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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화내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누구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다리에서 정적과 고독을 만끽한 카라마츠는 최고의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샤이한 카라마츠 걸은 이 멋진 남자를 보고도 흘긋흘긋 쳐다보기만 할뿐, 결코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만, 그런 건 이미 익숙했기에 카라마츠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전, 다리가 저려 헐떡이던 카라마츠가 걸즈에게 도와달라 말을 걸었지만, [변태!! 가까이 오지 마!!] 라며 빈 깡통을 던지고 경찰을 부른 적이 있었기에, 그 때의 반성으로 카라마츠는 부주의하게 먼저 말을 걸지 않기로 했다. 기다림의 자세를 갖게 되었다. 세상에 그날 그 여성처럼 츤데레 여성만 있는 건 아니란 걸 알지만, 아무리 카라마츠여도 변태란 소리를 듣는 건 싫고, 경찰은 무섭다. 샤이한 카라마츠 걸은 오늘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지만, 그것도 언젠가 해결되겠지. 언젠가 샤이한 카라마츠 걸이 용기를 내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카라마츠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카라마츠가 집에 도착했을 무렵, 때마침 시간은 정오를 가리켰다. 하늘을 올라다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에 눈부신 태양이 빛을 발하고 있다.
[오늘의 썬은 베스트하게 샤이닝하군...이 눈부신 소울을 가진 이몸에게 아주 잘 어울려...]
카라마츠는 훗...하고 앞머리를 날리며 중얼거린다. 나는 오늘도라니 당연하지 않나, 하고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비출 큰 전신거울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꼈다.
[다녀왔다, 브라더-!]
드르륵, 하고 현관문을 열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집안은 고요했다. 뭐야, 전부 외출한 건가, 하고 카라마츠는 조금 실망한 채 신발을 벗어두고 마루에 오른 순간 뭔가 발에 치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형의 빨간색 신발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둔 그것은 카라마츠의 단 한명의 그 형의 것으로 보였지만, 신경 쓰이는 건 그게 아니라 오소마츠가 집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집에 있었으면 답이라도 좀 해주지, 하고 카라마츠는 짜증스럽게 신발을 벗었다.
답을 하지 않은 게 동생들이라면 조금 슬프고 말았겠지만, 상대는 형으로, 카라마츠는 [오소마츠 주제에 답을 하지 않다니 뭔가!] 하고 불만스럽게 거실문을 열었다. 어쩌면 자고 있었을지도, 아니 이런 시간에 자고 있었다니 그것도 그것대로........하고 방에 들어선 카라마츠의 눈이 뭔가를 발견했다.
발이다.
발인데, 지면에 붙어있지 않다. 공중에 퍼덕이는 발이, 카라마츠의 눈높이에서 헤엄치고 있다.
양말을 신은 그 발을 카라마츠는 응시하다, 바지로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점점 위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붉은 옷이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카라마츠는 절규하며 공중에 뜬 발에 달려들었다. 쿵, 하고 카라마츠의 체중이 실린 발은 바닥으로 당겨지고, 몸이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듯 무언가가 꽉 붙들고 있다. 바로 위에 굵은 로프가 보이고, 무심코 카라마츠는 발에서 손을 뗀다. 카라마츠가 힘차게 덤벼들고 다시 떨어진 탓에, 발이 앞뒤로 흔들린다.
카라마츠는 황급히 방을 둘러보고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칼을 집어, 방에 돌아와 의자를 그곳까지 끌어 딛고 올라선다. 밧줄을 잡아 식칼로 자르니, 툭하는 소리와 함께 로프가 끊어졌다.
풀썩, 몸이 바닥에 떨어진다. 카라마츠는 의자에서 뛰어내리듯이 내려가 그 몸에 달려갔다.
[오소마츠, 오소마츠......!!]
카라마츠는 상당히 동요하며 몇 번이고 오소마츠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려 그의 뺨에 손을 뻗자--------
-----------거칠한 천의 표면이 만져졌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그 까칠한 감촉의 뺨을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도 거친 천이 부딪치는 소리만 났다.
---------이거, 인형이지않나아아아!!!!
카라마츠는 속으로 절규하며 바닥에 푹 엎드렸다. 이 무슨 일인가. 완전히 속았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형제가----그것도, 가장 고민과는 거리가 먼 오소마츠가---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다니!!! 걱정한 자신이 바보같다, 가능하다면, 아까 현관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카라마츠는 절실히 생각했다. 아까 자신이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는 자각은 있다. 그 때는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완전히 웃음거리이다.
설마하니 몰래 카메라, 라고 말하려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고 카라마츠는 어느때보다 날카로운 눈매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집 어디에도 인기척은 없었고,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하고 낮게 중얼거리며 인형의 목덜미를 꽉 잡았다. 얼굴부분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게 어쩐지 오소마츠를 닮아 보인다.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얼굴을 한 인형에, 카라마츠는 그때의 초조함을 떠올려, 인형이 입고 있는 옷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쿨해져라, 마츠노 카라마츠. 진정해라, 나....)
스읍, 하아, 하고 호흡을 하며 화와 수치로 붉어진 안색을 가라앉힌다. 인형을 세게 부여잡고 있던 손의 떨림도 가라앉고, 카라마츠는 신중하게 어깨에서 힘을 뺀다.
인형을 벽장에 처넣고 1층으로 돌아가자, [다녀왔어-]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드르륵 열린다.
[어서와라, 브라더]
현관에 시선을 돌리며 어서와라 인사를 한 카라마츠의 움직임이 멈춘다.
