내 품에 안긴 여자가 셀 수 없을 정도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하지 말라고!! 나랑 같은 동정 차남은 어디 갔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츠노님. 추운데 먼 길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좌석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잠깐, 부탁이니까 그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말하지 말라줄래? 그보다, 추파 던지지 마! 이것 봐, 쥬시마츠도 완전 얼어붙었잖아!! 손님을 꼬셔서 어쩌겠다는 거야!! 여기는 레스토랑이라고, 이 멍청이가!!! 동정한테는 너무 힘들다고, 바보!!

심지어 내 등에 슬쩍 손까지 대다니!! 우와, 이 녀석, 이렇게 색기 넘치는 꼴로 에스코트할 생각이야?!

[스톱!!]

타이가씨의 한마디에, , 하고 손을 뗀다. , 다행이다, 살았어. 이대로 에스코트 당했다간 진짜 똥꼬털 다 타버린다고!

내 심장은 쿵쿵 거세게 뛰고, 쥬시마츠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살짝 구부정한 자세다. , 나도 남자니까 지적은 않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이 카라마츠 놈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오고 말이야. 몸은 여전히 떡 벌어졌지만, 그 두려울 정도로 넘쳐흐르던 매력은 온데간데없고 평소의 차남이다.

젠장! , 기억해두라고. 자기 전에 간지럼형을 내려줄 테니까! 동정을 가지고 논 죄는 무겁다고!

[이 설정은 좀 아닌 걸. 미안하지만, 런치용이 아니라고 할까]

[당연하죠. “눈빛으로 넘어오게 만든다라니, 의미를 모르겠다고요. 애초에, 동정한테 이런 걸 요구하지 말아주시죠]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하는 카라마츠에 타이가씨는 그런 걸 소화하는 게 배우잖아, 라고 답한다. 아니, 카라마츠, 솔직하게 동정발언 하지 말아줄래.

[? 뭐야, 방금, 그런 설정의 역이었어?]

[그렇다. 설정A전 넘버원 호스트. 페로몬 잔뜩 뿜어대며 손님을 남녀불문 않고 눈빛 하나로 넘어오게 함이더군.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나?]

[.........레스토랑 웨이터의 설정이 아니지 않나..?]

[나도, 이건 관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들 셋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오너와 토미오씨는 연기에 감명 받은 듯 아까부터 계속 배를 부여잡고 껄껄, 히히, 웃어댔다.

[크하하하하! 굉장하군, 카라마츠군!! 라이야와 똑같아!]

발을 동동 굴리며 웃는 오너에, 대뜸 이름을 불린 본인이 뭐? 라며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다.

[웃기지 말라고, 호랑이 아재! 어디가 나랑 닮았다는 거야!]

[아니, 마음에 든 손님한테 이러잖아]

이번에는 토미오씨가 눈가에 눈물을 맺고서 가차 없이 공격했다.

[진짜?!]

진짜냐며 두 사람에게 되물은 라이야씨는 힘없이 고개를 축 떨구었다.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손님을 꼬시는 건 곤란하니까. 이 설정은 관두지]

조금 진정된 오너의 말대로, 설정A는 무사히 기각됐다.

그런 웨이터는 라이야 한명으로 족하다는 중얼거림이 들린 듯하지만, 무시하자.

 

[나도 이건 그냥 여흥으로 즐길 생각이었어. 예상외로 카라마츠가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다시 문밖으로 나온 나와 쥬시마츠에게 타이가씨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 카라마츠형, 엄청 에로했어]

맞아, 그건 동의. 설정대로 페로몬 뿜뿜 뿜어댔지. 동정이면서 그런 걸 바로 소화하는 카라마츠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해!

[부탁이니 우리 차남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가지 말아주세요!]

나로서는 같은 얼굴의 형제의 색기 넘치는 모습에 빠지고 싶지도 않거니와, 가능한 체험하고 싶지도 않다. 게다가 같은 얼굴의 형제에게 이리저리 페로몬을 뿌려대는 것도, 그만뒀으면 한다.

[미안, 미안. 그럼 다시 정신 차리고, 설정B로 가자. 이건 실전용이니까 괜찮을 거야! , 주문하는 건 이거야]

살짝 믿음이 가진 않지만, 타이가씨가 스타트! 라고 말했으니, 나는 받아든 메모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맞이하는 이 웨이터가, 나는 아까와 같은 인물, 그것도 우리 카라마츠라곤 바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검은 조끼에 나비 넥타이를 한 차림이었다. 게다가 은은히 감도는 향기. 하지만 다른 건 복장만이 아니라, 감도는 분위기와 인품도 달라진 듯했다.

[예약이요, 마츠노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츠노님.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대사는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저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 톤, 말투 등 그런 세세한 부분이 달라졌을 뿐인데 이렇게 인상이 달라질 수가 있을까?

겉옷을 받아들며 환한 미소로 자리를 안내했다. 의자를 빼주는 타이밍도 딱이었다.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메뉴를 펼친다. 솔직히 와인이 마시고 싶었지만, 일하는 중이니 물로 참았다.

바로 깨끗하게 닦인 잔과 시원한 물이 담긴 병이 나오고, 카라마츠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물을 따랐다.

다음은 요리인데, 이 레스토랑은 기본적으로 점심도 저녁도 예약제라서 코스요리밖에 없어, 가격에 따라 재료가 달라질 뿐이었다.

어렵고 다양한 요리명을 기억할 필요가 없는 대신, 그 날의 메뉴를 웨이터가 설명해야만 했다.

[오늘의 생선요리는 제철인 무당게를 이용한 크레페와 산탄데르[각주:5] 풍으로 구운 대구 오븐구이. 육류는, 오리를 이용한, 알칸타라식 찜과 손수 만든 소세지의 엠파다스[각주:6]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빠에야[각주:7]는 가리비와 오징어의 발렌시아 풍과, 유기농 채소 중 한 가지 골라주시면 되겠습니다]

아까 받은 메모에는, 코스C, 대구와 엠파다스, 야채 빠에야라고 적혀있다. 생각보다 호화스러운 식사라 기분이 좋아졌다.

주문하려다 뭔가 떠올라, 웨이터인 카라마츠에게 질문했다.

[저기, 산탄데르 풍이란 건 어떤 느낌인가요? 그리고, 엠파다스? 라는 것도 무슨 요리인지 모르겠어서..]

갑작스런 애드리브였는데, 카라마츠는 환하게 웃으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설명이 부족해서 혼란을 드린 점, 죄송합니다. 산탄데르는,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의 중심 도시의 지명입니다. 이 지방에서는, 생선에 파슬리를 섞은 빵가루를 묻혀 오븐에 구운 요리가 있는데, 현지에서는 정어리를 주로 사용하지만, 오늘은 지금 제철인 대구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엠파다스는 포르투갈 북부, 갈리시아 지방의 서민음식으로, 여러 재료를 파이 반죽으로 감싸 구운 것입니다]

술술 막힘없이 말하는 카라마츠. 컨닝페이퍼를 보는 것 같지는 않고, 머리에서 나온 지식인가? 원래 알고 있던 걸까. 아니면 이 몇 시간 사이에 다 외운 걸까.

[그렇습니까. , 그럼, 런치코스C 2인분으로, 대구요리와 엠파다스, 그리고 야채 빠에야 부탁드립니다]

반면 나는 메모대로 말할 뿐, 그조차도 낯선 음식 이름에 더듬거린다.

[알겠습니다]

공손하게, 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게 인사한 카라마츠는 등을 곧게 펴고 주방으로 향했다.

[하아아-]

[후이이-]

반대편에 앉은 쥬시마츠가 한숨을 내쉰다. 이런 레스토랑에 온 적이 없으니까, 연습이란 걸 알지만 긴장하고 만다.

더군다나, 카라마츠는 카라마츠가 아닌 것 같고.

[카라마츠형, 굉장해. 아까도 그렇고 방금도 그렇고, 완전 딴 사람 같아]

[, 그러게. 이게 녀석의 연기력인 건가]

 

이 연습은 그야말로 카라마츠의 무대였다.

오랜 시간 봐왔던 차남은 온데간데없고, 상큼한 미소를 띤 채, 요리를 내오고, 다 먹은 접시를 치우고, 잔에 물을 채운다. 그 타이밍이 너무도 완벽해, 우리는 애타게 기다릴 필요조차 없었다.

물론, 이번에는 토미오씨가 요리를 다 만들어둔 덕분에 그냥 옮기기만 할 뿐이고, 손님도 우리 두 명뿐이라 여유가 있는 거겠지만.

나도 쥬시마츠도, 이런 최상의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올바른 판단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카라마츠의 움직임은 그간 몇 번인가 보아온 라이야씨의 움직임만큼이나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디저트와 식후 커피마저 다 마시고, 계산 하는 척을 하며 다시 레스토랑을 나온 나와 쥬시마츠가 타이가씨에게 손짓을 하자, 오너와 토미오씨가 카라마츠에게 박수를 보냈다.

[진짜 굉장하잖아, 카라마츠군! 이거라면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어]

[그러니까. 라이야보다도 상큼하던 걸]

[시끄러, 아저씨들!]

두 사람을 물어뜯을 듯 노려보며 소리치던 라이야씨는 볼을 잔뜩 부풀리곤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 진짜 짜증나. 이몸이 몇 년이나 걸려서 몸에 익힌 걸 단 몇 시간만테 마스터하다니! 열 받아!]

[그런 거 아닙니다]

상큼한 웨이터에서 평소의 카라마츠로 돌아온 녀석이 눈썹을 살짝 낮추며 말했다.

[나는 단순한 연기니까요. 설정B의 웨이터를 연기할 때만 그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라이야씨처럼 몸에 익은 행동이 아니니까요. 긴장을 늦추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올 걸요]

거기서 한번 한숨을 내쉬고, 낮췄던 눈썹을 다시 반듯하게 올리고 눈에 힘을 줘 말한다.

[하지만, 제대로 연기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까, 라이야씨는 부디 누님 곁에 있어주세요]

놀란 건지, 라이야씨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곧 힘을 빼고 하핫, 하고 웃는다.

[건방진 말 하기는-]

일어나 카라마츠를 내려다보던 라이야씨는 그대로 카라마츠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는 오른손을 슥 내밀었다.

[부탁할게]

악수에 응한 카라마츠는 눈을 가늘게 하고 웃으며 네, 하고 강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가볼게. 화요일에는 돌아올 테니까]

손을 흔들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라이야씨는 펜션을 나갔다.

[뭐야, 점심 정도는 먹고 가지]

안 먹고 갈거면, 담아서 가져가기라도 하지, 라고 덧붙이며 토미오씨가 부엌으로 향했다.

[더는 한심한 모습 보이기 싫은 거겠지. - 배고프다. 우리들도 밥 먹자고]

카라마츠군, 라이야 몫까지 먹어도 돼, 라고 덧붙인 오키토라씨가 기지개를 켜며 토미오씨를 뒤따라갔다.

[하핫, 아무리 제가 먹성이 좋아도 2인분은 무리라구요]

마지막으로 카라마츠가 헤실헤실 웃으며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극장의 막이 내려간 것처럼, 레스토랑의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어쩐지 아직도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나는 손짓에 이끌려 타이가씨 건너편에 앉았다. 쥬시마츠도 따라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설정B, 어떤 인물로 설정한 건가요?]

[계속 동경해오던 웨이터 일을 처음 하는 청년. 일이 즐거워 참을 수 없음이라고 썼어. 그 뒤의 세세한 부분은 녀석이 덧붙인 거겠지]

그런 간단한 말로 녀석은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감탄을 넘어서 살짝 두려울 정도다.

[놀랐어?]

[. 솔직히, 다른 사람 같아서]

[괜찮아, 자기도 연기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으니까. 부상의 후유증도 없어 보이고, 다행이네-]

욱신, 가슴이 아파오는 건, 나보다도 카라마츠를 더 잘 아는 선배에 대한 질투와 죄책감 때문일 테지.

[저 상처, 저희 형제가 그런 거예요]

입밖으로 튀어나온 말들은 자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지독한 짓이었는지를 재확인시켰다.

나는 이 손으로, 카라마츠를 죽일 뻔했다. 죽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녀석의 자유를 빼앗을 뻔했다.

괴롭다, 녀석의 몸이 무식할 정도로 건강했던 덕분에 목숨에 지장이 없었지만, 머리는 7바늘을 꿰맸고, 왼팔과 왼발은 뼈에 금이 갔다.

그랬구나, 라고 중얼거린 타이가씨는 어째선지 나와 쥬시마츠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이미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녀석을 괴롭히진 말라고. 저 녀석 우리 간판 배우니까 말이야]

[카라마츠형, 그 때, 타이가씨한테 갔어?]

[왔어, 붕대를 감은 채로 말이야. 오랜만에 축 쳐져서 왔으니까, 기분이 풀릴 때까지 같이 대본을 읽었지]

저 녀석, 우리 때문에, 우울증, 다시 생겼을 거야, 분명, 몇 번이고 죽여왔겠지. 진짜로 죽지 않도록.

죽을 만큼 괴로웠을 텐데, 살기를 택해준 거구나.

[역시, 알고 계셨군요. 카라마츠의, , ]

내가 말하기를 망설이자, 타이가씨는 그걸 헤아리곤, 알고 있었어, 라며 끄덕였다.

[부활동 하면서 몇 번이고 실신했을 정도니까, , 부장이었고, 내버려둘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물어봤는데, 솔직히 쇼크였어. 그래도 연극부에 넣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조금은 치유가 되는 것 같았으니까]

이 일을 계기로, 타이가씨는 심리학을 배우게 되었다.

임상 심리사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아르바이트까지 뛰는 바람에 학점이 떨어져 지금은 휴학중이라고 했다.

한심하게 생각 말라고 선배는 웃었다. 이 사람은 남이나 마찬가지인 후배를 이렇게나 아끼는데, 그에 비해 우리들은 피와 세포를 나눈 형제를 소홀히 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이번에 카라마츠가 너희들 두 사람을 데려와서 엄청 안심했어. 형제한테 연극이나 이런저런 얘기를 제대로 하게 됐구나, 하고]

[우리들이 억지로 말하게 만든 거예요]

그렇게 말하자, 타이가씨는 녀석 고집불통이니까, 라며 살짝 웃었다.

[가능하면 응원해줬으면 해. 나르시스트 탐정은 이제 그만둔 것 같고]

[, 응원할게!! 앞으로는 제대로 형한테 좋아한다고 할 거야!]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네요]

고개를 든 내게 타이가씨는 안 늦었다고, 라며 씨익 웃었다.

나와 쥬시마츠는 그 후, 오너에게 프론트나 벨보이의 일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뭔가를 한번에 외우기는 고교 이래로 처음이라 갑자기 피곤이 쏟아졌다.

게다가, 타이가씨에게 받은 카라마츠의 웨이터 영상 2종류를 의문의 텐션으로 편집하는 바람에, 카라마츠에게 간지럼형을 내리겠다고 결심했던 걸 말끔히 잊어버렸다.

 

다음날부터 카라마츠는 낮에 3시간, 저녁에 4시간, 설정B의 웨이터 연기를 선언대로 깔끔하게 해냈다.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는 오너도 웨이터 일을 거들었고, 그 동안에 타이가씨는 주방일을, 나와 쥬시마츠는 로비를 지켰다.

정신없는 2일째가 끝나가는 밤, 프론트를 오너에게 넘기려던 때, 카라마츠는 단 하루만에 연기와 상관없이 라이야와 똑같이 일을 해내게 되었다, 라고 오너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라이야한테 말하면 또 삐질테니까 비밀이네]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오키토라 오너는 다시금 씨익 웃었다.

[너희들도야. 덕분에 라이야가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네]

[정말임까? 에헤헤, 아싸아-!!]

이렇게 면전에 대고 칭찬받는 건 엄청 기쁘긴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엄청 부끄럽다.

쥬시마츠처럼 솔직하게 기뻐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평소에는 청산유수처럼 터져나오던 말들이 지금은 전혀 나오질 않는다.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금 새빨개지는 얼굴을 보고, 재밌다는 듯 웃은 오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따.

[이런 건 나보다 타이가가 더 잘하지]

살짝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오키토라씨는, 조카바보지, 라며 웃는다.

[그 녀석, 극단에서 감독인지 연출인지를 해서 그런지,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게 특기란 말이지]

[그래서 우리들도 그렇게 간단히 채용하신 건가요?]

[그런 것도 있네. 타이가가 데려온 녀석한테 흠은 없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실례인지도 모르겠다만, 흥미가 있었거든. 녀석한테 카라마츠군은 종종 들었고, 형제들에 관해서도 들어봤으니까 말이야. 니트라는 거라든가]

[하하, 부끄럽네요]

[, 하지만 같이 일해 보니까,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단 걸 깨달았네. 자네들, 괜찮은 녀석들이야]

그렇지 않다, 고 생각한다. 나는 자격증도 갖고 있지 않고, 남보다 뛰어난 점도 없다. 지금은 그저, 이 성가신 성격이 우연하게도 도움이 됐는지 모르지만, 다른 곳이었다면 그다지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능력보다도 용기를 내느냐 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네]

그러니 자신을 가지렴, 이라고 오키토라씨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자, 목이 타들어갈 듯이 뜨거워졌다.

 

한 주가 끝나고 화요일 아침, 라이야씨는 완전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것도 완전히 조카바보가 돼서.

큰맘 먹고 입원시킨 게 옳았던지, 누님의 컨디션도 회복되고, 무사히 건강한 딸아이가 태어났다는 모양이다.

[정말 남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더라니까, 한심하게도. 옆에 있어주는 것밖에 못한다고]

분만실에 따라간 라이야씨는, 장렬한 분위기에 압도된 채 계속 누님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게, princess! cute!]

역시 혼혈. 라이야씨는 깔끔한 발음으로 princess를 연발하며 모두가 아침밥을 먹는 옆에서 핸드폰으로 찍어온 사진을 들이밀었다.

사진 속에는 흑발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성과, 그 품에 안겨서 푸른색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바라보는 작고 귀여운 아기, 그리고 두 사람을 지키듯이 누님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은 채 사진을 찍는 라이야씨가 있었다. 이거, 누님의 남편분이 있을 자리가 없어 보이는데.

[보라고, 누님이랑 똑같지? 그야말로 princess!! 머리와 눈동자 색은 날 닮았다고!]

[어이, 그 말은 좀 위험하잖나. 네가 말하면 농담이 아닌 것 같다고]

[남들한테는 제대로 격세유전[각주:8]이라고 말하라고-. 네가 아니라 네 아버지를 닮은 거니까]

[아니, 내가 누님을 더럽힐 리가 없잖아. 오히려, 처녀 수태라고 하는 게 더 현실적이겠다]

헤실헤실한 얼굴로 사진을 보면서, 그 멍청한 자식이랑은 안 닮았으니 진짜 그럴지도, 라고 중얼거리는 라이야씨를 본 오너와 토미오씨가, 못 말리겠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시끌벅적한 대화를 바라보며, 형제들 중에 누군가가, 예를 들어 카라마츠나 쥬시마츠가 훗날 결혼을 하고 애를 갖게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두 사람 다 아이들을 좋아하니 자식바보가 되는 건 틀림없겠지. 행복한 표정으로 두 사람과 똑 닮은 아이를 안고서 내게도 보여주겠지.

쵸로마츠 이것 봐라, 쵸로마츠형 이것 봐! 그래, 라고 말하며 나는 두 사람의 듬직한 팔에 편안하게 안긴 자그마한 생명을 상냥하게 쓰다듬거나 하겠지.

그런 상상을 했더니, 어쩐지 라이야씨의 마음이 무척이나 이해가 됐다.

 

 

 

 

* * *

 

 

 

 

욕실에서 나와 거실로 가니, 먼저 들어갔던 형 두명이 제각기 흩어져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왔어]

그렇게 말한 오소마츠형은 안심한 얼굴로, 빨리 보자고, 라며 날 자리에 앉혔다.

[먼저 봐도 되는데]

[아니아니, 이 편이 감상 말하기 쉽잖아]

이치마츠형은 여전히 방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과 입이 누그러져있다.

1월도 곧 끝이 나는 월요일, 10, 훗카이도에 있는 3명도 이 시간에는 한가한 모양인지 매일 이런저런 연락을 보내온다.

전화 너머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메일도 자주 쓴다.

훗카이도로 가버린 3명과 연락이 닿은 2일후, 오소마츠형과 이치마츠형은 짜고 치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핸드폰을 사서, 다같이 LINE을 하게 됐다.

둘 다, 카라마츠형이 보내준 사진에 있던 것과 같은 기종을 사와서, 어쩐지 쓸쓸해진 나도 같은 기종으로 바꿨다.

그걸 엄마한테 말했더니, 같이 가게에 가서 사면 깎아줄지도 모르는데, 라고 했다.

아니, 상가의 옷가게랑은 다르다구, 마츠요씨.

오소마츠형의 재촉에 내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자, 내게도 세명과 똑같은 메일이 와있다.

쵸로마츠형은 선언대로 쥬시마츠형과 카라마츠형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종종 보냈다.

그 동영상의 편집기술의 퀄리티가 신경 쓰여서 검색을 좀 해봤더니, 우리 삼남님은 아이돌 오타쿠 동료들과 함께 동영상을 편집해 올리곤 했던 모양으로.

발견한 계정의 팔로 수는 3만을 넘어, 글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평가는 모두 높아서 단골 랭킹러였다. 솔직히 좀 깼다.

춤춰보았다, 같은 영상이 많았는데. 예의 하시모토 냥으로 시작해서 여러 아이돌의 곡에 맟춰, 딱 봐도 오타쿠스러운 복장의 남성 세명이, 외형만 봐선 상상이 안 되는 발랄한 댄스나 오타계 댄스 등을 선보였다.

다들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센터에서 제일 신나서 추는 게 우리 삼남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다가, [신강림!] 이나 [야생의 프로] 같은 코멘트가 넘쳐나는 걸 봤을 때의 나는 거의 부처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모든 것을 체념한 수준이었다.

 

[그럼, 우선 쵸로마츠부터]

오소마츠의 말에 메일함을 열었다.

오늘은 캐릭터 붕괴 주의!라는 제목으로 짧은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같은 얼굴인데 엄청난 미남으로 봐버리는 난 이미 틀린 걸지도 몰라

라는 드물게 담담하게 적어 보낸 문자에서 쵸로마츠형의 감정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진지한 얼굴의 카라마츠형이 하얀색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고, 나비넥타이를 한 채 위에 단추를 하나 풀어헤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가 있다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그 장소의 일부인지, 당구대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오른손을 턱에 댄 채로 공의 위치를 내다보고 있다.

살짝 낮은 위치에서 찍는 바람에, 어쩐지 깔보는 듯한 기분, - 이거, 위험하다.

나인볼(당구의 종목 중 하나)을 하는 건지, 8번은 브레이크 샷으로 이미 떨어졌고, 테이블에는 7번과 9번만 남아있다.

하지만, 수구에 가까운 건 9, 어떠한 테크닉을 써서 먼저 안쪽의 7번을 떨어뜨려야 승산이 있다.

천천히 당구대를 둘러본 카라마츠형은 수구 근처에 멈추고는 자세를 낮춘 후, 먹이를 쫓는 맹수 같은, 평소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두 적구를 쳐다본다.

정면샷에 줌까지 땡기다니, 쵸로마츠형, 이러면 내가 노려지는 것 같잖아.

목표를 정한 건지 큐대를 다시 고쳐 잡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딱, 하고 수구를 한번에 쳐낸 카라마츠형은 씨익 입가를 올려 웃는다. 그 표정에서 수컷의 향이 넘쳐흘러 깜짝 놀랐다.

이것 봐, 역시 위험하다고!! 네네, 알겠다구요. 엄청난 미남이란 거 알겠다구요!

, 꽤 하는데

아아. 좋은 궤도로군

같이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손님일까.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남자들의 말대로, 따닥, 하고 흰색공은 당구대 끝에 부딪혀 궤도를 바꾸고 7번공을 친다.

데굴데굴 구멍에 이끌리듯 굴러간 7번공은 그대로 떨어진다.

그걸 끝까지 지켜본 듯, 큐볼은 다시 모서리에 부딪혀 날아가 하나 남은 9번공에 직격한다.

Bien!

박수와 환호성 사이에 외국어가 섞여 들려온다.

이미 카라마츠형의 특기는 실컷 봤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지만, 정말 당구 같은 건 어디서 배운 건지.

으갹! 당했다아! 너 말이야, 선배한테 져준다던가 그런 거 없는 거냐?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는 상대는 나가소네 타이가씨인 것 같았다. 카라마츠형을 아르바이트에 꽂아준 장본인이자 연극부의 전 부장.

죄송합니다. 그걸 조절할 정도로 잘하지는 않아서

큭큭 웃으며 말하는 카라마츠형은 아까까지 보였던 짐승 같은 모습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평소처럼 폼도 잡지 않은 채 눈썹을 아래로 낮추며 오히려 귀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어쩐지 분해진다. 어째서 저 미소를 보이는 게 내가 아닌 건지.

무심코 흘러나온 한숨. 오소마츠형도 같은 타이밍에 한숨을 내쉰다.

[정말 카라마츠형한테서 안쓰러움을 빼버리면 위험하네]

이제, 이거 그냥 단순한 훈남이잖아. 같은 얼굴이라고 아무도 생각 안 할걸.

[그러게-. 내 동생, 완전 멋지잖아]

내 말에 동의한 오소마츠형은 말투와 달리 살짝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는 간다. 지금까지 몰랐던 카라마츠형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쩐지 마음의 거리마 멀게만 느껴진다.

[이치마츠, , 티슈]

오소마츠형이 각티슈를 던진 곳에는, 이치마츠형이 얼굴을 붉힌 채 헉헉 거리며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 설마, 아까 그 짐승 같던 카라마츠형한테 흥분한 거야?

 

이치마츠형이 코에 휴지를 말아넣는 걸 흘끗 보고는, 쵸로마츠형한테 온 동영상을 끄고 다음 메일인 쥬시마츠형의 메일을 열었다. 쥬시마츠형은 사진과 영상을 보내왔다.

사진은 삼남이 딱 붙은 침대 옆까지 굴러가서 차남의 팔을 껴안고 자는 장면이었다.

형들이 사이가 좋아 보여서, 나도 기뻐!! 손을 잡고 자면, 그 날의 싱크로율이 높아진대!

쥬시마츠형, 단순히 손을 잡기만 한 레벨이 아니라고, 이거. 그보다, 쵸로마츠형 우리집에서는 가만히 누워서 잤으면서, 이렇게 굴러다니다니. 원래도 높은 카라마츠형과의 싱크로율을 그렇게 더 높이고 싶은 거야?

동영상은, 두 사람이 판나 코타를 먹으면서, 탱글탱글하네!』『탱글탱글하네라며 겉모습을 본 감상을 동시에 말하고, 스푼을 들어 똑같이 움직여 큰 접시에 담긴 판나코타를 떠 입에 넣으며 맛있어!』『맛있네!라 크게 외치면서 동시에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짜고 치는 거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마, 두 사람도 무의식이겠지.

[우와-, 놀래라. 쵸로짱이 귀여워-]

탁자에 팔꿈치를 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하는 오소마츠형. 말투는 밝지만, 표정은 예전의 미소와 어딘가 다르다.

[이거, 위험한데. 쥬시마츠형과 카라마츠형이라면 이해하지만, 쵸로마츠형한테 이런 깜찍함 없으니까]

그렇게 답하자, 오소마츠형은 그렇지? 라고 말하며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세 사람이 나간 후부터, 장남은 어딘가 부족한 듯한 미소를 곧잘 짓게 되었다.

하는 말이나 말투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표정은 나이에 맞게 어쩐지 차분해졌다. 처음에는 위화감만 들었지만, 2개월이 지난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다.

흘끗, 방구석을 보자 이치마츠형이 이번에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번민하고 있었다.

뭐어, 이해는 하지만.

 

마지막 한 통, 카라마츠형한테서 온 메일에는 사진이 2개가 왔다.

두 사람 다 제법 호텔 종업원답지 않나

라는 메시지와 함께 첨부된 사진 한 장에는, 제복차림의 쥬시마츠형이 오른손에는 손님의 짐을 들고, 왼손으로는 여성손님을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쥬시마츠형이 뭔가 재밌는 말이라도 한 건지, 여성과 그녀의 부모님이 즐겁게 웃었고, 쥬시마츠형도 마찬가지로 기뻐보였다.

소매에서 제대로 손을 내놓고, 긴 바지를 입은 쥬시마츠형은 입을 헤- 하고 벌리지도 않았으며 초점도 제대로 맞았다.

다른 한 장은, 쵸로마츠형이 프론트에서 손님을 상대하는 사진이었다.

깔끔하게 정돈한 머리에,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 셔츠. 본가에 있을 때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세련되어 보이는 게 미스테리다.

화를 내는 것도 식는 것도 빠르고, 희로애락이 금방 얼굴에 드러나는 삼남이, 이렇게 차분한 표정으로 접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구에서 이겨서, 리프트 할인권을 얻었다. 그래서 모레 셋이서 타러 갈 예정이다~

그렇구만, 할인권이 걸려 있어서 그렇게 진지했던 거구나.

내기에 약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조금 안심을 한다. 게다가 어미에 물결표시 붙이는 것도 변하지 않았고.

펜션 근처에 스키장이 있어 쉬는 날에 종종 간다는 걸 얼마전에 들었다.

그 직후에 보내온 동영상에, 쵸로마츠형이 스키, 카라마츠형과 쥬시마츠형이 스노보드를 타고 있었다. 세 사람 다 프로 선수 못지않은 실력이었다.

[......모레가, 기대 돼]

어느새 부활한 이치마츠형이 구석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낟.

[그렇네. 분명 엄청난 동영상을 또 보내오겠지?]

고개를 끄덕인 이치마츠형은 입가가 평소보다 살짝 올라가 있다. 오소마츠형과는 다른 방면으로 사남은 변했다.

어떤 화학변화를 일으킨 건지, 카라마츠형과 연락이 닿고 이틀 후, 이치마츠형은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쓰는 모습을 봤을 땐, 너무 놀라서 살짝 이성을 잃을 정도였다!

아르바이트 장소가 우연히 카라마츠형이 일했던 곳이어서, 그것을 계기로 친구라곤 고양이밖에 없던 이치마츠형이 직장 사람들과도 곧잘 지내는 모양이다.

때때로, 카라마츠형한테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 목소리가 전보다 부드러워진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오히려 카라마츠형을 좋아한다는 걸 조금도 숨기지 않아서 살짝 기분 나쁠 정도다.

 

두달 동안, 나도 다소의 성장을 거쳤다.

이치마츠형보다 일주일 늦게, 대략 12월 중순부터 셀렉트샵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카페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카페나 음식점 같은 가게에서는 카라마츠형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섹시계? 큐트계?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보내온 건 쵸로마츠형. 세명이 저쪽에 가고 대략 5일 정도 지났을 무렵의 영상인 것 같았다.

눈앞에서 이걸 당했다고. 나랑 쥬시마츠의 기분을 느껴!!라며 뒤에 빠직 표시를 붙인 문자에, 뭐지? 라며 궁금증을 안고 누른 링크에는, 어떤 동영상 사이트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삼남의 계정인 듯, 한정적으로 공개된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문자와 효과음, 무의미하게 편집 된 영상 속에서 카라마츠형이 섹시함과 큐트, 두가지 버전의 웨이터로 변신해 있었다.

오소마츠형한테 카라마츠형이 옆 카페 일을 도왔다는 걸 듣긴 했지만, 어째서 갑자기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섹시 버전은, 웨이터라기보다 호스트에 더 가까워, 나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요염함이 넘쳐흘렀다.

큐트 버전은, 분위기만이라면 나도 가능할 정도였지만, 손끝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쓴 그 몸짓만큼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딱히 나와 겨루겠단 생각으로 보낸 건 아니란 걸 알지만, 카라마츠형 이상의 퍼포먼스는 나로선 불가능하단 것이 억울했다.

그래서, 카라마츠형이 못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해서 고른 것이 옷가게 아르바이트.

손님을 접대하는 건 카페나 여기나 마찬가지지만, 다루는 게 음식이 아닌 의복이라면 내 특기니까 자신 있다.

안쓰러운 복장의 중2병이 연기였다는 모양인데, 가죽재킷이나 커다란 해골이 박힌 벨트는 자기가 좋아서 입은 거라고 하니까.

안 어울렸던 건 아니지만, 카라마츠형의 패션센스가 좀 그렇다는 걸 알게 되어 기뻤다.

마음에 들어 하던 퍼펙트 패션은, 어떤 심정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처분해 버린 것 같고, 돌아올 때 내가 세 사람의 옷을 코디해주자, 그렇게 결심했기에 아르바이트 중에도 형들에게 어울릴 코디를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음식을 보내줬는데, 전화로 고맙단 말밖에 전하지 못해 조금 슬펐다.

그럴게, 펜션의 주소도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고, 보내오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특정할 수 있을만한 정보마저도 적어서, 검색으로 몇 가지 후보를 추려봤지만 세명이 있는 정확한 장소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안다고 해서 만나러 갈 용기는 없지만.

그래서 요즘 들어, 빨리 돌아와 줬으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만.

나도 그렇게 솔직한 성격이 아니니까, 본심을 직접적으로 전하지는 못한단 말이지.

 

 

 

 

 

* * *

 

 

 

 

 

[Bonjour, frères Matsuno! (안녕, 마츠노 형제!)]

[우오!]

[우악!]

[우햐!]

화요일 아침,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려 휴게실에 들어선 순간, 누군가가 우리 셋을 확 끌어안는다.

범인은 실벵 니베르씨, 지난주부터 아프로디테방에 묵고 있는 프랑스인으로, 패션 디자이너라고 한다.

나는 그 브랜드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토도마츠한테 얘기했더니 이러니까 싼티마츠형은-’ 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20분가량을 거창하게 설명했다. 아무래도 유명한 브랜드인 모양.

[아아, 좋은 아침입니다, 실벵씨]

[실벵씨!! 오하, 4, 6, 3노 겟츄-!!]

[Bonjour, Sylvain! Vous êtes aussi belle que toujours. (좋은 아침입니다, 실벵. 당신은 언제 봐도 아름답군요)[각주:9] ]

카라마츠가 오랜만에 폼을 잡고 늘씬하고 고운 갈색 손등에 입을 맞추자, 실벵씨가 아이 차암~이라며 몸을 배배 꼬았다.

뭐라고 말했냐고 옆에 있던 차남에게 작은 목소리로 묻자, 오늘도 아름답군요, 라고 했단다.

2병 캐릭터는 관뒀지만, 카라마츠는 결국 이런 로맨틱하고 오글거리는 게 좋은 모양이다.

[우후후,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걸! , 그보다 쥬짱 그 용로쿠(앞에 쥬시가 한 4,6,3노 겟츄)란 게 뭐야?]

[으음, 야구 용어야!]

야구 정말 좋아하는구나, 라고 그녀는 웃으며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아침 같이 드실래요?]

[으음. 그래도 괜찮아, 쵸로짱? 사실 일식이 먹고 싶어서 카라짱한테 부탁하러 온 참이거든]

부탁이라니, 우리 차남의 답은 정해져있을 텐데.

[Bien entendu(물론이죠!)]

이 대사는 몇 번이고 들었으니 나도 기억하고 있다. “물론이죠!” 였지.

발랄하게 앞치마를 두른 카라마츠를 본 실벵씨는 귀여워서 버틸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 지어도, 안 줄 겁니다. 이건 우리 차남이라구요.

 

모델도 겸해서인지, 키도 크고 몸매도 좋다. 머리는 옅은 핑크빛의 숏컷으로, 얼굴도 예쁘장한 미형이지만, 그녀는 어엿한 남성. , 오카마다.

그녀가 체크인했을 때 내가 프론트 담당이어서, 오너에게 미리 일본어가 가능하다는 것도 오카마라는 것도 들었지만, 시커먼 코트에 몸을 감싼 키 큰 여성이 날 내려다보고 있어서 솔직히 식은땀을 흘렸다.

[, 봉쥬르 마담 니베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라마츠에게 배운 프랑스어를 더듬더듬 말하자, 무슈가 아니라 마담[각주:10]이라고 한 게 마음에 들었던지, 실벵씨는 활짝 웃었다.

[, 옮겨드리겠슴다!]

마침 장부 기록을 끝냈을 때, 쥬시마츠가 기운 좋게 등장했다. 나와 같은 얼굴이어서인지 실벵씨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 Bonjour, madame! Bienvenue à Ville Étoile! (안녕하세요, 마담! 빌라 에투알에 어서오세요!)]

게다가, 룸 서비스를 끝내고 돌아오던 카라마츠가 등장하자 그녀는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다.

[Êtes-vous triples?! (너희들 세쌍둥이니?!)]

[En fait, nous sommes sextolet. AhSorry, I can't say in French. The other brothers are at home. (사실, 여섯명입니다.[각주:11] ...죄송해요, 프랑스어를 잘 못합니다. 다른 형제들은 집에 있어요) ]

중간에 영어로 바꿔 말하며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축 늘어뜨리는 카라마츠의 어깨에 실벵씨가 손을 툭 얹으며 씨익 웃었다.

[괜찮아. 여긴 일본이니까. 프랑스어를 사용해준 것만으로 기뻐! 발음이 엄청 좋구나! 그보다, 6명이라니, 굉장한 걸. 처음 봤어]

원어민에게 칭찬을 받아 기뻤던 건지 카라마츠가 수줍은 듯 웃는다. 그 미소는 내가 봐도 귀여웠는데, 역시나 이 누님에게도 그랬던 건지 어머나~ 라고 외치며 카라마츠를 확 껴안았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지 그대로 안겨 있는 카라마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 멍하니 서있는 나와 쥬시마츠. 이 수습 불가능한 상황을 정리해준 건 오너인 오키토라씨였다.

[얌마, 실벵! 우리 종업원은 터치 금지라고!]

아무리 친구라지만 상대는 손님. 하지만 가차 없이 핑크색 머리에 꿍, 하고 주먹을 박는다.

[아프다구! 무슨 짓이야]

[내가 할 말이거든. , 내려 놔 얼른!]

[또 귀여운 애들을 뽑았잖아~ 오키토라. 이런 취향?]

[타이가의 후배인 마츠노 카라마츠군과 그 형제인 쵸로마츠군과 쥬시마츠군]

[그렇구나. Sylvain Nivers. 실벵이라고 불러줘]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자기소개를 하며 그녀와 악수를 나눴다.

머무는 동안 즐거울 것 같아, 라고 말하곤 쥬시마츠의 에스코트에 따라 싱글벙글 웃으며 객실로 향하는 그녀를 배웅한 오너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적당히 봐달라고. 그래도 너무 봐주면 엉덩이 만져대니까 그건 막아]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우리 셋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 토미오씨가 당하는 걸 본 적은 종종 있지만.

 

카운터식 주방에서 카라마츠가 솜씨 좋게 아침밥을 만드는 걸, 우리는 똑같이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국물을 내는 동안에, 된장국에 넣을 유부와 소송채를 썰고, 계란말이를 뒤집고, 그릴로 생선을 굽는 걸 잠자코 보았다.

잘도 저렇게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구나, 싶었다.

나는 요리에는 재주가 없다. 요리를 태운다거나 간을 못 맞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번에 여러 음식을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한가지 음식을 만드는 거라면 괜찮지만,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게 도무지 되질 않아서, 한끼 식단을 차려내거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된장의 냄새가 감돌고, 오너와 토미오씨, 타이가씨, 라이야씨가 들어왔다.

[-, 럭키. 카라마츠의 아침!!]

[Bonjour! 실례 좀 할게. 타이가, 여기로 와]

실벵씨 말대로 타이가씨가 싱글벙글 웃는 실벵씨 옆에 앉고, 다른 셋은 뒷자리에 앉았다.

앞치마를 벗은 카라마츠가, 나와 쥬시마츠 사이에 앉음과 동시에 다들 손을 합장했다. 나는 우선 된장국을 먹었다.

본가에서 쓰는 된장과는 달라서인지 엄마가 해주는 된장국과는 맛이 달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맛에 익숙해졌다.

[어머, 이 달걀 맛있네. 너희 마마의 맛?]

[. 어머니께서 가르쳐준 겁니다]

[그렇다기 보단, 이미 카라마츠의 맛이나 마찬가지지만요. 중학교 때부터 녀석이 도시락을 만들어 줬거든요]

[나도, 카라마츠형의 달걀말이 좋아해!!]

오늘 건 김이 들어있었다. 기쁜 걸, 내가 좋아하는 거야.

[그렇군. 어쩐지, 많은 양의 요리에 익숙해 보이더라니]

뒤쪽 테이블에서 말한 건 토미오씨였다. 그야, 우리는 8인 가족이니까. 게다가 고교 시절에는 형제들 전원 식욕이 엄청났었고.

오너가 된장국의 맛을 칭찬했고, 나는 연어가 딱 알맞게 구워져서 좋다며, 라이야씨가 덧붙였다.

[, 언제라도 좋은 사위가 될 수 있겠는 걸]

[우리 집에 와도 된다고? 세명 묶어서, 대 환영!]

농담을 던진 타이가이쎄 실벵씨가 진지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런 대화를 들으면서 카라마츠가 쑥쓰러운 듯, 하지만 기쁜 듯한 미소를 지었다.

, 돌아가고 싶지 않아. 라고 갑작스럽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왜 이 타이밍에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 계속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 먹었습니다. 엄청 맛있었어!]

다 먹은 실벵씨는 방으로 돌아가려 자리를 떴다.

카라마츠의 앞치마 차림에 영감을 얻었으니, 잊어버리기 전에 그려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청소 안 해도 괜찮아]

[알겠습니다. 나중에 시트만 교체하러 가겠습니다]

토미오씨와 카라마츠는 오늘의 메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아직 시간이 남은 라이야씨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었다.

타이가씨와 오너가 옷을 갈아입으러 나가려는 순간, 벤씨와 유메노씨가 출근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의 뒤로, 위장복을 입은 체격이 좋은 남성이 무표정으로 서성거렸다.

[여어, 지에이. 좋은 아침]

토미오씨의 인사에 가볍게 손만 꺼내 든 그 사람은 유메노씨의 남편으로, 벤씨의 사냥 동료이기도 했다.

일본인답지 않게 뚜렷한 이목구비, 흰머리가 드문드문 섞인 장발을 질끈 묶었고,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길게 연결되어 자라있었다. 귀에는 귀걸이, 발목부터 온몸을 담쟁이 넝쿨이 휘어감은 듯한 문신이 있었다. 그리고 왼쪽다리는 허벅지 중간부터 의족이었다.

이 모습만 봐선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을 법도 하지만, 마루이케 지에이씨는 오키토라 오너의 구급대원 시절 동료로,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부상을 당해 구급대원을 그만두고, 원래 인간보다 식물을 좋아했다며 삼림 관리과에 재취업했다고 한다.

주에 몇 번인가 유메노씨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기에 자주 만나지만,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주고받게 된 건 최근이다.

유메노씨가 말하길, 부끄럼쟁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날씨가 개서 다행이구만. 좋아, 슬슬 나갈까. 쥬시마츠, 겉옷 챙겨라]

[여기있슴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코트를 입은 쥬시마츠, 카라마츠가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며 벤씨와 지에이씨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쥬시마츠를 잘 부탁합니다]

[, 우리가 쥬시마츠랑 같이 가고 싶은 것뿐이라고. 그렇지, 지에이?]

벤씨의 말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지에이씨에 카라마츠는 안심한 듯이 옅게 웃었다.

[벤씨, 차랑 식사 준비했으니까 가져가]

토미오씨가 내민 보온병과 봉투를 받아든 쥬시마츠가 스노 부츠를 제대로 고쳐 신고는 히죽 웃었다.

[그럼 다녀오겠스루-!!]

[아아, 조심히 다녀와라]

[두 분 말씀 잘 듣고, 위험한 행동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알고 있다구요, 쵸로마츠 엄마!]

사슴 사냥을 떠난 셋을 배웅한 나는 유메노씨와 서로 눈이 마주쳐, ‘오늘도 청소 힘내요!’라는 의미를 담아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비를 둘이서 반짝거리게 닦아둔 후, 분담해서 각자 객실로 향했다.

스키여행을 온 사람들은 대개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방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우선적으로 청소한다.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두고, 먼지를 털고, 방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린다.

시트와 수건 등을 교환하고, 화장실과 세면대, 욕실을 깔끔하게 닦아둔 뒤에는 마지막으로 현관을 쓸어 정리한다.

, 만족. 깔끔해진 방을 보는 건 역시 기분이 좋네. 방과 함께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한, 좀 과장이긴 하지만, 그런 느낌이다.

3개의 정리를 끝내고, 다음 방으로 이동하려 로비로 돌아가니, 옆쪽 복도에서 걸어오던 손님과 눈이 마주친다.

[안녕하세요. 하나요시씨]

[아아, 안녕. 쵸로마츠군]

일주일 전부터 아폴로 방에 묵고 있는 우사기 하나요시씨. 한자만 봐선 여자이름 같지만, 읽을 땐 [하나요시]라고 읽는다.[각주:12]

아름다운 꽃[각주:13]이란 이름대로 미남자다. 젊은 나이로 컨설턴트 회사를 운영하는 우수한 사람으로, 매년 이 시기에 몰아서 휴가를 받아 이 펜션에 묵는다는 모양이다.

[식사하러 가시는 건가요? 이곳에서 드실거라면 그 사이에 제가 방을 청소해둘게요]

[그럼, 그럴까]

이 사람은 아침에 약한 모양인지, 늘 점심 전에 일어나 느긋하게 밥을 먹는다.

[, 바니, 좋은 아침, 이라고 해도 벌써 점심 때지만-]

[나는 바니가 아닙니다. 게다가 언제 일어나든 제 자유 아닙니까]

프론트에 돌아온 오너가 하나요시씨를 놀렸다.

이건 뭐, 늘상 있는 일로, 성이 [우사기[각주:14]]라서 [바니]라는 단순한 별명을 오너가 붙인 모양이다.

본인은 엄청 싫어하지만, 매일 꼭 한 번은, [바니]라고 불리는 게 일상이다.

[성으로 부르면 이 아저씨가 놀리니, 괜찮다면 이름으로 불러주시겠습니까?]