[이야-, 완전 날렸어. 파칭코에서 날린 후의 맥주만큼 맛있는 게 없구만!]
[이 도박쟁이가!! 거긴 일 끝낸 후, 잖아!]
[일하지 않는 녀석한테 듣고 싶지 않거든~]
[시꺼!! 아, 카라마츠. 너 벌써 돌아왔]
『후오아아아아아아아압!!!!!!!!!!!!!』
[크헉!!] 하는 비명과 함께 오소마츠형이 현관으로 자빠진다. 그곳에 서있는 건 오른손을 치켜든 카라마츠와, 입을 쩍 벌린 채, 나와 오소마츠형을 바라보는 쵸로마츠뿐이다.
[아니 왜 갑자기 보디블로-!?!?!]
정신을 차린 쵸로마츠가 소리친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봤지만, 나는 그에 상관하지 않고 오소마츠 위에 서서 오소마츠를 내려다보았다.
[오늘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아니, 뭐가!?]
쵸로마츠가 뒤에서 외쳤다. [오소마츠형, 카라마츠가 엄청 화가 났는데, 뭐 짚이는 거 없어!?]
[아니, 나는 늘 동생들을 위한 행동밖에 하지 않는다고-? 뭐어, 그게 너희들이 기뻐할 행동이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그냥 악질적인 괴롭힘이겠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라, 오소마츠. 네가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솔직히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아서 모르겠어]
[짐작 가는 게 있긴 있는 거냣!!!]
오소마츠형, 카라마츠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하라고. 라며, 쵸로마츠가 나무라듯 말한다. 카라마츠는 오소마츠형을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지만, 오소마츠형은 이쪽에서 눈길을 돌려 제대로 카라마츠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곤란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소마츠의 입이 뻐끔뻐끔 움직인다.
(나, 뭔가 했어?)
카라마츠는 갑자기 오소마츠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오소마츠는 어째선지 난처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아까의 장난은 오소마츠가 아니라, 다른 형제의 짓인가. 가령 그렇다고 쳐도, 동생게에 화를 낼 수는 없을 것 같고, 하지만 한번 치솟은 분노를 쉽게 가라앉지도 않았다.
[시끄럽다, 평소의 행동을 반성해라] 라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카라마츠는 자리를 떴다.
◆◆◆
[미안하지만, 그런 이유로 너희들 중에 3명 정도는 자력으로 생활했으면 하는데..]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 다름 아닌 우리의 어머니, 마츠요이다.
마츠조가 일하는 회사가, 경영부진으로 마츠조의 보너스가 크게 줄게 되었다. 6명의 성인 남정 니트를 부양하는 마츠노가에, 그 사실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 없었고, 물론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연명해 온 탓에 저축 같은 것도 있을 턱이 없었다. 거기서 양친이 내린 결단은, 아이들을 몇 명 내보내, 생활비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비정한 부모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녀석들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다. 이렇게 니트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이다. 마츠요는 6명 모두 나가라고는 하지 않고, 적어도 3명만 집을 나가서 자력으로 생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도 무기한은 아니었다. 가계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거든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다 했다.
물론, 자신은 싫다며 떼를 써댄 건 오소마츠였다. 자력으로 생활하라니 절대 무리, 라며 바닥에 엎드려 읽던 만화책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았다. 형으로서의, 아니 인간으로서의 프라이드도 없다.
반대로 쵸로마츠는 [그런 거라면, 내가 나갈게] 하고 간단히 승낙했다. 역시 라이징 시코스키. 애초에 그는 언젠가 집을 나가 자력으로 생활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그 계기가 조금 일찍 다가온 것뿐이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토도마츠도 집을 나가기 싫다고 주장했다. 자력으로 생활하다니 무리야아, 엄마 버리지 말아줘어, 라며 울상으로 호소했고, 그게 먹혀들었다. 엄청나게 약아빠진 그 모습에 짜증난 쵸로마츠가 주먹으로 벽에 구멍을 뚫은 건 비밀이다.
이치마츠도 마찬가지로 [내가 자력으로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며칠은 가능할지도 몰라도, 일주일이 지나면 분명 죽어버릴 거라고......] 라며 어둠 오라를 뿜으며 단언했다. 마츠요와 마츠조는 아들의 그런 무서운 모습에 몸을 떨어댔다.
문제는 남은 두 사람이었다. 물론 이 두 사람도 집을 나가기는 싫겠지, 하고 형제들은 생각하고 있었지만.
[알겠다, 그럼 나도 나가지, 마미-]
간단히도 그렇게 말한 카라마츠에 [핫!?] 하고 놀란 건 토도마츠였다.
[아니, 에!? 카라마츠형, 무슨 소리야? 나가다니, 생활비 같은 거 안 보태준다고!? 자력으로 일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라고!?]
[당연하잖나] 카라마츠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토도마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카라마츠를 보았다.
[에에-----이거 정말 카라마츠형이야..?]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브라더라고, 아하~앙?]
[아아, 응. 그건 됐으니까]
토도마츠의 말에 풀이 죽어버린 카라마츠를 보며 토도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본가에서 나가기 싫다고 했으면서 말야]
[흐흥. 나는 쵸로마츠가 부양해줄 거니까...]
[언제적 얘길 하는 거야!!]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의 배에 쵸로마츠의 주먹이 쳐박힌다. 카라마츠는 배를 부여잡고 웅크린 채, [브라더어....지금 건 제대로군.....] 하고 중얼거린다.
[아, 그렇구나. 쵸로마츠형 열심히 해!]
[남 일인 듯 말하지 마!!]
[그럼 나도 카라마츠형 따라서 나갈게-]
우하하, 하고 웃으며 말한 건 쥬시마츠였다. 그 말에 토도마츠만이 아닌 이치마츠도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에, 쥬시마츠형까지!? 거짓말!!]
[어이 쥬시마츠, 쿠소마츠를 따라가서 좋을 거 없다고...]
[그치만, 그치만-! 그럼그럼, 나랑 카라마츠형 대신에 두 사람이 나가면 되잖아-!?]
[우, 그건.........]
역시 여섯 쌍둥이는 제일 가는 쓰레기였다. 형제를 걱정하는 듯 보여도, 결국은 자신이 먼저인 것이다. 흘끗, 장남을 쳐다보지만 여전히 만화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이쪽의 이야기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 보여, 쥬시마츠들 대신 나가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칫, 하고 이치마츠가 혀를 차고, 토도마츠도 한숨을 내쉬며 쥬시마츠를 바라봤다.
[알겠어. 쥬시마츠형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무슨 일이 생기면 제대로 연락하고]
[쿠소마츠가 너무 안쓰러워서 싫어지면 바로 돌아와...]
[응, 괜찮아! 형이랑 토도마츠 고마워-!! 형들도 뭔가 있으면 전화해!]
부랴부랴 짐을 싸서 집을 나가는 차남과 삼남, 오남의 등을 바라보며, 토도마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엄청 걱정 되네...]
[괜찮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오소마츠형은 가만히 있어!]
[앞으로 평생 녀석들 얼굴은 못 보는 건가......]
[뭔 그런 네거티브한 발언을 하는 거야 어둠마츠형!!!]
◆◆◆
[형, 화났슴까?]
옆자리의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니, 화나지 않았다고 브라더] 하고 답한다. 하지만 쥬시마츠는 여전히 카라마츠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아, 카라마츠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쥬시마츠?]
[응, 오소마츠형과 싸우기라도 한 건가 해서!]
쥬시마츠가 터무니 없는 말을 꺼내, 카라마츠는 놀라며 [그렇지 않다] 라고 말했다.
[그런가, 기분 탓이려나~]
쥬시마츠는 입을 크게 벌리며 헤벌쭉 웃었지만, 카라마츠는 내심 식은땀을 흘려댔다. 쥬시마츠는 직감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감이 정말 좋다. 카라마츠는 동생들 앞에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지만, 이 동물 수준의 후각을 가진 동생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알고 있는 건 당사자인 오소마츠와, 쥬시마츠인가.
카라마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대체 어쩌고 싶은 걸까. 절대로 본가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자신이 이렇게 깨끗이 집을 나오고 만 것도, 요는 오소마츠형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였다.
그날 방에 매달려있는 걸 봤을 때. 카라마츠는 그 때만큼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방에 들어서, 그걸 본 순간. 그게 무엇인지 카라마츠는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무척이나 낯익은 양말을 신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 발에 손을 뻗었다. 1초 1초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자신의 손끝이 좀처럼 그 발에 닿지를 않았다. 흔들리는 몸. 필사적으로 떨리는 손을 가라앉히며 발을 붙잡고, 위를 올려다보면, 눈에 보이는 건,
빨강.
카라마츠가 잘 아는 빨강.
매일매일 싫증도 내지 않고 그가 입고 있는, 샀을 당시에는 좀 더 밝은 빛이었는데 몇 번이고 세탁을 해댄 탓에 색이 빠져 옅어져 버린 빨강. 카라마츠는 곧잘 다른 옷을 입었지만, 게으른 그는 매일 그걸 입었으니까.
그러니까 카라마츠는 늘 그걸 보아왔다.
매일, 몇 개월이고 몇 년이고 몇 십년이고.
그 색을, 매일매일, 계속 보아 왔다.
그리고, 그 색이,
거기에
[카라마츠형!!!!]
핫, 하고 정신을 차린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샌가 눈앞에는 자그마치 수십년은 더 되어 보이는 낡은 건물이 있었다.
[카라마츠, 쥬시마츠, 수고했어. 방, 안내할게]
카라마츠보다 먼저 도착해있던 쵸로마츠의 뒤를 따라 자신들의 거처가 될 방으로 가면서, 카라마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무서웠던 거다. 형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그 때가 떠올랐다. 붉은색의 공포를 절감한 것이다. 그 때, 카라마츠의 뇌와 몸은 기억해버렸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공포를. 그의 소중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를---.
◆◆◆
[1, 파칭코에 가지 말 것]
[아잇]
[절약을 위해서니 어쩔 수 없군]
[2, 집안일은 분담할 것]
[라고는 말해도 쵸로마츠는 알바로 바쁘고, 쥬시마츠는 야구로 바쁘니까 내가 담당하지]
[하지만 카라마츠토 알바하잖아. 힘들지 않겠어?]
[집안일은 특기고 좋아하니까 괜찮다]
[고마워. 그럼, 집안일은 카라마츠가 맡지만, 최대한 도와줄 것]
[아잇]
[3, 낭비하지 말 것]
[옷도 안 되는가...?]
[안 되는 게 당연하잖아]
[카라마츠형, 몇 달만 참자-!!]
카라마츠와 쵸로마츠, 쥬시마츠 셋이서 살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했지만 의외로 생활은 평탄했다. 그도 그럴게, 이 3명은 평소에 사이코 패스나 미치광이, 폭군 등으로 분류되는 인간들이었지만, 이 3명만 있으면 의외로 무척이나 얌전한 것이다.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없으면 마음껏 상식인의 탈을 쓰고 있을 수 있었고, 사실상 형제들 중 가장 평범함에 가까운 상식을 가진 건 카라마츠였으니까 평소의 사이코 패스 레벨의 천연함만 보이지 않으면, 그냥 단순히 듬직한 형처럼 보였다. 쥬시마츠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카노죠와 있던 그때처럼 제대로 된 표정과 발언이 충분히 가능했다.