체크인할 때, 옆에서 히죽거리는 오너에게 질색이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서, 나는 [하나요시씨]라고 부르고 있다.

[밥 먹을 거면, 휴게실로 가. 이제 곧 붐빌텐데, 네가 오랫동안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방해라고]

실벵씨도 그렇고, 하나요시씨도 그렇고 오키토라 오너는 단골손님한테 너무 엄하다.

그래도 매년 찾아오는 걸 보면 사이가 좋은 거겠지.

[네네, 알고 있다구요]

하품 섞인 말투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휴게실로 향하는 하나요시씨를 바라보며, 카라마츠한테 무선을 넣는다.

무슨 일인가, 쵸로마츠?

[하나요시씨, 점심 드시러 그쪽으로 갔으니까]

그래, 알겠다

올해는 홀담당으로 라이야씨 말고 다른 직원이 있다는 걸 알고, 하나요시씨는 뛸 듯이 기뻐하며 브런치 담당으로 늘 카라마츠를 지명하게 됐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라이야씨도 꽤 이것저것 참견이 많은 사람이니까 조용히 먹고 싶은 사람에겐 좀 거북했을 테지.

오늘 점심 메뉴는 뭘까, 좋은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하는 레스토랑을 뒤로하고 아폴로 방으로 향했다.

하나요시씨는 나와 마찬가지로 살짝 결벽증이 있는 듯, 체크인 다음 날 방이 깨끗해졌다며 매우 기뻐했다.

[유메노씨 이외의 사람이 청소해서 이렇게나 만족스러웠던 적은 처음입니다!]

라며, 이름대로 주변에 꽃이 만발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로 말했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칭찬 받으면 더 성장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내일도 점심때까지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다른 방보다 15분의 시간을 써 청소를 끝내고, 만족감에 젖어있다 보니, 또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기에 있으면 쥬시마츠도 카라마츠도 엄청 즐거워 보이고, 나도 즐거운 걸.

그럼, 돌아갈 필요 따위 없잖아?

 

 

 

 

* * *

 

 

 

 

1월이 끝에 다다른 화요일, 아침 6.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대에 일어나서 부모님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오늘은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 7시부터 4시까지 일해서 일당 9280엔을 받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렴. 조심하고]

엄마가 웃으며 현관까지 배웅하는 건 살짝 오글거리면서도 기쁜 것이 뭔가 오묘하다.

신발을 신고 지갑과 핸드폰을 겉옷 주머니에 넣어둔 걸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칼날과도 같이 얼굴과 두피를 스쳐지나가, 잠이 확 달아난다.

집에서부터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아직 어둑어둑한 탓인지 사람이 없어 한산한 거리를 조용히 거니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여섯 형제들 중에서 반이 집을 나간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적을 돌아보곤 우울감에 빠졌다.

밥을 씹어 삼키는 것조차 고역일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고, 쵸로마츠형한테 혼쭐이 났을 땐 심장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다시 회복되는 걸 보면 나도 정말 단순한 듯하다.

토도마츠와 오소마츠형은 카라마츠가 이런저런 일들을 비밀로 하고 있었단 사실에 쇼크를 받은 듯했지만, 나는 오히려 기뻤다.

재주가 뛰어나고 머리가 좋은 뭐든 척척 해내는 차남은, 나 같은 쓰레기는 물론, 형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땅한 곳에 제대로 발휘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니트족이 아닌, 하고 싶은 대로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극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 사실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기뻤다.

초등학생 5학년 때 처음으로 녀석에게 품었던 순수한 동경을 10년만에 다시금 맛보게 되었다.

이것 봐, 역시 카라마츠는 엄청난 녀석이었잖아? 라며, 어릴 적의 내가 머릿속에서 속삭이며 쿵 하고 가슴으로 떨어졌다. 동경해도 좋아, 라며.

입밖으로 낼 정도로 솔직하게 구는 건 아직 힘들고, 약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지만, 내 안에 소용돌이치던 끈적한 감정은 싹 사라지고 말끔해진 기분이었다.

녀석은 내가 행복해질 것을 믿는다고 했다.

취직할 수 있다든가, 회사에서 잘 해낼 거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를 바랐다.

마츠노 이치마츠는 나 한 명뿐이라고, 녀석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간질이듯 들려왔을 때, 나는 온몸을 떨어댈 정도로 기뻤다.

나라는 존재를 여섯 쌍둥이로 한데 묶어버린 게 아니라, 제대로 나라는 사람을 인정해주었다.

 

다음날, 전날 자지 못한 몫을 채우듯 오후까지 잔 후, 토도마츠가 만들어둔 잡탕죽[각주:15]을 느긋하게 먹어치웠다.

[감사 인사해도 좋다고?]

라며, 귀염성이라곤 하나 없는 대사를 날려댔지만, 부드럽고 부담 없는 맛이라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몸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슬리퍼를 끌며 밖에 나가자, 지금까지 보아왔던 경치도 어쩐지 새롭게 보여,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내 안에 갇혀 살았던 거냐며 코웃음을 쳤다.

어제, 토도마츠가 발견한 장소로 가보니, 점심때라 그런지 고양이는 1마리밖에 없었다. 고등어태비의 길고양이가 찹찹 캔을 먹는 걸 보면서, 이자카야의 외벽에 기대어 안쪽에서 들려오는 라디오게 귀를 기울였다.

모여드는 길고양이들과 정체 모를 남성을 못 본 척해주는 이 이자카야의 주인은 영업 준비를 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내가 이곳에 올 때 즈음에는 벽 너머로 잔잔하게 음악이 들려온다.

다음은, 아카츠가에 거주 중인 20대 남성분의 리퀘스트입니다. 삼일천하의 아직 늦지 않았어”. 이 곡은 11월에 발매된 싱글앨범 이 몸에 잠든 짐승의 커플링 곡[각주:16]이죠-. 현지 출신 밴드네요, 응원하겠습니다! 아카츠카에 계신 다른 애청자분들도 응원 메시지 잔뜩 보내주세요-

밴드 이름에 깜짝 놀라 벽에 귀를 바짝 붙였다.

내가 좋아하는 현지의 인디 밴드는 11월 말경, 세명이 나가기 직전에 스카웃 당해 메이저로 데뷔했다.

개인용 CD 플레이어를 갖고 있지 않은 나는 CD를 사지 않았고, 그 뒤로 늘 컴퓨터를 빌려주던 삼남은 집을 나가버린 탓에 이 곡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럼, 감상하시죠. 삼일천하, “아직 늦지 않았어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되는 전주, 마치 이야기를 하는 듯 노래를 부르는 보컬.

 

이 세계는 조금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

가령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지

그렇다고 나는 모든 걸 포기하지 않아

너를 안심시켜줘야 하니까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너는 여전히 이 삶을 끝내고 싶어해

그런 말 말고 어떻게든 살아가보는 건 어때?

지금은 괴로울지라도 분명 언젠가는 완전히 뒤바뀔 거라고

아직 늦지 않았어 앞으로 180도 방향전환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이 목숨은 두 번 다시 네게 돌아오지 않아

한탄하기 전에 어떻게든 살아가보는 건 어때?

지금이 괴로울지라도 분명 언젠가는 완전히 뒤바뀔 테니까

아직 늦지 않았어 이제부터 역전극이 시작되는 거야

 

 

벽 너머로도 제대로 전해지는 목소리, 듣는 동안 저녁 때 통화했던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네가, 네 자신을 되찾고, 가능 한 행복해지는 거다

마츠노 이치마츠는, 너밖에 없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명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일까.

[냐앙]

뺨에 닿는 까칠까칠한 고양이의 혀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눈물로 얼굴이 젖어있다.

[, 상냥하네. 위로해주는 거야?]

[냐아아앙]

무릎으로 전해지는 따스함에 잠시 등을 어루만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다음에 또 보자]

머리를 쓰다듬으자, 고양이는 지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배웅하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토도마츠에게 줄 한정품이란 스티커가 붙은 롤케이크를 사고 무료 아르바이트 정보지를 챙겼다.

 

집에 돌아가니 가족 전원 나간 모양인지 현관이 잠겨있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고, 수돗물로 대충 목을 축인 뒤 거실 한가운데에 정보지를 펼쳤다.

3페이지의 한 칸에 시선이 머물렀다.

고딕체의 급구! 라는 글씨와 함께 이중으로 동그라미가 쳐진 구인글은, 쓰레기 수거 아르바이트였다.

학력불문, 미경험자 환영, 당일부터 일할 수 있는 분을 기다립니다!

쓰레기 같은 사람이 쓰레기를 수거하다니, “자신을 되찾는첫 걸음으로 딱이라고 생각했다.

일손이 상당히 부족한 모양인지, 하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니, 다음날 10시에 바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쵸로마츠형에게 끌려서 갔던 할로워크에 갔을 때 사뒀던 남은 이력서를 찾아, 같이 발견한 증명사진을 그 위에 붙였다.

가능한 또박또박 글씨를 써내려가고 있으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녀왔어-”라는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와. 냉장고에 아침의 답례 넣어뒀으니까]

[? 정말?! 고마워-, 아니, 그보다 이치마츠형! 그거, , 설마, 이력서?!]

[, 아르바이트 하려고. 내일, 면접보러 가]

다 쓴 이력서를 봉투에 집어넣으려는 찰나, 갑자기 토도마츠가 내 어깨를 붙잡고는 앞뒤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 이치마츠형이 아니지!! 우리 사남은 늘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어둠오라를 풍겨대는 히키코모리 니트족이라서 그런 액티브한 일은 안 한다고!!]

토도마츠, 너 그렇게 날이 선 목소리도 낼 수 있구나, 심한 말을 한 것 같지만 뭐어, 스스로도 놀랄 정도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 진짜 이치마츠라고. 그러니까, 떨어져 안 그럼 흥분, 해버릴지도]

이번에는 팟, 손을 떼고는 진짜다..라고 중얼거렸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혼자서 콩트라도 하는 거야? 아니면 뭔가 잘못 먹었어? 열이라도 있는 거 아냐?]

혼자서 콩트를 하는 취미는 없고, 열도 없으며, 네가 만들어준 잡탕죽밖에 먹지 않았다고 답하자, 그건 그것대로 문제일지도, 라며 토도마츠가 얼굴을 찡그린다.

[알겠어, 일단 간식 먹으면서 얘기하자]

재빨리 부엌으로 가서 홍차와 내가 사온 롤 케이크를 챙겨 돌아온 토도마츠는 롤 케이크를 숟가락으로 딱 이등분해서 건넨다.

[, 좋아-! 이거 엄청 좋아하거든. 금방 팔려버리니까 자주 먹진 못하지만. , 이치마츠형 거]

억지로 떠넘겨진 숟가락을 쥔 나는 롤 케이크를 먹으면서 어젯밤의 마음 변화를 얘기했다.

입 밖으로 내니 자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게 더욱 명백하게 느껴져, 이건 절대로 이해받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토도마츠는 아무렇지 않게 잘 됐네라고 말했다.

[엄청 이치마츠 형다운데.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거 아냐? 카라마츠가 멋진 게 하루이틀 일이야?]

일부러 을 떼고 카라마츠를 이름으로 부른 토도마츠는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케이크를 반쯤 먹은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다 쓴 이력서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저기, 오소마츠형한테도 제대로 말해두라구?]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하지만 걱정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드라이 몬스터는 빈정거리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녀석도 꽤 상냥하구나, 하고 칭찬인지 악담인지 모를 생각을 했다.

[, 알아. 돌아오면 말할 생각]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라 보고를 하자, 부모님은 뛸 듯이 기뻐했고, 오소마츠형은 한순간이었지만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정장을 빼입고 약속시간에 맞춰 면접을 갔다.

오소마츠형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일하지 않으면 또 몹쓸 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정차되어 있는 몇 대의 수거차 앞을 지나 건물에 들어갔다. 접수대에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하자 거기에 앉아있던 여성이 밝게 웃었다.

[어머! 오랜만이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이곳이 카라마츠가 일했던 회사라는 걸 알아채곤 얼굴에 핏기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맞아, 전화로 그 녀석이 말했잖아.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에는 건설회사에서 일했는데 그곳이 경영부진으로 망하자 청소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급구! 라는 건 카라마츠의 후임이 구해지지 않았다는 건가. 그렇다는 건 즉, 내가 녀석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건가.

얼굴을 새파랗게 질려서 이를 다각다각 떨고 있는 내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한 접수처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등을 살짝 두드렸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제 곧 면접이니까. 마츠노씨인 걸 알았다면 과자라도 사둘 걸 그랬네]

아니, 나도 마츠노긴 하지만 당신이 아는 마츠노는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걷고 있자, 작업복을 입은 남성 두명이 나를 알아보고 역시나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마츠노잖아! 돌아온 거냐! 다친 건 다 나았고?]

[, 뭐야, 정장까지 빼입고! , 은근 진지한 면이 있다니까. 사장님도 참 의외로 엄격하다니까 일부러 면접 같은 걸 보고 말이야]

돌아온 게 아니라 오늘이 처음입니다, 선배님. 게다가 녀석의 상처는 저희들이 그런 거구요. 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지만 목구멍이 착 달라붙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회의실이라는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접수처 누님이 가볍게 문에 노크를 했다.

[실례합니다. 면접 보러 왔는데요]

[오오, 그래. 들여보내게]

말하는 대로 얌전히 파이프 의자에 마주보고 앉자, 복도에서 본 남성들과 똑같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 두 명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도 참 짓궂네요. 마츠노씨라는 걸 말해줬으면 좋았잖아요]

접수처의 누님의 말에 왼쪽에 있던 남성이 말했다.

[그도 마츠노인 건 맞지만 다른 사람이다. 마츠노 카라마츠군의 형제지]

! 그런가요?! 라며 누님이 이쪽을 바라봐,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죄송합니다. , 몰랐어요]

[괜찮습니다. 그런 일 자주 있어서]

정정될 수 있어 살짝 안심한 탓인지 어떻게든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낮고 위축된 목소리지만.

원래 이런 목소리인데 누님은 내가 목이 말랐다고 생각한 건지 서둘러 차를 내왔다.

[그럼 확인을 위해 이름을 말해주겠나]

[마츠노, 이치마츠입니다]

차를 마신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 밝은 목소리가 나왔다.

면접은 어이없이 끝나고, 나는 그곳에서 바로 채용이 확정되었다. 직무 내용을 듣고, 건물을 안내받은 뒤, 아르바이트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런 나라도 아직 늦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물어가는 겨울의 해가 어쩐지 눈부셔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휴대폰 가게에 들러 집을 나간 세명과 똑같은 기종의 핸드폰을 샀다.

반쯤은 자신을 다그치기 위함이었다. 매달 내야하는 휴대폰 요금이란 목적이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있겠지.

나머지 반은 이게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는 부적과도 같은 거였다.

집에 돌아가니 오소마츠형이 나와 똑같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생각하는 게 똑같구나, 싶었다.

 

그 뒤로 나는 주에 3, 가정 쓰레기를 수거했다.

처음에는 히키코모리 생활로 굳어버린 몸이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2주 정도 지나자 근육통도 사라졌고 지금은 토도마츠와 비슷할 정도로 몸도 튼튼해진 듯하다.

최근에는 같이 목욕탕에 가질 않고, 본인에게 물어보면 화낼 테니까 확신은 못하겠지만.

회사 사람들은 다들 내게도 가볍게 말을 걸어주고, 면접 때 복도에서 만났던 두 사람은 날 카라마츠로 착각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하군. 우리들이 너무 성급하게 굴었어]

[살짝 분위기가 다른 것 같긴 했다만, 다쳤던 탓이라고 생각했거든]

형제들 중 누군가로 착각하는 건 날 때부터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두 사람의 사과에 오히려 놀랐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내가 말하자, 고작 그런 일이 아니잖아, 라고 답했다.

[아무리 일란성이라 서로 닮았다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인 거잖나. 다른 누군가로 착각하는 건 그 누구에게나 실례인 일이라고]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기에, 나는 놀람과 동시에 기뻤다.

다들 나와 카라마츠를 비교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아 어쩐지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저번의 마츠노는 좀 더 일을 잘 해냈는데, 이번의 마츠노는 그렇지 않다. 같은 말 정도는 들을 거라고 각오했었으니까,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아르바이트에 금방 익숙해져갔다.

 

화요일은 옆마을에서 타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로, 나는 선배 두명과 함께 수거차에 올라탔다.

카라마츠도 옆마을을 담당했었다는 모양이다. 아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건 부끄럽다느니 둘러댄 모양이지만, 아마 진짜 이유는 형제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니트인 우리들이 이런 이른 아침부터 옆마을에 있을 일은 드물었으니까.

[-, 도착했다고]

담당지역에 도착한 뒤론 줄곧 도로변이나 쓰레기통에 든 쓰레기를 수거차 뒷칸에 던져넣기만 했다.

냄새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고양이들이 잔뜩 있는 곳에서 뒹굴어댄 탓에 익숙해진 건지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 것보다도 운동부족인 탓에 숨이 찬 것이 큰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체력이 붙어서 괜찮아졌지만. 쓰레기를 지정된 봉투에 담았는지나, 타는 쓰레기 이외의 것을 버리지 않았는지 등을 체크하는 것도 전보다 빨라졌다.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해 차에 싣고,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기를 몇 시간인가 반복한 뒤, 차에 쓰레기가 가득 차면 쓰레기 처리장으로 이동한다. 낮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몇 시간 동안 일을 한다.

모든 쓰레기를 수거하면 회사에 돌아가 목욕을 한다.

카라마츠가 저녁 전에 샴푸냄새를 풍기는 게 좀 의아했었는데, 이유는 이거였던 거구나.

[그럼 이치마츠, 수고했어]

여기서는 이치마츠라고 불린다. 카라마츠를 마츠노라고 불렀으니까 구별을 위해서라는 모양이다.

그런 작은 배려가 조금 부끄럽지만 기뻤다.

[,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타임카드를 찍은 후, 마지막으로 접수처의 누님에게 인사를 한다.

[수고하세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수고했어, 이치마츠씨. , 맞다. 받은 건데, 이거 괜찮으면..]

이렇게 때때로 과자를 받는 경우가 있다. 손님이 사온 것으로 전원 받는 거겠지만, 역시 기쁘다.

쿠키를 받아들고 인사를 하자, 누님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집에 돌아가니, 빨간색 신발이 한 켤레 현관에 놓여 있었다.

거실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어서, 일단 받은 쿠키를 먹고 2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들 방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방을 나와 건너편 방으로 가 지붕을 올려다보니, 오소마츠형이 빨래를 걷고 있었다.

[이치마츠, 어서와-]

[.......다녀왔어]

태평한 말투는 전과 똑같지만, 뒤돌아보며 헤죽 웃는 얼굴은 어딘가 평소와 달라 보인다.

엄마의 명령으로 지금은 이 사람이 가사를 돕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무리 말해도 손도 까딱 안 하던 그 오소마츠형이.

처음에는 실패하기 일쑤였지만, 재주가 좋은 사람이니까 엄마한테 합격을 받을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토도마츠는 분명 천재지변이 일어날 거야! 라고 했지만, 다행히 아직 그런 징조는 없다.

빨래를 다 걷은 오소마츠형이 손에 바구니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내용물, 뭐였어?]

[....뭐가?]

[? 너한테 우편 왔던데? 탁자에 놔뒀잖아]

그러고 보니 뭔가 놓여 있던 것 같다. 나한테 올 물건이 없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끔하게 마른 빨래를 개기 시작하는 오소마츠형 건너에 앉아 나도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어땠어?]

내가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면, 형은 매번 이 질문을 한다. 토도마츠한테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평소랑 똑같지 뭐]

처음에는 피곤하다든가 힘들었다 같은 말을 했었지만,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내 대답은 매번 같았다. 토도마츠도 비슷한 듯했다.

오소마츠형은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나나 토도마츠가 어딘가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토도마츠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여기에 계속 있을 거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애초에, 떨어져서 산다고 해도 가족이란 건 변함없고.

그렇게 말해볼까 하고 몇 번인가 생각도 했지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어쩐지 모르겠어서 아직까지 말을 못하고 있다.

세명이 집을 나가게 된 계기가 된 건 나고, 그런 나를 원망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니까 적어도 속죄로서 집에 있을 때만큼은 옆에 있으려고 한다.

 

빨래를 전부 개고, 나는 우리들의 옷을, 오소마츠형은 부모님의 옷과 수건 등을 분류해 각 자리에 집어넣었다.

거실에 돌아가 보니, 탁자 위에 두툼한 봉투가 하나 놓여있었다.

[짜잔-, 형님이 차를 끓여 왔답니다-]

[고마워]

고맙다고 말하자, 오소마츠형은 헤헷, 하고 웃으며 코밑을 비볐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던 나는 봉투를 집어들었다.

봉투 겉에는 우리 주소와, 정확하게 마츠노 이치마츠님이라고 적혀있다.

배송료 400엔을 들여가면서까지 누가 보내온 거지? 라고 생각하며 봉투를 뒤집어 발신인을 확인한 나는 하?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마스야마 류타로군은 분명 카라마츠의 친구였었지?]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고]

그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인 삼일천하의 보컬이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친구의 형제라곤 하지만 무슨 이유로 내게 이런 걸 보낸 걸까. 고등학교는 같았지만 딱히 인사를 나누거나 한 적은 없는데.

신중하게 봉투를 열자, 안에는 잡지의 카피와 편지 한통, 그리고 CD 2장이 들어있었다.

[, 이거, 최근에 나온 거지? 아카츠카 출신이라 그런지 편의점에서도 팔더라. 마스야마군, 유명인이네-]

오소마츠형이 말한 대로, 한 장은 최근에 발표된 그들의 첫 앨범으로, 멤버들의 사인이 적혀있었다.

다른 한 장은, 직접 녹음한 CD인지, 곡명과 날짜만 적힌 새하얀 CD가 케이스에 들어 있었다.

 

 

 

 

* * *

 

 

 

 

특집! 삼일천하 메이저 데뷔 기념 인터뷰

애니메이션 주제가 이 몸에 잠든 짐승4주 연속 차트 1! 만반의 준비를 하고 메이서 데뷔한 삼일천하, 그들의 본심을 파헤쳐보자!

 

삼일천하란?

(보컬, 피아노, 기타), 잇사(기타, 코러스), 카이(베이스, 코러스), 자키(드럼, 코러스) 이렇게 4인으로 결성된 얼터너티브록 밴드. 아카츠카 중심지에 있는 라이브 하우스에서 활동. 발표 곡은 전부 동영상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 이 몸에 잠든 짐승으로 메이저 데뷔. 퍼스트 앨범인 예상외1월 하순에 나올 예정.

 

――우선은, 강렬한 메이저 데뷔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솔직히 처음인데 이렇게까지 팔리다니, 진짜 삼일천하가 될 것 같네요(웃음)

잇사 : 그것도 좋지 않아? 밴드 이름이랑 딱이고.

 

――오늘은, 삼일천하의 이곳저곳을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우선, 밴드명의 유래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 멤버끼리 모였을 때 잡담으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차트에 올라가면 어떨 것 같아?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잇사 : 너무 인기 많아도 큰일이지 않아? 라고 내가 말했었지?

자키 : 3일 정도라면 괜찮지 않겠슴까, 하고 제가 말하고

카이 : 그럼, “삼일천하로 하자. 라는 느낌으로 지었습니다.

 

――삼일이라고 할까, 벌써 한달 이상이나 1위입니다만...

: 그렇죠-, 우리들이 제일 놀랐다니까요. 그 사이에 본업의 손님에게 들켜서 엄청 놀림 받았죠

카이 : , 저희들 평소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전원 다른 곳이지만. 류는 Web 디자이너, 잇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자키와 저는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잇사 : 컴퓨터 계열 전문학교에서 알던 사이야. 그러니 자신들의 Web 페이지는 완전히 자기 부담이지

: 남한테 부탁할 돈도 없으니까 말이지-. 덧붙여서, 굿즈와 이번 CD 자켓 일러도 전부 잇사군의 일러스트입니다

 

――밴드를 결성하게 됐을 때에 대해서 물어도 될까요?

: 그리 거창한 건 아니니 괜찮아요. 어쩌다 마음이 맞아서 하게 된 거라

카이 :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 멤버가 모이게 된 걸까 싶다니까요. 다들 취향도 다른데

 

――취향이란 건 음악의 방향성 말인가요?

잇사 : 맞아맞아. 나는 하드계열을 좋아하고, 카이는 메탈, 자키는 컨트리계와 클래식락. 이렇게 뒤죽박죽인 걸 잡식인 류가 잘 정리해준 거라고 생각해

: 잡식이라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보다, 나 그렇게 중요한 포지션이었어?

잇사 : 아마

카이 : 적당하네(웃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원래 취향이 다 달랐으니까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알려주려고 한 결과 이 밴드가 된 거 아냐?

자키 : -, 알 것 같슴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건지 전혀 몰랐는데, 세명이 가르쳐준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슴다!

 

――참고로, 류씨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나요?

: 처음에는 재즈였어요. 어머니께서 그쪽 계통 종사자여서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쳤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재즈 다음으로는...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요. 각종 락음악에, 블루스, 포크송도 좋아해요. 요즘에는 라틴계열 음악도 자주 들어서, 어쩌면 조만간에 그런 계열의 곡을 쓰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잇사 : 아니, 벌써 말했잖아. 저번주에 가져온 데모가 그런 거였거든.

 

――오오, 신곡의 예감! 조금 다른 얘기지만, 류씨는 라이브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시네요

: -, 이쪽이 원래 모습이에요. 원래 소심한 성격이거든요, . 살아가는 방식도 전혀 록 같지 않고. 늘 안패(버리더라도 아무 지장이 없은 안전한 패)를 갖고 다니거든요(웃음)

카이 : 라이브에서는 (오레)”라고 하지만, 평소에는 (보쿠)”라고 하지

: 컨셉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라이브 때는 긴장해버리니까 이상하게 텐션이 올라간단 말야

자키 : 진짬까! 처음 알았슴다. 계속 그냥 그런 컨셉이라고 생각했어요

잇사 : 그럴 리가! 이 녀석 블로그만 봐도 티 팍팍 나잖아. 팬들도 다 알고 있다고

 

――다음으로, 최근 발표된 데뷔앨범 예상외에 관한 건데요. 이건 지금까지의 발표곡을 수록한, 베스트 음반이라고 보면 될까요?

: 솔직하게 말하자면 회사의 의견이었어요(웃음). 우리들은 원래 우리들의 곡에 값을 매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만든 곡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들은 동영상 투고 사이트에 올렸거든요. 누군가 들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라고 생각해서

잇사 : 하지만 이 몸에 잠든 짐승이 팔렸으니까, 지금이라면 이것들도 팔리지 않을까? 라고 레코드 회사 사람이

카이 : 메이저 데뷔에 앨범을 내다니 이거 꿈이지?! 라고, 그래서 타이틀도 그대로 예상외

: 그래서, 전곡 우리들의 Web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으니까, 사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뇨아뇨! 이 기사가 나가면 예상외로 팔릴 거라구요! 앨범을 산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켓 뒤의 [K에게 바칩니다]라는 건 누굴 말하는 건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 가요?

: 그건 불치병으로 멀리 떠나버린 제 약혼녀...라는 건 거짓말이구요. 고등학교 친구입니다. 참고로 지극히 건장한 남성입니다. 고교 때 연극부에 들어갔던 애인데, 지금도 연극배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툭 까놓고 말하자면, 극단AKTK 소속의 카라노 카라마츠군[각주:17]이란 사람입니다. , 본인한테 본명을 말해도 된다고 제대로 허가 받았으니까 걱정은 마세요. 극단의 선전이 될지도 모르니 잔뜩 선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초회한정판의 마지막 곡은 그를 위한 건가요?

: , 맞아요. 그는 머리도 좋고 스포츠도 만능에 기타도 노래도 잘하거든요. 게다가 상냥하기까지 해서 정말 히어로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내 친구가 이렇게 멋지다! 라고 자랑하고 싶어서..

잇사 : 같이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녀석이야, 정말

카이 : 동감. 순수하고, 좋은 의미로 천연이라고 할까.

자키 : 저한테 있어선 이미 5번째 멤버나 마찬가짐다. 카라마츠씨가 없었으면 이 밴드 벌써 해산됐을 테니까요

 

――? 대체 무슨 일이?

: 이 멤버로 밴드를 시작하고 약 1년째인 11월에 잇사군과 카이짱이 크게 싸워서 일시적으로 잇사군이 탈퇴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이미 연말 라이브가 예정되어 있었고, 인기도 조금씩 얻고 있던 시기라서 상황이 엄청 안 좋았죠. 회장 캔슬 요금이나 티켓 환불비 같은 걸로 파산할 각오까지 할 정도였다니까요.

자키 : 싸운 이유도 터무니없었죠. 음악에 관한 것도 아니고, 당시에 방영하던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들 중에 누가 가장 귀여운가로 싸웠다니까요

카이 : 면목 없네요. 저랑 잇사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 라이브까지 한달이었지? 밴드를 하는 지인들한테 부탁하기도 시간이 애매해서 거절당했었고. 그래서, 카라마츠군한테 울며 매달렸어요. 이제 너밖에 없다면서. 그랬더니 흔쾌히 받아들이더라구요. 극단의 공연도 연초에 있었는데 새벽이나 심야에 와서 연습을 했어요

자키 : 그 라이브는 잊을 수가 없슴다. 여태 했던 라이브 중 가장 신나서 공연했슴다. 카라마츠씨, 엄청 멋있었고

: 스테이지 위에서 잇사군한테 한방 날렸었지-. 빨리 화해하라고

잇사 : 사전에 연락이 왔었어. 라이브 보러 오라고. 내가 삐져있던 거 알고 있던 거겠지. 원래 나보다 기타 잘 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발 당한 게 분해서 결국 다시 돌아갔어. 그 뒤로 기타도 엄청 열심히 연습했다고. 일단 녀석을 뒤를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 이런 이유로 그에게는 엄청 신세를 지고 있어서, CD를 내면 그에게 바치는 노래를 내겠다고 전부터 얘기했었는데 이번에야말로 실현시킨 겁니다

 

(이하생략)

 

* * *

 

 

먼저 잡지 기사를 펼쳤다. 흑백으로 복사된 A3 사이즈의 종이에는 멤버들의 사진과 함께 특집 타이들이 중앙에 크게 적혀있었다.

우편을 보낸 마스야마군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내 기억보다 머리가 더 긴 듯하다.

앞 페이지에 실린 기사인지 작은 수가 종이 끄트머리에 적혀있고, 그 옆에 잡지의 이름이 있다.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메이저한 음악잡지였다.

이 말은 즉, 그들의 인기가 상승세라는 것.

그런 사람들이 인터뷰의 3분의 1을 카라마츠의 얘기로 소비했다. 그것도 여기에 나온 연말 라이브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즉흥적으로 갔었던 그 라이브인 것 같다.

흥분으로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는 내 옆에서 기사를 들여다보던 오소마츠형이, 이미 익숙해져버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이 라이브 보러 갔었다고 말할까 어쩔까 30초 정도 고민하다, 결국 말하지 않기로 했다.

기사를 원래대로 접어두고 편치를 펼쳤다.

 

 

* * *

 

 

마츠노 이치마츠님

 

갑자기 편지를 보내, 깜짝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들과 같은 학교를 다녔고, 3년간 카라마츠군과 같은 반이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소속된 밴드의 첫CD가 발매되어 이렇게 멋대로 이치마츠군에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치마츠군이 저희들의 음악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카라마츠군에게 전해들었을 때,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 얘기를 하는 카라마츠군도, 마찬가지로 기뻐 보였습니다.

 

동봉된 인터뷰 기사에도 적혀있겠지만, 카라마츠군은 저희 밴드에 있어 구세주 같은 존재입니다.

그 당시 카라마츠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삼일천하는 해체되었을 겁니다.

멤버가 한명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라이브 당일 저는 어째선지 긴장도 하지 않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텐션이 올라버렸습니다.

체력도 없는 주제에 처음부터 전력을 내버려서, 어깨까지 덜덜 떨려 중간에는 피아노를 치지 못할 정도가 되었지만요.

그 라이브 뒤에도 저희는 서포트를 구할 수가 없어, 몇 번인가 카라마츠군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내 음색에 오늘 밤()] 취해보라느니 말했던 탓에, 두 번째부터는 드럼 옆에서 드러나지 않게 기타를 치는 모습이 그다워서 웃음이 났었습니다.

저희들이 곡을 쓰다 막히면, 정확히 캐치해서 의견을 내는 것도 카라마츠였습니다.

인기곡 중 몇 개는 그의 의견을 받아 완성한 곡들입니다.

 

CD의 마지막에 수록된 곡처럼 고등학교 때도 저는 카라마츠군의 도움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입학식 날, 긴장한 저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주거나, 시험 전에 모르는 문제를 알려주거나 했었죠.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고3의 문화제 때의 일입니다.

경음부 소속이었던 저는 축제의 마무리로 스테이지에서 연주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같은 멤버였던 애가 방학 후에 수험공부에 전념하면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둬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밴드의 후배가 자기 밴드에서 연주하라 했지만, 3학년이 후베들 사이에 끼는 것도 조금 그렇고, 무엇보다 저는 소극적이어서...

결국 문화제에 나갈 수 없게 된 저는 반에서 혼자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카라마츠군이 제게 그럼 나랑 하겠나?”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도 그때는 연극부 부장이라서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연습해도 된다며, 나와 너라면 최고의 연주를 할 수 있을 거라 해주었습니다.

그가, [어쿠스틱 라이브도 멋있지 않나?] 라고 해서, 관현악부의 친구에게 부탁해 베이스와 퍼커션을 빌렸습니다.

이치마츠군이 그 연주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저의 고교 마지막 무대는 저의 취미를 양껏 펼쳐 올드한 멜로디의 재즈 어레인지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카라마츠군의 목소리와 연주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자주 노래해달라고 보채곤 했었습니다.

그것도 CD로 구워 넣어두었습니다.

본인에게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집에서만 들어주세요.

 

메이저 데뷔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사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카라마츠군은, [그럼, 이치마츠에게 CD를 보내주겠나] 라고 하여 이렇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밀로 하고 싶었을 아닐까 생각했지만, 입막음 당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솔직하게 전부 털어놓습니다.

이미 저희들의 음악에 질렸을지 모르니, 만약 그러시다면 적당히 처분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만약, 마음에 들어하신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요.

 

길고 시시한 문장을 써서 죄송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삼일천하의 보컬담당, , 마스야마 류타로.

 

 

* * *

 

 

[이치마츠는, 경음부 공연 보러 갔었어?]

가지 않았다고 답하자, 오소마츠형도 나도, 라고 답한다.

[갔으면 좋았을텐데-. 연극부의 공연도 봐둘 걸 그랬어]

[]

고교 시절의 나는, 적극적으로 친구를 만드는 걸 포기한 상태이면서, 완전히 고립될 용기도 없었던 탓에 최대한 적도 만들지 않겠다는 주의였다.

3 문화제는 솔직히 귀찮아서, 하루종일 반에서 하는 귀신의 집 보는 걸 맡아주고만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지만.

편지를 접고 CD를 펼쳤다. 자켓 뒤에는 기사에 말하던 대로 [K에게 바칩니다]라고 적혀있다.

초회 한정판을 넣어준 건, 마스야마군의 친절인 걸까, 아니면 잡지에서 언급된 미발매곡을 들려주고 싶었던 걸까.

카라마츠를 위해 썼다는 이 곡은, 뒷자리의 히어로라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곡명이었다.

 

 

* * *

 

처음 들어선 교실 / 주변은 낯선 녀석들뿐

입학식부터 계속된 / 긴장으로 손에는 땀이 흥건

먼저 말을 걸 그런 용기는 / 내게 없어서

멍하니 앞만 보고 있으니 / 덜덜 떨리는 어깨 위로 / 상냥한 손길

[괜찮은가? 어디 아픈 건가?]

당황스러움에 / 뒤를 돌아보며 [괜찮아] / 겨우 답하자

뒷자리의 녀석이 / 환하게 웃었어

 

겨우 그 간단한 대화로 / 긴장이 씻은 듯이 사라져

어느새 나도 / 그를 따라 웃고 있어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험 전 / 수업시간에 졸았던 자신을 저주해

수업을 지루하게 한 / 선생님이 나쁜 거라며

책임전가를 하며 / 교과서와 눈싸움

하나도 모르겠어 / 풀죽은 어깨에 / 상냥한 손길

[괜찮다. 이걸 외워라]

선생님 흉내를 내며 / 교과서를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 정말 똑같아

웃어대는 사이에 / 공식이 외워졌어

 

배부되는 시험지 / 녀석이 알려준 게 딱 나와서

낙제점을 피해 /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얼마나 구원받았는지 / 아마 너는 모르겠지

그래 / 너는 / 무자각 히어로

 

 

이 교가를 부르는 것도 / 오늘이 마지막인 졸업식

내일부터는 더는 / 뒷자리에 네가 없겠지

불안함으로 / 떨리는 어깨 위에 / 상냥한 손길

[괜찮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처음과 변함없는 / 눈부신 미소로 / 너는

 

[괜찮다]는 너의 목소리와 / 어깨로 느껴지는 따스함

그걸 떠올리면 /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로부터 벌써 몇 년 / 조금은 강해진 나

그러니 만약 네가 / 위험에 처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 늠름한 어깨 위에 / 손을 얹을 거야

[괜찮아. 내가 있어] 라고

믿음직스런 웃음을 보이며 / 너도 따라 웃길 바라며

그렇게 둘이서 / 어깨를 서로 두드리며 나가아면 되잖아?

 

 

듣고 있니? / 뒷자리의 / 나의 히어로

 

 

* * *

 

 

[그거, 들어보자]

언제 가져왔는지 오소마츠형이 부모님 방에서 아빠의 CD카세트를 가지고 와서는 콘센트에 꽂고 있었다.

[뭐야 이거, 코드가 너무 짧잖아]

오소마츠형이 불평했지만, 애초에 라디오 카세트는 코드가 길게 나오지 않는다.

탁자까지 카세트가 닿지 않아서, 우리들이 그쪽으로 이동해 벽에 기댔다.

초회 한정판 CD를 넣고 트랙 14를 선택.

크레디트에는 전곡이 밴드명으로 적혀있는데, 이 곡은 마스야마군이 만든 거라서 그런지 마스야마군의 이름만 적혀있다.

피아노가 메인인 재즈풍 분위기의 곡으로, 이 밴드치고는 꽤 밝은 곡조였다.

데모판이라서 그런지 어쩐지 음질이 거칠고, [낙제점 회피]란 가사 부분에서 누군가가 짧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도 섞여들었다.

편지에도 적혀있었듯이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던 거겠지.

마지막에 살짝 목소리가 떨린 걸 보아, 어쩌면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카라마츠는 그의 바람에 응했을까. 형제들에게는 좀처럼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 녀석도, 남들에게는 도움을 청하기도 하는 걸까.

가령, 치비타의 유괴사건 때라던가.

그러고 보니, 그때 맷돌을 던진 거,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최악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더니, 4분 조금 넘는 곡이 끝나고, 대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어-. 어라? 웬일로 둘이서 음악을 듣고 있어?]

거실에 들어온 토도마츠는 탁자에 놓인 케이스를 발견하곤 집어들며 말했다.

[, 이거 이치마츠형이 좋아하는 밴드 아냐? 최근에 메이저 데뷔했잖아? 보컬이 카라마츠형의 친구였다던가?]

그렇다고 답하며 새하얀 CD로 바꿔 넣는다.

[설명, 귀찮으니까 이거 봐]

받은 편지와 잡지기사를, 토도마츠는 흥미롭다는 듯 펼쳐들곤 읽었다.

미간이 찌푸려져 가는 걸 흘끗 쳐다보며, 재생버튼을 눌렀다.

one, two, one, two, three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구호 소리에, 토도마츠가, 카라마츠형이다! 라며 고개를 들었다. 옆에 있던 오소마츠형이 카라마츠네, 라며 그리움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고요한 전주, 카라마츠의 목소리, 코러스는 마스야마군, 라이브 때도 생각했지만 이 두 사람 목소리의 상성이 엄청 잘 맞는다.

[무슨 곡이더라? 들어본 적 있는데]

[사운드 오브 사일런즈]

[이치마츠형, 잘 아네]

전부 녀석이 알려줬다. 해외음악, 국내음악 가리지 않고 녀석은 오래된 곡들도 잘 알았다.

어쿠스틱 기타에 맞는 애절한 느낌의 멜로디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줄을 튕기던 녀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지금처럼 감정을 담아 노래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건지, 음질은 아까 들었던 데모판과 똑같았다. 때때로 대화소리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메인인 어쿠스틱 기타는 카라마츠의 특기였다. 곡을 연주할 때면, 누군가가 다른 악기를 연주하거나 코러스를 넣거나 했다.

사이먼&가펑클로 시작해서, 비틀즈, 이글스, 빌리 조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니켈백, 내가 모르는 아티스트들의 노래가 몇 곡.

해외 음악들 사이에, 고 히로미, 체커즈, 오다 카즈마사, 사잔 올 스타즈, 샤란Q, 70년대부터 90년대의 히트곡이 끼어있어, 우리들은 그걸 잠자코 들었다.

 

[분할 정도로 잘하잖아]

토도마츠가 CD에 대한 메모를 읽으며, 선곡이 너무한다며 불평을 했다. 그 눈은 평소보다 물기가 많이 어려있다.

[, 이 특유의 저음, 좋아해. 왜일까, 나랑 성대도 같을 텐데. 음역이 전혀 달라]

오소마츠형은 아까부터 눈을 꼭 감고 벽에 기대고 있어서 자는 건가 했는데, 제대로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

마스야마군이 골라준 15곡째. 마지막 곡은, 메모를 보지 않아도 첫음만으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벽 너머의 라디오에서 들려와서 알게 된 커플링 곡. 핸드폰을 사고 바로 다운로드판을 사서 매일같이 듣고 있으니까.

, 안돼. 녀석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버리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도 그렇게나 떨렸는데.

[왜 그래, 이치마츠형?]

[이거, 안돼]

정지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알고 있다. 사실은 듣고 싶다는 거.

[? 처음 듣는데, 좋은 곡이잖아? 나는 좋은데]

나도 좋아,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카라마츠가 불러버리면 눈물샘이 터져버릴 거야.

그러던 중, 노래는 끝에 접어들었다.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 이 목숨은 두 번 다시 / 네게 돌아오지 않아

한탄하기 전에 / 어떻게든 / 살아가보는 건 어때?

지금이 괴로울지라도 / 분명 언젠가는 / 완전히 뒤바뀔 테니까

아직 늦지 않았어 / 이제부터 역전극이 시작되는 거야

 

 

카라마츠의 힘찬 목소리가 귀에 꽂히고, 머릿속을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그 감촉은, 좁아져가는 내 껍질을 부수기에 충분한 위렵을 갖고 있었다.

기타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고, 좋은 곡이로군, 노래를 끝마친 녀석의 중얼거림을 마이크가 잡아낸다.

이치마츠에게 불러주고 싶군

폭탄발언을 끝으로 CD는 끝난다.

심박수가 급상승한다. 몸이 뜨거워지고,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을 새빨개져 있다는 걸 직감했다. 이것 봐, 눈물샘 고장나 버렸잖아.

토도마츠와 오소마츠형이 똑같이 히죽거리며 나를 본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거 저주나 마찬가지잖아. 이런 짓을 해버리면, 나는 두 번 다시 비굴함의 껍질을 쓸 수가 없게 되잖아.

 

그날 밤은, 카라마츠가 야생적인 모습을 한 쥬시마츠의 사진을 보내왔다.

직장 동료분을 따라 사냥에 따라갔다는 모양이다. 동료분이 잡은 사슴이라는 듯하지만, 커다란 사슴을 어깨에 짊어진 쥬시마츠의 모습은 퍽 어울렸다.

쥬시마츠는 자신에 관한 건 쏙 빼놓고, 차남과 삼남의 바텐더 영상을 보내왔다.

셔츠와 조끼차림에 나비넥타이를 한 같은 복장의 두 사람은 완전히 똑 닮은 플레어 바텐더[각주:18]였다.

움직임이 완전히 똑같았는데, 그 꼴을 보던 토도마츠가 기분 나쁘다고 하면서도 메모리에 저장을 했다.

쵸로마츠형한테는 앞치마를 한 카라마츠가 아침을 만드는 동영상이었다.

마츠노가의 맛은 여기서도 인기입니다

그걸 본 오소마츠형이,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인데라며 못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 같이 전화로 몇 분간 통화를 한 후, 혼자 2층으로 올라가 다시 카라마츠에게 전화를 걸어 치비타의 유괴사건 때의 일을 사과했다.

이제 와서 사과냐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도, 녀석은 어째선지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내 입으로 직접 듣는 게 기쁘다며, 그 때 시끄럽게 해서 잠을 깨워버려 미안하다고 했다.

[오늘 마스야마군한테 CD 받았어]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억지로 말을 돌렸다.

그래. 벌써 들었는가?

[. 널 위한 노래만 들어봤어]

? 설마, 초회 한정판이었나?

[. 그리고, 네가 노래한 걸 모아둔 CD도 들어있어서, 그건 다 같이 들었어]

좋았다고 솔직하게 감상을 말하자, 전화 너머에서 당황한 목소리로 원망한다, 류타로라나 뭐라나,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을 테지. 꼴좋다, 나한테 저주를 내린 벌이다.

[고마워, 네가 부탁한 거지? CD, 나한테 보내달라고]

망할 녀석, 뭘 다 까발린 거야

고맙다고 말하자, 대신 불평을 쏟아낸다.

[그래서, 대학, 도전해볼까 해, 내년이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건 수학뿐이지만, 그렇다면 좀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네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어.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말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해봐라. 응원할테니까!

자신과 똑같은, 하지만 어딘가 다른, 기분 좋은 목소리가 몸속에 스며든다.

[. 그럼, 잘자]

아아, 잘자라. 좋은 꿈꾸길

전화를 끊고, 기분이 센치해진 탓인지, 커튼을 열어젖혔다. 관동의 겨울답게 구름 한 점 없는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이따금 반짝이는 걸 바라보며, 격에 맞지 않게 예쁘네-’라고 생각했다.