카라마츠는 턱을 괴었다. 한가하고 한가해서 견딜 수가 없다, 라는 표정이었지만, 그걸 보고 상대를 해줄만한 인간은 없었다. 쵸로마츠는 아르바이트에 쥬시마츠는 야구로, 집에 남은 건 자신뿐이었다. 거울로 자신을 감상하는 것도 마침 질려버린 참이었다. 여기서 한가함을 드러내도, [심심하면 놀자!] 라고 참견할 형도 없고, [너 방해되거든] 하고 노려보는 사남도 없고, [카라마츠형, 오늘은 웬일로 집에 있네~] 라며 말을 걸어줄 막내도 없었다.
쓸쓸하군, 카라마츠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잠자코 있었다. 소리를 내도 어쩐지 허무할 기분만 들어서였다.
게다가, 본가에 있을 때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찾아왔었는데, 하고 카라마츠는 생각했다.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는 종종 어깨에 예쁜 여성을 업고 돌아왔고, 길가에서 가끔 마주치는 토도마츠는 늘 4명 정도의 여성에게 둘러싸여 있고, 집에 돌아올 때도 양손에 꽃, 이란 상태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그와 반대로 자신들은 어떤가.
쵸로마츠가 길을 갈 때면 그곳에 있던 여성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쏴악- 하고 쵸로마츠가 가는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모두 허둥지둥 어딘가로 떠나버린다. 집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쥬시마츠가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게 보이곤 했는데, 부웅, 부웅, 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그 탓에 주변에 접근하려던 여성과 남성, 혹은 뭔지 모를 검은 것들이 휙휙 날아갔다. 풍압으로 사람을 물리치는 쥬시마츠, 라고 카라마츠는 반신반의로 그 상황을 바라보았지만, 쥬시마츠라면 가능할 것 같다며 카라마츠는 억지로 납득했다.
카라마츠는 집에 있을 때, 늘 창가에 기대어 스타일리쉬하게 밖을 바라보는 게 일과였다. 그리고 길을 가는 카라마츠 걸과 눈이 마주치면 찡긋, 하고 윙크를 날렸다. 그러면 카라마츠의 매력에 여자는 간단히 넘어가고 만다. 샤이한 카라마츠 걸도, [에, 설마 저 사람, 내가 보고 있는 걸 알아챈 거야?] 라고 생각해, 이쪽에 말을 걸어왔다.
라는 수단이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카라마츠와 눈이 맞아 윙크를 받은 운 좋은 걸들은, 순식간에 시선을 돌려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가거나, 친구들이 주변에 있으면 뭔가 수근거렸다. 뭐어, 어차피 전자는 부끄러웠던 것일테고, 후자는 [저 사람 역시 너무 멋있어~!!] 같은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라마츠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외의 반응을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폭발해 버리는 것이었다. 카라마츠의 윙크로 인해. 카라마츠에게 있어 자신의 윙크로 그 아이의 하트를 관통한 것뿐이라면 좋았겠지만, 그와 달리 몸 통째로 꿰뚫려, 그것은 폭발해 사산하고 만다.
여성에게 윙크한 것만으로 여자를 폭발시키는 카라마츠는 어쩌면 좋을지 몰라, 폭발시킬 때마다 당황했다. 참고로 곁에 있던 남자들은 질질 울면서 도망을 쳤다. 한쪽 다리가 없어 제대로 뛸 수 없는 사람들은 걱정스러워 카라마츠가 다가가면,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라며 붉은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다.
지나가던 새파란 얼굴의 오소마츠가, [너 언제 데스 윙크를 터득한 거야?] 라고 물어왔지만 카라마츠에겐 이게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데스 윙크라니 뭔가. 카라마츠는 다른 애니메이션의 모 오카마 같은 게 아니다.
콘센트에서 튀어나온 대량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부드럽게 풀면서 카라마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거울을 봐도, 자신이 전혀 즐거워하지 않는다. 토도마츠들과 떨어진 게 무의식적으로 괴로웠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쥬시마츠한테 [하지만 형, 정색하는 경우가 더 많슴닷!] 하고 들어서 카라마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던가. 집에서 거울을 볼 때는 늘 웃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시험삼아 오른손을 들자, 거울속의 나는 왼손을 든다. [우왓, 반대쪽 손을 들었다!!] 라며 놀라 소리치자, 옆에서 양치를 하던 쵸로마츠가 [아니, 거울이니까 같은 측의 손을 드는 건 당연하잖아!] 하고 화를 낸다. 본가에서는 내가 오른손을 들면 거울의 나도 오른손을 들었는데.
벽이 얇은 건지, 종종 옆에서 [할아범, 할아범, 오늘 점심은 뭐요]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답하는 기척은 없고, 부른 이도 계속 답을 기다리다 답이 돌아오지 않자, [할아범, 할아범...] 하고 가늘고 슬픈 듯한 목소리로 계속 상대를 부른다. 그걸 가엾게 여긴 카라마츠는 [할머엄, 점심이라면 아까 먹었잖수] [그랬나아] 하고 생산성 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웃에게 인사하고 왔다는 쵸로마츠의 말에 의하면, 그 옆은 비어있다는 모양이다.
몇 주가 지났을 즈음, 청소를 하려 침대 아래를 들여다보니 남자와 눈이 마주쳐, 카라마츠는 그 남자가 울며 빌 때까지 때려눕히겠다며 집에다 패대기쳤다. 그 안쪽 상자에 숨겨진 듯한 고양이 귀를 단 여자가 표지에 그려진 성인 잡지를 미묘한 기분으로 바라보며, 쵸로마츠가 갖고 있는 하시모토 냐라는 아이돌이 그려진 표지의 잡지 옆에 나란히 두었다.
쿵, 하고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현관에서 들려, 설거지를 하던 카라마츠는 손을 닦으며 현관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얼굴을 내밀었다. 현관에서 뭔가가 드드득 드드드드득 하고 할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술에 잔뜩 취한 쵸로마츠나 쥬시마츠가 집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한 카라마츠는 수상하게 여기면서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밑에 있는 우편물을 넣어두는 작은 문이 열렸다. 거기로 새하얀 손가락이 기어들어왔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틈새로 손등이 들어오고, 천천히 손목까지 집안으로 들어왔다. 가냘프고 하얀 그 손은 여성의 것일까. 손목에 이어 팔까지 집안으로 들어온 그것은, 마치 뭔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꿈틀하고 움직여, 카라마츠는 그녀는 대체 뭐가 하고 싶은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런가 집에 들어오려고 하는 건가, 하고 알아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좋았을텐데! 하고 카라마츠는 잠금을 풀고 문을 있는 힘껏 열었다. 물컹한 소리와 함께 밖에 있던 하얀 피부에 너덜한 옷을 입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우, 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앗] 하고 소리치면서 머리를 흩날리며 달려드는 여자의 얼굴을 카라마츠는 가볍게 피한다. 여자가 왼손을 카라마츠에게 뻗었지만, 카라마츠가 뒤로 물러나자, 여자는 괴로운 듯이 왼손을 뻗은 채 굳어버렸다. 오른손이 아까와 그대로 틈에 끼어있는 상태라 카라마츠에게 손이 닿지 않은 것이다. 여자는 오른손을 빼내려고 했지만------빠지지 않았다. 꾹꾹 있는 힘껏 잡아당겨도 팔은 빠지지 않았다.
『아.....안 빠져......』 하고 훌쩍이는 여자에, 역시 카라마츠도 그녀가 불쌍해져, 빼내는 걸 도와주려 손을 뻗었다.
벽장을 열면 묘하게 곰팡이 냄새가 났다. 벽에 뭔가 덕지덕지 붙어있어 들여다보면, 오래된 부적들이 잔뜩 붙어있다. 더럽다고 생각해 부적을 전부 떼어내고, 특제 카라마츠 스페셜 (여러가지 세제와 에탄올 초배합)을 뿌렸다. 뭐가 이상한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지만 전부 무시했다.
청소해도 청소해도 검은 얼룩이 계속해서 생기는 부분이 있다. 카라마츠는 특제 카라마츠 스페셜로 늘 거기를 청소하고 있지만 좀처럼 지워지질 않았다. 살짝 짜증이 난 카라마츠가 인터넷으로 알아본 결과, 얼룩은 중층(일단 직역했는데 이게 뭔지는 모르겠네요; 영 다른 의미로 나오고 뭔지 아시는 분 댓글주세요!)과 구연산으로 대개 떨어진다고 해서 바로 구입해 대량으로 뿌렸다.
겨우 얼룩이 지워져 보이지 않게 되어 카라마츠는 대만족했다. 그와 동시에 욕실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던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도 없어졌고, 천장의 사람 얼굴 형태 같은 얼룩도 사라졌다.
그 즈음에는 이미 카라마츠 3명이 집을 나간 지 한달이나 지나 있었고, 3명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안일도 하고 3명이서 자는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어쩌면 이대로 3명이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쵸로마츠는 남몰래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 남성 3명, 집을 빌려서 생활비를 벌려면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게다가 쥬시마츠도 카라마츠도 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하튼 그들이 사는 곳은 이른바 그것이었다. 어째선지 그들이 사는 원룸형식 아파트 중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쌌다. 게다가 이 도쿄 아카츠카구 중에서도 유난히 쌌다. 그래서 입주도 금방 결정됐다. 싼값에 쵸로마츠는 바로 그곳을 택했지만, 싼 것치고 부엌이나 욕실, 화장실 등도 다 있었고 설비가 좋았다. 이렇게 좋은 곳을 찾았다고, 라며 쵸로마츠는 기고만장했고, 카라마츠도 쵸로마츠의 안목에 크게 칭찬했지만, 이곳은 본래 평범한 인간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쳐버렸을 장소였다. 하지만 아파트에게 있어 운이 나쁘게도 이곳에 입주한 것은 사이코패스와 미치광이, 그리고 폭군이었다. 정상이 아닌 그들에 의해, 그간 평온했던 유령 아파트는 아비규환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정상이 아닌가, BANG. 같은 말을 지껄이며 폼이나 잡는 파란색 점프 슈트를 입은 남자를 보며, 유령들은 울면서 아파트를 떠나야 했다. 카라마츠들이 이사 온 방에 살던 유령들은 아파트에 있는 녀석들보다 근성 있는 녀석들이 많았는데, 결국은 강제 제령을 이기지 못하고 울면서 뛰쳐나오게 되었다. 그들에게 이길 자는 없었던 것이다.