 

 

 

 

 

* * *

 

 

 

 

 

화면을 가득 채운 건, 뽀얗고 탱탱한 피부. 이제 막 씻고 나온 참인지 옅게 분홍빛이 감돈다.

은은하게 흔들리는 열기와 함께 비누의 청량한 향기도 감도는 듯한 느낌에, 무심코 코를 핸드폰에 갖다댄다.

카메라가 찍고 있는 건, 아름다운 가슴골. 탱탱하게 부푼 두 가슴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찌르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러잉~ 부끄러워-

콧소리 섞인 고음에 장난기가 섞여, 진심으로 싫어하는 건 아닌 듯하다. 그 증거로 우후훗, 하는 귀여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전부 보여주지 않으려나, 밥공기를 엎어놓은 듯한 형태면 좋겠네, 젖꼭지는 무슨 색일까?

선명하게 보이는 쇄골, 그 중간에서 약간 왼쪽편에 자리 잡은 점이 색기가 넘쳐 좋다.

구헤헤-, 좋은 가슴이로군-

촬영하던 남자의 집게손가락이 매혹의 골짜기를 쓰다듬는다. 아아, 부럽다!!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 나랑 바꿔!”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잉. 변태~

가차없이 사타구니를 공격하자, 어리광 부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정에게는 매우 힘든 상황. 슬슬 한계, 세명 모두 코피가 뿜어져 나오기 일보직전이다.

티슈라도 옆에 가져다두려고 손을 뻗자, 갑자기 화면에 비치던 가슴 모양이 낯익은 모습으로 바뀐다.

기다리던 전체샷. 젖꼭지는 예쁜 핑크색에 가슴도 어느 정도 부풀어 있긴 하지만, 밥그릇이라기보다는 접시에 가깝다.

줌아웃한 카메라에 찍힌 튼실한 목과 자신과 똑같이 톡 튀어나온 중앙에, 나는 골짜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고 말았다.

짜잔-!! 카라마츠형이었습니다!! 놀랐어? 놀랐어~?

눈을 뒤집어 깐 채로 양쪽 중지를 콧구멍에 집어넣고선, 메롱-.

순식간에 수준 높은 얼굴개그를 선보인 사람은, 현재 북쪽 땅에 가있는 우리 차남.

아하하! , 엄청난 얼굴이네!

.

탁자에 머리를 처박는 소리가 세 개. 1월의 마지막 수요일 아침 8시경에 울려퍼졌다.

[이게 뭐야아!! 뭐 하는 거야, 이 두명!]

[쥬시마츠니까-. 살짝 예상은 했는데 말이지]

설마 카라마츠가 저렇게 귀엽고 색기 넘치는 목소리를 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고는 말 못해.

대신에 젖꼭지가 핑크빛인 건 알고 있었지만, 쇄골에 점이 있는 건 몰랐다, 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관뒀다.

이 이상 피해를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라고 생각하며 똑같이 공격을 당한 두 사람을 바라보니.

귀까지 시뻘개져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토도마츠는 귀염성이라도 있지만, 동공이 풀린 이치마츠는 좀 무섭다.

아침부터 심야 텐션의 동영상을 보내온 건 차남을 따라간 오남. 본문은 없고 제목만 직접적으로 가슴!

동영상은 여전히 재생되고 있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던 카라마츠는 표정을 풀고선 속았는가?”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었다.

너 말이야, 동정을 놀린 죄는 무겁다고!! 기억해둬라!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거다! 봐라!

우람한 두 팔로 가슴 근육을 바짝 당겨 모으는 카라마츠. 아니, 그 정도는 아니까, 빨리 잠옷이나 입으라고.

[-, 정말 알고 있다구! 네네, 가슴 엄청나시네요! 됐으니까 빨리 옷이나 입어!]

같은 생각을 한 토도마츠가 핸드폰에 대고 불평을 하자, 아직 재생되고 있는 화면을 가득 채운 풍만한 수컷 가슴으로 불쑥, 손이 튀어나온다.

나도, 만지게 해줘

카라마츠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들이민 건 눈이 풀린 쵸로마츠. , 이거 완전 취했구만. 술버릇 나쁘다니까, 우리 삼남은.

휴일 전날이라서 저녁 때 좀 많이 마신 거겠지. 전화기 너머의 세 사람은 평소보다 더 밝고, 뒤에서 다른 사람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상관 없다만, , 으아, 아프다! 쵸로마츠, 좀 더 상냥하게 해주겠나?

우하핫, 쵸로마츠형, 엄청 만지고 있어!

아니아니, 카라마츠군, 아무리 형제라도 가슴을 만지게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만. 상냥하게 하면 더 애매한 광경이 되어버리니까 말이야. 쥬시마츠군도 찍지말고 말리라고, 저 바보 같은 두 형을.

라고 마음속으로 츳코미를 날리고 있으니, 삼남의 힘이 쭉 빠지고 카라마츠 위로 엎어진다.

어라? 쵸로마츠? 쵸로마-?

쵸로마츠형, 잔다!

-, 너무 마셨나. 그러니까 욕조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 쵸로마츠, 적어도 팬티 정도는 입고 자라고?

차남의 가슴을 주무르며 골아떨어진 삼남의 편안한 얼굴과, 오남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동영상은 끝났다.

[, 정마알!! 대체 뭐야, 이 사람들! 우리들한테 어쩌고 싶은 거야?!]

[이건 진심 위험해. 복근 경련 일어날 것 같아!]

[........팬티, 입혔을까?]

[그만둬, 이치마츠형! 상상해버리면 안돼! 내장까지 경련 일어날지도 모른다구! 그보다, 코피나 닦아!]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천연과 술주정의 수습 불가능한 콩트에, 고간과 복근을 동시에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던 중 삼남에게 LINE이 왔다.

아까, 쥬시마츠가 보낸 동영상은 너희들의 머릿속에서 당장 지워버려. 안 그랬다간 내가 직접 원자 수준까지 뽀개버릴테니까

[바보네, 쵸로마츠형. 이렇게 재밌는 걸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오히려, 가보로 삼고 싶을 정도라고~]

엉큼한 얼굴로 말한 토도마츠는 아마 다른 메모리 카드에도 카피해둘 예정인 듯하다.

[팬티 입혀줬는지 물어볼까?]

그렇게 말하자, 토도마츠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곤 바닥을 뒹굴었다. 이치마츠는 코피를 흘리면서 반쯤 죽은 생선마냥 움찔움찔 떨고 있었다.

[그만, 둬어! , 진짜, 무리! 죽을 것 같아!]

붕괴직전의 복근에 결정타를 날리듯 카라마츠에게서 LINE이 왔다.

좋은 아침이다! 쵸로마츠는 제대로 팬티와 잠옷을 입혀서 침대에 재웠으니 걱정 마라!정말, 이 녀석은 이럴 때만큼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니까.

천연 차남의 정직한 메시지에 우리 세명의 복근은 완전히 붕괴됐다.

 

 

[-, 배 아프다. 오늘 체력 벌서 다 써버린 느낌-]

불평을 쏟아낸 토도마츠는 나갈 준비를 하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후 계단을 내려왔을 즈음에는 이미 배는 멀쩡해져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패션 업계에서는 이제 봄을 의식해야 할 시기여서, 쵸로마츠가 두고 간 초록색 쳐스와 치노 팬츠에 자신의 흰 가디건을 걸쳤다.

[그럼, 다녀올게]

코트를 껴입고 신발을 신고 있으니, 뒤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 다녀와. 맛있는 거 사와]

싫거든, 이라고 쏘아붙인 토도마츠는 현관을 나섰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토도마츠는 3번에 1번 정도 간식거리를 사들고 왔다.

[음식점은 카라마츠형한테 이길 수가 없으니까]

그런 이유를 들며 토도마츠는 셀렉트 샵인지 뭔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5, 하루 7시간 일하는 녀석은 더 이상 니트가 아니다. 고작 아르바이트지만 먹고 살기 충분한 풀타임이다.

직원 할인도 있어서, 용돈이 줄고나서 포기했던 옷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매번 자기가 갖고 있는 옷들과, 주로 쵸로마츠가 두고 간 옷들을 잘 조합한 근사한 차림으로 외출을 한다.

그걸 쵸로마츠한테 말했더니, “시끄러 멍청아라고 간만에 욕지거리를 들었다.

돌아왔을 때도 다소 지쳐보이지만, 오늘은 이런이런 손님이 왔었다며 직장 얘기를 할 때만큼은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쉬는 날에도 잡지를 보며 유행을 연구하거나, 컬러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딸 거라며 자격증 공부를 했다. 나랑 마찬가지로 공부라면 질색을 했던 주제에.

[잠깐 나갔다 올게]

이치마츠가 상의를 입으며 느릿느릿 현관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데? 고양이?]

[고양이랑 뭐, 이것저것. 점심 때는 돌아올게]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관을 나서는 이치마츠. 복장은 전혀 바뀌지 않았지만, 세명이 집을 나가고 가장 많이 바뀐 건 사남이다.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는데, 저쪽에서, 정확히는 카라마츠에게서 연락을 받은 이후로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하겠다 선언했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수거하는 거라고. 딱이지 않아?]

생각해 보면, 녀석의 비굴한 발언을 들은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수거차에 올라타는 건 꽤 체력이 필요한 모양이라, 처음 일했을 때는 완전 녹초가 되어서 돌아왔지만 지금은 익숙해진 듯하다.

청결한 샴푸 냄새가 어울리지 않게, 고양이등에 푸석푸석한 머리, 낡은 실내복 차림의 녀석은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집에 돌아온다. 전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말은 없지만, 자주 빨래를 개는 걸 도와주거나 한다.

지금도, 점심때는 돌아오겠다, 그렇게 늦지는 않을 거야, 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카라마츠 말대로 본성은 착한 녀석이다.

 

 

부모님도 자식 5명이 아르바이트라곤 해도 일하기 시작한 걸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다.

이야미가 권하거나, 옆집 아저씨가 부탁할 때는 경마장에 가지만, 파칭코에는 좀처럼 가지 않게 됐다.

대신 그렇게 싫어하던 집안일을 돕게 됐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우리집에도 이를 도입하기로 했단다]

라고 말하면 하는 수밖에 없지. 굶어 죽을지도 모르고.

처음에는 엉망이었다. 세탁기 하나 돌리지도 못하고, 청소기를 돌렸음에도 먼지가 남아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느니 자기가 하는 게 빠를 것임에도, 엄마는 뭐든 내게 부탁했다.

2주간의 훈련 끝에 요리 이외에는 다 합격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발랄하게 웃으며,

[이걸로 너도 이제 니트가 아니네] 라고 말했다.

훗카이도의 녀석들에게서 사진과 동영상을 받기 위해 바꾼 핸드폰으로 모피디아에 들어가 니트 항목을 찾아봤다.

그에 따르면, 니트란 15살부터 34살까지 일도 통학도 가사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가사는 중노동에 속한다고들 하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엄마는 내가 자기만 일하지 않는 걸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준 거겠지.

공교롭게도 내게 그런 고상한 자부심 같은 건 없고, 나만 무직인 것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금은 기분 전환도 되고, 뭐라고 할까....바보 같이 한심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나름의 염원 같은 것이다.

내가 제대로 집을 지키고 있으면, 형제들도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성인인 형제가 각자의 길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하는 곳도 사는 곳도 제각기 달라도 형제인 건 변함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직 몸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그럼 다녀올게. 오늘은 상점가가 세일하는 날이니까 가서 적당히 장 좀 봐줘]

[. 빨래하고 갔다 올게]

오늘 저녁밥과 내일 아침밥의 재료를 살 돈을 내게 건네준 엄마는 일하러 나갔다.

한 번 일어나면 할 일을 끝내기 전까지 앉지 않는다. 그게 내 나름의 집안일 철칙이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청소기를 단숨에 돌린다.

2층의 우리들 방과 부모님 방, 부엌, 거실, 평소에 자주 쓰는 방은 매일, 그렇지 않은 방은 3일에 한 번 청소한다. 복도와 계단은 코드가 닿질 않아서 꽤 번거롭다.

그걸 최근에 깨닫고 난 후부터, 가전제품점 광고지의 선 없는 청소기가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다음에 경마로 돈을 따면 살까 생각했지만,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는 모양이라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빨래가 다 됐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 멜로디는 대체 무슨 곡일까.

청소를 일단락 짓고, 이번에는 빨래를 바구니에 담아 2층으로 올라갔다.

옛날에는 마당이 좀 더 넓어서 거기에 건조대를 설치해두고 빨래를 널었었지만, 옆에 빌딩이 세워지면서 팔아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옥상에 빨래를 널고 있다.

수건은 제대로 팡팡 털어서 널고, 셔츠는 옷걸이에 걸어서, 바지는 주머니가 마르도록 뒤집어서, 양말은 같은 것들 끼리 나란히, 마츠요의 속옷은 안쪽으로 숨겨서.

이불까지 전부 널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겸사겸사 화장실 청소까지 한다.

바닥과 벽이 번쩍거릴 정도로 말끔히 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깔끔해진 집에 만족한 나는 장을 보러 현관을 나섰다.

상점가는 가게 사람들도 손님들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다들 짓궂게 장난을 걸었다.

무슨 마츠냐는 질문에 오소마츠라고 답하니, 믿을 수 없다며 웃었다. 정말 다들 너무 실례라고-.

뭐어, 이쪽도 뭘 사야 될지 몰랐으니까, 덕분에 야채 사는 법 같은 걸 세세하게 알게 되어 좋았지만.

[여어, 오소마츠 어서와! 이 상자에 든 건 전부 한 개에 100엔이라고!]

그렇게 말을 건 야채가게 아저씨한테 배추와 무, 시금치를 샀다.

건너편의 정육점에 가니 닭날개가 100g 58엔이라서 그걸 15개 사고, 두부 가게에서 유부와 연두부를 2,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토토코짱 가게에 들러서 자반연어 5조각을 샀다.

에코백을 어깨에 둘러메는 것도 제법 어울리게 됐구나.

 

 

집에 돌아가니 아직 이치마츠는 안 온 듯했다.

재료들을 냉장고에 넣고 나니, 이제 할 일도 없어져 2층으로 올라갔다.

소파에 드러누워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치비타의 외상값을 내려고 모아뒀던 돈을 써서 바꾼 핸드폰은 훗카이도의 3명과 같은 기종으로, 빨간색 케이스를 끼웠다.

여태까지 받았던 사진을 모아둔 폴더를 열어 착착 넘기며 감상했다.

세명 모두 다른 두 사람의 웃는 얼굴을 찍어 보내서, 이 폴더에는 행복한 얼굴이 넘쳐흘렀다.

쥬시마츠는 입을 활짝 벌리고 있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즐거워서 웃는 듯한 느낌.

바깥에서 막노동도 하는 것 같고, 벨보이였던가? 접객도 할 수 있게 됐다고, 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남이.

쵸로마츠도 이렇게 귀엽게 웃을 수 있게 됐고. 여기서는 화내는 얼굴이나 어이없다는 표정밖에 안 했었는데.

결벽이 의외로 도움이 된다면서 기쁜 듯이 말했는데, 지금은 프론트에서도 일하는 모양이다. 입이 험하던 그 녀석이.

레이카의 라이브 때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그곳에서의 생활이 제법 마음에 든 거겠지.

삼남은, 자타가 인정하는 오타쿠인 만큼, 좋아하는 대상에겐 맹목적으로 빠져드니까.

둘 다 성장했구나. 기뻐해야 할 일인데 어째선지 심장이 욱신거린다.

털어 넘기기 위해 담배를 피려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카라마츠가 두고 간 쓸데없이 무거운 지포라이터는 그대로 내가 가지게 되었다. 녀석이 마음에 들어하던 브랜드도 내가 이어받게 되었다.

[, 라이터 두고 갔떠라. 형아가 가질게-]

전화로 반쯤 농담으로 말했더니, 녀석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기름이 다 떨어졌으니까 이번 기회에 끊으려고 두고 왔다. 팔아도 상관없다만, 마음에 들어하던 거니까 오소마츠가 써주면 오히려 기쁘지

그렇게 내가 쓰게 되었다. 판다면 그럭저럭 값이 나가겠지만, 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니코틴 중독자인 나와는 달리 녀석은 가끔 피는 정도였으니까, 금연은 성공적이라는 모양이다.

훌륭하네, 라고 생각하는 반면 한편으로는 나와 공통점이 사라져 버려 조금 쓸쓸한 느낌도 든다.

창가에 앉아 찬 공기를 향해 연기를 내뿜는다. 카라마츠의 흉내를 내보면 조금은 녀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서 때때로 이렇게 폼을 잡아보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조금 알게 된 것도 있다. 녀석이 정적과 고독을 운운했을 때는 아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던다.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지만, 대신 뭔가를 숨기는 건 잘하니까.

그 어지러이 꾸며낸 말들 속에 녀석의 본심이 숨어있었다면, 좀 더 제대로 들어줄 걸 그랬다.

그걸 본인에게 말했더니, 과대평가라며 웃었다. 연기는 했지만 대사를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고, 꽤 적당히 내뱉었던 거라고 했다.

언제였더라, 다 같이 마시러 갔을 때 드물게 술에 취한 카라마츠가 상당히 들뜬 기분으로 평생 이 집에서 나가지 않을 거라고 했었는데, 아마 그것도 본심일 거다.

그런데 솔선해서 집을 나가 버렸다. 그 모순도, 지금은 대강 알 것도 같다.

녀석은 집밖에서 강고한 위치를 가졌다. 극단의 사람들도 그렇고, 어제 CD를 보낸 마스야마군이나, 다른 아르바이트 동료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시야가 넓어진 거겠지, 카라마츠는.

여섯 쌍둥이라는 울타리밖에 모르는 나와는 다르다.

그러니 이런 좁은 세계를 뛰쳐나가고 싶은 건 당연하다. 우리들이 너를 대하는 취급은 너무 지독했고, 너는 어디서든, 뭐든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재능을 가졌으니까.

한 발 먼저 바깥 세상에 나간 카라마츠가 이번에는 동생들의 손을 잡고 안내해주고 있는 거다.

이치마츠를 보고 있으면,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카라마츠에게 대들었던 주제에, 카라마츠의 말 한마디로 반 히키코모리 니트에서 벗어나고, 표정까지 밝아지다니 얼마나 영향을 받은 거야, 대체.

그 때,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던 쵸로마츠와 쥬시마츠는 물론이고, 원래 밖으로 나돌던 토도마츠는 더욱 눈에 불을 켜고 카라마츠를 쫓았다.

나만이 아직 그 손을 잡지 못했다.

알고 있다. 단순히 내가 겁쟁이일뿐이고, 내가 멋대로 경계하고 있다는 걸.

 

 

반쯤 피우지도 못하고 재가 되어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자, 집앞 길목에서 이치마츠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새우등으로 느릿느릿 현관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일정한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어서와, 이치마츠]

여섯 쌍둥이 방의 문이 열리자마자 말을 걸자, 이치마츠는 살짝 놀란 표정을 한다.

[.....다녀왔어...놀래키지 말라고]

[여기서 네가 집에 오는 게 보이길래]

[그래. 안 추워? 창문, 닫지 그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얼굴이 차가워졌음을 깨달았다. 이런-, 아까까진 낮이었는데 벌써 해가 졌잖아.

[이거, 하타보한테 받았어]

축 늘어진 비닐봉투 속에는 커다란 햄버거 두 개가 들어있다. 아직 따뜻한 게 열기가 피어오르고, 고기 냄새에 배가 그르렁 울린다.

[-, 맛있겠다]

이걸로 밥을 때우려고 둘이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물을 끓이고 이치마츠가 인스턴트 스프를 만드는 옆에서 커피를 탔다.

군침 도는 냄새와 외형만큼이나 맛있는 햄버거였다.

양상추가 아삭아삭하고, 고기는 포동포동하고 씹으면 육즙이 쫙 퍼졌다.

맛있네, 라고 했더니 이치마츠도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은 햄버거. 하타보가 줬다는데, 가게라도 연 건가?

형제 그룹 LINE에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하나둘씩 답했다.

분하지만, 점심은 버거로 해야겠어라고 보내온 건 토도마츠. 훗카이도조는 이쪽은 바다의 은총이다라며 해산물 덮밥과 오징어 구이의 사진으로 반격을 가해왔다.

맛은 있었는데,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겠어

마지막은 눈앞의 사남이 보낸 메시지. , 잠깐만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잖아.

어이, 설마 호러 전개!?

쵸로마츠의 츳코미에 이치마츠가 히힛, 하고 수상한 웃음을 짓는다. 깊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도 일단 따라 웃었다.

[왜 그래, 이치마츠으~. 우리들 죽을지도 모르는 거?]

[죽지는 않겠지. 불로 구웠고. 괴물은 될지도]

이미 벌어진 일인 거 상관없지 않겠냐고 이치마츠가 말했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해 이번에는 진심으로 웃었다.

움직이기 싫어지기 전에, 설거지를 해두고 다시 커피를 탔다.

[왜 하타보한테 간 거야?]

답변 대신에 이치마츠는 작은 검정색 조각 세 개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곤 하나를 내 앞에 두었다.

잘 보니, 마이크로 SD카드라고 적혀있다.

[어제 CD, 카라마츠가 불러준 거 말이야. 그거 넣어뒀으니까, 필요하면 줄게]

마스야마군이 보내준 그거 말이지. 그건, 마지막 곡을 이치마츠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다른 14곡을 추가로 녹음한 거겠지.

다른 형제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여우상에 빼빼 마른 몸.

그 남자는 3년간 쭉 카라마츠와 같은 반으로, 카라마츠의 앞자리에 앉았다. 나는 한번도 카라마츠와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고, 심지어 옆반도 아니었는데.

결국 졸업하고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고 말이야. 나는 기계를 통해서만 카라마츠의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라니, 바보 같네.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 했을 때 매번 무시했었는데 이제 와서 직접 듣고 싶다니.

어제, CD를 받은 이치마츠를 부럽다고 생각한 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이치마츠는 서투른 움직임으로 자신의 핸드폰에 메모리 카드를 집어넣고는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후드 주머니에서 핸드폰 패키지에 들어있던 이어폰을 꺼내 신중하게 핸드폰에 꽂는다.

어떤 앱을 켜고 재생버튼을 누를 때까지는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잘 들리는지 등뒤로 꽃이 보일 정도로 행복한 얼굴을 한다.

그런 이치마츠를 보며 필요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부러워했었고, 솔직하게 받아두기로 했다.

눈을 감고 잠시 감상한 이치마츠는 핸드폰을 끄고 이어폰을 뺐다.

[저기, 내년부터 대학에 도전해볼까 해]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미를 이해하고는 다시금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 진짜 이치마츠? 우리 사남은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애써 밝게 말하자 이치마츠는 푸핫, 하고 작게 웃었다.

[역시 똑같은 반응이네. 토도마츠도 똑같은 반응이었어. 아르바이트 한다고 했을 때]

[그야 그렇겠지. 뭐야뭐야, 왜 그래? 갑자기 할 마음이 들다니. 형아 너무 놀랐는데]

[미안]

드물게 명확한 목소리로 답하는 이치마츠. 반쯤 감겨 있던 눈도 제대로 뜨고 진지한 표정의 이치마츠에, 나는 녀석이 진심이라는 것과, 내 심장의 통증을 알아버렸음을 깨달았다.

저주에라도 걸린 걸까, 라며 웃는 이치마츠는 비굴해지기 전의 성실한 사남으로 돌아와 있었다.

[1년 해보고 안 되겠으면, 그걸로 됐어. 한번 해보려고]

녀석이라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겠지. 가족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원래 성실하고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으니까.

[좋네. 한번 해봐]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얼굴이 굳어지지 않도록, 애써 씨익 웃어 보이는 내게 이치마츠는 온화한 얼굴로 고맙다고 말했다.

[, 만약에 붙더라도 자취는 안 할 생각이니까. 당분간 잘 부탁해, 오소마츠형]

자기 말만 한 채 이치마츠는 핸드폰과 이어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빠른 걸음으로 2층에 올라갔다.

그만두라고, 정말. 이치마츠까지 날 울리려고 하고 말이야.

아아, 젠장. 이렇게 된 것도 전부 카라마츠 때문이야, 라며 멋대로 책임을 떠넘기며 메모리 카드를 핸드폰에 꽂아넣고 일부러 소리를 크게 틀어 2층으로 향했다.

서로 부끄러운 짓이란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잖아. 옷이 여기에 있는 걸.

[잠깐 나갔다 올게!]

지갑과 겉옷을 챙겨들고, 계단을 내려가자 빨간색 목도리가 머리위에 내려앉는다.

위를 보니, 문에서 이치마츠가 새빨개진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젠장, 대체 뭐냐고. 갑자기 솔직해지고 말이야.

 

 

역 하나 앞에 있는 커다란 전자제품 상가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1.5km, 고등학생 때는 여유였었는데, 지금은 숨을 헉헉거리며 갈 정도다. 얼마나 체력이 떨어진 거야.

1분간 쉬며 숨을 고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안내를 보며 살짝 돌아보고서야 겨우 멈춰선 곳은 이어폰 코너.

스마트폰에 추천!”이란 메시지가 한 귀퉁이에 적혀있다. 예쁘네, 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이어폰을 집어들었다. 카라마츠의 후드에 잘 어울리는 색.

아아, 정말! 무슨 짓이야, 나는. 얼마나 녀석을 의식하는 거냐고.

내팽개치고 싶은 걸 꾹 참고, 재빨리 옆에 있던 빨간색 이어폰으로 바꿔 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분명 얼굴 새빨갛겠지.

다시 무작정 걸었더니, 마침 강변에 치비타가 포장마차를 끌고 나오는 게 보였다.

여전히 작네. 우리들이 어렸을 때보다 더 작아진 것 같아, 아마. 하지만, 치비타는 확실히 나보다 넓은 세상에 산다.

그렇게 생각한 탓일까, 작은 몸이 갑자기 커져 보인다.

[여어, 치비타]

[오소마츠, 아직 개점 전이라고]

[괜찮아. 잠깐 앉아있다 가게 해달라고. 피곤해-]

[방해하면 내쫓는다]

[안 할게~ 의자만 빌려줘]

마음대로 하라면서 치비타는 의자를 한 개 꺼내주고는 개점준비를 했다.

이 녀석도 열심이네, 나이는 우리랑 비슷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며 척척 움직이는 점주를 바라봤다.

[, 마침 잘 됐다. 오소마츠, 이걸 저 위 모퉁이에 달아주지 않겠나? 나는 손이 안 닿거든]

건네받은 건, 두께가 좀 되는 작은 액자. 안에는 꽃으로 동그라미가 세겹, 네겹, , 오뎅인가. 말린꽃으로 만들면 이렇게 입체적이고 선명하구나.

[너한테 꽃이라니! 안 어울린다고?]

[시꺼, 불평할 거면 너희 차남한테나 하라고, 임마]

[? 이거, 카라마츠가?]

닥치고 빨리 달기나 하라며 재촉하는 치비타에, 그의 말대로 액자를 색지 옆에 걸었다.

카라마츠에게 있어서 치비타는 꽃을 보낼 정도의 상대구나. 사이가 좋은 건 알았지만, 역시 분하다.

이 녀석, 카라마츠가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일하고 있는 것도, 이번의 시즌 아르바이트 건도 전부 당연하단 듯이 알고 있었다.

[올해는 이 포장마차도 5주년이거든. 카라마츠는 기억하고 있었던 거지. 정말이지, 감동시키지 말라고, 젠장]

같이 동봉된 편지에 의하면, 이 꽃은 프리저브드 플라워[각주:19], 시들지 않도록 특별히 가공한 거라고 했다.

[이 노란 게, “항상 전지”, 여기 꽃잎이 커다란 건 성공이란 의미고, 하얀 건 희망이라고 하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가 있다는 모양이다]

[꽃말이라는 거겠지. 이 녀석, 그런 거 좋아하니까]

2 캐릭터로 자신을 숨기고 있었지만, 카라마츠는 로맨틱한 말을 좋아해서, 순정만화를 보며 울고, 희곡 같은 사랑을 동경한다.

[그보다, 5년이나 오뎅가게 한 거야?]

[그렇다고. 중학교 졸업하고 스승 밑에서 1년간 배운 뒤에야 이 포장마차와 노점권리를 갖게 되었으니까]

이래봬도, 꽤 번성했다고. 개점 준비를 멈추지 않으며 치비타가 계속 말했다.

[처음에는, 그야, 잔품(팔다 남은 것)도 많았다고? 개점을 해도,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을 때도 많아서, 내가 속을 태우고 있을 때, 카라마츠가 왔어. 부원들과 함께 여기에 나란히 앉아서, 저녁 먹기 전에 배를 좀 채우고 돌아갈 거라면서 말이야. 큰 돈벌이는 되지 않았지만, 역시 기쁜 게 당연하잖냐. 손님이 내가 만든 걸 먹어준다는 건]

[뭐야 그게-, 나 처음 듣는데에-]

불평을 늘어놓자, 치비타는 일부러 말할 일도 아니잖냐, 라며 가볍게 넘겼다. 그런 녀석이었지, 너는.

[최근에 자주 생각하는 건데, 카라마츠, 너무 멋있지 않아? , 더는 못 따라가~]

제법 진심으로 말한 건데, 치비타는 하아? 라며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오소마츠, , 머리 괜찮냐?]

[안 미쳤거든- 정상이거든-]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걸. 그 녀석, 진짜 너무 멋있단 말이야. 나 같은 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야, 카라마츠는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멋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서투른 점도 많고, 울보에 천연이잖냐]

[무슨 소리야, 치비타]

녀석은 전혀 서툴지 않다고? 오히려 재주가 넘치지. 뭐든 다 해내잖아. 우는 거야, 이치마츠한테 멱살을 잡혀서 울먹거리는 경우는 있어도 진심으로 운 적은 거의 없다고, 고등학교 이후로는 거의 못 봤고.

대강 준비를 끝낸 건지, 치비타는 노렌(상점 출입구에 걸어두는 천)을 걸고, 남은 의자들을 전부 내놓았다. 그리곤 엽차가 든 컵을 양손에 들고 내 옆에 앉았다.

무언으로 건넨 찻잔을 받아들었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손을 잠시 덥히고 한모금 마셨다.

[그 녀석, 여기서 자주 너희들 불평을 했었다고. 이치마츠한테 맞았다든가, 네가 돈을 훔쳐갔다든가]

[바보 아냐, 그런 건 직접 말하면 될 텐데]

[나도 그렇게 말했다고. 나한테 말해도 소용없다고, 바로 돌아가서 직접 말하라고. 그래도 녀석은 고개를 저으면서, 미움 받고 싶지 않다, 같이 있고 싶으니까, 라는 말로 거절하더라]

[? 겨우 그런 걸로 싫어하진 않는다고?]

[그렇네. 하지만, 녀석은 그렇게 생각한 거겠지. 그렇지 않아도, 연극이나 이런저런 걸 숨기려고 거짓말을 했었으니까 라면서 마지막에는 울더라고. 서투른 것에도 정도가 있지, 녀석은 얼마나 폰코츠인 건지..]

속내를 털어놓는 치비타의 얼굴에는 걱정이란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나 그렇게 못 미더워?]

[당연하지. 널 믿어서 무슨 득이 되겠냐]

딱 잘라 말한 치비타는, 웃으며 반쯤 농담이라 덧붙였다.

[너희들을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너무 가까운 거겠지. 녀석은, 너희 형제들을 엄청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거리를 둬야할지 모르는 거 아냐?]

우리들한테 미움 받고 싶지 않으니까, 불합리한 취급을 참는다. 괴로워도 슬퍼도, 약한 면은 전부 숨긴 채. 그렇게 무리를 해버리면, 언젠가 깨져버리는 건 당연한 일일 테지.

[인내심의 한계가 와서, 그래서 집을 나가버린 걸까나]

[-, 이번 아르바이트는 말이지, 내가 하라고 떠밀어준 걸지도 몰라]

미안하다며 고개를 푹 숙이는 치비타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 묻자, 화내지 말라며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내가 이상한 짓을 했었잖냐, 저번에. 그 뒤에 녀석이 찾아왔거든.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기에 돌아가서 자라고 했더니, 잠시 자기 얘길 들어달라고 하더라고]

우리들이 농담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유괴사건을 말하는 거겠지. 역시, 그게 원인인가.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그 녀석, “나는 이제 그 집에 못 있을 것 같다라고 하더라. 나는 바보 같은 말 말라고, 빨리 돌아가서 쉬라고 다그쳤는데, 녀석은 형제한테 미움 받았다는 말만 되풀이하더라고]

미움 받았다고 착각해도 어쩔 수 없겠지. 우리들 전부 녀석에게 상처를 줬으니까.

[그래서, 나도 점점 속이 부글부글거리고, 상처도 걱정되고 해서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했거든. 훗카이도의 아르바이트 얘기는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 상처로 스턴트맨 같은 건 무리일 테니까. 그랬더니 그 녀석, 뭔가 납득한 얼굴을 하고는 돌아가더라고]

[.........그래]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일을 당해도 참고서 우리들과 함께 있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우리들을 떠나기로 한 건가.

[어이, 오소마츠 화내지 말라니까]

[화내는 거 아냐]

자신의 한심함에 화가 났을 뿐이다. 연기에 속아 녀석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녀석이 아픔을 끌어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도, 어쩔 수 없다.

[슬슬 돌아갈게. , 고마워]

더 앉아있다간 홧김에 술을 마실 것 같다. 가서 저녁 준비도 도와야 하고.

치비타도 그걸 아는 거겠지. 게다가 방해 받기 싫은 것도 있어서인지, 만류하지 않았다.

[오뎅, 가지고 가. 슬슬 다 되어 가니까]

[됐어. 닭날개랑 무 넣고 졸여 먹을 예정인데 메뉴 겹치잖아]

일단 거절하긴 했지만, 치비타는 아침에 먹으라며 결국 봉투에 담아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이치마츠와 빨래를 다 정리하고 나니, 엄마가 돌아왔다.

내가 사온 것을 확인한 엄마가 정한 오늘 저녁밥은 역시 무와 닭날개 조림.

마츠요가 무를 돌려가며 껍질을 벗기고, 나는 칼집을 넣었다.

요리에 관해선 아직 어린애가 도와주는 수준. 그래도 나물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배추를 썰어 된장국에 넣을 차례. 줄기를 기준으로 세로로 잘랐다.

[!]

멍하니 있었던 탓에 고양이 손(칼질할 때 계란을 약하게 쥔 듯한 손모양을 말합니다)을 하는 걸 잊어버려 손가락을 살짝 베였다.

[그렇게 깊진 않네. 제대로 소독하고 반창고를 바르렴. 나머지는 엄마가 할테니까]

엄마는 재빨리 내 상처를 확인하고, 환하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들을 안심시켜주던 미소.

[미안]

[걱정하지 않아도 네 몫도 제대로 준비할 거니까]

오소마츠가 솔직하게 굴다니, 오히려 걱정인 걸이라며 마츠요는 작게 웃으며 나를 부엌에서 내쫓았다.

상처는 정말 별거 아니었다. 칼이 살짝 스쳤을 뿐이라, 이젠 아프지도 않았다.

소독약을 뿌리고, 반창고를 붙였다. 작은 반창고 겉으로 배어나오는 자신의 피를 보며, 갑자기 나는 녀석들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당연한 건데 내가 계속 무시했던 내가 너희고, 너희가 나가 아니라, “나는 나, 너희는 너희라는 사실.

이 상처는 나만의 것, 녀석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녀석들의 상처도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우리 6명은 하나의 수정란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지만 죽을 때는 함께가 아니다.

차차 받아들여져 가는 사실. 몸이 찢겨져 나갈 것 같고, 가슴이 욱신거린다.

[오소마츠형?]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이치마츠가 놀란 얼굴로 서있다.

[다친 거야? 그보다, 왜 울고 있어?]

눈앞에 웅크리고 앉은 이치마츠는 먼저 내 손가락을 살피더니 별거 아니라 판단한 듯, 이번에는 티슈를 뽑아 내 얼굴에 갖다댔다.

[이치마츠으, 나 말이야, 엄청난 걸 알아버렸어]

[, 뭔데?]

[나와 너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나와 토도마츠도, 쥬시마츠도, 쵸로마츠도, 카라마츠도, 전부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아무리 눈물을 닦아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치마츠는 내 얼굴을 제 가슴에 파묻었다.

[......., 그렇네. 그러니까, 이렇게 만질 수 있는 거잖아]

이치마츠의 후드는 어쩐지 짐승냄새가 났다. 이 녀석, 얼마나 고양이랑 뒹굴다 온 거야.

[다른 사람이니까, 네 형제일 수 있는 거야. 토도마츠도 쥬시마츠도, 나도 쵸로마츠도, 카라마츠도]

내 머리를 쓰다듬던 이치마츠의 손길이 기분 좋아서, 길고양이가 왜 그를 따르는지 납득이 갔다.

 

 

 

 

 

 

* * *

 

 

 

 

[.....하아아]

[쵸로마츠, 그렇게 풀 죽어있지 마라]

[미안, 쵸로마츠형, 내 비엔나 줄 테니까, 기운 내?]

1월 마지막 수요일, 아침 830.

오늘은 아르바이트 쉬는 날로, 셋이서 스노보드를 타러 가는 걸 기대했었는데, 말끔히 갠 하늘과는 반대로 내 마음은 먹구름이 잔뜩 드리웠다.

쥬시마츠가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잘못한 건 나, , 알고 있다.

오너를 필두로, 토미오씨도 라이야씨도 술꾼으로, 일이 끝나면 다 같이 한 잔 하는 게 이곳의 일상.

우리들은 그렇게 술이 세지 않으니까, 평소에는 정말 딱 한 잔만 마셨다. 카라마츠는 살짝 더 마시긴 하지만.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다음날이 휴가라서 그런지, 욕망에 져버려 한계까지 마시고 말았다.

거하게 취해선 목욕하러 들어가려는 내게, 카라마츠가 술 먹고 탕에 들어가면 안 좋다라고 했지만 끝끝내 괜찮다며 들어가 버렸다. 제대로 온천을 만끽하며 이런저런 주정을 부리던 나는 그의 말대로 갑자기 술기운이 돌았고,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괴롭다. 숙취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탕에서 나온 뒤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어쩐지 두려움이 몰려와 두 사람에게 어제 폐를 끼치지는 않았냐고 물었더니, 쥬시마츠가 웃으며 말했다.

[쵸로마츠형 카라마츠형의 가슴 주무르면서 잠들었어!]

당연히 믿을 수 없어서 어떻게 된 일이냐며 따져 물었지만, 증거 영상을 본 나는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큰일이다. 너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무덤까지 끌고갈 리스트 중 하나인, 카라마츠의 가슴에 안겨서 자는 사진이 쥬시마츠에 의해 친가에 뿌려졌는데, 이것마저 뿌려질 수는 없다. 이 동영상은 꼭 봉인해둬야 한다. 내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거 재밌어서 모두한테 보내줬어!]

[우아아아아! 쥬우시마츠으!!!]

간만에 전력으로 소리를 지른 나 때문에 타이가씨가 셔츠를 제대로 입지도 못한 채 옆방에서 뛰쳐나와, 카라마츠가 아무 일도 아니라며 사과했다.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옷을 갈아입히고 헝클어진 머리도 정리해주었다.

열심히 일해서 영상에 관한 걸 잊자고 생각하며, 협박문자를 하나 본가의 세명에게 넣어두고, 두 사람에게 이끌려 휴게실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쵸로마츠 숙취?]

오늘 아침은 라이야씨가 만들었다. 아일랜드 풍의 아침으로, 소시지와 스크램블 에그, 소다 브레드와 야채 스프에 요구르트도 있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스프를 한 입 떠먹자, 따스함과 야채의 풍미에 살짝 기분이 풀렸다.

[, 쵸로마츠, 이제 괜찮은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내민 건, 프론트부터 주방일까지 뭐든 능숙하게 해내는 타이가 선배였다. 오늘은 카라마츠의 대리로 토미오씨를 돕는다는 모양이다.

[아까는 소리를 질러서 죄송했습니다]

스크램블 에그를 삼키고 사과를 하자, 양옆의 형제들이 쿡쿡 웃어댔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 진짜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거야?]

[?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바퀴벌레라도 나왔어?]

[아니에요. 제 실수가 본가의 형제들에게 들킨 것뿐...]

다시 정색을 하며 쥬시마츠가 찍은 영상을 보여줬더니, 타이가씨와 라이야씨가 폭소했다.

[하하하핫! 이야-, 이거 엄청 재밌잖아! 우와-, 직접 보고 싶었는데-! 돌아가는 게 아니었어!]

-, 눈물 난다라며 카운터에 머리를 푹 처박고 웃는 라이야씨의 머리를 타이가씨가 라이형 너무 웃잖아라며 살짝 쥐어박았다.

[술에 취해서 그런 거니까, 괜찮지 않아? 나도 술 때문에 이런저런 추태를 보인 적 있었고, 삼촌이랑 라이형도 만만찮으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말라고]

내 머리를 막 쓰다듬으며, 쥬시마츠와 카라마츠의 머리까지 쓰다듬은 타이가씨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래그래, 좋은 얘깃거리잖냐]

눈물을 닦으며 몸을 일으킨 라이야씨가, 탁탁 카운터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뭐어, 나님의 breakfast를 먹으면, 전부 괜찮아질 거라고]

이런 말을 스스로 해도 그럴듯하니까, 혼혈인 이케멘은 이득이구나, 라고 생각해 무심코 웃어버렸다.

[그렇네요. 스프, 맛있어요]

[나는 이 달걀 좋아! 푹신푹신!]

[나는 이 빵이 좋군]

[그렇지-? 그랜마한테 전수받은 거니까 말이야]

의기양양한 얼굴로 가슴을 탁탁 치며, 윙크를 날린다. 그 동작을 보던 카라마츠가, 오오, 라며 눈을 반짝인다.

, , 이런 거 좋아했지. 하지만, 순수 일본인인 네가 하면 그냥 안쓰러울 뿐이니까 말이야.

자신을 연기하기를 그만둔 카라마츠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라이야씨를 동경하는 것 같다.

라이야씨도 카라마츠가 웨이터를 하게 됐을 때부터 우리 차남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슬쩍슬쩍 관심을 내비쳤다.

지금도 커피를 마시며 소시지를 행복한 표정으로 먹는 카라마츠를,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보고 있고.

뭐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카라마츠의 저 표정은 정말 귀엽고, 힐링되니까.

 

 

맛있는 밥과 형제의 미소로 축 쳐져있던 기분도 회복되다니, 나도 단순하지.

신문을 보는 라이야씨에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감사인사를 전하자, 손을 가볍게 흔들어 답한다.

[쵸로마츠형, 기운 났어? 이제 타러 갈까?]

[, 덕분에. 잔뜩 타고 오자]

계단을 재빨리 뛰쳐내려가는 쥬시마츠의 뒤를, 나와 카라마츠가 뒤쫓았다.

지갑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펜션에 남아있던 스키복과 마찬가지로 빌린 신발을 신었다.

오너와 토미오씨, 라이야씨에게 빌린 보드를 짊어지고 뒷문을 통해 밖을 나서자, 벤씨가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재밌게 놀다 오라고-!]

셋이서 손을 흔들어 답하고, 걸어서 불과 10분 만에 초심자부터 상급자까지 즐길 수 있는 스키장에 도착했다.

리프트 매표소에, 카라마츠가 당구 내기로 얻은 할인권을 살짝 잘난 체하듯이 꺼내보이자, 이제는 얼굴을 익혀버린 아주머니까 아하하 웃었다.

[, 여기]

감사합니다, 하고 세명 동시에 말하는 것도 이젠 익숙한 풍경이다.

부모님이 스키에 푹 빠졌던지라 어릴 때부터 스키장에는 매년 데려가주었다. 하지만 스노 보드는 타본 적이 없으니, 모처럼이니까 도전해보자고 말을 꺼낸 건 나였다.

막상 오긴 왔지만, 초심자 셋이서 어쩌지도 못하고 서있자, 현지의 남학생 세명이 가르쳐주었다.

같은 얼굴 세명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웃겨서 말을 건 것 같았다.

동물적인 운동감각을 가진 쥬시마츠는 순식간에 보드를 익혔고, 재주가 많은 카라마츠도 금방 그럭저럭 탈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두 사람에 비하면 더디지만, 지금은 나도 양껏 재주를 부리며 탈 수 있게 되었다.

스피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턴을 하거나, 흐름에 맡겨 에어[각주:20]를 넣는 게 좋다.

평범하게 타는 걸로는 부족해진 쥬시마츠와 카라마츠는 하프파이프와 키커[각주:21]에 열중이다.

준비운동 삼아 셋이서 짧은 코스를 타고, 하프파이프로 이동.

[그럼 다녀올게!]

[제대로 보고 있을 테니까!]

[턱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줄서러 간 쥬시마츠에게 카라마츠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고, 나는 타이가씨한테 빌린 비디오 카메라를 작동시켜, 오늘 본가에 보낼 영상을 찍었다.

[쵸로마츠, 다음이다. 비디오 준비했나?]

[날 뭐로 보고, 준비만만이라고]

저 높은 곳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는지, 노란 헬멧을 쓴 쥬시마츠가 두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노 보드 어쩌고 게임, 하프파이프! 해설은 저 마츠노 쵸로마츠와 본고장인 미국에서 넘어오신 미스터 파인필드씨입니다!]

갑자기 발랄하게 말하는 날 보며, 카라마츠는 눈을 깜빡거리더니 히죽거리며 웃었다.

[Hello, everyone! I'm Pinefield. Now, I can't wait to see Jyushimatsu Matsuno's performance!]

텐션을 높여 유창하게 영어를 말하는 카라마츠는, 완전히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미국인 스노보드 해설자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 시즌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인데요! 자아, 슬슬 쥬시마츠 선수의 등장입니다!]

[First, backside one-eighty. So beautiful!]

[처음은, 백사이드 180,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Next is frondside three, and high air!]

[다음은 프론트 사이드 360. 그리고 에어! 오오, 꽤 높은데요!]

[Switch-stance, and wow! cab ten-eighty! Excellent! Oh my goodness! What a huge jump!]

[자세를 바꿔, 커브 1080! 굉장하네요! 다이나믹하게 마무리!!]

아주 간단히 기술을 선보인 쥬시마츠가 아래로 스르륵 내려온 것을 신호로, 나는 촬영을 중지했다. 열렬히 해설하던 미스터 파인필드는 환상 속 너머로 돌아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카라마츠와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엄청 기분 좋았어!!]

구경꾼들의 박수를 받으며 돌아온 쥬시마츠가 뛰어드는 걸 둘이서 받아냈다.

다음은 카라마츠의 키커, 꽤 상급자용으로, 높이는 5, 6m 정도다. 그런데 녀석은 처음부터 태연하게 타서, 오히려 가르쳐준 대학생들이 놀랐다.

[카라마츠형!!]

차례가 돌아오고, 대 위에 선 카라마츠에게 쥬시마츠가 양손을 흔들었다. 그쪽도 보고 있었는지, 이쪽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망설임 없이 슥, 하고 어프로치[각주:22]를 내려가, 가속을 해서 립에 도달. 그대로 카라마츠의 몸이 공중에 높이 날아오른다.

[우하-!! 높아아-!]

몇 번이나 도는 걸까. 빙글빙글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그대로 하늘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들 정도로 오랫동안 공중에 맴돌던 카라마츠는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카라마츠형 엄청나아-!! 엄청 멋져어어!!]

와와- 떠들어대는 쥬시마츠 옆에서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위험해, 엄청나다고, 내 형제 너무 멋져서 심장이 파열될 것 같아!!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보드를 탄 우리들은 펜션으로 돌아가 목욕으로 피로를 풀었다. 이 무슨 사치스러운 시간인가.

저녁은 사슴고기 전골로, 이것 또한 엄청 맛있었다.

쥬시마츠들이 어제 잡아온 커다란 사슴은 전문업자에게 부탁해 해체했다.

그래서 오늘 레스토랑의 메인 요리는 붉은 와인으로 졸인 사슴고기로, 손님들에게 호평이었다.

폐점 후 정리를 돕고, 내일은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고, 평일에는 투숙객들도 그리 많지 않으니, 오늘은 느긋하게 마시자, 라며 다들 휴게실에 모였다.

[, 쵸로짱이랑 카라짱의 그거, 또 보고 싶어]

[나도, 보고 싶은데]

여성 두 명이 졸라대는 탓에, 나와 카라마츠는 제대로 제복을 갖춰 입고 카운터 안에 섰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당연하게도 셰이커를 흘드는 카라마츠에 흠뻑 빠졌었다. 그래서 싱크로 바텐더의 영상을 찾아봤다.

[쵸로마츠,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라는 말에 꼬드겨져서, 연습하게 된 지 약 한달. 기본적인 칵테일을 만들 수 있게 된 이후, 우리들의 연회에서 그 성과를 선보이게 되었다.

나는 실벵씨의 마티니[각주:23], 카라마츠는 유메노씨의 스팅어[각주:24]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를 맡았다. 따로 구호는 필요 없다. 그저 눈을 마주칠 뿐. 그것만으로 서로의 호흡을 맞춘다.

그 증거로 셰이커를 테이블에 두는 타이밍이 딱 맞았다.

내가 진을 들어 한 바퀴 돌리자, 카라마츠가 브랜디를 들어 흔든다.

카라마츠가 페퍼민트 리큐르[각주:25]를 메저 컵(액체용 계량컵)에 부었다. 나도 따라서 베르무트[각주:26]를 메저 컵에 부었다.

셰이커 뚜껑을 덮고, 한 손으로 셰이커를 가지고 놀 듯 살짝 흔든다. 흔드는 손의 위치도, 횟수도 전부 똑같다.

신중하게 잔에 따르고, 여기있습니다, 라며 내밀자 박수가 쏟아진다.

물론 박수도 기쁘지만, 카라마츠와 일심동체가 된 것이 엄청 기뻤다.

[-, 돌아가기 싫어]

오너의 추천인 소주를 한 모금 마셔 뜨거워진 목에서 툭, 한마디가 튀어나온다.

작게 말했는데 마침 대화가 끊겼던 타이밍에 튀어나온 탓에, 어제부터 내 머리를 맴돌던 한마디를 모두에게 들키고 말았다.

[왜 그러나, 쵸로마츠?]

[생각해 보라고. 집에 돌아가면, 너는 또 불쌍한 취급을 받게 될 거라고? 게다가 쥬시마츠가 제대로 뭔가 하려고 하면 녀석들이 방해할지도 모르고. 나도 백수로 돌아갈지도 몰라]

이제 네가 부당한 취급을 받는 건, 보고 싶지 않아. 마지막 말은 제대로 전하지 못했지만, 카라마츠에겐 전해졌는지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기쁘면서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희 회사에 오지 않겠습니까?]

분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하나요시씨였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멍하니 있자, 라이야씨가 입을 열었다.

[, 또냐! 작년에도 그런 달콤한 말로 유혹해서 노바라짱을 데려갔잖냐]

오해를 살만한 말은 삼가주시죠, 라며 하나요시씨가 라이야씨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곤 우리들 쪽으로 다가왔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쵸로마츠군, 저희 회사에서 일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회사는 아카츠카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셋이서 살 정도로 큰 사원 기숙사도 있습니다. 급료 같은 건 여기서 말할 수는 없지만, 평균적인 금액이라 생각합니다. 사회 보험은 물론이고, 복리 후생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휴가도...제가 여기에 있는 걸 보시면 어느 정도 감이 오시겠죠?]

꽃미남 오라를 뿌려대며 말하는 하나요시씨. 아니, 잠시만요, 그렇지만, 저 지금까지 니트였고, 여기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한 것뿐인데, 그런 회사에 다니다니.

[저기, 어떤 일인가요? , 정말 여기서밖에 일해본 적이 없어서]

[아아, 실례. 저희 회사는 대학발 벤쳐기업을 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연구성과를 시장에 내놓으면, 그걸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요. 구체적으로는, 경영과 인사 면에서 조언을 하거나 함께 툴을 작성하거나 합니다]

어째서 그런 어렵고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일을 나한테 추천하는 거지. 이쪽은 고졸이라, 대학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는데.

[그거, 제가 할 수 있는 일인가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권유드리는 겁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랬죠? 당신이 청소한 방은 완벽하다고. 세세한 곳까지 제대로 살피고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형제분들과 있을 때, 당신이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인 것 같더군요. 그런 자질이, 저는 필요합니다]

과대평가라고 생각했다. 청소를 잘 해낸 건, 그저 내가 약하게 결벽증이 있었을 뿐이고, 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내 의견을 들어줬기에 정리하는 것도 가능한 거다.

[-, 좋은 제안이지 않나 쵸로마츠군. 해보라고]

쿨하게 찬성해버린 오너의 뒤를 이어, 토미오씨와 유메노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 무언가를 시작할 땐 다 처음이지. 한 번 도전해보고, 안 되겠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면 되는 거야. 바니의 회사가 별로라면, 우리 회사도 소개해주지. 아니면 여기로 돌아와도 되고]

[이래 봬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결정하는 것도 힘들테니, 조금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어젯밤 일을 반성삼아, 소주 2잔 마시고 자리를 떴다.

형제 LINE이 와서 보니, 이치마츠가 내년 대학 입시에 도전한다는 보고였다.

아마, 이치마츠한테 자극받은 건지,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저기, 카라마츠. 부모님의 이혼소동. 기억해?]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의아함으로 가득차있다.

[그 때, 내가 그랬잖아. 널 부양해주겠다고. 그거, 지킬테니까 같이 살래? 쥬시마츠, 너도]

두 사람은 잠시 멍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봤다.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는 거겠지. 그러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동시에 외쳤다.

[물론이지!]

[갈게!!]

 

 

 

 

 

 





으아...드디어 끝냈다ㅠ

분량이 엄청나서 시간이 꽤 걸렸네요


6편부터는 아직 안 올라와서

이후에 업로드가 되면 번역할게요 :D

 

 

 

 

 

 

 

 

 

 

 

 

 



  1. (=아르카익(아르카이크)스마일. 초기 그리스 조각의 옅은 미소를 띤 표정을 말합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2. (쉽게 예로 들자면, SD캐릭터를 떠올리면 될 것 같아요 :) 자세한 설명은 검색을!) [본문으로]
  3. (이탈리아식 스위트 푸딩) [본문으로]
  4. (임시 비계에서 각종 작업에 종사하는 기능인. 건축 관련 종사자) [본문으로]
  5. (스페인 북부의 항만도시) [본문으로]
  6. (닭고기 등으로 속을 채운 작은 파이) [본문으로]
  7. (프라이팬에 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넣어 끓인 스페인 전통 쌀요리) [본문으로]
  8. (조부모나 선조의 형질이 유전된 것) [본문으로]
  9.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번역기 돌려서 나온 거라...) [본문으로]
  10. (무슈는 남성, 마담은 여성에게 쓰는 말입니다) [본문으로]
  11. (*일단 불어 느낌상 번역했어요...카라마츠가 뭔가 단어선택을 잘못..한 것도 같은데 전 불어를 안 배워서 모르겠습니다..;ㅂ;) [본문으로]
  12. (*일본의 한자는 같은 한자라도 읽는 법이 달라서, 이름도 마찬가지로 같은 한자를 쓰지만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따로 뒤에 읽는 법을 붙여둔 거고, 여기서 하나요시는 華美로 빛날 화, 아름다울 미, 라서 여자이름 같다고 한 것 같네요 :D) [본문으로]
  13. (빛날 화에는 꽃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14. (일본어로 토끼) [본문으로]
  15. (채소와 된장 따위를 넣고 끓인 죽) [본문으로]
  16. (싱글 CD에 들어가는 노래 2곡 중 타이틀곡이 아닌 다른 한 곡) [본문으로]
  17. (空野空松가 원문입니다. 여기서 카라는 텅텅 비었다는 의미로 쓴 것 같아요) [본문으로]
  18. (고객들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엔터테이먼트적 요소를 제공하는 바텐더) [본문으로]
  19. (생화에 착색제와 특수 보존액 처리를 한 후에 건조시킨 것) [본문으로]
  20. (보드 용어 같은데 모르겠네요) [본문으로]
  21. (보드류를 탈 때 타는 언덕 형태나 반원 형태의 장애물..? 같은 겁니다) [본문으로]
  22. (도움닫기 구간) [본문으로]
  23. (진(술의 한 종류)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 [본문으로]
  24. (브랜디(술의 한 종류) [본문으로]
  25. (리큐르(리쾨르)는 알코올에 설탕, 향료를 섞은 혼성주로 페퍼민트 향의 리큐르를 ‘페퍼민트 리큐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6. (이것도 리큐르의 일종입니다. 포도주에 베르무트초의 뿌리 따위를 우려낸 거라고 하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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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로,이치,토도 TS입니다














얕보지 마라, 마츠노의 이름을 2

 

 

 

 

딸랑. 고양이가 목걸이에 걸린 방울을 울리며 나타난다. 높은 담장을 사뿐히 뛰어내려, 소나무가 심어진 마당에 선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이 모여든 곳으로 걸어간다. 그리곤 추위를 피하려는 듯 그 속을 파고든다.

 

[........미케. 너도 온 거야?]

 

위에서 들려오는 상냥한 목소리에, 고양이는 냐아- 하고 작게 울어 답한다. 그래, 라고 만족스러운 듯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고양이는 본격적으로 바닥에 늘어져 잠에 빠진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잠은 방해받고 만다.

 

[또 이런 곳에 있었나, 이치마츠]

 

갑자기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가, 고양이들의 잠을 깨웠다. 불쾌한 듯 날을 세우며 잠에서 깬 몇몇의 고양이들이 제각기 자리를 뜬다. 그들을 방해한 건, 청색 옷을 입은 남자였다.

 

[찾았다고. 또 이렇게나 추운데 고양이들과 자고 있었던 건가?]

[....고양이 도망갔잖아. 무슨 짓이야]

 

아까보다 줄어든 고양이 무리들 틈에서, 남성을 노려보며 일어나는 한 여성. 그 차가운 눈빛을 적당히 받아넘긴 남자는 굵은 눈썹을 살짝 내리깔며 웃는다.

 

[벌써 저녁이다. 감기 걸리니까 들어가는 게 어떤가]

[....알겠어]

 

이치마츠라 불린 여성은, 미련이 잔뜩 남은 얼굴로 자리를 뜬다. 등까지 내려오는 길고 결 좋은 검은 머리칼이 저물어가는 태양에 비쳐 빛난다. 난로 대신이었던 그녀가 사라지자 고양이들은 몇몇을 남기곤 다들 어디론가 흩어졌다. 아직 몸을 맞대고 잠들어 있는 소수의 고양이들을 지켜보던 두 사람은 마루 위로 올라갔다.

 

[꽤 빨리 돌아왔네. 오늘은 몇 명이나 벴어? 카라마츠]

[아무리 그래도 대낮부터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마이 허니. 게다가....칼을 빼드는 것보다 직접 말로 푸는 게 깔끔하고 빠르지 않나]

 

카라마츠라 불린 남성은,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걸 꺼려하는 주제에, 정신을 몰아붙이는 것에는 무자비한 카라마츠. 그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자들의 본심을 읽는 것에 능통했다. 그런 그가 자신들의 지역을 어지럽힌 악동무리들에게 행했단 설교, 상대의 호흡이나 감정 하나 놓치지 않고 사람의 속을 후벼 파는 말들로 간곡히 타일렀다는 것, 즉 세뇌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좀처럼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치마츠라도, 자객이나 적대 조직의 인간 등의 불청객들에게 카라마츠가 설교하는 걸 들은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대체로 두번 다시는 노리지 마라라는 내용의 말들이었지만, 그 말투와 과격한 단어, 그리고 설교를 듣고 있는 인간의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있자면, 어둠이 속에서부터 기어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평소의 카라마츠는 정말 상냥한 남성이다. 어릴 적부터 늘 그랬다. 이치마츠는 누구보다 카라마츠의 곁에 자주 있었으니까, 그건 누구보다도 확신할 수 있었다.

 

걸으면서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내렸다. 이치마츠는 그걸 잠자코 받아들였다.

 

[또 관리 밖의 약물이 나도는 걸 토도마츠가 발견해 알려주더군. 내일부터 다시 조사니 뭐니 바빠서 너와 있을 시간이 줄어들게 될 것 같다]

 

카라마츠의 살짝 분한 듯한 어투에, 이치마츠는 자연히 막내 여동생의 윙크가 떠올랐다.

 

[톳티는 늘 즐거워 보여서 좋겠네...나 따위는 마지막으로 밖에 나간 게 2주전인데. 그것도 오소마츠 오빠랑 쵸로마츠 언니랑 같이. 그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 보면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찬바람에 몸을 살짝 떤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몸에 바싹 달라붙는다. 고양이 같은 모습에 카라마츠가 웃자, 그 웃음에 답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냐옹- 하고 고양이 흉내를 낸다.

카라마츠는 그런 이치마츠에 미소를 짓는다.

서로간의 마음이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끌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카라마츠도 어떻게든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지만, 직업상 그럴 수가 없다.

당분간 조용히 걷고 있자,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올려다본다.

 

[저기, 카라마츠...]

[뭔가?]

[나 좋아해?]

[아아, 물론이지]

[세상에서 제일로?]

[아무리 오소마츠 형님이 부탁하더라도, 너만큼은 내어줄 수 없을 정도다, 이치마츠]

 

그렇게 답하자, 평소 표정에 변화가 많이 없는 이치마츠가 만족스러운 듯 살짝 미소 지었다. 이 대화는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일상과도 같아졌다. 카라마츠를 노리는 자객이나 적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이치마츠는 거의 집에서 나가질 않았다. 외로움이 거듭 쌓여만 가는 이치마츠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만나지 않아도 자신을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 건지. 그에 카라마츠는 최대한 말로 사랑을 전했다. 이후, 이치마츠는 몇 번이고 이 질문을 해서 안심을 얻었다.

 

[마츠노 조직이 좀 더 세력을 키우고, 오소마츠형을 노리는 녀석들이 제압되면....내가 적들에게 원한을 사지도 않고, 이치마츠가 편하게 밖을 다닐 수 있게 되면, 그 땐 좀 더 같이 있자]

 

카라마츠는 천천히, 스스로 각오를 다지듯이 말했다.

 

[........ 기다릴게]

 

이치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답하자,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머리칼을 가볍게 잡아 입을 맞췄다.

 

[약속하지]

 

살짝 웃는 카라마츠의 얼굴은 어릴 적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다.

 

 

 

 

 

 

카라마츠와 이치마츠가 방에 들어가자, 형제 전원이 모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섯 쌍둥이라 불리는 6명이 모여 있었다.

오소마츠가 상좌에 앉고, 쵸로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하좌에 얌전히 앉아있다.

 

[다들 이렇게 모여서 뭐 하는가? 무슨 일이라도 있나, 오소마츠]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도 자리에 앉았다. 전원이 어딘가 곤란해 보여, 이거 뭔가 안 좋은 정보라도 들어온 거구나, 하고 두 사람은 헤아렸다.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보고 입을 열었다.

 

[.....선대 때, 우리 조직에서 나뉜 새로운 조직이 있었던 거, 기억하지]

[아아.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으니, 오소마츠가 대를 이은 후에야 조사했었잖나. 분명 이름이 미나즈키회였던가?]

[그래. -, 그게 토도마츠 덕에 마침내 마약을 유통하는 녀석들의 본거지를 알아냈는데. 그게 아무래도 그 녀석들 같아]

 

오소마츠의 나직하게 전해져왔다. 침을 삼키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망설여질 정도로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이 장남에게도 두목으로서의 위엄이란 게 있다는 걸 다들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래서 어쩔 거야, 오빠는]

 

이치마츠의 질문에 전원 오소마츠를 바라본다.

오소마츠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일단 증거는 잡았으니 제압할 이유는 충분해.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쳐들어가서 쓸어버리라고는 할 수가 없단 말이지. 일단 뭐라고 해도 우리 분가니까]

 

부친이 끝까지 지킨, 아끼던 사제의 조직. 솔직히 개인적으로 관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이 세계는 인연과 인정을 소중히 여겨야하는 곳이다___지금은 죽고 없는 부친, 즉 선대가 곧잘 마츠노 세쌍둥이에게 하던 말이다.

 

[하지만, 본가의 구역을 어지럽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내 정보망을 몰랐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톳티에 대해선 물론 알고 있을 거다. 결혼 축하한다고 연락도 왔었으니]

[으음-, 설마 싸움을 거는 거 아닐까!! 나 싸움이라면 언제든 웰컴!! 오소마츠형만 괜찮다면 가서 날려버리겠슴다!!]

[그건 고마워, 쥬시마츠. 하지만 지금은 아냐. 문답무용으로 쳐들어가서 죽이는 건 답지 않잖아]

 

그럼, 어쩌면 좋을까.

 

 

전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잠자코 듣고 있던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마츠노 조직을 노리는 걸지도]

 

하극상, 이라고 작게 덧붙였다.

 

확실히, 선대 때부터, 품행이 악한 자, 피에 굶주린 위험한 패거리들은 적잖이 마츠노 조직에도 있었다. 그들을 모아 파문하고, 마츠노 조직과의 연을 끊어 더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것이 오소마츠였다.

벌써 몇 년도 전의 일이지만,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해가 될 것들은 모두 배제했다. 오소마츠가 빈사상태가 된 일이 그 불안감을 더해, 형제들도 모두 그 일을 도왔다. 말하자면 아무것도 몰랐다고는 하지만, 지배하에 있어 몸을 사리던 악당들을 세상밖에 내놓은 꼴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익숙해진 뒤에도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지 않은 건, 장남을 잃은 뻔했던 일이 형제들에게 있어 지울 수 없는 공포로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밖에 나온 악당들이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가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미루어왔던 게, 이렇게]

 

오소마츠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렸다고는 하지만 몇 년 전의 자신은 너무도 철부지였다는 걸 느꼈다. 무서웠으니 위협을 멀리한다. 그건 가장 무지하고 어린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버려진 사람들이 미나즈키회에 유입됐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갈 곳이 없어 마츠노 조직에 있었던 녀석들인데, 쫓겨났으니 당연히 자신들을 몰아낸 자를 원망할 것이다. 그런 인간이 모이고 모여, 하극상을 노리는 조직으로 성장을 이룬다___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상황이 이러하니 엄중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진위 판단이 특기인 자신이 상황을 살피러 가겠다고 카라마츠가 제안을 하려던 때였다.

 

[내가 갈게]

 

카라마츠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 무슨, 이치마츠....]

[내가, 잠입해서 조사할게. 나는 카라마츠랑 혼인신고도 안 했고, 존재자체가 미나즈키회에 알려져 있지 않을 테니까. 일반인인 척 위장해서 잠입할 수 있지 않겠어?]

 

히죽 웃는 이치마츠는 어느때보다 즐거워 보인다. 다들 얼굴을 경직시킨 채 아무 말 않고 굳어있는 와중, 당황해 소리를 내지른 건 카라마츠였다.

 

[, 어이 이치마츠! 무슨 말인가!! 혼자서 잠입!?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쩔 셈인가!!]

[괜찮다니까....사제 녀석들 중 한 놈을 꼬셔서 애인자리를 꿰찬 뒤에 술을 먹이면 알아서 줄줄 다 불어버리겠지.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한 달?]

[애이인~!? 아니, 이치마츠 네 애인은 나잖아?]

[?]

[?라니, 허니-!! 그 냉담한 반응은 뭔가!?]

 

왁왁 시끄러운 카라마츠의 논점이 점점 빗나가기 시작하자, 쵸로마츠가 딱 잘라서 [너희들 조용히 해!] 라고 외쳤다. 마귀와도 같은 기세에, 공기가 얼어붙는다.

 

[이치마츠도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기는 해? 어쩌면 우리들 전원의 목숨이 노려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데, 너란 녀석은!]

 

쵸로마츠가 쾅, 다다미를 내려친다.

이치마츠는 살짝 입술을 깨물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도....가끔은 밖에, 나가고...싶단 말이야..]

 

완전히 풀이 죽은 이치마츠. 잠자코 듣고 있던 오소마츠가 턱을 괴며 이치마츠를 불렀다.

 

[이치마츠. 아까 보니까 꽤 진심인 것 같던데. 그건 카라마츠 이외의 녀석한테도 안길 생각이 있다는 거야?]

[....아니,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오빠는 가끔 네가 똑똑한 건지 바보인 건지 모르겠어-]

[아니, 바보라고 이치마츠는! 애초에 카라마츠가 허락해줄 리 없잖아? 안 그래, 카라마츠?!]

[.........]

[......카라마츠? 뭐라고 말을...]

 

쵸로마츠의 당황하는 모습에 카라마츠는 살짝 미소 짓고는 옆에 앉은 이치마츠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치마츠]

[....]

[나는 너를 믿는다]

 

이치마츠는 평소에 반쯤 감고 있는 눈을 완전히 뜨곤 몇 번인가 깜빡인다. 카라마츠는 주저함이 없는 순수한 미소로, 이치마츠에게 말했다.

 

[우리들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생각하는지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고 그런 결정을 내린 거라면, 나는 반대하지 않겠다. 솔직히 말해, 이게 최선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가더라도 완전한 진실은 알 수 없을 테니, 네가 가는 게 더 진실에 가까워지는 방법이겠지]

[......저기]

[그러니까, 몸을 주지 않겠다 약속한다면, 부디 부탁한다. 이 조직을 위해서]

 

다다미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이는 카라마츠. 그걸 본 이치마츠는 누가 봐도 알 정도로 떨고 있었다.

그저 조금 질투를 바랐을 뿐인데, 이렇게 진심으로 부탁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하지만 아까 그렇게 강하게 나왔으니, 이제 와서 싫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알겠어. 약속할게]

[좋아, 그래야 이치마츠지]

 

고개를 든 카라마츠는 무척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치마츠는 윽, 하고 살짝 뺨을 붉혔다.

 

[~.....네네, 우리들도 있다는 건 완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지-. 그런 낯간지러운 짓은 다른 곳에서 하라고!]

 

토도마츠가 두 사람을 떼어놓는다.

 

[일단, 이치마츠 언니가 잠입한다는 걸로 결론내자구! 나도 될 수 있는 한 서포트할테니까, 힘내]

[, ]

 

이치마츠는 어째 커져버린 상황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게, 새로운 작전의 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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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후. 카라마츠의 몸에 감겨있던 붕대란 붕대는 전부 벗겨졌다. 그 남자의 말대로 겉의 상처는 비정상적으로 빨리 나았다. 의사는 기적의 회복력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카라마츠 스스로도, 아무리 자기가 바보라 할지라도 죽을 뻔했던 어마어마한 상처가 일주일만에 낫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난 신에게 선택받은 건가]

 

카라마츠는 거실에서 붕대를 푼 팔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그걸 형제가 냉담한 눈으로 쳐다봤다.

 

[? 그 붕대, 꾀병이었던 거?]

[맞아맞아. 너 악운 강하니까. , 그렇단 건 우리들이 잘 피해서 던졌다는 거 아냐?]

[아하, 파인 플레이네!! 메이저 갈 수 있을까?]

 

이치마츠, 오소마츠,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상태를 보며 말했다.

 

[, 꾀병 아니다! 진짜, 진짜 아팠단 말이다!! 죽는 줄 알았다!]

 

카라마츠는 그들의 막말에 마음이 아팠다. 속죄나 동정의 말이라면 몰라도, 그 고통과 괴로움을 꾀병이라 말하는 건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잘했다는 듯이 말하다니.

 

[죽다니.....꾀병이잖아. 그렇게 빨리 낫다니 꾀병이 당연하지]

[그래그래. 카라마츠형, 치비타한테 가서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꼭 사과하라구~. 안 그럼 어색해져서 못 갈지도 모른다고, 앞으로]

 

쵸로마츠는 취활잡지를 보며, 토도마츠는 탁자에 턱을 괴고선 핸드폰을 보며 카라마츠에게 말했다.

 

카라마츠는 반론하려 5명을 봤지만, 순간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화나는 것보다 이해 받지 못하는 괴로움과 체념이 더 컸다.

 

[알겠다......]

 

주먹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시선을 떨군 채 방을 나섰다.

겉의 상처는 아물어도,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간단히 낫는 게 아닌데. 겉의 상처는 보여도,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데. 5명이나 있음에도 점점 커져가는 마음의 상처를 알아채주지 않는 게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 있기 싫었던 카라마츠는 그대로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섰다. 밖에 나와도 특별히 갈 곳이 없었다. 토도마츠가 말했던 것처럼, 치비타한테 갈까 했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몸은 다 나았다. 가려고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오소마츠처럼 삼시세끼 식사보다 도박을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쵸로마츠처럼 아이돌 덕질을 하는 게 삶의 활력소인 것도 아니다. 이치마츠처럼 고양이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쥬시마츠처럼 야구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며, 토도마츠처럼 인간관계가 넓은 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구나. 난 이렇게나 시시한 인간이었던 건가]

 

그렇게 자각한 순간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굳이 말하자면, 난 나 자신을 좋아했다.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느 누가 날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싫다. 형제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건 분명 평소 행실이 나빴기 때문이겠지. 안쓰럽단 말을 계속 들었음에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라마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걸었다. 이런 기분으로는 카라마츠 걸을 찾으러 갈 수도 없다.

 

[.......? 카라마츠 걸.... 아니, 카라마츠 보이가 있지 않나!]

 

카라마츠의 뇌리에 전에 만났던 청년이 스쳐지나갔다.

그날 이후로 한번도 못 봤지만, 운 좋게도 지금은 아직 한낮이다. 마을은 좁으니, 전력으로 찾으면 밤까지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카라마츠는 아무 생각 없이 마을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아카츠카 마을에 살고 있는지도 어쩐지도 모른다.

결국 만나지 못한 채 카라마츠는 집으로 돌아갔다.

 

 

 

 

 

* * *

 

 

 

 

붕대를 벗은 후부터는 전과 똑같이 형제와 같이 행동했다. 같이 목욕탕에 가고, 같이 자고, 같이 밥을 먹었다. 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카라마츠는 형제들 사이에서 벽을 느꼈다.

상태가 나았다고 해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할 수는 없다. 저도 모르는 사이, 트라우마에 마음의 상처가 도려내졌다.

 

엄마인 마츠요가 꽃병에 꽃을 꽂아 장식할 때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고, 쥬시마츠의 야구연습에 억지로 끌려갔을 땐 과호흡에 빠졌다.

라멘이 담긴 그릇이 무서워서, 좋아하던 라멘도 먹을 수 없게 되고, “후라이팬도 건드릴 수 없게 됐다. “맷돌을 볼 땐 발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물이 무서워 탕에 오래 들어앉아 있지도 못하고, 거의 매주 갔던 치비타의 가게에도 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 상태의 주범격인 형제들도 다소 걱정을 하는 듯했지만, 날이 갈수록 꾀병이라 생각하는 건지 냉담한 눈빛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더욱 카라마츠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저기, 토도마츠. 너는 날 좋아하는가? 가족이라고, 형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래. ....근데 그러는 거 이제 그만하면 안돼? 그 일은 우리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 매일매일 그런 말 듣고 있으면 짜증난다고. 무슨 집착 쩌는 여자친구냐]

 

토도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깊은 한숨과 함께 방을 나갔다. 카라마츠는 토도마츠를 향해 팔을 뻗었지만, 탁 하고 문이 닫혀버린다.

토도마츠의 말대로 카라마츠는 거의 매일 이런 질문을 되풀이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듯이.

 

[, 누구 없는가...! 날 혼자 두지 마라!!]

 

카라마츠가 또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게 된 이유가 하나 있었다. 눈동자에 공포의 빛을 띠면서 카라마츠는 몸을 둥글게 말고 귀를 막는다.

 

[히익, 또다.......]

 

카라마츠는 혼자가 되면 주변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크게 다친 이후부터 뭔가가 항상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기분탓이라고 여겼지만, 가끔 자신을 놀리는 듯 딸랑, 하고 방울 소리가 났다.

 

이런 행동을 매일 반복하다보니, 형제들은 카라마츠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자신들임을 알기에, 그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형제들은 카라마츠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내버려두면 언젠가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라고 간단히 생각해버린 것이다.

 

 

 

 

* * *

 

 

 

 

그러던 어느날. 카라마츠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고, 오소마츠는 심심하단 말을 반복하며 뒹굴거리고 있었다.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어둠은 갈수록 깊어만 가, 카라마츠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카라마츠는 시선을 오소마츠에게 옮기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구해달라는 듯이.

 

[.....저기, 오소마츠. , 누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발언에 오소마츠는 깜짝 놀라 카라마츠를 봤다. 눈빛은 공허하고 오른쪽 눈에서는 눈물이 한줄기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누군가가, 날 보고 있다...]

 

카라마츠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매달리듯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그리고 오소마츠 쪽으로 기어가듯 천천히 다가갔다.

오소마츠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살짝 질린듯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 하아? 누가 널 본다는 거야. , 그거 아냐? 복장이 안쓰러워서 호기심의 시선으로 누가 보는 거라던가]

[...아니다, 그게 아니다! 이건 그런 시선이 아니다!! 밖에서만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느껴진단 말이다!]

 

너무도 필사적인 모습에 오소마츠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공포가 싹텄다. 저 말이 진짜인 걸까, 아니면 관심을 끌고 싶어서 벌인 연기인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미쳐버린 걸까. 어느 선택지를 고르든 다 동생이 불쌍할 뿐이었다.

 

[......너 진짜 자의식 과잉 아냐? 형아 걱정인데]

[농담이 아니라니까!!! 진지하게 들어라, 오소마츠!!]

 

그렇게 소리친 순간, 카라마츠의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 방에는 오소마츠와 자신, 둘뿐일텐데, 다른 한명이 더 있는 듯했다. 카라마츠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멀리서 그 시선이 느껴졌었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기척을 느꼈다.

 

[, 아아, 있어. 오소마츠, 도와줘. 있다, 이 방에, 있다고!!]

 

카라마츠는 눈물을 쏟으며 오소마츠에게 떨리는 손을 뻗었다. 오소마츠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무엇 하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결국 이 모든 걸 카라마츠의 연기라 단정짓고, 짜증과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는 저 불쌍한 동생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오소마, . 오소마츠! 어딜 가는 건가!! 날 혼자 두지 마라!!]

[네네. 잠시 저쪽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거니까. 금방 돌아올게-]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로 붙잡는 카라마츠에게 그렇게 말하곤 오소마츠는 한손을 휙휙 흔들며 방을 나가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방의 온도가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불쌍하게도.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건가]

 

아무도 없어야 할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쿵쿵 거칠게 뛰고,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딸랑, 딸랑, 하는 방울소리가 점점 커지며 뇌내에서 울렸다.

 

[사랑에 굶주린 인간의 아이여. 나의 신사로 오라]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온몸을 경직시킨다. 그리곤 이내 가위가 풀렸다.

카라마츠는 덜덜 떨며 뒤를 돌아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고 바닥에 새의 것으로 보이는, 하지만 그보다 조금 큰 검은색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

 

[, 깃털...?]

 

카라마츠는 그걸 집었다. 그러자 카라마츠의 뇌리에 본 적 없는 신사가 스쳐지나갔다. 본 적이 없어 모르는 게 당연한데, 어째선지 가는 길이 떠오르며, 몹시 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카라마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에 들어하던 선글라스나 가죽재킷도 버린 채 빈손으로 집을 나섰다.

 

비틀비틀, 마치 꼭두각시처럼 오직 목적지만을 향해 걸었다. 그의 한 손에는 커다란 깃털이 들려있었다.

 

[어라, 카라마츠. 어디 가는 거야, 곧 저녁시간이라고]

아이돌 라이브에서 돌아온 쵸로마츠가 앞쪽에서 걸어오며 말을 걸었지만, 카라마츠는 무시하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무시라니...! 뭐야, 아침에 무시했다고 화난 거야? 어쩔 수 없었다고, 나 바빴으니까]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 쵸로마츠는 카라마츠의 팔을 붙잡았다. 카라마츠가 쵸로마츠를 흘끗 쳐다봤지만, 그의 눈동자는 공허해, 쵸로마츠도 그 무엇도 비춰지지 않았다.

그것에 소름이 돋은 쵸로마츠는 팔을 놓았다.

 

[뭐야, 됐어...! 오소마츠형이랑 쥬시마츠가 밥 뺏어먹어도 모른다고!!!]

 

쵸로마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 카라마츠의 등을 바라보며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카라마츠에게 닿지 않았다.

타들어가는 석양에 휩싸이듯 카라마츠는 앞으로 나아갔다.

 

 

 

 

* * *

 

 

 

 

그날 카라마츠가 돌아온 건 아침해가 뜰 무렵이었다. 방에 누가 들어오는 걸 느낀 쵸로마츠는 잠에서 깼다. 그 누군가가 카라마츠라는 걸 깨달은 순간 그의 팔을 잡아끌어 복도로 나갔다.

 

[카라마츠, 지금이 몇시라고 생각하는 거야? 게다가 저녁에 내 말을 무시하고 말이야!!]

 

쵸로마츠는 카라마츠를 추궁했다. 기분 탓인지 카라마츠는 초췌해 보였지만 어쩐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아, 미안하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네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만....]

 

카라마츠는 감정이라곤 없는 목소리로 말하곤, 쵸로마츠 옆을 스쳐지나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카라마츠한테서 묘한 향기가 났다.

 

 

카라마츠는 이불로 들어가 눈을 감고 오늘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그 후, 카라마츠의 정신이 돌아온 건 인적이 드문 신사 앞에 도착한 후였다.

 

 

, 여긴.....어디인가. ....! 설마 나는 카미카쿠시[각주:1]라도 당한 건가...!!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고,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음침하게 땅거미 속에 메아리쳤다. 카라마츠는 일단 경내 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토리이[각주:2]를 지나자 고마이누[각주:3] 두 개가 험상궂은 얼굴로 바라본다. 건물 주변에는 사당과 작은 무덤이 있었다. 카라마츠는 사당이 신경 쓰여, 가까이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게 신경 쓰이십니까

 

그 때, 갑자기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까진 아무도 없었고, 기척도 못 느꼈는데. 카라마츠는 깜짝 놀라며 조심조심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짙은 파란색의 기모노를 입은, 전에 봤던 그 청년이 서있었다. 놀란 표정을 짓자 청년은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 그 때 봤던 형씨.......!

어서오십시오. ...거기에 이끌려 오신 거군요

 

청년의 시선은 카라마츠가 들고 있던 깃털에 꽂혔다. 카라마츠는 그걸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입가를 살짝 올리곤 사당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사당에는 카라스텐구가 모셔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카라스, 텐구....그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건가

. 인간의 형상에 검은 날개를 달고 있습니다. 마침 그대가 갖고 있는 그것이 그 날개의 깃털. 그대는 카라스텐구의 마음에 든 모양이군요

 

그걸 들은 카라마츠의 뇌리에, 언젠가 석양 속에서 보았던 실루엣과 날마다 느껴지는 시선이 떠올랐다. 그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진짜였던 거다!

 

카라스텐구에 대해 들어보시겠습니까

 

청년의 제의에 카라마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청년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 이 사당에는 카라스텐구가 모셔져 있다고 믿어, 귀중하게 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믿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사당에 바쳐지는 제물도 사라져 점점 초라해져만 갔다.

그 때문에 카라스텐구는 이곳에 가호를 내리는 걸 관뒀다. 그러자, 주변 마을에 기근이 덮쳤다. 식량이 없어 곤란해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거칠어져만 갔고, 강탈은 물론이요 어린이나 노인들을 굶기거나 쫓아내 입을 줄이기까지 했다.

어느날, 한 남자아이가 피를 철철 흘리며 빈사상태로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걸 카라스텐구가 발견했다. 카라스텐구는 그를 가엾게 여겨, 자신의 피를 먹여 아이의 상처를 고쳤다.

원래는 카라스텐구의 존재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지만, 그 피를 섭취한 남자아이에게는 그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카라스텐구에게 점점 정을 붙였다.

처음으로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 카라스텐구는 남자아이에게 가호를 내려 그를 보호했다.

하지만 어느날, 이 기근이 카라스텐구의 저주란 얘기가 돌면서, 마을사람들은 결국 사당을 부수려했다. 아이는 그걸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죽었어야 할 아이가 살아있는 걸 보고 놀란 마을사람들은 이 아이는 역귀다! 이 아이가 재난의 원인이다!’라고 소리치며 아이를 잡아다 고문하여 죽였다. 창백하게 식어버린 아이를 본 텐구는 분노하여, 마을을 모조리 궤멸시켰다.

남자아이의 죽음으로 사당은 지켜졌지만 카라스텐구가 아끼던 아이는 사라져버렸다.

 

 

청년은 이야기를 끝내곤 슬픈 듯 웃었다. 그리고 작은 무덤을 가리키며, 저것이 남자아이의 무덤이라 말했다.

상당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풍화되지 않고 깔끔히 정돈된 무덤주변을 보아, 누군가에 의해 소중히 관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군.....하지만 그 아이는 카라스텐구의 옆에서 잠들어 행복하겠군.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이렇게나 소중하게 지켜지고 있으니까 말이야

 

카라마츠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무덤 앞으로 가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 위를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그 모습을 청년은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 아이는 텐구를 감싸다 죽었습니다. 텐구가 없었다면, 이라고 생각하진 않나요

.....아니, 애초에 텐구가 없었다면 죽었을 목숨이다. 이 아이에게 있어, 혼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보다 텐구에게 사랑받으며 죽는 편이 더 행복하지 않겠나. ....사랑 받지 못하는 인간만큼 불쌍한 건 없으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어쩐지 실수한 듯한 기분에 살짝 침울한 얼굴이 된다.

 

저기, 형씨. 아까 내가 카라스텐구의 마음에 들었다고 했지. 왜 나인가

 

카라마츠의 질문에 청년은 시선을 슬쩍 돌렸다. 하지만 곧바로 시선을 마주하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그 아이와 닮았으니까

 

그걸 들은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닮았다 해도 본 적도 없는 상대이니 좀처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군....역시 나,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쿨가이..

....?쿨가이...?

, 아무것도 아니다....그보다 여긴 어딘가? 나는 아카츠카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런 곳은 처음 본다만

 

카라마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을 뒤덮을 듯 울창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려 바스락거리며 흐느끼고,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애수를 자아냈다.

 

전에 저와 만났던 장소, 기억하시나요? 이곳이 그곳입니다

 

그 말을 들은 카라마츠는, 있어야 할 공원이 없어지고 사당만 남았던 그곳을 떠올렸다.

 

아니, 그건 기억한다만....그곳은 그냥 공터였지 않나. 이렇게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 곳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만...

,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의 옛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카라스텐구는 그 지위와 요력이 굉장한 요괴입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건 물론, ....사람을 홀연히 데리고 가는 것도 가능하죠

 

청년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라마츠는 빙글빙글 혼란스러운 머리를 갸웃거렸다.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게 가능하다, 라는 건 날 말하는 건가. 그렇다는 건 이건 카미카쿠시!!

 

, 싫다싫다싫다아-!! 갑자기 카미카쿠시라니 싫-다아-!!

 

머리의 한계치를 넘어버린 카라마츠는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갑작스런 반응에 청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 진정하세요. 그렇게 가둬두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원한다면 언제는 현세로 돌려보내는 것도 가능하죠

, 그런 건가...? ......,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이성을 잃어버리다니, 쿨하지 않군.....

 

카라마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본 청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여기, 이걸 받아주세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소매에서 사탕을 꺼내 카라마츠에게 건넸다. 그건 호박색을 띠고 있어, 아름답게 빛이 났다.

사탕을 받아들어 입에 넣어 굴리자, 서서히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고맙다....저기, 형시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 말입니까. 저는.....이 사당과 무덤을 지키는 자입니다. 오랜 세월 이렇게 이승에 몸을 숨기며 영원의 시간을 보내고 있죠

 

그 말을 들은 카라마츠는 청년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계속 이 쓸쓸한 공간에 혼자 있었다는 건가.

 

형씨, 대단하군. 외롭지 않은 건가

외로워...? 외로움...인가. 그런 감정은 버린 지 오래입니다. 저는 금기를 범했습니다. 그저, 이 목숨이 다하기를 기다릴 뿐이죠

금기....? 그게 형씨를 이곳에 묶어둔 이유인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카라마츠의 질문에 청년은 천천히 입가를 올렸다. 그 미소가 어딘가 텅 비어 보여,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 옛날 이야기는 이걸로 끝입니다. 이제 그대가 현세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기 전에 현세로 돌려보내야 되겠군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우선[각주:4]을 꺼내 살짝 휘둘렀다. 그러자, 카라마츠의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 잠깐.........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

.....그럼요. 그걸 가지고 해가 질 무렵에 그 장소로 오신다면, 언제든지

 

딸랑, 하는 방울소리가 고막에 울리더니, 카라마츠는 어느새 집앞에 서있었다. 잠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어 멍하니 서있던 카라마츠는 손에 들린 칠흑 같은 깃털을 보고 현실임을 깨닫는다.

 




분명 집을 나온 건 저녁무렵이었는데, 설마하니 새벽녘에야 돌아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브라더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건가

 

카라마츠는 편안한 얼굴로 깃털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그 날을 경계로 카라마츠와 청년은 사이가 좋아졌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만났지만, 점차 그 횟수가 늘어 거의 매일 가게 되었다.

집에는 있을 곳이 없는 카라마츠에게 있어, 청년이 만들어낸 그 공간은 마음의 안식처나 마찬가지였다. 청년은 자신만을 보고, 상냥하게 말을 걸며, 때때로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저녁에 나가 새벽녘에 귀가하는 카라마츠를 형제들이 수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안녕을 위한 행위가 반대로 자신을 집에서 몰아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1. (신에 의해 일어난 행방불명 / 어린애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옛날에는 신의 소행으로 여겨서 생겨난 말 / 그냥 행방불명이라 적기엔 흐름상 안 맞는 것 같아서 원래 단어 그대로 적었습니다) [본문으로]
  2. (신사입구에 세운 기둥문 / 신사에 가면 보이는 빨간색 문처럼 생긴 기둥이 토리이입니다) [본문으로]
  3. (신사 주변이나 참배하는 길옆에 놓인 사자상 같은 것을 말합니다) [본문으로]
  4. (새털로 만든 부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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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공포증 <후편>

 

 

 

 

쿠당.

 

 

 

 

뭐지,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평소대로 거실에서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있으니, 2층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뭐가 쓰러진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도 둔탁한 소리였다.

뭐가 쓰러져야 저런 소리가 나지? 나는 의문을 잔뜩 품은 채 다시 시선을 거울로 돌렸다. 지금 이 방에는 나뿐이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지만, 이치마츠는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장보러 나갔다. 오늘은 통 보질 못했지만, 아마 오소마츠는 2층에 있을 것이다.

나는 아까 그 소리의 원인이 여전히 신경 쓰여, 거울을 보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만약 가구라면 쾅, 정도의 단순한 소리일 텐데..... 그보다 애초에 지진도 없었는데 갑자기 쓰러질 리가.

 

 

.............어째선지 엄청 신경 쓰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신경이 쓰여 나는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거울은 탁자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실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얼른 원인을 찾아내서 해결하자.

그렇게 결심한 나는 우리가 쓰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을 대강 둘러보니 별로 변한 건 없었다. 큰 물건이 넘어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넘어진 흔적 자체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여기가 아니라 오소마츠의 방인가?

얼른 이 찝찝한 마음을 어떻게 하고 싶어 발길을 돌려 방을 나왔다. 옆방 앞까지 가자, 나는 발을 뚝 멈췄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문을 열어 버리면, 오소마츠가 놀랄지도 모른다. 그 후로 이 방에 들어갈 때에는 일단 말을 건 후에 들어가는 게 우리들의 암묵의 룰이 되었다. 나는 문에 손을 뻗고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들아간다]

 

문을 열자 다다미 위에 오소마츠가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일단 방안을 가볍게 둘러봤지만, 특별히 뭐가 넘어진 흔적은 없었다. 그 소리.........내 기분 탓이었던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다니 이 얼마나 깜찍한 형님인가. 이대로는 감기 걸린다고? 정말 못 말리는 브라더다. 내가 이불을 준비해야 하지 않은가!!