뚜루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 하고 전화가 울려 [네, 쥬시마츠임다!] 하고 기운 좋게, 쥬시마츠는 오늘만 43번째인 전화를 받았다. 카라마츠한테 [메리씨와 사토루군, 리카짱 이외에는 종교권유니까 끊어도 된다] 라고 들었기에, [도와줘어....] 라고 말하는 순간 [종교권유는 거절함닷!!] 하고 기운 좋게 전화를 끊었다. 가끔 [잠깐만, 나 유령 앤서 [유령의 권유도 거절함다!!] 뚝,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러나 43번째 전화를 쥬시마츠가 받았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흐느끼는 소리로, 아니, 그건 딱히 아까 42번째 전화와 다르지 않았지만, 뭔가 이번 목소리만은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예를 들자면---그의 단 한명의 동생이라던지. 곧이어, [......훌쩍, .....도와, 줘.....우윽.....] 하는 소리가 들려, 역시 토도마츠다!! 하고 쥬시마츠는 알아챘다. [토도마츠, 토도마츠. 왜 우는 거야!? 형들한테 괴롬힘이라도 당했어!?] 쥬시마츠의 말에 [으으응.....아니야...그게 아니야...] 훌쩍훌쩍, 하고 울면서 토도마츠가 부정한다. [쥬시마츠혀어엉.....돌아와줘....나, 이제...무리야아...]
쥬시마츠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목만 뒤로 돌아보았다.
[카라마츠형, 쵸로마츠형!!]
[왜 그러나, 브라더]
[왜 그래?]
거실에서 저녁을 먹던 카라마츠와 쵸로마츠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보았다.
[뭔가 토도마츠가 돌아와달래! 어쩔까!?]
[미안, 나 내일도 아침 일찍 알바가 있어서 무리]
[카라마츠형은!?]
[으-음...내일은 근처 슈퍼에서 세일을 한다만.....]
쥬시마츠는 다시 전화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귀에 전화기를 대었다.
[쥬시마츠형,]
[미안 토도마츠! 갈 수 없어!]
뚝.
[너만 돌아가도 된다고, 쥬시마츠]
카라마츠의 말에 [돌아갈 땐 3명 함께! 그치!] 하고 쥬시마츠는 씨익 웃었다.
◆◆◆
카라마츠는 무서웠다.
오소마츠의 옆에 있으면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싫었으니까, 라고 말할 여유는 1미리도 없었다.
왜냐면 눈앞에서 오소마츠가 빛나는 듯한 환한 미소를 카라마츠에게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곳에 오소마츠 본인은 없다. 있는 건 눈앞의 오소마츠 특대 포스터와 크기가 다양한 수십장의 포스터였다.
[기분 나빠...]
안쓰러운 차남을 연기하는 것도 잊고, 카라마츠는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차남을 보고, 방의 주인인 삼남은 걱정스러운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군다나, [왜 그래? 몸이라도 나빠?] 같은 말을 지껄였다. 물론 카라마츠는 몸이 안 좋은 게 아니었다. 이유는 이 방의 주인 때문이었다. 이전에 본가에서 살 때에는 사람이 많았던 탓인지, 포스터를 벽이나 천장에 붙여두는 아이돌 오타쿠스러운 행동을 본 받고 싶어도 제 나름의 상식적인 사고로 그건 미치광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인지했던 탓인지, 그런 행동은 억제하고 있었을 터인데, 인원이 3명으로 줄어든 이 환경에서는 그런 족쇄도 먹혀들지 않는다는 걸까. 보는 이의 눈이 적다는 환경의 차이가 실로 무섭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 순간, 뭔가 발에 걸려 무심코 그쪽으로 눈을 돌린 카라마츠는 크게 후회했다. 평범한 후드티. 그것도 붉은색이다. 이상하군, 이 방의 주인의 컬러는 녹색이고, 빨강은 저 멀리 떨어져있는 장남의 것일 텐데. 하지만 이 색들은 공동생활에서 서로간의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지금 삼남이 빨간색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쵸로마츠가 붉은색 후드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나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작은 것에 흠을 잡다니....라며 방을 둘러보자.........빨강빨강빨강빨강빨강빨강. 얼마나 있는 거냐고. 카라마츠는 말문이 막혔다. 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빨간색이다. 어째서. 붉은색의 저주에라도 걸린 걸까. 빨간 방이 좋은 걸까? 그럴 리 없다. 호러 게임 못하고. 하지만 말 그대로 빨간 방이다. 영원히 모른 척 할까, 라며 카라마츠는 밉살스런 눈으로 방을 흘겨보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도시전설을 떠올리며 탁자 앞에서 대기. 뜨거운 차로 한숨 돌린다. 그보다, 이 탁자, 본가에 있는 것과 똑같구나. 어느새 가져온 걸까. 무섭다.
카라마츠는 쵸로마츠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바라본 쵸로마츠는 솔직히 본가에 있을 때보다 무척 야위었고, 눈밑에 다크서클이 깔려 있었다. 차를 든 손가락도 뼈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너, 제대로 쉬는 건가?]
지쳐보이는군, 라는 말은 애써 삼킨다. 부주의하게 말을 거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천하의 카라마츠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치는 게 당연하다. 여하튼 그는 지금 백수생활을 벗어던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건 쵸로마츠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카라마츠나 쥬시마츠가 생활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있다.