나는 벽장에서 오소마츠가 쓰는 1인용 이불을 꺼내 다다미에 깔았다. 베개도 꺼내 놓아두어 준비를 끝내고, 오소마츠를 깨우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일어나라, 오소마츠. 그런 곳에서 자면 감기 걸린다]

[......................]

[오소마츠?]

 

오소마츠에게 말을 걸었지만 답이 없다. 어찌 된 일인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지만, 아무래도 푹 잠든 것 같아 그냥 들어 옮기려 오소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오소마츠를 옮기기 위해 일단 똑바로 눕혀야겠지. 어깨를 가볍게 잡아 살짝 힘을 줘 옆으로 뒤집었다. 그러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오소마츠가 괴로운 듯 숨을 헐떡이고 있어,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인가!? 엄청 괴로워 보이는데!?

..............설마 아까 그 소리의 정체는 이건가!!

 

[하아.........하아..........]

[어이!! 오소마츠!! 정신 차려라!!]

[하아............................]

 

가볍게 어깨를 흔들자, 닫혀있던 눈꺼풀이 느릿하게 열렸다. 눈동자가 뿌옇게 흐려지고 괴로움에 옅게 흔들렸다. 의식은 있든 듯했지만 체력은 없는 모양인지 힘없이 다다미 바닥에 축 늘어졌다.

, 어쩌면 좋은가...!! 운 없게도 다른 브라더들은 나가고 없다...!! 어째서 이럴 때만 나 혼자인 건가!!

나는 머리를 싸맸다. 아니, 일단 진정하자. 형님이 이렇게나 괴로워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그래!! 1층에 마미가 있지 않나!! 빨리 가서 불러오자!! 나는 오소마츠를 이불에 눕히기 위해 오소마츠의 등과 무릎 뒤에 팔을 넣고 들어올렸다. 무거울 거라 생각해 한껏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났지만, 생각보다 쉽게 일어섰다. 예상외의 가벼움에 나는 살짝 휘청거렸다. 어떻게든 발에 힘을 줘 균형을 잡았다.

!? 너무 가벼운 거 아닌가!? 말랐다고는 생각했지만....이렇게나 쉽게 들어올려지다니...

축 늘어진 오소마츠를 이불 위에 조심히 눕히고, 뺨에 손등을 맞댔다. 살짝 뜨겁다. 열이 나는군. 잘 보니 이마에 땀이 맺혀있다. 처음부터 열이 나고 있었던 걸ᄁᆞ. 나는 오소마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돌아오겠다. 잠시만 참아라]

 

나는 방에서 뛰쳐나가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부엌으로 달려갔지만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거실로 향하자, 탁자를 닦고 있던 엄마가 집안을 뛰어다니는 날 보고 놀란 듯 올려다 보았다.

 

[어머, 카라마츠. 급하게 뛰어다니고, 무슨 일이니?]

[, 엄마!! 오소마츠가!! 오소마츠가!!]

[오소마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쓰려졌다!! 열이 있는 것 같은데, 엄청 괴로워하고 있다...., 아무튼 빨리!]

[알겠어. 바로 준비할테니 조금만 기다리렴]

 

내 얘기를 들은 엄마는 탁자를 닦던 행주를 들고 부엌으로 돌아갔따.

빨리!! 빨리 와줘!!

3분이 지나지도 않아, 엄마가 부엌에서 날 불렀다. 나는 급히 엄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것 좀 들고가렴. 쏟지 않게 조심하고]

 

부엌 탁자 위에는 둥글고 하얀 세숫대야가 놓여 있었다. 안에는 물이 담겨 있고, 얼음이 둥둥 떠다녔다. 아무래도 수건으로 이마를 식힐 용도인 모양이다. 딱 봐도 엄청 차가워 보였다.

나는 그걸 양손으로 조심히 들어올렸다.

 

[그럼, 가자]

 

나는 엄마 뒤를 따라서 오소마츠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가자, 오소마츠가 후우, 후우 하고 작게 괴로운 듯 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오소마츠의 옆에 얼음물이 든 대야를 내려놓고, 엄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엄마는 오소마츠의 뺨이나 이마를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엄마는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열이 심하네. 거기 있는 구급상자에서 체온계 좀 가져다줄래?]

 

구급상자? 주변을 둘러보자 다다미 위에 놓여 있었다. 초조함에 몰랐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들고 올라온 듯했다. 나는 바로 구급상자를 열어 체온계를 꺼내 엄마한테 건넸다. 체온계를 받아든 엄마는 오소마츠의 겨드랑이에 그걸 끼웠다. 그러자 다시 오소마츠가 굳게 닫힌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후으.........................?]

[그래. 괴롭지. 엄마가 알아서 할테니까, 푹 쉬렴]

 

오소마츠의 시선에 엄마에게서 내게로 옮겨간다. 날 잠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눈을 감는다. 엄마가 이불 위에 축 늘어진 오소마츠의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이 거리에서도 이마에 맺힌 땀이 보일 정도로 잔뜩 맺혀 있었다.

 

[땀이 굉장하네. 좀 닦아야겠어. 카라마츠, 거기 얼음물에 수건 좀 짜서 건네주렴]

[, 알겠다!!]

 

나는 엄마가 들고 온 하얀 수건을 3개 정도 얼음물에 집어넣었다.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지만 내게는 이런 걸로 끙끙거릴 여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오소마츠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수건에 물을 잔뜩 먹여, 1개씩 꽉 짜냈다. 그리곤 차가워진 수건을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그걸로 얼굴과 목 언저리를 닦기 시작했다. 잠시후 엄마가 날 쳐다보지도 않고 지시했다.

 

[오소마츠의 파자마 좀 가져오렴. 새로 빨아둔 게 장롱에 있을 거야]

[알겠다!!]

 

나는 황급히 방을 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장롱을 열어 재빠르게 오소마츠의 파자마를 꺼내, 그대로 2층으로 뛰어서 돌아갔지만, 갑자기 아까전의 오소마츠가 떠올랐다.

땀이 엄청났다. 그 정도로 땀을 흘렸다면 탈수증세가 올지도 모르니, 물이 필요할 거다. 가지고 가자!!

나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안을 뒤져보니, 운 좋게도 500ml 페트병의 물이 보였다.

누구 건지 모르겠지만 빌리겠다!! 브라더 거라면 미안하다!! 나중에 사서 되돌려놓겠다!!

그걸 움켜쥐고 거칠게 문을 닫으며 2층으로 뛰어갔다. 살짝 숨을 헉헉거리며 방으로 돌아가서, 파자마를 엄마에게 건넸다. 하지만 엄마는 눈썹을 찌푸린 채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 손에는 아까 오소마츠의 겨드랑이에 끼웠던 체온계가 들려 있었다.

 

[, 얼마나 나는가?]

[.....38.4도네.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나을지도]

 

엄마는 체온계를 구급상자에 넣으며 말했다. 그걸 본 나는 부탁받은 파자마를 엄마에게 다시 건넸다. 엄마가 파자마를 받아들며 내가 들고 온 페트병을 바라보았따.

 

[어머, 물도 가지고 온 거니? 고마워]

[필요할 것 같아서...나도 갈아입히는 거 돕겠다]

[부탁할게. 나는 오소마츠 몸을 닦을테니 갈아입히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오소마츠의 파카를 재빠르게 벗겼다. 생각보다 옷이 땀에 축축하게 젖은 탓에 몸에 달라붙어 벗기기 힘든 듯했다. 옷을 다 벗긴 엄마가 오소마츠의 몸을 닦았다. 오소마츠는 피부에 닿는 차가운 수건의 감촉이 좋았는지,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점점 풀렸다. 엄마는 오소마츠의 상반신을 다 닦고,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곤 수건을 바꿔 아까처럼 찐득하게 젖은 몸을 닦아나갔다. 나는 페트병을 다다미에 놓아두고 엄마가 하반신을 닦는 사이 파자마 상의를 입혔다. 파자마를 오소마츠 위에 덮어씌워 축 늘어진 팔을 알맞게 끼워 입혔다. 단추를 다 채우자 마침 엄마도 다 끝났는지 얼음물에 수건을 담갔다. 나는 계속해서 바지를 갈아입혔다. 완전히 다 갈아입히자, 엄마는 오소마츠를 조심히 안아 올렸다.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물 가져왔으니까 마시렴]

 

나는 페트병을 뚜껑을 열어 엄마에게 건넸다. 오소마츠가 눈을 뜬 걸 확인한 엄마는 페트병을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오소마츠는 양손으로 병을 잡아 입에 대고 천천히 목을 축였다. 꿀꺽이는 소리가 나고, 페트병 안의 물이 4분의 1 정도 마신 오소마츠는 엄마에게 병을 건넸다. 엄마는 병을 받아들고 다시 오소마츠를 이불 위에 천천히 눕혔다.

 

[오소마츠, 머리나 배가 아프지는 않니?]

[...... ......괜찮..................]

 

오소마츠가 띄엄띄엄 대답을 하자, 엄마는 오소마츠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얼음물로 차가워진 수건을 꽉 짜내어 오소마츠의 이마에 내려놓았다. 나는 페트병을 받아 뚜껑을 닫았다.

 

[이걸로 괜찮겠지. 일단 상태를 지켜보자]

[고마워. 엄마]

[너도 수고했어. 잘했어]

 

어느새 오소마츠의 호흡이 안정됐다.

엄마가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을 뿐. 나 혼자였다면 이렇게 제대로 대처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엄마가 집에 있어 살았다. 우리가 어릴 때 열이 나거나 하면, 이런 식으로 간호했던 걸까. 역이 우리들의 엄마다. 이렇게 엄마에게 쓰다듬어지는 것도 오랜만이군. 나는 뭔가 수줍어져 살짝 웃었다.

 

 

 

 

결국 저녁이 되어버렸다.

장을 보고 돌아온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는 집에 아무도 없는 걸 의아하게 여겨 오소마츠 방을 살피러 왔다. 이불에 누워 엄마의 간호를 받고 있는 오소마츠형을 보고 놀란 눈치다. 놀라는 것도 당연하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바싹 다가와 물어오는 동생들을 나는 옆방으로 끌고 가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모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문득 창밖을 보니,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치마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군. 투둑투둑 비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동생들의 대화소리에 섞여들어 희미하게 울려퍼졌다.

동생들에게 설명한 뒤, 거실로 내려가 다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려 했지만 어째선지 내키지 않았다. 기분이 마치 바깥 날씨 같았다. 오소마츠의 상태가 계속 신경이 쓰여, 결국 나는 오소마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에게 상태를 묻자, 열은 거의 내려갔다고 했다. 딱 봐도 호흡이 안정된 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능한 옆에 있고 싶어서, 오늘만은 오소마츠의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때때로 오소마츠의 상태를 묻곤 했던 나를 알기에, 엄마는 내게 오소마츠의 간호를 맡겼다. 엄마는 중간중간 물수건을 바꿀 것과,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를 부를 것 등의 말을 남기곤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나는 엄마가 말한 대로 몇 번씩이나 부지런히 물수건을 교체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점차 방도 어둑어둑해졌다.

슬슬 불을 켜야겠지? 하지만 오소마츠는 자고 있으니까.... 모처럼 잘 자고 있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다. 쿨쿨 잔느 오소마츠의 뺨을 쓰다듬자, 아까 만졌을 때보다 체온이 떨어진 게 느껴졌다.

다행이다. 이대로 괜찮아지면 좋겠는데.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한 탓일까,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참지 못하고 후아암~ 하고 크게 하품을 한다.

이런. 완전 졸려. 오소마츠의 열도 내린 것 같고, 잠시 눈 좀 붙일까. 나는 오소마츠 옆에 누워 무거워진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후으...................우윽.............]

 

괴로운 신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으으응.....자버렸군.

몽롱한 의식으로 눈을 떴지만,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잔 거지...........자기 전에 뭘 했더라..........

그래.......오소마츠의 간호를..........

!!!

 

나는 바닥을 짚으며 벌떡 일어났다.

설마라고 할 것도 없지만, 방금 그건 오소마츠의 소리!?

나는 황급히 방의 불을 켰다. 그러자 거기에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작게 신음하고 있는 오소마츠가 보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땐 정면으로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엎드린 채다. 엎어졌을 때 떨어진 건지 수건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는 재빨리 오소마츠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나!? 어디가 아픈가?!]

[우으.......................]

 

내가 수건을 갈아주는 걸 잊어서 그런 건가!? 자버렸으니까.........!! 부탁이니 죽지만 말아다오!!

견디기 힘든 죄악감에 나는 울상이 되어 오소마츠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힘겹게 눈을 뜨고는 작은 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했다.

 

[속이, , 좋아...........................]

[속이 안 좋은가!? 봉지 가져올테니 기다려라!!]

 

나는 황급히 방을 뛰쳐나가 계단을 내려갔다. 쿵쾅쿵쾅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내려온 탓에 쵸로마츠가 거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쿵쾅쿵쾅 시끄러워. 어라, 카라마츠형? 쥬시마츠라고 생각했는데]

[, 엄마, 엄마는!?]

[........저녁 준비하고 있을 걸...]

 

쵸로마츠의 답을 듣자마자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으로 가자 엄마가 칼로 야채를 썰고 있었다.

 

[엄마!! 오소마츠형이 토할 것 같은 모양이다!! 봉지!! 봉지를!!]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야채를 썰던 손을 멈추고 바로 봉지를 꺼내주었다. 그리곤 그걸 내게 건네주며,

 

[엄마도 나중에 상태 보러 갈테니까. 그때까지 좀 부탁할게]

[고마워, 엄마!! 맡겨줘!!]

 

나는 재빨리 부엌을 나와 오소마츠가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곤 엎어져 있는 오소마츠에게로 달려갔다.

 

[많이 기다렸지!! 토할 것 같은가!?]

[구으...................]

 

나는 토하기 쉽게 오소마츠를 일으켜 세우려 손을 뻗었다. ,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멈춰 버렸다.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도 역시 싫겠지........아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오소마츠에게 손을 뻗었다. 싫어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그럴 여유조차 없는 모양이다.

일단 엎어진 오소마츠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안아 일으켰다. 오소마츠를 이불 위에 앉히고, 엄마에게 받은 봉지를 벌려 오소마츠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까 반응이 없었기에 만져도 괜찮겠다 생각해, 나는 오소마츠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괜찮은가? 토할 것 같으면 거기에 토해라]

[우으.....................]

 

오소마츠가 봉지 앞에서 괴로운 듯 신음했다. 오소마츠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잠들기 전에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지금은 핏기가 싹 가신 듯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열 다음은 구토기인가. 헛되게 체력을 뺏긴 오소마츠를 보고 있자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면 좋으련만.

 

[후윽.........!! 우에에에에에에에엑!!]

 

오소마츠는 몇 번인가 불규칙하게 봉지에 대로 토했다. 쓰러져서 아무것도 못 먹은 탓에 위액만 토해냈다. 내놓을 것도 없는데 쥐어짜진 위에, 오소마츠의 체력은 상당히 소모됐다. 굉장한 고통에, 오소마츠의 뺨에 눈물 타고 흘렀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리적으로 나온 거겠지. 나는 새로운 수건을 들어 눈물을 살짝 닦아주었다.

 

[하아...............]

[어떤가? 아직도 토할 것 같은가?]

[.......괴로.......]

 

진정한 듯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시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바라면서 다시 오소마츠의 등을 쓸어주었다.

보고 있는 것밖에 못하다니. 너무도 답답하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엄마가 온 듯하다.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

 

[오소마츠의 상태는 어떠니?]

 

엄마가 오소마츠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봉투를 향해 불규칙적으로 구역질을 해대는 오소마츠를 본 엄마는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괴로워 보이네. 어때? 열은 좀 내려갔니?]

[아직 체온계로 재보지는 않아서 모르겠다만 내려간 것 같다]

[그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에서 나갔다. 복도까지 나간 엄마는 뒤돌아보며 내게 말을 걸었다.

 

[바로 돌아올테니까, 오소마츠 좀 부탁할게. , 체온계로 열도 좀 재두고]

 

그렇게 말하곤 계단을 내려갔다. 뭘 가지러 간 걸까..

일단 체온계부터 가져오자. 나는 오소마츠한테서 떨어져 구급상자를 열어 체온계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들고 오소마츠에게 되돌아갔다.

 

[잠깐 실례하겠다]

 

나는 오소마츠의 파자마 단추를 2개 정도 열고, 체온계를 옆구리에 끼웠다.

 

[체온을 재겠다. 잠깐만 이걸 끼고 있어라]

 

그렇게 말하자 오소마츠는 슬쩍 팔을 내려 체온계를 옆구리로 꽉 붙들었다. 마침 2번째 큰 구토감이 밀려왔는지 크게 구역질을 했다.

 

[......!! 구으........!!]

 

나는 불규칙적으로 튀어오르는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솔직히 보고 싶지 않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팠다.

 

[괜찮....지 않겠지.... 힘내라..]

[.....! 오에에에에에엑!!!]

 

다시 오소마츠는 봉지를 향해 구토했다. 하지만 아까보단 양이 적었다. 토한 후라서 위도 조금 진정했는지 횟수도 줄어들었다.

 

[읏하아, 하아..........힘들엇......]

[괴롭겠지. 수고했다]

 

등을 계속해서 쓰다듬고 있자, 엄마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 타이밍에 삐빅, 하고 체온계가 울렸다. 나는 다시 오소마츠의 가슴 쪽으로 손을 뻗어 체온계를 빼냈다. 체온계를 보니, 36.8도였다.

다행이다, 열은 내려간 것 같다.

나는 오소마츠의 체온을 엄마게에 알리고, 오소마츠가 토한 봉투를 받아들어 새로운 봉투로 바꿔주었다.

 

[전화로 확인해보니 아카츠카 병원 아직 열려있대. 열은 내린 것 같지만 역시 가봐야할 것 같아서]

 

엄마는 오소마츠의 이마에서 떨어진 수건을 주워들어 주변을 간단히 정리했다. 나도 체온계를 구급상자에 다시 돌려놓았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오소마츠의 입가를 수건으로 닦고 내게 말했다.

 

[카라마츠도 따라오렴]

[물론이지!! 엄마!]

[덕분에 살았어. 이 상태라면 스스로 일어서는 것도 힘들테니까, 차로 좀 옮겨주렴]

[걱정마라, 내게 맡겨줘!]

[그럼, 오소마츠를 등에 업혀줄테니까, 거기 앉아보렴]

 

나는 오소마츠를 등지고 앉았다. 그러자 등이 따스해졌다. 부시럭 소리가 나며 봉투를 쥔 손이 목에 둘러진다. 오소마츠의 구토기는 진정된 것 같지만, 작게 신음하고 있었다.

 

[읏차. , 오소마츠. 카라마츠한테 제대로 업히렴. 떨어질라]

 

엄마 말에, 오소마츠가 힘을 살짝 줘서 껴안는다.

오소마츠를 업고 조심히 계단을 내려가 그대로 현관으로 향한다. 재빠르게 다리만 움직여 신발을 신고, 오소마츠를 다시 고쳐 업는다.

뒤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거실에서 나온다. 아마 봉투를 버리고 지갑이나 휴대폰을 챙겨 온 거겠지. 거실에서 나온 엄마 뒤에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따라 나왔다. 내 등에 축 늘어져 업힌 오소마츠를 보고 상당히 놀란 듯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오소마츠형 괜찮아!? 죽은 거 아니지!?]

[형 엄청 힘들어 보여..]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우으.............]

 

내 어깨에서 가냘픈 숨소리를 내던 오소마츠는 동생들에게 반응할 기력도 없는지 작게 신음만 했다.

이거 진짜 위험한 거 아닌가? 빨리 병원에 가서 진찰 받아야겠어....!!

 

[아카츠카 병원에 갔다 올게. 가능한 빨리 올테니까 저녁밥 조금 기다리렴]

[다녀오겠다]

 

걱정스레 바라보는 동생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차에 가자 엄마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충격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오소마츠를 좌석에 눕혔다.

 

[후으........하아........]

[조금만 참아라]

 

문을 닫고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했다. 엄마가 차에 시동을 켰고, 우리는 아카츠카 병원으로 향했다.

 

 

 

 

아카츠카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오소마츠는, 속도 안 좋은데 차가 흔들려서인지 멀미를 심하게 해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얼굴은 완전히 새파랗게 질렸고, 기적적으로 아직까지 손에 들린 봉투에는 살짝 위액이 차있었다. 오소마츠를 다시 등에 업었지만, 이젠 날 붙잡을 힘도 없는지 팔을 그냥 걸치고만 있었다.

잘못해서 떨어뜨리지 않도록 구부정한 자세로 엄마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오소마츠를 업고 진찰실로 들어가자, 의사는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사의 지시대로 의자가 아닌 근처에 있는 침대에 오소마츠를 눕혔다. 의사는 오소마츠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엄마와 얘기를 나눴지만, 결국 확실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낮에 열이 났었는데, 그게 감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의사가 탈수 증세가 있는 것 같다며, 오늘은 일단 수액을 맞고 상태를 지켜보자며 오소마츠에게 링거 주사를 팔에 꽂았다. 수액을 다 맞자, 접수처에서 엄마가 구역질을 막는 약의 처방전을 받아왔다. 체력이 어느 정도 붙어 쿨쿨 잠든 오소마츠를 보니, 여기에 왔을 때보다 안색이 편해진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 잠든 오소마츠를 업고 다시 뒷좌석에 눕힌 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자 우리들이 아카츠카 병원에 간 사이 이치마츠도 돌아온 듯, 동생 전원이 집앞까지 마중나와 있었다. 현관에 모여 눈썹을 축 늘어뜨린 동생들을 지나 2층으로 갔다.

미안하다, 브라더. 걱정하는 건 알겠다만, 일단 오소마츠를 눕혀야 하니까 말이다. 나중에 다 설명할테니 지금은 조금만 기다려주게. 그 전에 마미가 얘기해주겠지만.

계단을 올라 오소마츠 방으로 가서 아직 그대로 깔려 있는 이불에 오소마츠를 천천히 눕혔다. 아까 병원에서 열을 쟀을 땐 평균 체온이었으니 아마 괜찮겠지. 아직도 구역질이 나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이 추우면 또 열이 날지도 모르니, 이불을 꼭 덮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토닥토닥, 오소마츠의 가슴부근을 가볍게 두드리자, 졸린 듯 감긴 눈이 슬쩍 열린다.

설마 깨워버린 건가?

 

[미안하다. 깨워버린 건가]

[...아니. 괜찮아]

 

오소마츠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냥 저절로 눈이 떠진 거라며 눈을 살짝 찡그렸다.

 

[상태는 어떤가?]

[....아직 조금, 속이 안 좋은...것 같아..]

[...그런가.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으니, 이걸 먹어라]

 

나는 차에서 내릴 때 엄마한테 받은 처방전을 아카츠카 병원에 속한 약국에 가져가 알약을 받아왔다.

아 맞아, .......

방을 둘러봤지만 물은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가기 전에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둔 모양이다. 1층에 내려가 봐야겠군. 약을 먹으려면 뭘 먹는 게 위에 부담도 안 갈테고.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지. 뭐 먹을 수 있겠는가?]

[.....필요없어]

 

그럴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소식을 했던 게 위에 상당한 부담을 줬을 거다. 게다가 오늘 구토까지 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먹일 수는 없다.

 

[약만 먹으면 위에 안 좋다고]

[....................]

 

내가 그렇게 말하자, 조금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나는 무언의 반항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먹어도 토할 것 같아서 싫은 건 이해하겠다만, 그래도 약을 먹지 않으면 계속 괴로울 거다]

[...............알겠어]

 

살짝 저항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납득한 듯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간호하고 있을 때 쵸로마츠들이 장을 보러 가서 푸딩이랑 젤리를 사왔다고 했었지?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 엄마가 그랬었으니까.

 

[젤리랑 푸딩 어느게 좋은가?]

[.....젤리, 무슨 맛?]

[아마 복숭아일 거다]

[.....그럼 젤리로]

[알겠다. 금방 돌아오겠다]

 

나는 물과 젤리를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쵸로마츠가 방에 들어왔다. 쵸로마츠의 발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카라마츠. 오소마츠형 어때, 괜찮대?]

[쵸로마츠인가. 열은 내렸지만 아직 속이 안 좋은 모양이다]

[....그래. , 이거 엄마가 갖다주래]

 

쵸로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가까이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손에 들린 건 복숭아맛 젤리와 물이었다. 아까 오소마츠가 말했던 젤리와 물을 쵸로마츠가 대신 가져온 덕분에, 가지러 가려 일어섰던 나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물은 그렇다 치지만, 젤리는 어떻게 알고 가져온 거지?!

타이밍이 맞아서 우리들 얘기를 듣고 가져온 건 아닐테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날 쵸로마츠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뭔가 떠오른 듯 눈썹을 축 내리고 나와 오소마츠를 향해 머뭇거리며 말했다.

 

[......설마 푸딩이 더 좋았어..? 다시 가져올까?]

[아니, 그거면 됐다. 아니 오히려 그거여야 한다. 오소마츠가 그걸 원했거든]

[그래? 그럼 다행이고. 뭘 가져갈까 고민했는데, 어쩐지 이게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느낌으로 가져온 건가. 쵸로마츠라면 둘 다 가져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정말 이럴 땐 여섯 쌍둥이란 걸 실감한단 말이지.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 나도 가끔 경험하니까 이해한다.

예전에, 어쩐지 감자칩이 먹고 싶어져서 사들고 집에 와서 먹고 있으니, 형제들이 다 하나같이 손에 감자칩을 들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음식에 관한 것만 치자면 2자릿수는 훨씬 넘고도 남을 것이다.

 

[약 먹어야 하잖아? 그럼 이거 조금이라도 먹어]

 

그렇게 말하는 쵸로마츠를 슬쩍 본 나는 오소마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소마츠, 일어날 수 있겠는가?]

[.....]

 

오소마츠는 짧게 답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는 아직 조금 졸린 듯 눈을 천천히 꿈뻑거렸다. 쵸로마츠가 숟가락으로 젤리를 떠서 오소마츠에게 내밀었다.

 

[, - ]

[-...]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순순히 입을 벌렸다. 입에 젤리를 넣자, 우물우물 씹기 시작하는 오소마츠는 몇 번인가 씹어 삼키더니 입을 꾹 다물곤 열지를 않았다. 그리곤 숟가락을 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이제 됐어]

[...반쯤 먹었으니 괜찮겠지]

 

쵸로마츠의 손에 들린 젤리를 보니, 3분의 2 정도 줄어있다. 이 정도 먹었으니 충분하겠지.

나는 쵸로마츠한테 눈짓을 하며 아까 꺼낸 알약을 오소마츠에게 줬다. 쵸로마츠는 먹다만 젤리를 바닥에 두고 물이 든 페트병 뚜껑을 따서 비어있는 오소마츠의 반대쪽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 먹으면 속이 좀 편해질 거다]

 

오소마츠는 약을 입에 털어넣고 페트병을 기울여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약을 삼킨 오소마츠는 페트병을 입에서 떼고 쵸로마츠에게 건넸다.

 

[지쳤지. 이제 푹 쉬어라]

[오소마츠형,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해]

[.......]

 

대충 식사를 마친 오소마츠를 다시 이불에 눕히고, 쵸로마츠가 이불을 오소마츠의 턱밑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오소마츠는 작게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꿈속으로 떠난 오소마츠를 본 나와 쵸로마츠는 얼굴을 마주보며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빨리 건강해지면 좋겠네]

[그러게]

[, 엄마가 곧 저녁 다 된다고 하던데. 아마 지금쯤 다 됐지 않았을까. 밑에 내려가자]

[그렇다면 내려가야지. 가자, 쵸로마츠]

 

쵸로마츠가 젤리와 페트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나도 일어나려다, 어쩐지, 정말 어쩐지 그냥 만지고 싶어져서 오소마츠의 뺨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는 쵸로마츠의 뒤를 따라 재빨리 방을 떠났다.

 

 

 

 

 

아카츠카 병원의 약 덕분인지 가족들의 간호 덕분인지 오소마츠형은 점점 상태가 좋아졌다. 오소마츠형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온 지 딱 2일째가 됐다. 우리들은 늘 그렇듯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때 엄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거실로 들어왔다.

이걸 데자뷰라고 할까. 나쁜 느낌은 안 들지만, 어쩐지 오소마츠형에 관한 일임을 짐작했다. 지금 단계에서 예상하긴 힘들지만.

엄마는 우리들이 전부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에 대한 건데]

 

, 역시나. 딱 보면 안다니까.

특히 안 좋은 일에 관해서는 더욱 더.

 

[아카츠카 병원에서 오소마츠의 열이나 구토의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던 거, 전에 말했었지. 그 원인 말인데...]

 

누군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순간적으로 살짝 머뭇거리더니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있다더라고....]

 

엄마의 말에 우리들은 서로 마주봤다.

스트레스..... 그 원인으로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

우리들이었다.

 

[역시 억지로 참고 있었나 봐]

 

엄마가 말하기 괴로운 듯 눈썹을 내리깔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해는 간다.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나도 눈썹을 축 내리까는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두려워했으니까.

 

 

[너희들이 걱정하는 건 안단다. 엄마니까. 하지만, 지금 그 애한테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 건 역효과일 뿐이야. 당분간은 잠자코 있어주렴]

 

침묵이 우리들을 감쌌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침울한 표정으로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알겠어. 엄마]

 

먼저 침묵을 깬 건 카라마츠였다. 나도 뭔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조용히 말을 삼켰다.

이건 지금 할 말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다들 똑같을 거다.

 

[오소마츠를 만나지 말라고까지는 안 할게. 방에 찾아가는 횟수를 줄였으면 하는 것뿐이니까.

오소마츠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이제 우리들이 모인 거실에는 오지 않겠지.

이것만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그렇게 타일렀다.

 

 

 

 

* * *

 

 

 

 

기분 좋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그 다정한 손길이 마치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는 듯 조심스럽다.

 

잠겨있던 의식이 점차 돌아오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좀 더 쓰다듬어 줬으면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막 잠에서 깨어 흐릿한 시야 너머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몸을 일으켜 남아있는 잠을 쫓아내려 눈을 부릅뜬다. 아무래도 나는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든 모양이다.

어째선지 움직임이 없는 상대에, 시선을 돌려 멍한 의식으로 쳐다봤다. 상대가 살짝 떨고 있는 걸 보고, 나는 겨우 그 상대가 오소마츠임을 알아챘다. 멍한 표정을 숨길 생각도 않고 중얼거렸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형님?]

[!!]

 

내 말에 반응한 오소마츠는 다시 한 번 몸을 움찔하고 떨며 당황했다. 갈 곳 잃은 손이 허공을 맴돈다.

 

[.....그게.........,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갔다.

뛰면 위험하다, 라고 불러 세울 틈도 없이 오소마츠는 이미 방 저편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옆방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의문과 함께 방에 혼자 남겨진 나는 멍한 머리를 열심히 굴려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그 답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이 1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2시부터 쥬시마츠와 나가기로 했으니 슬슬 준비해야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올려 기지개를 켰다. 앉아서 잔 탓에 뻐근해진 등이 뚜둑뚜둑 소리를 냈다.

 

 

이제 곧 쥬시마츠와의 약속 시간이다.

준비를 마친 나는 2층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참고로 쥬시마츠는 아침부터 배트를 휘두르러 간 모양이었다. 제대로 시간 맞춰서 돌아오려나. 아마 돌아오겠지. 쥬시마츠니까 날아서라도 돌아올 거다. 실제로 단 한번도 늦게 온 적이 없었으니까. 어느 의미로 존경스럽다. 대부분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이지 지루하다. 팔꿈치를 탁자에 대고 턱을 괸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다. 거실에는 나뿐이다. 나와 오소마츠 말고는 다 외출한 듯, 아까 현관을 슬쩍 보니 신발이 없었다.

.....그래. 거울이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야겠군. 그거라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우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바로 행동에 옮겼다. 2층방으로 돌아가 마음에 든 파란색 손거울을 서랍에서 꺼낸 뒤 서랍문을 닫았다. 그리곤 재빨리 거실로 돌아가 아까 앉았던 곳에 다시 앉았다. 나는 평소처럼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으음~. 오늘의 나도 정말 멋있군. 변함없이 COOL하다.

나는 손거울의 각도를 바꾸거나, 포즈를 취하는 등 거울 속의 나에게 심취했다. 그렇게 한동안 심취해있자, 현관에서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쥬시마츠가 돌아온 거겠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좀 더 즐기고 싶었다만...

손거울에서 시선을 돌려 시계를 보자, 2시였다. 드르륵 현관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우다다, 하고 기운 넘치는 발소리를 내며 쥬시마츠가 거실에 들어왔다.

 

[다녀왔스루!!]

[어서와, 쥬시마츠]

 

나는 쥬시마츠를 보며 손거울을 탁자에 내려뒀다.

 

[카라마츠형!! 준비 다 됐어!?]

[물론이다, 브라더-. 언제라도 출발해도 된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옷 갈아입고 올게!]

 

내 답을 듣기도 전에 쌩하니 거실을 나가는 쥬시마츠.

그럼, 쥬시마츠가 옷 갈아입고 오는 동안 거울을 치워야겠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또 다시 우다다 하는 발소리가 나면서 쥬시마츠가 거실로 돌아왔다. 유니폼에서 낯익은 노란색 후드로 갈아입은 쥬시마츠.

몇 분....아니 몇 초만에 옷을 갈아입었다고!? 놀란 내게 쥬시마츠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래? 카라마츠형]

[...?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이유는 간단!! 그건 내가 쥬시마츠니까!]

[...그런가]

 

왠지 나는 그 어처구니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됐다.

쥬시마츠라면 가능하지.

 

[준비 다 됐으면 가자!]

 

쥬시마츠가 옷자락에 감춰진 손을 뻗어 재빠르게 내 팔을 잡아 밖으로 끌고 갔다.

여전히 아이 같군, 아니, 지금 그럴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여차하면 끌려갈 정도의 힘이다. 보는 것만으론 그 힘을 알 수 없겠지만.

 

[논논논, 쥬시마-?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목적지는 도망치지 않는다고~? 그러니 일단 이 손 좀 놓겠나]

[아이!!]

 

내 말을 들은 쥬시마츠는 재빨리 손을 놓았다. 나는 거실을 나가 현관으로 향했다. 내 뒤를 쥬시마츠가 깡총거리며 따라왔다.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왔다.

밖은 아주 쾌청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파칭코나 카라마츠 girls를 만나러 가지 않았군. 나도 모르게 그렇게나 오소마츠를 간호했던 건가. 이제 간호할 필요 없고, 게다가 앞으로는....... 어쩐지 그 뒤는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 생각하길 그만뒀다.

집을 나선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내 뒤를 따라오던 쥬시마츠가 내 옆으로 와서 발을 맞춰 걸었다. 그런 쥬시마츠를 흘끗 보곤 신경 쓰였던 걸 물었다.

 

[저기, 데카판 박사란 어떤 사람인가]

 

오늘, 쥬시마츠와 갈 곳은 파칭코가 아니다. 쥬시마츠와 친하게 지내는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를 가보기로 했다. 어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쥬시마츠가 같이 가자고 권유를 했다. 특별한 예정도 없었던 나는 쥬시마츠의 권유를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그게 말이야-! 데카판 박사는 엄청난 사람이야!! 뭐든 만들어!]

[그런가]

[기분약도 데카판 박사가 만든 거야!! 굉장하지-!!]

[? ...........아아, 굉장한 사람이군]

 

손을 활짝 벌리며 웃는 쥬시마츠에 나는 그렇구나, 라며 맞장구를 쳤다.

방금 전에 말한 기분약이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굉장한 약인 건 틀림없다. 잠시 쥬시마츠와 정신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으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쥬시마츠가 발을 멈춰, 나도 따라 멈춰 섰다.

 

[도착했어!! 여기가 박사의 연구소야!]

 

쥬시마츠가 붕붕 소매를 흔들며 연구소를 가리켰다.

시선을 옮기자 거기엔 하얀색 건물이 있었다. 연구소라고 들었는데, 상상과는 달리 별거 없는 건물이었다. 쥬시마츠는 뿅뿅 뛰듯이 계단을 올라가 건물 앞에 섰다. 그러자 자동문인지 문이 좌우로 스르륵 열렸다. 나도 쥬시마츠를 따라 건물 앞으로 갔다.

 

[이리오너라-!! 이리오너라-!]

 

연구소 입구에서 쥬시마츠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커다란 트렁크에 백의를 걸친 남성이 나타났다. 이 사람이 쥬시마츠가 말한 데카판 박사인 걸까. 남성은 우리들 쪽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그래도 저 차림은 너무 춥지 않은가?

 

[호에호에. 쥬시마츠군다스까!!]

[안녕! 데카판박사!]

[. 안녕이다스]

 

쥬시마츠는 데카판 박사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내게 시선을 돌리곤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 뭔가? 나도 인사하라는 건가?

 

[-, 처음 뵙겠습니다. 카라마츠입니다]

[호에. 처음 뵙겠다스. 데카판 박사다스]

 

데카판 박사는 나와 인사를 하곤 웃으며 우리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데카판 박사의 안내를 받아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마침 일도 끝난 참이었다스. 오늘은 무슨 일로 왔다스?]

[그냥!! 그치만 뭔가 재밌는 약 같은 거 있어??]

[호에호에. 잠깐 기다려 보라다스]

 

그렇게 말한 데카판 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선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알약이 든 병 4개 정도를 양손으로 들고 돌아와 그걸 탁자에 놓았다. 병들이 부딪혀 카랑, 하는 소리가 났다.

 

[이게 추천작이다스. 몸에 피해는 없으니 걱정은 말라다스. 그 전에 이걸 먼저 봤으면 한다스]

 

데카판 박사가 4개의 병들 중, 특별할 것도 없는 흰색 알약이 든 라벨 없는 병을 꺼내, , 하고 우리들 앞에 내려놓았다.

 

[이걸 오소마츠군에게 줬으면 한다스]

[!?]

 

갑자기 오소마츠의 이름이 나와 나는 무심코 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데카판 박사는 오소마츠를 만난 건가!?

쥬시마츠가 눈앞에 놓인 알약이 든 병을 받았다.

 

[알겠어!! 줄게!!]

[, 자자, 잠깐만 쥬시마~~? 그건 무슨 약인가~?]

[몰라-]

[Oh.........]

 

나는 머리를 싸맸다.

설마 하던 답이 돌아왔다. 이래선 납득을 할 수가 없잖나.

게다가 뭔가 찝찝하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안 좋은 예감이 맞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데카판 박사에게 약의 용도를 물으려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데카판 박사. 이건 무슨 약인가?]

[이건 정반대약이다스. 상대방을 향한 마음을 정반대로 바꾸는 약이다스]

 

그 답을 들은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뭐라고? 상대방을 향한 마음을 정반대로 만드는 약이라고?

설마....아니,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

정신 차리자.

 

[오소마츠한테 부탁받은 건가..?]

[그렇다스]

 

심상치 않은 내 심경의 변화에, 쥬시마츠가 헤아린 듯 걱정스러운 눈으로 잠자코 날 바라봤다.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던 나는 데카판 박사에게 질문을 했다.

 

[전에도 오소마츠한테 준 게 있는가?]

[있다스. 대개 한달에 한병씩 준다스]

 

한달에 한병?

점점 의문이 명확해진다.

마치 짙은 안개가 걷히는 듯하다.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언제부터, 준 건가?]

[작년부터 줬다스. 아마 1년 정도 된 것 같다스]

 

1.

그 단어를 들은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침내 알아냈다.

땀이 내 뺨을 타고 흘렀다.

빨리, 빨리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갑자기 벌떡 일어선 나를 쥬시마츠가 당황하며 올려다본다.

쥬시마츠, 미안하다. 모처럼 놀러 나왔는데.

하지만 빨리 돌아가야 한다.

나는 쥬시마츠의 팔을 잡아 일으켜, 쥬시마츠가 갖고 있던 병을 받아 들었다. 그걸 탁자에 세게 내려놓으며 데카판에게 말했다.

 

[모처럼 만들어줬는데 미안하지만, 이건 받을 수 없다]

[호에호에!? 갑자기 왜 그러는 거다스!?]

[이제 오소마츠에게 이 약은 주지 않을 거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알겠다스]

 

설마 거절당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듯 크게 놀란 데카판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걸 확인한 나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쥬시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가자, 쥬시마츠]

[!?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고, 카라마츠형!!]

[중요한 일이 생겼다. 다음에 또 오지]

[중요한 일? 그럼 어쩔 수 없네!! 알겠어!! 미안, 데카판 박사!! 우리들 이만 가볼게!!]

 

진지한 내 목소리에 쥬시마츠는 거리낌 없이 납득했다. 그리고 데카판 박사를 향해 쥬시마츠가 그렇게 말했다.

이해가 빨라 다행이다. 너의 그런 점이 정말 좋다.

 

[그렇슴까....알겠다스. 다음에 또 오라다스]

[물론이지!! 또 올게!!]

 

마지막으로 쥬시마츠가 데카판 박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쥬시마츠의 펄렁이는 소매를 잡아 빠른 걸음으로 연구소를 나왔다. 내 손에 끌려나온 쥬시마츠는 내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를 나와 멈추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일단 집에 가면 오소마츠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하자.

그 뒤에 쵸로마츠랑 이치마츠, 토도마츠에게 연락을 하자.

자세한 이야기는 모두 모였을 때 하는 게 좋겠지.

 

[...카라마츠형. 화났어?]

[그런 건 아니다. 네가 잘못한 건 더더욱 없고. 모두 오소마츠가 잘못한 거다]

 

쥬시마츠의 말대로 나는 화난 걸지도 모른다.

쥬시마츠의 소매를 끌며, 부글부글 치미는 감정이 속에 들끓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말할 여유도 없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꾹 다문 채 걷기만 했다.

 

 

 

 

 

 

아아.

 

나는 오늘도 평소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집에서 나가고 며칠이 지났을까.

-....오늘이 며칠인지, 몇시 몇분인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모든 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체내시계[각주:1]가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해, 감각을 알 수 없게 됐다.

왠지 모르겠지만 최근 식욕이 없다.

엄마한테는 미안해서 말하지 않았지만, 전에는 맛있기만 하던 밥이 요즘은 전혀 맛있지 않다.

맛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 걸 먹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워서, 날을 거듭할수록 점점 밥을 남기게 됐다.

억지로 먹은 날에는 구역질이 치밀어 참다못해 결국 토하고 만다.

 

미각상실에 거식증?

하핫. 그럴 리 없잖아.

농담이 지나치다고.

나는 카리스마 레전드 장남님인 걸.

이렇게 센 척을 해도 결국은 이 집에는 나 혼자.

그래. 이 집에는 나만 남았어.

 

 

......이제 장남이고 뭐고 관계없잖아.

 

 

 

 

 

하아.

 

안 된다. 이대로면 난 정말 망가지고 만다.

이미 충분히 엄마에게 걱정을 끼쳤을 테고.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쥬시마츠의 지인 중에 데카판 박사라고 굉장한 아저씨가 한명 있다던데.

언제인진 잊어버렸지만, 쥬시마츠가 즐거운 듯 얘기했던 기억이 있어.

쥬시마츠 말로는, 기분약의 개발자라고 했었지.

에스퍼 냥코가 상대의 기분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준 약.

굉장하잖아.

 

.....그 아저씨라면 지금의 내 상태를 어떻게든 해줄 약 같은 걸 줄지도 몰라.

쥬시마츠의 지인이니까 아마 좋은 사람이겠지.

 

 

 

 

가봐야겠어.

 

 

나는 뭔가에 사로잡힌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휘청휘청, 위태롭게 걸으며 쥬시마츠의 말을 더듬어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로 향했다

 

 

 

[데카판 박사 있어~?]

 

나는 쥬시마츠한테 들은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 위치를 필사적으로 떠올려 어떻게든 도착했다.

가려고 마음 먹으면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갈 수 있는 거구나.

내 부름과 동시에 연구소 자동문이 윙-, 하고 열리고 안에서 트렁크에 백의를 걸친 아저씨가 나왔다. 나를 보며 놀란 듯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호에!? 무슨 일이다스!? 자네, 안색이 안 좋다스!!]

[-....원래 이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보다 쥬시마츠 지금 있어?]

[호에호에. 쥬시마츠군이라면 일하러 나갔다스]

 

다행이다.

예상대로 쥬시마츠는 일하러 나갔구나.

역시 지금의 나는 보여줄 수 있을만한 상태가 아니니까 말이야.

모처럼 자립해서 나갔는데 쓸데없이 걱정 끼치고 싶진 않다.

....장남으로서 방해하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가능한 녀석들과 만나는 건 피하고 싶다.

 

[쥬시마츠군한테 용무가 있는 거라면 안에서 기다리겠다스?]

[-, 오늘은 데카판 박사를 보러 온 거야. , 오소마츠. 쥬시마츠의 형]

[그렇다스? 그럼, 사양 말고 들어오라다스]

 

데카판 박사는 초면인 나를 흔쾌히 연구소로 들였다. 데카판 박사는 나를 안으로 안내하며 손님용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라 권했다. 내가 순순히 자리에 앉자, 메이드 옷을 입은 아저씨가 트레이에 주스를 올려 들고왔다.

 

[다요-]

 

그걸 내 앞에 탁, 하고 내려놓고는 메이드복을 입은 아저씨는 발길을 돌려 돌아갔다. 데카판 박사도 내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내놓을 거면 주스 말고 술이나 내놓지,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 있자, 데카판 박사가 말을 꺼냈다.

 

[그래서, 무슨 일이다스?]

 

나는 주스를 바라보던 시선을 올려 데카판 박사를 쳐다봤다.

 

[쥬시마츠한테 들었는데, 기분약, 데카판 박사가 만든 거라며?]

[그렇다스!! 내가 만들었다스!]

[그럼 말이야, 엄청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미련을 끊는...그런 약 같은 건 없어? ,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엄청 곤란한 처지거든]

[요컨대, 소중한 사람들에게 미련이 있다는 거다스?]

[, 그렇지]

[-. 잠시 기다리라다스]

 

데카판 박사는 내 말을 듣자마자 의자에서 뛰어내리곤, 근처 찬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까 나한테 주스를 내어준 메이드도 찾는 걸 거들었다.

 

[있다스!!]

[다요옹~~]

 

조금 지나자 무사히 찾은 모양인지 병을 한손에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데카판 박사가 병을 내게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약은 정반대약이라는 거다스. 미련을 없애는 건 못하지만, 정반대의 마음을 갖게 되니까, 아마 미련자체를 갖지 않았던 걸로 할 수는 있을 거다스. 아쉽지만 오소마츠군의 요구에 맞는 약은 이것뿐이다스...]

 

가능하면 잊어버리는 계열의 약을 바랐지만, 지금의 내가 바뀔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

나는 데카판 박사한테 향해 표정을 그다지 바꾸지 않고 말을 걸었다.

 

[저기, 박사. 그거, 나한테 줄래?]

[갖고 싶은 거다스? , 내가 갖고 있어도 쓰지 않으니까 주겠다스!]

 

데카판 박사가 그 약을 내게 건네줬다. 양손으로 병을 받아든 나는 병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안에는 흰색의 알약이 잔뜩 있었다.

그냥 평범한 약으로 보이는데. 게다가 라벨도 없고.... 뭐어, 자세히 써져있는 것도 그런가.

 

[고마워. 역시 쥬시마츠랑 친하고 볼 일이네]

[반대로 바꾸고 싶은 마음을 상상하면서 복욕하면 된다스. 하루 1, 2알 먹으면 2일 가는 식의 약이다스. , 그리고 가급적 식후에 먹는게 좋다스]

[-]

[기본적으로 상대를 향한 마음을 반대로 하는 거지만, 좋아하는 건 싫게, 더 좋아하는 건 더 싫게 만드는 식으로 반대가 된다스. 마음이 크면 도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스. 잘 생각해서 복용하는 게 좋다스]

[-. 알겠어]

 

나는 반쯤 흘려들으며 맞장구를 쳤다. 얘기 길다고-, 라면서 약이 든 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긴 이야기는 지루해서 싫어하는데, 몸이 안 좋은 상태라 듣기가 힘든 나는 결국 얘기를 거의 흘려들었다.

모처럼 설명해줬는데 얘기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미안하지만.

 

어느새 약의 설명이 다 끝나고, 나는 약을 소중하게 들고 의자에서 내려와, 연구소 문으로 향했다.

이 약, 빨리 먹어보고 싶네. 조금은 생활패턴이 나아지면 좋겠는데.

배웅하러 데카판 박사와 메이드가 출구까지 따라나왔다. 밖으로 나가려 발을 한 발 내딛은 순간, 나는 무언가가 떠올라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 이런. 완전 잊어버릴 뻔했잖아.

 

[, 쥬시마츠한테는 내가 여기 왔다는 거 비밀이야]

[알겠다스]

 

데카판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나는 손을 흔들며 연구소를 나왔다.

쥬시마츠의 말대로 데카판 박사는 좋은 사람이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부탁해도 되겠지. 이 약의 효과에 달렸겠지만.

나는 집에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집에 돌아간 후, 밤까지 평소처럼 지붕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받은 약을 빨리 시험해보고 싶었지만, 신후에 먹으라고 했던 말이 걸려서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데카판 박사의 설명, 제대로 기억나는 건 이것뿐이지만.

하늘을 보고 있으니, 의외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 금방 날이 저물었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밤이다. 슬슬 추워지니 방으로 돌아갈까. 내가 방에 돌아가자, 마침 엄마가 밥먹으라며 부르러 왔다.

1층에 내려가 거실에서 혼자 저녁을 묵묵히 먹었다. 혼자서 먹는 이 분위기도 꽤 익숙해진 듯하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양이 적어진 저녁을 먹어치우고, 식기를 부엌으로 날랐다. 약을 먹기 위해 컵에 물을 담아 2층으로 올라갔다. 탁자 위에 컵을 두고 흰 알약이 든 병의 뚜껑을 열었다. 병을 기울여 톡톡 살짝 두드리자 알약 하나가 툭 떨어졌다. 병을 탁자에 내려두고 물이 든 컵을 들었다. 나는 희미하게 출렁이는 수면을 바라보았따.

 

이 약을 먹으면 뭔가가 변한다.

지금보다 훨씬 편해지겠지.

괴로운 거나 힘든 건 이제 끝이다.

 

나는 주저 않고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안녕. 지금까지의 나]

 

 

 

꿀꺽.

 

 

나는 각오를 다지며 약을 삼켰다.

 

 

 

 

 

* * *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소마츠의 신발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다.

우리들이 외출하기 전과 같은 위치에 빨간색 신발이 있다.

 

다행이다. 집에서 나가지 않은 것 같다.

그 다음 나는 핸드폰을 꺼내 쵸로마츠, 이치마츠, 토도마츠에게 오소마츠의 일로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돌아와라고 메일을 보냈다.

이걸로 이제 모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으려 하자,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 쵸로마츠한테 답신이 왔다.

벌써 답이 온 건가. 역시 쵸로마츠로군.

메일을 확인하니, 바로 갈게라 적혀있다. 그로부터 20분도 안 돼서 이치마츠와 토도마츠한테 답이 왔다. 쵸로마츠와 같은 답이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한숨을 내쉰 나는 데카판 박사한테 들은 얘기를 다시 떠올렸다. 우리들이 본가로 돌아왔을 때 엄마한테 들은 오소마츠가 우리를 무서워한다는 얘기.

 

그래.

엄마한테 들은 앨범사건이 대략 1년 전이다.

데카판 박사는 분명 상대를 향한 마음이 정반대가 되는 약이라고 했다.

정반대약을 그때부터 받아먹은 거라면....

평소에는 허세도 심하고 마음을 읽기 힘들지만,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큰 오소마츠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들을 두려워하게 된 계기가 이거라면, 모든 정황이 간단히 이해된다.

이 설이 진짜라면, 오소마츠는 지금도 그 약을 먹고 있을 것이다.

상태가 나아지질 않는 걸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그런데 왜 그 약을 먹은 거지?

오소마츠는 우리들이 싫어졌으면 했던 건가?

아니면 너를 두고 나가버린 우리들에게 화가 나서?

........모르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한들 소용이 없다.

어차피 몇 시간 후면 진상을 알게 될 거다.

나는 먼저 거실에 있던 쥬시마츠 옆에 앉았다.

 

 

 

 

[이 바보가!!]

 

내 얘기를 들은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을 박차고 나가려 했다. 그걸 쥬시마츠가 황급히 막았다.

 

[, 안돼안돼!! 진정해, 쵸로마츠형!!]

[쥬시마츠. 이거 놔. 녀석을 한 대 갈기지 않으면 내 분이 안 풀릴 것 같다고]

 

쵸로마츠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잘 보니 쵸로마츠의 주먹을 꽉 쥔 채 떨고 있었다. 내 자리에선 뒷모습만 보여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대충 어떤 표정인지 알 것 같았다.

쵸로마츠는 완전히 열이 받은 상태였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쵸로마츠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쵸로마츠, 기분은 알겠지만 일단 진정해라]

[.....!! 그치만!! 그치마안!!]

 

쵸로마츠는 내가 쥬시마츠에 가세해 자신을 말리자 괴로운 표정으로 외쳤다.

 

[그 자식, 나한테 영양제라고 했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먹어놓고!!

거짓말을 치다니 용서 못해!!]

[...................]

[.....그게, 정말이야?]

 

토도마츠가 작게 되물었다. 나는 처음 듣는 사실에 벙 쪄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쵸로마츠.....방금 말한 그 약을 먹는 걸 본 건가.

나는 쵸로마츠의 팔을 놓고 입을 열었다.

 

[평소처럼 2층에 있을 거다. 지금부터 오소마츠랑 얘기를 해볼 생각이다]

[!! 나도 갈래]

 

쵸로마츠가 달려들 듯 외쳤다. 그와 반대로 쥬시마츠는 눈썹을 늘어뜨린 채 입가에 손을 얹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럿이서 가면 무서워할 거야...]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형들만 갔다 와. 하고 싶은 말, 잔뜩 있잖아? 우리들은 밑에서 기다릴게.....제대로 전부 얘기하고 와]

 

토도마츠가 그렇게 말하자,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시선이 나와 쵸로마츠에게 모였다. 다들 반대하지 않는 듯 아무 말고 하지 않는다.

 

[물론이다, 브라더. 걱정하지 마라]

[알아버린 이상, 끝을 봐야지]

 

쵸로마츠를 데리고 나는 거실에서 나왔다. 걱정스런 표정의 동생들을 뒤로 하고 나와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있는 방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조심해달라는 엄마의 부탁 이후, 방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오소마츠의 방 앞까지 가서 멈춰 선 우리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안에 있을 오소마츠를 불렀다.

 

[오소마츠. 카라마츠랑 쵸로마츠다]

[..............]

[들어가지]

 

답은 없었지만 상관 않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방 중앙에 편히 앉은 오소마츠가 보였다.

근처에 널부러진 만화책들. 어깨에는 빨간색 담요가 걸쳐있다. 나와 쵸로마츠는 방안으로 들어가 오소마츠 앞에 섰다. 오소마츠는 방에 들어온 우릴 보고 놀라 어깨를 움찔하고 떨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우리를 바라보는 오소마츠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오늘 네게 중요한 할 말이 있다]

[뭔데.......?]

 

걱정스런 눈빛의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와 나를 번갈아 봤지만, 너무도 진지한 표정의 우리들이 무서웠던 건지 이내 시선을 피해버렸다.

 

[오소마츠형. 전에 영양제 먹었었지. 그거 어디 있어?]

[................저기 선반 위에, 있는데...]

 

작은 목소리로 답하는 오소마츠에, 나는 선반 앞으로 가 약을 찾았다. 약은 찾기 쉬운 곳에 놓여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걸 들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에 든 흰색 알약.

같은 병.

라벨도 없었다.

 

틀림 없다.

아까 데카판 박사의 연구소에서 봤던 것과 같은 약이다.

 

 

 

나는 그걸 한 손에 들고 오소마츠 앞으로 다시 돌아와 앉았다.

 

[오소마츠. 이건 이제 그만 먹어라]

[......?]

[이거, 영양제 아니잖아]

 

쵸로마츠도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오소마츠에, 내가 따지듯 물었다.

 

[데카판 박사한테 받은 약이잖아, 이거]

[어떻게...그걸.........]

[내가 데카판 박사한테 직접 들었으니까]

 

오소마츠는 이제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몸을 작게 웅크리곤 어깨에 걸치고 있던 담요를 꽉 움켜쥐었다.

 

[......................싫어]

 

오소마츠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내가 들고 있던 병을 빼앗으려는 듯 갑자기 손을 뻗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

 

[!! 돌려줘!! 돌려달라고!!!!!]

 

오소마츠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다. 그래도 나는 약을 꽉 잡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게 없으면 나는 다시 돌아갈 거야. 싫어, 그건 싫어, 싫다고!! 싫단 말이야!!!!!!]

[오소마츠!!!! 이건 이제 필요없다!!]

 

오소마츠는 마치 중독자처럼 약을 돌려달라 소리치며 손을 계속해서 뻗어왔다. 잠시 공방전이 이어졌지만, 내가 죽어도 돌려주지 않자 오소마츠는 포기하고 힘없이 손을 내렸다.

 

[.........어째서............]

[오소마츠. 너야말로 왜 그런 건가]

[오소마츠형은 우리들을 싫어하고 싶었던 거야?]

 

오소마츠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도무지 결착이 나지 않아 답답했던지 결국 쵸로마츠는 폭발해 오소마츠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매번 이런 식이지!! 왜 우리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 혼자서 전부 짊어지고!! 그렇게 우리들이..]

[쵸로마츠]

[.............]

 

잔뜩 열받은 쵸로마츠를 내가 말리자,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자코 있던 오소마츠가 입을 열었다.

 

[......................]

[?]

 

 

 

[......괴로웠어]

 

 

 

 

 

. 투둑.

 

 

다다미 위로 눈물이 떨어져 스며들었다.

오소마츠는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너희들이, 너희들이!! .....두고 갔으니까!!]

 

드문드문 내뱉는 물기 어린 말들이, 오소마츠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과 함께 다다미 위로 스며들었다.

 

[, 나는, 점점, 이상해졌어..!! 뭘 해도, 재미가 없고, 뭘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어]

 

고개를 숙여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오소마츠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말을 하는 걸까. 눈물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몇 번이나 말을 흐렸다.

 

[어차, 어차피, 너희들은, 언젠가 여길, 나갈, 거잖아! 그렇다면, 난 이대로 있고 싶어!!

내가 너희들을 싫어하는 채로, 두려워하는 채로 있으면...!! 더는, 더는 그런 생각,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오소마츠를 세게 끌어안았다. 오소마츠의 몸이 살짝 튀어 올랐다. 하지만 새어나오는 건 울음뿐. 약의 효과로 굉장히 싫을 텐데, 저항하지 않았다.

 

 

[이제 됐다. 네 마음,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오소마츠는 내게 안겨 안심한 건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쵸로마츠는 그런 오소마츠를 보고 화 낼 마음도 사라졌는지 눈썹만 축 늘어뜨리고 있다. 달래려 툭툭 등을 두드리자, 오소마츠는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옆에서 흐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뭔가를 전하려는 듯 오소마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으.........외로웠어!!]

[못 알아채서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했다]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했는데....!! 그랬는데...!! 다들 날 두고 가버리고!! ? 왜 두고 간 거야? 이 거짓말쟁이들!! 다 미워!! 완전 미워!!]

 

밉다며 울부짖으면서도, 오히려 내게 매달리듯 강하게 끌어안았다. 쵸로마츠가 내 어깨에 턱을 대며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니까 일하긴 해야 한다는 거, 알잖아?]

[알아, 안다고!! 하지만 집에서 나갈 필요는 없잖아! 나를 혼자 둘 필요는 없었잖아!!]

[오소마츠형........]

[바보!! -!!! 얼굴 보기도 싫어!! 저리 가!!]

 

엉엉 울며 말하는 오소마츠에게 위압감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던 탓인지, 쵸로마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눈썹만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내 품속에서 엉엉 우는 오소마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뭔가를 알아차렸다.

 

쵸로마츠가 나가기 전날의 일.

혼자 축하도 하지 않고 잠자코 밥만 먹던 오소마츠의 모습.

그건 화났던 게 아니었다.

 

 

참고 있었던 거였다.

 

마츠노 오소마츠이기 이전에 장남인 그는 자존심 때문에 자기 마음을 꾹 참은 결과, 당연하게도 축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거야. 진짜 바보네]

[우윽....................히끅, ]

[-, 이제 그만 울어. 못생겨진다?]

 

쵸로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흐느낄 때마다 떨리는 오소마츠의 눈가를 티슈로 닦았다. 아직 멈추지 않은 눈물이 소용없다는 듯 볼을 타고 흘렀다.

 

[괜찮아. 우리들은 이제 무리하게 집을 나가거나 하지 않아. 이제 오소마츠형을 혼자 두지 않아]

[.........정말?]

 

쵸로마츠의 말을 들은 오소마츠는 나와 쵸로마츠를 올려다봤다. 그 눈동자에 눈물이 불안함에 흔들렸다. 그걸 본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들은 여섯명이서 하나. 나는 너고 너는 나잖아? 그럼 함께여야지]

 

내 말에 오소마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뭔가 잘못 말했나?

뭔가 불안해져 쵸로마츠를 바라보자, 쵸로마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잘못했나.

달리 대체할 말을 찾고 있자, 오소마츠가 툭툭 내 가슴을 때렸다.

놀라울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바보!! 바보바보!!! 좀 더 빨리 깨달으라고!! 이 바보!!]

[아까부터 말이 험하잖아, 오소마츠형. 이젠 그냥 바보란 말밖에 안 해]

 

쵸로마츠가 다시 티슈로 오소마츠의 뺨을 닦았다. 나도 그에 가세하듯 툭툭 일정한 리듬으로 등을 두드렸다.

몇 분간 계속 등을 두드리자,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점점 진정되고 있는 듯하다. 오소마츠는 내 몸에 두르고 있던 팔에 힘을 빼며 천천히 내 품에서 떨어졌다.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던 온기가 사라져, 어쩐지 조금 쓸쓸하다.

왜 그러나 싶어 오소마츠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만족스러울 정도로 다 운 건지 눈가가 새빨갛다. 눈물은 이미 멎어있었다. 오소마츠가 겸연쩍은 듯 고개를 떨군 채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말하겠는데, 너희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 그렇게 강하지 않아. 센 척한 것뿐이라고. 겉보기만 그런 거야. 너희들은 장남이니까 괜찮겠지 생각했겠지만....그렇지 않아. 괜찮지, 않아...]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도 아무 말 않고 지켜본다.

 

[이렇게 의지가 안 되는 형아라...........미안...]

[......뭐야 이제 와서.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형이라니까. 이 바보장남]

 

옆에서 손이 뻗어나와 오소마츠의 뺨을 꼬집었다.

쵸로마츠였다.

 

[, 아흐아]

[이 정도는 참아. 마음 같아선 한껏 후드려패고 싶으니까]

[, .......]

 

쵸로마츠는 바로 손을 뗐다. 오소마츠는 꼬집힌 뺨을 쓰다듬으며, 무언가 결심한 듯 얼굴을 들고 나와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이제 날 혼자 두지 마]

 

 

일렁이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당연한 거 아닌가.

답은 하나다.

 

쵸로마츠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혼자 둘 리가 없잖아. 그치, 카라마츠]

[당연하지. 약속하겠다]

 

그 말에 오소마츠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버릇이던, 코 밑을 문지르면서.

오랜만에 본 오소마츠의 버릇. 대략 2년 반 만이다.

 

 

그걸 본 나와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역시 너는 웃는 게 제일 어울린다.

앞으로 계속 우리들에게 그 미소를 보여줘.

 

[.....시끄러]

[?]

 

내가 모르는 사이, 뒷말이 입밖으로 나와 버린 모양인지, 그걸 들은 오소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숙였다.

어쩐지 어색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저기, 오소마츠형. 안아도 돼?]

[.....그런 거 묻지 말라고. 해도..]

 

쵸로마츠가 그렇게 묻자 오소마츠는 부끄러운 듯 투덜거리면서도 양팔을 펼쳐보였다. 쵸로마츠는 웃으며 오소마츠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그리곤 꽈악, 부드럽게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오소마츠형의 냄새........뭔가 그립네]

[....냄새 맡지 마. 뭔가 부끄럽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소마츠는 싫지 않은지 쵸로마츠를 끌어안았다. 쵸로마츠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오소마츠형]

[.....?]

[..........내 이름, 불러줘]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말했다. 오소마츠는 잠시 머뭇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어 이름을 불렀다.

 

[........쵸로마츠]

[, 좀 더. , 불러줘]

[쵸로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

 

어리광부리는 강아지처럼 파고드는 쵸로마츠의 부탁대로 오소마츠는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쵸로마츠가 팔을 들어 눈가를 슥슥 비볐다.

 

[어라? 이상하네. 오소마츠형 눈물이 옮겨왔나........안 멈춰..]

 

쵸로마츠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오소마츠는 그런 쵸로마츠를 보며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못 생겨진다]

[그거 아까 내가 했던 말이잖아. 너한테 그런 말 듣기 싫거든]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걸 본 나는 어쩐지 혼자 버려진 기분이라 황급히 오소마츠에게 부탁했다.

쵸로마츠만이라니, 치사하다.

나도 오소마츠한테 이름 불리고 싶다.

 

[오소마츠!! 나도, 나도 이름 불러줘!!]

[.............싫어]

[, 어째선가 브라더-!!]

 

지금 상황이라면 분명 OK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하며 몸을 불쑥 내밀며 외쳤다.

그러자 오소마츠가 답했다.

 

[울 것 같은 걸. 카라마츠]

 

말을 끝내고서야 이름을 부른 걸 깨달은 듯 오소마츠는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오랜만에 이름을 불러준 게 기뻐 오소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더 불러도 좋다, 라고 하자 오소마츠는 오늘은 이걸로 끝!! 이라며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 날 이후, 오소마츠형은 약을 끊었다.

약을 끊은 덕분인지 이제 우리들을 보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기쁘게 웃으며 반응했다.

양이 줄어들었던 식사도 차차 양이 늘게 되었다.

오랜 시간, 적게 먹은 탓에 위가 줄어들어 한번에 많은 양을 먹기 힘든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식사를 거부했지만, 조금씩 양을 늘려간 덕분인지 토하지도 않고, 마침내 우리들과 같은 양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깡말랐던 몸도 점점 살이 붙어 안심이 되었다.

이래저래 2년 전, 내가 집을 나가기 전의 오소마츠형으로 돌아왔다.

 

[저기이-. 쵸로마츠으-. 한가하잖아~?]

[-, 시끄러워. 보면 알잖아, 나 바쁘다고. 저리 가]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형아랑 놀자아- 외로워서 죽어버린다구-]

 

원래대로 돌아오니, 그 때의 일들과 감정들이 거짓말인 것처럼 짜증이 났다.

외로워서 죽다니...

토끼냐....

 

[- 진짜, 알았어. 알았다고. 놀아줄게]

[!? 진짜!!? 놀아줄 거야!? 럭키-!!]

 

너무 끈질겨서 결국 포기해버렸다.

오소마츠형은 어느 정도 회복하자, 이전과 똑같이 우리를 발견하기만 하면 끈질기게 놀아달라며 들러붙게 되었다.

전과 다르지 않은 오소마츠형.

 

 

 

 

 

 

 

 

 

 

 

그래.

 

기적의 바보에, 초등학생 6학년 정도의 정신연령인 어리광쟁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들의 장남.

 

 

 

마츠노 오소마츠의 이야기.

 

 

 

형제공포증

 

 

 

 

 

 

 



오타지적 환영! 'ㅂ')/















  1. (뇌와 몸의 다양한 장기가 낮과 밤의 리듬을 조절하는 시스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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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혼에 안녕을 1

 

 

 

 

 

어릴 적, 이웃집 할머니가 그랬다.

날이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렴. 황혼에는 요괴들이 나타나, 아이들을 데리고 간단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다는 그 요괴의 이야기는, 아직 어렸던 내게 너무도 무서웠다. 그래서 해가 지려고 하면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부턴 그런 순수함은 사라져, 그저 어른들이 만들어낸 작은 위협과도 같은 미신이라 여겼다.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청년, 마츠노 카라마츠는 까마귀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길을 거닐었다.

 

[황혼, 인가. 지금의 나한테는 요괴보다 브라더들이 더 무섭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카라마츠의 왼팔과 왼발, 그리고 머리에는 새하얀 붕대가 친친 감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는 그 상처들은, 모두 그의 형제가 저지른 짓이었다.

 

일의 경위는 이러하다. 카라마츠와 그 형제는 소꿉친구인 치비타의 가게에서 늘 외상으로 오뎅과 술을 먹어댔다. 그들은 니트였기에, 지불한 돈이 없어서였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치비타는 카라마츠를 유괴해 그 몸값으로 외상값을 전부 받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치비타의 생각과는 달리, 형제들은 카라마츠를 구하러 오지도 몸값을 지불하지도 않았다. 치비타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건지, 그게 아니면 유괴당한 게 카라마츠여서인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뭐가 되었든 카라마츠에겐 너무한 일이었다.

슬픔에 잠긴 카라마츠를 본 치비타는, 카라마츠를 위해 한 작전을 떠올린다. 그건 카라마츠를 집앞에서 화형시키는 것. 생사가 걸린 일이라면, 역시 그들도 구하러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작전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마츠노가 형제들에게는 카라마츠보다도 그들의 수면이 더욱 중요했던 걸까. 형제들은 잠을 방해하지 말라 소리치며, 둔기를 내던졌다.

그 둔기들은 보기 좋게 카라마츠에게 직격했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런 큰 상처를 입고도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감탄했다.

 

 

옛날부터 튼튼한 것만이 장점이라 여겼지만, 이렇게까지 튼튼하다니 꺼림칙할 정도였다.

좀 더 크게 다쳤다면 조금은 걱정해줬을까.’ ‘애초에 외상 건은 연대책임인데 어째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었다.

 

비참함에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카라마츠는 기분도 진정시킬 겸 공원에 들렀다.

낯선 목발을 필사적으로 끌고,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시야 끝에 낯익은 후드를 입은 집단이 보여,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브라더........?]

 

카라마츠의 중얼거림은 땅거미에 녹아들었다. 그 시야에 비친 건 이치마츠를 중심으로 평화롭게 웃으며 가는 형제들의 모습이었다. 그 장면이 마치 영화의 끝을 고하듯 완벽해서, 내가 그곳에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하아,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자신만 이렇게 크게 다치고, 그것도 모자라서 혼자가 되어야 하는 건가. 어째서 자신만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돈을 내지 않은 건 우리들이 나쁜 거니, 치비타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만 그 벌을 받아야하는 걸까.

카라마츠는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다소 자신의 희생은 감수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결과가 뒤따랐을 때의 이야기다.

 

가슴에 검게 그을린 응어리를 느끼며, 카라마츠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는 형제들도 짜증나지만, 그보다도 형제들을 질투하는 자신, 형제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밉고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가 멈춰서있을 때, 오소마츠들은 5명 나란히 석양빛을 맞으며 멀어져갔다.

카라마츠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망과 외로움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목발을 쥔 손을 꽉 쥐었다.

 

[....나는, 이제 필요 없는 건가]

 

카라마츠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 딸랑.

 

 

방울 소리가 작게 귓가에 울렸다.

카라마츠는 그 소리에 끌리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석양에 뒤섞이듯, 무언가가 높은 하늘에 떠있는 게 보였다. 두근, 하고 심장이 고동쳤다. 그건 칠흑 같은 날개를 가진,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

 

카라마츠는 눈을 팔로 비비며 다시 하늘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건 틀림없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역광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건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놀란 카라마츠는 근처에 누가 없는지 둘러봤다. 하지만 시선을 돌린 그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 없어..........]

 

 

―― 황혼에는 요괴가 나온다.

카라마츠의 뇌리에 그 말이 스쳐지나갔다. 놀라서 무심코 숨을 헉, 하고 삼켰지만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 * *

 

 

 

 

집에 돌아간 카라마츠는 아까 그게 뭐였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형제에게 버림받은 슬픔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활기찬 목소리들이 들렸다. 형제들이었다.

 

[어라, 카라마츠. 뭐야 그 붕대는?]

[뭐야 그 붕대는, 이라니 오소마츠!! 너희들 때문이지 않나!]

 

장남 오소마츠가 태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마치 자신과 관계 없는 일인 듯 구는 그의 태도에, 카라마츠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소마츠를 따라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들어왔다.

 

[우와아, 그거 그 때 생긴 상처야? 미안, 카라마츠. 나 완전 잠에 취해서]

[으아, 아파 보여~! 미안, 카라마츠형. 하지만 카라마츠형도 잘못했다구. 그런 밤중에 시끄럽게 굴면 어떡해]

 

형제들 중에서도 쥐똥만한 양심은 갖고 있는 두 사람은, 약간 미안한 듯한 표정이다. 카라마츠는 동생들에게 약한 탓에, 굉장히 답답하고 묘한 감정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랑스런 동생들이 사과를 하니까, 용서해야만 할 것 같았다.

 

[, 엄청 아팠다. 하지만 나는 관대한 형!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좋다! 너희들을........용서하지!!]

 

카라마츠는 자유로운 오른손을 총모양으로 만들어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걸 본 오소마츠는 키득키득 웃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우와아,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쓰럽네에-. 그래도 형이 그렇다면야 뭐. 그럼 난 이만. 자기 전에 스킨케어를 해야 하거든~]

[너는 옛날부터 튼튼했으니 괜찮겠지]

[크아~ 졸려라. , 내일 아침 일찍 새로운 기계 들어온다던데! 쵸로마츠 갈래? 가자!!]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하품을 하곤 거실을 떠났다. “고마워, 카라마츠형! 미안했어라며 안길 걸 예상했던 카라마츠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 잠깐. 좀 더 상냥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혼자 남겨진 카라마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무리 크게 다쳐도, 취급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카라마츠는 고개를 푹 숙였다.

 

[, 카라마츠. 너 그 상처론 2층에 올라오기 힘들겠네. 남는 방에 이불 둘테니까, 거기서 자. 나중에 옷 갈아입는 건 도와줄테니까]

 

쵸로마츠가 다시 거실로 돌아와 빼꼼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확실히 목발로는 계단을 오르내르기가 쉽지 않기에, 그의 제안은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이런 때이니만큼 더욱 같이 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카라마츠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 아아! 고맙군, 쵸로마츠]

[아냐, ]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와 함께 남는 방인 객실로 향했다. 먼저 쵸로마츠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그 후엔 그가 이불을 까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꼼꼼한 성격인 쵸로마츠는 시트를 주름 하나 없이 슥슥 손으로 문질러 폈다.

그 모습을 보며 카라마츠가 입을 열었다.

 

[, 저기. 쵸로마츠]

[, ]

 

카라마츠의 뇌리에 아까 해질무렵에 본 새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멀어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웅장하면서 어딘가 묘하게 꺼림칙한 그것을.

 

[새인간, 이 있다고 믿는가? , 요괴 같은....... 사실은 오늘 저녁에 하늘에 떠있는 걸 봤다]

[? 무슨 소리야. 너 그런 걸 믿는 거야? 그런 건 도시전설이라고. 연 같은 걸 잘못 본 거겠지]

 

쵸로마츠는 베개의 주름을 펴, 이불 위에 내려두었다. 그리곤 완벽하게 갖춰진 그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 그런가, 그렇지도 모르겠군. 요괴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 분명 그럴 거다]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의 말을 받아들이며, 그건 잘못 본 것이라 단정했다.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니고, 역광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방울 소리는 대체 뭐였던 걸까. 여리면서 어딘가 그리운 소리.

 

[괜찮아? 너 피곤하지. 얼른 자]

 

쵸로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불을 끄고 방을 나갔다. 카라마츠는 방을 나서는 쵸로마츠의 뒷모습을 향해 황급히 고맙단 인사를 했다.

 

[....뭐어, 아무렴 어때. 얼른 자자. 오늘은 너무 피곤하군...]

 

카라마츠는 형제들의 다정한 뒷모습을 떠올려 살짝 가슴이 아파왔지만, 작게 고개를 저으며 쵸로마츠가 깔아준 이불에 누웠다.

기분 좋게 꿈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딸랑, 하고 작게 방울소리가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며칠후, 카라마츠는 혼자 병원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거야 몸이 멀쩡했을 때의 얘기였다. 형제가 5명이나 있는데, 아무도 따라오지 않다니 정말 너무하다.

 

[하아....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만으로 해가 저물다니]

 

카라마츠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해가 저물어가는 거리를 걸었다. 주변에는 카라마츠 이외엔 아무도 없었기에, 카라마츠의 목발소리만 울려 더욱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때 카라마츠의 핸드폰이 울렸다. 카라마츠는 길가로 물러나, 담에 몸을 기대며 휴대폰을 꺼냈다. 막내 토도마츠였다.

 

[여보세,]

 

여보세요! 카라마츠형 지금 어디야? 치비타가 사과하고 싶으니까 가게로 와달래! 우리들은 이미 와있으니까, 형도 빨리 와! 그럼 이만-

 

 

토도마츠는 일방적으로 용건을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 - 하고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카라마츠는 눈을 내리깔았다. 잠깐의 통화였지만, 전화 너머로 북적이는 소리가 들려와 가슴이 지끈거렸다.

 

[치비타가... 그럼 나도 빨리 가봐야지]

 

주역인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지, 라며 스스로를 타일러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해가 완전히 져버린 후에야 치비타의 가게가 있는 강변에 도착했다. 그것은 정적이 감도는 그곳에 혼자서 따스한 빛을 내뿜었다. 이 다리로는 언덕을 내려갈 수가 없었기에 계단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즐거워 보이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빨리 달려가고 싶었을텐데, 그런 기분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발이 무거워졌다.

 

겨우 도착했다며 계단을 내려갔다. 앞으로 조금이면 도착하는데, 카라마츠의 발은 거기서 딱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 움직이지 않는 거야...]

 

 

 

ーー 빨리 가서 치비타를 만나야 하는데. 분명 내가 없으면 브라더들도 심심할 거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시끄럽게 울렸다. 내 몸은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놀랄 뿐이다.

 

하지만 이 기분의 정체를 카라마츠는 금방 알아차렸다.

그건 공포였다. 가슴이 꽉 조여와서 숨쉬기가 버겁다.

ーー나는 무서운 건가. 치비타나 브라더들이. 저 상냥한 미소도, 시끌벅적함도, 의자에 나란히 늘어선 뒷모습도.

지금까지 어떻게 저 안에 섞여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애초부터 혼자 동떨어져 있던 건 아닐까.

 

그런 감정을 알아버린 순간, 가슴이 욱신거리고, 배 안이 뒤틀리며 뭔가 역으로 치밀어 올랐다.

 

[, ]

 

카라마츠는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어떻게든 그걸 막으며, 온 길을 황급히 되돌아갔다.

 

무아지경으로 강변을 내달리는 카라마츠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더는 저 고리 안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과,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로 인한 당혹감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왔다.

 

 

 

 

* * *

 

 

 

 

카라마츠가 길을 달리고 있자, 딸랑, 하고 또 방울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낯선 작은 공원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이끌리 듯 공원으로 들어갔다. 벤치를 찾아 앉고는 몸을 진정시키려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다.

 

[우으, , 히끅, 후으]

 

너머로 보이는 산은 밝았지만, 근처는 어두컴컴했다. 고장난 듯 깜빡이는 가로등에 나방이 모여들었다. 스산한 부엉이 울음소리와 카라마츠의 흐느끼는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이 벤치 위로 떨어졌다. 내려다보니, 휴대폰이 불빛을 깜빡이며 메시지가 왔음을 알렸다. 눈가를 문지르며 눈물을 닦아낸 카라마츠는 휴대폰을 켜 메시지를 확인했다. 연락의 주인은 토도마츠로, “아직이야? 안 올거면 연락 정도는 해줘라 보냈다.

살짝 짜증이 담긴 듯한 문자에 카라마츠는 미안하다라고 답신을 적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전파가 터지질 않아 보낼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하다 안 되자, 카라마츠는 언젠가 되겠지, 라며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토한 카라마츠는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잡아, 가늘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했다.

지금까지 다소 불합리한 취급을 받아왔지만, 이런 식으로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남자형제, 반쪽과도 같은 존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역시 그건 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가족, 형제, 자신의 반쪽으로서의 정이나 유대, 인연보다 마츠노 카라마츠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방위반응이 나와 버렸다.

 

[어째서, , 나는..]

 

입으로는 정적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사실은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에, 섬세하고 가족애가 강한 카라마츠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형제들이 밉다고 생각하기보다, “형제에게 이런 반응을 보이는 자신이 밉다라며 자기혐오감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끝없는 공포도 느꼈다.

 

코를 훌쩍이며 울던 카라마츠의 귀에, 자갈을 밟으며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는 카라마츠의 눈앞에서 멈췄다.

 

[이렇게나 좋은 밤에 왜 울고 있습니까]

 

머리위로 들려오는 소리에 카라마츠는 어깨를 움찔하고 떨었다. 평소에 가족 이외의 사람과는 교류가 적은 카라마츠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을지 몰라,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두려움 가득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카라마츠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왜냐면, 눈앞에 보이는 청년의 얼굴이 자신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 ........??]

 

엄청난 충격에 눈물도 멎었다. 청년은 훗, 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카라마츠의 옆에 앉았다.

 

[닮긴 했지만. 다른 사람입니다]

[, 그렇군]

 

카라마츠는 흘긋 곁눈질로 청년을 봤다. 청년은 진청색의 유카타를 입었으며, 자신보다는 용감하고 듬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가 동경하는 남성상처럼 쿨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근육도 적당히 붙은 건장한 몸이라는 걸, 유카타 위로도 알 수 있었다.

 

[그래, 확실히 다른 사람이로군..]

 

카라마츠는 중얼거렸다. 청년은 카라마츠의 시선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어색한 기분에 무심코 눈을 돌렸다.

 

[....왜 울고 있었나요. 닮은 사람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얘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청년의 물음에 카라마츠는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그 정정이 이상하게도 편안하게 느껴져, 이윽고 띄엄띄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쿨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얘기가 끝났을 땐 이미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아, 이제, . 녀석들과 있을 수 없다! 무섭다, 무섭단 말이다!]

 

비통한 울음에 청년은 부드럽게 눈을 감았다. 청년의 표정은 완전한 무표정으로, 동정도 연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청년은 카라마츠의 왼팔과 발, 머리에 감긴 붕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아직 아픕니까]

[아니, 약이 효과가 있었던지 그렇게 아프진 않다]

[그렇습니까. 걱정마십시오, 곧 나을 겁니다]

 

마치 상처의 상태를 아는 의사처럼 확신을 담아 말하는 청년에, 카라마츠는 어딘지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과 반대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몸의 상처는 금방 나을 겁니다. 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곳의 고통은 그걸 떠올릴 때마다 되살아나겠죠]

 

청년은 눈을 내리깔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카라마츠는 그를 따라 제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을 때의 그 절망감이 서서히 살아났다. 계속 이 고통이 이어지다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존재이지요. 아무리 소중한 존재라도 쉽게 상처를 주죠. 잃고나서 깨달아야 이미 늦은 것을...]

 

청년은 카라마츠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라마츠의 앞으로 걸어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라마츠에게 작은 사탕 하나를 건넸다.

 

[........이걸. 단 것을 먹으면 좀 괜찮아질 겁니다]

[, 고마워....]

 

카라마츠는 사탕을 오른손으로 받아들어 입에 물었다. 희미하게 달달하고 따스한 맛이 나, 청년의 말대로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

 

[, 이제 돌아가세요. ...돌아갈 수 없어지기 전에]

[후후. 나는 이제 성인이라 이런 곳에서 길을 잃지는 않는다]

 

애취급 당했다 생각한 카라마츠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상처로 밤중에 걸어가긴 위험할지도 모르니, 얌전히 돌아가기로 한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의 출구로 향해 걸었다. 청년이 자신을 따라오는 듯한 느낌에, 카라마츠는 그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 말을 걸었다.

 

[....형씨, 오늘은 고맙군. 또 만나-]

 

카라마츠가 살짝 휘청이며 뒤로 돌자, 거기에 청년은 물론이고 공원도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저 좁은 황무지와 그 안에 자리한 작은 사당만이 있을 뿐이었다. 바람이 카라마츠의 얼굴을 간질이었다.

 

[으응!? , 어라....]

 

카라마츠는 여우에게 홀린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방금까지 정신없이 깜빡이던 가로등도 벤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이라며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멍한 머리를 가로 저으며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마치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다.

 

[머리가 멍하군. 그건 꿈이었던 건가? 아니,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 * *

 

 

 

 

카라마츠가 집에 도착하자, 5명은 이미 왔는지 신발들이 현관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집안의 불은 다 꺼져있고 고요했다. 치비타의 가게에 마시러 갈 때는 대개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인데, 오늘은 드물게도 빨리 돌아온 듯하다. 집안을 슥 둘러보고는 객실로 가 이불 위에 누웠다.

자리에 눕자 불현듯 아까 그 묘한 청년이 떠올랐다. 치비타의 가게 근처에서 있었던 일고 어째선지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어봤군]

 

자신과 닮은 얼굴에, 어딘가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의 친화성. 그렇게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잊어 버렸다.

공원이 없어진 것도, 어느새 청년이 사라져있던 것도, 카라마츠에게 있어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과, 상냥하게 대해졌던 그 사실만 있다면 됐다.

 

[. 설마 그 미스터는 카라마츠 보이였던 건가..]

 

카라마츠는 그렇게 생각하며 화악, 하고 얼굴을 빛냈다. 아이라면 모를까, 다 큰 성인남성에게 잘해줬다는 건 정말 카라마츠 보이인 걸지도 모른다!

사실은 걸이 더 좋지만, 자신과 닮았고 잘생겼으니 불평하지 않겠다.

 

[카라마츠형...? 있어?]

 

그때, 복도에서 토도마츠의 소리가 들렸다. 아마 화장실 가려다 깬 거겠지.

 

[아아, 있다]

 

그렇게 답한 순간 문이 열리고, 토도마츠의 요청으로 화장실에 따라온 쵸로마츠가 방에 들어왔다.

 

[, 이런 시간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야]

[? 이런 시간이라니....]

 

어이없다는 표정의 쵸로마츠를 본 카라마츠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봤다. 시간은 오전 2시였다. 거짓말...., 카라마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다쳤잖아. 얼마전 유괴사건을 일으킨 치비타는 우리들이랑 있으니까, 진짜 무슨 일에 휘말린 건가 했다고]

[, 쵸로마츠..., 설마 날 걱정해서...!!]

 

카라마츠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쵸로마츠를 올려다보았다.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을 받은 쵸로마츠는 휙하고 외면했다.

 

[, 그럴 리 없잖아! 그냥 나는 상식인이고, 역시 2번이나 버림받는 건 좀 그렇겠다 해서!]

[나왔다, 자칭 상식인 발언. 근데 진짜 카라마츠형, 어디에 있다 온 거야? 별로 궁금한 건 아닌데, 치비타 엄청 풀 죽었다고]

 

토도마츠의 질문에 카라마츠는 대답하려 했지만,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사실은 공원에 있었는데 그 공원이 없어져 버렸다, 라고 말한들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 깜빡했다..]

 

그렇게 생각한 카라마츠는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어이없다기보다는 모처럼 걱정한 것에 대한 허망감 같았다.

 

[......, 그래. 뭐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그럼 난 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몇 분전의 일을 까먹다니, 그런 뻔한 거짓말 치려고 해도 못 치지~.

초등학생도 그런 거짓말은 안 치겠다. , 암튼 잘자, 바카라마츠형]

 

두 사람은 완전 흥미를 잃은 듯 그대로 2층으로 돌아갔다.

카라마츠는 어, 하고 할 말을 잃었다. 침울하게 고개를 떨군 카라마츠는 슬슬 이불로 기어 들어갔다.

 

 

 








길어서 반반 나눠서 번역할 생각입니다 :)




요즘 날씨도 꿀꿀하고 해서

뭔가 암울한 거 번역하고 싶어서 사변소설 가져온 건데

뭔가 그렇게 암울한 소설 같지는 않네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제가 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번역할 시간이 많이 줄어서 주에 하나가 고작이네요ㅠ

죄송합니다ㅠㅠ



 

 

 





허락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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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24화 뒷이야기 망상소설*

















가장 먼저 나간 건 쵸로마츠.

솔직히 취직한다면 네가 제일 먼저 될 거라고 생각은 했어. 그렇게 취활 어필을 해대더니, 결국 해냈구나. 이제 와서 이런 말해도 이미 늦었겠지만, 역시 형으로서 좀 더 제대로 축하해줬어야 했는데. 카라마츠가 내 대신에 잔뜩 축하해준 것 같던데, 고생이 많았네.

하지만, 미안.... 그때의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

쵸로마츠가 취직한 건 물론 축하해야 마땅한 일이란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친가에서 나가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인 걸. 우리들 여섯 쌍둥이잖아. 평생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쵸로마츠는 잔소리쟁이에 자의식 라이징이나 해대는 동생이지만......그래도 나가버리면, 쓸쓸하다고.

 

 

 

알아. 나도 안다고.

 

취직해서 자립하다니, 좋은 일이지. 굉장한 성장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알잖아. 형아 바보인 거.

평생을 함께 바보처럼 뒹굴며, 아무 생각도 않고 그렇게 여태처럼 살아갈 거라고 믿어왔어. 그런 거, 언젠가는 끝나버릴 게 당연한데 말이야.

도중에 쥬시마츠가 몇 번인가 내게 부딪혔잖아?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쥬시마츠는 나도 대화에 끼어들게 만들려고 했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여유가 없었던 나는 완전히 열 받아서 있는 힘껏 쥬시마츠를 발로 차버렸어. 완전히 분풀이였어. 쥬시마츠가 시끄럽고 정신없게 구는 건 늘상 있는 일인데 말이야. 원래라면 쵸로마츠를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는 게 당연한 건데.....

 

내 마음이 계속 방해를 했어.

 

동생한테 분풀이를 하다니, 나 완전 최악이네.

그 후, 카라마츠는 내 뺨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치곤,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나를 무시하고서 멱살을 부여잡아 밖으로 끌고 나갔어. 솔직히 카라마츠가 그렇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생각해. 카라마츠가 말려주지 않았다면,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니까. 나도 날 잘 모르겠는 걸.

 

싸늘한 밤공기를 느끼자마자 카라마츠가 내 멱살을 힘껏 위로 들어올렸어.

그리곤,

 

[오소마츠. 적당히 해라.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

 

머리에 피가 솟구쳐있던 나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단숨에 식어버려, 겨우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됐어. 그리고 자기혐오감에 빠졌지.

 

 

 

.....뭔가 이제 형아 글러먹었는지도 모르겠네.

생기 없는 눈으로 카라마츠를 올려다보자, 예상대로 잔뜩 화가 나있었어. 카라마츠가 진심으로 폭발하다니, 드문 일이지만 당연하겠지.

, 동생이 다치는 걸 제일 싫어하니까. 형아니까 다 안다고.

 

[지금은 쥬시마츠도 잘못했지만 그렇게 세게 찰 필요는 없지 않나. 해도 될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는 거다, 오소마츠]

[안다고.......내가 잘못했어. 머리 좀 식히고 올게.....]

 

그런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는 멱살을 잡은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그대로 집에서 벗어났어. 카라마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겠지.

 

 

미안해.

아무래도 지금의 나로는 분위기를 나쁘게 만들 뿐이야. 역시 너희들끼리 쵸로마츠를 축하해줘.

나는 오랫동안 밖을 멍하니 돌아다니다, 집에 불이 다 꺼지고서야 돌아왔어.

 

 

 

 

 

 

 

 

쵸로마츠를 배웅해야 할 날이 결국 다가왔어.

지금쯤, 집앞에는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쵸로마츠와 이별을 나누고 있겠지. 나는 배웅하러 나가지 않고, 혼자 2층 방에 남아 있었어. 어제 그렇게나 최악의 분위기를 만든 내가 오늘 무슨 낯짝으로 나가겠어. 제대로 배웅을 할 자신이 없었어. 게다가 이별의 말을 쵸로마츠 입으로 직접 듣다니, 그야말로 더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만 같아서 불안했어.