[음-. 그렇네. 그래도 이번에 장기휴가 받았어]
라고 쵸로마츠는 웃었다. 카라마츠는 쵸로마츠가 이렇게 무리하고 있는 걸 알아채지 못한 자신을 힘껏 후려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쵸로마츠는 풀로 일을 하긴 해도, 주 2일은 쉬도록 했을 텐데. 집안일도 자신이 해서, 수고를 덜어주고 잇다. 쵸로마츠가 쉴 수 있도록 카라마츠도 어느 정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계를 지탱하고 있어서, 쵸로마츠가 몸이 부숴질 정도로 일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주 4일 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 3명 몫의 아침과 저녁밥에, 점심 도시락을 만들고, 방의 찌든 때(괴기현상 포함)의 청소를 하는 카라마츠의 체력은 괴물이라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타미 가고 싶네에]
......응. 그러네. 권유했었지. 너는 무시했지만. 계속 기억하고,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 그때 너는 취직 때문에 필사적이었으니까 말야.
[저기, 카라마츠 이거 봐. 내가 계획을 생각해봤어]
그렇게 말하며 보여준 건 두툼한 책자. 수제였다. 에, 뭐야 이거. 카라마츠는 그걸 받아들고, 그만 떨어뜨릴 뻔했다. 표지에 [아타미 여행의 안내서] 라고 적혀있다. 너무 두꺼운 거 아닌가!? 카라마츠는 슬쩍 내용을 보고 몸을 떨었다. 페이지마다 일정이 적혀있는 건가..!?
[그래! 오소마츠형, 아타미도 좋지만, 벳푸도 괜찮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포스터에게 피식 미소를 짓는 동생에, 드디어 카라마츠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무섭다. 내 동생이 너무 무섭다. 카라마츠는 울상으로 아타미 여행 안내서를 움켜쥐었다.
......이건 이제, 집에 돌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
[간만의 집이네-]
[다녀왔스루머스루! 핫스루핫스루!!]
약 3달만에 본가에 돌아온 3명은 즐거운 표정으로 귀로를 걸었다.
이 귀가를 결정하기까지 한바탕 말썽이 있었지만, [절!대로 돌아갈 거니까!! 아니면 싫어!!] 라고 소리친 카라마츠에 의해 강제적으로 귀가가 결정되었다.
[뭔가 어둡지 않아?]
오랜만에 본가에 돌아온 카라마츠의 첫마디는 그거였다.
[그렇네!!] 라고 쥬시마츠가 답하고, 쵸로마츠가 [에, 어둡다니 뭐가?]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라마츠는 집을 둘러보았다.
유리창은 새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벽은 여기저기에 손자국? 같은 것이 잔뜩 나있었다. 게다가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 무언가가 썩는 듯한 악취가 아까부터 감돌았다.
현관이 시커먼 것으로 뒤덮여 있어서 문이 어딨는지 몰랐으나, 쵸로마츠가 검은 안개에 손을 넣어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열자, 말 못할 강한 악취가 집에서 흘러나왔다.
신발을 벗고 복도에 오르자, 카라마츠의 발이 질척한 무언가를 걷어찼다. 내려다보니, 검고 찐득거리는 무언가가 떨어져있다. 뭐야, 이거 기분 나쁘구만, 하고 카라마츠가 생각하자, [이치마츠!] 하고 쵸로마츠가 그 검은 물체에 달려들었다.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주저 않고 검은 무언가를 들어올리자, 끈적한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렸다.
[어이, 쵸로마츠. 그렇게 만져도 괜찮은 건가?]
카라마츠가 묻자, 쵸로마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가?]라고 답한다.
[그거]
검고 끈적거리는 물체를 가리키며 말하자, [이치마츠를 일으키려고 한 것뿐인데] 라고 답한 쵸로마츠는 다시 끈적하고 검은 물체를 만졌다. 결벽증이 약간 있는 쵸로마츠가 싫어할 법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져, 어쩌면 그건 정말 이치마츠인 건가? 하고 카라마츠는 뚫어지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그것이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독한 악취가 나, 카라마츠는 황급히 얼굴을 뗐다.
고개를 돌려 쥬시마츠를 보니, 기겁한 얼굴을 하곤 소매로 코와 입가를 누르고 있다.
쵸로마츠가 이치마츠를 거실로 옮기자고 해서, 카라마츠가 그 검은 물체를 업게 되었다. 카라마츠는 사실 엄청 싫었지만, 동생이 그걸 이치마츠라고 우기니, 하는 수 없이 카라마츠는 그 검은 물체를 짊어진 것이다. 검은 액체가 얼굴에 뚝뚝 떨어져, 카라마츠는 기분이 나빠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쏴-, 하는 물소리가 욕실에서 계속 들려와, 거실에 이치마츠인 듯한 무언가를 내려놓은 카라마츠들은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계속 틀어놓은 채 방치한 모양이었다.
[거기 누구 있어?] 라고 쵸로마츠가 말을 걸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카라마츠가 문을 열자, 거기에 무언가가 검게 그을린 숯 같은 것이 있었다. 숯이 왜 욕실에? 라는 카라마츠의 의문은 [토도마츠!!]란 쵸로마츠의 외침에 막을 내렸다.
카라마츠는 눈을 깜빡이며,
[그거, 토도마츠인가?] 하고 놀라 물었다. 그런 카라마츠에 [달리 뭐로 보이는데] 하고 쵸로마츠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도 내가 드는 건가?] [당연하잖아] 카라마츠는 잔뜩 풀이 죽었다.
또 퍼펙트 패션이 더러워지겠군. 쥬시마츠는 거의 흙빛이 된 얼굴로 입가를 계속 틀어막고 있었다.