정말 겁쟁이네, . 형아 자격 실격이야.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뭔가 퍽하고 내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갈겼어. 나는 쥬시마츠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열이 받아서, 휙 뒤를 돌아봤더니 거기에 있던 건 막내인 토도마츠였어.

 

[이 망할 장남!! 왜 쵸로마츠형 배웅하러 안 나온 거야!! 이제 못 만난다고!!!]

[아앙!? 무슨 짓이야!! 아프잖아 임마!!]

[이익!!]

 

나는 주저하지 않고 토도마츠의 얼굴을 갈겼어. 내 마음도 모르면서 멋대로 지껄이지 말라고!!

큰소리를 내며 토도마츠가 뒤로 벌러덩 자빠졌어. 그 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토도마츠를 때려버린 걸 깨달았어. , 또 동생을 상처 입혔어. 녀석들한테 잘못은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나는 다시 자기 혐오감에 빠졌어.

아마, 카라마츠가 이걸 본다면 또 엄청 화내겠지.

 

[이제 나한테 상관하지 마!! 내버려 두라고!!]

 

더는 동생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어. 나는 나자빠진 토도마츠를 내버려두고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왔어. 기적적으로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다급히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어.

밖으로 나왔지만 파칭코도 경마도 갈 기력이 없어서, 그날은 근처 공원 벤치에서 밤이 될 때까지 시간을 멍하니 보냈어.

 

 

 

 

 

이러니저러니 해서 쵸로마츠의 뒤를 따르듯, 토도마츠, 카라마츠, 쥬시마츠, 이치마츠가 차례로 집을 나가기 시작했어.

어느새 집에는 나 혼자만 남겨졌어.

 

 

 

쵸로마츠가 나가버린 시점에서 사실 조금 예상은 했어. 이러다 다들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그렇게나 시끌벅적하던 집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어. 당연하겠지. 집에는 이제 나뿐인 걸. 혼자는 쓸쓸하다는 걸 다시금 온몸으로 실감했어.

밥을 먹을 땐 탁자에 6명이 빙 둘러 앉아 밥을 먹었었는데. 딱히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게 좋았어. 잘 때도 6인용 이불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걸 깔고 누웠는데, 정말 쓸데없이 넓더라. 뭔가 도무지 진정되질 않아서 평소 자던 위치에서 자려고 다시 누워봤는데....역시 너무 춥고 허전했어. 목욕탕도 혼자 가려니 뭔가 좀 그래서, 집에 있는 욕실을 쓰게 됐어. 그렇게 내 생활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어. 그렇게 바보처럼 수시로 드나들던 파칭코나 경마도 뭔가 의미 없게 느껴지고 재미가 없어서 최근에는 아예 가질 않게 됐어. 아무것도 할 의욕이 안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붕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며 지내게 됐어. 하늘을 천천히 헤엄치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밤이 되곤 했어.

 

 

요 근래 나는 계속 이런 생활을 해왔어.

 

 

 

 

거실에 걸린 아카츠카 선생의 사진을 올려다보며,

이걸로 됐다, 고 그렇게 생각했어.

 

 

아무도 집에 돌아오질 않는 걸 봐선, 아무래도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아.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걸까.......하지만, 역시 좀 더 녀석들과 바보처럼 시끌벅적하게 살고 싶었어. 외동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역시 난 너희들과..........

 

점점 슬픈 감정이 흘러넘치기 시작했어.

 

 

......이제 더는 6명이서 같은 파카를 입을 일은 없는 걸까.

 

 

 

하지만 이걸로 된 거겠지. 아카츠카 선생.

 

 

 

 

 

.

 

다다미 위에 눈물이 떨어져 만들어낸 얼룩에, 나는 울고 있음을 깨닫고 파카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았어. 소매에 스며든 눈물이 옷을 짙은 붉은빛 바뀌어 마치 피처럼 보였어.

 

 

이걸로 된 거야.

살아가기 위해선 취직하지 않으면 안돼.

옛날에는 니트여도 6명이서 서로 도와가며 살면 되겠지, 라고 말했지만.

역시 무리겠지.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애초에 내 고집 때문에 녀석들의 인생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

 

 

 

이걸로.............이걸로 된 거야.

 

 

 

 

 

 

 

 

 

[오소마츠, 편지가 왔단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에게 울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가능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로부터 2. 시간이란 무심히도 빠르게 흘렀다.

쵸로마츠는 흔들리는 열차에 몸을 맡기며 본가로 향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점점 작업도 안정되어 갔다. 타인과 관계를 쌓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어떻게든 열심히 해나갔다.

본가로 향하는 이유는, 드물게도 기적적으로 다른 형제들과 장기휴일이 겹치게 되어 함께 집에 가자는 얘기가 나와서다. 나는 대략 일주일가량의 휴가가 떨어졌다.

형제들과 2년만의 재회에 기대감으로 가슴이 도무지 진정되질 않았다.

 

나는 제일 처음 집을 나와서 자세한 사정은 잘 몰랐는데, 엄마의 연락으로 오소마츠형 이외의 형제들이 내 뒤를 따르듯 집을 나갔다는 걸 알게 됐다.

다들 무사히 자립이랑 취직한 걸까........ 오소마츠은 뭘 하고 지내려나. 글러먹은 장남이니까 아직 니트인 채로 있겠지. 오랜만에 만나는 거지만 가면 엄하게 잔소리를 퍼부어줘야지. 취직을 좀 더 제대로 권해봐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집 근처의 역인 아카츠카역에 전차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초록색 가방을 등에 짊어지며 전차에서 내렸다. 빨리 모두를 만나고 싶어 나는 발을 재촉해 개찰구로 향했다.

 

 

그리운 집앞에 도착하자, 카라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와 마주쳤다. 굉장한 타이밍에 무심코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섯 쌍둥이는 무슨 짓을 해도 여섯 쌍둥이구나, 하고 실감했다. 마치 짠 듯이 타이밍이 이렇게 맞다니.

얼마만이야. ....뭔가 그립네.

 

 

[역시 여섯 쌍둥이네. 집에 오는 타이밍이 같다니]

[!! 쵸로마츠형이다아---------!!!!!]

 

내 목소리에 바로 반응한 쥬시마츠가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 말에 카라마츠가 날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쵸로마츠!! 잘 지냈는가?]

[물론이지. 카라마츠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네. 다른 애들도]

 

카라마츠한테 시선을 돌리며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를 차례로 바라봤다. 그러자 토도마츠가 반가운 듯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봤다.

 

[어라-? 쵸로마츠형 뭔가 어른스러워진 것 같네-]

[? 그런가? 아니 그보다 우리 원래 어른이었거든?]

 

이런 시답잖은 대화도 정말 오랜만이다. 혼자 살고부터는 당연하지만 이런 대화는 좀처럼 하질 않았으니까 말이지-.

 

[.......그보다, 집에 안 들어갈 거야?]

 

이치마츠가 우리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토도마츠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하지만, 뭔가 들어가려니 긴장되는 걸]

[- 이해해.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좀 망설여지네]

 

나도 그 말에 수긍했다.

 

[...........뭐어, 나도 이해는 가는데]

[긴장돼! 머스루!! 머스루!!!]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나]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문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가자고]

 

카라마츠가 문을 열자, 우리들은 동시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 [ [ [ [ 다녀왔습니다아-----------!!!! ] ] ] ] ]

 

 

 

 

현관에 들어서자, 엄마가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아빠는 회사에 가고 없었지만.

일단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선 우리들은 짐들을 대충 거실에 두고 탁자 앞에 앉았다. 뻐근한 어깨를 풀려 양팔을 쭉 뻗어 크게 기지개를 켰다. 가방을 계속 짊어지고 있었더니 살짝 무리가 간 듯했다. 근육통만 안 오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오소마츠형이 안 보이네. 거실에는 없으니까 2층이려나.

신경 쓰인 나는 부엌으로 가서 엄마에게 물었다.

 

[저기, 엄마. 오소마츠형은? 아직 니트지?]

[그렇지-. 분명 니트일 걸]

 

토도마츠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엄마가 어째선지 곤란한 표정으로 뭔가 망설이듯 눈을 감았다.

 

[오소마츠라면 2층에 있단다. 그런데.......]

[그럼, 내가 가서 불러올게]

[나나나나나-!! 나도!! 카라마츠형! 나도 갈래-!!]

[쥬시마츠형이 가면 나도-]

[...........나도]

 

카라마츠가 불러오겠다 말하자, 엄청난 기세로 쥬시마츠가 손을 번쩍 들며 자신도 가겠다 외쳤다. 그에 따르듯 토도마츠랑 이치마츠도 가겠다며 차례로 말을 이었다.

 

[잠깐만!! 사람이 너무 많잖아!! 그냥 부르러 가는 건데 혼자면 충분하다고!]

[어라? 쵸로마츠형은 안 갈 거야?]

 

여전히 엄청난 기세로 쥬시마츠가 의아한 듯 물었다.

 

[.............갈 거지만]

[, 사양할 필요없다 브라더. 다들 사이 좋게 데리러 가자고]

[귀가 썩으니까 닥쳐 쿠소마츠]

[]

 

어째선지 날 선두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우리는 2층 방앞까지 걸어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낯익은 붉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몇 번이나 보아왔던 뒷모습.

2년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소마츠형이다.

너무나도 반갑고 그리워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이 흥분됐다.

 

 

[.........!!!]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오소마츠형이 움찔하고 떨며 뒤를 돌아 우리를 쳐다봤다. 그런데 어째선지 우리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오소마츠형은 시간이 멈춘 듯이 단숨에 굳어버렸다. 그러더니 이내 무서운 거라도 본 듯이 작게 몸을 떨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명백히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좀처럼 이해불가한 행동에 나는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며 한 발자국 다가갔다.

 

[오소마츠형? 왜 그래?]

[.....오지마!!]

 

오소마츠형은 고함을 질렀다.

갑작스레 닥친 강력한 거부반응에 앞으로 다가가던 발을 멈췄다. 하지만, 내 뒤에 있던 카라마츠가 그 외침에 아랑곳 않고, 나를 제치며 재빨리 오소마츠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소마츠형의 눈높이를 맞추듯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왜 그러나? 어디 아픈가?]

[!! 멈춰!! 만지지 마!]

 

카라마츠가 걱정스러워 손을 뻗자, 과장될 정도로 오소마츠형이 크게 떨기 시작했다.

그 카라마츠도, 뭔가 무서운 건지 작게 몸을 움츠리고 눈을 꼭 감은 채 필사적으로 공포를 견뎌내는 오소마츠형에게 닿지 못했다. 얌전히 오소마츠형에게서 손을 치운 카라마츠. 그걸 본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여전히 멈춘 채 서있는 나를 지나쳐 카라마츠 옆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았다. 토도마츠, 쥬시마츠, 이치마츠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오소마츠에게 말을 걸었다.

 

[오소마츠형 뭔가 좀 이상한데. 왜 그래?]

[오소마츠형!! 괜찮아!! 기운내! 야구할래!? 기운날 거라구!]

[아니, 쥬시마츠....지금은 야구를 할 때가..........]

[싫어!! 싫어!! 싫다고!!!!!!!!]

 

오소마츠형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뭔가를 뿌리치려는 듯이 눈을 꼭 감은 채로 좌우로 머리를 흔들어댔다.

이 경우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위치에서 보고 있으면 마치 늑대에게 둘러싸인 양 같았다. 오소마츠형은 평소의 이치마츠처럼 방구석에 작게 몸을 웅크린 채 떨었다. 살면서 처음 보는 오소마츠형의 반응에 나는 동요했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될 것 같지만...........마치 우리들이 아는 오소마츠형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정도로 겁을 먹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카라마츠도 나와 같은 기분인 듯, 노골적으로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손을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자 오소마츠형에게선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으.........읏하아, 하아, ]

[, 형님!?]

 

그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오소마츠형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호흡이 툭툭 끊기기 시작했다. 오소마츠형은 괴로운 듯 가슴을 손으로 억누르며 움켜쥐었다. 붉은색 파카에 그려진 소나무가 불쌍할 정도로 찌부러졌다. 갑작스런 오소마츠형의 이변에 순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오소마츠형이 바닥에 쓰러졌다. 카라마츠가 재빨리 다가가 오소마츠형의 어깨를 흔들었다.

 

[형님!!!정신 차려라 오소마츠!!]

[하아, 하앗, 하아, ]

 

오소마츠형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호흡은 아까보다 더 거칠어졌다. 이런 상태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설마 과호흡!?

토도마츠가 눈물 맺힌 눈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 오소마츠형 죽는다고!!]

[, 엄마 불러올게!]

 

문쪽으로 달려가는 쥬시마츠에 길을 비켜주자,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왔다.

 

 

과호흡으로 괴로워하는 오소마츠형.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들.

 

방의 처참한 상황에 엄마는 곤란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카라마츠들을 좌우로 밀어헤치듯 오소마츠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자아, 오소마츠. 진정하렴. 괜찮단다]

[후으.......크읏, 허억, , 하아, 하악]

[엄마 호흡에 맞춰서 숨을 쉬어보렴. 들이쉬고......내쉬고......들이쉬고.......내쉬고......그래, 잘하네]

 

엄마가 천천히 호흡을 하자, 오소마츠형도 그에 맞춰서 숨을 쉬었다.

조금 지나자 점차 호흡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많이 놀랐나 보구나. 피곤하지? 좀 쉬렴]

[하아.................]

 

엄마가 오소마츠형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자,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렸다.

체력을 꽤 소모한 모양인지 오소마츠형은 완전 녹초가 되었다. 지친 탓인지 오소마츠형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에서 빨간담요를 꺼내 오소마츠형 위에 덮어주었다.

 

[역시 안 되나보네. 오소마츠 빼고 다들 거실로 좀 내려오렴. 할 얘기가 있단다]

 

 

엄마는 계단으로 향하며 우리들에게 손짓했다.

 

 

 

엄마에게 불려 우리들은 거실에 모였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오소마츠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다들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오소마츠형의 이해불가한 반응의 원인은 대체 뭘까. 모르는 새에 우리들이 무슨 짓이라도 한 걸까.....

평소라면 오소마츠형이 앉았을 자리에 엄마가 앉았다. 우리들의 얼굴을 차례로 훑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많이 놀랐지? 역시 먼저 말해뒀어야 했는데. 이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렴]

[엄마, 오소마츠형 상태가 이상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들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던지 모두의 시선이 엄마에게로 집중됐다. 카라마츠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솔직하게 말해줘, 엄마]

[물론이지. 애초부터 다 말할 생각이었으니까.... 너희들이 집을 나가고 며칠간은 엄청 풀이 죽어 있었단다, 그 아이.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갑자기 기운을 차리더구나........기운을 차려서 안심했었는데.......]

 

엄마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오소마츠형이 풀이 죽어있었다는 걸 알았다.

최악의 경우, 그저 삐져서 당분간 열 받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풀이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우리들과 떨어져 있는 게 싫었던 걸까.

오소마츠형이니, 아마 다른 형제들에겐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을 게 뻔했다.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어느날 2층에서 큰소리가 나서 황급히 올라갔더니,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오소마츠가 있었단다. 왜 그러니? 라고 물었더니, [무서워, 무서워!!] 라며 앨범을 가리키더구나........그때부터 앨범과 너희들이 집에 두고 간 물건들만 보면 굉장히 두려워했단다. 엄마도 원인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

 

엄마는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 주변에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전혀 몰랐어.

 

[사실은 오소마츠한테 오늘 너희들이 돌아온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래서 갑작스런 상황에 놀랐던 걸지도 모르겠네. 역시, 말해뒀어야 했는데..]

[.......오소마츠형이랑 이제 야구 못 하는 거야?]

 

 

쥬시마츠가 정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확실히 지금 상태의 오소마츠형으론 야구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대화도 힘들 거다. 우리들이 나간 뒤, 오소마츠형은 뭘 하며 보낸 걸까. 신경 쓰였던 나는 엄마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우리들이 나간 뒤에 오소마츠형이 어땠는지 말해줘]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그러네.....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파칭코나 경마에 가지 않더구나. 으음.....대강 이치마츠가 나간 후부터려나]

 

엄마의 말에 우리들은 충격을 받아 눈을 부릅떴다.

 

[!? 그 오소마츠형이!?]

[거짓말이지!? 정말이야!? 도박을 그만두다니 완전 중증이잖아!!]

[..........큰일인데]

[큰일이야!! 큰일-!!]

[, 엄마. 다른 건 또 없어.....?]

[기본적으로 집밖에 나가질 않게 됐어. 내가 알기론 지붕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거실에서 아카츠가 선생을 보거나 했단다]

 

우리들이 아는 그 능글맞고 제멋대로인 오소마츠형은 어디론가 가버린 것만 같았다. 이 얘기를 듣고 우리들만이 아니라 오소마츠형 또한 많이 변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슬슬 배고프지? 저녁 준비할게. 오랜만이니 힘 좀 써볼까. 오늘은 카라아게란다]

[카라아게!]

[아싸아-!! 카라마아!! 카라아게!!]

[지금 바로 차려줄게]

 

제일 빨리 반응한 건 카라마츠. 카라아게란 말에 빠른 반응을 보이는 건 여전하다. 카라마츠에 이어 쥬시마츠가 기뻐하며 퍼덕퍼덕 소매 자락을 흔들어댔다. 그 사이에 기쁘면서도 솔직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카라아게보다도 오소마츠형이 더 신경 쓰였다. 딱딱하게 굳은 미소를 보이며 대충 그 분위기를 넘겼다.

 

 

 

친가에서 오랜만에 먹는 저녁식사. 탁자 한가운데에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가득 쌓인 카라아게. 굉장히 좋은 냄새가 풍겨, 식욕이 올랐다. 너무도 맛있어 보여 군침이 흐를 정도였다. 쥬시마츠는 진짜 금방이라도 침을 질질 흘릴 것 같아 위험할 지경이었다. 살짝 지적하자, 소매로 거칠게 입술을 훔쳤다.

하지만 단 하나, 쓸쓸하게 텅 빈 오소마츠형의 자리가 신경 쓰여 견딜 수 없었다. 여섯명이 빙 둘러 앉았던 탁자에, 오소마츠형만 없다. 6명 다 같이 먹고 싶었는데. 어딘가 부족한 느낌에 살짝 쓸쓸해졌다. 잘 보니 오소마츠형 자리에 밥이 없다. 설마 안 먹는 건가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 엄마를 찾았다. 그러자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 엄마가 보였다.

 

[그거, 오소마츠형 거야?]

[그래. 진정되질 않으니까 오소마츠는 혼자서 먹고 싶대]

[..........그래]

 

역시 피하고 있어.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잖아.

우리들의 뭐가 오소마츠형을 두렵게 만든 건지 모르니까, 함부로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갖다 줄게. 그래도 돼?]

[그래. 혼자라면 괜찮을지도 모르니까.... 좀 부탁할게. 하지만 아까처럼 싫어하는 짓은 하면 안돼. 패닉에 빠져 버리니까]

[알아]

[그리고 2층방이 아니라 옆의 객실로 옮겼으니까. 너희들은 평소 쓰던대로 그 방을 쓰면 돼]

엄마한테 저녁을 건네받았다. 그때 자연히 시선이 쟁반쪽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은 분명 카라아게였지. 근데 뭐야 죽!? 그것도 양이 반 정도밖에 안 되잖아.

무심코 입밖으로 소리를 내버렸다.

 

[!? 왜 죽이야!? 양도 왜 이렇게 적어!?]

[그 애, 늘 이 정도밖에 안 먹거든. 너무 많이 먹으면 다 토해버리는 것 같고....게다가 오늘은 여러 가지로 힘들었으니까 위에 부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죽으로 했단다]

[..........]

[좀 더 먹어서 체력을 좀 키웠으면 좋겠는데 이것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몰랐다. 라고 할까 모르는 것들뿐이다. 이렇게 변했을 거라고는. 식욕이 없어......? 그 오소마츠형이?

아까 봤을 때 좀 말랐다고 생각은 했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걱정이 몇 배로 불어나 속이 타들어간다.

엄마한테 받은 저녁밥을 들고 조심히 계단을 올랐다. 아까 오소마츠형과 만났던 방을 지나 객실 앞에서 멈춘다. 일단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조심스레 말을 건다.

 

[..........오소마츠형]

[흐아, , !?]

 

가능한 조심스럽게 불렀는데 요상한 대답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저녁밥 가지고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

[.................]

 

뭔가 들어가기 힘드네. 그보다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본인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나는 재빨리 팔꿈치로 문을 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은 오소마츠형이 나를 빼꼼 쳐다보고 있었다. 주변에 만화책 2권이 나뒹굴고 있는 걸 보아, 방금까지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천천히 오소마츠형 앞까지 다가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여기. 저녁밥 가져다 줬으니까 제대로 다 먹어야 해. 남기면 안돼]

[....고마워]

 

솔직하게 전해져온 감사의 말에, 쟁반을 내려놓으려 떨군 시선을 올려 오소마츠형을 보았다. 오소마츠형은 눈에 띄게 움찔하고 몸을 떨며,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눈을 피해버렸다. 이렇게 대놓고 피해버리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다. 게다가 안에 들여보내주긴 했지만 꽤나 주저했었고.

 

[또 뭔가 필요한 건 없어?]

[....괜찮아]

[그럼 나는 이제 가볼테니까,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 괜찮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내가 있으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테고, 눌러앉아 있는다고 좋을 것도 없을 게 뻔했다.

다시 거실로 돌아가려고 복도로 나가 뒤를 돌아보자, 다시 불안해하는 오소마츠형이 보여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역시 전과 비해서 많이 말랐고, 어딘가 이치마츠처럼 음울한 말투라 생각하며 거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어라? 오소마츠형 부르러 간 거 아니었어?]

 

토도마츠가 볼에 음식을 잔뜩 넣은 채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불안해할 것 같아서 따로 먹겠대]

[-. 그럼 이 카라아게는 5등분이란거네]

[아니 얼마나 카라아게가 먹고 싶은 거........잠깐!? 내가 없는 사이에 엄청 줄었잖아!!?]

 

오소마츠형한테 저녁을 갖다주기 전에는 산처럼 쌓여있던 카라아게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반 이상이나 줄어있었다.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사라지다니.

너무 오랜만이라 완전 방심하고 말았다.

 

[브라더-? 늘 말했잖나? 식사는 전투라고]

[방심한 놈이 잘못이지...]

[이 자비 없는 놈들!! 내 몫도 남기라고!]

[잘 먹었습니더-----블 헤더!!]

[!? 빨라!!? 난 아직 젓가락도 안 들었는데!!]

 

여전히 빠르게 밥을 먹어치운 쥬시마츠가 방을 나갔다. 밥그릇을 치우러 부엌으로 간 거겠지. 나는 황급히 젓가락을 들어 카라아게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엄마가 만든 카라마아게는 엄청 맛있었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예전처럼 다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2년만의 다 함께 하는 목욕에 기쁘고 설렜지만 물론 거기에 오소마츠형은 없었다. 기뻐해야 할 일인데 나는 솔직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또 다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네.

잘 때도 그리웠던 6인용의 커다란 이불에서 함께 잤다. 하지만 오소마츠형의 자리는 텅 비어, 마치 내 마음 같았다.

 

 

 

언젠가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그렇게 바랄 수밖에 없었다.

 

 

 

 

 

 

형님이 안 보인다.

 

 

본가에 돌아온 지 4일째, 상태를 살피려 옆방으로 가서 슬쩍 말을 걸었지만 답이 없다. 자는 건지 아니면 그냥 없는 건지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방은 텅 비어있다. 빨간색 담요만 아무렇게나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외출한 건가 싶어 현관으로 가봤지만, 빨간색 신발은 아직 거기에 있었다. 신발이 있는 걸 보아 나간 건 아닌 것 같다.

그럼 어디에 있는 거지? 우리들이 있는 1층이나 2층방에 있지는 않을 거다. 지붕? 욕실? 아니면 화장실? 떠오르는 장소를 여기저기 찾아왔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는 내게 거실에 있던 쵸로마츠가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뭐라도 찾아?]

[오소마츠 못 봤는가? 안 보이던데]

[오소마츠형?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종일 못 봤네]

[신발은 있었으니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나도 찾아볼게]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오래 앉아있어서 찌뿌둥하겠지. 등쪽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어딜 찾으면 돼?]

[생각나는 곳은 다 찾아봤다만 아무데도 없더군]

[그럼 다시 찾아보자. 나는 2층을 찾을테니까 넌 1층을 찾아]

[알겠다. 찾거든 불러라]

 

그렇게 말하며 쵸로마츠는 거실에서 나와 계단을 올랐다. 나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 찾았던 곳을 다시 봤지만 여전히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없어. 아무데도 없다.

1층의 모든 곳을 찾아봤지만, 먼 곳에서도 훤히 보이는 붉은색의 옷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쵸로마츠가 찾았으면 좋겠는데.

대충 둘러본 나는 쵸로마츠를 살피러 2층으로 향했다. 우리들이 쓰는 방을 들여다보자, 벽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쵸로마츠가 보였다. 원래 이 방에 있었던 건지 토도마츠도 쵸로마츠 뒤에 앉아 있었다.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저번처럼 싫어하는 짓은 안 할 거니까...?]

[오소마츠형. 진정해]

 

거기에 있었던 건가. 그냥 둘러봐선 못 찾는 게 당연하다. 설마 거기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쵸로마츠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벽장 안에 몸을 웅크린 오소마츠가 보였다. 손에는 만화책을 꽉 부여잡은 채 불안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오소마츠, 거기에 있었던 건가]

[방금 막 찾았어]

[왜 거기에 있는 건가?]

[...................]

 

오소마츠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다정하게 손짓했다.

 

[, 일단 나와 봐]

[............우으]

 

오소마츠는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며 벽장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아, 속이 탄다. 너는 우리들의 장남이잖아. 정신 차리라고. 거기서 그러고만 있으면 제대로 얘기조차 할 수 없잖아.

나는 오소마츠의 팔을 잡았다. 움찔하고 떨었지만 아랑곳 않고 벽장에서 끌어냈다. 오소마츠가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저항했다. 그걸 본 쵸로마츠가 나를 말리려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 멈춰!! 억지로 그러면 안 된다고!!]

[미안.........미안해. 사과할게....그러니까 놔!! 놓으라고!!]

 

왜 사과하는 거지. 너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갈 곳 잃은 응어리가 안개처럼 마음에 자욱하다.

오소마츠의 저항은 아무런 효과도 없이, 그대로 상반신이 끌어내졌다. 오소마츠가 패닉상태라는 건 딱 보면 알 수 있었다.

토도마츠가 쵸로마츠와 같이 오소마츠을 달랬다.

 

[오소마츠형. 진정해]

[싫어! 무서워!! 도와줘!! 무서워!!!]

 

그 때, 내 안의 무언가가 뚝, 하고 끊겼다.

 

[적당히 해라!!! 우리들이 네게 무슨 짓이라도 한 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본심이 입밖으로 나가버린 뒤였다. 그것도 분노를 더해서.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었다.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긴장감에 젖어 오소마츠를 봤을 땐, 아까의 패닉상태가 거짓말처럼,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것도 잠시,

 

 

 

, 투둑.

 

 

소리 없이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오소마츠의 눈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그 눈물을 신호로, 막을 틈도 없이 엄청난 양의 눈물이 터져나왔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둔 채,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흐르는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 스며들어간다.

우리 3명은 그저 그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오소마츠가 운다.

 

 

잠시후 오소마츠는 끅끅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얼음처럼 굳어있던 우리는 땡, 하고 풀린 듯 정신을 차렸다. 토도마츠가 진심으로 혐오한단 표정으로 날 보았다.

 

[우와, 오소마츠형을 울리다니 최악-]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바카라마츠]

 

쵸로마츠도 토도마츠의 뒤를 이어 날 다그쳤다.

역시 이건 내가 잘못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명백히 내 잘못이다. 나는 잡고 있던 팔을 놓고, 오소마츠를 달려래 필사적으로 말을 건넸다.

 

[우윽......흐으............]

[오소마츠!! 내가 잘못했다!! , 울지마라!]

[.......흐윽.............]

 

어쩔 줄을 몰라 나는 오소마츠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벽장에서 완전히 끄집어냈다. 오소마츠는 완전히 힘이 탁 풀린 상태라 쉽게 나왔다. 일단 오소마츠를 가능한 한 소중히 껴안았다. 흐느낄 때마다 튀어오르는 몸과 쿵쿵 울리는 심장소리가 전해졌다.

 

[자아, 그래그래. 괜찮으니까]

[아니, 울린 건 너거든]

[놀랐지. 미안하다]

[흐윽.........]

[이래선 누가 형인지 모르겠네]

 

오소마츠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축축히 눈물로 젖어드는 어깨가 따스하다.

잠시후 날 조심스럽게 꽉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미움 받지 않은 모양이다. 사소한 거였지만 나는 진심으로 안심했다. 점점 오소마츠도 진정해가는 건지 훌쩍이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이제 진정했는가?]

 

얼굴을 들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걸 본 나는 아이를 달래듯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서, 형님은 왜 여기에 있었던 건가?]

[....만화, ...찾으러 온 것뿐]

[만화?]

 

다시 벽장안을 들여다보니, 끌어냈을 때 떨어뜨린 만화가 3권정도 떨어져 있었다.

뭐야. 만화를 가지러 온 것뿐인가. ? 근데 왜 안까지 들어간 거지?

 

[만화를 가지러 온 건데 왜 안쪽에 틀어박혀 있었던 건가?]

 

내 생각을 읽은 듯 쵸로마츠가 날 대신해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벽장에서 읽으려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책을 읽기엔 너무 어둡고, 그럴 거면 그냥 가지로 옆방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오소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눈물은 멈췄지만 눈가가 살짝 붉어져있다. 하지만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오소마츠가 고개를 다시 숙이며 답했다.

 

[만화 꺼내는데 누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서..]

[]

[당황해서 벽장에 숨었는데 누가 들어와서...]

[?]

[타이밍....을 몰라서 나가질 못했어]

 

오소마츠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쵸로마츠가 말이 끝나자 토도마츠를 노려봤다. 의아하게 생각한 나도 그를 따라 토도마츠를 바라봤다. 결과적으로 토도마츠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토도마츠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서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거 내 탓이라는 거야!?]

[토도마츠네]

[톳티-, 네가 원인이었던 건가]

 

오소마츠의 말대로라면, 오소마츠가 만화를 챙기던 도중에 막내 토도마츠가 운 없게도 방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당황해서 숨어버린 오소마츠는 그대로 나가지 못했다는 것.

이 무슨 bad 타이밍인가.......Oh.......

 

[에에-!! 그걸 어떻게 알아!! 그보다 지금 오소마츠형, 이치마츠형보다 기척 못 느끼겠다고!! 알 리가 없잖아!]

[뭐어, 그야 그렇지만]

 

토도마츠는 요란스럽게 머리를 싸맸다. 쵸로마츠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며 팔짱을 끼고선 맞장구를 쳤다. 오소마츠는 내 등에 둘렀던 손을 풀고, 다리를 끌어안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내 품속에서 어느 정도 진정한 듯했다.

다행이다. 이걸로 조금은 편히 얘기를 나눌 수 있겠지.

나는 오소마츠의 등을 약하게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토도마츠도 토도마츠지만, 너도 나빴다. 여기에 있다는 걸 알렸다면, 토도마츠도 알아채고 일단 방에서 나가줬을지도 모르잖아?]

[........]

 

오소마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토도마츠가 어째선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그랬을지도 모른다구!! 오소마츠형!]

[뭐야, 방금. 그보다 토도마츠라면 벽장에서 소리가 난 시점에서 유령!? 이라면서 방에서 뛰쳐나갔을 걸?]

[......부정은 못 하겠다...]

 

그 때, 쵸로마츠가 한 말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걸 토도마츠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결과적으로 방에서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 알 리가 없는 나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방에 없어서 찾았다고. 형은 지금 정신이 불안정하니까 걱정 끼치지 말아주겠나]

[....미안]

[우리들은 형제잖아?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형은 귀찮을 정도로 엉기는 게 더 형다우니까!]

[너무 엉겨붙는 것도 곤란하지만 말이지]

[...노력해 볼게]

 

이걸로 일단 해결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이다. 형이 울음을 터뜨렸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안심하자, 아까 오소마츠를 끌어안았을 때 생각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그런데 너 너무 마른 거 아닌가? 아까 안았을 때 생각했는데, 쵸로마츠보다 마른 것 같다만]

 

몸을 만지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자, 오소마츠는 몸을 움찔 떨며 경직된다. 그 반응에 잊어버렸던 게 떠올랐다.

그래. 얼떨결에 내 품에 안겼지만, 닿는 걸 싫어했었지. 만지는 걸 싫어한다는 건 오소마츠와 재회했을 때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날은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겁에 질린 눈으로 오소마츠는 내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건 명백한 거절이었다.

 

[-, 미안하군. 안 만지겠다. 안 만질테니까]

 

공중에 멈춰 갈 곳 잃은 손을 내렸다.

 

[여기, 만화. 읽고 싶었던 거지?]

[....]

 

내 말에 쵸로마츠가 벽장에서 만화를 재빨리 꺼내들어, 오소마츠에게 건넸다.

 

[또 뭐 읽고 싶은 만화 없어?]

[없어..]

 

오소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내 품에서 나와 쵸로마츠에게 만화책을 받았다. 방금까지 온기로 따스했는데, 순식간에 차게 식어 조금 쓸쓸해졌다.

 

[그럼, 이거면 된 거지?]

[..........., 고마워]

 

오소마츠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도망치듯 방을 나가버렸다.

오소마츠가 고맙다고 했어..? 나와 마찬가지로 토도마츠도 놀란 눈치였지만, 어째선지 쵸로마츠는 뭔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뭔가 낯가림 심한 초등학생 같은 느낌이네]

[왠지 모르겠는데 뭔가 알 것 같아]

 

쵸로마츠의 말에 토도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정말 오소마츠형이지? 다른 사람 같은데]

[우리들이 없을 때 잃어버린 걸지도 모르겠군]

 

나는 생각을 그대로 입밖에 내버렸다.

오소마츠는 지금 여기에 없으니, 말해도 괜찮겠지.

내 말에 토도마츠가 의문스럽게 말했다.

 

[잃어버리다니 뭘...?]

[“을 말이지]

 

내 말대로 오소마츠는 형을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혹은 의도적으로 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오소마츠의 이변을 내가 알아차렸다면, 도와줬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적어도 나만이라도 오소마츠와 함께 있었다면, 오소마츠는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꽉 조여왔다.

 

 

 

 

* * *

 

 

 

 

나는 2년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이유는 간단. 오소마츠형을 더 이상 혼자 둘 수가 없어서다.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게 다른 형제들에게도 전해졌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미노처럼 하나둘 회사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사이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다시 2년 전으로 돌아왔다. 니트 생활로. 다시 할 일 없이 뒹굴거리는 매일을 보내게 되겠지.

 

오소마츠형 이외에는.

 

 

 

 

큰소리를 내서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열었다.

방 한가운데에 자리한 붉은색의 얇은 이불이 볼록하게 솟아있다. 나는 그쪽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오소마츠형, 잠깐 얘기 좀 하자]

[.............]

[오소마츠형?]

 

반응이 없다.

자고 있을지도 몰라 살금살금 다가가 귀를 기울이자, 아니나 다를까 안정된 숨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자고 있었나.

살짝 이불을 들어 안을 들여다보자,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무릎을 끌어안은 포즈로 잠들어 있었다.

추운 걸까. 이불도 얇고, 감기 걸린다고?

나는 조용히 벽장을 열어 오소마츠형이 쓰는 1인용 이불을 꺼냈다. 그걸 쿨쿨 자고 있는 오소마츠형에게 덮어 주었다. 이걸로 춥지는 않겠지. 문득 시선을 돌리자, 오소마츠형 머리 근처에 만화가 펼쳐져 있다. 읽다가 잠든 게 분명했다. 나는 오소마츠형 옆에 앉아, 무방비하게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어날 기미는 전혀 없어 보였다.

 

[잘 때는 전이랑 전혀 다를 게 없는데]

 

나는 장난스레 오소마츠형의 뺨을 쿡쿡 찔렀다. 그러자 오소마츠형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작게 신음했다.

 

[으응............]

 

오소마츠형이 입을 쩝쩝거렸지만,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들었다.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웬만해선 잠이 깨지 않는 건 옛날부터 변하지 않는구나.

우리들이 본가로 돌아온 지 오늘로 6일째. 그 동안 오소마츠형의 많은 변화를 발견했다.

폼으로 파트너를 자칭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먼저, 우리들과 눈을 마주치질 않는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마주쳐도, 금방 도망치듯 고개를 돌린다.

또한, 우리들과 접촉하는 것에 공포를 보였다. 만지려 손을 뻗으면, 과하게 겁을 내며 노골적으로 피했다.

게다가 도망치듯 모습을 숨기는 일이 많아졌다. 오소마츠형은 우리들과 만나고 싶지 않은 듯, 공용 장소를 사용할 때는 괜히 시간을 끌곤 했다. 실제로, 우리들이 오소마츠형에게 가까이 간 적은 있어도, 오소마츠형이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온 적은 슬프게도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우리들이 2년만에 돌아왔을 때부터, 오소마츠형은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돌아온 지 6일째 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형제들에게 물어도 다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걱정인 건, 그 특유의 해바라기 같은 미소를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웃는 걸 한번도 보지 못했다. 2년전에는 매일같이 볼 수 있었던 미소를 전혀 볼 수가 없다. 그걸 알아챈 나는 그 순간 느낀 엄청난 슬픔과 쓸쓸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또 그 미소가 보고 싶어.

언젠가 보여줄 거지?

같이 있으면 웃어줄 거지?

 

 

오소마츠형.

 

 

 

나는 오소마츠형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고는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로부터 대략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오소마츠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패닉에 빠지지는 않게 되었다. 처음과 달리 과호흡 상태가 되지 않는 걸 보면, 다소 우리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일상대화도 아직 어딘가 부자연스럽지만, 그래도 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불안해지면 벌벌 떨면서 이상한 기색을 보였지만. 처음에 비하면 훨씬 낫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오소마츠 벽장사건 이후, 드물지만 거실에 내려오게 되었다.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지만, 우리들이 신경 쓰이는지 가끔 시선이 느껴졌다. 오소마츠가 거실에 있을 때는 대개 그냥 누워 있거나, 간식을 먹고 있거나 했다. 봄이 왔음에도 여전히 거실에 자리하고 있는 코타츠에 어깨까지 푹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았다. 종종 이치마츠와 쵸로마츠랑 같이 몸을 녹이는 걸 보았다.

그 일로 쵸로마츠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오소마츠의 발에 쵸로마츠의 발이 닿았다는 모양인데. 코타츠니까. 공간이 좁으니 발이 닿는 건 드문 일도 아니지만, 오소마츠는 피하듯이 발을 움츠렸다는 듯하다.

 

 

그것도, 엄청 빠른 속도로.

 

 

뭔가 엄청 나쁜 짓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쵸로마츠의 입장이라면 나도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거실 문을 여니, 드물게도 오소마츠가 코타츠에 들어앉아 귤을 까먹고 있었다. 방에는 오소마츠와 똑같이 코타츠에 들어앉은 쵸로마츠와 이치마츠가 있었다. 거실을 둘러본 순간, 분명하게 들릴 정도로 이치마츠가 크게 혀를 찼다.

 

[....쿠소마츠는 안 불렀거든. 2층으로 꺼져]

[으응~? 미안하군, 브라더. 오늘은 거실에 있고 싶은 기분이다. Are you OK?]

[닥쳐. 귀가 썩어]

[]

 

울상을 지었지만, 쵸로마츠는 늘 있는 일이잖아, 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와 이치마츠의 시비스런 대화에 오소마츠도 신경 쓰지 않는 듯,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귤을 까고 있다.

Oh.......쳐다보지도 않는 건가......아니, 애초에 구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뭐라고 할까...........신경 좀 써줬으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소마츠의 왼쪽이 비어있어, 거기에 앉아 코타츠에 발을 넣었다. 꽤 전에 전원을 켠 듯, 딱 알맞게 후끈후끈 따뜻했다. 아까 가지고 온, 애용하는 푸른 손거울을 한 손으로 들고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오늘의 나도 정말 멋지군~!! 몇 시간이고 들여다봐도 질리지가 않아!! 눈썹에 힘을 주어 또렷하게 세우자 더 멋있고 세련되어 보인다. ~, 그러고 보니 새로운 컬러 렌즈가 발매된 것 같던데. 스카이 블루라니 엄청 쿨~하지 않겠나? 한눈에 반해버려 바로 예약해 버렸다!! 이로써 나의 멋짐은 한층 더 성장하게 되겠군!! 기다려라. 카라마츠 girls!!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오소마츠 쪽이었다.

천천히 손거울에서 시선을 돌려 오소마츠를 보자, 몸을 움찔하며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귤을 입에 털어놓았다. 그렇게 급하게 먹을 것 없다고. 내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던 모양인지, 그걸 본 쵸로마츠도 덩달아 어색하게 웃었다.

 

[오소마츠형,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사레들린다?]

[갠하나]

 

입을 우물거리며 말하는 오소마츠를 보자니, 래서팬더가 떠올랐다.

나는 시선을 다시 손거울로 돌렸다.

~. 오늘도 멋진 나!!

 

[저기, 오소마츠형]

[~?]

[머리 쓰다듬어도 돼?]

 

그 말에 손거울을 떨어뜨릴 뻔했다. , 어떻게든 붙잡았다. 잘못하다 깰 뻔했다. 위험하군. 위험해. 그보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쵸로마츠. 오소마츠를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쵸로마츠, 너 오소마츠가 만지는 거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

 

[조금이라도 괜찮으니까, ?]

[............., 알겠어]

 

오소마츠는 꽤 당황한 듯했지만, 쵸로마츠가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손을 모으고 부탁을 해오자,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오소마츠, 역시 무리하고 있군. 힘들어 보이면 역시 말려야겠지.....

나는 손거울을 보는 척하며 흘긋흘긋 두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그럼, 할게?]

[....., ]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팔을 뻗어 천천히 머리에 손을 얹었다. 예상외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오소마츠의 몸은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경직되어 있었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에 손을 얹자, 오소마츠는 눈을 꼭 감고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흘렸다. 참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고 있다.

 

[우으...........-......]

[못 참겠는가]

 

나는 보다 못해서 손거울을 책상에 내려두고 오소마츠에게 물었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의 머리에서 손을 치웠다.

 

[역시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네. 미안]

[.......]

 

이치마츠도 나와 마찬가지로 신경 쓰고 있었는지,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만져지는 건 힘들어도 만지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잖아?]

[오오!! 그거 맹점이로군!! 역시 이치마츠다!]

[닥쳐 쿠소마츠. 죽인다, 쿠소마츠]

[Oh.......]

 

이치마츠의 제안을 칭찬하자, 망설임 없이 욕을 퍼부어 온다.

나는 알고 있다고....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는 거지? 브라더~?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귀여운 동생이군

쵸로마츠가 우리들의 대화가 어이없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매일매일 질리지도 않나 보네. , 오소마츠형. 나 만져볼래?]

[? .........., ?]

[힘들면 도중에 그만둬도 괜찮으니까]

 

오소마츠는 갑작스런 제안에 곤란한 눈치였다.

그도 그렇겠지.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살짝 닿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만지라고 하는 건.

-, 하고 고개를 숙이며 살짝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 조금만이라면]

[정말!?]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는 고개를 끄뎍였다.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를 향해 코타츠 위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오소마츠의 시선이 그 손에 향했다.

 

[처음이니까 손이면 돼]

[그렇네]

[오소마츠형이 괜찮을 때 하면 되니까]

 

쵸로마츠가 그렇게 덧붙이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쵸로마츠의 손 근처까지 가서 딱 멈춰섰다.

 

[괜찮아. 안 움직일 테니까]

[......]

 

조심조심 움직여 손을 건드리려 다가가지만, 주저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다가갔을 땐 살짝 손끝이 닿았다. 오소마츠에게는 그게 고작인 듯 닿은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오소마츠의 이마에 살짝 땀이 맺혔다. 오소마츠가 목소리를 쥐어짜듯 말했다.

 

[......................이게, 한계, ......]

[역시 바로는 안 되나~. 이제 떼도 돼]

 

쵸로마츠가 그렇게 말하자, 오소마츠는 닿았던 손을 황급히 떼었다.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가슴 앞에 손을 모은다. 고개를 푹 숙이곤 작게 중얼거리는 오소마츠.

 

[....미안]

[왜 사과하는 거야. 오소마츠형은 잘 했다고? 그 의사만으로도 기쁘니까]

[그래, 오소마츠.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조금씩 익숙해지면 되는 거니까]

[.....]

 

이 상태라면 만질 수 있게 될 때까지, 아직 한참의 시간이 걸릴 거다.

하지만 가능한 빨리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노골적으로 피해지면 기분이 좀 그러니까 말이지. 지금은 힘들지만 무사히 회복되면, 오소마츠를 맘껏 안아주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다 같은 생각이겠지.

 

 

 

 

-.

 

갑자기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울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자 자그마한 검은 고양이가 오소마츠가 있던 코타츠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검은 고양이는 코타츠에서 튀어나와 근처에 있던 오소마츠에게 다가가 무릎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소마츠는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고양이가 자기 무릎에 올라타는 일은 좀처럼 없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이치마츠가 나른한 표정으로 코타츠에 있던 귤을 하나 집어들었다.

 

[...오소마츠형, 어차피 한가하지? 그 애가 마음에 드는 것 같으니까 놀아주는 게 어때]

 

쵸로마츠가 놀란 표정으로 이치마츠에게 말했다.

 

[그보다, 고양이 있었어? 언제부터!?]

[-. 내가 여기에 왔을 때부터 있었는데]

[진짜!? 전혀 몰랐는데...]

[아직 2마리 더 있을 걸]

 

이치마츠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쵸로마츠형이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귤을 까기 시작했다.

 

[하아!? 뭐야 그 눈은!! 내 반응이 그렇게 이상해!?]

[조용히 좀 하라고. 놀라서 도망치면 어쩔 거야. , 내 친구들 걷어차면 죽인다]

[뭐야 그게, 무서워!! 너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잖아!]

 

쵸로마츠가 오버스럽게 머리를 싸맸다.

나도 고양이가 있는 줄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 내 발에 닿는 푹신푹신한 건 이치마츠의 친구인가? 발에 닿았을 뿐, 차지는 않았으니 아무 문제 없겠지!!

오소마츠에게 시선을 돌리자, 검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고 있다. 오소마츠가 목아래를 쓰다듬자 고롱거리며 기분 좋은 듯이 눈을 살짝 감았다.

솔직히, 부럽다. 나도 오소마츠를 만지고 싶고, 만져지고 싶다. 고양이가 부러워지는 날이 오다니....인생이란 뭐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로군.

아차.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쏟았지만, 슬슬 재개해야겠군.

나는 탁자에 둔 손거울을 다시 들고, 그 안에 비치는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배고파-]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

 

토도마츠가 손을 뻗으며 코타츠에 푹 엎드렸다. 거실 시계를 보니, 마침 7시 가리키고 있다. 거실에는 오소마츠형, 토도마츠, 그리고 내가 있다.

오소마츠형이 거실에 있을 때는 가능한 같이 있으려 했다. 오소마츠형이 거실에 온다는 건 조금이라도 우리들에게 다가가려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싫다면 방에 처박혀 있을 테고. 실제로, 단순한 나는 오소마츠형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게다가 가능하다면 얼른 극복해줬으면 한다. 그래도 조금은 우리들 시선에 익숙해진 듯 아주 잠깐 동안은 마주보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 미세한 정도지만 그걸 알아챘을 땐 정말이지 기뻤다. 조금이라도 오소마츠형의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계속 거실에 있었지만 특별히 할 일은 없어서, 계속 뒹굴거리고만 있다.

 

문이 드륵드륵 하고 힘차게 열리는 소리가 현관 쪽에서 들려왔다.

 

[다녀왔스루!! 머스루머스루!! 허스루허스루!!]

[.....다녀왔어]

[드디어 쥬시마츠형들도 돌아온 모양이네]

 

토도마츠는 핸드폰을 한손에 들고 거실을 나가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 나도 무거운 허리를 들어올렸다.

 

[끄응차]

 

일어섬과 동시에 옷깃을 누가 잡아당겼다.

뭔가 싶어서 보자, 오소마츠형이 내 파카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잡고 있었다.

 

[왜 그래? 이제 곧 저녁 먹어야 하니까 카라마츠 부르러 가려고 했는데...]

[...나도 갈래. 슬슬 방으로 가려고...]

 

내 옷자락을 놓고 오소마츠형도 일어섰다.

오소마츠형을 데리고 거실을 나가자, 계단을 내려오던 카라마츠랑 마주쳤다.

 

[쵸로마츠...랑 오소마츠인가. 어디 가는 건가?]

[아니, 너 부르러 가려고 했는데 마침 내려오네]

[그런가. 저스트 타이밍이로군!]

[그래그래]

 

폼 잡으며 말하는 카라마츠에 적당히 답을 했다.

카라마츠가 내려왔으니 내 용무는 끝났지만, 오소마츠형을 방에 데려다주긴 해야겠지. 거실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보내고 가도 부자연스럽진 않으니까.

그 순간 현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야키소바!! 야키소바 냄새!! 오늘 저녁은 야키소바야!! 분명 야키소바!!]

[, 냄새가 나!? 전혀 안 나는데!!]

[, 쥬시마츠 코 얕보면 안 된당께]

[누구야 그거!!?]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가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걸 본 오소마츠는 나와 카라마츠를 말없이 번갈아 보았다.

....설마....

 

 

[....아아...!!]

 

 

역시나다.

우왕좌왕하며 황급히 거실로 뛰어가는 오소마츠형을 쫓아가자, 아까 그 위치로 돌아가 코타츠에 머리끝까지 푹 기어들어가 있었다. 오소마츠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많아....무리, 무리야]

 

이럴 때, 안심시키기 위해 쓰다듬어 준다는 선택지가 없어져 정말 골칫거리다. 오소마츠형의 경우, 역효과가 나니까.

뭔가 안심시켜줄 방법이 있다면 좋을텐데.

11이라면 나름대로 상대를 해주는데, 3명만 되어도 불안한 표정으로 침착성이 없어진다.

4명 이상이 되면 완전히 완전 패닉에 빠진다. 그러니까, 오소마츠형이 방에 있을 땐 3명만 있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나는 덜덜 떠는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오소마츠형]

[, ....?]

[, 같이 먹을래?]

[....]

 

오소마츠형은 예상외의 내 발언에 고개를 들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역시 거실에서 다 같이 먹는 건 아직 힘들지? 오늘만이라도 나랑 오소마츠형 방에서 같이 먹어도 될까?]

[그거라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저녁이니 쥬시마츠들이 거실로 올 거다.

일단 오소마츠형을 2층에 데려다 줘야겠지.

내가 뒤돌자, 언제 왔는지 카라마츠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내 뒤에 서있었다.

-, 아까 당황하며 거실로 뛰어갔으니 당연하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2층에 데려다주고 올테니까 쥬시마츠들 부탁할게]

[알겠다, 브라더. 내게 맡겨라]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카라마츠는 재빨리 거실에서 나갔다.

여전히 상대의 중대한 일에는 놀라울 정도로 이해력이 빠른 녀석이다. 자신에 관해선 기막히게 둔하면서. 그걸 자신한테도 발휘하라고. 카라마츠 답다면 답지만.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었다.

 

[, 애들이 오기 전에 빨리 나가자]

 

오소마츠형이 느릿한 움직임으로 코타츠에서 나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오소마츠형을 데리고 문을 나선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며 안심하다.

카라마츠가 해결을 한 모양이다. 계단 앞까지 가서 오소마츠형한테 말을 걸었다.

 

[먼저 방에 가있어. 나는 밥 가지고 올라갈게]

[....알겠어]

 

오소마츠형은 허겁지겁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급하게 가지 않아도 괜찮은데. 넘어질까봐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올라간 것 같다.

나는 오소마츠형이 계단을 오르는 걸 다 보고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훅 풍겨져 왔다. 식욕을 돋구는 냄새에 가까이 다가가자, 맛있어 보이는 야키소바가 접시에 담겨있다. 쥬시마츠의 말대로 야키소바다.

후각 굉장하네. 개였던 건가, 그 녀석.

 

[어머, 배고파서 온 거니? 이제 곧 다 되니까, 잠깐 기다리렴]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엄마가 말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 오늘은 2층에서 오소마츠형이랑 같이 먹기로 했으니까 내가 밥 가져갈게]

[어머, 그러니? 알겠어. 바로 준비해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렴]

 

엄마는 조금 놀란 표정을 보였지만, 솜씨 좋게 오소마츠형과 내 몫의 야키소바를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야키소바를 담은 그릇을 쟁반에 담아 건넸다.

 

[많이 담아서 쏟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렴. 특히 계단 오를 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애도 아니고]

 

쟁반을 들어 양손이 가득 찬 나를 걱정한 엄마가 부엌문을 대신 열어주었다. 나는 쏟아지지 않게 천천히 오소마츠형이 잇는 방으로 갔다. 무사히 2층으로 올라가 방문 앞까지 도착했다. 갑자기 들어가면 놀랄지도 모르니, 들어가기 전에 말을 걸었다.

 

[오소마츠형, 들어갈게]

 

재빨리 팔꿈치로 문을 열었지만, 순간 쟁반에 있던 물컵이 흔들리면서 물이 쏟아질 뻔해서 마음이 덜컥했다. , 위험했다. 눈앞에서 엎을 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다.

오소마츠형은 내게 등을 돌린 채 무릎을 끌어안고 누워있고, 방 중앙에는 접이식 원형탁자가 놓여 있었다. 아마 식사 때에 오소마츠형이 쓰는 거겠지. 테이블 옆에 쟁반을 내려두고 저녁밥을 탁자 위로 옮겼다.

엄마한테 쟁반을 받았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오소마츠형의 양 엄청 적구나. 그때부터 바뀌지 않은 건가. 좀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상을 다 차리고 오소마츠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얼굴을 살짝 들여다보니,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잠깐, 왜 자는 거야. 밥 먹을 거라고 했잖아.

나는 오소마츠형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일어나. 오소마츠형, 자지 말라고]

 

내 목소리에 닫힌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형이 나를 발견하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본 자다 깬 얼굴.

어쩐지 기뻐서 무심코 웃음을 지어보였다.

 

[...잔 거 아니야]

[딱 봐도 잔 건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침이나 닦으라고]

 

오소마츠형은 내 지적에 졸린 눈으로 입가를 쓱쓱 닦았다. 내가 탁자에 앉자, 오소마츠형도 내 앞에 앉았다. 그걸 본 나는 가슴 앞에 합장을 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소마츠형도 합장하곤 잘 먹겠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배가 엄청 고팠기에, 젓가락을 쥐고서 허겁지겁 야키소바를 먹었다.

으응~!! 맛있어-!! 엄마가 해주는 야키소바 오랜만이네-!! 역시 엄마!! 엄청 맛있어!

잠깐 야키소바의 맛에 흠뻑 젖어있었지만, 오소마츠형이 잘 먹는지 궁금해 시선을 돌렸다.

상당히 느릿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입을 우물거리는 게 보였다. 입안에 면을 가득 넣기 싫은 건지, 도중에 면을 잘라내었다.

밥 먹는 속도가 이렇게나 떨어지다니...

 

[어때? 맛있어?]

[....]

 

나는 야키소바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아무런 말도 않고,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딱 멈추고 오소마츠형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그건, 오소마츠형이 지금 젓가락으로 쥐고 있는 저것의 정체 때문이었다. 오소마츠형은 그걸 거리낌 없이 입안에 넣어 씹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형이 피망을 먹고 있어....]

[?]

 

옛날부터 피망만은 죽어도 안 먹던 오소마츠형이, 피망을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그것도 싫은 표정 하나 짓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먹어 보였다. 얼빠진 표정의 나를 의아한 듯, 오소마츠형은 여전히 입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먹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렇게 싫어했는데!!?]

[? .....뭐가?]

[피망!! 이런 건 먹을 게 못 된다면서 카라마츠한테 떠넘겼었잖아!!]

 

오소마츠형은 내 기세에 눌렸는지, 시선을 피하며 살짝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는 건 아니지만...못 먹을 정도는 아니, 려나]

 

이런.

흥분해서 평소처럼 말해 버렸다. 오소마츠형이 긴장하고 있다. 일단 나부터 진정하자.

탁자에 올라탈 기세로 내민 몸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목소리 톤도 낮춰서.

 

[쓰지 않아...?]

[........뭐라고 해야 할까...딱히 아무런 맛도 없다고...해야 하나]

[진짜냐...]

 

내가 먹었을 땐 그냥 평범한 피망의 맛이었는데....설마 미각을 잃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오소마츠형이 그렇게나 싫어하며 편식하던 피망을 먹게 되다니....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나는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잘 먹었습니다]

 

오소마츠형은 다 먹었는지 손을 합장하고 인사를 했다. 접시를 보니 야키소바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드물지만 적은 양이라면 다 먹긴 하는 모양이다. 남기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다 먹어주었다.

다행이다. 먼저 식사를 끝낸 오소마츠형을 따라, 조금 남은 야키소바를 마저 먹고 나도 합장하고 인사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만복감에 숨을 후, 내쉰다.

후우. 나는 기지개를 쭉 펴며 뒤로 드러누웠다. 이제 씻고 자기만 하면 되네. 배부르면 늘 졸려진단 말이지-. 지금도 그렇고.... 다들 슬슬 다 먹었으려나.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있자,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 무슨 소리지? 단숨에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뭔가를 입에 넣는 오소마츠형과 탁자에 놓인 흰 알약이 든 병이 있었다.

 

 

.....약 먹는단 얘긴 처음 듣는데.

 

 

 

 

[뭐야 그거]

 

언짢은 목소리로 물었다.

명백히 내 기분이 목소리에 드러났는지, 현저히 낮아진 내 목소리에 오소마츠형이 움찔 몸을 떨었다. 마침 물을 마시고 있었던 탓에 물이 입가에 살짝 흘러내렸다.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컵을 탁자에 탁, 하고 내려둔다. 오소마츠형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 인데...]

[그건 보면 알아. 솔직히 말해줘. 어디 아픈 거야?]

 

탁자 위에 놓인 투명한 병을 집어들었다. 안에는 하얀 얄약이 반쯤 들어있었다. 빙글, 병을 돌려 보았지만, 라벨은 붙어있지 않아서 무슨 약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나는 오소마츠형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움찔 몸을 떨며 당황하더니 이내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리곤 오소마츠형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냐....그냥 영양제야. 아픈 거 아니야]

[..........정말?]

 

그런 수상한 기색을 보이며 말하면, 믿을 수가 없잖아.

하지만 예전의 오소마츠형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의 오소마츠형이라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확률은 반반이다.

 

[, 많이 못 먹으니까.....먹고 있는 것뿐이야..]

 

오소마츠형은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는 마치 오소마츠형의 감정을 드러내는 듯했다. 이 이상 추궁했다간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나는 체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픈 건 아닌 거지?]

[아픈 건 아냐. 정말, 이야]

[그럼 됐어. 걱정하게 만들지 말라고, 정말]

 

다 먹은 접시와 컵을 쟁반위로 치웠다.

오소마츠형에게는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지만, 슬슬 나가지 않으면 목욕탕이 닫을지도 모른다.

 

[...안 했던가..]

[안 했어!! 애초에 약먹는다는 것도 몰랐다고!]

[...미안...]

[말하지 않은 거 잔뜩 있거든. 톳티도 아니고 그런 중요한 건 말해 달라고. 알겠어?]

[, 알겠어]

[알았으면 됐어]

 

오소마츠형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빈 접시가 놓인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그대로 방문 앞까지 걸어나가 문을 열었다. 그리곤 복도로 나가 오소마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나 가볼테니까. 오소마츠형도 빨리 씻으러 가]

 

다시 오소마츠형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나는 문을 닫고 부엌으로 향했다.

 

 

 

 

 

 

 

 

쓸쓸함은 이미 잔뜩 겪었다.

아주 잔뜩.

2년 동안 쓸쓸함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데, 다시금 온기에 느껴 떠올리고 싶진 않다.

쓸쓸한 건 싫다.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존재.

그러니까 나는 외로움이란 존재를 죽였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걸로 녀석들을 만나지 않아도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런데 동생들이 돌연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기도 다시 내게 손을 뻗어왔다.

그만둬.

제발 그만둬.

건드리지 마.

, 이제 너희들과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아.

..............

끈질기네, 제발 부탁이니까 나 같은 건 내버려 둬.

안타깝지만, 이지 너희들이 아는 장남은 없어.

 

 

없어져 버렸어.

너희들이 아는 장남은, 이제 없어.

이미 늦었다는 건, 나밖에 모르겠지만.

 

 

 

 

 

 

 





저저번주에 올리려고 했는데

1페이지 있는 줄 몰라서

빼먹고 번역해서 못 올렸습니다 ;ㅂ;



후편도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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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보지 마라, 마츠노의 이름을 1

 

 

 

 

 

 

설정

 

 

 

~마츠노 조직~

 

소수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에서 가장 세력이 큰 야쿠자 조직. 평화 주의적이라는 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상 하는 짓은 다른 조직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일본풍의 대저택이 본부이며, 마츠노 삼형제와 그들의 부인이 살고 있다.

 

 

마츠노 오소마츠

 

마츠노가 장남이며, 마츠노 조직의 우두머리. 조직의 후계 자리를 꺼려했지만,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적대 조직에 노려져 초죽음이 되는 경험을 한 이후, 가족이나 연인인 쵸로마츠를 지키기 위해 조직의 두목이 되기로 결심했다. 쵸로마츠와 결혼했다. 권총, 일본도 등 갖가지 무기들을 다 잘 다루지만, 예전의 경험 때문에 타오르는 불꽃을 장시간 보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불안정해진다.

 

 

 

마츠노 카라마츠

 

마츠노가 차남이자, 마츠노 조직의 사제두[각주:1] 오소마츠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그의 오른팔로 있을 것을 다짐했다. 누구보다 인정이 많지만, 필요할 땐 인정을 버리고 가차 없이 상대를 처리하기 때문에 원한을 사기 쉬워 보복당하는 일이 많다. 이치마츠를 사랑하지만, 이치마츠가 아내가 되어 버리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애인이란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기는 일본도로, 형을 능가할 실력.

 

 

 

마츠노 쥬시마츠

 

마츠노가 삼남이자, 마츠노 조직의 사제두 보좌. 두 형을 지탱해주기 위해, 또한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있기 위해 형들을 따르기를 결심한다. 전투광으로 웃으며 날뛰고, 상대를 때려눕힐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열 사람 몫의 힘을 가진 쥬시마츠의 활약 덕분에 마츠노 조직은 소수로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평소에는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아내인 토도마츠에 의하면 [집에서 만큼은 천사]라고 한다. 토도마츠를 사랑한다.

 

 

 

 

 

~ 우메노 세 쌍둥이 ~

 

 

마츠노가의 세 쌍둥이와 소꿉친구.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 마츠노가의 사정과 그들의 입장이나 위험성을 알고 있다. 초중고 전부 같아, 자주 붙어다녔기 때문에 주변에서 여섯 쌍둥이라 불리는 경우도 많았다. 각자 사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은 쵸로마츠, 토도마츠는 결혼했기 때문에 마츠노란 성을 쓰지만, 이치마츠만은 연인으로 남아있어 우메노란 성을 쓰고 있다.

 

 

 

쵸로마츠

 

우메노가 장녀. 흑발의 단발머리. 집에서는 녹빛의 옷을 즐겨입는다. 오소마츠의 아내 및 마츠노 조직의 여두목으로서 다부지게 집안일 바깥일을 다 척척 해낸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오소마츠를 유일하게 막 대하는 사람으로, 주변에서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본인은 모른다. 술을 마시면 피부에 꽃이 피듯 붉은 점이 피어오른다. 술에 약하다. 평소에 이치마츠와 토도마츠의 의지할만한 언니지만, 어리광에 약하다.

 

 

 

이치마츠

 

우메노가 차녀. 흑발의 긴 생머리. 윤기 있고 찰랑찰랑한 머릿결의 비결은 토도마츠의 손질. 집에서는 연보랏빛 옷을 즐겨 입는다. 가끔 체크무늬도 즐겨 입는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고양이에게도 인기가 많지만 인간 친구는 제로. 카라마츠라면 머리카락이나 손, 얼굴을 쓰다듬어도 상관없지만, 다른 남자가 닿는 건 혐오한다.

혼자 마츠노성이 아닌 걸 살짝 신경 쓰고 있다.

 

 

 

토도마츠

 

우메노가 삼남. 자연 갈색의 중간 길이의 머리. 집에서는 연분홍 옷을 즐겨 입는다. 악랄하고 귀여운 소악마계(원래는 あざと可愛인데 마땅한 단어가 안 떠오르네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넓다. 어리광 부리기를 잘하고 인신장악에 능해서, 그걸 이용해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낸다. 마츠노 조직에서도 유력한 정보는 다 토도마츠가 얻은 정보인 경우가 많다.

 

 

 

 

 

 

 

* * *

 

 

 

 

그건 한밤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취 있는 일본식 대저택이, 이글거리는 불꽃에 휩싸였다. 마당이 넓어서 인근 가옥에 옮겨붙지는 않았으나, 불의 열기가 강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도 끄지 못해 고전하고 있었다.

 

[굉장하네-....평생 살면서 한번 볼까말까한 거라고, 이런 거]

 

불 앞에서 히죽 웃는 한 남자.

그는 지금, 눈앞에서 타오르는 불꽃 옆에서, 새빨간 색으로 번쩍이는 소방차 램프를 바라보았다.

삐걱이는 소리가 나더니 지붕이 살짝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기둥 일부가 다다미 위에 떨어져, 바닥이 우지끈, 하고 소리를 냈다. 그가 서있는 곳은 바로, 타들어가는 대저택의 안이었다. 밖에서 우왕좌왕하는 인간들 중 그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슬슬 나도 나가지 않으면 위험하겠는 걸]

 

기둥에 손을 뒤로 돌린 채 결박당했지만, 이런 것쯤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기에 열심히 줄을 푸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를 먹긴 했지만, 도망갈 시간은 충분하다 생각한 그였지만.

풀썩.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주저앉았다. 연기를 많이 마신 탓인지,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숨쉬기가 괴로워 맺힌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졌다. 위험해. 얼른 도망가야 해.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에게 등을 걷어차여 바닥에 엎어지고 만다.

 

[으윽....누구야..!]

 

[소사체는 본인 확인이 힘드니, 지금 당장 처리하는 게 확실하겠지. 역시 끈 같은 건 바로 풀어버리네]

 

촤악! 하고 액체가 뿌려졌다. 몸을 살짝 구부린 탓에 등에만 묻었지만.

누구인지 눈물로 보이지 않고, 혼란스런 상황 속에 독특한 냄새가 코를 찌를 뿐이었다. 아까 뿌린 액체는 가솔린인 게 분명했다.

 

[....농담이지]

 

[잘가라, 마츠노 조직의 차기 당주씨]

 

 

천박한 웃음과 함께 발로 차여, 몸은 불 옆으로 굴렀다. 도망갈 수가 없다.

 

 

 

 

___굉장한 절규가 울려퍼졌다.

 

 

 

 

 

 

 

 

얕보지 마라, 마츠노의 이름을

 

 

 

 

하아, 하아, 하아.

40에 가까운 남자가 살찐 배를 흔들며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달리고 있었다. 하는 운동이라곤 고작 골프 정도로, 그의 인생에 달리기란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그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런 건 제 밑의 사람을 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활은 남자의 근력과 지구력을 전부 빼앗아, 지금 남자는 너무나도 힘든 도주를 겪고 있었다. 그 남자의 뒤를 쫓는 노란 그림자가 하나. 노란 그림자는 높게 도약하며, 금속 배트를 남자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호옴-----------러어언!!!!!!!]

[우아아아아아!!!!!!!!!]

 

하지만 남자가 피하는 바람에 배트는 남자의 어깨에 직격했다. 통증으로 쓰러진 남자가 어깨를 부여잡으며 노란색을 올려다본다.

 

[어라앗~? 피했어~? 그럼 다시!]

[, 잠깐만!! 목숨만은 살려줘! 돈이라면 얼마든...]

 

,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붉은 분수가 솟았다. 아스팔트에 남자의 몸이 쓰러진다.

 

[아저씨 마지막에 뭐라고 했어? 미안, 못 들었어!]

 

내려다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노랑은 휙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카라마츠혀-!! 끝났어!]

[잘했다, 쥬시마츠. 역시 너는 빠르군]

[감삼다~! 엄청 빠르지!]

 

엷은 어둠속 가로등 불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푸른 옷과 노란 옷의 남성들은 똑같은 얼굴이었다.

 

[우리들 구역을 휩쓴 놈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곤란하지... 자아,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돌아갈까]

[아이아이!!]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차갑게 식어가는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다음날 항구에서 머리가 박살난 남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아아, 또 녀석들을 화나게 한 멍청이가 있었구나. 그들의 평화를 깨뜨리지 마. 살아서는 못 나갈 거라고.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채. 소나무 몇 그루가 멋들어지게 자리한 넓은 정원이 있는 일본식 대저택. 여기는 뒷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츠노 조직의 본부다.

 

[으응~~, 잘했어! 형아가 칭찬해줄게!]

 

다다미방 안쪽에 앉은 붉은 옷의 남성이, 어젯밤 한 불량배를 쓰러뜨린 노란 남성의 머리를 양껏 쓰다듬었다. 노란색은 기쁨에 몸을 들썩거렸다.

 

다다미방에는 세명의 남성이 있었는데, 각각 빨강, 파랑, 노랑의 옷을 입고 있었다. 빨강을 마주보고 앉는 형태로 파랑과 노랑이 앉아 있다.

 

[, 우리들 손에 걸리면 그렇게 되는 건 당연하다, 오소마츠]

[? 카라마츠형 아무것도 안 했잖아!]

[또 쥬시마츠한테 기회 뺏긴 거야? 카라마츠]

 

오소마츠라고 불린 빨간 옷의 남성은 히죽거렸고, 카라마츠라 불린 파란옷의 남성은 움찔하며 정곡을 찔린 듯한 얼굴을 했으며, 쥬시마츠라 불린 노란옷의 남성은 환하게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카라마츠형은 사냥감을 유인했어! 그리고 내가 쫓아가서 때렸어!!]

[수고했어. 두 사람 덕분으로 해둘테니까. 봉급도 올려줄게~]

[아싸아-!!]

[잘 됐군..]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는 기뻐하며 방을 나갔다.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카라마츠랑 쥬시마츠, 돌아왔어?]

 

다른 쪽의 문이 열리며, 연녹색의 옷을 입은 여성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어깨 위까지 오는 검은 머리칼이 찰랑인다.

 

 

[-, 쵸로마츠, 일은 다 끝냈어?]

[, 그럭저럭]

 

 

쵸로마츠라 불린 초록옷의 여성은,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오소마츠 옆에 앉았다.

 

[뉴스 봤어. 항구에서 사람이 한명 죽었다며. 그거, 저 두 사람이 한 거지?]

[, 그렇지]

[죽이라고 명령한 거야?]

[설마. 나는 그 남자가 더는 우리 구역에서 마약밀매를 하지 않도록 철저히 가르쳐주고 오라고 했을 뿐이라고. 다들 극단적이지, 특히 쥬시마츠가]

[.....역시, 오소마츠의 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옷의 앞섶을 풀어 헤치며 등을 드러냈다. 그의 피부는 딱 봐도 심각해 보이는 화상자국이 있어, 보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맞아, 내 등을 이렇게 만든 놈. , 나와 녀석들을 이 세계에 밀어넣은 계기가 된 그 사건의 범인. 그 일이 없었다면, 이런 입장 같은 건 버리고 평범한 형동생 사이로 살았겠지]

 

너까지 고생시키고 말았네. 미안, 쵸로마츠. 오소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쵸로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쵸로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오소마츠의 뺨에 양손을 얹었다.

 

[내가 좋아서 너랑 같이 있고 싶다고 했던 거잖아. 어릴 적부터 계속 민폐 끼쳤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하하, 그렇네]

 

오소마츠는 씨익 웃으며 쵸로마츠의 머리 뒤에 손을 얹고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역시 내 부인이야. 두둑한 배짱에 다시 한 번 반해버렸어. 오늘, 한잔 할래?]

[....술 안 마셔. 필요 없어]

[센 척하기는. 얼굴 빨개졌다고?]

[아니거든]

 

허둥지둥 일어난 쵸로마츠는 살짝 찡그린 얼굴로 방을 나갔다. 청소해야지, 청소. 라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 말하는 쵸로마츠는 귀까지 빨갛게 물들여, 쑥스러워 하고 있음이 단박에 드러났다.

 

[....술 얘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지]

 

오소마츠는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오소마츠는 몰라도 쵸로마츠는 술에 굉장히 약했다. 한잔 마시는 것만으로 금방 새빨개지고, 새하얀 피부에 꽃이 피듯이 붉은 점이 생겨나는데, 그게 또 무척이나 색기 넘친다. 술에 취하면 솔직해 지는 쵸로마츠의, 열에 젖은 눈과 애잔한 목소리는 오소마츠의 이성을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그 피부를 손가락으로 훑어내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패거리들 앞에서는 [다른 곳에서 해] 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래서 쵸로마츠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서 일을 치르는데, 그럴 때면 늘 [싫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저항하진 않았다. , 술을 마시자라는 건 사랑을 나누자는 의미라는 게, 이 부부의 암묵적 양해가 되었다. 다른 형제들도 이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어, 다들 연회 자리에서는 가급적이면 쵸로마츠에게 술을 권하는 오소마츠를 막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그렇게 자꾸 미루면 나중에 큰일난다고~]

 

히죽 웃는 오소마츠의 눈은 사냥감을 포착한 듯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소마츠 오빠. 이제 들어가도 돼?]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려왔다. 거기서 얼굴을 들이민 건, 커다란 눈과 귀엽게 오므라진 작은 입술을 가진 여성이었다.

 

[-, 미안 토도마츠. 와 있었어?]

 

손짓으로 부르자, 분홍색 기모노를 입은 작은 여성이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토도마츠.

 

[아침부터 완전 러브러브구만!! 그보다 쵸로마츠 언니는 어제부터 계속 여기에 있었잖아! 나는 혼자서 쓸쓸하게 쥬시마츠를 밤새 걱정하며 기다렸는데 말이야!! , 짜증나!!]

 

불만을 터뜨리며 토도마츠는 기세 좋게 오소마츠 앞에 앉았다.

 

[일에 관한 얘긴데....우리 관리 하에 없는 약이 또 나돌고 있는 모양이야]

[.....최근 이런 일이 많네. 찾아내서 처리를 하는데도 계속 나돌고 있다는 건 무슨 수를 쓴 거겠지. 어쩌면 뒤를 봐주는 녀석이 있는지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좀처럼 안 잡히네. 아무튼, 또 카라마츠 오빠랑 쥬시마츠가 나설 차례가 됐다는 걸 전하러 왔어]

[그래, 고마워]

 

토도마츠는 할 말을 전하고 곧장 일어섰다.

 

[...저기, 오소마츠 오빠]

[?]

[우리들, 언제까지 이렇게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걸까]

 

토도마츠의 중얼거림에 오소마츠는 조금 말문이 막혔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평소처럼 말했다.

 

[바보. 우리들이 지켜줄 거니까, 너희들은 아무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뭔가 열받아. 떼쟁이 장남이었던 주제에]

[뭔 소리야!?]

[, 됐어. 전할 말은 그것 뿐이니까]

 

의지하고 있다고, 보스. 토도마츠는 윙크를 슬쩍 남기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토도마츠의 말대로, 오소마츠들이 정체모를 어둠의 조직에게 노려지고 있음은 틀림없다. 얼른 결착을 내지 않으면, 지켜야 할 사람을 안심시켜줄 수도 없게 된다. 그래서 오소마츠는 갖은 수를 써서라도, 과거에 자신의 등에 기름을 끼얹은 그 빌어먹을 자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적어도 무언가 바뀔 거라고 믿었다.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가솔린 자식. 오소마츠는 몇 년을 애태우게 만든 상대를 향해, 다시금 선전포고를 날렸다.
















설정의 야쿠자 직급?계급?

아무튼 용어 관련 설명입니다





샤테이(사제)는 구미쵸(보스)와 형제의 연을 맺고 아우가 된 사람

샤테이카시라(사제두)는, 샤테이들 중 리더 역

샤테이가시라호자(사제두 보좌)는, 샤테이카시라(사제두)를 보좌하는 사람




즉, 오소마츠는 보스(구미쵸)

카라마츠는 사제(샤테이) 중에서도 우두머리격인 사제두(샤테이카시라)

쥬시마츠는 그 사제두를 보좌하는 역(샤테이카시라호자)입니다


*사제는 형제의 연을 맺은 사람 전체를 통틀어 말합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카라마츠와 쥬시마츠는 보스인 오소마츠의 오른팔과 왼팔!

같은 느낌입니다 :)






-



신시리즈입니다!!


오늘 원래 단편도 올릴 생각이었는데

제가 모르고 앞부분을 번역을 안 했더라구요ㅠㅠ


북마크가 2페이지에 되어 있었습니다...ㅎ

왜 번역하면서 이상하단 걸 못 느꼈던 걸까.....



마저 번역해서 다음 업로드 때 올리든가 하겠습니다!





;ㅂ; 요청 자꾸 까먹네요...

야밤에 올리니까 늦은 시간에 메일 보내기 좀 그래서

다음날 해야지 다음날 해야지 그러다가 그만...잊어버렸다..


다음주 내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ㅠㅠ 죄송해요










  1. (야쿠자 은어로, 두목과 형제관계를 맺은 자들 중에서 우두머리라는 의미) [본문으로]





허락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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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 의역, 발식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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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いたろ 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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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프롤로그*

2016/11/26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프롤로그-


*1편*

2016/11/26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1- (R)


*2편*

2017/02/13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2- (R)


*3편*

2017/02/13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3-


*4편*

2017/03/30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4-


*5편*

2017/06/08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5- (R)


*6편*

2017/08/21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6-


*7편*

2017/08/21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7-


*8편*

2017/10/09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8-


*9편*

2017/10/09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9-


*10편*

2018/02/15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10-


*11편*

2018/02/15 - [마츠소설/마츠노가의 중대한 사태] - [오소마츠상][이치쥬시]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11- (R)

















나와 고양이와 동생과 부서진 무언가 12

 

 

 

 

 

(쥬시마츠 시점)

 

 

,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쵸로마츠형에게 쓰러지듯 안긴 내 앞에서, 이치마츠형이 오소마츠형에게 무자비하게 차이고 있다. 카라마츠형은 그 위에 올라타 주먹을 떨고 있다.

그만둬,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입술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토도마츠가 울부짖으며, [그만해, 그만해] 라고 소리쳤다. 그에 형들은 정신을 차린 듯 움직임을 멈추고, 이치마츠형을 내버려두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치마츠, 네가 잘못한 거야]

내 옆에서 쵸로마츠형이 말했다.

[왜 다들 화내는 건지, 잘 생각해 봐]

[하핫]

이치마츠형은 길바닥에 쓰러지면서 웃음을 흘렸다.

입과 코에서 피를 철철 흘렸다. 얼굴도 퉁퉁 부어올라 무척 아파보였다.

[화나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거라고]

센 척을 하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형을 보며, 나도 뭔가 울고 싶어졌다.

 

 

 

* * *

 

 

 

바로 방금 전의 일이다.

집 앞에서 내 귀가를 기다리던 오소마츠형과 카라마츠형을 발견한 이치마츠형은, 갑자기 옆에 있던 나를 형들 앞에 밀쳤다.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나를 본 두 사람이, 이치마츠형을 봤을 때 형은 굉장히 악랄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쥬시마츠, 찾았어? ..........., 내 용무는 다 끝났으니까]

[..........이치마츠!!]

[이 자식!!]

두 사람은 용수철이 튀어나가 듯이, 이치마츠형에게 뛰어들었다.

나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이치마츠, .......]

[이치마츠형!!]

쵸로마츠형의 말을 자르며 토도마츠가 외쳤다.

[쥬시마츠형은 이치마츠형을 제일 걱정했다고. 형은 미쳤어. 고양이들하고만 계속 있다 보니까 미쳐버린 거야]

[.........헤에]

피범벅의 얼굴을 한 이치마츠형이 히죽 웃었다.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토도마츠는 집으로 도망치듯 뛰어 들어갔다. 나도 쵸로마츠형에게 끌려 집에 들어갔다.

[............]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쵸로마츠형은 소용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치마츠는 좀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어]

[......., ]

나도 그 말에 수긍했다.

형들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오늘 나는 살해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장에 길게 늘어진 목줄. 그걸 찬 나를 형은 짓누르듯 밑으로 끌어당겼다. 목줄이 목에 죄어들어 숨을 쉴 수가 없었기에, 크게 날뛰었다.

그 때 계속 귓가에 맴돌던 형의 웃음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는 혼자서 이치마츠가 있는 곳에 가지 마]

쵸로마츠형은 내게만 들릴 목소리로 속삭이며 계단으로 향했다. 거실에는 오소마츠형이나 카라마츠형이 있겠지. 가능하다면, 지금은 그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쵸로마츠형]

목에 손을 대며, 나는 형을 불러세웠다.

[?]

[형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래]

쵸로마츠형은 내 등을 쓸어주며 웃었다.

만약 그대로 죽었다면, 나는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을 거다.

고양이로 가득한 그곳에서, 먼지투성이의 알몸으로, 형에게 범해지면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이 점점 떨려왔다.

 

 

 

 

 

 

* * *

 

 

 

[쥬시마츠]

오소마츠형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살짝 거친 목소리. 아직 화난 걸까.

나도 분명 혼나겠지. 쵸로마츠형과 나는 각오를 다지듯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함께 거실로 들어갔다.

오소마츠형은 거실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카라마츠형은 커텐이 쳐진 창문가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다들 굉장히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 당분간 밖에 나가지 마]

오소마츠형이 말했다.

[쵸로마츠는 현관 잠궈]

[이치마츠는 어쩌고]

[오늘밤 정도는 못 들어와도 얼어죽거나 하지는 않아]

[-]

고개를 끄덕이며 쵸로마츠형은 현관으로 향했다. 오소마츠형은 날 보며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

나는 형 앞에 정좌를 했다.

[녀석이 무슨 짓을 했어, 쥬시마츠]

[무슨 짓이라니...]

나는 머리를 숙였다. 말할 수 없는 일들뿐이었기에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얘기하면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게 무서웠다.

단편적으로 끊어진 기억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았다.

얼른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도 그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이치마츠형이,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고개를 숙인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오소마츠형이 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네가 카라마츠 몰래 동아리 땡땡이 쳤다는 걸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평소보다 커진 목소리. 화를 낸다기보다 흥분한 듯한 목소리다. 나는 고개를 아까보다 머리를 더 푹 숙였다. 미안하다고 말하듯이.

가지 않는 게 좋았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설마 그런 짓을 당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형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이치마츠형에게 당한 것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쥬시마츠, 너 목 주변 멍들었다고]

카라마츠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오소마츠형도 눈을 가늘게 뜨며 내 목을 보았다.

멍든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아프니까. 목이 욱신거린다.

아마, 장시간 나는 목이 매달아진 채였을 거다. 괴롭고, 괴로워서 발버둥 쳐도, 형은 내 몸을 계속 밑으로, 밑으로 끌어당길 뿐 비켜주지 않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죽기를 기다렸을 거다.

 

 

무서웠다.

굉장히 무서웠다.

 

카라마츠형이 가까이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곤 팔을 뻗어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쥬시마츠....이제 그 녀석한테 가까이 가지 마]

[카라마츠형........]

그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치마츠형은, 분명 이제 내가 필요 없어진 거다.

필요 없으니까, 그런 짓을 한 거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되는 거야? 이치마츠형.

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면, 형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 * *

 

 

 

카라마츠형의 품은 포근해서,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형의 등뒤로 팔을 두르자, 카라마츠형은 기쁜 듯 더 세게 껴안았다.

...... 뭔가, 조금 아파.

숨쉬기가 조금 괴로워져서, 팔 사이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어느새 거실에 온 건지 토도마츠가, 살짝 얼빠진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토도마츠는 허둥지둥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도 따라서 미소를 지으며, 애써 웃어 보이는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 자아, 카라마츠씨. 일단 쥬시마츠를 놓아달라고]

오소마츠형이 카라마츠형에게 말을 걸었다.

[, 그래]

카라마츠형 품에서 떨어져 나오자, 다시 조금 추워졌다.

오소마츠형은 내 앞에 앉아서 곤란한 듯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나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웃는 게 딱이지. 미소가 제일이다.

그대로 잠시 시선을 주고받다가, 형이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 말하기 싫어? 쥬시마츠]

[미안..]

이 이상으로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지만, 말하고 싶지 않다.

말해버려서, 모든 것이 진실이 되는 게 무섭다.

그 진실은 분명, 모두를 상처 입히고 말 것이다.

이치마츠형도, 전부 진심이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다.

나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했을 리 없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 걸. 이렇게 형들 곁으로 돌아왔는 걸.

그렇지? 그렇잖아?

[......, 졸린 거야? ?]

카라마츠형이 눈살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멍자국이 그렇게 심한 걸까. 나한테는 안 보이는데.

[살짝..........하지만 괜찮아]

[아파 보이는데]

카라마츠형은 손끝을 내 목으로 뻗었다.

[!!]

멍자국을 확인하려 뻗은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도 모르게 놀라서 몸을 뒤로 뺐다.

[, .........미안]

[, 아니야, 괜찮아......이제 그렇게 아프지도 않으니까]

순간적으로 덮쳐든 공포에, 손가락이 떨렸다. 당황하며 반대쪽 손으로 손가락을 숨겼다.

형들은 내 굳은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안 되지, 안돼.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미안, 오늘은 이치마츠형한테 가면 안 됐었는데..]

[그러게]

오소마츠형이 조용히 답했다.

[정말 괜찮은 건가? 쥬시마츠]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오늘은 빽빽 울거나 하지 않아.

표정도 웃는 얼굴이고, 형들의 상냥함도 제대로 전해졌고.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지 않으면 안돼.

오소마츠형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 하고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가서 씻고 와]

[그럴게!]

활기차게 답하며 나는 욕실로 달렸다.

뭔가 하나 클리어한 느낌이 들었지만, 혼자 욕탕에 들어앉아 있으니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나 버렸다.

형의 웃음소리, 죽어가는 나를 관찰하는 듯한 눈빛. 히죽거리며 내게 목줄을 찰 때의 손가락의 움직임.

내 허리를 끌어당기던 형의 손가락이, 성기가 비집고 들어오는 그 감촉.

수많은 무언가가 온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감각이 떠오르고 말았다. 무섭다. 기분 나쁘다. 괴롭다. 누군가 구해줘.

욕조에 얼굴을 반쯤 담그고, 나는 자신의 몸을 세게 끌어안으며 필사적으로 참았다.

괜찮아. 나는 필요, .

오소마츠형도 카라마츠형도, 쵸로마츠형도, 토도마츠도,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이치마츠형은, 내가 이제 필요 없어진 걸까.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걸까.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 * *

 

 

 

꽤 오래 목욕탕에 들어앉아 있었다고 생각할 즈음.

욕실 밖에서 오소마츠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쥬시마츠-, 살아있냐-]

당황하며 답했다.

[살아있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저기, 형아도 씻어야 하는데 누구씨 때문에 밖에서 엄청 기다렸다고~? 같이 들어가도 될까나?]

[괜찮아-]

나는 얼굴을 물로 슥슥 씻으며 뺨을 때려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빙긋 웃으며 큰 목소리로 답했다.

 

 

 

 

* * *

 

 

 

 

(이치마츠 시점)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눈앞에서 울렸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가만히 있던 나는, 자신이 쫓겨났음을 깨닫고 웃음이 치밀었다.

뭐어,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고 직감은 했다.

다시 그 헛간으로 돌아갈까.

하지만 거긴 벽도 천장도 구멍투성이라서, 밤이슬은 피할 수 있어도 가을밤의 추위는 견딜 수 없다. 길고양이들이 눈치를 채서 나를 따뜻하게 덥혀준다면 모르겠지만, , 그럴 일은 없겠지.

[.......아파라.....젠장, 카라마츠 녀석]

양쪽 뺨을 주먹으로 몇 번이고 얻어맞았다. 입안에 피맛이 감돌았다.

분명 그 녀석, 쥬시마츠가 마음에 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어차피 손대지도 못 하겠지.

[.......이치마츠!!]

위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고개를 드니, 베란다에서 쵸로마츠형이 담요를 한 손에 쥐고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고, 열려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형은 담요를 던졌다.

단번에 캐치한 나는 감사하다는 의미로 담요를 높게 쳐들었다.

그 헛간보다 우리집 창고가 낫겠지.

그보다, 또 저녁 못 먹었잖아.

 

 

창고 문을 억지로 열고, 안에 들어갔다. 애초에 그렇게 큰 창고가 아니니까, 나 한명 들어간 것만으로 꽉 찼다. 선풍기나 잉어 깃발이 든 상자를 찾아 밖으로 내놓으며, 어떻게든 몸을 구기면 잘 수 있을 공간을 확보했다. 그곳에 받은 담요를 둘러쓰고 들어가려던 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쵸로마츠형이었다.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주먹밥 만들어 왔으니까, 이거라도 먹어]

[..........고마워]

주먹밥 3개가 놓인 접시에 손을 뻗어, 하나를 입에 넣었다.

흰쌀밥 안에 다시마가 든 주먹밥. 짭짤하게 간이 되어 상당히 맛있다. 배도 엄청 고팠기 때문에 더욱 각별하다.

[치료, 안 해도 돼?]

무척이나 상냥한, 남을 돌보기 좋아하는 형이 다정하게도 물어온다.

[심한 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답하며, 쵸로마츠형의 얼굴을 봤다.

[형은 화 안 났어?]

[당연히 엄청 화났지. 하지만, 너도 가족이니까]

[쥬시마츠, 죽이려고 했는데?]

[..........그 현장을 직접 봤다면, 나도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쵸로마츠형은, 여기, 라며 물통에 든 차를 내밀며 말했다.

[쥬시마츠가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해주길 바라는 것 같아서 말이야. 우리들도 그 마음 받아들여줘야겠지 싶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코웃음을 지며 말하자, 쵸로마츠형은 가늘게 뜨며 노려봤다.

[쥬시마츠가 그러길 원했으니까라고. ....널 위해서가 아니니까. 전에는 열도 펄펄 끓고 기절할 정도로 쇼크를 받았었는데, 오늘은 열심히 웃고 괜찮다는 어필을 해댔다고.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해?]

[.........자기 탓이잖아]

[네 탓도 있다고]

[......, 그래]

나는 물병과 그릇을 쵸로마츠형에게 건넸다.

고귀하신 쥬시마츠님은 더러운 형을 용서해달라고, 온정을 베풀어달라고 다른 형제에게 호소했다는 건가.

[아무튼 넌 좀 반성하고 있으라고, 이치마츠. 그런 짓을 했다간 진짜 집에서 쫓겨난다고]

[-]

집으로 돌아가는 쵸로마츠형에게, 나는 건성으로 답했다.

쥬시마츠의 온정이라.

녀석이 나를 용서할 거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역시 이제 괜찮지 않나 싶다.

역시 오늘, 죽여버리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녀석도 이번에야말로 나를 절대 용서하지 못하겠지.

차가워진 시체를, 죽은 고양이나 작은 새들처럼 강변에 묻어,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싶다.

형들에게도 토도마츠에게도 절대 알려주지 않을 거다.

나만이 아는 장소에 몰래 묻어, 매일, 그 위에서 빌 거다.

 

 

――이런 쓰레기가 오늘도 살아있어서 미안하다, .

 

 

땅 아래에서 쥬시마츠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원망하며 욕할까.

 

 

어쩌면 그래도 아직 용서해줄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짓을 했네. 하지만 괜찮아.

또 다음 생에서 만나면 되니까.

그때까지 잠시 바이바이네.

 

 

 

그렇게 내게 속삭이며 웃는 천사의 날개를 단 쥬시마츠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상상을 하며, 나는 조금 눈물을 글썽였다.

 

 

 

 







오타지적 환엽합니다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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