질척한 무언가와 숯을 등에 짊어진 탓에 옷이 더러워져, 옷을 갈아입으려 카라마츠는 2층에 올라갔다. 도중 화장실에 갔더니, 바닥에 시뻘건 액체가 고여있던 탓에 다리가 더러워져 버렸고, 세탁기 뚜껑을 열었더니 안에 있던 누군가와 마주쳐서 카라마츠는 그대로 말없이 세탁기를 닫았다. 계단을 올라가던 중에도 누군가가 박목을 잡아 넘어질 뻔했다. 이런 곳에서 넘어지다니 웃음거리도 안 된다, 지나친 장난은 안 된다고, 라며 팔목을 반대 방향으로 꺾자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반성해준 듯해 안심이다.
겨우 2층 침실에 도착한 카라마츠는 문을 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발이다.
발이, 떠있다.
흔들, 흔들.
흔들.
흔들리고 있다.
아냐, 인형이다, 라고 카라마츠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타일렀다. 인형이다. 인형이었다. 저건 인형이었다.
카라마츠는 시선을 위로 옮겼다. 그러나 빨간 옷이 보였다. 그 위에. 그, 위.......에.
[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오소마츠의 얼굴이 있었다.
◆◆◆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외침에 눈을 떴다. 차남의 들어본 적 없는 비명소리가 오소마츠의 귀를 윙윙 울렸다. 머리가 엄청 아프다. 오소마츠는 흐릿한 시야로 동생을 찾았다.
꿀꺽, 하고 목이 울렸다.
오소마츠의 눈이 카라마츠를 발견했다.
어째선지, 한참 내려다보는 위치에 카라마츠가 있었다.
카라마츠는 여태 한번도 본 적 없는 굉장한 얼굴이었다.
검푸른 불꽃이 흔들거리는 눈동자에 붉게 물든 눈, 흙빛이 된 피부, 보라색으로 물든 입술. 손톱을 세워 뺨을 어루만지며 눈을 부릅뜬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오소마츠]
.........지금, 구해줄테니까.
*내용해설*
이번 이야기의 시작은
쥬시마츠가 거대 테루테루보즈를 만들면서 시작됩니다
(본편에 나오지 않으나, 작가님말에 적혀있습니다)
(*참고로 테루테루보즈는 일명 맑음이 인형으로, 처마끝 등에 걸어두면 날씨가 맑아진다는 속설이 있어,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혹은 비가 그치게 해주세요 라는 의미로 만들어 걸어두는 인형입니다. 자세한 건 초록창)
*작가님 말에 쓰여진 부분 해석*
아- 내일 날씨가 좋기를!
내일 일기예보는 비.
야구가 하고 싶은 쥬시마츠는 거대 테루테루보즈를 만들기로 했다.
모처럼이니 근처에 널부러져 있던 형의 옷도 입혀줬다.
-
거대 테루테루보즈에 오소마츠의 옷을 입혀 매달아둔 쥬시마츠 때문에
카라마츠는 크게 놀라게 되고,
이후 쵸로마츠, 쥬시마츠와 함께 집을 나가게 됩니다.
중반에는 딱히 설명할 부분이 없어서 넘어가겠습니다
그냥 카라마츠가 괴기현상을 제거할 뿐.....
본가에 돌아가기 전 빨간방 이야기 부분은
쵸로마츠가 일의 고됨 + 집에 오랫동안 가지 않음
(오소마츠형을 보지 못함) 에 의한 현상입니다
아무래도 쵸로마츠의 세계에서 오소마츠는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본가에 돌아갔을 때를 설명하자면,
본가가 검은안개에 휩싸이고 이치마츠와 토도마츠가 검은물체(숯)가 된 건
아마도 영감(기)이 센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카라마츠가 없어진 탓일 겁니다
카라마츠가 집에서 혼자 지루해하는 부분을 보면,
쵸로마츠와 쥬시마츠 또한 영감 혹은 기가 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쵸로마츠 모세의 기적 / 쥬시마츠 배트로 귀신 날림)
또한, 오소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가
귀신에 얽히기 쉽다는 것도 알 수 있죠
(*본문*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는 종종 어깨에 예쁜 여성을 업고 돌아왔고, 길가에서 가끔 마주치는 토도마츠는 늘 4명 정도의 여성에게 둘러싸여 있고, 집에 돌아올 때도 양손에 꽃, 이란 상태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
즉, 평소 귀신이 들러붙기 쉬운 이치마츠와 토도마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나 쥬시마츠, 쵸로마츠(아마 거의 카라마츠)에 의해
귀신들이 (강제/무의식) 제거 되었지만
그 3명이 없어진 탓에 귀신들은 집안에 모여들게 된 겁니다
(이게 유령 한명의 짓인지 여럿의 짓인지는 뒷이야기를 봐야 알겠지만요)
참고로, 본가에 갔을 때 3명의 반응을 봐선,
카라마츠나 쥬시마츠는 령을 보거나 느낄 수 있지만
쵸로마츠는 단순히 기가 센 것일 뿐 령을 보거나 느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검은 안개가 보이지 않기에 현관문을 열었고,
냄새도 맡지 못하며,
이치마츠와 토도마츠를 구분할 수 있었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오소마츠는
아무래도 그 거대 테루테루보즈에 갇힌 것 같네요
원래 인형에는 혼이 깃든다고 하니까 그런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한 건
다음편이 나와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설명이 엉망진창이라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한 건 아닐까 걱정이네요 'ㅂ'a
이외에 모르겠는 부분
이상한 부분은 손을 들고 질문해주세요
가 아니라 댓글에 적어주세요
친절하게 설명해드립니다 :D
-
일단 이걸로
[사이코패스계 남자, 카라마츠] 업로드분 전부 올렸습니다
다음편이 나오면 그때그때 업로드하겠습니다 :D
이제 남은 건 차남스펙소설인가!!